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중에서

 
 이현용


 채만식(1902-1950)의 문학 활동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근대적 문물에 대한 매혹의 도구이면서, 암울한 조선의 현실이 부가한 자괴감과 고통의 표출 수단이었다.

 채만식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희곡, 비평, 동화, 방송극, 수필, 꽁트 등의 다양한 장르실험은 물론이고 표준어와 방언을 혼용해서 자유로운 언어실험을 시도했다. 풍자적인 언어 활용 기법, 다양한 장르 변용, 생생한 방언 구사 등은 서구적 근대 소설의 양식과 전통 양식과의 접합을 꾀했던 작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판소리 양식이나 사설체, 구어체 서사 역시 전통과 새로운 문물이 혼합되어 있던 당대 현실의 모순적인 양상을 반영하는 실험이라 할만 하다. 우리의 근대사가 보여주는 균열과 모순을 문학 작품 속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 셈이다.
 『소년은 자란다』(1949)는 이러한 채만식 문학의 한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정신,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휴머니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리얼리즘 정신 등으로 대변되는 그의 문학 세계가 녹아있는 용광로에 비견될 수 있겠다.
 일제시대 카프와도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했던 채만식의 냉철한 문학적 자의식이, 일제 말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띤 「민족의 죄인」(1948)을 거쳐 『소년은 자란다』에 이르면 한층 성숙한 작가의식으로 표출된다.
 『소년은 자란다』는 일제말에서 해방 공간에 이르는 혼란한 시기를 ‘소년’의 눈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해방이 잘못 되었다며 격분하는 오 선생의 모습을 관찰하는 인용문의 대목은 해방의 의미를 주체적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노력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폭넓은 역사의식을 길러주기에 충분하다.

 『소년은 자란다』에 나타난 채만식의 역사의식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의 힘으로 얻은 해방이 아니라는 점. 둘째, 해방의 의미를 민중의 관점, 특히 해외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민초들의 시각에서 형상화함으로써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다. 셋째, ‘소년’의 시각으로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가의 역사의식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해방의 의미를 넘어, 해방의 구체적인 실체를 보여주는데 기여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동화의 형식은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특히, 소박한 가족에 대한 영호의 꿈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잘못된 해방을 고치기 위해서는 아직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통해 제시된 ‘절망 속의 희망’과 이 희망의 싹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짓밟힐 것이라는 ‘희망 속의 절망’을 동시에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비싼 해방값'을 곱씹는 행위야말로 오늘날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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