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부유하는 삶을 위로하는 콘트라베이스 협주곡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부유하는 삶을 위로하는 콘트라베이스 협주곡

― 「분실물 정거장」을 읽고

 

 

오창은(문학평론가)

 

 

 

 

    아메리카노? 프레즐?

 

    한 손님이 커피전문점에서 주문을 합니다. 그 손님은 평소 눈여겨본 사람이지요. 단골일 뿐만 아니라, 말을 섞어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해요. 요즘 말로 그 사람과 ‘썸(some)’을 타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지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라유경의 「분실물 정거장」은 동일한 상황을 설정해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을 유도합니다.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든 남자가 ‘아메리카노와 프레즐이요.’라고 주문을 하지요. 그러자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시고요?’라고 말해 봅니다. 남자는 안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지요. 프레즐은 그냥 포기하고 마는 거지요. 남자는 진동 벨을 가지고 얌전히 자리로 갑니다. 이것이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기타 가방을 멘 대학생이 ‘아메리카노랑 프레즐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남학생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시고요?’라고 응대하자, 남학생은 나를 쳐다보며 ‘프레즐도 주세요.’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이런 설정을 했을까요? 작가는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멘 남자와 기타 가방을 멘 남학생의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의 남자는 ‘자기 세계에 갇힌 내적 인간’이며, ‘나’에게 관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현을 못 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타 가방의 남학생은 미세한 차이에 둔감한 ‘현대인의 모습’이며,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무관심한 사람이지요. 기타 가방 남학생이 모던 보이 스타일이라면,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의 남자는 ‘내성적 찌질이’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평범한 것을 가공해서 소설적으로 서사화하기는 힘이 듭니다. 특이한 이방의 세계에 시선이 머물면서, 사연의 맥락을 추적하고, 그것을 서사화하는 것이 소설의 관건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기타 가방이 아닌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메고, 대학생이 아닌 부랑자처럼 보이는 남자이며,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나’의 주변을 배회하는 인물이 소설적 형상화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소설은 ‘가방과 현대성’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될 만큼, 부유하는 삶과 가방 이미지를 결합한 독특한 서사를 펼쳐 보입니다.

 

    방은 가방이다

 

    「분실물 정거장」의 화자인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내’가 권고사직을 당한 이유는 “가방 속에 무언가를 가득 넣고 다니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무엇을 넣어야 할지 몰라 늘 어리둥절했”기 때문입니다. 실직 5개월 만에 ‘따뜻하게 새벽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고속터미널 커피전문점에 취업하게 됩니다. ‘나’는 지난달부터 매일 밤 커피전문점에 들어와 밤을 새우는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멘 남자에 주목하게 되지요.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은 무성합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둥, 거대한 콘트라베이스 가방 안에 납치한 아이를 넣고 다닌다는 둥 공포스러운 이야기도 들리지요. 내가 ‘가방’ 때문에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남자는 자기 몸만 한 콘트라베이스 가방을 메고 등장하니 특이하지요. 사실, 이 소설은 온통 가방 이미지로 충만합니다. 가방은 이동의 상징이지요. 현대인의 감성이 정주에서 이주로 옮겨간 것처럼, 가방은 부유하는 삶을 표상합니다. ‘가방’을 통해 ‘현대성의 단면’을 형상화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요. 다음 대목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에는 가구보다 가방이 더 많았다. 이사를 자주 다닌 탓이었다. 엄마와 나는 단칸방을 전전했다. 우리는 거대한 가방 속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가방이 옷장 역할을 대신했고, 화장품도 트렁크 위에 놓았다. 높낮이가 다른 가방들을 보며 심심할 때면 가방의 위치를 바꾸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방을 옮겨 다니면서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데 익숙해졌다. 짐은 점점 줄어들었고, 이사 갈 때는 짐들을 여러 개의 가방 안에 넣었다. 가방 종류는 다양했다. 이민자 가방과 트렁크, 책가방, 그리고 여러 개의 악기 가방들. 엄마는 결혼 이후 그만둬야만 했던 음악의 미련을 악기 가방을 주워 오는 것으로 달래는 모양이었다. 그것들은 주로 이삿짐을 꾸리는 데 사용됐다.

 

    도시의 방은 가구로 채워짐으로써 사적이면서 내밀한 공간으로 재건축됩니다. 비록 한시적으로 거주하더라도 가구는 정주의 징표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가방으로 채워진 방은 한시적 안정성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가방으로 채워진 방은 주거공간인 방을 ‘일종의 쓰레기 야적장’처럼 변화시키고 말지요. 아니, 소설 속 ‘내’가 의도적으로 공간적 안정성을 파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없으면,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이 축적될 수 없습니다. 가방을 싸고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닻을 못 내린 기억들이 떠도는 부유하는 삶을 살 뿐이겠지요.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자취방의 용도를 충격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밤이 되면 자취방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딱히 돈에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 말이지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에 ‘싼값에 몇 시간씩 빌려 쓰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나서 시작한 일입니다. 밤에 커피전문점에서 일하기에 자취방을 주로 대학생 커플에게 내주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의 방을 ‘극도로 불완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어 놀라울 뿐입니다. 이것은 비유컨대, 방을 가방으로 변모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분실물 정거장」의 서사적 전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이뤄집니다. 커피전문점의 풍경을 보여준 후, 건물이 부서진 폐허에 들어선 놀이동산 ‘원더존’의 황폐한 모습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자취방의 깜빡이는 형광등을 통해 불안한 공간을 묘사하고, 다시 터미널과 자취방을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공간의 이동에 따라 서사를 전개하면서도, 어느 한 곳도 안정적인 공간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기에 ‘내’가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멘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가 터미널에서 바이올린과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평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마음으로 세상을 버린 ‘나’와 세상 바깥에서 ‘소리도둑’을 자처하는 남자는 서로 교감할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위안하는 ‘유동하는 존재’인 셈이지요.

 

    과잉, 잉여, 그리고 쓰레기

 

    영국 리즈 대학의 명예교수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에서 “어떤 서약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태어난 것이든, 인간이든 아니든, 유한하며 없어져도 상관없는 존재다. 유동적인 현대사회 거주민들과 그들의 노고와 창조물 위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잉여라는 유령이. 유동적인 현대(성)는 과잉, 잉여,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의 문명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충격적이며 디스토피아적 언설이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문장이기도 하지요.
    작가 라유경은 「분실물 정거장」에서 한시적이며,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존재들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커피전문점 카운터 안에 있는 ‘분실물 보관함’, 지하철역 분실물센터, 건물이 철거된 곳에 세워진 ‘작은 놀이동산’과 자취방 계단의 폐가구와 쓰레기봉투를 통해 폐허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그 어느 곳에도 정주할 수 없는 이의 실존적 불안이 ‘쓰레기가 되는 삶’과 ‘가방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나마 소설 속 위안은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멘 남자의 열정적 연주와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은 이후 ‘내’가 산 클래식 기타이겠지요.
    ‘쓰레기 처리 문명’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잉, 잉여,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위안할 ‘소리’를 찾아내는 것, 그것의 협주에 동참하는 것이 불안의 상징적 해소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프레즐을 포기하는 콘트라베이스를 멘 남자의 미세한 감정에 주목하는 것, 무관심성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기타를 멘 남학생의 삶이 조금은 변화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우정’ ‘교감’의 가능성은 그것이 미미할지라도 떨리는 희망으로 울림판을 때립니다. 라유경의 재기발랄한 ‘가방 이미지’ 재현은 유동하는 현대성에 대한 중요한 서사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소개 / 오창은(문학평론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등단. 저서로 『비평의 모험』(2005),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2011), 『절망의 인문학』(2013)이 있음.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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