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밤 외 1편

 

 

분명한 밤

 

 

 


정영효

 

 

 

 

 

밤이 되면 우리는 아는 곳에서만 놀았다

 

아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아는 맛을 느낄 때 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사람들에 섞여 무한히 이어지는 불빛 속을
아는 사이라서 우리는 충분히 걸었다 걷고 있었다
그러다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분적으로 의견이 없었고
전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서로의 이름을 빼면 지어 줄 결론이 많다는 게 기뻤다

 

여태 쌓인 일들을 고민하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차츰 첨예해졌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내일을 위한 용건을 기다렸다
우리가 천천히 따르던 골목의 눈빛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두려움이 의구심에 닿아 있었다
많이 잃었다는 사실은 믿음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가지 못하는 곳이 생겨났지만

 

밤마다 우리는 아는 만큼 길어졌다
확신이 주머니처럼 가득해서
익숙한 곳이 늘어났는데 돌아갈 곳은 없었다

 

 

 

 

 

 

 

 

상부에서

 

 

 

 

 

   우물에 쉽게 여름을 버렸다 쉽게 우물에 죽은 짐승을 버렸으며 우물에 고장 난 시계를 버렸고 남은 시간을 마음대로 써버렸다

 

    쉽게 버리는 데 우물을 사용했고 다른 곳에 무사히 버렸다고 떠들면 스스로 찬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물은 파인 그늘로 금세 물상을 빨아들이고 층위를 감춘 채 왜곡을 멈춘 채 넘치지 않았다 그 속에 쌓인 것들을 몰랐다 들여다봐도 버린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숨겨서 가까워지듯 풀리면 숨기게 되듯

 

    나는 우물에 대고 허물을 짓기 시작했다

 

 

    ● 시작 노트

 
    바람이 분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해안선이 보이는 반도의 집에서 해안선 너머의 것들을 떠올린다.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곳. 아마도 해안선으로부터 몇 겹은 덧대어질 방향, 그리고 파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해안선이 보이는 집은 좁고 더디게 마음은 흐른다. 그러다 해안선을 떠도는 개를 바라본다. 개와 나 사이의 거리에서 새가 운다. 새가 머문다. 개의 입속에 깊게 고이는 다른 시간, 또 방향. 개의 눈빛. 찢지도 않는 개의 흔적. 흩어지는 새의 무리. 비로소 해안선이 빛난다. 빛을 낸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대낮이 내 주변을 꺼낸다. 물체들이 함께 빛난다. 해안선이 보이는 반도의 집으로 바람이 다시 온다. 길을 잘못 찾아온 바람이 잠시 서성인다. 나는 타인처럼 바깥을 바라보며 문을 열지 않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므로 지금껏 끌어 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파고드는 방향을 위해. 반도는 서서히 파도를 받아들인다. 개가 돌아간다. 바람이 멎는다. 나만 다시 남는다. 반도의 집은 조용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작가소개 / 정영효(시인)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계속 열리는 믿음』이 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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