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편 [세계명장 가상 인터뷰_03]

 

[세계명장 가상 인터뷰_03]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편

 

 

 

 

이름은 들어 알지만 읽어 보지는 않는다는 세계 명작 소설. 그 명작 소설의 등장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명작의 숨은 뜻을 되돌아보는 기획시리즈입니다.

초록 등대라는 이름은 문학의 바다에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가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초록불 : 안녕하세요? 그동안 벌레나 유령과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은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도 이상한 인터뷰를 하게 되면 이놈의 자리를 때려치울 생각…….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인터뷰 상대인……금요일 씨를 만나보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금요일 씨가 맞아? 아니라고? 인터뷰 날짜가 금요일이었나?

 

프라이데이 : 흠흠, 제 이름이 프라이데이입니다.

 

초록불 : 아, 이런 죄송합니다. 아프리카 출신이신가요? 좀 검은 피부를 지니셨는데?

 

프라이데이 : 카리브해 출신입니다. 제 피부는 검은 게 아니라 짙은 갈색이지요. 이건 마스터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초록불 : 죄송합니다. 카리브해 출신이시군요. 그러니까 인도양에 있는 건가요?

 

프라이데이 : 허 참, 인터뷰어를 하는 데는 무식해도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군요. 〈캐러비안의 해적〉도 보지 않았나요? 카리브해는 북미와 남미 사이의 바다를 가리킵니다.

 

초록불 : 아, 그렇군요. (헛기침을 한 뒤) 이름이 프라이데이라니 무척 특이하군요. 성은 뭔가요? 설마 마치(3월)라거나 에이프릴(4월)인 건 아니겠지요?

 

프라이데이 : (미간을 찌푸리며) 제 이름에는 성이 없습니다. 사실 이건 내 이름도 아니지요.

 

초록불 :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니, 무슨 말씀인가요?

 

프라이데이 : 이건 마스터가 나를 부르기 위해서 붙여놓은 호칭입니다. 이름과는 다른 거지요.

 

초록불 : 아, 그럼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요?

 

프라이데이 : @#$%&*!~(+#$

 

초록불 : 네?

 

프라이데이 : @#$%&*!~(+#$

 

초록불 : 음……. 잘 알겠습니다. 저도 그냥 프라이데이 씨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프라이데이 : 뭐,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마스터도 내 이름을 부르는 걸 쉽게 포기하더군요.

 

초록불 : 아까부터 ‘마스터라는 말을 하는데, 마스터란 누구지요?

 

프라이데이 :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마스터를 처음 만난 날 이야기를 하지요. 그 날 나는 다른 부족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잡히면 그놈들의 밥통에 들어갈 운명이었지요. 그때 마스터가 나타나서 어떤 마법을 부려서 놈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초록불 : 마법이요?

 

프라이데이 : (웃으며) 그때는 ‘총’이란 걸 몰라서 마스터가 마법을 부리는 줄 알았지요. 검고 긴 철통에서 굉음과 불꽃이 번쩍이더니 그 철통이 가리킨 쪽의 사람이 피를 뿜고 죽어나자빠졌습니다. 이걸 마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마스터는 작은 섬에서 혼자 28년을 살았어요. 혼자 그렇게 살았으니 당연히 대마법사가 되지 않겠어요?

 

초록불 : 네? 대마법사요? (어리둥절하다가) 에, 그러니까 마스터란 결국 ‘주인님’이라는 뜻이군요.

 

프라이데이 : (고개를 흔들며) 그건 마스터의 생각이었지요. 나는 그게 마스터의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초록불 : 마스터가 이름인 줄 알았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프라이데이 : 만일 내가 나를 가리키며 ‘얼라알라올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게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초록불 : 당신의 이름인가 보다 하겠지요.

 

프라이데이 : 마스터는 나를 가리키며 자꾸 ‘프라이데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그게 백인들이 우리를 가리켜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뒤에 자신을 가리키며 마스터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는 뜻이었지요.

 

초록불 : 그렇군요. 그러니까 당신은 ‘마스터’가 주인님이라는 뜻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군요.

 

프라이데이 : 그렇습니다. 나 역시 내 이름을 가르쳐 주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만, 전혀 배우려는 의지가 없더군요.

 

초록불 : (서류를 뒤적이며) 좋습니다. 그런데 그 마스터의 진짜 이름은 알고 계신 건가요?

 

프라이데이 : 당연하죠. 마스터의 이름은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다른 사람이 생기자 바로 계급을 정한 위인이죠. 자기가 주인이고 상대는 노예고.

 

초록불 : 그 점에 대해서는 로빈슨 크루소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당신이 자신의 발을 잡아서 머리 위에 얹었는데 이것은 영원한 노예가 되겠다는 맹세의 표시처럼 보였다고요.

 

프라이데이 : 목숨을 구해준 데 대해서 충분한 감사의 표시를 올린 거지, 누가 자진해서 자유의 몸을 포기하고자 하겠습니까? 나도 내 섬으로 돌아가면 가족이 있는 몸입니다. 더구나 아직 장가도 못 간 처지였는데,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노예가 되겠다고 하겠습니까? 당신이라면 그러겠어요?

 

초록불 : 그, 그렇죠. 저도 자진해서 노예가 되려고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심정이 어땠는지요?

 

프라이데이 : 물론 그 당시에 나는 암담한 처지였어요. 전쟁에 져서 포로로 잡혀왔는데, 그놈들이 좀 심하게 다뤄서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내 육질이 떨어질까 봐 좀 걱정이 되긴 했지요.

 

초록불 : 네? 자기 고기 맛을 걱정했다고요?

 

프라이데이 : 기왕 먹힐 거면 맛있는 게 좋잖아요?

 

초록불 : 가, 가만……. 이건 어쩐지 프랑스 대표 만화 〈아스테릭스,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다〉에 나오는 우스갯소리 같은데요?

 

프라이데이 : (작은 소리로) 쳇, 들켰나…….

 

초록불 : 흠흠, 이건 넘어가도록 하죠. 성실하게 인터뷰에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라이데이 : 나는 마스터의 총에 맞은 녀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마스터에게 칼을 빌려서 바로 놈의 목을 쳐버렸지요. 마스터는 깜짝 놀란 듯이 바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참 한심한 노릇이었지요. 뒤에 추격자들이 올 게 빤한데 시체를 그냥 놓고 가겠다니. 어쩔 수 없이 손짓발짓해서 시체를 모래밭에 파묻었습니다. 도구도 하나 없어서 맨손으로 파야 했지요.

 

초록불 : 로빈슨 씨도 좀 도와주었나요?

 

프라이데이 :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던데요. 시체 두 구를 묻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놀라더군요.

 

초록불 : 그래도 데려간 뒤에 먹을 걸 주었지요?

 

프라이데이 : 그건 사람이 응당 해야 할 일 아니겠어요? 전쟁, 포로, 탈주, 시체 매장까지 하고 나니 죽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스터가 무서웠지요. 그때까지는 마법사로 보였으니까요. 마스터는 사람고기도 먹지 못하게 했고, 옷이라는 것도 강제로 입게 했지요.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좋은 척하지 않으면 단박에 죽음을 당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초록불 : 잠깐! 사람고기를 먹지 못하게 한 것도 불만인가요?

 

프라이데이 : 당신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하던데, 어차피 영혼이 빠져나간 것은 그냥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지 않나요? 왜 먹으면 안 되지요? 한국 사람들은 개를 잡아먹는다고 서양인들에게 비난을 받던데, 이런 비난은 타당한가요?

 

초록불 : 하지만 사람을 먹는 건 개를 먹는 것에 비교할 수 없지요. 인간에 대한 존엄성 문제니까요.

 

프라이데이 : 뭐, 그렇다고 하지요. 아무튼 지금은 사람을 먹지 않습니다. 돼지나 소가 더 맛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떨지 마세요.

 

초록불 : (떨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프라이데이 씨도 종교를 가지고 있나요?

 

프라이데이 : 우리 부족은 본래 베나막키라는 조물주를 섬겼습니다. 마스터는 베나막키가 악마라고 이야기했지요. 나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왜 악마를 그냥 내버려두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스터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요.

 

초록불 : 로빈슨 씨는 뭐라고 해명을 했나요?

 

프라이데이 :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고 이야기했지요. 난 이해한 척했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영원히 악을 행해도 기다리기만 한다면 대체 하느님은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나를 노예에서 풀어줄 때까지 내가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초록불 : (서류를 뒤적이며) 그런데 로빈슨 씨는 섬을 떠나면서 프라이데이 씨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자진해서 따라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프라이데이 : 나는 지식을 배워서 우리 부족을 위해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 부족은 약해서 아버지도 잡혀왔을 지경이었지요. 다행히 마스터와 내가 구해냈습니다만. 마스터는 아버지를 다시 섬으로 보내고 돌아오기도 전에 섬을 떠났지요.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나서야 다시 섬을 방문했어요.

 

초록불 : 그럼 그때 아버지를 다시 만났나요?

 

프라이데이 : 아니오. 마스터는 섬에 있던 백인들에 대한 일만 처리했어요. 아버지를 찾으러 갈 시간도 안 주더라고요. 섬으로 떠나면 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나 봐요. 마스터는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평생 내가 보살펴 줘야 할 것 같아요. (밖에서 프라이데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세요. 그 새를 못 참고 절 부르고 있네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늦으면 성질부리거든요.

 

초록불 : 부디 아버지 살아생전에 고향에 돌아가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화의 상대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에 대하여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굉장히 옛날에 쓰인 소설이지요. 이렇게 오래된 소설이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이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보편적 감성과 주제를 가지지 못한다면 시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고전’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아무도 보지 않은 책이라고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는 오늘날에도 어린이용 책으로부터 완역본에 이르기까지 계속 읽히고 있는 책입니다. 이 소설이 아직도 생명을 가진 것은 절해고도에서 인간이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가, 라는 도전 의식이 세대를 넘어서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지은이 다니엘 디포는 영국의 민주정이 확립되는 시기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명예혁명이 일어났지요. 이후 영국은 점차 세계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로 발전해 갔습니다. 디포는 특히 영국의 중산계급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로빈슨 크루소〉도 평민들이 쓰는 말로 썼습니다. 이런 부분도 이 책이 명작으로 살아남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는 시대의 한계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백인 위주의 세계관이 토인 프라이데이를 만나면서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로빈슨 크루소는 인도주의자였지만, 착한 식민지배자에 불과했다는 것 역시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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