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라, 지금 이순간 황홀한 그녀!…그렇지 않다면?

 

 

"경계하라! 지금  황홀한 그녀!,그렇지 않다면?…"

그 녀 에  대 하 여-

 

 

"내 마음이 피아노 건반이라면 피아노가 낼 수 있는 모든 화음, 가장 깊은 슬픔에서부터 최고조의 희열까지 자유자재로, 그러니까 어쩌면 그 피아노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그녀인… …" 

 


<전략>

 

 나는 또 부흥강도 잊지 못한다.

 

부흥강의 황혼

 

 얼마나 아름다운 부흥강이던가,얼마나 아름다운 황혼이던가!

부흥강은 물론 절대로 황혼에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침, 저녁, 오전, 한낮, 오후, 날마다 매 시각마다 언제나 아름답다.

날마다 시간마다 진지하고 유쾌하다.

<중략>

하지만 내가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황혼, 부흥강의 황혼이다.

 

황혼에 너의 말은 아름다워서 노래가 된다.

 

나이가 나보다 조금 많고 눈도 작고 코도 작고 입도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황혼에는 언제나 이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온 몸의 땀을 씻자마자, 여름날의 극심한 열기가 사라지자마자,

고운 저녁 안개가 일어나자마자, 먼 산 쪽에서 나뭇잎 향기를 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마자, 그녀와 부흥강의 작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듣고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부르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는 꿈같은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 노래는 7, 80년 전을 노래한 것인데 마치 어제 일처럼 여겨졌다.

지금까지 그때 그녀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정말 즐거웠고 서로 아무 목적도 없고 요구도 없었던 것만은 안다.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때로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마음속으로 즐거워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후략>

– 1985년 5월 4일 타이뻬이시 삼군총의원(三軍總醫院) 716호 병실에서-

 

 

 이것은 술을 사랑한 대만의 소설가 고룡이 알코올 중독으로 49년의 생을 마치기 두어 달 전, 입원한 병실에서 지나온 생을 회고하며 적어 내려간 이별기의 한 대목이다.

 

 

1985년, 내 나이 20살, 그 시절.

 나는 낙동강 강변에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낙동강이던가, 얼마나 아름다운 황혼이던가! 낙동강은 물론 절대로 황혼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낙동강은 그녀가 있어서, 그녀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비로소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녀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많고, 코는 작고 입도 작고 눈은 조금 큰 여자였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강바람에 나부끼자마자, 그녀의 향기가 그 바람에 실려 강둑으로 퍼지자마자, 그녀의 발걸음이 강둑을 따라 난 언덕길로 향하자마자, 그녀의 미소가 입 가장자리에 머금어지자마자, 낙동강의 황혼은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유일한 황홀의 아름다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대만의 술을 사랑하는 낭만 있는 그 소설가는 아닌 관계로 낙동강변의 그때, 내가 어떠한 감정이었는지 잘 알았고 아무 목적이 없을 수 없었고 어떤 요구도 없을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아무 짓도 안 할 수가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괴로워했다. 낙동강변 풀밭의 상처는 그녀의 분홍빛 체크무늬 남방의 얼룩이 되어 그녀와 함께 떠났다. 낙동강의 황혼은 그냥 황혼이 되어서 나를 어두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현대의 역사가 한 사람은 그리스 철학이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탈레스가 예언했던 일식이 일어난 날짜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일화로 추측하건대 탈레스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결혼을 독촉하자 그는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자 어머니는 더욱더 결혼을 재촉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젠 결혼할 때가 지났다.”라고.

 

-<철학의 에스프레소> 중에서-

 

 그리스 철학이 2천 5백여 년 전 어느 날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스 철학자 중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가 악처였다는 소문과 그로 인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심오해졌다는 소문은 술안주삼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내 삶의 처절하고 심오한 투쟁이 시작된 날은 정확히 1987년 11월 24일이다.

 내가 만약 소크라테스라면 그녀는 틀림없이, 결단코, 크산티페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현명한 소크라테스도 크산티페와 결혼할 당시는 탈레스처럼 지혜롭지 못했다.

22살, 나 또한 탈레스처럼 지혜롭지 못했다.

낙동강 황혼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떠났던 그녀가 2년여 만에 돌아와 한강의 야경이 낙동강의 황혼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때, 나는 스스로 탈레스의 어머니가 되어 나를 독촉했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 지금은 결혼 할 때야.”라고.

그녀, 황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황홀은 심오한 것을 알게 해주는 신의 선물이라고 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황홀을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 하여 미(微)라 한다.

 이 셋은 말로 물어서 다다를 수 없으며 섞여 하나를 이룬다.

그 위는 밝지 아니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아니하니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이름하여 부를 수 없는 무물(無物)로 돌아간다.

 이것은 모습이 없는 모습이며 무물의 상(象)이다.

이것을 일컬어 ‘홀황(惚恍)’이라 한다.

맞이하여도 그 머리를 보지 못하고

따라가도 그 꼬리를 보지 못한다.

 

 

홀황, 황홀.

내가 22살에 그녀를 통해 본 것이 노자가 말하는 근원적 세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어쩌면 내 마음의 상태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당시 그녀가 보여준 그 무엇을, 황홀 이외의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어째든.

19살에 집을 나가 이런 저런 잡다한 사고로 애를 태우던 자식이, 3년간 아무런 연락도 없던 자식이, 22살의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여자와 살림을 차려야겠으니 돈을 좀 마련해 달라는 연락을 집으로 했고, 그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먼 시골에서 어찌어찌 돈을 마련하여 형님이 서울에 도착한 것은 내가 전화를 건 바로 다음날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어느 명절날 시골집에 형제들이 모여 그날을 돌이켜 생각하며 형님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형님의 말을 따르면 이렇다.

형제 많은 집안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유독 한 놈이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켜 온 집안이 골머리를 앓던 중, 3년간 아무 연락이 없어 그나마 집안이 평온했었다. 그 골칫덩이가 집으로 전화를 했으니, 온 집안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심정이었다.

어머니는 전화 받으시는 아버지 뒤로 푹신한 솜이불을 깔아주셨다.

헌데 전화 내용은 의외로 희소식이었다.

잘하면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어쩌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그 골칫거리를 영원히 집안에서 내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느닷없는 아버지의 기절을 염려하여 어머니가 깔아놓은 솜이불을 무용하게 만드는 그런 희소식이었다.

소는 백정이 잡고, 못된 놈은 여자가 사람 만든다는 불충분한 근거에 바탕을 둔 생각이 진리이길 바라며 형님은 다음날 새벽같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는 것이다.

 

부부가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2세를 낳는 장면을 자주 TV에서 보았다.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보았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고 아들은 그녀를 어머니로 낳았다.

나는 24세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늘의 무지개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어릴 때도 그러했었고

지금 어른이 돼서도 그러하나니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살아가는 나날이

자연에 대한 경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무지개>, 워즈워스의 시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신의 손을 거쳐 인간이 되었듯이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다는 말일까?

어른으로 나를 낳은 내 어린 시절, 태양의 빛남과 달빛의 포근함과 무지개의 두근거림과 단순한 놀이에서도 재미를, 작은 것에도 놀라움을 발견하던 그 어린 시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워즈워스가 어른의 워즈워스를 낳았다면 어린 내 아들은 24살의 나를 아버지로 낳았다.

TV에서 보던 감동도, 아버지가 된다는 설렘도, 생명 탄생의 신비도 없었다.

한낱 무지개에서조차 경탄하던 워즈워스의 감성이 나에겐 없었다.

나는 그냥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 이름은 ‘예안’이라 지었다.

 

예안은 안동군(郡)에 딸린 면 단위 행정구역의 하나다.

도산서원이 유명하며 퇴계 이황 선생의 고향이다.

아들 이름을 예안으로 지은 것은 퇴계 이황 선생과는 무관하다.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강을 건너고 산줄기를 하나 넘으면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내가 태어난 마을에서 30여 리쯤 떨어진 마을에 그녀가 살았었다.

그리고 나의 고향과 그녀의 고향이 모두 예안면 소재지의 각 마을이었다.

 바로 이 이유로 아들은 예안이 되었다.

 

물론 만화를 배운다고 들어간 대학에서 만화는 안 배우고 놀기와 술 마시기를 배우는 중인 아들이 이 글을 본다면, 꿈속에서 구름이 자욱한 가운데 하계인지 선계인지 모를 어느 산자락에서 선풍도골의 노인과 바둑을 두어 이긴 결과로 예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과 그 노인은 옥황상제가 직접 작명하여 하사한 이름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달하러 가는 도중이었으며 나를 만나 몇 판의 바둑을 지자 무심결에 옥황상제가 직접 작명한 그 이름을 내기 바둑에 걸었고 그 바둑 또한 내가 이겼다는 거짓말이 탄로난다.

 하지만 아들도 이젠 거짓이 진실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 때도 되었지 않은가!

 

하지만 아들아, 서울의 어느 거리는 세종로고, 또 어느 거리는 충무로이며 또 한 거리는 퇴계로다. 모두 위대한 분들의 칭호이지 않은가!

그런데 안동의 어느 거리 표지판에서는 너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단다.

 

아들은 어쩌면 내가 아들을 사랑할 줄 몰랐음을 감사해야 한다.

탈레스에게 지인들이 물었다.

 “왜 결혼해서 자식을 두려 하지 않는가?”라고.

 탈레스가 대답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네.”라고.

내가 탈레스의 대답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무릎을 친 것이 빨랐더라면, 아이를 사랑하며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만큼 현명했더라면,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자식을 더욱 사랑하는 일인 것을 그 당시 알았더라면, 대학생인 아들과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그 여자 친구는 다른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야 했을 것이다.

 

 

아들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은 태어나서부터 7년이 지난 후였다.

(아들이 내게 준 감동의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 사이 그녀는 아들과 3년 터울로 딸을 하나 더 낳았다.

 

그때 내 나이 31살, 그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중학시절 1학년 같은 반이었을 땐, 내 이름인 ‘권기만’이나 별명인 ‘똥기만’을 불렀고, 연인이 되고도 그렇게 부르던 것이, 명절 때 시댁 어른들 앞에서는 ‘저기’, 시간이 지나자 ‘자기’가 되더니 돈을 좀 벌어주자 ‘여보’가 되었다.

                *사진 위는 권가야 작가의 작품 <남한산성> 중 일부*
그러던 것이 드디어 31살, 10여 년을 다른 만화가의 데생을 도와주던 일을 그만두고 내 이름으로 자작을 준비하느라 1년간 수입이 끊겼다.

아들은 턱없는 욕심에 사립초등학교를 보냈다. 당연히 생활이 쪼들렸다.

화실이 따로 없었던 터라, 나는 스토리 구상을 핑계로 소파에 누워 뒹굴대며 잠이 오면 소파에서 자고 깨면 천장을 보며 멀뚱하게 지냈다.

다시 잠이 들려는 찰라, 그녀가 플라스틱 바가지에 한 가득 물을 받아선 1년간의 불만과 함께 소파에 누운 내 낯짝에 옴팡지게 끼얹고 소리를 지른다.

 

야! 이 권가야!

 

 나는 생각했다.

아!…..소크라…테스.

생활의 쪼들림으로 인해 교육으로부터 권위로부터 억압당해 내재되었던 폭력성이 해방을 맞이한 크산티페를 본 적이 있는가?

 

중학시절. 1학년. 2반. 나는 가장 아름다운 두 여학생과 같은 반이었다.

두 여학생은 앞줄에서 3번째 나란히 앉아 함께 책상을 썼다.

어떤 이유로 어느 날 아름다운 두 여학생이 싸웠다.

조금 작은 키의 아름다운 여학생이 거침없는 욕설과 함께 의자를 집어던지자 조금 큰 키의 아름다운 여학생은 기가 죽어 아무소리 못 하고 눈물을 흘렸다.

싸움은 조금 작은 아름다운 여학생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왜 조금 작은, 아름답지만 거침없는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여학생에게 반하고 말았던 것일까?

어째서 조금 작은 아름다운 여학생을 통해 낙동강의 황혼의 아름다움과 한강의 야경의 황홀함을 보았던 것일까?

 

그래, 물을 끼얹은 것이 어디야. 의자가 아니었던 것만도 다행이지.

그때의 심정을 정호승의 시를 통해 살펴보고 넘어가자.

 

사랑한다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먹고사느라 살아가는 길, 그 길에서 얻은 갈증, 강은 목마른 자의 사랑의 대상이고 동경이고 어쩌면 이상이다. 사랑이 목말라 사랑하자마자 그 사랑은, 그 강은 황톳물의 시련이 되었다.

제비꽃은 식물이고 식물은 붙박이다. 

그나마 밥그릇이라도 들고 길을 걸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이제 폭풍우가 가라앉고 시련을 이겨낸 제비꽃에 투영된 나는 흐르는 세월에 박혀 옛 기억이 된 사랑과 젊은 나의 죽음을 목격한다.

내가 민주화의 이상을 쫒던 자가 아니어서인지, 나는 이 시에서 한강의 야경 위에 썼던 황홀이라는 글자 위로 물바가지 세례에 죽어 버린 사랑과 나의 젊은 송장을 걸쳐 보았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권가야’는 그녀의 나에 대한 호칭이 되었다.

그녀가 나를 그 호칭으로 부를 때마다 호칭 속에 함께 실어 보내는 약간의 애정, 약간의 멸시, 약간의 애잔함, 약간의 염려, 약간의 핀잔, 을 나는 보았다.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그녀의 나에 대한 규정을 나는 긍정하였고, 곧 그녀만의 특수적 호칭을 만화 저작명으로 사용하여 일반적 호칭으로 확대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내 나이는 44살, 그녀와 함께 산 지 어느덧 22년,

지금 그녀는 또 다른 그녀만의 특수적 호칭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나 또한 그 호칭이 적절하게 지금의 나를 규정해준다는 것을 알지만, 저작명을 통해 일반화시키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여기서 밝히기도 적당치 못하다.

그 호칭이 방송 중에 사용되는 사례가 가끔 있지만 시청자의 귀에는 삐-소리로 잘못 번역되어 들리기 일쑤고, 영화에서 사용될 경우 19금 딱지가 붙는다. 이상을 가지고 유추를 통해 짐작해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에 대한 적절한 규정의 그녀만의 특수적 호칭을 밝힐 수 없음이 자못 안타깝다.

 

나는 거의 매일 그녀와 싸우고 있다.

이제는 그만 싸우고 져주라는 주위의 권고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것은 평온을 가장한 가증스런 상대방에 대한 무시이다.

마음 한 구석에 승리감을 감추고 우월감을 나타내는 비열한 짓이다.

해서 나는 적극적으로 그녀와 싸우고, 그녀를 그녀로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 또한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보낸다.

내 마음이 피아노 건반이라면 피아노가 낼 수 있는 모든 화음, 가장 깊은 슬픔에서부터 최고조의 희열까지 자유자재로, 그러니까 어쩌면 그 피아노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그녀인 것이다.

 

 남녀의 싸움은 진화론적 관점의 본질적 차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아득한 옛날 어느 시기에 생명은 번식의 한 방법으로 성을 진화시켰다.

인류가 진화되어온 과정은 일반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에렉투스-호모사피엔스-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순으로 보고 있다. 그들도 성을 통해 번식했다. 암컷과 수컷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과 여성으로, 인간의 육아기가 다른 동물에 비해 특히 길어지면서 여성은 육아와 가사노동을, 남성은 사냥과 채집노동을 분담하기에 이른다.

서로 다른 노동은 남녀의 체형과 근육의 변화만을 가져온 것이 아닌 듯하다.

사냥은 집중적 사고를, 육아와 가사노동은 분산적 사고를 요한다.

남성의 사냥의 실패, 즉 집중적 사고의 실패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또한 여성의 분산적 사고, 즉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일처리 실패는 2세의 생존과 관련이 깊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이가 얼마나 집중을 방해하는지 잘 알 것이다.

자연 선택은 남성과 여성의 두뇌 사용의 차이를 가져왔다.

그 결과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집중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 즉 유명한 발명가, 유명한 사상가 ,물리학자, 수학자, 철학자, 종교관련 성인 등에서 여성의 이름을 찾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칸트 선생도 여성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자연 선택에 의한 두뇌 사용의 차이를 농담삼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여성비하로 인식되지 않길 간곡히 바란다. 어째든 남녀의 오해와 갈등의 대부분의 원인은 여기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녀는 기분이 중요하고, 나는 문제 자체가 중요하다. 그녀는 기분이 좋으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고, 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분이 좋아진다.

 

딸이 어느덧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딸과도 자연 선택의 결과의 차이로 인해 다투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남녀를 본질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진화론을 유전자적 관점에서 쉽고 재미있게 쓴 책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을 추천해본다.)

 

그 싸움이 있은 후, 나는 딸에게 내가 아버지로서 잘한 점 10가지와 잘못한 점 10가지를 적어보기를 청했다.

그 결과 잘한 점은 5가지만 적은 반면 잘못한 점은 무려 68가지를 적어 보여 주었다.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잘못한 점을 열거하긴 어렵고 잘한 점 5가지는 아래와 같다.

 

아빠가 잘한 일

1) 낳아준 것.

2) 먹여준 것.

3  길러준 것.

4) 재워준 것.

5) 친구들에게 불쌍하게 보이도록 해서 동정표 얻게 해준 것.

 

5번만 제외하면 나는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 아빠인가.

그런 기본기가 충실한 나를 그녀는 이젠 딸과 결탁하여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 나는 이제 2대 1의 싸움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결코 그녀를 소홀히 대하고 있진 않다.

 

 

한 남자가 무덤 앞에서 너무나 슬프게 울고 있다.

지나가던 이가 물었다.

‘누구의 무덤이기에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소? 그대 부모님 중 한 분의 무덤이오?’ 남자가 오열하며 대답했다.

‘아니오.’

 지나가던 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린 자식의 무덤이오?’

남자가 대답했다.

‘아니오.’

지나가던 이가 거듭 물었다.

‘그럼 사랑하던 그대 부인의 무덤인가 보구려?’

남자가 다시 대답했다.

‘아니오.’

지나가던 이가 더욱 궁금하여 다시 또 물었다.

‘그럼 대관절 누구의 무덤이기에 그리 슬프게 우는 것이오?’

 남자는 더욱 오열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 마누라의 전 남편 무덤이라오!

 

나는 오늘도 외친다.

아! 아! 소크라테스여!

위대한 현자여!

나를 이해할 오직 한 사람이여!

그대의 무덤 앞에 엎드려 오열하며 2500년의 시공을 넘어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노라!

글을 마치기 전에 이쯤에서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왠지 후회할 것 같다.

여보, 사랑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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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가야

 

만화가

1963년 안동출생

1995년 <아이큐점프>로 데뷔

지은 책으로 <해와달> <푸른길> <남자이야기> <남한산성> 등이 있음 

1999년  <남자이야기>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및 출판만화대상 저작상 수상
2009년 <남한산성>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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