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야누스의 세계, 분열하는 일상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야누스의 세계, 분열하는 일상

― 「랭귀지 스쿨」을 읽고

 

 

오창은(문학평론가)

 

 

 

 

    불안을 두려워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무서운 것이 무엇이지요? 경험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무당벌레를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고양이라면 질색인 사람도 있습니다. 개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도 있고요. 식물은 어떤가요? 옻나무의 경우는 공포의 대상일 수 있을 것 같네요. 특이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그림자를 진짜로 무서워합니다. 그냥 두려워진다고 하더군요. 형상에 그늘이 진다는 것 자체가요. 세상이 온통 그림자투성이인데, 삶이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어찌하겠습니까? 공포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개인사적 상처’인 것을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수준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유지되고 일상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직장을 잃는다든지, 갑작스럽게 불치병 판정을 받았다든지, 사고를 당한다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파산하여 가정경제가 파탄 나는 것, 이런 일들은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불행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아세요? 도래하지 않은 불행에 대한 불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결핍은 있습니다. 다들 자신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요.
    불안에 빠져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것을 향유하지 못하고 삶을 유예하는 이들이지요.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보험에 가입하듯 미래로 삶을 유예하지요. 미래에는 유토피아가 있을까요? 지금의 노력이 미래의 확실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불안의 근원을 회피한 채,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요? 도대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미래지향적 소비와 불안의식

 

    김지숙의 「랭귀지 스쿨」은 단편이지만, 만만치 않은 문제설정으로 현대인이 처한 불안한 상황을 형상화해 냅니다. 이 소설은 전 지구적인 문제들이 어떻게 국지적 파국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소소한 사건이 환기하는 진실은 단단한 차돌처럼 매끈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김미경)’는 31세의 독신 여성이고, 강남역 근처에 있는 ‘스위스계 석유화학 회사’에 5년간 근무한 캐리어우먼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었습니다’입니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외국계 기업은 실적부진으로 ‘한국 지점 폐쇄’를 결정했고, 20여 명의 사원들은 시차를 두고 회사를 떠납니다. 미경도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에 이르러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지요. 미경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랭귀지 스쿨’ 전단지를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받아들게 되고, 이어서 ‘충동적으로 등록’을 감행하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보상하기 위해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 대신 ‘신선한 소비’ ‘미래지향적인 소비’인 ‘랭귀지 스쿨’ 등록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녀도 한창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습관처럼 ‘불행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직장을 잃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가난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나쁜 소문에 휩싸이고,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고, 카드빚을 져서 고시텔을 전전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녀는 퇴직금을 받고, 실업수당을 받으며 다음 직장을 탐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그동안 ‘랭귀지 스쿨’에 다니며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기도 하지요.
    불행은 항상 홀로 오지 않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함께 몰려오는 것처럼 연이어 찾아오지요. 월세방 7만 원 인상이 통보되고, 열 살이나 터울 지며 강원도 춘천의 지방대에 다니는 남동생(김선우)은 매달 부쳐 주는 방세 외에도 30만 원의 송금을 더 요구합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매달 월급이 지급되기에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수입이 끊기는 순간 ‘삶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동생 선우는 학교 앞 화장품 가게 점원인 노란 머리 여자애(미라)와 연애를 하고, 애를 갖고, 드디어는 가정을 꾸리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미경의 상황은 참담하기만 하지요.
    미경에게 도피처는 없을까요? 의외의 도피처가 바로 ‘랭귀지 스쿨’이지요. 학원 등록 데스크에 있는 여자는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해외여행만 가려고 해도 당장 영어를 못 하면 입국할 때 주눅이 들잖아요.”라고 이야기하며 미경을 설득합니다. 영어는 ‘지구화 시대’의 필수요소이자, 영미의 시선에 따라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하는 ‘식민지적 내면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문학자 윤지관 교수는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글에서 “영어의 지배를 당연시하고 따르는 것만으로는 지구화의 현실에 맞서는 주체적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언어의 침투는 삶의 전 국면에서 존재의 위기를, 삶의 의미의 위기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기도 하지요. ‘랭귀지 스쿨’은 특이한 방식으로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지요. 2개월에 한 번씩 팀원들과 함께 ‘영어 연극’을 공연하고, 공연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사고방식, 제스처까지 배”웁니다. 팀원 간의 유대도 아주 끈끈하지요. 미경은 대학생 수강생 ‘크리스토퍼’에 이끌려 학원등록 취소를 포기하게 되고, 연극을 통한 영어공부에 합류하고, 두 달 동안 이뤄지는 ‘공연’에서 크리스타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공연이 있던 날’에 사건이 발생하지요. 무대로 나서려는 찰나 동생에게서 위급한 연락이 오면서, 무대에 서느냐,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동생에게 급히 가느냐 하는 윤리적 선택에 내몰리게 됩니다. 과연 미경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 소설은 그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미경이 처한 딜레마적 상황이 바로 현대인이 처한 불안의 상황이기도 할 테니까요.

 

    세계의 야누스적 속성

 

    「랭귀지 스쿨」은 ‘야누스적 형상’을 한 두 세계를 제시합니다. 하나의 세계는 ‘다국적 기업인 스위스계 석유화학 회사’이고, ‘영어가 지배하는 ’랭귀지 스쿨’이며, 소비적 욕망이 들끓는 강남이라는 공간이지요. 다른 하나의 세계는 회계장부 조작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고단한 직장 생활의 현장이고, 강원도 춘천 지방대 주변의 비좁은 자취방이자 지구화의 바깥이라고 할 수 있는 국지적 장소이지요. 두 세계는 절묘하게 충돌하며 서사의 긴장을 강화합니다. 미경은 ‘랭귀지 스쿨’에서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동생 생각을 잊기 위해 연극 연습에 몰두”하고, “당신 가족 따위가 무슨 대수냐”라는 연극 대사에 매혹당합니다. 반면, 동생이 생활하는 곳은 “도대체 어떤 배열로 자야 할지 고민”이 되는 누추한 곳이고, “하나씩 덜어내야 할 무엇”처럼 귀찮은 것으로 가득한 세계일 뿐입니다.
    소설 속에 표현된 삶의 실상은 만만치 않은 진실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랭귀지 스쿨에서 만난 사람들은 연극 연습으로 팀워크를 다진 사람들이지요. 그들과는 연극 연습 후 같이 술을 마시고 내면을 터놓는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그렇다면, 미경은 가족과도 친밀감을 느낄까요? 가족은 친밀성과는 거리가 먼 “미움도 사랑도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무덤덤”한 존재들이지요. 눈길을 끄는 것은 랭귀지 스쿨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족들이 표현되는 방식입니다. 영어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토퍼, 데이브, 클레어, 폴 등 익명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실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의 이름은 김미경이고, 남동생은 김선우이며, 노란 머리 여자애는 미라입니다. 영어학원의 인물들이 가명의 세계 속 사람들이라면, 가족들은 고유명사로 호명되는 실재들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작가의 섬세한 배치의 결과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야누스적 속성을 보여주는 배치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도 상반됩니다. 랭귀지 스쿨 수강생들은 모두 외국으로 떠날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크리스토퍼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후 세계여행을 할 계획이고, 데이브는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클레어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려 하고, 폴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해외 장기 선교 봉사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긍정 부정을 떠나 ‘지구화의 수혜자들’인 셈이지요. 반면, 미경은 재취업과 호주 도피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우는 생계유지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미라는 임신한 몸으로 화장품 가게 점원으로 악전고투를 하지요. 지구화의 두 얼굴이 ‘스위스계 석유화학 회사’의 한국 지점 폐쇄와 미경의 ‘랭귀지 스쿨’ 등록과 겹쳐지고, 세계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야망과 지구화의 바깥에서 고단한 일상의 쟁투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악전고투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힘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데, 그것을 감당하는 주체들은 국지적 차원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지요.

 

    지구화의 ‘복합연계성(complex connectivity)’

 

    지구화는 인간적 신뢰의 상실, 그리고 유대감의 균열과 같은 부정적 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들은 낙후되고, 새로운 것만 환영받지요. 전 지구적 자본의 국경을 초월한 교류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노동유연성의 강화, 이주노동자 문제,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는 자본의 횡포의 실상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위력적입니다. 지구적 자본권력의 횡포 앞에 지역공동체의 대응 능력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예전의 윤리는 무력화되고, 뿌리 없음의 윤리가 오히려 현실적응력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관계는 벗어나야 할 굴레처럼 치부됩니다. 미경이 처한 윤리적 선택의 상황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경은 외국계 회사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고,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호주를 떠남으로써 가족의 굴레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악화되는 선우의 상황과 부모님의 처지가 미경의 선택을 억압하지요. 욕망은 지구적인데, 현실의 굴레는 지역적이고, 가족적입니다.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끊이지 않고 발생하겠지요.
    지구화는 또 다른 국면의 계급화이기도 합니다. 지구 곳곳을 이동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소수 특권층은 지역적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본에 의존해 쾌적한 환경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관계에 따르는 윤리를 한시적인 것으로 국한시킵니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권력과 자본을 지닌 지구화의 유력자들뿐인 셈이지요.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안전을 열망하지만,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지구화의 수혜자들인 셈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끔찍한 공포의 나날을 보내는 셈이지요.
    김지숙은 「랭귀지 스쿨」에서 현대인의 불안의 실상을 구체적 상황과 접맥해 감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그 불안의 근원은 ‘복합연계성(complex connectivity)’으로 파생된 것이지요. 존 톰린스가 『세계화와 문화』에서 사용한 ‘복합연계성’은 지구화의 한 면모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복합연계성’은 지구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유통되는 상품들, 교류되는 지식들이 서로 연계되고 의존하는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지칭합니다. 심지어는 범죄, 공해 등도 지역의 경계를 넘어 상호연루 되는 양상을 띠게 되지요. 현대인을 규율하는 권력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다음의 과제는 어떻게 거기서 파생되는 고통을 냉철히 응시할까입니다. 문학은 그 응시와 성찰의 결과를 ‘공통의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입니다. 김지숙의 문제의식이 그 너머에까지 가닿기를 응원합니다.

 

 

 

작가소개 / 오창은(문학평론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등단. 저서로 『비평의 모험』(2005),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2011), 『절망의 인문학』(2013)이 있음.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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