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5) 영감땡감과 딸년

5. 영감땡감과 딸년

 

날랜 칼로 위아래를 가르고 사지를 활짝 펼쳐 마침내 박스의 배를 갈랐다. W지구당 부위원장 최백규, W지구 경제인 연합 사무총장 최백규, W지구 로터리클럽 회장 최백규, 감사패 최백규, 공로패 최백규 들이 쏟아진다. 영감땡감 입이 쩍 벌어진다. 처첩들이 쏟아져 나온들 저리 좋을까. 단박에 눈에 생기가 돌고 콧잔등에 힘이 담뿍 담긴다.

 

“어이, 수건 하나 새 걸로 가져오소.“”

 

“수건은 뭐하게요?”

 

“보면 몰라. 닦아야지.”         

 

“봤음 됐지 다시 처박아 놓을 걸 뭐 하러 닦고 말고 해요?”

 

“이 사람이? 아, 빨리 안 갖고 와?”

 

성질을 내든 말든 그건 영감땡감 사정이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 휑하니 돌아서 나와버렸다. 

인부들이 걱정하던 대로 집이 좁아 살림살이가 쟁여지질 않는다. 큰살림들이 쟁여지지 않으니 작은 살림도 집어넣을 데가 한없이 더디다. 인부들 일이 세 겹 네 겹이 되고 이러다가 날밤 새워도 못 끝내겠다고 웅성거린다. 인부들 보기 미안해 무조건 앞 베란다에 쟁여놓으라고 해서야 일은 진척이 보인다.

 

“그릇장은 어디로 놓을까요? 거실에다 소파하고 냉장고를 놓고 보니 놓을 자리가 없는데?”

 

“그럼 작은방으로 들여놓으세요.”

 

“책장은요?”

 

“책장도요.” 

 

무심코 작은방으로 들어가던 인부가 놀라 “아이고, 아저씨!” 하는 소리가 들린다. 딸년이 놀라 얼른 쫓아 가보더니 역시 “아버지!” 한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가 보니 정말 가관이다. 그 바쁜 와중에 패란 패는 다 벌려놓고 때 빼고 광내고 한창이다. 영감땡감 혼자 태평시절이다.   

 

“그 망할 놈의 것들 빨리 다 안 치울 거요?” 

 

“이 사람이? 하면 다 말인 줄 알고?”

 

“아버지, 저리 갖고 나가서 나랑 합시다.”

 

후닥닥 딸년이 널려진 것들을 박스에 대충대충 모아 담는다. 영감땡감이 박스 채 도로 확 부어버린다.

 

“아, 글쎄. 잠깐이면 돼.”

 

자신을 둘러싸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도 영감땡감은 여유작작하다.

 

“금세 다 돼요.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세요.” 를 노래 가락처럼 읊어댔다. 

 

“잠깐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잠깐. 그깟 놈의 것 갖고.”

 

“어허,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라고 했다?”

 

“니 아버지 성격 몰라서 지금 그러고 보고 섰냐? 싹 갖다가 내다 버리지 못해?”

 

“어허? 이 사람이 정말? 이게 아무나 받는 거나? 아무한테나 주는 거냐고?” 

 

“아무한테나 안 주면?”      

 

“뭐야?”

 

영감땡감이 한 대 후려칠 듯이 노려보았다. 딸년이 엄마 그만 해, 하며 틀어막았으나 내친 김이었다.

 

“평생을 그깟 놈의 것에 목숨 걸고 살았으면 늘그막에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영감땡감 대신 딸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하래도!”

 

“그러니까 싹 갖다 내다 버려버리란 말이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딸년이 다시금 바닥에 널려져 있는 것들을 주워담는다. 분이 이는지 영감땡감이 딸년 뺨을 냅다 후려쳤다.

 

“너 이년. 이 웬수 같은 년.”

 

얼떨결에 뺨을 맞고 딸년이 옆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러나 금세 자세를 수습했다.

 

“아버지도 그만 하세요.”

 

인부에게 장을 들이라 이르고 딸년이 박스를 들고 일어섰다. 영감땡감이 뒤쫓아 벌떡 일어서려다 제풀에 나동그라졌다. 탈골이나 안 됐는지 와락 겁이 났다. 쉽사리 몸은 못 일으키겠고 딸년은 막아야겠기에 영감땡감이 안달을 한다.  

 

“너 이년, 그거 갖다 내다버리기만 해라, 어디.”

 

“예.”

 

“뭐라고 너 이년?”    

 

“알았다고요.”

 

“뭐라고? 알았다고? 너 이년, 버리기만 해 봐라!”

 

영감땡감 눈에서 눈물이 터진다. 더 이상 악다구니도 못 쓰고 눈물이 홍수진다. 인부들이 흘깃흘깃 영감땡감을 쳐다보고 다녔다.

 

한참이 지나도 딸년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무거운 걸 들고 어디까지 간 걸까.

 

내다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맙소사! 바로 문밖이 천 리다. 겨우 문밖에다 버려 두었다. 문밖에다 버려 두고 멀리 간 척 찬바람 속에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영감땡감한테 뺨맞은 게 서러워 울고 있는가, 들여다 봤더니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란다. 

 

“어떻게 버려? 아버지 한평생인데?”

 

“뭐여?”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영감땡감 원수 같은 딸년이 그것도 한평생이라고 한다. 그것도 한평생이라고 찬바람 속에 나 앉아 싹싹 닦아대고 있다.

<끝>

 

-필자소개-

 

 

 

 

 

 

 

김지우

 

 

1963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86년 전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단편소설「눈길」로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후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3년도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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