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이야기-첫번째

 

 

<연재에 들어가면서>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꿈꿉니다. 행복한 사랑, 즐거운 사랑, 기쁜 사랑, 가슴 시린 사랑, 슬픈 사랑, 눈물 나는 사랑.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을 우리가 경험하기는 힘듭니다. 대신 우리는 로맨스 소설을 읽습니다. 보다 즐겁고 행복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로맨스 소설을 창작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하나는 이겁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마음.”

 

우리는 흔히 로맨스란 말을 곧잘 씁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을 보았을 때 쉽게 이야기합니다. 이거 로맨스라고.

그런데 정말 로맨스란 무엇일까요? 사랑 이야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알콩달콩한 연애담? 궁상맞은 아가씨가 왕자님을 만나 한방에 팔자 펴는 신데렐라 스토리?

다 맞는 말이고 또 어쩌면 다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로맨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장르로서 로맨스 소설이 어떤 내용을 담은 이야기를 뜻하는 것인지, 또 장르로서 로맨스 소설과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맨스 소설은 어떻게 다른지.

 

<아이반호> (사진 왼쪽) 라는 영국 소설이 있습니다. 1819년에 월터 스콧이 쓴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반호> 첫 장을 펴면 이런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로맨스 [romance].

다른 <아이반호>가 있냐고요? 아니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아이반호>가 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터 스콧은, 그리고 이 책을 낸 출판사는 <아이반호>를 로맨스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로맨스란 단어가 처음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로맨스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로맨스’라는 단어를 치면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로맨스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로맨스 [romance]

 

중세 유럽의 공용어(公用語)인 라틴어가 아니고 로망스어(속 라틴어)로 쓰인 사랑과 무용(武勇)을 다룬 기사(騎士) 이야기.

프랑스어인 로망(roman)과 어원을 같이 하지만 그 의미에는 변천이 있었다. 로맨스는 11세기경 에스파냐에서 프랑스를 거쳐 유럽에 퍼졌던 것으로, 처음에는 서정성이 강한 서사시를 가리켰으나 그 후 공상적이며 서정미가 넘치는 사랑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로 변하였고, 다시 변하여 몽상적(夢想的) 내용을 담은 소설을 가리키게 되었다. 노블(novel)과 같이 한국에서는 소설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공상적인 점으로 보아 일종의 전기소설(傳奇小說)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의 설명대로라면 <아이반호>는 훌륭한 로맨스 소설입니다. 용맹한 기사가 나오고 로위너 공주와 아이반호의 사랑이 나오고 로빈후드의 멋진 활극이 나오니까요. 하지만 지금 로맨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아무도 <아이반호>를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홍길동전>이나 <박씨전>을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로맨스를 읽는, 그리고 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라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로맨스란 이러이러한 것이란 막연한 추측과 정의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막연한 추측과 정의를 사람들 머릿속에 심어준 로맨스는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맨스 소설은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 <국화꽃 향기> 같은 감성 소설들, 귀여니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들.

그게 로맨스가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로맨스로 소비하고 로맨스로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하게 따진다면 시드니 셀던의 소설이나 <국화꽃 향기> 같은 소설은 장르로서 로맨스가 아닙니다. 장르로서 로맨스를 차용하고 있긴 하지만 장르 로맨스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과사전의 내용을 따르지도 않고 대다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로맨스와도 다른 장르로서의 로맨스 소설은 무엇일까요? 장르로서 소비되고 창작되는 로맨스 소설은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할까요?

장르 로맨스의 종주국이자 국내 장르 로맨스의 토양이 됐던 미국 장르 로맨스 작가들은 로맨스 소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RWA, 즉 전미로맨스소설작가협회가 공지하는 로맨스 소설의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Two basic elements comprise every romance novel: a central love story and an emotionally satisfying and optimistic ending.

 

=모든 로맨스 소설에는 두 가지 기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또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

 

A Central Love Story — In a romance, the main plot concerns two people falling in love and struggling to make the relationship work. The conflict in the book centers on the love story. The climax in the book resolves the love story. A writer is welcome to as many subplots as she likes as long as the relationship conflict is the main story.

 

=1.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 로맨스에서 주된 플롯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고뇌하며 '관계'를 완성시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소설의 갈등은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의 클라이스 역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이루어진다. 남녀의 갈등이 주된 스토리를 이루는 한, 작가는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서브플롯을 차용할 수 있다.

 

An Emotionally Satisfying and Optimistic Ending — Romance novels end in a way that makes the reader feel good. Romance novels are based on the idea of an innate emotional justice — the notion that good people in the world are rewarded and evil people are punished. In a romance, the lovers who risk and struggle for each other and their relationship are rewarded with emotional justice and unconditional love.

 

=2.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 – 로맨스 소설은 독자가 '좋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끝이 난다. 로맨스 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권선징악 (선한 사람들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벌을 받는다는 의식)'적 의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맨스에서 연인들은 위기를 겪고 서로 갈등에 빠지지만, 그들의 관계는 권선징악과 절대적인 사랑으로 보상 받는다.

 

Once the central love story and optimistic-ending criteria are met, a romance novel can be set anywhere and involve any number of plot elements.

 

=일단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와 긍정적인 엔딩'이라는 기준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로맨스 소설은 어떤 배경에 어떤 수많은 플롯을 포함하든 상관없다.

 

 

우선 장르 로맨스 소설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가지입니다.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

<국화꽃 향기>류의 감성 소설과 귀여니의 이야기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미묘하게 다릅니다. 장르 로맨스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 이야기에 갈등의 초점이 맞춰지고 사랑 이야기에 결론을 지어야 합니다. 그럼 이 두 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장르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무협에서 중국 무협이 국내에 들어와 한국적 무협으로 변화했듯이 로맨스 역시 한국적 장르 로맨스는 약간의 변형을 거칩니다.

이 두 가지 특성에 또 다른 내용이 들어가야만 비로소 한국 장르 로맨스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로맨스 초창기 명작인 <공녀> (사진 오른쪽) 를 쓴 김지혜 작가는 지난 2003년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 협회 세미나에서 장르로서 소비되는 국내 로맨스 소설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 바 있습니다.

 

로맨스 작가라는 영지성씨의 작품이나, 얼마 전 서점가를 강타한 <천년후에>와 같은 소설들을 사람들은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한다. 또는 시드니 셸던류의 소설을 로맨스라고 생각하가, 양귀자 식의 연애소설을 로맨스 소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위 작품들이 우리가 부르는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이것들은 사랑을 다루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설들이지만, 로맨스 소설 독자인 우리에게 이 소설들은 분명히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다.

첫째, 어떤 배경으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쓰였든, 소설의 주된 초점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으며, 소설의 모든 요소는 사랑의 완성을 향해 치달린다.

둘째, 독자로 여성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쓴 소설로, 여성 독자가 감정이입하기 용이하다. 그러므로 남성 작가들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째, 어떤 구성에 어떤 결말로 가든, 독자는 소설을 통해 감정적 성취감을 느낀다. 단, 소설 안에서의 성취는 매우 현실적인 가치(결혼, 가정)에 기반을 둔다.

 

 

이제야 국내 장르 로맨스란 어떤 이야기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미로맨스소설작가협회(RWA)가 공지하는 로맨스 소설의 특성 두 가지, 즉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에 한국적으로 변형된 두 가지 특성, 즉 독자로 여성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쓴 소설로, 여성 독자가 감정 이입하기 용이하다. 소설 안에서의 성취는 매우 현실적인 가치(결혼, 가정)에 기반을 둔다. 이와 같은 네 가지 특성이 들어가야만 비로소 그 소설은 장르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장르 로맨스의 정의 역시도 <아이반호>가 한때 로맨스로 불렸듯,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고 그리고 독자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08년 대한민국에서 장르 로맨스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다면 이 네 가지 특성을 마음 한구석에 깊게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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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박대일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영언문화사 편집장을 거쳐 2004년 로맨스소설 출판사 파란미디어를 설립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200종 이상의 로맨스 소설을 기획, 편집했으며 새초롬한 박언니라고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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