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타자’에 대한 윤리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타자’에 대한 윤리

― 여운의 「경계」를 읽고

 

 

허진(문학평론가)

 

 

 

 

    1.

 

    우리는 누구나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 이것은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타자의 타자이고, 타자는 나에게 타자지만, 그 자신에게는 나다. 자아와 타자는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여운의 「경계」는 수학자의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버리고 수학 교사로 정년을 맞은 현재인의 이야기를 통해 타자를 대하는 윤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경계」는 현재인이 우민영이라는 낯선 제자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민영의 편지는 학창 시절 그가 현재인에게서 받았던 상처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동성애자인 우민영은 고교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로, 친구와 동성애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던 와중에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고 수업에 들어온 현재인은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가기 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이란 자연이 품은 원대한 질서, 그 근원에 존재하는 수(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남녀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순리다. 역행하는 건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순리 속에 살아라. 고리타분해 보일지는 몰라도, 여러분의 삶과 근원 역시 순리 속에 있음을 기억해라.

 

    여기에서 현재인이 말한 ‘질서’와 ‘순리’라는 말이 종종 그 말을 사용하는 주체에 의해 폭력적으로 전유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질서’와 ‘순리’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권력 의지를 관철시키고 ‘타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과 명분으로 기능해왔다. 독재자는 그에게 반대하는 학생과 노동자를 ‘사회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탄압했고, 절대군주는 자신의 통치를 ‘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그러한 사례를 우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두 단어는 ‘하나의’, ‘특정인에 의한’ ‘질서’와 ‘순리’의 의미로 사용될 때,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져 무수한 억압과 차별을 생산한다.
    따라서 누군가 남녀의 사랑이 순리라고 주장할 때, 동성애는 ‘순리’에 반하며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 된다. 우민영이 그가 존경했던 교사, 현재인에게 상처를 입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인은 타자의 삶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은 채, 다수가 따르는 신념을 ‘순리’라는 이름으로 치환해 말함으로써, 타자의 삶을 억압했고, 우민영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우민영은 편지라는 내밀한 소통 양식을 통해 세월이 흐른 뒤 그 상처를 현재인 앞에 표현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현재인을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교사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재인은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적인 교사상에 가깝다. 소설에 따르면 현재인은 “교사의 직에 성실히 임했”고, “말을 아꼈고, 매사 공정하려 애썼”으며, “엄하면서도 애정을 잃지 않아 학생과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런 현재인이기에 아내의 기일을 앞두고 도착한 우민영의 갑작스러운 편지는 그의 의식에 잔잔한 잔금을 가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래의 인용문은 우민영의 편지를 받고 현재인이 느끼는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재인은 편지를 두 번 더 읽었다. 가벼운 피로감이 일었다. 그는 소파 뒤로 몸을 기댔다. 몸이 소파 깊숙이 꺼져드는 듯했다. 하얀색 천장에 그려진,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늬가 낯설게 느껴졌다. 재인은 언젠가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기억했다.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언제였을까? 기억은 장롱 밑으로 굴러 들어간 동전처럼 닿을 듯 말 듯했다

 

    수학자가 되고자 했던 현재인이 그 꿈을 단념하고 고교 교사로 일생을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사회 다수가 따르는 보편적인 관념을 자신의 가치로 수용했을 것이다. 현재인은 수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기의 욕망을 억압한 채, 고교 교사의 길을 별다른 무리 없이 걷는다. 즉, 현재인이 배제한 것은 우민영과 같은 타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는 그 같은 자신의 삶을 “경계를 따라온” 것이라 여긴다. 현재인의 삶은 우민영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한편 현재인은 가족과도 갈등을 빚는다. 그는 현지수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지수는 현재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배우의 꿈을 지니고 엑스트라로 살아간다. 현재인은 타자의 삶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았기에 가장 가까운 타자인 가족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현지수는 그에게 “아빠가 실패했으니까, 나도 실패하길 바라는 거잖아”라고 반항하고, 암 선고를 받은 아내는 병원을 나오며 “이제 당신이 내 뒤에서 걸으세요”라는 말로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의식을 현재인 앞에 표출한다.

 

    2.

 

    「경계」는 현재인이 딸 지수를 데리러 촬영장에 찾아갔다가 ‘염소수염’을 만나는 데서 국면이 전환된다. 현재인은 ‘염소수염’ 사내와의 조우를 계기로 타자의 삶을 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배제해 왔던 타자들에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 왜 더러운 물을 뿌린 거요?
    재인이 말했다
    – 당신이 뭔 상관인데.
    – 그만 해. 아빠.
    (중략) 재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태프들이 앉아 있는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는 종이컵을 집어 들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떴다. 재인은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을 마셨다. 비리고 역겨웠다. 물이 목으로 넘어갈 때마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재인은 염소수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지막 모금을 삼킨 재인은 종이컵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

 

    인용문은 촬영장에서 딸이 겪는 부당함을 목격한 현재인의 대응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재인은 지수의 촬영장을 찾아갔다가 현장 스태프인 ‘염소수염’이 비가 오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웅덩이에 고인 더러운 물을 펌프로 빨아들이는 것을 본다. ‘염소수염’은 지수를 비롯한 엑스트라에게는 더러운 물을 퍼낸 살수차의 비를 맞게 하고, 영화의 여주인공에게는 깨끗한 물이 나갈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이를 목격한 현재인은 분노한다. 그는 딸이 맞았던 구정물을 입으로 삼키며, 그가 이제까지 받아들이길 거부해 왔던 타자의 삶을 몸속 깊숙이 받아들인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혈육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이 장면을 계기로 현재인은 배제된 타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엑스트라라고 해서 썩은 물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당위를 구정물을 마시는 행위를 통해 몸으로 보여주며, ‘염소수염’에게 강력한 거부의 의사를 표출한다. 이 장면은 그동안 질서와 규율이 주는 안정을 추구해 왔던 현재인이 보인 파격이기에 더욱 큰 충격과 울림을 자아낸다. 현재인은 이제 엑스트라, 동성애자 등 배제된 타자들과 한 몸이 되었고, 타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대항도 하게 되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재인은 우민영에게 전화를 건다. 오래 전 그가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고서 세상의 관습에 순응하라고 했던 타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경계」는 타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들이 겪는 고통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윤리를 현재인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현재인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이 빠진 점이 아쉬웠다. 그가 우민영을 비롯한 타자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기존 사회의 관습을 자기의 욕망 보다 우선시하고 은근히 강요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인은 그 자신의 욕망을 긍정할 때에 비로소 이질적인 타자의 삶 또한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겪는 내면의 갈등이 첨예할 때, 「경계」가 주는 울림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작가소개 / 허진(문학평론가)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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