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 (1)

 

“오늘, 그러니까 12월 22일, 우리는 세묘노프스키 광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십자가에 입맞추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칼을 빼어들었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얀 수의가 주어졌습니다. 이윽고 형이 집행되었고 우리 가운데 세 사람이 처형장 기둥 쪽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나는 여섯 번째였고, 세 명씩 호명되었지요. 그러니까 난 두 번째 차례에 속하였습니다. 숨이 붙어있는 시간이 채 1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집행 중지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결박되어 있던 사람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황제폐하가 우리를 살려준다는 특명을 내렸다는 것을 전달했습니다.”


 이 글은 절대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비사리온 벨린스키(V. Belinsky, 1811~1848)의 ‘사악한’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1849년 11월 13일 사형선고를 받았던 28세의 한 청년이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죽음의 목전에서 겨우 살아난 청년은 그 후 시베리아에 있는 옴스크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물론 성서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는 것까지도 제한을 받으며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4년간의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지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한동안 의식을 잃는 간질 발작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육체적 비참함과 정신적 공허뿐만 아니라 천형(天刑)과 같은 질병과도 싸워야 했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그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것은 그동안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한때 비평가이자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인 벨린스키에 매료되었고 그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벨스키를 처음 만난 1846년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난 정열적인 사회주의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재빨리 나에게 무신론을 부르짖어대기 시작했다. 눈부신 통찰력, 극히 깊은 지각 속에서 하나의 관념을 파고들 수 있는 그의 비범한 능력에 나는 놀랐다. 그는 도덕적 원칙들이 모든 것의 기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맹목적으로 그리고 무아지경에 이른 것처럼 사회주의의 모든 새로운 도덕적 원칙들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자로서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처단해야만 했다. 혁명은 반드시 무신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자신이 부정하는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발생시킨 이 종교를 처치해야만 했던 것이다. 가족, 재산, 개인의 소시민적 도덕 의무, 이런 것들에 대해 그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1840년대, 포이에르바흐와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좌파 헤겔주의자들은 헤겔철학 안에 들어있는 추상적인 형이상학과 스스로 단절하고 유물론적 사회주의로의 길을 닦기 시작했지요. 이들에게 종교는 새로운 사회로의 진보를 막는 미신일 뿐이며, 과학이 진리이고 사회주의 사회가 유토피아였던 겁니다. 벨린스키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었지요. 그는 종교 대신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서슴없이 “나는 진리를 획득했습니다. 신과 종교라는 낱말에서 나는 어둠과 불투명함, 사슬과 채찍을 봅니다.”라고 외치는 호전적인 무신론자였습니다. 어느 날 밤, 벨린스키는 청년의 앞에서 마치 시인처럼 외쳤지요.


“당신은 아십니까? 한 인간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악하고, 경제적인 빈곤이 범죄를 이끌 때, 죄를 범한 사람을 비난하면서 그에게 의무와 뺨을 돌려 댈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말입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그가 원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것을 한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잔인한 짓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청년은 그의 주장이 가진 합리성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참한 용기에 감동하고 그의 극단적인 사회주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했지요. 하지만 4년간의 수용소 생활, 그 말할 수 없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청년의 마음속에서는 벨린스키에 대한 의심이 새싹처럼 싹텄고 그와의 치열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신앙으로 받아들인 복음과 벨린스키를 통해 받아들인 사회주의 이론 사이의 투쟁이었지요.

 

 하지만 청년은 벨린스키와 같은 이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논박할 합리적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그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었지요. 하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벨린스키에게 굴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854년 2월 15일, 수용소에서 풀려난 청년은 며칠 후 그가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복음서를 전해주었던 N. D. 폰비지나(Fonvizina)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N. D., 난 당신이 매우 신앙적이라는 얘기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신앙적이라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몸소 체험했고 뼈저리게 느끼기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 그리스도 그분보다 아름답고 심오하며 연민이 넘치며 합리적이고 용기 있고 완벽한 것은 없다고 믿는 것, 아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질투어린 사랑으로도 그런 것은 있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설령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 밖에 있다고 증명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할 겁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신념의 변화는 사색을 통한 것이 아니고 체험을 통한 것이며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심증적인 것이기에, 청년은 그 후 오랫동안 내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지요. 그에게는 자신의 ‘새로운’ 신념을 사색과 이론을 통해서 증명하고 표현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던 겁니다. 다시 말해, 왜 이성과 과학을 숭배하는 ‘합리적인 지식인’들보다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바보 같은 민중’들이 더 지혜로운지, 왜 사회개혁을 위해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혁명가들보다 쓰러진 자들을 돕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민중들이 더 선(善)한지를 – 누구에게보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 설명해야만 하는 일이 그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졌던 거지요.

 

 그래서 청년은 그 후부터 ‘바로 이 문제’, ‘오직 이 문제’에만 매달려 글을 썼습니다. 그 결과 니콜라이 베르쟈예프(Nicholas Berdyaev)로부터 그를 낳은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위대한 작가가 되었지요. 이 청년의 이름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이고, 바로 이 문제를 다룬 그의 첫 장편소설이 『죄와 벌』(1866)이지요.



그는 왜 노파를 살해했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처음에는 「고백」이라는 제목의 1인칭 단편소설로 기획했다가, 생각을 바꾸어 구상 중이던 다른 단편소설 「술주정뱅이」와 결합하여 3인칭 장편으로 구성한 『죄와 벌』의 줄거리는 막대한 분량에 비해 단순합니다.


 페테르부르그에 살며 법학을 전공하는 휴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들’의 지배를 받아 전당포를 경영하는 어떤 노파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지요. 그는 전당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선술집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를 만납니다.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가 되어버린 맏딸 소냐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술주정으로 해대지요. 라스콜리니코프는 만취한 그를 부축하여 데려다주느라 마르멜라도프의 집에 갔다가 가난과 폐병, 그리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정의 참상을 목격합니다.

 다음날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에게서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에는 그의 여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로 일하는 집 가장인 스비드리가일로프로부터 음탕한 제안을 받고 억울하게 쫓겨난 사연과 루진이라는 신랑감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어있지요. 두냐는 변호사이자 재력가인 루진과 결혼하면 오빠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와 결혼하려 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것은 마르멜라도프 가족이 소냐를 창녀로 만들어 연명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결혼을 승낙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자신이 여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고뇌하게 됩니다.

 그 다음날 온 종일을 ‘열’에 들뜬 상태로 누워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저녁 7시가 지나자 도끼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전당품과 약간의 돈을 훔치는 데에 성공하지요. 그러나 때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와 마주쳐 본의 아니게 그녀마저 살해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총 7부로 구성된 『죄와 벌』의 1부가 끝이 나지요.

 

내용으로 볼 때 여기까지가 ‘죄’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살인 이후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 즉 ‘벌’이 다루어지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죄’에 관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왜 ‘멋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아맛빛 머리털을 가진 미남으로 약간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으며, ‘훌륭한 품성을 지닌 지적으로 성숙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는가?”부터 알아보아야지요.


 표면적으로는 물론 돈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가족을 위해 결혼해야만 하는 여동생 두냐의 어려운 처지를 듣고, 어머니와 누이를 경제적으로 도움으로써 여동생을 옳지 않은 결혼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범행을 계획하게 된 거지요.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고 복잡한 심리적 요인들이 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덥고 습한 공기, 혐오스럽고 비열한 범죄의 소굴인 빈민가, 지하실, 선술집 등이 이 끔찍한 범죄의 ‘공범자’라는 거지요. 


 예컨대 러시아 출신의 소르본 대학 문학교수인 콘스탄틴 모출스키(konstantin Mochulskij)는 그의 기념비적 저서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생애와 작품』에서 『죄와 벌』의 서두 부분에 나오는 구절인 “거리는 지독하게 무더웠다. 게다가 후덥지근한 공기, 혼잡, 여기저기에 놓인 석회석, 목재와 벽돌, 먼지, 근교의 별장을 가지지 못한 페테르부르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독특한 여름의 악취, 이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청년의 신경을 한꺼번에 흔들어 놓았다.”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독기와 그 독기에 감염된 도시의 간헐적인 호흡은 가난한 대학생의 뇌를 파고들어 살인에 대한 생각을 낳는다. 술주정, 가난, 악덕, 증오, 미움, 타락 같은 페테르부르그의 어두운 밑바닥이 살인자를 희생자의 집으로 인도한다. 범죄가 저질러지는 무대, 고리대금업자가 살고 있는 구역과 건물은 주인공의 마음속에 <추악한 꿈>에 못지않은 <극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그는 <시험해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이어서 그는 『죄와 벌』에 “여섯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새장 같은 방은 먼지 때문에 누렇게 퇴색한 벽지가 그나마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서 보기에도 초라했다.”라고 묘사되어 있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노란색 작은 방’에 대해서도 언급하지요.


“바로 이것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이 지니는 물질적 외양이다. 그의 방은 금욕적인 수도사의 승방이다. 그는 자기 방구석, 자신의 <지하방>에 틀어박힌 채 <관> 속에 드러누워 생각에 빠진다. 그의 삶은 온통 사물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게 외적인 세계, 사람들 그리고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사심이 없으면서도 부에 대해 꿈꾸고, 이론가이면서도 실천적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 그런 비좁고 비참한 골방에서만이 범죄에 대한 야만적인 생각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사유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도덕관을 무너트리고, 인간의 심리적 조화를 깨트린다. … <노란 색 작은 방>은 시기심으로 가득 찬 삶, 악마적인 삶, 고독한 삶의 상징이다.”   


 이렇듯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주인공의 ‘심리적 억압’에서 찾는 모출스키의 입장은 이 작품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언급과도 일면 맞아 떨어집니다. 1865년 9월, 작가는 아직 『죄와 벌』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의 발행인인 마하일 카트코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은 한 범죄에 대한 심리적 해석입니다.”라고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은 단지 한 측면에서만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에는 이보다 훨씬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동기가 깊숙이 숨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를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여 나쁜 방법으로 모은 그녀의 재산을 자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끔 학비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하게 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연히 들른 싸구려 술집에서 옆 자리에 앉은 어떤 대학생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지요.


“한편에는 어리석고, 의미 없고, 하찮고, 못됐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니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해만 끼치는 그런 병든 노파가 있어. 그 노파는 자기가 왜 사는 줄도 모르고, 또 그렇지 않아도 얼마 안 있으면 저절로 죽게 될 거야. … 다른 한편에는, 도움을 받지 못하면 좌절하고 말 싱싱한 젊은이가 있단 말이야. 그런 젊은이는 도처에 있어! 그리고 수도원으로 가게 될 돈으로 이루어지고 고쳐질 수 있는 수백, 수천 가지의 선한 사업과 계획들이 있단 말이야! 어쩌면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도 있고, 수십 가정들이 극빈과 분열, 타락, 성병 치료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도 있어. 이 모든 일이 노파의 돈으로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빼앗은 돈의 도움을 받아 훗날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 작은 범죄 하나가 수천 가지의 선한 일로 보상될 수는 없는 걸까?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이 아닌가!”     


 뒤이어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동안 이런 식의 말들을 한두 번 들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술집에서의 이 하찮은 논쟁은 장차 사건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그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카트코프에게 보낸 위의 편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대학에서 쫓겨난 하층계급 출신의 가난한 한 젊은이가 경솔함과 관념의 우유부단함에 시달리던 중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들의 지배를 받게 되고, 구역질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하지요.” 


 요컨대,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끔찍한 살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심리적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주장’에도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그 ‘온전치 못한 사상들’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이 청년시절 도스토예프스키가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특히 자신의 초기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
(1846)을 사회소설로 평가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도록 도왔던 비평가 벨린스키를 통해 건네받은 일종의 사회주의 사상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당시 사회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태, 곧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훗날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r, 1848)'에서 ‘유럽을 떠도는 악령’이라고 표현했던 아직 정리되지 않은 초기형태였습니다.



유럽을 떠돌던 악령들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의 동력화와 기계화를 통한 미증유의 생산력 확대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각종 사회문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은 유럽의 대다수의 사람들을 자신의 노동력만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무산계급(proletarian)’으로 만들었지요. 19세기 초, 영국 전체인구의 4/5, 그리고 유럽 전체인구 중에 약 9천만 명이 프롤레타리아트 신분으로 전락하였던 겁니다. 도시에는 부랑자, 실업자, 범죄자, 거지,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소위 ‘위험한 계급’이 산업혁명의 여파로 넘쳐났던 거지요.


 한편,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실망스러운 결과는 사회주의 탄생과 성장에 또 다른 여건을 만들어주었지요.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한 다음 1789년 8월 ‘국민의회’가 채택한 소위 ‘인권선언’의 본명인 ‘인간과 시민의 여러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des droitsde l'homme et du citoyen)’에 나타나듯이, 여기에서는 ‘인간’과 ‘시민’이 구분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1조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리, 곧 ‘법’ 앞에서의 평등만을 의미했지요.


 이러한 평등은 사회, 경제적 평등도 아니었고, 정치적 평등도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참정권은 ‘모든 인간’에게가 아니고 ‘시민’에게만이 주어졌지요. 개인의 소유권이 투표권 등 시민 권리의 전제 조건으로 등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을 포함한 많은 무산계급들이 시민사회에서 소외된 것입니다. 물론 여성도 제외되었지요. ‘인권선언’은 기본적으로 불평등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무산계급들은 단지 ‘법 앞에서 평등’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조건 속에서의 평등, 예컨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길 원했지요. 그리고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 사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산업혁명이 만든 무산계급과 모든 인간의 전면적 평등이라는 숙제를 던진 프랑스 대혁명이 사회주의가 탄생하고 뿌리내린 토양이었던 겁니다.     


 183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1848년 혁명을 전후하여 유럽에서는 ‘반동적 사회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 ‘무정부적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대중적 지위확보를 위해 서로 경쟁하였지요. 청년시절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향을 준 사회주의는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들이었던 겁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영국의 오웬, 프랑스의 프리에, 그리고 생시몽 등 초기 사회주의자 3인방이 주장하면서 널리 러시아에까지 퍼져나갔던 유토피아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지요. 모출스키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주로 생시몽의 『새로운 기독교 정신』, 카베의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기독교』, 프루동의 『안식일의 집전』과 같은 책들을 친구에게 빌려 읽었답니다. 그 영향이 『죄와 벌』에도 드러나 있지요.


 예컨대,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이 아닌가!”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주장은 공리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영국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8)에게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음 작품인 『악령』
(1871)의 중심 테마이기도 하며, 『죄와 벌』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사건을 맡은 예심 판사 포르피리에게 설명하는 ‘새로운 예루살렘’ 역시 그렇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훗날 「공산당 선언」에서도 언급되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용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던 – 예를 들어 푸리에의 팔랑스테르(phalanstre), 카베의 아르카디아(arcadia)와 같은 – 유토피아들의 총칭이었던 겁니다.


 이와 같이 청년시절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들을 자연스레 접하였지요. 뿐만 아니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사회성, 사회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라면서 “만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수십만 명의 목을 잘라야 한다면 그는 그 역할을 기꺼이 맡을 각오가 되어있다.”라고도 장담했던 벨린스키의 과격성까지 수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정의가 구현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어떤 법률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도달하게 된 것이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젊은 시절 한때 가졌던 바로 이 생각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저지른 범죄의 사상적 배경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작품에는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스콜리니코프는 단순히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심리적으로 억압받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사상과 논리로 무장하고 기존의 도덕과 종교 그리고 사회에 반항하는 일종의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행한 끔찍한 살인행위 역시 단순한 ‘범죄’라기보다 일종의 ‘시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라스콜리니코프는 『정기 논단』에 실린 그의 논문 「범죄에 관하여」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했지요. 이에 대해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이 분의 논문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야. 평범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아야만 하고, 법을 어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 왜냐하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비범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만일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논문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자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대 스파르타의 법과 시민 생활 규범을 정했던 리쿠로고스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그리고 마호메트와 나폴레옹까지 예로 들면서 새로운 사회와 법률을 위해서는 낡은 법률을 파괴해야만 하는데, 만일 유혈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허용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제 생각으로는 만일 케플러와 뉴턴의 발견이, 그 발견을 방해할지도 모르고 혹은 그 발견의 길에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는 몇몇의 혹은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뉴턴은 자기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런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제거해야 할 …… 권리가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일지 모른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위 ‘초인사상(超人思想)’으로 일컬어지는 라스콜리니코프(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독특한’ 사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라스콜리니코프가 한 행위는 결코 ‘범죄’가 될 수 없지요.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죽였어.”라는 그에게 살인행위는 – 마치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지만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 법을 초월한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심지어는 자수를 한 다음 유형생활을 할 때까지도 “악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가? 나의 양심은 편안하다.”라고 고백할 만큼 한 점의 후회나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커다란 의문에 부딪치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이 작품의 제목을 ‘죄와 벌’이라고 했는가? ‘새로운 예루살렘’을 여는 나폴레옹이 되려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해악만 끼칠 뿐 아무 쓸모도 없는 노파 하나를 죽였다고 해서 무엇이 죄라는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2장부터 6장까지,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외형상으로도 죄의 문제를 다룬 1장의 5배나 되는 분량을 그의 죄에 대한 ‘벌’에 할애했는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죄’, 곧 ‘범죄’의 의미를 초월한 죄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죄와 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후기 5대 장편소설로 불리는 작품들, 곧 『백치』
(1868), 『악령』, 『미성년』(187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죄란 무엇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러시아 정교식 가정교육을 받았지요. 그의 가족들은 평소에는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의 사제로부터 종교 교육을 받았고, 매년 성 세르게이 축제 때면 트로이샤(Troytsa)로 순례를 가서 2~3일간 그곳에 머물며 모든 의식에 참여했답니다. 어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고, 생애 마지막까지 이러한 경험들에 대해 감사했다지요. 그는 『작가일기』(1873~77)에 이런 글을 남겼답니다.


 “가족 안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해 전해오는 무엇인가 성스럽고 소중한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살 수조차 없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에서는 ‘성스러움’을 경험하기 위한 예배에 치중하는 반면에 교리나 철학적 신학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지요.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받은 종교 교육은 젊은 날 그가 벨린스키의 무신론적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을 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A. B. 깁슨(A. Boyce Gibson)이 그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에서 언급했듯이, 시베리아에서의 4년간 혹독한 수용소 생활은 그에게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지요. 깁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시베리아는 흔적을 남겼다. 그곳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교적 확신을 강화시키는 무엇인가를 했다. 무엇보다 시베리아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무너뜨렸고 그리스도적 확신이 자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용소 생활 4년 내내 삶의 벼랑 끝에 서서 유토피아 사회주의 서적 대신 성경을 읽었고, 혁명을 외치는 지식인 대신 생명을 보살피는 민중들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무엇이 ‘죄’인지를 비로소 깨달은 거지요. 그는 인간이 자신을 믿고 ‘자기중심적으로 되는 것’이 바로 죄이며, 바로 그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러시아 정교를 포함한 동방정교, 그리고 서방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함께 입을 모아 말하는 ‘기독교적 죄’의 의미이기도 하지요.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보시죠! 신은 에덴동산에 만물을 창조하고 그 모든 것을 아담에게 맡기지요. 그리고 말하길,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세기 2 : 16~17)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신이 만든 짐승들 중 가장 간교한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 : 5)라며 그 실과를 따먹게끔 유혹했지요. 아담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고 괴로워해야 할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같이(sicut Deus)’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따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신에게 추방당하게 되지요.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란 ‘신을 거역하고 떠나는 것’, 한마디로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는 존재이다’라는 뜻을 가진 신의 이름 ‘야훼’(yhwh)가 지시하듯 신은 또한 ‘존재’이기에, 죄 또한 ‘존재를 떠나는 것’ 또는 ‘존재로부터 돌아서는 것’ 곧 ‘존재상실’을 뜻하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에서처럼 신을 진리[眞]라고 한다면 죄란 진리로부터 돌아서는 것, 신을 선함[善]이라고 한다면 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신을 아름다움[美]이라고 한다면 미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죄,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어떤 도덕이나 법을 범한 것이 아니므로 ‘도덕론적 죄’ 내지 ‘법률상의 죄’가 결코 아닌 겁니다. 이러한 죄는 하나의 존재물인 인간이 그의 바탕인 ‘존재’, 곧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기에 ‘존재론적 죄’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 돌아서는 존재론적 행위는 단 한 번의 ‘돌아섬’입니다. 따라서 살인, 도적질, 간음과 같은 도덕론적 또는 법률상의 죄들이 반복하여 복수적(複數的)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요.


 인간은 신에게서 ‘단 한 번’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폴 틸리히도 그의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죄는 죄들(sins)이라고 복수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죄의 개념은 단지 도덕주의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라는 말로 기독교적 죄의 ‘일회적인 돌아섬’ 현상을 강조했지요. 그런데 자고로 모든 돌아섬은 새로운 방향을 향하게 되어있지요.


 신에게서 돌아선 아담은 곧바로
눈이 밝아져 자신의 ‘벌거벗음’을 알고 부끄러워했습니다.(창세기 3 : 7) 이것은 그가 그만큼 자신의 ‘무엇-됨’, 곧 존재물로서의 자기 자신의 ‘어떠함’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지요. 요컨대 무엇이 자신에게 선하고 악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말은 곧 자신에게 대한 선악을 알게 된다는 뜻이었던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신에게서 돌아섬’이라는 죄의 속성은 곧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섬’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한 ‘존재에 대한 관심의 상실’은 동시에 ‘존재물에 대한 관심의 획득’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것이 죄의 또 다른 속성이며, 인간이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을 향해 ‘탐욕적인’ 이유인 겁니다. ‘신에게서 돌아섬’, ‘존재에 대한 관심의 상실’이 죄의 원초적 내지 일차적 속성이라면, ‘자기에게로 돌아섬’, ‘존재물에 대한 관심의 획득’이 죄의 부수적 내지 이차적 속성이라는 거지요.


 돌이켜 보시죠. “하나님같이 되리라”(Eritis sicut di)가 최초의 인간 아담을 죄로 이끌고 간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 신학에서는 ‘죄의 원인’을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는 것’으로 규정하지요.
예컨대 위대한 신학자이자 탁월한 철학자이기도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1)는 이렇게 인간이 신처럼 되려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을 라틴어로 ‘슈페르비아(superbia)' 곧 자만(自慢)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저서 『자연과 은총에 관하여』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자만이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했지요.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에게서 돌아서는 인간은 언제나 곧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에,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자만’을 다른 말로 ‘자존심’(Pride)이라고 표현했고, 독일출신 저명한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역시 라틴어로 ‘휘브리스(hybris)’, 곧 스스로를 높이는 ‘자기고양’(自己高揚, self-elevation)이라 불렀지요.


 한마디로, 아담은 자만해져서 자기를 스스로 높여 신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신으로부터 자신에게로, 존재에서 존재물에게로 돌아선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라 불리는 이 ‘돌아섬’ 곧 ‘존재상실 사건’은 인간이 ‘신중심주의’에서 ‘자기중심주의’로, ‘존재중심주의’에서 ‘존재물중심주의’로 돌아선 최초의 계기였지요. 따라서 기독교 신학에서는 자만에 의해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Secundum se ipsum vivere)이 곧바로 죄인의 특징이고, 반대로 순종에 의해 ‘신 중심적으로 사는 것’(Secundum Deum vivere)이 의인의 특징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그가 왜 노파를 죽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 ‘특징적으로’ 잘 드러나 있지요.


“… 난 말이야, 소냐, 궤변 없이 그냥, 자신을 위해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죽이고 싶었어! 이 점에 대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죽인 게 아냐. 그것 헛소리지! 재산과 권력을 얻어서 인류의 은인이 되고 싶어서 죽인 것도 아냐. 그건 거짓말이야!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죽인 거야. … 중요한 것은, 죽였을 때 내게 필요한 건 돈도 아니었다는 거야. 소냐, 돈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 필요했어. … 나는 그 때 알고 싶었던 거야. 어서 알고 싶었어. …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가 있는가…. …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이지 내가 아냐….”


 라스콜리니코프는 돈을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그가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살인을 했다고 하지요. 즉, 자신이 ‘초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는 한마디로, 자기를 높여 인간을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접근하려 했던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죄라고, 노파를 죽인 행위는 ‘죄’ 다음에는 언제나 따라오기 마련인 ‘악’에 불과하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 작품에 ‘죄’라는 의미로 사용된 러시아어 ‘prestuplenie’는 본래 ‘어떤 경계를 뛰어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단어에 담은 의미는 그 ‘어떤 도덕이나 법률의 경계를 뛰어넘다’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전혀 아니지요. 다시 말해 라스콜리니코프가 지은 ‘죄’는 살인이라는 법률상의 ‘범죄’가 아니라,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죄’, 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가 받게 될 ‘벌’도 마땅히 자기를 높여 신과 같이 되려고 인간을 뛰어넘으려 했던 자가 받는 고통, 곧 기독교적인 의미의 ‘벌’이 되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보시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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