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화풀이 끝에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하는 소리만 듣고도 훤히 알 것 같았다. 아저씨는 원래는 잘 나가던 닥터 기술자였다고 한다. 나는 아저씨가 의사인 줄 알았다. 닥터에 기술자란 말을 붙여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 더 이상한 건 아무리 봐도 아줌마가 의사선생님 사모님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지독한 편견이라고 나는 반성했다. 의사 사모님도 혼자 힘들게 살다보면 아줌마처럼 될 수 있는 거니까. 닥터가 실은 닥트고, 닥트는 환풍시설 같은 걸 말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아저씨가 공장에서 해고되고 단식투쟁을 하다가 그때 얻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으면서 재산을 다 까먹었다고, 죽은 아저씨를 욕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생선 구잇집 아줌마가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생선 구잇집 아줌마의 아저씨가 아직 팔팔하게 살아서 생선 구잇집 아줌마를 차로 출퇴근시켜 주는 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식당 알바가 아니라 아줌마의 화풀이 상대인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한 건, 나라도 없으면 아줌마의 홧병이 도져서 눈알을 뒤집으며 쓰러질 것 같아서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만둘 처지가 못 되었다.

   두 달 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나는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쿵쿵, 그건 분명히 도끼나 망치 같은 걸로 아파트를 깨부수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서 불을 켜고 앉았다. 시간은 자정이 넘어있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 멀어지고 멀어지다가 가까워졌다. 한밤중에 공사라도 하는 걸까?

   오빠가 주먹으로 벽을 치는 소리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이트클럽에서 기도 일을 하는 오빠는 파랗게 여명이 터올 무렵에나 돌아왔다. “아침에 나 깨워. 같이 밥 먹게.” 고작 두 세 시간을 자고 아침이 넘어갈 리가 없는데도 오빠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밥을 먹어야 잠을 깊이 잘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다 나 때문이란 걸 나는 알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빠와 나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마주치기 어려웠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면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단 하루도 빈둥거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집은 늘 가난했고 엄마와 아버지는 늘 다퉜다. 뭔가가 날아가고 부서지고 깨지고 엄마의 비명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한 날들이 일상처럼 이어지던 어느 날 엄마는 집을 나갔고, 홧술을 퍼마시던 아버지는 폭행치사로 교도소에 갇혔다. 고3이던 오빠는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흐지부지 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나이트클럽 기도가 되었다. 나는 간신히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오빠는 벽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머리로 받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마치 벽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먹에서는 피가 흘렀다.

   “오빠, 왜 그래?”

   내가 달려들어 오빠 팔을 붙잡자, 오빠가 나를 돌아보았다.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오빠는 갑자기 엉엉 울었다. 울면서 한 말은 이랬다.

   “자기가 여대생이래, 여대생. 돌아버려. 그래서 뭐? 여대생이 벼슬이야? 나이트클럽 기도는 지 발싸개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거야? 인간도 아니야? 참았어, 참았다고. 사장이 하라는 대로 사과도 했어. 씨바, 그런데 그걸로는 안 된대. 무릎을 꿇고 빌래. 난 잘못한 거 없다고. 그년이 아주 나를 자기 종으로 보는 거야. 그래서 한번 쳐다본 것뿐이야. 집에 돈 좀 있다고 얼마나 싸가지 없이 굴던지, 생각 같아서는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그런데 다짜고짜 내 뺨을 때리는 거야. 그걸 가만 둬. 그런데 사장이 와서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나를 패. 주먹으로 발로. 그리고는 여대생한테 사과를 하래. 여대생이 뭐라는지 알아? 무릎 꿇고 사과를 하래. 무릎을 꿇고.”

   오빠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내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오빠는 어린아이 같았다.

 

   질색을 하는 아줌마의 눈을 피해 다미에게 꼬박꼬박 먹이를 챙겨 준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아줌마가 산처럼 쌓인 울화를 터뜨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그런 거 아닐까.

   다미도 나와 몇 번 눈이 마주치기 전에는 음습한 곳으로만 숨어 다니는 도둑고양이였다. 식당 뒷문을 열면 뒷집 담 사이에 좁은 복도 같은 공간이 있었다. 끝에는 화장실과 쓰레기통이 있고 담을 따라 소주 맥주 박스와 된장 고추장 같은 플라스틱 통들이 쌓여 있었다. 쪼그려 앉으면 등이 닿을락말락하는 그곳이 내가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화장실 냄새와 쓰레기가 부글거리며 썩어가는 냄새가 뒤섞여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지만, 그래도 하늘에는 별이 보였고 간혹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그곳이 나만 찾는 공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알바를 시작하고 보름쯤 지나서였다. 고함 소리와 담배 냄새에 찌들고 다리도 아파 뒷문을 열고 나왔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휘리릭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있었다.

   놀란 것은 저나 나나 똑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다미의 털과 날렵한 몸짓에 감탄했고, 한껏 우아하게 담장 위를 걸어가던 다미는 마치, 넌 누구니? 하듯이 돌아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미를 위해 깨끗한 그릇에 음식물을 모아서 놓아두었다. 한동안은 내가 준 먹이를 다미가 먹는지 다른 놈이 먹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미와 나는 마치 같은 전극을 가진 지남철처럼 일정 거리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었다. 팽팽하던 긴장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건 한 달쯤 지난 후였다. 내가 뒷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후다닥 담을 타던 다미.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시간이 조금씩 겹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늘어났다. 다미는 내가 밥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밥그릇을 내놓으려고 나가는데 벌써 다미가 와 있었다. 나는 멈칫거리다 조심스럽게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다미는 후다닥 등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얼른 다가오지도 않았다. 나는 뒷걸음질로 뒷문으로 돌아가 몸을 가리고 다미를 지켜봤다.

   그 숨 막히는 정적이라니. 다미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자세를 한동안 풀지 않았다. 한쪽 발은 먹이에 대한 강렬한 유혹 때문에 벌써 앞으로 나와 있었다. 생명을 받아, 먹어야 사는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이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 삶이었다. 먹어야 산다는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키느라 다른 건 생각도 못했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다는 그것이 때론 곧장 죽음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는 것,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이었다. 다미는 손톱 끝만큼도 내게 고마운 눈빛을 보낸 적이 없었다. 고마움은커녕, 경계심의 마지막 한끝은 결코 놓지 않았다.

   “참 쌀쌀맞기도 하구나. 고맙단 말 좀 해봐. 냐오옹냐옹, 이렇게.”

   고양이 소탕 이야기가 나온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마구 파헤치는 것 때문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로 배가 부른 고양이들은 힘들게 쥐를 잡지 않아 쥐는 쥐대로 끓고 다른 동네 고양이들까지 몰려들어 아수라장인데다, 악취까지 심해 장사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그런 판국에 생선 구잇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에 놀라서 엉치뼈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선 구잇집 아저씨는, 즉시 먹자골목 주인들의 연명을 받아 구청에 제출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음식물은 넘쳐났다.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은 고무통 속에서 온갖 악취를 풍기며 썩거나 쓰레기봉투에 담겼다. 그러느니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면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찢지 않을 것 아닌가. 나는 아줌마와 토론 아닌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아줌마는 일방적으로 고함을 질렀고 나는 언제든 도망갈 자세로 간신히 말을 섞어본 것뿐이었다.

   “씨알머리도 안 멕히는 소리하지 말고, 한번만 더 괭이 밥 주면 가만 안 둔다. 그리 알아라.”

   이게 결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미에게 밥 주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고집을 부려본 적이 없는 내가,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을 것인지 튀김을 먹을 것인지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양보해 버리고 마는 내가, 호랑이 같은 아줌마 눈을 피해 가며 다미를 챙겨 준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동물애호가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런 내가 나도 싫었다. 친구들 중 누구도 길고양이 따위에 신경 쓰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은 온통 최신 폰과 예쁜 옷과 신발로 가득 차 있었고, 언젠가는 그걸 가지고 입고 신었다. 가장 민감한 건 머리 색깔과 헤어스타일이었으며 물광 피부를 위해 뷰티 숍을 드나들었고 작고 빛나는 큐빅 목걸이와 귀걸이를 달고 프로방스 풍의 커피숍에서 카푸치노와 카라멜마끼아또를 마시고 남자 친구들의 이벤트를 놓고 저울질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다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내게 허락된 것이 아니란 것을, 그래서 포기한 것뿐이다. 눈앞에 아무리 기름진 음식이 있어도 선뜻 손대지 못하고, 달콤하고 화려할수록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타고난 길고양이처럼.

 

   한여름이 지나고 가로수 잎이 하나둘 물들기 시작할 무렵, 나는 식당을 그만두었다. 오빠가 일자리를 구한 것이다. 오빠는 치킨과 돈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돈이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한 봉투의 액수부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치킨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동안 힘들었지?”

   나는 치킨 다리를 물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다행히 치킨의 고소함이 그걸 눌러 주었다.

   “이젠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리고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 가야 된다. 씨바, 정 성적이 안 되면 지방에 있는 후진 데라도 꼭 가야 돼. 대학 안 나오면 좃도 아닌 게 세상이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대학 가라고 그랬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아, 씨바. 왜 꼭 그런 건 이렇게 한발 늦게 알게 될까?”

   오빠는 스스로가 대견한 듯 으쓱거리며 닭다리를 뜯었다. 나도 닭다리를 물고 히죽거렸다. 대학이라니, 진작부터 내 목표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었다. 오빠도 사회 물을 먹기 시작하더니 어른 같은 소리만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저 돈으로 밀린 관리비도 내고 쌀도 사고 달걀도 사고 김치도 사야지, 내 머릿속은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그러다가 문득 다미가 떠올랐다.

   이제 다미는 다시 쓰레기봉투를 뒤져야 할 것이다.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말했던가. 서로가 소중해지는 건 거기 바친 시간 때문이라고, 정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서로 길들어 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다미가 옳았다. 다미는 내게 고마울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겨운 식당일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게 해준 다미에게 내가 고마워해야 했다. 그것으로 셈은 끝난 것이다. 나를 길들이지 않고 내 곁을 일찍 떠나버린 엄마처럼 말이다.

   알바를 그만두고 얼마 후 아줌마에게 전화가 왔다. 일주일 치 일한 돈을 받아가란 거였다. 내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갑자기 그만둔 것이 미안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호통을 쳤다.

   “야가 이래 물러갖고 험한 세상 으째 헤쳐 나갈끄나. 지가 생떼를 써도 모자랄 판에 내가 몇 번을 전화하게 만들어? 전화비 내놔.”

   나는 아줌마에게 돈 봉투를 받고 나오다가 뒷문 쪽을 한번 쳐다봤다.

   “아줌마, 그거 했어요?”

   “뭐?”

   “고양이 소탕 작전이요.”

   “몰라. 민원 넣었으니까 했겠지. 그래 봤자 소용없어.”

   “왜요?”

   “왜긴. 그럴수록 더 극성스럽게 새끼들을 까대거든. 사는 게 힘들수록 새끼들을 까대는 거, 그게 본능이거든. 나무도 봐라.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갑자기 꽃을 확 피운단 말이다.”

   다미는 어떻게 됐을까?

   정류장에서 봉투를 열어보니 십이 만원이 들어있었다. 만 오천 원이나 더 넣은 것이다.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순간 눈앞에 꽃무늬치마가 나풀거렸다. 식당 오는 길에 보고 또 보고 몇 번이나 발길을 멈추게 하던 치마. 나는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미는 잊혀졌다.

 

   오빠는 잠이 들어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이돌 스타들의 가상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같이 먹기로 한 저녁 상은 그대로였다. 치마를 사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같이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는데, 내가 들어온 시간은 열시가 훌쩍 넘어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가려던 나는 흠칫 놀랐다. 허공에 한 발을 든 채 욕실을 살폈다. 욕실 바닥이 흥건했다. 물이었다. 물은 거의 욕실 문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오빠!”

   나도 모르게 오빠를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오빠는 기척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도 아니었다. 물은 욕실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것 같았다. 하수구를 막고 있는 정사각형의 덮개 구멍에서 조금씩 스며 올라오고 있는 듯했다. 더러운 물은 아니어서 욕실 바닥 타일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마치 조용한 실내 수영장 같았다. 그러나 수면의 경계는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가스가 퍼지듯이 조용히.

   왜 이런 일이?

   나는 맥을 놓고 조용히 물이 차오르는 욕실을 바라보았다.

   치마를 사고 나자 내 것만 산 게 민망했다. 오빠의 잠바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입고 다니던 파란색 잠바는 완전히 중년 아저씨 풍이었다. 남자 옷 가게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도로의 상가 지역이 언덕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게를 나와 다른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얼핏 내 눈길을 붙잡는 게 있었다. 언덕 위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소요. 자욱한 먼지 사이로 퍼져나가는 소리 없는 소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엉킨 사이로 뛰어다니는 파란 잠바.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가간 그곳은 철거 지역이었다. 큰길가의 상가 지역은 호수처럼 평온한데, 구름 덮인 언덕에서는 때리고 부수고 밀고 차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빠는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앞집 아줌마와 총무 아줌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훤히 열린 앞집 문으로 런닝 셔츠만 입은 아저씨가 욕실에서 세수 대야에 물을 퍼 담고 있는 게 보였다. 한눈에 상황이 이해됐다. 앞집도 하수구 물이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총무 아줌마는 세 동밖에 없는 아파트의 관리 사무소장 같은 사람이었다. 앞집 아줌마는 총무 아줌마를 불러 대책을 논의하면서 우리 집에는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교도소를 간 후 앞집 아줌마는 내가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았다.

   “다 돌아봤는데, 이 라인만 이러네. 너희 집도 하수구 물 올라오니?”

   총무 아줌마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앞집 아줌마는 볼 것도 없다는 듯 단정적으로 말했다.

   “하수구에서 솟구치는 거라니까. 막힌 거야.”

   지하실로 내려가는 아줌마들을 따라갔다. 늘 문이 굳게 닫혀있던 지하실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가자 습한 공기가 훅 끼쳤다. 어두운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쌓여있고 천장으로는 기역자, 니은자의 굵은 관이 서로 엇갈리면서 지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선박의 기관실 같았다. 5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씻고 닦고 싸고 버리는 오물들이 흘러가는 관이었다. 이 중에는 변기 레버를 눌러서 모인 것들이 흘러가는 관도 있을 것이다.

   “여기, 여기서 물이 새네.”

   후레쉬로 관을 따라가며 유심히 살피던 총무 아줌마가 말했다.

   “그렇지? 관이 막힌 거 맞다니까.”

   “지난번엔 옆 라인에서 그러더니. 그때도 머리카락이랑 세탁기에서 나오는 섬유랑 먼지 같은 것들이 잔뜩 엉켜있더라고. 아파트가 삼십 년이 다 돼 가니, 안 막히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그러니까 위층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는 거잖아.”

   “어쩔 수 없지, 뭐. 그래서 1층이 싸잖아.”

   “지금 설비회사에서 올 수 있나?”

   “전화해 봤는데, 지금은 못 오고 내일 아침에 오겠대.”

   “그러다 밤중에 넘치면 어쩌라고?”

   “내일 아침까지 물을 쓰지 말라고 해야지.”

   “다 돌아다니면서?”

   “어쩌겠어?”

   두 아줌마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5층부터 시작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한밤중, 아파트의 철문은 완강했다. 선뜻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욕실 하수구에서 소리 없이 차오르던 물을 떠올리며 간신히 철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대학생인 것 같았다. 오빠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대학생으로 보아 줄까? 나는 물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502호에서는 눈썹문신이 짙은 아줌마가 나왔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아줌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3층 배불뚝이 아저씨는 굉장히 신경질적이었다. “그럼 씻지도 말라고? 출근하면서 세수도 하지 말라는 거야?”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수는 하셔야지요.” “그럼 화장실은? 화장실은 어쩌라고?” 배불뚝이 아저씨는 자기만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다는 듯 따지고 들었다. 너무나 당당한 태도 앞에서 나는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졌다. 순순히 대답을 한 사람들은 단지 귀찮아서 고개를 끄덕였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고 나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평소 하던 대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다가 그제야 아참, 하겠지만 곧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뭐, 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관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는 집도 세 집이나 되었다. 빈집인지 귀찮아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를 안은 여자아이가 나온 집은 2층이었다. 그 아이의 방은 내 방 바로 위일 것이다. 여자아이는 내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는 마치 처음 들어 보는 말인 것처럼 엄마하고 웅얼거렸다.

 

 

 

 

 

작가소개

이성아(소설가)

  소설가 삼각형 모양의 먹이사슬에 대해 처음 배운 것이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저 아프리카의 사바나 밀림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밀림처럼 되어버렸는지, 어디를 봐도 삼각형 모양의 먹이사슬처럼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메어와 내 눈마저 삼각형이 되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자꾸만 노파심만 깊어간다. 작가가 노파심만 깊어 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자꾸만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소설집으로는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절정』이 있으며 청소년 단편 「막다른 골목에서」(계간 쌍띠르) 「엄마는 괜찮을까요」( 『그 순간 너는』(공저))와 평전 『최후의 아파치 추장, 제로니모』와 장편 동화 『누가 뭐래도 우리 언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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