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술 유람기➂] 베끼기를 위한 여정

 

[나의 미술 유람기③ ]

 

 


베끼기를 위한 여정(旅程)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광저우(廣州) 외곽의 황포고항(黃浦古港)은 무덥고 고적했다. 항구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고항(古港)은 고둥잡이 배 몇 척만 띄워 놓고 버드나무나 비춰낼 따름이다. 그 옛날 정크선(船)들이 드나들던 항구라기엔 몬존했다. 8세기 승려 혜초(惠超)는 이곳에서 천축국에 이르는 바닷길을 처음 열었다 한다. 그는 마음에 무엇을 얻고자 심란한 인도양의 뱃길을 자처했던 것일까. 부처는 그 부처를 알고 죽이기 전에 부처를 베껴야 했을 것이다. 깨달음은 얼렁뚱땅 얻을 수가 없었겠지. 제대로 베껴 보려면 제대로 봐야 했으니까, 혜초는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겠다. 『왕오천축국전』은 그렇게 현장을 나름으로 베껴낸 기행문이 아니던가.
    구관조 한 마리가 부두 가까운 골목 가게 앞에 조롱(鳥籠) 속에 정물처럼 앉아 있다. 일행들의 발걸음은 더위에 지쳐 오히려 빨라지고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구월 중순도 넘었지만 광저우는 여름의 기운이 완연하다.
구관조, 나는 혼잣말처럼 주워섬겼다. 중국 땅에서 한국말을 시키면 저 녀석은 얼마쯤 반응할까. 내 말을 따라하기는 할까. 시답잖은 구경꾼의 지나가는 시비조에는 대꾸도 않을 것만 같다. 몇 초도 안 되는 스침 속에서도 나는 뒤를 돌아봤다. 잘못 봤는지 모르겠지만 조롱 속에서 눈깔이 머루알 같은 구관조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는 듯했다.
    ‘말을 해봐, 어서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내 말을 흉내 내다오.’
    나는 뜬금없는 주문을 넣으며 무심하게 옛 항구 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천축(天竺)에 가면 부처의 말씀이 흉내만 내던 것이 아니라 몸에 마음에 입혀지는 생불(生佛)의 전사(轉寫) 같은 게 이루어질까. 가봐야 안다, 그래야 부처의 발꼬락 냄새라도 맡을 수 있다.
    광저우에서 남방 해릉도(海陵島)까지 가는 네 시간여의 고속도로 주변엔 주로 논밭과 농가들이 펼쳐졌다. 그때 논 한가운데와 논 근처 둠벙 물가에서 풀을 뜯는 소가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소가 아니라 우격뿔의 검은 소들이었다. 흔히 물소라고 하는 남방 계열의 소들이었는데, 그 소들을 보는 순간 나는 화인(畵人) 최북(崔北)의 그림이 떠올랐다. 갈필(渴筆)로 눈 오는 밤의 신산한 분위기를 그린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은 아니었다. 다른 그림이었는데 검은 물소가 있는 풍경이었고 거기 검은 우격뿔의 물소가 있었다. 왜 최북은 당대 조선의 황소가 아닌 물소를 그린 것일까. 혹여 중국이나 일본의 화첩에서 본 소의 이미지를 이국적으로 담아내고 싶었을 따름인가. 잠시 혼동이 왔다.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아니 지금보다는 당대 조선의 소의 종류가 더 다양했을 수 있다는 가정을 끌어 보았다. 거의 사라져 가는 칡소처럼 남방 계열의 검은 물소를 닮은 우리 토종 검은 물소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최북이 기인(奇人)이라는 세간의 품평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무조건적으로 남의 화첩의 소를 베꼈을 가능성은 낮다. 열악한 신분이었음에도 자기 개성과 자존심을 목숨보다 귀히 여겨 돈으로 윽박지르는 파락호 양반 앞에서 제 눈을 송곳으로 찌른 그이고 보면 나의 의심은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붓으로 먹고 사는 환쟁이라는 그의 아호 호생관(毫生館)을 감안해도 그는 분명 밥을 구걸하는 용렬한 거리의 환쟁이는 아니었다.
    베끼는 것은 넓은 의미의 예술적 방법론이자 숙명일 텐데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마음이 간섭하는 지극함의 한 경지로 봐야겠다. 마음의 간섭은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자기만의 오롯한 것이어야 더 깊으니, 그 의취(意趣)는 그야말로 작렬하는 개성이어야 ‘나[吾]’답다. 나다워야 그대를 별스럽게 바랄 수 있을지 모른다. 허공에 활짝 핀 꽃을 그리기에 급급한 것보다는 땅에 누운 꽃들의 병든 누드가 더 요염할 수도 있다. 무얼 베껴 가질 것이냐. 그걸 어떤 마음으로 담을 것이냐. 물으면서 답한다. 그래야 갈 길이 조금씩 트인다. 마음이 트여야 관계는 막다른 골목 끝에서 실골목을 또 튼다. 여줄가리가 생긴다. 광장은 너무 좁다. 그건 번짐이지만 고립이기도 하다. 느껴지는 것만 그래서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는 것이 베끼기라면 그것은 추상과 구상과 전위(前衛)나 설치 같은 일체의 미술적 행위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흥취와 깨달음이 작용하는 순간에 베끼기는 깊어지고 돌올해진다. 구관조 한 마리를 나는 검은 주먹이라도 불러 보고 싶어진다. 주먹을 폈다 접었다 하면 거기서 어설픈 흉내말이 쪼물딱 쪼물딱 새의 부리로 갈려 나올 것만 같다. 소리를 베끼는 새를 신기해 하지만 예술로 보지 않듯이, 베끼는 일이 미술적으로 오롯해지려면 왜곡(歪曲)에 대한 호감이 있어야 한다. 저걸 나의 속내로 그리고 싶고 빚고 싶고 조각해 내고 싶은 나름의 형식들 말이다. 형식은 내용이 가슴의 불구덩이에서 업고 나오는 업둥이인가. 그는 형식도 내용도 아닌 하나의 숨결이고 눈빛이고 새뜻하게 듣는 웅숭깊은 가슴의 말이었던 것, 구관조의 말은 어떤 기척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랑을 어찌 베낄 수 있을까. 그것은 정감의, 영혼의 포용이나 끌림으로 볼 수 있을까. 천상의 것을 지상의 것으로 처음 흉내 냈을 때의 그 떨림은 상대를 속이려는 사람의 불안증은 아닐 것이다. 눈보라 치는 밤 황폐한 화사(畵師)의 남루한 옷섶 안쪽에 서렸던 영혼은 애꾸눈으로도 잘 보이고 청맹과니의 눈으로도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겐 그려내고 싶은 게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수전증의 손으로 어서 오막살이에 가서 장지를 펼쳐 그려 놓고 죽어도 죽어야 한다는 애잔한 사랑 한 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최칠칠(崔七七), 최메추라기, 최애꾸눈, 환쟁이 최북은 됫병 술에 억병으로 취해 서울 사대문 근처에서 얼어 죽었다. 그 자신의 마지막이 또한 그림이었다.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그리다 마지막엔 아무도 곁에 둘 수 없는, 아무도 곁에 있지 않은 죽음이 깊은 졸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랑은 어떤 자세로 이뤄지는 것일까요. 하나의 포즈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형식을 압도하는 내용상의 진정성을 간구하는 문제일까요. 사랑을 먼저 베끼고 싶었을 때 가슴이 설렜지요. 아마 그대를 닮고 싶었을 겁니다. 그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나 자신을 그대의 것으로 베끼고 싶었을 겁니다. 예술적 모사(模寫)의 시작도 아마 그러했을 겁니다. 열망과 끌림이 시작된 것이죠.
    짝퉁도 일종의 예술적 기초 솜씨에 해당하나, 그것은 진전을 하지 않는 외향적 베끼기에 머문다. 대상을 기가 막히게 거의 똑같이 그리거나 만드는 저 솜씨의 이면에는 대륙의 예술적 기예(技藝)가 밑바탕이 된 건 아닐까. 불순한 의도였겠지만, 진짜 계란과 거의 똑같은 공업용 수지로 만든 계란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을 모르고 먹은 사람은 목숨이 위험해졌다. 그 분간할 수 없는 모조(模造)의 지경은 예술적 눈썰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죽음을 불러오는 베끼기의 수준은 그러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사회적 제약 속에 걸러진다. 예술이 아닌 사기와 살인미수가 거기에 도사렸을 것이다. 베끼기는 그 수준이나 목적 그리고 그 과정의 결과에 따라 이렇듯 사악한 것에서부터 사랑에 드는 것까지 다양하기까지 하다.
    예술에 있어 모든 첫걸음은 이런 흉내 속에 절박해진다. 왜냐면 흉내는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이 건너가야 할 하나의 외나무다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나무다리 너머 저편으로 건너가지 않고 고만고만한 예술적 안위의 이편에 머물기도 한다. 그들은 나름 훌륭한 누구누구의 제자들로 자평하면서 만족한다. 아류(亞流)들은 제 고독을 지키거나 되살리는 내면의 소유자가 되기 어렵다. 적막을 깊이 키우는 작가는 자신의 고민을 이리저리 아프게 궁굴리며 어느 아침에 제 머리에 묻은 피가 꽃인 것을 안다.
    제백석(齊白石)의 모사품인 줄 알면서도 나는 족자(簇子) 한 폭을 샀다. 전체 세로 길이로만 보면 내 키를 훌쩍 넘는 긴 족자 그림이다. 문인화에 속하는 담백한 생략이 꽤 분위기를 내는 축이다. 뒤쪽 배경으로 길쭉한 바위산이 양립해 있고 그 앞 가운데는 솔수펑이와 그 곁에 집 한 채가 있다. 아이들 네 명이 죽마(竹馬)놀이를 하느라 기우뚱거리고 넘어져 자빠지고 다시 무릎의 흙먼지 털고 일어나서 죽마 끌고 걸어간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데 웬만한 바위들이 재미있다는 듯 겨우 말을 참으며 저들을 바라보고 있다.
    좋아하긴 하지만 안목이 일천한 나로서는 그냥 제백석이라 믿어 주고 고민이 스치기도 한다. 이만한 제백석 그림의 흉내를 낸 환쟁이는 제백석이 아닌 제 이름의 본류(本流)로 나아갈 마음은 아니 들었을까. 금전적 주문이 있던 그림이지만 그래서 흉내에 충실한 그림은 남의 비석을 옮겨 세운 무덤처럼 공허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기 말을 거세당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구관조는 그래서 신비롭고 기이하고 재밌는 볼거리 새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조롱에 갇힐 수밖에 없는 기물(奇物)이지 않았을까. 자세히 보면 사람 말을 흉내 내는 새들은 다른 새들에 비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작을 더 잘한다. 그것은 때로 슬퍼 보인다.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느라 제 딴엔 머리를 굴려 따라하려는 그 몸짓 속에 이미 날짐승의 활개가 사라지고 있는 인상이다.
    누군가의 그림이나 작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내는 동안에 그는 이미 예술적 자아를 고스란히 질식시키는 손재주의 능란함만 불러오지 않았을까. 조롱 속의 구관조의 말 흉내와 모사꾼의 베끼기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랑은 그런 면에서 편애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치우치는 마음은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자의적으로 베끼는 데 몰입한다. 우리는 그걸 흔히 연애라 부른다. 사랑을 하면 서로 닮아 간다고 하듯이 그 닮음은 흉내이고 마음의 베끼기인가. 그러나 이런 마음은 정신의 모사(模寫)라기보다는 포용에 가깝다. 누군가의 몸짓과 마음에 대한 지극한 치우침, 그 편애로부터 사랑은 그 자신의 마음의 기분을 새롭게 얼러낸다. 아니 그 자신의 마음에 누군가의 마음이 되살아난다고 해야지.
    베끼지도 않고 상대가 내 안에서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그건 구관조의 흉내보다도 못한 소심함이 아닐까. 중국에서 소심(小心)은 우리나라의 소심과는 차원이 좀 다르긴 하다. 그것은 상대방의 혹은 어떤 대상을 주의하고 조심(操心)하는 세심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고 시(詩)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상적인 베끼기는 훌륭해야 하기 때문에 의도와 안목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송대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 그런 산수풍경을 보고 그리는 안목을 일갈한 대목이 아직도 새뜻하다.

 

    遠山無 , 遠水無波, 遠人無目, 非無也, 如無爾. 山得水而活, 水得山而媚。

– (먼 산은 주름이 없으며, 먼 물은 물결이 없으며, 멀리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산은 물과 함께 있어야 활기를 얻고, 물은 산을 드리우고 있어야 그 아름다움이 은근하다.)

 

    산수훈(山水訓) 장(章)에 있는 한 대목인데,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의 관계를 심리적 안목에서 말하고 있다. 아니 심미적(審美的) 안목이 더 그러하겠지 싶다. 그 마지막은 베끼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잘 베껴 그 분위기를 잘 얼러낼 것이냐에 대해 말해 준다. ‘얼러낸다’라는 말이 이런 대목에서 요긴하게 마음을 친다. 칭얼대고 급기야 우는 아이를 어르듯이 마음은 죽을 때까지 얼러내는 것이 그림의 수양이 아닐까. 마음이 언제까지 큰 사랑의 어른이 되는가 물어봐야 하는 나이고 당신이다.
    진정한 예술적 베끼기는 변화나 변형, 자기 갱신을 품는 냅뜰성, 그 오지랖 속에 능놀게 된다. 그 흐름을 간직한 흉내에는 이미 새로운 혼이 얼비치고 기웃거린다. 다 베낄 수도 없거니와 다 베낄 필요도 없다. 이것은 단순히 동양화의 한 이론적 방법에 대한 요결(要訣)로만 한정돼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답습이나 추종이 아니기에 그 창조적 대응이 마음에 오롯해진다. 나는 그걸 그대의 그 마음을 다 그려낼 수도 없거니와 그려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대가 움직일 수 있고 반응할 수 있는 마음만 오롯이 그려내고 싶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구관조는 제가 흉내 내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사람은 제가 흉내 내는 것의 뉘앙스를 알고 있다. 그것이 웃음인지 아니면 사기인지 또 궁극의 예술인지 말이다. 그러나 사특한 곁가지로 나아가는 흉내나 모사나 모조는 예술과는 전혀 동떨어지고 두동진 세계에서 유통망을 꿈꾼다. 모사의 세계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익명을 자처하지만 예술의 세계는 그걸 만든 사람이 유명을 얻듯 아니듯 죽음까지의 일생이 놓일 따름이다. 소리의 모사꾼 구관조는 원래 제 목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흉내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이 없다. 모든 예술의 진전은 갈등의 구조 속에서 새로워지고 깊어질 요량이다. 나와 그대는 그 갈등의 와중에 살아간다. 나는 안정된 영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스럽다. 혼란의 가중과 불안의 심연을 저버리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련다. 그 갈등의 구조 속에 예술은 위악의 경계와 국경, 지평선과 수평선이 존재한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엄중한 자기 선언과 행동, 그리고 모르는 곳으로 가자. 자기도 모르는 사랑의 입지를 향해 마음은 불안하고 막막하고 덧없다. 문득 외마디 큰 소리를 지르면 산과 광야는 내 소리를 되울려 준다. 메아리조차 내 대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만히 안다.

 

    좋아하고 부러우면 베낀다. 베끼기는 그래서 일종의 벗기기다. 그것은 내면이다. 겉으로 베끼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으로 베낀다. 베껴서 내면으로 옮아가고 닮아 가며 그렇듯 제 마음에 스미고 스며서 더 이상 베낄 대상이 없을 때까지 그리워한다. 그런 다음에는 어느새 누구에게도 물들 마음이 없는 자신을 베끼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지난함은 늘 길 위에 꽃을 심는 것처럼 한낮에도 쉽게 저물어 무너지고 꺾이곤 한다. 종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결국 아류(亞流)에 머무는지도 모른다. 이 아류를 넘어서는 고행, 아니 이 고통스런 즐거움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라는 불가적 일체성과는 조금 류(類)가 다를지도 모른다. 사랑도 베낀다. 사랑하는 사람을 제 곁에 두려고 하고 그의 손을 잡으려 하고 그의 눈빛을 가슴에 담아 어르며 밤낮으로 떠올리는 것도 베끼기다. 그의 단순한 말과 몸짓이 천둥번개처럼 제 가슴을 억누르거나 봄날 벚꽃나무처럼 부풀게 하기도 한다. 그의 눈빛과 그만의 스타일과 그의 무표정한 낯빛조차 그리움의 포석 안에 머물게 한다. 아, 최고봉이 아니라면 어떤가. 사랑의 아류라는 게 있더라도 거기 새뜻하게 머물 수만 있다면, 그런 나를 그림으로 살려낼 수만 있어도 좋겠다.
    위조지폐는 지폐를 좋아하는 베끼기의 욕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 알다시피 베끼기를 수단으로 삼는 부정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종내 변형의 힘으로 살아간다. 같은 그림을 또 그릴 필요가 없다. 뉘앙스를 조금 바꾸자, 스스로에게 먼저 말한다. 먼 산허리에 오늘은 안개의 허리띠를 두르고 거기 산승(山僧)을 들이는 변화를 줄 수도 있겠다. 위조지폐는 속이고만 싶지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결과물일 텐데 그래서 베끼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진실을 벗길 수는 없는 것이다.
    파초가 시든다. 가을이 와서가 아니라 가을을 이길 만한 여름의 기운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제 속의 열정이 덧나고 빈혈에 빠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그 대상을 그리고 그 예술적 분위기를 거의 다 베꼈다 여겨졌을 때 환멸이 찾아온다. 사랑은 완성되지 않고 변형에 들었을 때 서늘해진 영혼의 눈매를 보여준다. 겨울이 와도 시들지 않는 파초가 된다. 첫사랑은 마음의 담묵(淡墨)을 묻혀 영혼의 필법(筆法)을 익히기 위한 애틋한 붓질에 가깝다. 또 다른 입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소나무 숲에 봄마다 아니 어느 때고 바람이 분다. 좋은 시문을 칭찬할 때 송뢰(松賴)라 이른다. 그런데 이 바람들은 그윽한 솔 향을 품은 일품(一品)이면서도 그 너머를 갖기 어렵다. 그것은 그냥 솔수펑이에서 불 줄 아는 바람일 따름이다. 솔숲의 기운을 품어 불 줄 아는 베끼기에는 충실하지만 그 바람 자신의 또 다른 고유한 바람을 얼러내지는 못한다. 파탄이 없다. 그 이상의 것을 바랄 수는 없다. 그윽하고 청아한 솔바람이 여염집 뒷간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쿠린내가 또 제 몸에 밴다. 배척할 수가 없다. 자연엔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자의식의 산물이고 여줄가리다. 사랑의 기운은 배타의 증오를 낼 것인가 포용의 너그러움을 품을 것인가, 또 다른 묘용(妙用)을 가질 것인가 망설인다.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박재삼 「천 년의 바람」

 

    사람의 사랑이 천 년의 순애보로 반복되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그 반대 파경 속에 출렁이는 것은, 같은 자연이면서 인간이라는 자연의 속종이 간단치 않게 부딪히기 때문이다. 예술이 본래 가진 아름다움은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의 갈증을 가졌다. 환멸과 사랑은 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배와 등짝을 선택하여 가질 수는 없다. 그는 모래먼지 날리는 거리 한 귀퉁이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눈물도 웃음도 다 지나쳐 버린 사람의 가슴으로 거기 뭔가 돋아나길 기다린다. ‘천 년 전의 되풀이’가 자연이라면 천 년 동안의 되새김은 미술의 작업이다. 아니 새로이 보아내지 못하면 천 년이 일 년만 못하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무리 근사해도 내가 하는 어리석은 사랑의 손맛을 따를 수 없다. 되풀이는 베끼기지만 되새김은 변화와 각성일 테고, 내 사랑은 내가 느껴야 내게 살아난다. 나는 뻔질나게 달라졌다와 같아졌다를 반복한다. 아니 그 중간에서 새로운 모색을 한다.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탐을 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베낀다. 이 시에 대해 오욕을 주고자 함은 아니다. 천 년의 되풀이는 반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의 상태 속에 머물고 싶기 때문이다.
    ‘지치지 말 일’이 사랑의 일이라면 내가 베끼는 것은 이미 웅숭깊은 영혼의 흐름을 뜨는 일인가. 사랑으로 베끼는 일은 새로워지고 깊어지고 무끈한 가벼움의 영혼을 들인다. 파초 그늘에 젖은 나를 그려 달라, 나는 그대에게 주문을 하지만 그대는 파초를 치우고 나의 그늘 없는 찡그린 민낯만 그린다. 나는 파초 그늘로 내 마음의 한 축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그대여 더 반복을, 아니 더 되풀이해서 그대에게 말해야 한다. 그대가 되풀이가 아닌 되새김으로 나를 느낄 때 나도 그대를 내 마음에 조금은 그려낼 수 있겠으니 말이다.

 

 

 

작가소개 /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2001), 『교우록』(2005), 『수수밭 전별기』(2007)이 있고, 산문집으로 『염전』(2007), 『산책』(2008)이 있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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