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먹는 오후

 

[청소년 테마소설]

자아정체성_두 번째

 

 

초콜릿을 먹는 오후

 

전아리

 

 

 

 

   눈부신 주말 오전의 볕이 창문 너머로 비쳐든다 햇빛은 대나무가 꽂힌 유리병을 통과해 시험지 위로 방울방울 아롱거린다. 등 뒤 침대에 앉아있던 엄마가 일어나 창가의 블라인드를 내린다. 방안은 곧 물이끼 낀 수조처럼 서늘하게 어두워진다.

   답안지 위에 마킹을 한 자국이 검은 콩처럼 흩뿌려져 있다. 스톱워치가 울리자 엄마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거두어간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카스텔라를 한 개 먹는 사이 엄마는 채점을 마쳤다. 거실 소파에 앉은 엄마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점수가 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저께보다 더 떨어진 점수를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온다. 엄마가 들어와서 내 핸드폰을 들고 나간다. 방문이 밖에서 잠긴다. 엄마와 약속한대로 자정이 될 때까지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틀린 문제 수대로 종아리를 맞고, 모의고사 평균이 떨어지면 밤을 새워 모든 문제를 세 번씩 다시 푼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감독하는 모의고사를 치러서 전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정이 될 때까지 방에 갇혀 공부를 한다. 나는 시험지를 잘라 오답노트를 정리한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는 오늘도 혼자 식사를 할 것이다. 내 점수가 조금만 좋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은 식탁 앞에 기분 좋게 앉아 함께 식사를 했을 터였다. 가엾은 우리 엄마. 나는 침대 밑에서 플라스틱 통을 꺼낸다. 어깨동무를 한 천사가 그려진 통을 열자 색색가지 젤리빈과 은박 포장에 싸인 초콜릿이 한가득 드러난다. 나는 젤리빈을 한 움큼 집어 씹어 먹는다. 카스텔라 하나로 채워지지 않은 뱃속에 영롱한 비눗방울이 차오르듯 젤리빈이 쌓인다. 나는 입을 오물거리며 통을 깨끗이 비워낸다. 이번 모의고사에서는 반드시 점수를 올려 엄마를 기쁘게 할 것이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동생을 데리고 떠난 이후로 엄마 곁엔 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려던 그때 엄마는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미리 싸두었던 짐 상자 서너 개를 아버지와 동생이 나르는 동안 엄마는 고무장갑을 낀 채 개수대 앞에 서 있었다. 고무장갑을 타고 흐른 비눗물이 뚝뚝 발치로 떨어졌다. 부모님은 이혼사유에 대해 인생관의 차이, 더불어 성향 차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예민한 여고생 딸의 이해를 바라려 꽤나 애를 썼지만 나는 두 사람의 이혼이 엄마의 의심병 때문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는 매일 세탁물 바구니 속의 아버지 옷을 샅샅이 살피고, 잠든 아버지 머리맡에서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인했으며, 실수인 척 수시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행방을 확인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쑤시개로 이를 후비는 시간까지 간섭하고 싶어 했다.

   “넌 내가 바람나길 환장하고 기다리는 거 같아.”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날 밤 우리 집은 네 식구가 모두 집에 있었음에도 오래된 빈집처럼 무중력을 닮은 정적에 잠겼다. 아버지의 자리가 텅 비어버린 후 엄마는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매던 촉수를 나에게로 뻗어왔다. 집착에 대한 스스로의 문제를 전혀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이혼을 요구한 건 순전히 자신이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능력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툭하면 아버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커리어우먼들을 언급하며, 그렇게 되려면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엄마는 인터넷 카페를 뒤져 입시준비 부모 모임에 가입하고 대학교를 찾아다니며 입시설명회를 듣기 시작했다. 또 하교 때마다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학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성적표를 검사하고 시험지를 검토하던 습관은 어느새 내가 푸는 문제집의 답안지를 뜯어가 채점을 맡아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가방과 핸드폰을 검사하며 주변 친구들의 성적 수준까지 체크하여 어울려도 될 아이들과 아닌 부류를 구분해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친구들은 우리 엄마가 너무 극성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모의고사에서 내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는 이유로 엄마가 친한 몇 명의 아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후, 그 애들은 수군거리며 나를 피했다. 내가 달콤한 것을 먹게 된 건 그 무렵부터였다. 단 거라곤 생전 입에 대지도 않던 내가 초콜릿과 사탕, 과자며 케이크 같은 데에 흠뻑 취하게 되리라곤 스스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 계기는 단순했다.

   토요일 오후. 학원 종일반 수업을 듣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함께 점심을 먹던 친구들이 자주 몰려가는 분식집을 피해 혼자 먹을 곳을 찾다보니 갈 데라고는 기사식당이며 한정식집밖에 없었다. 아저씨들이 북적이는 기사식당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비교적 휑한 갈빗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물냉면을 시켰다.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던 냉면을 결국 반도 넘게 남기고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오려던 나는 카운터에 놓인 바구니를 발견했다. 납작한 바구니 안에는 반짝이는 금박 포장지에 싸인 계피사탕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사탕을 한 개 집어 들고 나왔다. 사거리를 지나 학원으로 향하며 계피사탕을 우물거렸다. 겉이 조금 녹아서 끈끈하게 달라붙던 사탕은 이내 작고 매끄럽게 녹아서 경쾌하게 입안을 굴러다녔다. 이에 부딪쳐 야무지게 달그락거리는가 하면 혀와 입천장 사이에 꼭 끼어 씨앗처럼 단단히 몸을 묻기도 했다. 계피사탕을 다 먹고 난 후 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탕을 한 봉지 골랐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동그랗고 긴 통에 든 젤리 빈과 땅콩이 들어간 초콜릿도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냉장코너에서 조각 치즈케이크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누군가 앞서 치즈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케이크 상자를 감싸는 길고 곧은 하얀 손가락.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남자는 후드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한 쪽 어깨에는 화구통을 매고 있었다.

   “네가 가져갈래?”

   그는 치즈 케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말을 놓는 그에게 울컥 반감을 느끼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시원하게 삭발을 한 머리가 파르라니 동그랗고 두 눈은 쌍꺼풀 없이 기름했으며 콧대가 곧았다. 밝고 화사한 기운이 맑은 강물처럼 출렁이며 내게로 흘러들었다. 나는 편의점을 나서려는 그를 쫓아가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솟아났는지, 사람에게 일생에 한 번 가장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나는 그 기회를 그때 써버렸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줄기차게 달콤한 것을 먹어댔다. 달콤한 것을 입에 넣을 때면 침샘이 기분 좋게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첫눈에 반한 그에 대한 황홀함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그어 불을 피우듯, 나는 입안의 사탕이 녹기 전까지 그를 주인공으로 온갖 상상을 펼쳐냈다. 그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다가, 그를 유혹하는 도발적인 팜므파탈이 되기도 하였다.

   철커덕. 방문 밖의 자물쇠가 열린다.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는 열두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국문과를 지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담임과의 면담 중에 내가 명문대 경영학과를 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넌 아직 뭐가 좋은지 몰라. 다 널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일단 잠자코 엄마 말부터 들 어.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성적으로 지망 대학의 진학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하는 담임 앞에서 엄마는 반드시 내 성적을 올리고야 말 거라고 큰 소리를 치고 나온다. 앞서 복도를 걸어 나가는 엄마는 이미 그 대학에 입학한 딸을 둔 학부모처럼 기세등등하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사람은 한편으로 마냥 순수해보여서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에게서 나를 사랑할 기회까지 빼앗아 버리면 불쌍한 우리 엄마는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가 참자, 조금만 참으면 된다.

   학원 쉬는 시간에 그가 찾아왔다. 그가 다니는 화실이 이 근처인 터라 우리는 틈틈이 얼굴을 본다. 그와 나는 편의점에서 처음 마주친 이후 줄곧 이렇게 만남을 유지해왔다. 사귀는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저 친구인 사이라고도 할 수 없다. 언젠가 그가 내 볼에 입을 맞추긴 했지만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가진 않았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 다른 날과 다르게 그의 눈이 유난히 빛난다.

   “너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고개를 떨구고 만다. 속이 후끈거리며 달아오른다. 밤마다 초콜릿을 꼭꼭 씹으며 그가 나를 그려주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장소는 매번 바뀌었다. 상상 속의 그는, 봄볕이 따스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바람에 수런거리는 버드나무 아래에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기도 했고, 문을 걸어 잠근 어두운 방안의 침대 위에 나를 묶어두고 거칠게 미술연필을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나를 그리고 싶다고 말하자 몹시 부끄러워진다.

   “좀 더 예쁜 모델을 찾아보지.”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는 조심스럽게 내 손목을 잡는다.

   “너도 충분히 예뻐.”

   그는 내가 학생이니까 기왕이면 교복 입은 모습을 스케치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고민 끝에 이번 주 금요일 학원 수업을 한 시간 정도 빼기로 한다. 사회탐구 영역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 하루 정도 수업을 빠진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학원에는 미리 병원에 간다고 말을 해두는 편이 좋겠다.

   금요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단 것을 많이 먹지 않았다. 단 걸 먹지 않아도 충분히 가슴이 뛰어서인지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목요일 저녁. 어쩐 일인지 아버지가 찾아왔다. 이혼한 뒤로 집에 찾아온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아버지는 부엌의 식탁 앞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별안간 엄마가 악을 쓰듯 소리를 빽 지른다.

   “나가!”

   아버지가 저벅저벅 걸어와 내 방의 방문을 연다. 방문 밖의 잠금장치를 보고 당황한 아버지는 내게 잠깐 나와 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어깨 뒤로 얼굴이 붉어진 엄마가 보인다. 분에 못 이겨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깨가 심하게 들썩인다.

   “제정신이야? 애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아버지는 방문의 잠금장치를 가리키며 말한다.

   “당신이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어? 나 몰라라 버리고 갈 땐 언제고.”

   바락바락 대꾸하는 엄마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아버지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네가 결정해라. 네 엄마랑 살기 힘들면 나랑 가자.”

   나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지내왔는데, 아버지는 대체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일까. 엄마가 뚫어지게 내 눈을 바라본다.

   “나랑 살고 평균이 8점이나 올랐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나 해? 얘, 너도 말 좀 해봐봐. 그래, 안 그래?”

   두 사람, 네 개의 눈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말끔하게 다려진 고급스러운 셔츠를 입고 있다. 얼굴에는 윤기가 돌고 안경테도 전에 없던 세련된 것으로 바꾸었다. 그 뒤에 선 엄마는 머리가 부스스하고 목이 늘어난 내 셔츠를 입고 있다.

   “그래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엄마 말이 맞아요.”

   아버지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잠깐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돌아서서 집을 나간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닫힌다. 잠시 엄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공부해.”

   엄마가 방문을 닫는다.

   나는 교복 블라우스의 리본을 단정히 묶고 의자에 앉는다. 그는 연필을 깎는다. 이윽고 그가 캔버스 위로 연필심 끝을 갖다 댄다. 그의 눈이 찬찬히 나를 살핀다. 문득, 미술수업에서 판화 작업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판에 잉크를 골고루 묻히고 마분지를 덮은 위로 롤러 질을 하던 시간. 판의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공들여 롤러를 밀던……. 롤러의 부드러움 속에서도 손끝에 느껴지던 미세한 음각의 흔적들. 그의 시선이 롤러처럼 나를 훑어갈 때마다 나는 내게 음각의 무늬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없이 간지러우면서도 너무 부끄러워서 온몸이 따끔따끔할 지경이다. 시간이 금세 흐른다. 벽시계를 확인한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선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빈 컵라면 용기가 발에 채여 쓰러진다. 조금 남아있던 라면 국물이 흘러 내 가방을 적신다. 그가 휴지로 내 가방을 닦아내며 쑥스럽다는 듯 말한다.

   “좀 정신없지? 집에서 그림 그리는 걸 반대해서 혼자 나와 살거든.”

   나는 라면 냄새가 나는 가방을 맨다.

   “넌 나중에 뭘 하고 싶어?”

   느닷없이 그가 묻는다.

   “일단 엄마랑 상의를 해봐야지.”

   “엄마를 엄청 사랑하나보네.”

   비아냥거리는 걸까 싶어 그의 옆얼굴을 살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걸 선택해야 할 필요도 있어.”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우리 엄만 불쌍한 사람이야.”

   “넌 엄마를 사랑하는 거니 두려워하는 거니?”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젓는다.

   “아직 미완성이야. 다 되면 보여줄게.”

   그가 학원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잰 걸음으로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다. 학원 건물에 다다랐을 때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건물 앞을 서성이고 있던 엄마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엄마는 사납게 그를 노려본다. 그가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나는 앞서 가는 엄마의 뒤를 쫓아가며 변명하듯 사정을 설명한다. 그가 촉망받는 화가라는 것과,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도와준 거라는 거짓말을 보태지만 엄마의 성난 발걸음은 좀처럼 늦춰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나를 방안에 떠다밀듯 집어넣는다.

   “초상화도 멋있게 잘 나왔어요. 상 받으면 전시회에 초대한다고 했어요.”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노기가 어려 있던 엄마의 얼굴에 조소가 스친다.

   “멋있게? 널 그린 그림이?”

   잠시 안방으로 사라졌던 엄마가 거울을 들고 나타난다.

   “자, 봐라 봐. 그 놈이 널 이용한 거야. 네 살들 좀 보라고!”

   엄마가 들이민 거울 속에는 비대한 체구의 여자애가 앉아 있다. 볼 살은 반죽처럼 흘러내려와 있고, 두둑한 턱살이 계단처럼 겹쳐 목을 가렸다. 교복 블라우스는 터질 듯 꽉 끼어 단추 사이마다 앞섶이 벌어져 있고, 소매 밖으로 간신히 삐져나온 출렁이는 팔뚝의 살갗은 비명을 지르듯 터서 갈라졌다. 뿐이 아니다. 치마 아래로 드러난 두 허벅지가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해서 걷기도 버거워 보인다. 피부는 누렇고 머리칼은 부석부석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난다.

   “이건 내가 아니에요.”

   엄마가 거울을 더 바짝 내 앞으로 들이민다.

   “작년부터 얼마나 살이 쪘는지 모르겠어? 오죽하면 사람들이 널 이렇게 만들었다고 내 욕 을 다 하겠니. 그렇게 뚱뚱하면 공부라도 잘 해야지. 주제도 모르고 어디 연애질을 하고 앉아 있어?”

   “분명히 나보고 예쁘다고 했어요.”

   “네가 아주 단단히 정신이 나갔구나.”

   엄마는 방을 나가 문을 걸어 잠근다. 나는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엉금엉금 침대 밑으로 기어 내려간다. 어두운 틈 안으로 손을 뻗어 뜯지 않은 초콜릿과 젤리빈 봉지들을 꺼낸다.

   “엄마, 잘못했어요.”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젤리빈을 한 움큼 집어 입안에 밀어 넣는다. 젤리는 쫄깃쫄깃하게 씹힌다. 메론과 포도, 딸기 맛이 한 데 뒤섞인 입안에서는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난다. 침대 밑을 꽉 채운 봉지들을 하나씩 비운다. 마치 캔디가 솟는 샘처럼 아무리 먹어도 봉지들은 줄지 않는다. 사탕을 입에 문 채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아침이다. 빈 껍질들이 애벌레가 빠져나간 허물처럼 주변에 널려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방문을 두드려보지만 밖에서는 대꾸가 없다. 아랫배가 점점 당겨온다. 나는 계속해서 남은 사탕과 초콜릿을 먹는다. 견디다 못해 휴지통을 비우고 그 안에 오줌을 눈다. 먹다 지치면 잠이 들고, 일어나면 다시 지칠 때까지 먹는다. 꿈속에서 나는 색색가지 젤리빈을 땅에 심는다. 튼튼한 나무가 자라고 설탕 묻은 가지마다 엄마가 주렁주렁 열린다.

   초콜릿이 묻은 손가락을 빨다가 문득, 엄마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나를 가지고 논 게 분명하다. 엄마의 말대로 내 모습은 뚱뚱하고 형편없다. 그는 나를 캔버스에 담는 내내 돼지 같다며 내 살들을 비웃었을 것이다. 내가 충분히 예쁘다고 말하면서,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나를 조롱했을 게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몰려다니며 수다를 떨고 군것질을 하러 다닐 땐 언제고, 내가 살이 찌고 보기 흉해지자 금세 내게서 등을 돌려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는 와중에도 내 성적이 오른 것에 대해 쑥덕거리며 질투를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이런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은 역시나 엄마뿐이다. 문밖에서 엄마가 나를 지켜주는 한, 그 무엇도 지나치리만큼 나빠지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만큼 평온해졌다. 휴지통이 점점 묵직해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문이 열린다. 엄마가 나타난다. 세상에서 제일 안쓰러운 우리 엄마. 나는 엄마를 와락 끌어안는다. 엄마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리의 몸이 하나가 되어 쓰러진다. 비쩍 마른 엄마의 몸 위에서 내 살들이 출렁인다. 엄마는 무어라고 말을 하려 하지만 내 팔뚝에 파묻혀 입을 열지 못한다. 엄마가 내 몸 아래서 요동친다. 일어나고 싶어도 내 몸은 이미 혼자 설 수 없을 만큼 무거워져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살들이 밀가루 반죽처럼 마룻바닥에 달라붙는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엄마의 몸에서 차차 힘이 빠진다. 엄마의 몸은 작은 조각배, 나는 요람을 탄 아기처럼 그 위에 담겨 평화롭게 흔들린다. 나는 엄마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로요.

 

작가소개

전아리(소설가)

  1986년 서울 출생. 2012년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다.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성을 겸비한 흥미로운 서사로 천마문학상, 계명문화상, 토지청년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8년 『직녀의 일기장』으로 5천만 원 고료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2009년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로 제3회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소설집 『즐거운 장난』, 장편소설 『시계탑』, 『팬이야』, 『김종욱 찾기』, 『앤』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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