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나루의 달빛

배꽃나루의 달빛

장주식

“강이 그곳에 사는 주민들만의 강이냐?”
나는 장승공원 상황실 사람들과 매화시인이 강조하던 말이 떠올라 그렇게 말하였다. ‘외지인들은 나가라’는 펼침막을 보고 너무 답답하다면서 한숨을 쉬던 매화시인. 어떻게 온 나라를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한 지역만의 강이냐고, 사람들이 너무 자기 눈앞만 본다고 탄식을 하던 매화시인.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세 통의 전화가 별 시차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려왔다.  대학동창인 중래는 먼저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목소리를 듣는 건 삼년 만이었다.
“걸걸걸, 임마. 꼭 형님이 먼저 전화를 해야 되나?”
책망부터 하고선 잘 지내냐, 뭐하고 사느냐 같은 별 뜻 없는 인사말을 늘어놓더니 좀 점잖은 목소리로 진규 아버지의 부음을 알렸다.
“사실, 너희 둘은 많이 친했잖아. 특별하게 말이야. 내가 너한테서 진규놈 아버지 부음을 들어야 할 텐데, 어째 거꾸로 된 것 같다. 올 거지?”
“그럼. 가야지.”
전화를 끊고 나는 잠깐 회한에 잠겼다. ‘이렇게 무심하다니.’ 대학 다닐 때 나를 마치 아들처럼 귀애하시던 진규 아버지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 자상하면서도 재미있던 분이었으므로 나도 아버님, 아버님 하고 부르며 좋아했었다. 낯선 대도시에서 고학을 하던 나를 안쓰러워하며 정성껏 챙겨주려 애쓰던 진규의 부모님이었다. ‘그러니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여주와 서울이 뭐 천리 길이나 된다고 삼년 동안이나 안부 한 번 못 물었단 말인가. 진규가 나를 제쳐두고 중래에게 부음을 먼저 알린 것은 얼핏 서운했으나 따지고 보면 진규의 처사는 마땅하다고 할 것이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워져 있는데 민경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세요? 저 오늘 이포보에 가는데, 뵐 수 있을 까요?”
일 년 만이었다. 민경 씨는 함께 잡지를 만들던 동화작가인데 잡지 일을 그만두고 연락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었다. 이포보에 온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만금 바다를 메우지 말라고 혼자 배낭을 메고 주말마다 몇 년 동안 서울과 새만금을 오가던 사람이었다. ‘인간’이 너무 무섭다고 민경 씨는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민경 씨는 어떤 출판사의 의뢰로 인물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 인물은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병들어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일흔이 넘은 무녀였다. 민경 씨는 그 무녀를 취재하면서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지 몰랐다며 자주 감동스러워 했다. 그러나 원고를 끝내 놓고도 민경 씨는 결국 그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무녀가 새만금축제에 참석한 까닭이다. 축제가 새만금간척사업을 진행하는 관 주도 행사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민경 씨는 가슴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갯벌의 생명들이 꺼져가는 것을 막아보려고 몇 년을 그렇게 눈물로 오가던 새만금인데, 그 갯벌 메우는 것을 찬성하는 행사에 참석한 무녀. 민경 씨는 견딜 수가 없어 무녀를 찾아가 물었다. 왜 그러셨냐고. 무녀는 “나는 행사 주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뭇 생명들의 평안을 빌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즉시 민경 씨는 일 년이 넘게 공들여 써온 원고를 버렸다. 이미 일차 교정까지 나온 원고를 출간하지 말 것을 출판사 측에 요청한 것이다.
“그래요. 오후 세 시 쯤에 가도록 할게요.”
이포보에서 민경 씨를 만나서 같이 있다가 다섯 시쯤에 진규에게 조문을 가면 될 것이었다. 중래랑은 여섯시 반에 서울 병원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이 맞춤했다. 전화를 끊고 났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세 번째 전화벨이 울렸다. 여주시민연대에서 사무국장 일을 보고 있는 상국이었다. 시민연대는 여주환경운동연합, 민예총, 전교조, 농민회 등 여러 단체가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오늘 시간 있으신가요?”
“무슨 일인가?”
“시내 중앙통에서 집회가 있어요. 사대강 반대 집회에요.”
“몇 시에?”
“4시예요. 꼭 오시면 좋겠는데.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왜?”
“주민들이 많이 올 것 같아요. 집회를 방해하려고.”
“응? 주민들이? 누가 동원을 하는 건가?”
“아뇨. 자발적으로 올 것 같아요.”
“자발적이라고? 주민들이?”
“예. 우리를, 그냥, ‘때려잡자, 빨갱이.’ 식으로 몰아 부칠 것 같아요. 우린 사람이 너무 없어요.”
“어떡하나? 그 때쯤에 난 이포보에 있을 텐데.”
“이포보에요?”
“응, 서울에서 사람이 온다고 해서 거기서 만나기로 했거든.”
“아, 예. 그럼 거기 가세요.”
상국이가 싹싹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연달아서 몰아치듯 걸려온 세 통의 전화가 모두 끝났다.
점심을 먹고 나는 옷을 차려 입었다. 보통 때 같으면 반바지에 티 하나 걸치고, 샌들을 신고 갔겠지만, 조문을 가야 했으므로 옷차림에 좀 신경을 썼다. 검은색 바지를 찾아 입고, 위에는 검은 색이 없어서 감색 남방을 찾아 입었다. 답답하지만 양말도 신고, 신발도 구두였다.
차를 몰아 이포보로 갔다. 가면서 눈은 저절로 강으로 갔다. 남으론 여주 시내, 북으로는 오학리와 현암리 사이를 흐르는 강변도 쉴 새 없이 파헤쳐지고 있다. 연장 이 킬로미터에 이르는 걷고 싶은 길 아래엔 드넓었던 강변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연꽃과 메밀로 뒤덮였던 들판도 사라지고, 웃으며 뛰놀며 사진 찍던 연인과 가족들도 사라졌다. 대신 들판은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의 차지였다. 당산리와 초현리로 들어서자, 우뚝 솟은 모래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에서 준설한 모래들이다. 칠 월말이면, 푸른 벼 잎사귀들이 힘차게 하늘을 찌르며 솟아오를 때이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 넘실 저리 넘실 들판이 온통 푸른 물결이련만 지금은 온통 모래산이다.
‘쌀 대신 저 모래를 먹고 살 수 있을까?’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며 잠깐 두려웠다. 들리는 소문엔 벼농사를 지으면 논 한 평당 이천 원을 버는데, 저렇게 모래를 쌓는 땅으로 내어주면 평당 육천 원을 받는 다고 하였다. 힘들게 농사일 할 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세 배나 되는 돈을 벌어들이니, 세 살짜리 아이도 그만 셈은 하고도 남았다. 따라서 논밭을 내어주는 데 주민들은 별 저항이 없었다. 아니 기쁘게 내어줬을 것이다. 초현리에서 이포보가 있는 천서리에 이르는 육 킬로미터 길은 그렇게 온통 모래산이었다. 양촌리 앞의 습지는 물바다가 된 지 오래고, 양촌리가 자랑하던 채소 재배단지도 모래더미에 묻혔다. 한 동의 길이가 백 미터에 이르던 비닐하우스가 수백 동이 있었던 곳이다. 온갖 채소가 서울 가락시장으로 출하되던 곳이었는데, 이체 부추 한 뿌리 남지 않았다. 부추 대신 모래를 반찬으로 해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는 천서리 막국수촌으로 들어섰다. 이 식당촌은 때 아닌 특수를 맞고 있었다. 원래 잘 되던 식당은 더 잘 되고, 날마다 파리만 날리던 식당들도 손님이 들끓는다고 한다. 이포보 공사와 골재 준설을 하면서 인부들이 와서 식당 손님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갑자기 불어난 까닭이 있었다. 나흘 전에 세 사람이 공사 중인 이포보 상판에 올라간 것이다. 상판은 높이 이십칠 미터, 거의 아파트 구 층 높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인 그들은 새벽에 기습적으로 올라갔다. 세 사람은 미리 준비한 대형 펼침막을 내걸었다.
 
–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
– 생명의 강을 그냥 두라
 
강 안쪽으로 맨 끝에 있는 보에 올라갔으므로 그들을 끌어내릴 방법은 없었다. 시공사의 직원과 경찰은 발을 동동 굴렀다.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의 교각 아래에 튜브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사람이 떨어지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안전장치인데, 너무 단단한 튜브라 물에 빠지는 것보다 위험해 보였다. 동료들은 보에 올라간 세 사람을 바깥에서 지원하기 위하여 강 언덕의 조그마한 ‘장승공원’에 상황실을 차렸다. 공사현장은 울타리를 다 쳐 놓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고, 세 사람이 올라간 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천서 사거리부터 장승공원이 있는 파사성 주차장 주변까지 온통 펼침막 홍수가 나 있었다. 펼침막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는데 중심 내용은 이러했다.
 
– 외지인은 우리 땅에서 떠나라
– 1500년 만에 찾아온 희망이다. 외지인은 우리 꿈을 짓밟지 마라. 
 

그 내용은 결국, 사대강 공사는 여주가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었다. 나는 장승공원 건너편에 있는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댔다. 파사성은 신라시대 파사 이사금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산꼭대기에 설치된 산성이다. 아직 성곽이 더러 남아 있고, 한창 복원이 진행 중이다. 올 새해 첫날 파사성에 올라가 해맞이를 하였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강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새해 첫날인데도, 해가 막 떠오르는 그 추운 새벽에 포크레인이 강바닥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급할까?”
같이 있던 처형이 쩟쩟 혀를 찼다.
“시간이 돈이여. 공기가 길어지면 손해가 많다는구만.”
동서가 해설을 하면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서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워 그냥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강바닥의 돌을 깨고 있었는데, 칠 개월이 지난 지금 벌써 거대한 보의 교각이 다섯 개나 들어섰다. 엄청난 공사 속도였다.
차를 세우고 장승공원으로 가려는데 길을 건너기가 만만치 않았다. 횡단보도도 없고, 삼 사 십 미터 앞은 시야가 막힌 굽은 길인데다 국도여서 차의 왕래가 무척 많았다. 날렵하게 눈을 번득이며 겨우 길을 건넜다.
조잡한 장승과 솟대들이 늘어선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멀리 천막 밑에 앉아 있던 민경 씨가 환하게 웃으며 언덕을 내려왔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오랜만에 만남의 반가움을 나누었다. 작은 천막 두 동을 쳐 놓고, 천막 아래엔 열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곳 상황실에 밤낮으로 상주하는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낮에는 전국 곳곳에서 격려차 사람들이 매일 수십 명씩 다녀간다고 하였다. 상황실 사람들은 모두 낯설었으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사람들과 분주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안쪽 천막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매화시인이었다.
“어이구, 여기서 보는군요.”
매화시인은 한걸음에 내달으며 내 손을 잡았다.
“오, 선생님. 이렇게 만나네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감개무량하였다. 매화시인과는 실로 칠 년 만의 만남이었다. 경기도 남양 반도에 자리 잡은 매향리, 미공군의 쿠니사격장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우리는 만났었다. 90년대 말부터 가열차게 진행되던 사격장 폐쇄운동의 일환으로 매화나무 심기 행사가 있었다. 그때 그는 그 일을 주관하여 매화시인으로 불렸고 나는 몇 가지 일을 도와주면서 서로 친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네 해 전인가, 세 해 전인가 매화시인이 여주로 이사 왔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만나지를 못했다.
“이사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제야 뵙네요. 집이 강천면 쪽이시지요?”
“예. 도리에요. 그 유명한 단양쑥부쟁이가 있는 곳이요. 우리 집에서 강이 바로 보이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오죽하겠습니까. 환경련 집행위원장 집은 더하답니다. 집 바로 뒤에 시멘트 덩어리로 둑을 쌓느라 늘 포크레인이 윙윙거리고, 창문으론 강천보 세우는 걸 날마다 봐야 한다는군요.”
“수많은 생명들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매화시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매화시인이 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분은 국회의원님이셔요. 초선에다가 비례대표여서 얼굴이 낯설지요?”
곁에서 가만히 미소 짓고 있던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면서 그가 말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의원님이 찾아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보 상판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성량의 앰프가 울리기 시작했다. 공사현장 울타리 안에 쳐 놓은 대형 천막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천막 안에는 언제 모였는지 얼핏 보아도 3-4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시골마을 주민임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젊었다.
“도대체 저것들이 뭡니까. 뒤지고 싶으면 사람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뒤질 것이지, 왜 저기 올라가서 난리를 친답니까. 이 나라엔 법도 없습니까? 나라에서 하는 일을 방해하는 놈들은 그저 싸그리 잡아서 강물에 처박아야 됩니다.”
– 와! 와!
함성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박수 소리에 고무된 마이크는 더욱 소리 높여 외친다.
“경찰도 그래요. 저 놈들 못 끌어내리고 뭐하는지 몰라, 정말. 저기 장승공원에 있는 것들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땀 흘려 만들어 놓은 공원에 저 놈들이 왜 앉아 있습니까? 당장 다 부숴버려야 합니다. 당장!”
– 옳소! 부숴!
또다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젊은 목소리는 거기까지였고 다음엔 조금 더 나이가 든 목소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좀 부드러운 말투로 차근차근 말하였다.
“우리는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상수원이라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합니다. 공장도 못 짓게 하고 뭐 발전할 건더기가 없습니다. 우리가 왜 서울 사람들 물 먹게 하려고 희생해야 됩니까? 수변자금이요? 그거 누구 코에 갔다 붙입니까? 애들 과자값밖에 더 됩니까? 이제 우리도 발전해야 됩니다.”
– 와와와!
– 둥둥둥, 쾡쾡쾡!
이번엔 박수 대신 북과 꽹과리가 울린다.
언덕 위 상황실에선 다들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멀거니 주민들의 집회를 건너다볼 뿐이다. 조금 뒤 상황실장이 대책회의를 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하고 상황실 사람들과 입구에 세워 둔 봉고차로 갔다. 천막에는 민경 씨와 매화시인, 매화시인과 함께 온 도리 주민 한 사람과 대전에서 왔다는 시민활동가 두 사람, 상황실 사람 둘, 그렇게 남았다. 시간은 4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시내 중앙통의 집회 상황이 궁금해서 상국이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전화통으로 시끌시끌한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너무 적고 저쪽은 너무 많아요.”
“사람이 몇이나 나왔는데?”
“아이고, 우린 정말이지, 한 줌이에요. 주민들은 한 백 명은 되는 것 같아요.”
“참, 어쩌나 그래. 여기도 주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네.”
“어떻게든 해 봐야지요. 이따가 통화하시죠.”
상국이가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다. 나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매화시인이 물었다.
“시내 상황이 안 좋은 모양이지요?”
“예, 집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군요.”
“허허 참.”
매화시인이 쓴 입맛을 쩝쩝 다신다.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고 앉았던 매화시인이 일어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마주 잡자 그가 말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약속 장소가 시내에 있으니 중앙통에도 한번 가볼게요.”
“예. 그러셔요.”
“이따, 밤 여덟 시에 하는 촛불집회에 올 수 있으면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다시 볼 수 있으면 보고요.”
“예, 저도 서울을 가야 해서 촛불집회는 같이 못 해요.”
“아, 예. 그럼 나중에.”
매화시인은 같이 온 동행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조금 뒤 대전에서 온 시민활동가 두 사람도 갈 길이 멀다며 떠나갔다. 민경 씨와 둘이 단출하게 남았다. 상황실 상주 인력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업무를 챙기느라 바쁘기만 하다. 민경 씨가 가방에서 준비해 온 것을 꺼냈다. 보기에도 정성이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두꺼운 팔절 하드보드지에 글자를 한 개씩 썼다. 모두 여섯 글자인데, ‘강물을 흐르게’였다.
“이게 야광 테이프예요. 무려 2만 원이나 들었어요.”
민경 씨가 글자를 만든 테이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글자는 비뚤비뚤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이 쓴 것 같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으나 오히려 반듯한 글자보다 더 정감이 간다.
“밤에 잘 보일는지 모르겠어요. 저기 보에 올라간 사람들이 보면 좋은데.”
민경 씨는 집게도 준비를 해 왔다. 사람들이 올라간 보에서 잘 보일 만한 곳을 골라서 집게로 글자들을 고정시켰다.
그러고 있는데, 대책회의가 끝났는지 상황실 사람들과 국회의원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국회의원은 민경 씨와 내가 앉아 있는 옆에 와서 앉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나와 민경 씨가 쿡쿡 웃으니까, 국회의원도 웃으면서 말했다.
“강변에서 사이좋게 살아야 되는데, 저렇게 욕을 하고 있으니 참 슬퍼요, 그죠?”
국회의원은 내 얼굴을 보다가 곧 고개를 돌려 건너편 주민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았다. 주민들의 집회도 끝난 모양이었다. 더 이상 마이크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장승공원 입구에서 시끌시끌한 소리와 입에 담기 힘든 험한 욕설이 들려왔다.
“에이, 시팔. 다 조져!”
덩치가 그야말로 산만한 서른 후반 또는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앞장서고 뒤에는 마흔 후반 또는 쉰 초반으로 뵈는 남자 셋이 올라오고 있었다. 덩치 둘은 모두 팔이 없는 티셔츠를 입었는데, 팔에 알통이 울룩불룩하고 허리통은 얼마나 굵은지 팔 긴 고릴라가 안아도 한 아름에 안을 수 없을 듯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욕설은 덩치들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뒤 따르는 조그마한 체구의 남자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지를 발목 위로 걷어 올리고, 하얀 남방은 단추를 다 열어서 펄럭이며 벌건 배를 내보이고 있었다.
“시팔, 뭐여? 남의 땅에서 뭣들 하는 거여? 썩 못 나가?”덩치와 다른 남자들은 천막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섰는데, 키 작은 남자만 천막 가까이로 오면서 떠들었다.
“야, 니들 뭐야!”
욕을 하는데도 대꾸가 없자 기가 펄펄 산 그 남자는 야, 야! 거리며 천막 이곳저곳을 발로 툭툭 치며 돌아다녔다. 국회의원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외쳤다.
“야, 너 어따 대고 함부로 반말지꺼리야!”
생각도 못 한 일갈에 작은 남자가 잠깐 멈칫했다. 그는 국회의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할 만하니까 하지. 왜 떫어?”
“이 나이도 어린 게, 너 몇 살이야. 어른도 몰라보고, 버르장머리 없이!”
국회의원이 세게 내어지르자, 작은 남자가 약간 풀이 꺾인 얼굴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냈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자 봐.”
작은 남자는 지갑에서 꺼낸 주민등록증을 국회의원에게 내밀었다. 국회의원이 슬쩍 주민증을 보더니
“이, 우리 막내뻘밖에 안 되면서.”
하고는 완전히 무시를 해버린다. 작은 남자는 희한하게 대거리를 더 못하고 비실비실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덩치 뒤에 선 두 남자를 자세히 보았는데, 그 사람들도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둘 다 아는 사람들로,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학부모들이었다. 나는 일어서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니, 선생님. 어째 여기에.”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한 사람은 장승공원 건너 마을 이장이고, 한 사람은 꽤 큰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제가 아는 분들이 여기에 있어서.”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웃기만 하였다. 두 사람도 열적은 웃음을 웃을 뿐 더 말이 없다. 상황이 몹시 어색하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만 내려가시지요. 이렇게 오셔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장은 그냥 서 있었으나 식당 주인은 몸을 돌려 한 발 내려딛었다. 그러자 이장은 나와 식당 주인을 번갈아보더니 “에이.” 하고는 몸을 돌려 내려갔다. 이장이 내려가자 덩치들과 남방 풀어헤친 작은 남자도 모두 따라 내려갔다.
시간이 다섯 시를 넘고 있었다. 중래와 약속한 시간을 맞추려면 시간을 더 늦출 수는 없었다. 민경 씨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촛불집회 참석하실 거지요?”
“그래야죠.”
“시간이 많이 늦을 텐데, 여긴 서울로 가는 차편이 좋지 않아서. 내가 최대한 빨리 돌아오지요. 우리 집에 가서 잡시다.”
“예, 뭐. 이따 상황 봐서 통화해요.”
나는 차를 세워 둔 파사성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는 어림잡아 5-60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공사현장 울타리 안에서 집회를 하던 사람들과는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 장승공원을 쳐다보면서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보 상판을 바라보면서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5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남자들이었다. 경찰버스 뒤쪽에서는 나이가 좀 더 많은 축에 드는 60대 노인들이 술판을 벌리고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술까지 들이켰으니, 옷을 걸치고 있는 것도 고역인 셈이다. 남방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불콰한 얼굴로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었다.
“저것들 몽땅 북으로 보내 버려야 해.”
“암만. 저 뿔갱이 놈들, 김정일이 그 놈하고 살라고 그래. 왜, 자유 대한의 질서를 어지럽히는데.”
“아주 벌레 같은 놈들이야.”
이야기에 죽이 척척 맞으니 서로들 몹시 즐거운 얼굴이다. 나는 난감하였다. 하필 내가 차를 주차해 놓은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뿐 아니라 내 차와 다른 차 사이의 공간에서도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내가 차문을 열고 운행을 하려는 행동을 보였으나 그들은 힐끔힐끔 쳐다볼 뿐 비켜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날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옅은 적의까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장승공원에서 내려오는 것을 봤거나, 그들의 펼침막에 등장하는 ‘외지인’으로 보는 게 틀림없었다.
“저, 제가 좀 나가야 되는데요.”
내 차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해 보았다. 내 말을 듣고 한 사람이 발걸음을 옆으로 옮겼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하여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곤란하고 난감하고 은근히 부아도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얼굴이 있었다. 길수형님이었다. 길수형님도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형님은 오묘하게 웃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나를 책망하는 듯도 하고 살짝 부끄러움도 담긴 듯한 그런 묘한 웃음. 형님이 말했다.
“우리는 저 사람들 내려오라고 하는데, 김 선생은 거기서 오네?”
길수형님이 보 상판을 슬쩍 쳐다보다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이 서울에서 와서요.”
나는 아까 학부모들한테 하던 말과 같은 말을 또 하였다.
“선거 때문에 그러나? 선거 끝나면 내려오나?”
나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말을 길수형님이 하였다. 딴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바로 코앞이었으니.
“글쎄요, 선거하고는 관계없을 거예요. 저 보를 만들지 말라는 거지요. 강물을 그대로 두라고…….”
“그게 아닐걸. 선거 때문이 틀림없어. 국민들 이목을 끌어서 선거에서 이겨 보겠다, 뭐 그런 속셈 같아.”
길수형님의 얼굴에 고집스러움이 묻어났다. 목소리도 완강했다. 작지만 근육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동서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 친구지만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한번 잘못 보이면 절대 사정을 두지 않지.’ 손윗동서는 길수형님과 부랄친구다. 그냥 부랄친구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내 것 네 것이 없는 단짝 친구다. 덕분에 나도 길수형님과 친하게 되었다. 더구나 나와 길수형님은 앞뒷집에서 팔년 째 살고 있으며 거의 날마다 얼굴을 보는 사이기도 하다. 동서가 길수형님네 동네를 소개했고 길수형님은 지금 내가 사는 집을 소개해 줬다. 인연이 남달랐으니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기라도 할라치면 길수형님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길수형님은 우리 텃밭을 맡아 놓고 트랙터로 손질을 해준다. 시골살림이 서툰 나와 아내를 이것저것 살뜰하게 살펴주니 그리 고마울 수 없다. 앞뒷집에서 사이좋게 지내다 보니 언젠가는 술을 먹고 단풍나무 아래서 씨름을 한판 하기도 하였고 봄에는 서로 얼굴에 검댕을 묻히면서 밀청대를 해먹기도 하였다. 한 동네에 살고 있으므로 봄가을로 여행도 같이 다닌다.
지금은 좀 이상한 장소에서 좀 이상한 시간에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어색하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친한 정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늘 느끼는 거지만, 오십 평생 한 번 굳어진 사고체계를 절대로 바꾸지 않으려는 길수형님의 완고함 또한 새삼스럽다. 이럴 때 대화는 더 진전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지금 서울에 조문하러 갑니다.”
“조문? 누구?”
“대학 때 친구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아.”
내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길수형님은 나를 위하여 내 차 주변의 사람들을 비키게 하였다. 내가 비켜 달라고 했을 때에는 들은 척도 않던 사람들이 길수형님의 한마디에 술판도 걷었고 다들 비켜났다. 길수형님은 이장도 했었고, 지금은 공사를 맡은 커다란 건설회사에서 꽤 높은 직함도 갖고 있다.
내가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길수형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형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저 사람들 빨리 내려와야 되는데, 어떡하면 내려올까?”
길수형님의 표정에 다소 절박함이 묻어 있다. 나는 길수형님의 그 표정이 좀 의아했지만, 이내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내가 보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의 행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그런 심정을 길수형님의 표정에서 보았다. 아마도 길수형님은 뭔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뭔가를 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갖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길수형님의 바람을 채워 주는 대답을 가진 게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주는 게 다였다.
“사내가 칼을 뺐으면 무라도 찔러야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올라갔으니 내려오려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지요.”
“명분이라……, 그게 뭐지?”
“그게 고민이지요.”
길수형님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형님에게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왔다.
양평까지는 차가 막힘없이 잘 갔다. 양평을 지나 옥천을 지날 때, 차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춘천과 홍천 쪽에서 오는 차들이 급격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반대편 차선은 정체가 훨씬 심했다. 그제 서야 나는 ‘아, 오늘 토요일이지.’ 하고 깨달았다. 그렇게 막혀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 액정에 민경 씨 이름이 떴다.
“샘, 큰일 났어요! 아, 어쩜 좋아요!”
목소리에서 다급함과 약간의 두려움과 안타까움 따위가 마구 뒤섞인 감정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에요?”
“다 부수고 난리 났어요. 각목을 들고 쳐들어왔어요. 술 먹은 사람들이에요. 사람도 때려요. 아아!”
나는 금방 사태를 눈치 챘다. 주민들 가운데 술을 먹고 넘치는 결기를 참지 못한 사람들이 상황실을 들이친 게 틀림없었다.
“민경 씨, 민경 씨, 나서지 말고 뒤로 물러나요. 맞서지 말아요.”
“저는 뒤에 있어요. 남자들이 막고 있는데, 국회의원님이랑. 그런데 각목을 막 휘둘러요. 천막은 다 무너졌어요.”
“경찰은요? 경찰은 안 왔나요? 상주하는 경찰이 있잖아요.”
“경찰은 있는데, 뒤에 그냥 서 있어요. 아, 이제 경찰이 가운데에 들어 왔어요.”
알 만했다. 상황은 종료되었을 것이다. 성난 주민들 몇몇이 쫓아와서 하고자 했던 목적은 다 달성 되었을 것이고, 경찰은 뒷수습에 들어갈 것이다. 이제 무너진 천막을 다시 세워야 하는 건 몇 안 되는 상황실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일 것이다. 
나는 민경 씨와 전화를 끊고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길수형님이 각목을 들고 올라갔으리라고 믿고 싶진 않았다. 주차장 주민시위대의 리더로 보이던 길수형님인데, 리더의 허락 없이 결사대가 상황실을 덮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평소에 온건하던 길수형님인데, 그렇게 폭력적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제불능인 다혈질의 사나운 사람 몇몇이 저지른 충동적인 난동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상국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내 집회는 잘 되었나?”
“결국 못 했어요. 인원이 너무 적었어요. 방해가 심했고요.”
“그럼, 지금은 뭐 하나?”
“이포보로 이동 중이에요. 같이 가는 분들이 한 열 명쯤 되요.”
“천막이 다 부서졌다는구만.”
“예? 지금 이포보에 계시지 않아요?”
“아, 난 서울로 가는 중일세. 조문을 가야 해서.”
“……예, 잘 다녀오세요.”
딸깍,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차를 몰고 휴게소를 나왔다. 차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두물머리를 지날 쯤에 중래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소 한 시간 이상 늦을 거라고 했더니 급하게 생각 말고 천천히 오라고 한다.
“기다리고 있을게. 성준이랑 같이 있어.”
머리는 반백이 되고, 갸름하고 홀쭉하던 젊은 얼굴은 세월을 먹어서 퉁퉁해지고 늘어진 모습을 하고 앉아 있을 중래와 성준이의 얼굴이 눈앞에 어련 거렸다. 이제 마흔도 중반을 넘었으니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을 갖는 건 당연하리라.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빈소는 진규와 진규 부인, 그리고 고등학생 중학생인 아들 둘이 같이 지키고 있었다. 내가 빈소에 들어서자 진규가,
“아이고, 아버지 명호가 왔네요. 명호가 왔어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본 지 삼년이나 지났지만 영정사진 속의 진규 아버님 얼굴은 마치 어제 본 듯 친숙하다. 내가 향을 집으려 하자, 진규가 말했다.
“명호야, 넌 술 한 잔 올려라. 향 말고.”
진규는 한 다리를 꿇고 청주병을 들었다. 내가 잔을 들자 진규가 술을 가득 채우며 말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니 술잔을 받으시는구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잔을 받으셔.”
“술을 못 하셨지, 아버님이.”
“그래.”
술잔을 올리고 큰 절을 두 번 드렸다. 진규와 맞절을 하고 나서 혼자 접객실로 들어갔다. 중래와 성준이를 찾느라 접객실을 휘둘러보는데, 사람들 얼굴에서 어떤 공통점 같은 걸 발견했다. 진규가 대학교수라서 그런지 몰라도, 조문객들도 하나같이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들 티가 난다. 다소 피곤해 보이지만 뭔가 만만치 않은 자신감을 품고 있는 얼굴들. 안쪽 깊숙이 앉아 있던 중래와 성준이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좀 일찍 출발하지, 두 시간이나 늦었어.”
중래가 웃으며 책망 아닌 책망을 한다.
“일이 좀 생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늦었다.”
“무슨 일인지 좀 듣자.”
성준이가 내게 사이다를 한잔 부어주며 말했다. 나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포보에 환경활동가들이 올라가 있는 것은 중래도 성준이도 잘 알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중래가 한마디 했다.
“야,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무슨?”
“우리 나이에 다치면 금방 안 돌아와. 조심해야지.”
“야, 지금 보에 올라가 있는 사람 중에 한 분은 쉰이 넘었다. 우리보다 많아.”
“그래?”
중래가 입을 다물었다. 성준이도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서 잠깐 대화가 끊어졌다. 어색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에서만 수십 년을 산 마흔 중반의 친구들.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회적인 직책을 소유하고 적당한 부를 누리고 있는 이 두 친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중래야, 성준아. 저렇게 강에 보를 세우고 골재를 대대적으로 파내는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 찬성한다면서. 그럼 주민들을 위해서 잘하는 일 아냐?”
중래가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강이 그곳에 사는 주민들만의 강이냐?”
나는 장승공원 상황실 사람들과 매화시인이 강조하던 말이 떠올라 그렇게 말하였다. ‘외지인들은 나가라’는 펼침막을 보고 너무 답답하다면서 한숨을 쉬던 매화시인. 어떻게 온 나라를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한 지역만의 강이냐고, 사람들이 너무 자기 눈앞만 본다고 탄식을 하던 매화시인.
“여주는 상수원이라, 물이 더러워지면 당장 너희가 먹는 수돗물이 오염되는 거야.”
“물이 왜 오염돼. 수질을 개선한다는 거 아냐? 지금보다 물이 더 맑아진다는 거잖아.”
성준이가 뜨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준이는 5급으로 시작해 1급을 다는 동안 중앙부처에서만 살았다. 별다른 외풍 없이 공무원으로 오랜 세월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온순한 눈빛이었다.
“정부에서 하는 홍보가 그런 거지. 반대 논리를 펴는 학자도 많아.”
중래가 지루하다 글자를 얼굴에 썼다. 아무런 관심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 늘어놓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표정이었다. 나는 중래의 표정을 보고 이야길 그만둘까 하다가 내친 김에 하나 더 물어 봤다.
“성준이 너, 강에 보 세우고 골재를 준설하는 곳에 가본 적 있니?”
“아니 못 가 봤어.”
“중래 너는?”
“나도. 못 봤어.”
중래는 대답을 간단하게 하고 나서
“야야, 그 얘긴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 하자.”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역시 중래답다. 맨손으로 탄탄한 사업체를 일군 열정적인 사내답게 지루한 건 좀체 견디지 못한다. 온갖 이야기들이 웅웅 허공을 떠도는 장례식장 접객실에서, 우리도 두서없는 이야기를 웅웅 보태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밤 열 시쯤에 민경 씨가 전화를 했다. 서울로 오는 막차를 탔다고 한다. 촛불집회가 끝나고 천서리 버스정류장으로 왔더니 이미 버스는 끊어지고 없었단다. 어떡하나 망설이고 있다가 마침 경찰차가 보여서 부탁을 했다고 하였다.
“양평시내까지 태워 줄 수 있냐 그랬더니, 쉽게 그러마 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마 내가 여자라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호호.”
양평에서 겨우 막차를 탔는데, 무진장 막힌다고 하였다.
나는 열한 시쯤 병원을 나섰다. 중래와 성준이는 지하철을 타러 가고 나는 승용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팔당대교를 지나 터널이 시작 되는 곳부터 반대 차선은 꽉 막혀 있었다. 아마도 정체는 양평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경 씨는 아직 두물머리도 지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 뒀다. 신양수대교를 건너면서 반대편 차선을 보았다. 관광버스들 사이로 노선버스가 한 대 보인다. 노선버스엔 잠든 사람들의 실루엣이 있다. 그 버스에 민경 씨가 피곤한 몸을 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뻥 뚫린 길을 달렸다. 양평을 지나고 개군을 지날 쯤이었다. 갑작스럽게 달빛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맑았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깨끗한 하늘, 깨끗한 달, 깨끗한 나무와 풀, 나는 어딘가 환상의 나라를 지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꿈속을 가듯 길을 가고 있는데, ‘띵동.’ 하고 문자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났다. 막 배꽃나루(이포나루)가 눈앞에 보일 때였다. 나는 장승공원 입구에 차를 세웠다. 핸드폰을 열어서 문자를 확인했다.

이포보 외로운 망루에
달빛이 잠시 머물러
강물을 위로하지만
강께선
망루의 사람들을 걱정하네요.
 

매화시인이 보낸 문자였다. 나는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이 내게 함빡웃음을 보낸다는 착각이 들었다. 달빛은 사람들이 올라간 보 상판도 비추고 상황실 사람들이 잠든 천막도 비추고 가물막이에 갇힌 강물에도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시각은 새벽 한 시를 넘어 가고 있다. 

필자 소개 / 장주식


남한강가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장편동화 『그리운 매화향기』 『토끼청설모까치』, 청소년소설 『순간들』, 교육에세이 『하호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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