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명암의 단면을 저미는 칼의 언어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명암의 단면을 저미는 칼의 언어

― 류성훈의 「과도」 외 3편을 읽고

 

 

장은석

 

 

 

 

    류성훈의 시를 읽으면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세밀화가들이 떠오른다. 예컨대 미세한 무늬를 완성하느라 계속 밤을 새던 그들이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먼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 흐릿한 불빛과 오랜 침묵을 견디며 하나의 선과 그것이 만드는 문양에 몰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자세와 호흡 같은 것이 연상된다.
    「과도」와 같은 시는 류성훈 시의 특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더위가 더위를 깎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물기가 싹 빠져서 바짝 말라 있다. 더위가 계속되면서 숨이 막히는 한여름의 공기처럼 시 속의 답답함은 점점 가중된다. 더위를 먹은 것처럼 혼란스러운 학창 시절의 기억은 이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인의 칼에 의해 단면을 드러낸다.
    우선 이 시에는 일요일에도 싫어하는 과목을 공부해야 하고 사소한 장난감 때문에 매를 맞고 벌을 서며 늘 자신을 자제해야 했던 어린 학생의 초상이 담겨 있다. 예초기에 갈리는 동식물들처럼 일정하게 다듬어지는 학생들의 위태로움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억눌린 감정들은 문맥의 배후를 타고 흐른다. “깨끗하게 마른 집들”과 “어질러진 방”의 대비 때문에 겉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이 부각된다. 시의 표면이 고요해질수록 내부의 불안은 증폭된다. 건조함이 가득차고 열기가 더할수록 폭발할 것만 같이 시의 압력도 증가한다.
    시인은 영리하기 이를 데 없는 시 속의 ‘내’가 결코 상황을 과도한 쪽으로 몰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잘 벼려진 시인의 과도는 “잘 깎은 과육”처럼 세심하고 면밀하게 시를 다룬다. 매끄러운 시의 표면을 예리하게 가르고 썩은 내가 나는 껍질을 도려낸다. 더불어 자제력을 잃은 채 매를 들고 있는 어른의 초상을 드러낸다. 예리한 시인의 언어는 이처럼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날카로운 언어는 감정의 과즙이 흘러나오도록 시의 과육을 뭉텅 잘라내는 법이 없다. 아이의 답답함과 슬픔과 고통은 시의 배후에서 익으며 더 깊은 맛을 더한다.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자세와 태도로 이 시인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다른 시인들과 자신을 뚜렷하게 구분한다. 시인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감각적으로 다루면서 그것을 능란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은 다른 시인들과 유사하지만 그런 이미지들이 결코 제멋대로 섞이며 흘러 다니게 놓아두지 않는다. 언어들은 시인이 마련한 보법을 따라 분명한 품새를 형성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의 독자적인 개성을 이룬다.
    시 속의 ‘나’를 다시 떠올려 보자. 잘 깎은 과일을 연필로 은밀하게 찍어 올리는 아이. 지나치게 쏟아지는 모습을 결코 내보이지 않는 아이. 아빠 차의 전조등을 닦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이 독특하고도 개성 있는 아이는 날카로운 과도로 언어의 껍질을 세밀하게 깎는 시인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이가 아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만의 시적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드물면서도 귀중한 장점이다. 따라서 마치 기시감이 생길 정도로 유행하는 감각과 심지어 특정 어휘에 기대고 있는 일부 시인이나 언어가 스스로 생성하는 보법이나 리듬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투로 말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보다 류성훈은 훨씬 더 기대할 만한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불이 나갔다”라는 일상적 표현으로부터 “모든 불은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를 연결하는 「번개표」의 첫 구절만 봐도 ‘나가다’라는 말을 사이에 두고 어둠 속에서 예민하게 살아나는 소리를 포착하는 시인의 예리함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불 꺼진 어둠 속에서 비로소 사소한 것에 관한 청각이 예리해지는 것처럼 ‘너’를 만날 수 없을 때 ‘너’에 대한 그리움은 더 증폭되고 ‘너’와 ‘우리’의 관계도 선명해진다. 조금씩 수명을 다하던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것처럼 관계는 어느 순간 단절된다. 「번개표」는 그런 이별 앞에서 어떻게 할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와 같은 순간을 잘 포착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여전히 뜨거운 전등갓에 손을 데는 것처럼 아직 사랑의 온도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암순응」은 이와 같은 시인의 자세를 더 잘 보여준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에 눈이 서서히 적응하는 것처럼 이 시에는 차갑게 가라앉은 마음과 그런 상태에 서서히 적응해 가는 ‘나’의 과정이 드러난다. 이 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암순응의 과정이 지닌 속도 변화의 리듬을 지닌다. 배후에 불안이 조금씩 증폭되던 「과도」와 유사하게 어둠에 조금씩 녹아드는 변화의 과정을 잘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더 자세히 시를 읽어 보면 시 속의 ‘나’의 태도는 마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번개표」의 주인공의 태도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시는 제목과는 달리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암시를 품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자신만의 시적 개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고 가치 있다. 다만 그것이 “혼자 다 먹”(「과도」)는 일이거나 “전구가 갓 속에서 혼자 죽”(「번개표」)는 모양이거나 “혼자 지치던 놀이”(「암순응」)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나는 미세한 말의 차이가 빚는 뉘앙스에 헌신하는 시인의 고투를 어느 누구보다 아끼고 존중한다. 특히 이 시인처럼 날카로운 말의 날을 세우며 함부로 뒤섞여서 쉽게 알 수 없는 사람의 감정과 의문에 잠긴 관계의 아픈 단면을 저미는 노력에 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언어를 대하는 그의 단단한 긴장감에는 어떤 결기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시인의 미래에 기대할 것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그렇듯이 하나의 선율과도 같이 리듬을 만드는 시는 소리의 울림과 멈춤이 함께 섞이게 마련이다. 명징하고 분명한 하나의 음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음에서 다른 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간격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음을 다 힘주어 누를 수는 없다. 때로는 반쯤 힘이 빠진 상태로 건반을 누르다가 다시 바닥까지 깊이 누르고 또 그 음들이 한동안 울리도록 내버려두는 전 과정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이 완성된다.
    부디 이 맥락을 시인이 어깨에 힘을 빼라는 터무니없는 요청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힘은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고투를 통해 빠지는 것이다. 어깨에 힘이 빠지는 순간 중봉이 살아나고 긴장이 풀리며 손가락과 어깨와 온몸이 하나가 되는 순간 악기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말과 언어가 이처럼 떨림과 풀림, 소리 없음과 울림으로 섞이며 함께 번질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함께 섞이며 끝없이 번지는 이상한 상호작용의 비밀에 눈뜨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불안과 고독과 알 수 없는 물음을 향해 늘어선 말에 곁을 내주자. 날카롭게 잘린 단면에서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이 섞일 수 있도록.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던 의문이 천천히 차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조금씩 흔들리며 바깥으로 퍼질 수 있도록.

 

 

 

작가소개 / 장은석(문학평론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남.
200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평론)으로 등단.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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