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환대

 

 

밤의 환대

 

 

 

방현희

 

 

삽화-밤의-환대

 


 

 

 

  1.

    어둠 속에서 윤곽만 남은 그를 내려다본다. 그의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내린 지 이십 분.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손을 얹지 않아도 일정해진 호흡을 알아볼 수 있다. 환의 대신 깔끔하게 다린 푸른 피케 셔츠 위에 두 손이 가지런히 올려 있다.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밤빛이 가만가만 움직여 그의 손등에 얹힌다. 그는 이제 깨어나는 일 없이 아침 일곱 시까지는 몸 한 번 뒤척이지 못할 것이다. 얇은 이불 아래로 넓적한 보호대가 그의 명치 께를 가로지르고 있다. 골반을 가로지른 보호대는 그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수면 중에 경련을 일으켜 침대에서 몇 번 떨어졌던 그는 자신의 잠을 믿지 못한다. 자신의 불안정한 잠을 믿느니 아늑하게 조여 주는 압박대를 믿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에는 깊은 어둠이 고여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얇은 시트 위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뼈가 만져질 만큼 마른 가슴이지만 그 한가운데서 열기가 느껴진다. 아직 심장박동이 느슨해지지 않고 가슴뼈 아래서 가늘게 파닥거리기 때문이다. 수면제와 마약성 진통제로 억지로 재워서 그런 것이겠지. 꼭 여며진 커튼을 확인하고 취침 등을 끈다. 제자리에 선 채 일이 분 기다렸다가 병실 문을 연다. 네가 거기 어둡게 있다. 기쁨으로 가슴이 세차게 뛴다. 밤을 향해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다. 그러나 밤은 말을 모르므로, 나는 그 속으로 발을 딛는다.
    문을 열자 밤이 달려든다. 달려드는 밤으로 몸을 던진다. 밤은 미끈덩하다. 잡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층계참은 좁고 계단은 바로 앞이다. 굴러 떨어질 뻔한다. 꼬리뼈에 힘을 준다. 몸이 힘차게 곧추선다. 첫 계단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다. 잘 보기 위해 눈을 꾹 감았다 부릅뜬다. 순간적으로 모여든 빛의 잔상이 도리어 눈앞을 허옇게 만들어버렸다. 눈은 없는 빛을 보는 착각을 일으키고 그 사이에 온몸을 감싼 어둠은 피부에 닿았다가 내부로 스며든다. 이 피부 아래는 언제나 진득한 어둠이었을 테다. 한 번도 빛이 닿은 적 없던 2밀리미터 안쪽의 내부를 나는 본 적이 없으나 어둠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나의 내부는 밤을 더욱 반기겠다.
    4층을 달려 내려간다.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에 벽에 붙은 작은 비상등은 적당치 않다. 층층이 저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은 점점 깊어지는 어둠에 잠겨 있다. 그 어둠 속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발은 더없이 가볍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며 달려 내려간다. 밤에 서너 번 계단을 뛰어 내려간 것으로 어쩌면 내 다리는 계단의 폭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단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를 꽁꽁 묶어 놓던 그를 지운다. 부릅뜬 그의 눈을 맨 처음 감겨버린다. 내게 퍼부었던 말은 거꾸로 그의 입안으로 쑤셔 넣고 내 손목을 틀어쥐던 손은 잘라버린다. 나는 달려 나가고 그는 지금 압박대 밑에 꽁꽁 묶여 자고 있다. 마침내 일층 비상문을 열고 튀어나간다.
    밤이 몸에 철퍼덕 닿을 때면 기쁨으로 뱃구레 깊숙이 척추까지 떨린다. 고급 리조트 같은 요양병원 뒤뜰은 앞뜰만큼이나 넓디넓은 잔디밭이다. 잘 손질된 잔디밭을 둘러싸고 산이 솟아 있으며 사이사이 산책로가 나 있다. 산책로는 깊은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봉우리 중 하나를 밀어서 병원 부지를 만든 것 같다. 그만큼 넓다. 앞뜰은 병원 관계자들을 위한 골프장과 연결되어 있다. 능선에 능선으로 저 아래까지 이어지는 푸른 잔디밭은 깊은 숲속보다 훨씬 막막하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없다. 이 병원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공간이 많다. 그 공간들은 매우 크다, 그리고 깊다.
    어둠 속의 잔디밭은 실제보다 훨씬 막막하다. 방향감각도 사라진다. 어젯밤에도 나왔었다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크다는 것, 깊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무작정 몸을 던진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길고 큰 것은 몸이므로 몸으로 재는 수밖에 없다. 잔디밭의 끝을 향해 달린다. 처음에는 맨땅을 달리다가도 넘어졌다. 매여 있던 나에게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장애였다. 지금은 허파가 들이켜는 게 맑은 밤공기가 아니라 잔디 위에 미세하게 내려앉다가 도로 날아오른 낮의 먼지라는 것을 알 만큼 익숙해졌다. 밤의 잔디밭은 시간에 따라 피어오르는 게 다르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가장자리의 짙은 어둠에 걸려 고꾸라질 뻔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어둠이 나를 찔렀다. 배꼽 높이의 나무였다. 갓 다듬어 놓은 가지 끝에 손바닥이 긁혔다. 쓰라리다. 옷에다 쓱쓱 닦고 산책로를 찾는다. 층이 진 어둠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산책로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망망한 곳에 몸을 드러냈다면 다음 순간에는 숨기고 싶은 것뿐이다.
    초입은 가파르다. 산책로는 나무 패널을 촘촘히 짜 넣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위험은 최소화되어 있다. 그렇긴 해도 양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드리워져 있고 경로도 구불구불하다. 누군가 말하기를 어떤 산책로는 숲의 터널 같다고 했다. 이곳이 바로 그 터널 같은 산책로라고 생각한다. 나뭇가지는 흔히 어깨며 목을 쓰다듬는다. 산책로에 들어서 줄곧 나를 쓰다듬은 것은 나뭇가지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다리를 쓰다듬는 것도 나뭇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를 잡은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손이었다.

 

 

  2.

    손이 말했다. 밟지 마. 누군가 그 몸을 최대한 산책로 가장이에 밀어붙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다리를 잡은 손이 떨고 있었다. 나는 조금 내밀어진 그의 발을 콱 밟았다가 막 떼어 놓은 참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그를 보았지만 나를 마주 보지 않는 그는 내가 있는 병실 바로 위층의 젊고 잘생긴 알코올중독자였다. 그가 없어진 것을 알면 그를 찾으러 병원을 뒤질 텐데. 그를 잡아가면 바로 우주복을 입혀 침대에 묶어 둘 텐데. 그는 어제도 탈출했다가 붙잡혀 들어갔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깝다 해도 깊은 산속 광활한 들판 위에 오직 홀로 지어진 곳이라 걸어서는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그는 무턱대고 걸어갔고, 그렇게 걸어간 이유는 술을 사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했다. 어젯밤에 나는 앞뜰로 뛰어나갔다가 그가 붙잡혀 가는 것을 보았다. 밤의 한가운데가 날카로운 손전등으로 찢기고 주먹질 발길질로 뒤집혔다. 그는 거세게 저항했다. 온몸을 뒤틀었고 주먹을 내질렀고 발을 번쩍 들어 올려 그들을 찼다. 그를 붙잡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춰 을러댔다. 옆에서 그를 비추었다 앞을 비추었다 하는 손전등 불빛이 어지러웠다. 고요했던 밤이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나를 격앙시켰다. 절망적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는 젊은 알코올중독자의 얼굴. 나는 청년을 잡아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가볍게 집어던졌다. 나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 던져진 채로 구겨져 있었다. 어둠 속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풀밭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천천히 몸을 뒤집었다. 나를 잡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손목을 틀어쥐던 그 사람은 경련을 두려워하며 간신히 잠들어 있다. 수면제는 틈이 많아서 각성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그는 수면의 경계에서 이쪽으로 미끄러졌다 저쪽으로 미끄러지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다가 가끔 눈을 뜨기도 하지만 압박대를 벗겨낼 만큼 정신이 들지는 못한다. 나는 그의 불안한 잠이 안쓰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24시간 감시하는 그의 푸른 눈빛 아래에서 얕은 잠을 자야 했으니까. 이제 그의 불안한 잠을 바라보는 내 눈이 파랗게 빛난다.
    젊은 알코올중독자가 나를 잡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에 유독 짙은 어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집어넣고 한껏 웅크린 그에게 말한다. 너는 밤이다. 그는 병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고, 가족에게로 가고 싶을 뿐이고, 끊임없이 떨리는 척추가 진정되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잡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엿본 병실의 풍경은 그가 그 어느 것도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새벽, 탈출 소식을 들은 그의 부모가 달려왔다. 그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최소한의 의료진이 움직였다. 담당 닥터와 간호사 하나만 드나드는 병실은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나는 문에 찰싹 달라붙어 병실 안을 훔쳐보았다. 부리나케 달려왔을 그의 아버지는 머리가 단정히 빗겨져 있었고 정장을 갖춰 입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 밤중에 헤어샵이라도 다녀온 듯 세련되게 부풀려진 머리 모양에 샤넬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젊은 환자는 침대 맞은편에 놓인 일자형 소파에 단정하게 무릎을 붙이고 앉아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마치 그를 찍어 누를 듯한 자세로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한 발짝 뒤에서 아버지의 몸에 자기 몸을 삼분의 일쯤 가리고 죄송하다는 듯이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었다.
    세 사람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훔쳐보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젊고 잘생긴 알코올중독자는 아무 표정 없이 두 무릎을 단정히 붙이고 앉아서 두 손으로 몸에 붙은 무언가를 떼어내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자들이 겪는 금단증상 중에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지금 그의 몸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고 그는 그것을 떼어내는 짓을 일정한 리듬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절망에 빠진 위압적인 아버지와 그 그늘에 몸을 숨긴 어머니. 너는 밤이다. 너의 부모는 그림자일 뿐이다. 밤에게 그림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닥터가 직접 허연 우주복을 가지고 병실로 들어가며 나를 흘겨본다. 주사를 두어 대 맞은 그는 팔이 아주 긴 질긴 천으로 된 옷에 가둬진다. 긴 소매는 양쪽으로 엇갈려 몸을 둘러 뒤에서 묶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로 옮겨졌다. 침대에 똑바로 눕혀진 그는 얌전히 눈을 감는다. 순하디 순한 절망이다. 순하디 순한 얼굴 너머로 검은 창이 보였다. 그의 부모는 단 한 번도 자기를 거역해 본 적이 없는 순함에는 어찌해야 하는지 모른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말 없이 그의 아버지는 병실을 나선다. 그의 어머니는 어깨를 옹송그리고 최대한 남편 등에 달라붙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돌이켜보니 그들은 언제나 밤중에만 병원에 왔던 것 같다. 비밀스럽게. 그들 뒤로 단단한 쇠창살이 박힌 검은 창문이 보인다. 오층 병실은 대부분 자해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입원한다. 병실은 회장님 방이라 해도 좋을 만큼 크다. 소파도 크다. 벽지는 민트색이다. 창 아래쪽에는 예쁜 테이블과 의자도 놓여 있다. 여자 친구가 놀러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면 아주 좋을 게다. 그런데 텅 비어 있다.
    산책로 가장이에 숨은 너는 이렇게 온순하게 숨을 죽이고 잠잠하다. 수렁같이 잠잠하다. 너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울까, 하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수풀 속에 폭 파묻힌 밤 같은 너는 거기 있는 게 맞춤해 보였다. 내 방에 데려가 소파 밑이나 침대 밑, 옷장 속에 숨겨 주는 것보다는 나무 덤불 옆이 낫겠다. 너의 손을 놓고 일어난다. 나는 오르막으로 몇 걸음 올라간다. 산책로의 깊은 골이 나를 여기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던가 보다. 평소 산책을 이끄는 명상지도사와 그날 산책을 신청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함께 걷는 곳이다. 우리도 가끔 신청했지만 그가 몹시 허약해진 상태여서 오르막 산책로를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나는 더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를 데리고 내려와야 했다. 산책로 끝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산속이고 정상은 안개에 휩싸이거나 구름에 휩싸이거나 비에 휩싸여 있곤 했다. 나는 한 번도 온전한 산의 정상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몇 걸음 오르다가 멈춰섰다. 이미 그것보다 깊은 밤을 만나서일까. 산책로 저 끝에 대한 흥미가 급작스럽게 떨어졌다.
    아래로 고개를 돌린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던 먼 허공에 누군가 허겁지겁 깔아 놓은 듯한 불빛이 보인다. 크기도 밝기도 제멋대로다. 어떤 불빛은 천 광년쯤 달려와 지쳤다는 듯이 까무룩 죽어버린다. 아니다, 저건 하늘이 아니라 고급 리조트 같은 병원 건물이고, 지금은 불면증 환자조차 대부분 불을 끄는 시간일 뿐이다. 알코올중독 청년은 덤불 속으로 깊숙이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발로 길섶을 툭툭 차면서 걸었지만 아무것도 차이지 않았다.

 

 

  3.

    일층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폐쇄 병동을 탈출했던 환자가 막상 탈출에 성공하자 갈 곳이 없어 제 발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평소 병원에서 가장 번잡한 일층 로비에 서자 그 적막함이 더욱 배반감을 느끼게 했다. 하룻밤 헛걸음한 셈 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다가 복도 저 끝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컴퓨터실이었다. 컴퓨터실 안쪽으로는 칸막이가 또 있었고 그곳은 게임 룸이었다. 대부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간혹 수면제를 쏟아 부어도 못 자는 환자가 거의 귀신에 가까운 얼굴로 푸르게 점멸하는 빛 속에 잠겨 있곤 했다. 지금은 보호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환자 한 명이 게임 화면에 몸을 바치다시피 빠져 있었다. 옆모습을 보자 하니 마약중독을 치료하러 온 사람이다.
    그는 어떤 종합병원 정형외과 의사인데 수술에 실수가 많아서 스스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것은 환자에게 투여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자기 팔에 주사한 것. 마약이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된 병동에서 범인을 찾아냈고, 그는 자진해서 마약을 끊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제 마약은 끊었는데 불면을 끊을 수 없다고 한다. 그의 밤은 아주 하얗다고 한다. 아무 움직임도 없고, 아무 격랑도 없다고 한다. 새하얀 소금 동굴에 갇혀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는 병원용 슬리퍼를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닌다. 동굴 천장과 벽에서 소리 없이 부서져 내리는 소금으로 바닥은 파도 파도 끝없는 소금밭이라 했다. 소금밭은 맨발로 걸어야 좋다고 해서 맨발인 것이 아니고 새하얀 소금밭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게 싫어서 맨발로 자국을 내고 흩트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헤쳐 놓아도 발자국조차 남지 않아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모든 게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금 동굴을 주먹으로 쳐도, 소리를 질러도, 부서지는 건 소금가루일 뿐이고 부서져 날리는 소금가루에 닿은 모든 소리들은 가뭇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게임을 하는 건, 화면에서 푸른빛이 점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는데 다만 푸른빛은 자기가 앞에 앉기만 하면 전신을 감싸고 점멸하기 때문이란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알아내는 걸까. 층마다 있는 휴게실에는 간단한 홈시어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누군가 먼저 틀어 놓은 영화를 함께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자들과 보호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건넬 수 있다. 거기에서는 건네지지 못할 게 없다. 알코올중독 청년의 아버지가 장관인지 차관인지 고위공직자라는 것도, 마약중독 의사가 이혼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도, 내가 폭력 남편과 살았다는 것도 손에 손을 거쳐 건네진다. 사회적으로 이렇다하게 알려진 사람들이 노출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깊은 산중의 요양병원을 찾았건만, 소문은 은밀하게 그래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난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소문이 건네지길 기대한다. 키가 크고 잘생긴 담당 의사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다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소문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두 번째 움켜쥐었을 때 두 사람은 눈이 맞았고 급한 대로 비상계단으로 서로를 이끌었다는 소문도 떠돌 게다. 비상계단은 여자와 남자가 급박한 정사를 벌이기에 매우 좋은 장소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소문은 언제나 사실보다 진했고 소문은 언제나 한 가닥 진실이지 않던가. 닥터는 우발적이었다고 하고 여자는 진실했다고 말할 것이다. 여자는 닥터의 숙소에 숨어 들어가고, 닥터의 샤워실에도 몸을 숨겼다고 할 것이다. 알몸으로 샤워기를 들어 머리를 적시던 닥터가 너무 놀라 뺨을 때렸고 여자는 피를 토하지는 않았지만 피를 토하는 심경이었으며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붙잡힌 여자는 기쁨에 차서 뼛속까지 떨며 실토를 해야 한다. 복수의 전 과정을.
    어둠 속에서 마약중독 환자를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건 아니었다. 그가 불현듯 나를 돌아보았다. 내 이야기를 상상하느라 멍하니 열려 있었을 뿐인 내 눈 속에서 그가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 갔다. 그는 초점을 정돈하더니 어두운 문설주에 기대선 나를 정확히 겨눠보았다. 마침내 그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고 나를 향해 떼는 걸음이 사나웠다. 기분 나쁘게 뭘 봐? 그는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내 코앞에 자기 턱을 들이밀었다. 예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려 줘야 했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광이 나게 닦인 인조 대리석 바닥을 밟고 선 시커멓고 푸르죽죽한 발이 꼭 죽은 사람 발 같았다. 기분 나쁘게 뭘 봐, 그 말이 계속 귓가에서 되풀이되었다. 기분 나쁘게 뭘 봐? 요즘 나를 보는 사람마다 나를 기분 나빠했다. 눈이 마주치면 다들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홱 고개를 돌리곤 했다. 담당 의사도, 간호사도, 환자 보호자들도, 간병인들도. 살쾡이가 밤마다 닭장 근처에 나타나 잠든 닭들을 지켜보다가 그중 한 마리를 공격해서 물어가 버리는, 그런 것을 연상하고 있는지 나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덩치가 큰 남자가 나를 찍어 누를 듯이 눈을 부라리며 가슴을 내밀고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도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네 비밀을 쥐고 있어, 네 비밀을. 주문을 외웠다. 네가 밤에 잠을 자기 위해 창녀를 불렀다는 것을 알아. 아니, 정부였다지. 너의 말에 순종하는 착한 정부였다지. 너를 재우기 위해 그녀는 검은 트렌치코트에 검은 원피스에 검은 속옷을 입고 왔다지. 그것을 하나하나 벗자, 도로 새하얀 몸이 드러나서 너는 화를 냈다지. 다시 옷을 하나씩 입혔더니 잠이 슬슬 다가왔다고 했어. 사랑하는 정부가 왔는데 그냥 잠을 잘 수는 없어서 엉덩이만 내놓게 했는데, 그걸 보자 도로 잠이 달아나서 너는 그녀를 내쫓아버렸지. 너에게 밤은 소금밭이라 했지. 네 눈이 아무리 파랗게 타올라도 너는 꿈쩍도 하지 않는 하얀 소금밭에서 버르적거리며 죽어가고 있어. 나는 네가 무섭지 않아. 네가 궁금할 뿐이야. 잠 못 드는 너의 밤이 어떠한지.
    마약중독 환자가 갑자기 어깨에서 힘을 빼고 고개를 푹 떨구더니 내 옆을 떠났다. 저러다 엘리베이터까지 가지도 못하고 복도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비척댔다. 그러나 저 사람은 자신이 잠들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수면제를 한 번에 두세 가지 주사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뺨은 거멓게 죽어가고 눈자위는 퀭해지며 눈은 그럴수록 투명해진다. 그의 심장은 얕고 빠르게 뛰면서 이승에서 차근차근 밟고 가야 할 순간을 건너뛴다. 그렇게 건너 뛴 곳에 저승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의 심장은 아예 멈춰서 저승에 내리게 하지도 않는다. 빈맥은 일정하게 뛰어야 할 심박을 짧게 짧게 몸서리치듯 건너뛰는 것이다. 그런 심장은 그 사람을 어느 곳에도 머물게 하지 않는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불안함을 견디고 살아야 한다. 그들은 제발 온전한 밤을 달라고 애원하지만 신도 의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를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유령이나 본 듯 흠칫 흠칫 놀란다. 간단한 인사조차 주고받지 않고 짧은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다들 살금살금 피해 간다. 그럴수록 그의 눈자위는 거멓게 죽어가고 눈동자는 투명해진다. 너는 밤이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린다. 나는 그가 죽지도 못하는 밤을 보내기 위해 비척대며 병실로 들어갈 때까지 뒤를 밟는다.
    마치 그들의 밤을 다 훔친 듯 지치고 뿌듯해져서 내 병실로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잔다. 나의 환자는 내가 들어온 것을 수면 중의 각성으로 알아차린다. 그는 손을 내젓고 싶어 하지만 가위눌림은 손을 내젓게 하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한다. 그는 가슴을 크게 부풀리려다가 경기를 일으키고 그만 다시 잠에 떨어지고 만다. 다행히 압박대가 그를 보호해 준다.

 

 

  4.

    어스름이 깔린다. 발목 근처에서 점차 차오른다. 코끼리 다리를 묶은 아주 가는 사슬이 거대한 코끼리를 가둬 놓듯 실안개 같은 어스름이 그를 가둔다. 그는 자진해서 압박대로 자신을 묶는다. 밤이 자기를 훔쳐가기나 할까 봐 두려운 것인가. 자신의 눈에 자신이 아닌 사람이 깃들어 싯누런 광채를 번득이며 나를 잡아 죽이려 하고, 말리는 사람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를까 봐 두려운 것일까. 덩치가 커다랗던 사람이 뼈만 남아 언제 암세포가 심장을 멈추게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혼자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워진 그는 이제 내가 자기 앞에서 등을 돌리고 떠날까 봐 두려워했다. 건강한 나를 증오하지 않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 압박대를 묶는다. 나는 갈수록 살이 찌고 위압적이 되어 그를 내려다본다. 압박대를 묶는 손이 떨려 단단히 매지 못하면 질책하듯 혀를 찬다. 그 짧은 소리에도 그는 흠칫 떨며 손에 힘을 준다. 앙상한 어깨뼈가 헐렁한 피케 셔츠 속에서 안간힘을 쓴다. 그것을 보는 내 가슴 깊은 곳이 은밀하게 기뻐한다. 그가 떠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밤이 왔다. 기쁨이 솟구친다. 2밀리미터 두께의 피부가 터지면서 내 속의 어둠이 밤에게로 가 야합하는 것 같다. 가장 깊고 내밀한 곳이 결합할 때의 기쁨을 안다. 미쳐야만 만나는 바로 그것의 열락을 안다. 나는 미친 밤을 반기고 밤은 미친 나를 반긴다. 나는 알코올중독 청년의 방으로 숨어든다. 그는 두툼하고 질긴 재질의 우주복에 갇혀 눈을 뜬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를 옆으로 돌려 눕히고 뒤에서 묶인 소매를 풀어버린다. 그의 다리를 묶어 놓은 가죽 띠도 풀어버린다. 그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통나무처럼 그대로 있다. 그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그는 잡아끄는 대로 일어나 따라온다. 순하디 순한 절망이다. 내 방과 마찬가지로 비상구가 바로 앞에 있다. 비상구 문을 열고 몰래 빠져나온다. 계단이다. 그는 발밑을 바라보지 않고 몽유병자처럼 정면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실수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의 높이가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는 사람 같다.
    문을 열었다. 천둥과 번개가 밤을 찢었다. 싸늘한 비가 쏟아졌다. 번개가 바로 앞에 내리꽂힌다. 푸른 번갯불이 거센 빗줄기를 비추었다. 번득이는 빗줄기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잔디 위로 검은 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선뜩한 어둠이 정수리를 때리고 옷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든다. 후드득 몸서리치면서 청년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순한 손은 가만히 있다. 나는 청년의 손을 잡아끌고 마구 뛴다. 너, 어디로 가고 싶어, 크게 소리를 지른다. 내 손에 잡힌 손은 아무 대답이 없다. 잡아당기는 대로 손이 딸려온다. 청년이 도망쳤던 곳이 어딘지 모른다. 얼굴을 때리고 어깨를 후려치고 추위에 떨게 만드는 빗줄기만 가득하다. 나는 방향도 모르는 채 먼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내달리고 청년은 순하게 따라 걷는다. 청년을 거세게 끌어당기며 고함을 지른다. 너, 어디로 가고 싶어! 대답이 없다. 너, 어디로 가고 싶어! 청년은 말없이 내 손에 잡힌 채 순하게 따라 걷는다. 나는 어쩌면 그 녀석을 중심으로 날뛰고 있고 녀석은 천천히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의지도 깃들지 않는 순함으로 청년은 술이 없으면 먹지 않고, 술이 있으면 먹는다. 그것은 별이 천체에 내던져진 이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제 궤도를 도는 것과 같다. 청년의 내부에는 술이 새겨 놓은 궤도가 있다. 갇히면 순하게 갇혀 있고 벗어나면 길을 따라 가게에 가서 술을 마신다. 그의 절망 역시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의 말도 거역하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온순한 밤을 보낸다. 이토록 천둥이 귀를 찢고 번개가 날뛰는 빗속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어딘가로 뛰긴 뛰었나 보다. 내리막으로 굴렀다. 청년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더욱 꼭 쥐었다. 청년은 여전히 순하게 딸려 와서 같이 굴렀다. 키 큰 풀들에게로 가서 콕 처박혔다. 청년의 몸이 무겁기 때문에 구르는데 가속도가 붙었는지 나를 덮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청년을 안았다. 묵직하다. 오랫동안 나를 눌러온 무게와 동일한 무게다. 어느 샌가 내 환자의 육신에서 덜어지는 무게만큼 점차 잊혀 간 익숙함이다. 내 몸 위에 축 늘어져 얹히다시피 한 청년을 어루만지고 그 뺨을 들어 내 뺨에 대었다. 청년은 여전히 가만히 있다. 바보 같은 녀석아, 저항을 하란 말이다, 저항을. 네 엄마라고 생각하고 욕을 하고 네 아비라고 생각하고 머리로 들이받으란 말이다. 누군가가 너를 요양원 밖으로 탈출시키려 한다 해도, 강제로 너를 끌어가면 죽여 버리란 말이다. 청년에게 소리치며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두피가 아플 법한데도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어둔 내 얼굴 위에 제 얼굴을 얹어 놓고 있었다. 우리 위로 비가 억세게 쏟아졌다.
    내일이면 휴게실에서는 요양에 넌더리가 난 심심한 사람들이 귀와 입을 쉴 새 없이 놀릴 것이다. 거의 엄마뻘인 여자가 알코올중독에다 정신까지 나간 청년을 유혹해 덮쳤으며 불쌍한 청년은 속절없이 당했다고 할 것이다. 나는 부도덕한 여자로 삽시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것이며, 나를 대하는 사람들은 주저 없이 경멸을 내보일 것이다. 보란 듯이 나를 흘깃거리며 숙덕거릴 테고, 내가 휴게실에서 커피라도 뽑을라치면 앞을 비켜 주지 않거나, 같이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서는 척하면서 내 발을 밟을 것이다. 좀 더 심술궂은 이는 쟁반 모서리 같은 것으로 일부러 부딪치거나 막 뽑은 뜨거운 커피를 내게 엎지를지도 모른다. 나는 짐짓 억울하게 당한다는 척 슬픈 표정을 짓고 더없이 쓸쓸한 체하며 혼자 서성이겠지. 부당한 대우에 순응하는 것은 상대방을 짐승으로 만든다고 했다. 순응하고 순응하면 그는, 그들은 짐승이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짐승으로 만들 수 있다. 제법 당해 줬다 싶으면 머리를 떨구고 휴게실을 나오면서 누구의 방을 엿볼 것인지 한 사람쯤 눈여겨볼 터이지. 내 손에 놀아나는 그들을 보며 흐뭇해할 것이지.
    몸을 기울여 청년을 옆으로 떨구고 손을 꼭 잡았다. 나와 청년은 하늘을 향해 몸을 눕혔다. 얼굴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숨을 막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면 되지만 눈을 뜨고 입까지 벌리고 있는 청년이 걱정되어 일어났다. 벙커에서 몸을 일으키자 우리를 체포하러 쫓아온 사람들이 불쑥 나타났다. 그들이 소리쳤다. 여기 있다! 잡았다! 청년이 내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려고 했다. 청년의 눈이 싯누렇게 변했다. 악을 쓰듯 입을 크게 벌렸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주먹질을 했고 발길질을 했다. 양쪽에서 잡아 번쩍 들어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허공에서 발차기를 했다. 고통에 가득 찬 얼굴이었으나 목소리는 없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달려들었다. 물어뜯어 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던져졌다. 잔디밭에 얼굴이 콱 처박혔다. 잔디와 흙과 물이 눈과 입과 코로 밀려들었다. 청년은 잡혀갔다. 나는 빗줄기 속에 던져져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빗소리가 억셌다. 단 한 번 청년의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밟지 마. 주저하듯 유순하고 나약하던 그 목소리.
    비상구가 잠겨 있었다. 내 출입로가 사라졌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정문으로 돌아갔다. 비와 흙에 젖어 더러운 물을 줄줄 흘리며 엘리베이터를 탔고 5층으로 갈까 그냥 4층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5층에서 내렸다. 청년의 방으로 몰래 다가갔다. 비상등만 밝혀져 어스름이 서린 복도는 고요했다. 소란스러움은 저 바깥의 일이다. 그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청년의 방은 다른 방이나 다름없이 조용했다. 방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깨끗하게 씻긴 청년이 묵묵히 바지에 다리를 꿰고 있었다. 청년을 잡아온 남자 중 하나가 곁에 있을 뿐이었다. 침대 위에는 그가 입어야 할 우주복이 반듯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청년이 옷을 다 입자 우주복을 펼쳐 들었고 청년은 온순하게 팔을 끼워 넣었다. 저토록 온순한 광기라니. 저 온순한 광기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사람만이 보일 법한 것이 아닌가. 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저 남자에게 달려들어 팔뚝을 물어뜯고 우주복을 빼앗아 발기발기 찢어서 던져버릴 테지. 아버지 등 뒤로 도망친 엄마에게 욕을 퍼부어대겠지. 엄마가 보는 앞에서 목이라도 그을 것처럼 패악을 부려야 하지. 하지만 너는 그들에게 순응하지. 점잖은 짐승들은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더욱 점잔을 부리지. 너를 치지 못해 주먹을 불끈 쥐고 콧김만 뿜을 뿐이지. 점잔을 부려도 짐승은 짐승이지. 나는 청년을 등지고 발길을 돌렸다. 비상계단으로 살금살금 내려왔다.
    문을 빼꼼히 열고 복도 양끝을 훑어보았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밤 세 시, 텅 빈 병원의 복도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아주 짧은 정적, 불안한 적막. 나는 언제나 이 잠시의 평온 앞에서 가슴 졸이곤 했다. 아무에게도 점유되지 않은 이 시간의 이 공간에서 나는 천천히 걷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저 끝에서 이 끝까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을 오가면 반드시 누군가가 나타난다. 보온병에 물을 받으러 뜬금없이 이 시간에 탕비실로 가는 보호자라든지,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충분히 자고 일어난 노인 환자가 병실 밖으로 바람을 쏘이러 나온다든지, 밤에 병세가 심해진 환자를 돌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보호자가 환자의 상태를 전달하러 간호사실로 간다든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러 병실에 들어가는 간호사들이라든지. 이렇게 더러운 몰골로 복도를 오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의 텅 빈 복도를 걷지 않고 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왕복해서 걷는다. 역시나 어떤 방의 문이 살며시 열린다. 천식에 시달리는 환자의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보온병이 먼저 보인다. 나는 얼른 내 환자의 병실로 들어간다.
    방문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그가 서 있었다. 몽유병자와도 같이 꼿꼿한 자세로,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병실 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 비밀스러운 쾌감으로 떨리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에게서 받았던 감시의 나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쉽게 화가 났다. 압박대는 침대 아래쪽에 버클이 있어서 가슴과 골반에 압박대를 한 그가 일어나 풀기 어려웠다. 그가 어떻게 압박대를 풀었을까. 직접 보지 않는 한 알아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압박대를 풀고 내려와 몇 발짝 걷기까지 했지만 깨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에 취해서 거의 의식이 없었다. 팔을 잡고 가볍게 끌어당겼더니 아무 저항 없이 끌려왔다. 침대에도 얌전히 누웠다. 그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초점 없이 멍하니 열려 있었고 눕혀졌어도 감기지 않았다. 다시 벨트를 채우고 눈꺼풀을 내렸다. 마치 마지막 잠을 재우는 기분이었다. 심장은 잠들지 않으려고 뜨겁게 파닥였으나 무기력했다. 약한 사람은 종종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이대로 잠들지 않으면 심장을 주먹으로 쳐서라도 조용해지게 만들 생각이었다. 잠시 뒤, 그는 비로소 심장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잠이 들었다. 너는 밤이다. 그의 앙상한 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협탁 위에 놓인 수면제 병을 열어 보았다. 아주 작은 알약이 가득 들어 있었고, 하루 한 알 처방이었건만 벌써 몇 알 남아 있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 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처방보다 높은 양을 복용하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내가 약을 건네줬으니 그 이후에 점차 수위를 높였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잠이 들었다가 도중에 깼을지도 모른다. 늘 감시해 온 대로 나를 감시해야 하는 그의 무의식이 그를 깨웠을 것이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면 허락을 받아야 했던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나가는 것을 보았을 테고, 오랜 시간 동안 들어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다 수면제를 더 삼켰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아예 매일 두 알씩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높인 용량을 이기고 무의식은 다시 한 번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일 게다. 물론 나는 내일 잠자리에 드는 그에게 수면제 병을 건네주면서 복용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수면제라는 게 어차피 쉽게 불면에 굴복해 버리니까, 앞으로도 깊은 잠에서 깰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완전한 각성상태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깨어서는, 다시는 깨고 싶지 않은 마음과 완전히 정신이 든 상태로 밤이면 밤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수면제 병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밤의 외출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깊은 잠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밤을 목격하려다 실패한 사람에게서는 강제로 밤을 빼앗아버렸다. 그는 잠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꼼짝없이 내가 가둔 잠에 들어야만 했다. 타인의 밤을 훔친 나의 밤도 이제 한없이 미끄럽다. 그들의 밤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내게서도 마침내 잠이 빠져나가 버렸다. 내가 갇혀 있었을 때, 나의 밤은 격벽 사이에서 홀로 반복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밤들에서 나는 환각을 겪곤 했다. 나 자신의 밤 외에 다른 누구의 것도 몰랐던 그 밤들은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는 작은 밤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격벽 사이에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 나갔지만 그곳은 광대무변의 거대함 속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길을 찾아본 적이 없었고 방향조차 알아본 적이 없었다. 그 거대함 속에 망연자실 서 있는 동안 나는 따뜻한 부화기 속에 숨겨 둔 강아지를 제때 꺼내지 않아 고온에 익혀 죽였고, 이룰 수 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 정작 소중한 존재를 내박쳐 두었다는 자책감에 허겁지겁 숨을 불어넣어서 살려 놓았다. 다음날 밤, 나는 또다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격벽 사이에 남겨진 강아지를 고온에 익혀 죽였다. 암탉을 죽였고, 커다란 뱀을 입을 찢어 죽였다. 죽일 게 없으면 다시 강아지를 죽였다. 격벽 사이에서 밤을 보내고 또 보낸 뒤에 다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텅 빈 거대함 속에서 자지러졌다. 거기에는 방향을 정할 만한, 목적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어딘가를, 누군가를 지목하지도 못하는 나는 온순한 절망이었다.
    한 알 먹을까, 하고 그의 수면제 병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윗도리를 걸치고 나는 차라리 밤으로 나간다.

 

 

  5.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나인지 그인지 모르겠다. 인가에서 뚝 떨어진 이곳에서는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고 일과에 따른 시간을 지켜야 하는 건 나나 그나 다른 환자나 그 어떤 보호자나 마찬가지다. 누가 병에서 나아가고 멀쩡했던 누가 병들어 가는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살아서 오래도록 장례를 치른 사람들은 돌아가기로 예정되었던 날보다 오래 살아 있었다. 특히 타인을 경멸할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한을 넘기고도 죽지 않았다. 내 환자는 언제까지 수면제를 삼키며 밤을 보내야 하는지 모른다. 오늘 다시 수면제를 한 통 가득 처방 받았다.
    뜨끈한 물로 목욕하고 싶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낄 만큼 먹은 저녁을 소화시키겠다며 시원한 매실차를 달라고 했다. 컵을 치우려고 가서 보니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유리잔 표면에 맺혔던 물방울이 다 흘러내려 테이블을 적시고 있었다. 깎아 놓은 사과도 그대로 시들었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시원하고 개운한 것을 자주 찾는다. 욕실로 가서 커다란 월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나는 그런 일을 하라고 여기 있는 것이니까.
    고급 요양병원은 병실마다 월풀 욕조를 갖추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물은 온몸이 결리는 환자들의 몸을 시원하게 마사지해 준다. 전문 마사지사도 있다. 그를 불러 일정한 값을 치르고 발 마사지를 하거나 경락 마사지를 한다거나 심지어 스포츠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말기 환자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빙글빙글 도는 물살이 바짝 마른 몸을 휘휘 감아 주면 좋은 정도다.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욕실을 나와 매실차를 마셔버리고 사과는 버리고 컵과 접시를 씻어 놓는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 앞에 놓아두고 그의 옷을 벗겨 준다. 그를 데리고 들어가 보니 물이 넘치고 있었다. 그가 들어가 앉으면 가슴을 넘길 것이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내 발에 끼얹는다. 다리를 타고 상체에 땀이 솟는다. 물을 두어 바가지 더 퍼서 발에 끼얹고 그에게 들어가도록 했다. 그가 손을 넣어 물의 온도를 재더니 두 손으로 욕조 가장자리를 잡고 다리를 집어넣었다. 뜨끈한지 으음, 소리를 낸다. 상체가 물에 잠기면서 으으으, 떠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니 물이 가슴을 넘는다. 그가 그새 반으로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그가 갑자기 일어서려고 했다. 두 손을 내게 뻗어 나를 잡았다. 나도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엉거주춤 일어났는데 물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의 엉덩이가 다시 물속으로 잠겼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물에 젖은 팔이 조금씩 미끄러졌다. 그는 물의 무게가 더해진 듯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얼굴이 땀으로 뒤덮이고 눈이 거의 감겼지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안간힘을 썼다. 아픈 뒤로는 처음이다 싶게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의 상체가 다시 물에 잠겼다. 턱 밑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그는 아직 내 팔을 잡고 있었고 나도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손에서 힘을 덜어냈고 그를 향해 잔뜩 구부리고 있던 몸도 차츰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가 물속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잠이 들어버렸다. 등뼈를 뽑아버린 듯이 등이 구부러지고 고개가 떨구어졌다. 턱이 물에 닿았다. 등이 미끄러졌다. 뜨끈한 물속으로 그가 잠겼다. 나는 마지막 손을 놓았다. 그의 팔이 물속으로 미끄러져 잠겼다. 그의 머리끝이 물 위로 보였고 짧은 머리카락이 물에 떴다. 나는 뜨거운 땀에 흠뻑 젖었다. 달려 나가 어둠 속으로 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 가슴 벅차도록 수없이 많은 밤이 있었다.

 

 

 

작가소개 / 방현희(소설가)

2001년 《동서문학》에 단편 「새홀리기」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제1회 문학/판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2006), 『로스트 인 서울』(2011), 『붉은 이마 여자』(공저2004), 장편소설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달을 쫓는 스파이』(2008),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2012),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복수』(2014), 심리치유 우화집 『아침에 읽는 토스트』(2012), 산문집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2012), 청소년 소설 『너와 나의 삼선슬리퍼』 등이 있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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