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민들레문학상 최우수상_수필] 미안해,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니야

 

[제3회 민들레문학상 최우수상_수필]

 

 

미안해,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니야

 

 

 

윤기석

 

 

 

 

 

    사람이 꼭 자신의 집이나 방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은 억지스러운 생각 하나를 마치 해답인 것처럼 받아들고 맞이하는 아침, 나는 밝아 오는 세상을 향해 오만하게 걸어 나갔다. 조금도 꿇릴 게 없다는 듯 민달팽이 한 마리가 풀잎에서 빛을 발한다. 밤새도록 짓누르던 집채만한 무게를 내려놓은 자유스러움에 홀가분해졌지만 한편으론 민달팽이의 여린 속살처럼 온몸이 시려왔다.

 

    골목을 지나다가 집집마다 대문 앞에 내 놓은 재활용품 중에서 용케도 돗자리와 담요를 챙겼다. 밤을 새운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자연에 둥지를 트는 새처럼 희미하게 밝아오는 산을 찾아들어가 인적 없는 곳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울창하게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 갑자기 나는 초록색 그 자체의 의미 앞에 압도당했다. 저 짙은 초록 속 어딘가로부터 홀연 나타나 그 무구한 눈빛과 표정으로 ‘당신 연인이 여기 있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은 순간의 절대 감동. 그렇다. 나는 숲속의 왕자다.

 

    내 남루한 행색에 초록이 배려해준 품위를 입고 나는 가장 자유롭게 숲 속 바닥에 누웠다. 초록 생명에 대한 무한긍정은 피곤한 내 의식 속에서 샘물처럼 활력으로 솟아올랐다.

 

    기억도 가물 한 어머니의 품에서 가슴잠을 잔 듯, 깨어나 넘실거리는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보며 나는 눈을 떴다. 구물구물 내 사지를 타고 마구 기어오르는 온갖 벌레들! 습관적으로 벌레를 털어냈다. 그러다, 갑자기 아! 그렇구나, 싶었다.

 

    내가 죽으면 내 주검을 흙으로 실어 나를 벌레들. 흙이 풀과 나무를 키우듯 저놈들도 키우고 있는 거다. 내 살과 뼈를 으깨 풀과 나무를 키워 이 푸른 숲을 더욱 짙푸르게 하려고. 그래, 이 땅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 동반자다.

 

    ‘미안해,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니야’라고 힘없이 중얼거리는 순간, 그 울림이 물방울 하나 만들어냈다. 그 물방울은 내 몸을 거쳐 나와 눈가에 맺혔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물방울처럼 풀포기에서 빛났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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