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기억들, 포스트잇의 미학

 

[ 편집위원 노트 ]

 

 

구겨진 기억들, 포스트잇의 미학

 

 

오창은(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아무 흔적 없이 떨어졌다 별 저항 없이 다시 붙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들. 여태 이루지 못한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
    김영하가 산문집 『포스트잇』(현대문학, 2002)에 적은 아포리즘(aphorism)이다. 포스트잇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접착성을 지니고 있다. 떼어졌다가도 거리낌 없이 다시 붙는다. 포스트잇은 쉽게 떼어지기에 접착성이 약하지만, 반복적으로 활용 가능하기에 재활용성은 강하다. 김영하는 포스트잇을 인간관계에 비유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거리낌 없이 만나고, 상처 없이 헤어질 수는 없을까? 그는 포스트잇과 같은 관계를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이라고 하며 강한 여운을 남겼다. 김영하의 열망은 불가능한 관계를 향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상처를 남기지 않는 헤어짐은 없다. 흔적마저도 없는 만남도 없다. 만남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부담을 감당하고 있으며, 모든 헤어짐은 기억과 상처를 남긴다. 대부분의 관계들은 구겨진 기억들을 새겨 놓는다. 그렇기에 포스트잇은 ‘불가능한 관계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잇이라는 신기한 종이에 대한 비유는 많다.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한 커플을 ‘포스트잇 커플’이라고 한다. ‘포스트잇 걸(혹은 맨)’은 ‘필요하지만 소중하지 않은 이성 친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메모에 대한 직접적 비유도 많다. 어떤 사람은 포스트잇을 ‘만능 메모장’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다용도 종이쪽지’라고도 했다. 나는 포스트잇을 ‘카멜레온 날개’라고 부른다.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이 카멜레온처럼 느껴지고, 팔랑거리는 모습이 날개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무능한 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포스트잇은 미국 미네소타 광공업회사인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가 1963년부터 5년여 동안 개발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접착력이 약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회사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스펜서 실버의 발명품은 ‘무능한 풀’, ‘실패한 접착제’로 불리며 외면당했다. 실버는 실망했지만, 1970년에 특허권을 신청하는 것만은 놓치지 않았다. 3M은 업무 시간의 15%를 제품 개발에 쓸 수 있도록 창의적 자유 시간을 직원들에게 부여했다. 그 결과물은 테크 포럼(Tech-Form)에서 공유되었다. 스펜서 실버의 ‘무능한 풀’도 테크 포럼에서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뒤인 1974년에 반전이 일어났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아서 프라이(Authur Fry)가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던 중 찬송가 사이에 끼워 놓은 종이가 자꾸 떨어지자 스펜서 실버의 ‘무능한 풀’을 생각해 냈다. 아서 프라이는 책의 특정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스펜서 실버의 발명품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회사에 냈다. 아서 프라이의 아이디어에 창안해 3M은 1977년에 ‘포스트잇’ 제품을 처음 출시했다. 애석하게도 이 낯선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3M은 포기하지 않고 사무용품 사용자를 중심으로 샘플을 보내주는 등 마케팅 활동을 지속했고, 1980년부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조나 레러가 쓴 『이매진』에 자세히 등장한다.
    포스트잇 발명은 ‘실패한 발명품’도 활용하기에 따라 진정 ‘위대한 발명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창의성의 사례로 많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자체다. 스펜서 실버가 개인적 실패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발명품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아서 프라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결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스펜서 실버가 특허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제품의 실제 발명자에 대한 일화는 묻혀버렸을 수도 있다. 제품 출시 이후 3M이 확신을 갖고 진행한 마케팅도 주목할 부분이다. 우리는 창의성이 개인의 역량인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실제로는 공동의 노력의 소산이며, 창의성을 허용하는 환경이 산출해 낸 결과다.
    문학적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포스트잇은 유용한 메모 도구다. 포스트잇을 활용하면 영감, 상상력, 창조력, 연상능력을 훈련할 수 있다. 이 신기한 도구는 문학 작품 창작을 위한 ‘카멜레온의 날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조그만 쪽지에 시시때때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한다. 그것은 낱낱의 것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포스트잇은 특이한 속성으로 인해 연결 방법을 달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앞뒤를 바꿀 수도 있고, 단선을 복선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조합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흐름들이 형성된다. 낱낱의 아이디어 메모들은 배열을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의 흐름이나 서사적 연결로 나아갈 수 있다. 문학은 리듬이다. 포스트잇에 쓰인 메모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떼었다 붙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이미지와 서사의 리듬을 형성할 수 있다.
    흔히, 포스트잇은 기능적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 하지만 창작자는 유희적으로 더 많이, 때로는 낭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메모 자체가 낭비이기도 하다. 숱한 아이디어들 속에서 포착해 낸 메모는, 상념을 낭비한 결과로 탄생한 수확물이다. 그렇게 거둬들인 메모도 실제로는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도 창작자들은 메모를 지속한다. 아니, 멈추지 않다. 휘발하는 듯한 조그만 영감들을 소홀히 다루면, 그 어떤 소중한 작품도 써낼 수 없다는 것을 창작자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은 메모를 위한 낭비의 도구다. 그 낭비가 리듬을 형성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포스트잇의 미학’은 탄생한다. 메모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메모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읽고 쓰는 사람들은 ‘흔적 없이’, ‘별 저항도 없이’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거기에 문학적 상상력의 ‘은밀한 유토피아’가 있다.

 

    《문장웹진》 3월호는 패기와 열정으로 채워져 있다. ‘시가 내게로 왔다’에서 백은선, 박성준, 서윤후, 정영효와 같은 젊은 시인들이 예리한 시적 언어로 쟁쟁거림을 만들어냈다. ‘소설을 펼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차세대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박송아, 용현중, 전성혁, 양선형, 서동찬, 박사랑, 조우리, 김보현이 서사적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들 소설은 한국 소설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여기에 방현희 작가의 「밤의 환대」가 얹어져 있으니, 풍성한 소설의 잔칫상을 받아들인 기분이 든다. 에세이 테라스는 유종인 시인과 김중일 시인이 새롭게 연재를 시작했다.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유종인 시인은 앞으로 ‘나의 미술 유람기’를 이어갈 것이고, 김중일 시인은 ‘픽션 에세이’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조탁된 산문의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글들은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들이다. 소설 부문에서는 김선욱(필명:기운우)의 「1995 무너진 식탁」을, 산문 부문은 조주현(필명:배수진)의 「코 코 코…콩 나나나 무 무 물」을, 그리고 시 부문은 김은희(필명:위나)의 「내 발가락 속에는…」을 싣는다.
    새봄에 유독 풍성한 읽을거리들이 《문장웹진》에 넘실대고 있다. 게다가 봄나물의 풋풋함까지 더한 신인 작가들의 생동하는 언어들이 ‘문학의 봄볕’을 더욱 따사롭게 하는 듯해 흐뭇하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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