호랑이들의 밤

 

호랑이들의 밤

 

좌백

 

 

정말 재밌는 것은…… 하하…… 몇 년에 한 번씩 도사들이 모두 지리산에 모인다는 거예요.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백두산에서, 묘향산에서, 금강산에서 달려온다는 군요. 그렇게 모여서는 한민족 도사회합을 열고는 중요사항을 의논한다지요. 그게 끝나면 서울로 온대요. 남대문 앞에. 아니, 숭례문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거기 모여서 남대문을 뛰어넘는 시합을 한대요.

 

 

 

남대문 뛰어넘기

 

“어렸을 때 쿵푸 도장에 다닌 일이 있었어요. 당랑권이다, 태극권이다 뭐 이렇게 정해놓지 않고 뭐든지 가르치는 그런 도장이었죠. 당시가 8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흠, 성룡이 나온 영화 취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거든요. 도장에서 취권도 가르쳐 줬어요. 그러니 어떤 곳인지 아시겠죠?”

“그런 곳이 많았죠. 지금도 그런데요, 뭐.”

“거기 사범님이…… 하하…… 홍금보처럼 뚱뚱한 분이었는데, 무술 실력은 몰라도 말씀은 참 재미있게 하시고, 좋은 분이었어요. 우리랑 잘 어울려주시기도 했고. 가령 수련시간 끝나면 떡볶이를 사 주신다거나……. 하루는 이분한테 물어봤어요. 쿵푸는 중국 무술이잖아요. 우리나라 무술은 태권도 말고 없어요? 있다, 그러시더라고요. 뭔데요? 물었더니,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모르는 무술이다. 왜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요? 도사들이다.”

“도사들요?”

“예, 도사들요. 그분 말씀으로는 아주 오래 전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만 전해지는 무술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수련하는 사람들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사들이고, 도사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비술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절대 일반인들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이외수의 소설 〈칼〉이라고 있잖아요. 거기서 마지막에 칼을 수습해 가는 노인도 그런 도사 중 하나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 도사들은 그럼 대체 평소엔 뭐하냐? 물었더니 평소엔 산 속에 숨어서 도술을 수련한다는 거죠. 지리산이며 설악산, 오대산은 물론이고 지금은 휴전선 이북에 있는 묘향산, 구월산, 금강산에 백두산까지 도사가 없는 곳이 없다네요.”

“재밌네요.”

“정말 재밌는 것은…… 하하…… 몇 년에 한 번씩 도사들이 모두 지리산에 모인다는 거예요.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백두산에서, 묘향산에서, 금강산에서 달려온다는 군요. 그렇게 모여서는 한민족 도사회합을 열고는 중요사항을 의논한다지요. 그게 끝나면 서울로 온대요. 남대문 앞에. 아니, 숭례문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거기 모여서 남대문을 뛰어넘는 시합을 한대요. 못 본 사이 도력이 얼마나 늘었나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하하하…… 재밌죠? 너무 황당해서 어렸을 때도 믿진 않았는데 가끔 기억이 나네요. 오늘 전통무술을 취재하러 간다고 들었을 때부터 내내 그 기억이 머리에 맴돌았어요.” “대체로 제가 아는 것과 같은데 한 군데가 틀리네요.”

“예?”

“요즘은 남대문 안 뛰어넘어요. 국보 일호를 어떻게 뛰어넘어요. 그러다가 기왓장이라도 부수면 어쩌려고…….”

“예?”

“요즘은 독립문을 뛰어넘어요.”

 

 

달빛 자르기

 

도무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윤 기자와 장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농담 치곤 너무 진지하고 진담 치곤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무어라 할 말이 없어 나도 침묵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황당한 말을 하는 사람들과, 아, 시작은 내가 했지만, 전통무술을 찾아간다는 그리 평범하지 않은 길을 떠나게 된 것은 윤 기자 때문이었다. 평범한 기자는 아니었다. 태권도에서 검도를 비롯해 중국 무술까지 섭렵한 무술의 고수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전통검술의 하나인 ‘달빛 자르기’를 배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수자는 아니고 그냥 인연이 있어 조금 배운 정도라고는 하지만.

듣자니 한국 전통무예의 전수는 극히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서 때로는 배운 사람도 자신이 뭘 배웠는지 모른다고 한다. 우연히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배우긴 배웠는데, 그게 누구인지, 또 배운 것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형제, 즉 사형제지간에도 서로 모른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내부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특별한 몇몇밖에 없다고 한다.

윤 기자 역시 원래는 자신이 누구에게서 뭘 배웠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노인이 당시 권법을 가르침 받던 스승 집에서도 보이더니, 어느 날 자신을 뒷산으로 불러서 검술 몇 동작을 가르쳐 주고 떠났다가 몇 년이 지나 다시 나타나서는 또 몇 동작을 가르쳐주고 다시 떠날 때까지 노인의 이름도, 자신이 배운 검술의 이름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이 전통검술의 하나인 ‘달빛 자르기’를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나 또 다른 인연이 이어져서라고 하는데, 그 인연이 무엇인지는 내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너무 옛날이야기 같고,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아서 믿어지지가 않는데, 문제의 달빛 자르기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비전이라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와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뻔한 패턴이다.

이러이러한 전통무예를 할 줄 안다. 보여 달라. 비전이므로 보여줄 수 없다. 안 보고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의심할 수도,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 두 마리 같은 논리인데, 소위 전통무술의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논리를 주장하고 있어서 전통무술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 부분, 그러니까 ‘달빛 자르기’에 관련된 부분을 빼면 윤 기자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무술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달빛 자르기를 이야기할 때의 신비한, 그러니까 황당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그는 지독하게 의심이 많고 회의적이다. 그야말로 안 보면 믿을 수 없다를 넘어서서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는 손톱만큼도 못 믿겠다는 게 평소 태도다. 그리고 그 면도날은 주로 ‘전통’을 간판으로 장사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집단과 사람에게 겨누어져 있다.

‘저건 쿵푸를 변형시킨 거네요. 서는 법은 당랑권이고 손동작은 영춘권인데요.’

‘저건 몇 군데만 바꾼 가라테군요. 뭐, 가라테도 애초에 중국권법 중 백학권이라는 걸 변형해서 만든 거지만…….’

‘저게 전통무술이 맞는지는 몰라도 아무 쓸 데가 없는 거예요. 저렇게 칼을 쓰다간 한 방에 죽어요.’

이런 신랄한 비판 끝에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항상 이거다.

‘현대에 와서 창작한 무술이라고 해도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고, 좋은 무술일 수 있다. 문제는 그걸 전통무술이라고 포장하는 것이다. 현대에 창작한 무술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무술체계를 수립하고 전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온 거라니, 신라 화랑이 수련하던 거라니, 심지어 단군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거라니 하는지 모르겠다.’

 

 

태평동 찾기

 

장 선생은 윤 기자로부터 소개받아 알게 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또 특이하다. 아니, 황당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종로의 모 금은방집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재벌 2세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재산을 물려받은 덕분에 평생 직업 없이 살았다. 즉, 생계를 위한 일은 해본 일이 없고 대신 취미생활로 평생을 보냈는데, 그 취미란 바로 무술 연구였다.

우연한 기회에 무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서인지 몸으로 익히지는 못하고, 대신 눈과 귀로 즐기고 무술의 역사와 원리를 머리로 이해하고 정리함으로써 대리만족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가 바로 전통무술인데, 한국에서 전통무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 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가 모르는 사람 또한 없다는 게 내가 들은 그에 대한 평이었다.

근래 몇 년 간은 무술 연구 외에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겼는데, 이름 붙이자면 ‘태평동 찾기’라는 것이었다. 보물찾기와 비슷하지만 찾는 게 보물은 아니고, 유적 탐사하고도 비슷하지만 유적을 찾는 것 또한 아닌 이 태평동 찾기가 어찌 보면 평범한 무술 마니아에 불과한 장 선생을 대단히 황당한, 어쩌면 아주 비범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태평동이란 전설 속의 장소, 이를테면 서양의 샹그리라나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은 곳인데, 바로 백두산 속에 있다고 알려졌다. 아니, 적어도 장 선생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조선 중기에 조여적이라는 사람이 도사 이사연이라는 이의 제자가 되어 따라다니며 보고들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청학집〉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 끝부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태평동’은 갑산에서 동북으로 이틀 거리 되는 곳에 있다. 암석들이 험준한 이판령의 한 돌을 밀치면 동굴 문이 나온다. 굴이 좁아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정도인데 세 개의 초를 다 태울 동안 들어가면 굴이 넓어진다. 다시 두 개의 초를 태울 동안 더 들어가면 수십 보나 됨직한 넓은 연못이 나온다. 그 위에 나무다리 하나가 가로놓여 있으니 그 다리를 건너 다시 초 세 개를 태우도록 걸으면 산 위에 있는 굴로 나온다. 거기에는 사방 삼십 리 되는 넓은 땅이 있는데, 곧 태평동이다. 맑은 샘과 하얀 돌, 약초와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며 토지는 비옥하여 곡식이 잘 자란다. 네다섯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집집마다 뜰에는 옥 같은 꽃과 풀이 자라고 술동이에는 향기로운 술이 담겨 있다.

 

─ 〈청학집〉(1990, 명문당 간) 중에서 발췌

 

여기서 갑산이란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고 할 때의 그 갑산, 즉 지금은 이북에 있는 함경도 갑산을 뜻한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이틀을 가면 백두산이 나오니 이 기록이 사실이라고 보면 백두산 어딘가에 태평동이라는 한국판 무릉도원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청학집은 저도 읽어보았습니다만 설마 그게 사실이라고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혹시 사실이라도 저 정도 기록으로 어떻게 거길 찾습니까?”

“저 기록만 보고 태평동이 있다고 믿거나 거길 찾겠다고 나서면 미친놈이겠지.”

“그럼 다른 근거가 또 있단 말씀입니까?”

장 선생의 설명은 이랬다.

일제시대에 백두산 기슭에 살며 약초를 캐 먹고 살던 조선인 일가가 있었다. 이집 가장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약초를 캐러 어느 늦가을에 백두산에 들어갔다가 그만 철 이른 눈보라를 만나고 말았다. 백두산의 겨울은 9월에 시작해서 다음 해 5월까지 이어지는데다가 산은 높고 골은 깊은데 바람까지 세차 아차 방심하다 보면 골짜기 하나 넘었더니 가을에서 겨울로 뛰어들었더라 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바로 이 날이 그랬나 보다.

쌓이는 눈은 금세 허리까지 차고 추위는 뼛속에 스미는데 눈앞은 보이지도 않는, 그야말로 이대로 죽었구나 싶은 순간에 한 노인이 앞에 나타나더니 살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꿈인가 생신가 하며 허위허위 따라갔더니 어느 동굴을 지나 마치 한여름같이 따듯한 공간이 나타나더라. 며칠간 거기서 쉬었다가 다시 노인의 손에 이끌려 그곳을 떠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평소 잘 아는 산기슭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후로 이 약초꾼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사냥꾼, 약초꾼들이 근처를 뒤졌지만 백두산의 무릉도원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로 끝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 약초꾼이 어느 부근이라고 가르쳐 준 곳은 엉터리였다는 거야. 노인과 그렇게 약속을 했다는 거지. 정확한 장소는 비밀로 하기로. 그런데 죽기 전에 마음이 변했는지 거길 찾아가는 지도를 만들었다는 거야. 그 지도만 있으면 백두산 무릉도원인 태평동을 찾을 수 있는 거지.”

처음에는 장 선생도 웃어 넘겼다. 하지만 어차피 백두산이야 수시로 가던 곳이다. 간 김에 수소문을 해본 결과 태평동과 약초꾼 이야기가 웃어넘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손자를 찾았어.”

약초꾼의 손자가 조선족 자치구에 아직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찾아가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지도 이야기는 모른다고 그러는군. 근데 아무래도 감추고 말 안하는 게 있는 것 같아. 더 졸라 봐야지 뭐.”

웃지도 못할 정도로 진지하게 장 선생은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조선칼 만들기

 

황당 2인조와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가건물 두 채로 차려진 공장이었다. 해가 서산에 기우는 시간인데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지 뚱땅거리는 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가 있었다. 차가 가건물 앞 공터에 서자, 입구의 개집에서 덩치 큰 콜리 한 마리가 나와 우릴 보고 짓는다. 건물 밖에 나와 있던 남자가 개를 꾸짖어 조용히 시키고 우릴 맞으러 나왔다. 이 도검 공장, 즉 칼 만드는 공장의 사장인 배 사장이었다.

윤 기자와 장 선생은 이미 구면인지 친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윤 기자가 이제는 짖는 걸 멈추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손을 핥는 콜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한 마리는 어디 갔어요? 원래 두 마리였잖아요.”

“죽었어. 며칠 전에.”

갑자기 배 사장이 목소리를 낮춘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호랑이가 출몰하나봐.”

“무슨 말씀이세요?”

“옛날 분들 말씀에 호랑이 보고 놀란 개는 상처도 없이 생똥을 싸고 죽는다잖아. 죽은 놈이 그렇게 죽었거든. 전날까진 멀쩡했는데 아침에 나와 보니까 생똥을 한 무더기 싸놓고 죽어 있더라고. 안 그래도 큰 발자국이 근처에서 발견되고 호랑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참이었어.”

나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윤 기자 대신 콜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구부정한 곳 없이 쭉 뻗은 가슴에서부터 다리까지의 라인이며 부드럽게 휘어진 허리, 무엇보다 갸름하게 빠진 얼굴과 영리하게 반짝이는 눈은 이 콜리가 족보는 없을지 몰라도 좋은 혈통을 타고난 녀석임은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죽은 녀석도 이 녀석만큼 좋은 녀석이라면, 그리고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지 놀라서 죽은 거라면 그 원인이 된 놈은 보통 놈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라니.

지금은 백두산에도 동물원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게 한국 호랑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리산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하지 않고 배 사장은 열심히 호랑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엊그제 밤에 옆 동네 홍 서방이 장에서 돌아오다가 도깨비불을 만났는데 날이 밝아보니 논에서 자고 있더라, 이건 분명 여우의 소행이라는 이야기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배 사장과 같아 보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범상치 않은 분이 여기도 한 분 있었던 거다.

하긴 멀쩡하게 다른 사업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조선의 칼을 만들겠다고 짐 싸들고 지리산으로 들어와서 생전 해보지 않던 칼만들기 작업을 기초부터 공부해가며 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기를 십 년, 이제 기본은 익혀서 검도수련용 진검을 만들어 여러 곳에 판매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조선칼 만들기를 시도 중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조선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칼, 바로 사인검을 만드는 날이라고 해서였다. 적어도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그랬다.

“내일 새벽 3시부터가 12년에 한 번 오는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때까진 방에서 좀 쉬세요. 곧 저녁 준비해 들어가겠습니다.”

사인검. 자축인묘 십이지 중 인, 즉 호랑이가 들어가는 연월일시에 맞추어 만들어진 검이다.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재앙을 방지하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해서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곤 했었다.

“피곤하지도 않은데 쉴 게 뭐 있나요. 그보다 작업실이나 좀 보여주세요.”

“아유, 아직은 어설퍼서 뭐 보여드릴 거나 있어야…….”

배 사장은 한 발 빼는 듯 시늉만 하더니 공장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망스러운 풍경이었다. 넓기만 한 조립식 건물 안에는 모루며 숫돌, 망치 같은 것들이 질서 없이 흐트러져 있었고, 더도 덜도 아닌 작업복 차림의 청년 두세 명이 쇠붙이들을 만지고 있었다. 영세했다. 영등포 뒷골목에 늘어선 금속공장 중 하나에 비교하면 슈퍼와 구멍가게 정도 될까. 가내수공업에서 겨우 한 발, 딱 한 발쯤 더 나간 듯한 영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세해도 좋으니 차라리 옛 대장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면 전통적인 풍취라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도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선반과 밀링 머신, 그라인더에서 전통의 숨결을 느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품, 즉 도검을 보관해둔 창고 역시 공장 풍경과 비슷한 의미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거기 쌓여있는 도검들은 모두 일본도의 복제품이었던 것이다. 칼날의 휨도, 손잡이와 칼집의 장식도 모두 일본도 그대로였다.

“검도 하시는 분들이 수련용으로 사가시죠. 여기 삼각도는 전문 베기용으로 많이 찾아요.”

전형적인 일본도는 단면이 육각형이라 육각도라 부르기도 한다. 삼각도라는 건 더 날카롭게 표적을, 주로 짚단이다, 베기 위해서 삼각형의 단면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탄생지인 일본에서조차 올바른 검이 아닌 편법이라고 비난받는 게 삼각도였다. 그건 시범을 보이기 위한 도구지 무기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실망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건 탁자에 쌓아놓은 시커먼 철재들이 뭔지 알게 되면서 극에 달하게 되었다.

“금속공장에서 철판을 레이저로 잘라 이런 형태로 만들어 보내줘요. 그럼 이걸 두들기고 그라인더로 갈아서 칼을 만들죠. 그 다음엔 숫돌에 갈아서 광택을 내는데…….”

더 듣고 있기가 힘겨워서 말 중동을 자르고 질문을 던졌다.

“강철은 어떤 걸 사용하나요?”

“원래 탄소강을 써야 하는데……, 요즘은 스테인레스강을 더 많이 써요. 녹이 안 슬고…….”

윤 기자가 끼어들었다.

“일본도 특유의 하몬도 만들 수 있으니 좋죠.”

하몬이란 일본도의 칼날과 칼등을 구분하는 물결무늬의 선을 말한다. 원래 전통 일본도는 접철방식과 강재의 복합배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접철방식이란 재료가 되는 강재, 즉 강철몽둥이를 망치로 두들겨서 편 다음 세로로 길게 반으로 접어 다시 두들겨 펴고, 접고 펴고를 반복해서 나중엔 얇은 종잇장을 수십 장 겹쳐놓은 것처럼 칼날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강재의 복합배치란 단단하면 부러지기 쉽고, 연하면 휘어지기 쉽다는 강철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으로 경도가 높아 단단한 강재로 칼날 부분을 만들고, 경도가 낮아 연한 강재로는 칼등 부분을 만들어 후자로 전자를 반쯤 싸서 두들겨 하나로 접합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날카로우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질이 다른 두 개의 강재를 접합하면서 그 경계선, 혹은 접합부분에 물결무늬의 선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하몬이라 한다.

“스테인레스강도 부분 열처리를 하면 하몬 비슷한 게 생겨요. 진짜랑은 좀 다른데 일반인은 못 알아보죠. 뭐, 충분히 날카롭고, 녹 잘 안 슬고, 전통 일본도랑 비슷해 보이고……, 여러모로 좋은 강재입니다. 스테인레스강도.”

비꼬는 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덤덤한 표정으로 윤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내뱉는 말이 이렇게 시큼한데 인상을 안 썼을 리가 없다

“하지만…… 스테인레스강이라면 스뎅이잖아요. 그릇 만드는…….”

“식칼도 만들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윤 기자의 태도에 난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검이란, 칼이란 뭔가 특별한 게 아닐까. 그릇이나 식칼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다는 의미에서. 크게 보면 무기도 도구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릇과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전문적으로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무기라는 것은.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배 사장이 보자기에 싼 물건을 가져왔다.

“일본도 이야기 나온 김에 구경 한 번 하시죠. 우연히 구한 겁니다만…….”

일본도였다. 진짜 일본도. 전통방식으로, 즉 접철과 복합강재방식으로 만들어진 일본도였다.

“일제시대 때 들어온 칼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헌병이랑 장교, 부사관들에게 칼을 차도록 했는데 군복처럼 배급해 주는 게 아니었어요. 각자 자기 돈으로 사야 했죠. 그래서 사무라이 집안 출신은 집안에 대대로 전해지던 옛날 칼의 외장만 살짝 바꾸어서 차고 다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답니다. 그런 칼 중 하나인 거죠.”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칼을 들어 살펴보았다. 내게 칼을 보는 눈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솔직히 스테인레스 칼과 탄소강 칼도 구분할 줄 모른다. 하물며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칼의 좋고 나쁨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느낌, 서슬 퍼렇다는 게 뭔지 알게 만드는 이 예기는 아무래도 ‘진짜의 힘’이라는 말 이외의 것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일본도는 명검으로 유명한 게 아니더라도 최소 1억 원은 한다던데…….”

말 해놓고 아차 싶었다. 속물스럽게 돈 이야기를 하다니. 전에 일본에 갔을 때 골목에 자리 잡은 수수한 골동품점에서 별 거 아니라는 듯 평범하게 걸려 있는 일본도 가격을 물어봤더니 1천만 엔, 즉 1억 몇 천 만 원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 나도 모르게 칼의 가격을 묻고 만 것이다.

“그렇게까진 안 가고요. 알아봤더니 몇 천쯤 하긴 하나봐요.”

배 사장의 대답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칼을 돌려줬다. 떨어뜨려서 상처라도 내면 얼마를 물어줘야 할까 계산하면서.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에요. 진짭니다.”

배 사장과 헤어져 임시 숙소로 가는데 윤 기자가 그렇게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일본도만 일본도인 건 아니죠. 또 그런 일본도가 최고의 일본도인 것도 아니고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든 것도 쓸 만해요. 탄소강으로 만든 건 접철방식으로 만든 전통 일본도보다 절삭력이나 강도 면에서 낫다는 말도 있고요.”

“정말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일본도야 물론 좋은 거겠지만 그건 예술품으로서 좋은 거고요. 접철방식이니 복합강재방식이니 온갖 수단을 동원해봤자 짚단 베다가 뚝뚝 부러지고 그런 칼도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제련술이 지금보다 못해서 그랬죠.”

“중국 명나라 때 저술된 〈천공개물〉이란 백과사전 같은 성격의 책이 있는데, 거기 ‘중국과 조선의 제련술은 왜국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왜도(일본도)와 같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고 기술되어 있어요. 그런 제련술도 부족하다는 겁니까?”

“그래봤자 옛날 제련술이죠. 현대 금속공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요. 적절한 강도와 균일한 재질의 강재를 뽑아내는 건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을 못 쫓아오죠. 실제로 저는 탄소강으로 만든 칼도 써보고 전통 일본도도 써봤는데…….”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절삭력이나 이런 건 별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예기라고 할까, 아니면 공명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칼의 울림이 손을 통해서 척추까지 전해져 찌르르 하고 울리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더라구요. 전통 일본도에는.”

결국 전통방식으로 만든 게 좋다는 뜻이었다.

“그런 거 전혀 못 느낀다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모르는 일이죠.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고요.”

변명처럼 급히 덧붙이는데 차 한 대가 공장 마당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우리 바로 앞에 선 차에서는 키가 크고 얼굴도 길쭉한 초로의 남자가 묘하게도 낚시 가방 하나를 들고 내렸다.

‘지리산 산중에 낚싯대를 가져와?’

“곽 사범님 오셨네요.”

윤 기자가 아는 사람이라는 듯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내게 눈을 찡긋거려 보였다. 나는 낚시가방을 든 남자를 다시 보았다.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한 진짜 이유, 그 먼 길을 달려서 만나러 온 사람이었다.

 

 

낙엽 베기

 

“서울 토박이인 어떤 집안이 일제시대 이전부터 전해온 한 가지 검술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요. 사실이라면 그 검술이야 말로 진짜 전통무술인 거죠. 중국무술, 일본무술이 전해진 건 일제시대 때니까요. 그 이전부터 전해져오는 검술이라면, 즉 최소 조선시대 때 무술인 게 당연하잖아요.”

장 선생이 이번 지리산 행을 권하면서 한 말이었다. ‘확실히 이건 전통무술이다, 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택견과 국궁 말고는 글쎄……’라고 빼는 듯하다가 불쑥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해방 직전인 1940년경 만주의 한 마을을 마적떼가 습격한 일이 있어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었는데, 마침 거기 와 있던 조선인 검객 하나가 마적들을 막겠다고 칼 한 자루 들고 나선 거라. 다들 미쳤다고 그랬겠죠. 마적은 마흔 명이나 됐다거든.”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인가…….

내가 그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장 선생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결말을 말해버렸다.

“검객이 이겼어요. 마적들은 절반 이상 죽었다고 그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감탄하는 척해야 할까, 아니면 노골적으로 의심을 드러내야 할까. 나는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즉, 말 돌리기다.

“그게 서울의 검술집안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검객이 그 집안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검객이 사용한 검술도 따라서 그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온 전통검술이라는 뜻이죠.”

이쯤 되면 본심을 안 드러낼 수가 없다

“근거가 있습니까?”

장 선생은 별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이 분야를 계속 조사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확실한 일 같은 건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근거 같은 건 더더욱. 대개는 ‘그렇다더라’ 거나 ‘건너 건너 누가 그러는데’라거나 하는 식으로 정보가 들어오죠. 만약 누가 이건 절대 확실하다고 하면 그건 절대 거짓말이에요. 근거를 제시하면 더욱 더 의심해봐야 하고. 그 확실함이나 근거는 사실의 확실함보다는 욕심의 확실함일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근거는 존재의 근거가 아니라 필요의 근거일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선생님에게 꾸중 듣는 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나 보다. 장 선생은 달래듯 목소리를 밝게 했다.

“뭐 그런데 이번 경우엔 근거랄 게 아주 없지도 않아요. 아까 전부터 계속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그는 머리를 긁었다.

“그 검객은 해방 이후에 귀국을 해서 부산에 살았어요. 신문에 인터뷰가 한 번 실린 적이 있었죠. 근데 어느 신문인지 통 기억이 안 나는군요.”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다. 나는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신문이야 뒤지다 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죠. 언제쯤 일인가요?”

장 선생은 머리를 긁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70년대 말일걸요. 그 직후 돌아가셨다는 소문도 귓가로 들었던 것 같고…….”

기대한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실망이 컸다. 하지만 장 선생에게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재주가 있었다.

“사실은 그 집안의 마지막 후예를 만나서 문제의 검법을 본 일이 있어요. 일심검법이라고 부른다는데, 칼 몸 길이만 1미터가 넘는 장검을 사용하더군요.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중국검법하고도 달랐어요. 일본검법하고도 당연히 달랐고. 그러니 확증은 없지만 상당한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장 선생은 말끝에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요?”

그래서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밤이 내려앉고 있는 지리산 산자락에, 꾸고 있다고 하는 꿈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공장의 가건물 안에.

“축문 준비해 왔어. 사인검 만들 때 의식을 거행한 건 확실하고, 의식에는 축문이 있었을 거라는 것도 확실한데 구체적인 문안에 대해 기록된 건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온갖 기록을 찾다가 결국…… 내 맘대로 만들었지. 뭐라고 했을지야 사실 뻔하잖아. 왜?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지고 돌아가고.”

키 큰 사람 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더니 곽 사범은 잘 웃고 말 한 마디를 해도 반드시 농담을 끼워 넣는 사람이었다. 그 농담이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키 큰 사람다웠다.

“여기 초입에 있는 휴게실 있지? 무슨무슨 산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휴게실 말야. 거기 잠깐 들러서 요기를 하고 오는데 사람들이 다들 이상하게 보더라고.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지만 당할 때마다 정말…… 적응이 안 돼. 내가 그렇게 미남인가? 잘 생긴 것도 죄라더니 거 참…….”

장 선생이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깊은 산중에 낚싯대 메고 온 사람을 보면 다들 한 번 더 보게 되죠.”

곽 사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산에는 물고기 없나? 계곡도 있고 폭포도 있잖아!”

윤 기자가 싱글거리며, 하지만 말투는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기…… 국립공원 안에서는 낚시 금지지 말입니다.”

곽 사범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때렸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냥 낚시꾼을 봐서 다시 본 게 아니라 불법 낚시꾼을 봐서 신고할까 말까 망설였던 거군, 그 사람들.”

다시 장 선생.

“낚시가방은 차에 두고 다니시면 되잖아요.”

“이걸 어떻게 내버려 두고 다녀. 누가 손대면 어쩌려고.”

“그 속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손대겠어요. 또 손댄다 한들 그 가치를 알아볼 사람도 드물 테고…….”

“과정이 어찌 됐건 이것 때문에 사고라도 나면 내 책임이 되니까.”

이쯤 대화가 오가자 나는 낚시가방 안에 뭐가 담겨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낚싯대는 아니었다. 배 사장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여기 새로 오신 손님에게 그거 좀 보여주시죠.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곽 사범은 날 힐끗 보더니 별 말 없이 낚시가방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냈다. 장검이었다. 검집이며 손잡이의 장식은 소박했지만 그 형태는 전혀 소박하지 않았다. 아니 소박을 넘어 투박하게 보일 수는 있었다. 검집 안에서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뽑혀나오자 그건 더욱 명확해졌다. 일본도처럼 휘어진 형태도 아니고 중국검처럼 교태롭게 좁아지는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길게 뻗어가다가 뭉툭하게 마무리지어진 순수한 형태의 장검이었다. 중국검과는 달리 길이도 꽤 길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것 중에 최고의 칼입니다. 조선칼이죠.”

배 사장이 자부심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중국에선 양쪽으로 날이 있는 칼을 검이라고 하고 한쪽에만 날이 있는 칼을 도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검이니 도니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일본도는 ‘카타나’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우치가타나’이고 한자로는 타도(打刀)라고 쓴다. 이보다 휨이 덜하고 길이가 긴 ‘타치’는 전쟁용 칼인데 한자로는 태도(太刀)라고 쓴다. 그런데 이 칼들을 사용하는 기술은 검도(劍道)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국식으로 이름 붙였다면 도(刀)를 사용하는 기술이니 도법(刀法)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즉, 일본도는 각각의 종류에 대해서는 도니 검이니 세분할지 몰라도 이런 칼 종류 전체를 말할 때는 검이라고 통칭하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검과 도의 구분이 모호하다. 가령 무예도보통지에도 소개된 제독검법은 제독검을 사용하는 기술인데 이 제독검이란 그림만 보면 일본도와 흡사하게 생겼다. 그러니 중국이나 일본식으로 이름 붙이면 제독도라고 하는 게 맞을 법한 칼이다. 그걸 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일본도를 흉내 내어 만든 왜도도 중국에서는 묘도라고 불러서 적어도 외날 칼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는데, 조선에서는 왜검이라고 불렀다. 이쯤 되면 대체 뭘 기준으로 검과 도로 구분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조선에서는, 혹은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검과 도의 구분이라는 걸 몰랐고, 칼 검, 칼 도라고 하는 그대로 검이건 도건 둘 다 칼이라는 점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칼이라고 하면 지금 곽 사범이 들고 있는 칼처럼 장검의 형태를 갖기도 하고, 일본도보다 휨은 덜하고 길이는 짧은 칼 형태를 하고 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형태의 칼들을 만들어 온 끝에 만들어진 걸작이 곽 사범에게 선물한 장검이라는 이야기였다.

“멋지군요! 감동적입니다!”

과장이나 아첨이 아니었다.

이 장검에서는 스테인레스강 일본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 일본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예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전통 일본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품까지 배어 나왔다. 예리하지만 얄팍하지는 않은, 서슬이 퍼렇지만 살기등등하지는 않은, 강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묵직하지만 둔하지는 않은…… 이상적인 검의 기운과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마치…….

“조선의 무인을 한 자루 검으로 벼려낸 듯한 모습이군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네?”

곽 사범은 자기가 칭찬 받은 것처럼 좋아하더니 장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는 내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시게나.”

고수는 칼을 칼집에서 빼기 전부터 고수임을 드러내 보인다. 고수는 상대가 칼을 빼기 전부터 고수인지 아닌지 알아본다.

나는 물론 고수가 아니고, 고수인 척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타인의 칼을 살펴보는 예의라고 배운 것을 지킬 뿐이었다. 그것은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칼몸에 입김을 닿게 하거나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그 규칙대로 나는 칼을 뽑아 세로로 세우고 살펴보았다.

1미터가 넘을 정도의 장검이라 무게가 꽤 됐다. 자칫하면 칼을 떨어뜨리거나 기울여서 실례를 범하게 될지 모르니 이쯤 보고 칼집에 넣어 돌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내 눈을 끌었다. 칼몸 아래쪽 손잡이 가까이에 세로 두 줄로 네 글자씩 새겨져 있었다.

 

易擊胡蝶(이격호접)

難擊落葉(난격낙엽)

 

“나비를 베기는 쉬우나 낙엽을 베기는 어렵다……, 무슨 뜻의 글귀입니까?”

“방금 말씀하신대로의 글귀죠.”

곽 사범은 무뚝뚝하게 대꾸하더니 머리를 긁었다.

“아, 뭐 진짜 별것 아닌데. 제 개인적인 무언(武言)이라고나 할까.”

무언이라면 무인이 무술에 대해 깨달은 바를 표현한 말이다.

“왜, 나비는 살기를 감추고 가까이 검을 움직여서 꼬드긴 다음 벨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낙엽은 떨어질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죠. 그러다 보면 다른 생각도 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해서 아차, 떨어지는 순간을 놓쳐버린다는 거죠. 별거 아니에요.”

농담인가 싶게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듯하기도 하다. 알고 보니 곽 사범은 전통검법의 후계자라는 후광을 걷어내도 꽤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인검을 주조할 시간인 새벽 세 시가 될 때까지 방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호흡 조절하기

 

“단전호흡이 많이 대중화 되었는데, 사실 단전호흡은 아주 위험한 일이에요.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거잖아요.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80년대에 단전호흡을 대중적으로 알려서 아주 유명했던 분이 있었는데, 아 지금은 돌아가셨죠. 이분이 자기에게 장정 몇 명을 맡기면 단전호흡으로 신체적 능력을 강화시켜서 올림픽 금메달을 싹 쓸어오겠다고 큰 소리를 쳤어요. 그걸 당시 군사정권의 높은 누군가가 듣고 진짜로 특수부대원 몇 명을 뽑아서 맡겼죠. 근데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다들 부작용이 생긴 거예요. 몇 명은 앉은뱅이가 돼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단전호흡을 잘못 한 거죠.”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요. 나중에 산에서 내려온 노인 한 분이 거기 들러서 다 고쳐주고 사라졌다죠.”

흠, 여기서 또 도산가. 못 참고 물었다.

“대체 도사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능력자가 있긴 있지만 그런 분은 잘 안 보이죠. 하지만 허풍장이는 셀 수 없이 많고 사기꾼도 그만큼 많다……라고 하면 대답이 되려나요.”

“그냥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장사가 안 되니까 거기에 자꾸 신비한 색칠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단군할아버지 때 보필했던 풍백, 우사, 운사가 쓰던 무술이라고 하는 것도 본 일이 있어요.”

“재밌네요.”

“재밌기만 하면 다행인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죠.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다보면 뇌에 산소부족상태가 일어날 수 있죠. 이게 단전호흡을 하다가 부닥칠 수 있는 부작용의 원인인 건데, 작게는 환각상태에 빠지고 심각하면 죽기도 하죠. 숨 쉬는 걸 잊어버려서. 나도 한 번 체험한 일이 있어요. 작정하고 산에 올라가서 백일수련을 하던 때의 일이죠. 산 정상의 바위 위에 앉아 단전호흡을 하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수련도 하고……. 근데 하루는 수련을 마치고 밤중에 산을 내려오는데 눈앞에 내가 밟아야 할 곳이 밝게 보이는 거예요. 흰 페인트로 그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여길 밟고 뛰어서 저기로 갔다가 그 아래로 뛰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했더니 정말 되는 게 아니겠어요. 평소 두 시간은 걸리던 하산길이 단 삼십 분 만에 끝났죠. 단전호흡이 어떤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긴 있어요. 위험할 때가 더 많아서 탈이지. 그러니 단전호흡을 시도할 때는 책 보고 혼자 하지 말고 요즘 많이 있는 큰 단체들 있잖아요. 거기서 여러 사범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나아요.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니까.”

또 한 번 물었다.

“저, 그 하산법은 그 다음에 또 시도해보셨나요?”

“해봤죠.”

“되던가요?”

“다리 부러졌죠.”

웃고 말았다.

 

 

칼 만들기

 

“처음엔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되겠거니 하고 시작해서 어영부영 몇 년을 하다 보니 아,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죠. 진짜하곤 달라도 일단은 일본도를 만들고 있으니까 일본도를 어떻게 만드나 하는 공부부터 했어요. 근데 그 사람들 정말 안 가르쳐 주데. 하는 수 없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죠. 묘하게도 책은 또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내가 이 책들 읽느라고 일본어를 다 공부했다니까.”

그러면서 배 사장이 꺼내놓은 책들은 일본도의 제작법부터 시작해서 역사와 조형을 망라한 것들이었다. 과연 내용은 상세해서 소위 ‘옥강’이라 부르는 일본도의 재료가 되는 강철의 제련법부터 접철하는 법, 복합강재의 방법과 구조, 심지어는 손잡이에 끈 묶는 법까지 사진과 도해로 설명되어 있었다.

책을 훑어보는 동안 장 선생이 말했다.

“일본의 기술 전수법은 원래 ‘가르쳐주지 않는다. 알아서 훔쳐라’죠. 요즘은 안 그런다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공방들은 다 그래요. 심지어 음식점에서도 맛내는 법을 따로 안 가르쳐주니까 요리하고 난 뒤에 솥에 남은 국물을 핥아먹으면서 맛을 배운다잖아요.”

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이야기도 들었어요. 담금질이라는 게 쇠를 불에 달궜다가 두들긴 다음 찬 물에 담가 식히는 걸 반복하면서 강철의 강도를 높이고 안정성을 얻는다는 작업이잖아요. 근데 이게 잘 안 되는 거라. 책에 나온 대로 강한 화력으로 달궜더니 강철이 녹아. 정성껏 힘주어 두들겼더니 삐뚤삐뚤 망가지고, 얼음같이 찬물에 담갔더니 이제는 깨지는 거라. 고생고생해서 깨달은 법칙이 변형을 일으킬 정도로 뜨겁게 달구지 말 것, 강하게 두들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균일하게 압력을 주도록 두들겨야 한다는 것, 물이 차면 찰수록 강철은 깨지기 쉽다는 것 등이죠. 특히 마지막 찬물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의 어느 일본검 제작 명인이 제자들에게 이 찬물의 온도를 안 알려주는 거라. 그래서 궁금증을 못 이긴 제자 하나가 명인 몰래 살짝 손을 담갔대요. 온도를 재 보려고. 그랬더니 명인이 담금질 하고 있던 칼로 그 손을 탁 내리쳐서 손가락을 다 잘라버렸다는 거지.”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으니까.

“무섭군요.”

배 사장이 계속 말했다.

“뒷이야기가 있어요. 어쨌거나 그 제자는 물의 온도를 알게 됐다는 거죠. 손가락이 잘리기 전에 느낀 감각이 있으니까. 그래서 명인에게서 독립해 나와 자기 스스로 일본도를 만들기 시작해 나중에 자신도 명인이 되었다는.”

이번에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대체 물의 온도가 어떻길래요?”

배 사장은 대답 대신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다마스커스 칼 있잖아요. 여러 가지 강철을 합금해서 만들어 칼 표면에 대리석 무늬가 생긴다는 시리아의 명검. 이걸 만드는 데에도 무서운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다마스커스 칼을 만드는 장인들은 담금질을 할 때 찬물을 안 쓰고 사람을 썼다는 거지. 포로로 잡힌 사람이나 사형수를 데려와서 옆에 세워두고 칼을 찬물에 넣을 때가 되면 대신 그 배에 푹!”

나는 그 잔인함에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차츰 그게 뭘 말하는지 깨달았다.

“물 온도가 그 정도란 말인가요? 그럼 전혀 안 차잖아요.”

“뜨겁게 달궈졌을 때의 온도에 비하면 체온도 충분히 찬 거죠.”

배 사장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아무래도 사람이 고생담을 하면 입이 가벼워지는 법이니까.

“칼집 하나 만드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칼집이라는 게 나무 안쪽을 칼 형태에 딱 맞게 파가지고 두 쪽을 합쳐서 붙인 다음 거죽에 상어나 가오리 껍질을 붙이거나 옻칠을 하거나 해서 만드는 건데, 처음에 만든 칼집들이 처음엔 괜찮은데 사용하다보면 이상하게 뻑뻑해지는 거라. 칼이 잘 들어가지도 않고 한 번 들어가면 뽑히지도 않고. 이것 역시 아무도 원인이나 해결책을 가르쳐주지 않아 고심 끝에 혼자 해결했죠.”

“어떻게요?”

갑자기 배 사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영업비밀이라고 해두죠.”

과연.

아무리 기분 때문에 입이 가벼워졌어도 영업비밀을 털어놓을 만큼 가벼워지진 않는 모양이었다.

 

 

진검대결하기

 

유 기자가 물었다.

“곽 사범님 연구는 좀 진척이 있나요? 갑옷 만들기.”

“갑옷? 아, 수련복.”

곽 사범은 웃었다.

“조끼 형태의 건 금세 만들었는데 팔다리는 아무래도 어렵더라고요. 그것까지 방탄 재질로 하면 아무래도 행동이 불편해지니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히 있는 내게 윤 기자가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곽 사범은 일종의 방탄복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총알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칼날을 막기 위한, 그러니까 검도수련용 방탄복이다. 이 검도수련은 죽도로 하는 게 아니라 진검, 즉 진짜 칼로 하는 거라서 그렇다.

거기까지만 듣고도 그로부터 파생될 수많은 문제가 떠올랐다.

칼로 다치게 하면 상해죄다. 어쩌면 살인미수까지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진짜 칼을 서로 겨누고 있게 되면 이건 그전까지 배운 검도나 검법의 모든 상황에서 벗어난 어떤 상태가 된다. 일단 겁에 질려버려 몸이 안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칼에 베인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아무리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걸 만들겠다는 거죠. 베여도 안 다치게, 적어도 덜 다치게 하는 수련복.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하고는 별개로 현대 검도의 죽도나 목검으로 하면 아무래도 진검하고는 느낌이 다르거든. 특히 나처럼 현대 검도하고는 별 상관없는 검법을 익힌 사람에게는 그게 더해서…….”

곽 사범은 말을 얼버무렸지만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정말 우리 전통검법 중 하나를 익혔다면 현대 검도에서 호구와 죽도를 사용하는 수련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래서는 수련이 안 된다.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나름대로 방법을 찾는 것일 텐데…….

윤 기자가 끼어들었다.

“일본의 ‘이아이’에서는 진검대결을 하기도 한다더군요.”

‘이아이’라면 거합도(居合刀)를 말한다. 죽도를 사용하는 현대 일본 검도와는 달리 전적으로 진검만 사용하는 일본의 검도유파들이다. 일본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북진일도류, 시현류, 이도류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일본검도가 스포츠화되기 이전,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진짜 칼 들고 싸우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기회가 있어서 조금 배워봤는데 마치 중국무술이나 태권도의 품새처럼 일련의 짜인 동작들을 반복해 수련하는 검도였다. 거기에 진검대결까지 있었단 말인가? 거기선 승단시험도 각 유파에서 파견된 시험관들 앞에서 자신이 창작한 형을 실연해 보이고서 인정받으면 단이 올라가는 방식이라고 들었는데.

“세 번 먼저 베는 쪽이 이기는 거랍니다. 그런데 두 번 이상 베이고도 항복 안 하는 사람은 없다죠.”

다시 다들 웃고 말았다. 윤 기자만 빼고.

“저는 사실 그런 방탄복 없이 진검대결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칼을 든 이유가 바로 그거 아닙니까. 서로를 베고 죽이기 위해서. 검도니 무도니 도를 강조하고 예를 부각시키지만 전 그런 거 다 사기라고 생각해요. 무술이라는 것 자체가 싸우기 위해 하는 거고, 무기를 들은 것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라는 거죠. 물론 전쟁터라는 특수상황 하에서 주로 허용되는 것이긴 하지만요.”

어, 이건 또 상당히 과격한 논리다.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윤 기자는 계속 말했다.

“니체의 철학 중에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개념이 있더군요. 우리말로는 ‘복수’, ‘원한’, ‘질투’ 정도로 해석되는 프랑스말인데, 짧게 말하자면 ‘도덕은 강자에게 가하는 약자의 복수’라는 겁니다. 약자는 늘 강자에게 당하고 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약자는 강자에게 도덕의 굴레를 씌움으로써 강자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약자에게 죄책감을 갖게 함으로써 복수한다는 겁니다. 전 무도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태권도를 배운 사람은 안 배운 사람보다 세죠. 칼을 든 사람은 칼을 안 든 사람보다 세고. 그러니까 후자가 전자에게 그러는 거죠. 무술은 심신단련을 위해 배우는 거다. 정신수양이, 스포츠맨십이 기술보다 중요하다.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칼을 휘두르지 마라. 약자가 강자에게 씌운 굴레죠.”

윤 기자는 그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무인도에 가서 처음에는 닭목을, 다음에는 토끼목을, 그 다음엔, 개, 나중엔 염소까지 베어봤다고 했다. 그 다음엔?

“원래는 소 차례인데 못 했어요. 소는 비싸잖아요.”

나는 웃었다.

“그쯤에서 멈춰서 다행이네요.”

윤 기자는 웃지 않았다.

“일본도로 사람 목을 베어본 사람을 만난 일은 있어요. 아, 근래 그랬다는 게 아니라 한국전쟁 때. 특수부대 소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잡은 포로들을 일본도로 베어 죽여 봤다더군요. 아주 쉽대요.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척추랑 목뼈가 만나는 지점에 볼록 뼈 두 개가 튀어나오죠. 그 사이로 칼날을 넣으면 무처럼 잘라진다는군요. 아, 제가 뭐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칼은 원래 위험한 물건이고, 위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위험한 물건이죠.”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배 사장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칼을 팔 때는 날을 세워서 줘요. 날이 안 서 있으면 그 사실을 잊고 있게 되니까. 그러면 안 되거든요.”

장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도 위험하고, 무술도 위험하죠. 그 사실을 잊으면 더욱 위험해지고. 그러니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배 사장은 웃었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나저나 시간이 됐네요.”

밖에는 제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인(四寅) 기운 불어넣기

 

천고(天告 ; 하늘에 아룁니다)

유세차(維歲次 ; 이해의 차례는 : 축문에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

무인년(戊寅年)

갑인월(甲寅月)

무인일(戊寅日)

갑인시(甲寅時)

…….

 

칼이 될 쇠막대를 달구는 화로와 그걸 두들길 모루 앞에 간단한 제물을 두고 곽 사범이 제문을 읽어나갔다. 시간은 정확히 세 시. 옛 시각으로 인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쇠막대는 이미 대충 그것이 만들어질 칼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배 사장은 이번엔 여러 형태의 칼을 시도해볼 생각인 듯했다.

인시가 끝나는 것은 다섯 시. 그때까지 칼을 다 완성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식은 칼이 될 쇠막대에 사인의 기운을 불어넣는 선에서 그친다. 쇠막대를 코크스를 사용한 화로의 불로 충분히 달구었다가 모루에 놓고 식을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다. 이조차 힘든 과정이라 시간 안에 열 자루밖에 할 수 없었다.

타오르는 화로의 불길과 붉게 달아오른 쇠막대에서 끼쳐오는 열기, 귀를 때리고 골짜기로 퍼져나가는 쇠망치소리 속에서 시간은 가고, 새벽이 밝아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쇠망치소리가 끝났다.

배 사장과 일꾼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도, 윤 기자도, 장 선생도, 곽 사범도 말없이 둘러서서 작업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작업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내가 해온 전통무술 찾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기 서 있는 의미는 또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십이 년을 기다려 열 자루의 칼을 만든다. 어떤 사람은 백두산에 있다는 환상의 장소, 한국의 샹그리라라고 할 만한 곳을 찾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어받은 전통검술, 혹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제대로 익히고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검의, 무술의 본질을 찾아 고심하고 있다. 결코 사람을 베어볼 수 없는 세상에서, 따라서 칼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무기가 쓸모없는 곳에서 그들은 그것과 관련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제일 어리석은 나는 단지 이야깃거리로 그걸 찾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들의 밤은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끝〉

 

 

 

 

작가소개 / 좌백(작가)

본명은 장재훈. 무협 작가로 활동해왔다. 1965년생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 판타지 소설과 만화 시나리오를 쓰며 아동, 청소년 문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명인 좌백(左柏)은 왼쪽으로 기울어진 잣나무라는 뜻으로 바른(오른쪽)쪽에 반하여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이버문학광장 청소년문학관 〈글틴〉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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