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문학의 세계- 마지막 회

 

시간여행의 고전들

                  

오늘날 ‘시간여행’은 SF의 가장 대표적인 제재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원래는 주류문학의 작가들이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기법으로 채택하던 것이었지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우리에게도 친숙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1843)>일 것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미래에 비참해진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보고는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혔던 사고방식을 뉘우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요.

SF로서 시간여행이 널리 알려진 것은 영국 작가 H. G. 웰스의 <타임머신(1895)>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도 시간여행 소설들은 있었지만, <타임머신>은 80만년 뒤라는 광대한 스케일의 미래와 미래 인류를 충격적으로 묘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작품의 제목인 ‘타임머신’은 오늘날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장치의 통칭으로 굳어져 보통명사나 다름없는 지위에까지 올랐습니다.


1895년에 나온 <타임머신>에 앞서서 1889년에 미국에서는 마크 트웨인이 <아서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등의 작품으로 오늘날 미국의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위대한 소설가인데, <아서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사진 왼쪽) 도 신랄하고 절묘한 풍자, 그리고 극적 구성이 돋보이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19세기말에 미국의 한 기술자가 정신을 잃은 뒤 다시 깨어나 보니 고대 영국의 아서왕 시대로 날아와 있더라는 설정으로 내용이 전개되며, 화약이나 자전거, 펌프 등 19세기의 과학기술로 악당들을 혼내주는 장면들이 일품입니다. 또한 주인공이 아서왕과 함께 평범한 서민 복장을 하고 가난한 백성들 사이를 다니며 곤란을 겪는 등 계급지배 구조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도 의미가 깊습니다. 이런 면모들 때문에 이 작품은 오늘날 시간여행을 다룬 SF들 중에서도 고전 걸작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싸구려 통속소설의 대명사처럼 취급되던 SF가 문학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도 시간여행이라는 주제를 통해서였습니다. 1930년대 중반에 미국의 냇 샤크너라는 작가는 SF잡지에 <선조의 목소리> (사진 오른쪽) 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으로 갔다가 우연히 자신을 습격한 훈(Hun)족 사나이를 사살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사나이의 후손인 게르만계, 유태계 혈손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그 중에는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당의 수뇌 급 인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 이 작품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독자들의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 등이 계기가 되어 SF작가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동시대인들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시간여행을 다룬 것은 복거일의 <역사속의 나그네(1991~)> (사진 오른쪽) 가 단연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의 한 남자가 조선시대로 ‘시낭’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다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일단 생생하게 복원해 낸 조선시대의 언어나 풍물 묘사가 압권입니다. 작가가 서구의 SF처럼 본격적인 과학소설을 표방하면서 대하 장편소설로 기획한 이 작품은 현재까지 완결이 안 된 프로젝트이지만 내용 중에는 작가의 시간관이나 시간여행 이론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복거일은 또한 평행우주를 다룬 대체역사 소설인 <비명을 찾아서(1987)>도 발표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여행자는 우주의 미아?


여기서 간단히 시간여행의 이론적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사실 시간여행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설정이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이런 구성을 취하려면 몇 가지 구체적인 내용들을 꼼꼼하게 짚어줘야만 설득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물리적, 정신적 생활환경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문화적 축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를 언급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의 활자는 눈으로 보는 순간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활자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 눈의 망막까지 여행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보는 활자는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가 아닌 극히 짧은 과거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극미시적(極微視的) 척도로 보면 모두 과거의, 그것도 거리에 따라 제각기 다른 과거의 모습이 한꺼번에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원리로 우리가 보는 밤하늘 역시 수십 억 년에 걸쳐 광대하게 펼쳐진 거대한 허상인 셈이지요. 각 별마다 지구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가 다 다르니까요. 결국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그 자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다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참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얘기는 더 복잡해집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여행은 동시에 물질의 이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시간여행자는 일정한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기 마련인데, 그가 과거나 미래로 날아갔을 때 그 자리에 이미 다른 물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마침 그 자리에 누가 서 있다거나, 혹은 건물이 들어섰다거나 한다면 말입니다.

이런 논리적 함정을 피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공중에 띄우거나 심지어 우주공간으로 나가서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도 등장했지만, 어차피 절대진공이 아닌 이상 허공에도 산소나 수소 등등의 입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요컨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한 공간에 둘 이상의 물질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는 모순을 피할 길이 없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학자들 중에는 물질이 순수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반응, 즉 핵폭발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지구가 항상 태양의 둘레를 돌면서 공전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여행을 했을 때 출발 시점과 도착 시점에서 지구의 위치가 항상 같은 곳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만약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시간여행자는 텅 빈 우주공간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태양계 전체도 움직이고 있으므로, 단순히 지구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완전히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의 미아가 될 수도 있지요.


인과율의 모순


이렇듯 시간여행 그 자체에도 많은 걸림돌이 있지만, 그와는 별도로 제기되는 모순이 또 있습니다. 이른바 인과율의 문제이지요. 이것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할 때 비로소 골치 아프게 등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기는데, 그렇게 일단 생겨난 결과(역사)의 원인을 멋대로 바꾸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다면, 원래 남아있던 기존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시간여행자가 불행한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로 가서 불행의 씨앗이 된 일들을 모두 바꾸거나 없애버린다면? 그리고서 다시 돌아와 보니 자신이 예전에 살던 불행한 현재가 아니라 완전히 바뀐 행복한 현재가 되어있다면? 그렇다면 그가 원래 살던 ‘불행한 현재’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런 인과율의 모순은 유명한 시간여행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서 아기자기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과거로 갔다가 결혼 전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는데, 둘 사이가 잘 맺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자 주인공의 존재가 희미하게 지워지는 사태가 벌어지지요. 이렇듯 인과율 문제는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문제점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로 날아가서 인류의 직접 조상이 되는 원시 유인원을 실수로 숨지게 한다면? 그 순간 시간여행자 자신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가 몽땅 연기처럼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

 <사진 위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영화화 했던 '2009로스트 메모리즈' 포스터>


예전부터 과학자나 SF작가들의 골치를 썩혀왔던 이 문제에 대해, 결국 그들이 내놓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간이란 단일한 하나의 줄기가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겹쳐진 다층적 구조여서, 만일 시간여행을 한다면 그건 이미 자신이 살던 시간 줄기에서 빠져나와 별개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원래의 시간 줄기는 그대로 있으면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서 원인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가지가 계속 생겨난다는 논리이지요.

이처럼 다차원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동일 시간대의 세계들을 SF용어로는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 또는 ‘대체역사(alternate history)’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논리의 한계에 부딪치는 학자나 작가들에겐 유용한 설명 중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본의 식민지로 계속 남아있는 가상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 그리고 2차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승리하여 미국을 지배한다는 대체역사가 펼쳐지는 필립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 (사진 오른쪽) 등이 바로 대체역사를 다룬 SF소설들입니다. 또한 <비명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도 좋은 예가 되지요.


이제까지 이런저런 논리적 문제점들을 살펴봤지만, 그래도 시간여행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너무나 매력적인 설정이라서 포기하기가 아깝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오르내린다는 소설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죠. 실제로 인공동면이 가능해진다면 편법으로나마 시간여행 효과를 느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몇 년쯤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그만큼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이니까요. 다만 미래로의 일방통행일 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 문제겠지만요.


SF초보자들을 위한 길잡이


이제까지 여덟 회에 걸쳐서 SF의 여러 면면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는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못 다 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아쉬우나마 SF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우리의 일상 환경에 녹아들게 되면서 SF와 주류문학과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SF나 판타지와 같은 비주류의 세계관들이 장차 문화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물론 중요한 것은 형식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의미들이겠지만, 그래도 SF가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접근법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재를 마치면서 SF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도움이 될 정보를 소개합니다.


   먼저 SF에 대한 포괄적인 자료를 담은 곳으로 ‘SF리더스’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http://www.sfreaders.org


국내 SF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 곳으로 ‘사이언스 타임즈’가 있습니다. 이곳의 ‘카페’ 메뉴에 들어가면 국내 창작 장, 단편 SF소설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sciencetimes.co.kr


책으로 구해볼 수 있는 SF입문서로는 (행복한책읽기/2004)가 있습니다. 문학과 영화 등 SF의 다양한 분야들을 다루고 있고, 추천작 리스트도 무척 알차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직접 작품을 읽어보려면 먼저 단편집을 권합니다. <세계SF걸작선>(도솔/2002)과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2004)로 해외 작가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고, 국내 작가로는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문학과지성사/2002)과 김호진의 <인디케이터>(국민서관/1999)를 추천합니다.


장편은 출간되어 있는 책들이 꽤 많은 편인데, 입문자가 SF에 대한 재미를 붙여가며 무난하게 읽으려면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행복한책읽기/2005)과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옹기장이/2005)가 좋습니다. 이 소설들은 과학기술적 상상력과 흥미로운 이야기 구성이 잘 혼합되어 각각 권위 있는 SF문학상을 수상한 걸작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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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준

 

1967년에 서울에서 나서 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수료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근대 과학소설사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1991년부터 SF 전문 기획번역가이자 과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KBS 라디오와 YTN-TV, 동아일보, 과학동아, 한겨레21, 씨네21, 전자신문, 페이퍼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낸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공저), <라마와의 랑데부>(옮김), <세계 SF 걸작선>(편역), <토탈호러>(편역) 등 2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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