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의 <토토로의 숲> 중에서

 
 최아영

심윤경의 「토토로의 집」은 흔들리는 가족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문명의 빛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의 문제는 ‘지금, 여기’의 가족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네 식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부림치며 “통증과 신음을 혀 밑에 가두는” 엄마의 숨 막히는 절규(絶叫)는, 윤리․도덕으로 포장된 낭만적 가족의 신화를 “천리 밖으로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화자는 조실부모하고 외삼촌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안간힘을 쓰고 기어 올라간 인생의 최고 정점인 군대(군무원으로 근무)에서, 인생의 최저 하락점을 묵묵히 감내하며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을 만난다. 서울에 살던 부유한 남편과 지방에 살던 가난한 화자는 열정적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이들이 결혼한 이듬해 사업을 정리하고 통장을 챙겨서 은퇴한 시아버지는 주식 투자에 손을 대 “한평생 땀과 노동으로 빚어낸 알토란” 같은 ‘재산’을 신기루처럼 날려버린다.

이후 화자는 남편이 학업을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만 생계를 책임지기로 합의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네 식구의, 아니 시아버지의 병원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인 가장이 된 것이다. 월급을 고스란히 보내도 아이들 학비와 시아버지 병수발하기도 빠듯하다. 남편은 가까스로 박사학위를 받지만 교수 자리를 약속했던 대학에서는 연락이 없다. 남편은 서울에 있던 집을 팔고 수도권 인근 Y읍으로 이사 오면서 그 차액을 모두 모교의 어떤 통장으로 입금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샌님이었던 남편이 그런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애틋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먼 하늘의 유성꼬리처럼 순간적이고 희미한 감상에 불과했다.

이 작품은 주말마다 시간외 근무를 해야 했으므로 휴일조차 없었던 화자가 “아프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새로 이사한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육체적 피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되는, 이 화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정면에서 문제삼고 있다. 가족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심문하는 바로미터라는 사실을 피해가지 않는 시선이 올곧다.

먼저, 현실적 고통(육체적 피로감, 불행/불운)과 덧없는 희망 사이에서 길항(拮抗)하는 화자의 양가적인 내면 풍경을 엿보기로 하자. 일상에 찌든 화자에게, 가족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은 ‘최면’이나 ‘환상’ 정도로 여겨진다. 이 최면과 환상은 숲의 요정 토토로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교차된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반영하는 동화와, 엄마의 피곤하고 지친 몸이 표상하는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深淵). 가족을 지키려는 안간힘은 이 동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봉합하려는 의도만큼이나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피로와 노동에 찌든 몸을 이끌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돌아온 화자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눈물겨운 것도 이 때문이다. “엄마가 찾아온 행복한 저녁의 기억을 아이들이 온전히 꿈에 담고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통증과 신음을 혀 밑에 가두려 애”쓰는 엄마.

화자는 “도토리를 선물로 주는 숲의 요정에게 소원을 빌”어 본다. 남편이 교수가 될 수 있기를, 임용 결정을 알리는 기쁜 전화가 올 수 있게 되기를. 하지만 신령한 숲의 요정에게 이렇게 속물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될 일. 화자는 고개를 저으며 ‘좋은 엄마’, ‘정렬적인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얼른 소원을 바꾼다.

하지만, 아내의 두 가지 소원은 야누스의 표정처럼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치밀어오르는 눈물만은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발가벗고 돌아누워 부끄러움을 삼키”는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시대 ‘발가벗은 가족’의 자화상이 아닐까. 심윤경의 「토토로의 집」은 이 가족의 자화상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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