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퓨처 – 멋진 신세계? (2)

 

 홀로 서는 ‘블루프린트’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 다만 시간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체외수정 아이의 정체성을 다룬 「1999년생」의 작가 케르너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블루프린트」(다른우리 2002, 獨1999. 사진왼쪽)에서 복제인간을 다룬다. ‘블루프린트’는 사진의 원본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고, 하얀 바탕에 파란 선이 그려지는 복사본이라는 뜻에서 복제인간 시리가 자신의 책에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알고 복제 딸을 통해 다시 한 번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복제 딸이 태어나자 자신의 이름 이리스(Iris)의 철자를 거꾸로 하여 시리(Siri)라고 붙이고, 시리의 삶을 철저히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으로 프로그래밍해 나간다. 두 사람의 삶은 처음엔 조화롭게 흘러간다. “너는 내 삶이야.” 시리는 이리스의 말에 기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폭발’이 일어난다. 시리가 엄마의 애인 크리스티안에게 사랑을 느끼고 초경을 경험할 무렵, 시리의 마음속에 의문이 자리 잡는다. “내 삶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그 의문이 일기 시작하면서 시리의 이리스에 대한 태도는 애증이 교차한다. 시리는 이리스가 죽고 난 다음에야 진정한 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가 택한 길은 미술의 길이다.


시리는 이리스가 죽은 뒤 10년 후에 독자적으로 걸어온 세월을 되짚어보며 자신의 책에 ‘홀로 남은 폴룩스’라는 장을 덧붙인다. 그것은 피아노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은 시리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그런 제목을 붙인 까닭을 시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레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들이었습니다. […] 쌍둥이 형제는 바람과 파도를 지배했고 뱃사람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유한한 존재였던 카스토르가 전쟁에서 죽어 하데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반면 불멸의 존재였던 폴룩스는 제우스에 의해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 산으로 받아들여졌지요. 그러나 두 형제는 서로 떨어지려하지 않았습니다. […] 쌍둥이자리의 알파성과 베타성은 지금도 이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하늘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어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난 폴룩스를 하늘에 혼자 있게 내버려두었습니다. 나의 카스토르는 그의 뒤를 따르지 않고 하데스에 남아 있길 더 좋아하고 그곳에서 혼자 살아갈 겁니다. 저 역시 계속 살아갈 겁니다.”(「블루프린트」, 229-230)

 

작가 케르너는 이렇게 원본의 죽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복사본의 모습을 제시한다. 복사본을 독자적인 개체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 것은 시리의 자서전에 후기 격인 에필로그를 덧붙인 의학박사 에리카 크니퍼 교수의 말대로 복제가 이미 ‘일상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벽한 자기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물론 2005년 현재는 복제가 그렇게 일상적으로 또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시점은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그런 시점이라 할지라도 물어야 할 물음이 얼핏 보아도 산적해 있다.

 

 

누가 복제를 결정하는가?

 

 

누가 복제를 결정하는가? 이 작품에서는 복제 인간의 윤리적, 기술적 문제가 ‘생식의학 발전위원회’의 주관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곳 전문가들은 제출된 서류들을 토대로 해서 복제를 허락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는 판단이 설 때 복제를 승인하며, 의학적 복제의 경우에는 의사협회에서 제시된 분명한 원칙들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전문성’은 누가 인정하는가? 그들의 전문성에 대한 윤리성은 누가 판단하는가? 인간의 윤리관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장 결정적인 물음이 있다. 복제에 필요한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작중 크니퍼 교수에 따르면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자기부담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힘과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운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블루프린트」는 시리의 내면, 그 갈등과 방황에 집중한 나머지 이렇게 다른 문제 제기의 가능성을 막아버린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1999년생」보다는 문제의식이 덜 선명하다. 복제 인간에 대한 케르너 식 접근은 설령 자기 복제로써 영생을 꿈꾸긴 하지만, 필멸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기본 개념은 다치지 않은, 차라리 낭만적인 문제제기라 할 만하다.

 

 

장기창고로서의 복제 인간

 

 

하지만 만약 원본이 홀로 하늘에 있고자 원한다면? 만약 원본이 복제의 희생을 전제로 하여 자기 삶을 연장하기를 원한다면? 그에게 복제인간은 장기 창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이 낸시 파머의 「전갈의 아이」(비룡소 2004, 美 2002. 사진 오른쪽)이다.


무대는 역시 미래이다. 지금의 멕시코가 아즈틀란이라는 나라로 바뀌고 100년이 흐른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복제인간 ‘클론’은 드문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케르너의 전망과는 달리 그들은 짐승 취급을 당한다. 암소의 자궁에서 배양되었기 때문이다. 클론은 철저히 장기 제공자로서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기 전에 뇌를 제거 당한다. 「전갈의 아이」의 마트 역시 클론이지만 아편국 지배자 엘 파트론의 클론이기에 뇌 제거수술이 시행되지는 않는다. 그가 아무리 총명하고,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다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러한 미래의 청사진에 대해 윤리적 구호를 높이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여준다는 데 있다. 하나의 개체로서의 복제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며, 그러한 클론을 가능하게 한 거대자본을 보여준다. 그것도 아편국으로 상징되는 비윤리적 거대자본이다. 아편국을 유지시키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하는 ‘아편’이며, 그 아편을 재배하는 데 이용되는 노동력은 뇌에 칩을 이식해서 한 가지 단순작업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이짓’이다. 어찌 보면 ‘이짓’이야 말로 도구적 생명공학의 더욱 충격적이며 비인간적 가능성일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서 클론인 마트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엘파트론이 저지른 죄과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케르너의 「블루프린트」에서처럼 원본이 죽고서야 비로소 클론은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는 복제인간

 

 

「전갈의 아이」는 비록 겉모습은 물론 지문까지도 똑같은 동일한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성장 조건과 환경에 따라 다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 배열이 아니라는 것, 그러한 인식은 복제인간을 온전한 개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이다. 마트는 그 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마트는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서 인정받았다. 그것은 지금껏 경험한 일 중에서 가장 멋진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진짜 인간처럼 받아주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걸어서 사막을 횡단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좋은 오아시스에 도착한 것이다.”(「전갈의 아이」 531p)

 

그렇다면 복제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마트는 살인을 일삼는 산적 무리에서 온몸이 고름투성이인 거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태양 형제와 달 자매, 매 형제와 종달새 자매를 상대로 이야기를 한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책을 읽으며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물음이 인다.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클론 형제라고 불렀을까? 훈훈한 감정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자연 질서의 일부가 아니었다. 자신은 혐오스러운 자식이었다.”(「전갈의 아이」 328)


 

인간이 주장하기에 그 목적이 아무리 고귀하다 해도 복제는 결코 자연의 질서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미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했다.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이 작품의 매력은 복제인간 ‘클론’으로서의 마트의 처절한 존재상황과 고뇌, 철저히 도구로 전락한 ‘이짓’의 존재방식, 그들을 만들고 통제하는 '진짜' 인간들과 그들에 의해 유지되는 체제를 그려주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 있는 성격화, 인간관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긴장감 있는 구성 역시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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