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술 유람기] 그림과 글자와 사랑의 기미

 

[나의 미술 유람기]

 

 


그림과 글자와 사랑의 기미(幾微)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제주도에 내려갔다. 무슨 해묵은 감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거기 예전에 쬐고 다 쬐지 못한 햇볕 속의 그늘 같은 거 말이다. 미수금을 받으러 가는 내 마음엔 오히려 더 빚이 많은데도 말이다. 역시나 내 처지는 이중섭미술관 어름에서 바로 탄로 나고 말았다. 미술관도 미술관이지만 나는 꽃을 보고 만 것이다.
    1월인데 탐라수선꽃이 이중섭 거주지 뜨락에 오종종 피었다. 청신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아하고 아리땁고 고요했다. 모든 꽃들은 말로써 어지럽지는 않지만 그 빛깔과 자태로 산만한 꽃도 없지 않다. 수줍은 듯 고개를 다 들지 않는 녀석의 뽀얀 얼굴을 보려고 나는 가만히 곁에 주저앉고 머리를 거의 땅에 닿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것을 그냥 수선꽃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갈무리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내 앞에 전날의 빗방울을 잎줄기와 화판(花瓣)에 매달고 선 몸 그림인 것이다. 살아 있는 숨탄것으로서의 몸으로 그림으로 다가오는 꽃, 나는 거의 땅바닥에 엎드려 눈을 마주쳐야 했다. 고요한 아름다움에 가만히 그 몸으로 육박해야 직성이 풀리는 순간이다. 몇 촉씩 무리지어 마당 구석에 핀 수선꽃들을 눈에 넣었다. 내 눈이 호사를 했다. 어디서 몸을 팔고 온 어린 여자와 그보다 몇 십 년은 그 일로 살아온 늙은 포주가 이 수선꽃 곁에 앉아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좋겠다. 화가 이왈종의 그림에 단골 출연하는 해맑은 녀석이고 더 거슬러 오르면 추사(秋史) 선생의 문기 어린 그림엔 몽당붓으로 담백하게 빨리 그려진 애완(愛玩)의 생물(生物)이기도 했다. 중국 사신에게 졸라서 받은 수선을 다산(茶山)에게 선물해서 다산은 그 느낌을 가만히 골라 시로 지었다. 그 시엔 재밌는 구절도 있다. 처음 본 동네 사람들은 수선을 보고 무에 난 싹이 퉁퉁하고 굵다는 둥 마늘인데 매운맛이 없다는 둥 지청구를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착각이나 오해는 때로 시의 곁두리가 된다. 오해를 불러다 재미를 안치는 시여, 착각을 잘 데려다 사물의 견물을 어르는 시여.
    추사 선생이 그리 아끼던 수선(水仙)을 다시 본 것은 탐라 섬에 유배를 당해 대정마을에 도착해서다. 뭍에서 귀히 여기고 아끼던 수선이 거기선 보리밭을 해치는 잡초이고 말이나 소의 들녘 먹이에 지나지 않았다. 소똥과 말똥 곁에서 고개를 살짝 외로 꼰 채 지천으로 피었다. 그때 선생은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과 귀함도 어느 곳에 처하느냐에 따라 처지와 신분과 대접이 달라짐이 선득했을 것이다. 그래도 수선 그림이 수선에 대한 시를 데려와 같이 그윽해지고 맑아짐은 그 마음에서마저 버림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

 

    추사 선생의 수선화(水仙花)에 대한 칠언절구다.
    식물들은 해마다 앳됨과 청춘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그 청신함을 보며 차차 늙어 간다. 화가는 떠났지만 해마다 홍매화와 탐라수선꽃이 피고 눈치가 백단인 네눈박이 진돗개가 온종일 언덕배기를 어슬렁거린다. 주인 노릇으로 치자면 개나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이건 또 무슨 어슬한 그림이란 말인가. 마당 여기저기에 돋아난 수선처럼 그림도 어느 순간 돋아날까. 의도하지 않은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듯 그림도 깊은 작정이 아니라도 오히려 손끝에서 물길을 타는 순간이 있는가.
    그렇듯 제주 자연사박물관은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곳. 그런 곳도 있다, 뜻하지 않은 그림을 만나듯 뜻하지 않게 닿게 되는 공간의 얼굴은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다. 박물관 현관 한켠에 커다란 산갈치 박제가 수문장 노릇이다. 그 전장(全長)은 정확치 않지만 내 양팔을 벌려서 몇 번을 거듭해야 될 정도의 기럭지였다. 저 정도 덩치와 길이라면 사람이 고기밥이 된다는 말도 그리 막연한 말이 아닌 듯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산갈치에서 괴물보다는 장수(長壽)의 이미지를 봤다. 괴물처럼 큰 산갈치가 되려면 그만한 시간의 은닉 같은 침잠과 내공(內攻)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람에게는 괴물의 인상이지만 산갈치에게는 절실한 양생(養生)의 시절이 종요로웠을 것이다.
    눈깔사탕보다 큰 산갈치의 눈이 아이들은 무섭다고 한다. 죽었는데도 무섭다고 한다. 그림의 힘과 뉘앙스도 저런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림 속의 것들은 죽은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안겨 주는 감정이나 생각은 어느 순간 산 것일 때가 있다. 실물(實物)만이 공포나 기쁨이 아니고 그것을 담는 그림도 다양한 감정의 변주를 일으킨다. 실체보다 반영(反影)이 뒤지지 않는 영역이 있다. 사랑이라면 어떨까.
    거기 박물관 한켠에 『제주 민화전』이 마련돼 있었다. 제주 자연사박물관에서 기대하지 않은 바여서 나는 내심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민화전(民畵展) 중에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제주 문자도(文字圖)다. 나는 고대 이집트의 한 벽화를 떠올렸다. 기원전 5천 년 전의 사원인지 무덤인지에 새긴 벽화 『인간 배[船] 동물』은 그 후의 벽화보다 더 간략하고 추상화된 그림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벽화는 확실히 당시 이집트 거개의 벽화가 갖는 사실성에서 짐짓 물러나 있는 듯 보인다. 사실성에서 한 발을 빼는 게으름이거나 발 빠른 다른 표현방식에의 눈독 같은 것이 이 벽화의 뺀질거리는 인상이었다. 이집트 나일 강변의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의 이 벽화의 뉘앙스는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의 대향(大鄕)의 은지화(銀紙畵)나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나 남관(南寬) 화백의 문자추상 계열에서도 얼비친다. 언뜻 이런 비교는 동서의 문화적 취향과 몇 천 년의 시간의 거리에 막혀 얼토당토않은 비약이 될 수도 있다. 의도와 지향이 다른 벽화와 손바닥만 한 은지화 속의 선묘(線描)나 현대 추상 계열의 그림을 견주는 데는 분명 미적 준거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면 못 바라볼 것이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마어마한 시간적·공간적 거리를 몇 걸음 안에 모으고 견주는 데는 아름다움에의 안목이면 족하다.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면 다른 관점을 불러오면 된다. 이집트의 벽화를 제작했거나 지휘했던 장인이나 관리들, 화인 이중섭과 이응노와 남관이 서로 다른 의도와 취향과 주장으로 내 생각에 삿대질을 한다 해도 나는 웃는다. 사랑은 더 많은 것을 달리 보아낼 수 있다. 근현대 회화에서 문자 취향이 드러내는 바는 의미에의 일탈과 의미에의 집중이 서로 능놀기 때문이다. 사랑은 해탈이 아니고, 사랑은 얽매임인데 그걸 참 즐겨할 줄 안다. 문자도가 그렇다. 문자로 치면 관공서 포스터만도 못하고 그림으로만 치자면 아이들의 평면화만도 못하다. 어디다 마음을 둘 것인가. 엄연한 뜻과 지극한 그림이 만나서 어설픈 듯 그러나 생각을 끌어오면 된다. 문자도에는 회화적인 원근법이 없다. 그러나 생각으로 보면 거기엔 여사여사한 삶의 원근법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을 말로 다 끝낼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애초에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그림으로 옮겨 감상했을 순간엔 정서적 교감이 있다가 그것을 뼈처럼 추리는 추상화와 형식화가 진행된 결과엔 소통을 위한 기호의 약속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림을 소통의 수단으로 얼러내어 대체한 기호를 얻는 대신 대상의 정령(精靈)을 잃어 가게 됐을 것이다. 소를 지극하게 그린 그림과 소를 추상화하고 형식화한 기호 사이엔 한 하늘이 없다 할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에서 뼈를 발라내듯 문자를 추슬러낸 그 분화(分化)의 지경이 기원전을 넘나든다. 사랑에 대해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과 글자로써 기호화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글자를 통한 표현에는 문학이 있다. 그러나 일반 문자와 그림은 사랑을 변별하고 포용하는 뉘앙스가 다르다. 그림은 드러내 보여주지만 글자는 지시(指示)한다. 표현의 갈래가 깊어진 순간에 어느 것을 더 우위에 놓을 수는 없다.
    제주도의 문자도 안에는 당대 시대적 삶의 정황들이 꽃피어 있다. 귤나무가 거기 서 있어서 나는 반가웠다. 문자도는 이집트의 한 벽화에서처럼 그림과 글자가 분화를 일으키고 이별하려는 조짐을 새삼 떠올려 준다. 결국 그림과 문자는 서로 결별하고 완연하게 다른 문화적 처지로 나아갔을 터이다. 그 이별이 참으로 길었다. 그런데 문자도는 이제금 다시 각별해진듯하다. 글자를 꽃피우고 그림을 정제하는 듯한 문자도, 그것은 내게 만남의 가만한 전율로 다가왔다. 문자와 그림이 헤어진 지 얼마였던가. 그런데 이렇게 새삼 서로 즐겁게 노는 그림은 드물어서 반가웠다. 그건 문명사적 궤적을 단숨에 헤아리듯 광활한 시공간의 간극을 한 다발의 그림으로 묶어 내 가슴을 친다. 우리의 심신을 대변하던 글자와 그림들-정신의 언어로 씌어져야 할 때와 그림의 몸짓으로 펼쳐져야 할 때가 따로 또 같이 있지 않았을까.
    민화(民畵)의 한 여줄가리인 문자도는 병풍 그림으로 혹은 다락 같은 데 혹은 널찍한 찬장 같은데 장식화로 맞춤했을 터이다. 이런 문자도의 분위기를 자기 나름으로 이어 간 현대 화인(畵人)들이 나는 고암 이응노나 남관 같은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문자 이미지는 추상성과 이미지가 강하지만 궁극적으로 문자적 함의를 아주 저버리지는 않는다.
    문자적 이미지는 그야말로 활자(活字)이면서 동시에 회화적 이미지로 약동하는 감각적 관념이다. 제주 문자도 중의 하나인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는 그 커다란 문자를 구성하는 회화적 상징물이 뭍의 것과 좀 다르다. ‘孝’ 자에는 죽순, 잉어, 가야금, 귤(橘)이 있고, ‘悌’ 자에는 앵두나무에 할미새가 앉아 있다. 각 덕목의 한자어와 관련이 있는 상징물과 연계된 사물이 문자의 안팎을 들락거린다.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고 다루고 겪는 사물을 그림에도 끼워 주니 정겹다. 뭍의 문자도에는 자리하던 상징물이 제주에서는 빠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효(孝)라는 글자에 메밀전 한 접시나 성게미역국 한 그릇이 들어간들 무엇이 문제랴, 내 어머니 좋아하시던 과육이 달고 부드럽던 황도복숭아 두어 낱을 넣은들 어떠랴. 문자도는 문자만의 재기가 아니라 그림과의 동숙(同宿)이기에 오지랖이 넓다. 그것은 제주 바다의 도량이다. 사랑은 지시적인 말도 일방적인 그림만도 아니기에, 지적인 정신과 정서적인 영혼이 같이 산다. 그 둘은 서로를 허물 생각이 없다. 굳이 서로에게 녹아들지 않아도 된다. 그림의 장식성과 상징성은 문자의 뜻을 염두에 두지만 거기에 목을 매지 않는다. 유교적 덕목이지만 민초들은 그 덕목을 삶의 자연으로 녹여내 보여주며 살아왔다.
    범박한 얘기지만 미술은 미술 속에 있지 않고, 그 대상을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 먼저 깃든다. 인위(人爲)와 자연(自然)이 대상을 빚거나 또 지워버린다. 이 생성과 소멸 사이에 미술은 창조적 질감을 오롯이 얻곤 한다. 이 질감을 느끼고 생각하여 그 분위기를 여투는 가운데 미술은 충동적 미감(美感)을 통해 눈 밖으로, 즉 세상 속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생각하지 않고 찾았던 탐라의 이중섭 거주지 뜨락에서 불쑥 맞닥뜨린 탐라수선(耽羅水仙)꽃처럼, 나는 그 꽃 앞에 가만히 무릎을 꺾었다. 수선꽃 앞의 흙에 내 무릎이 둥그스름하게 젖었다. 축축했지만 내 무릎을 보고 수선은 빙그레 웃는 듯했다. 아름다움은 늘 나보다 앞서 있다. 아름다움은 그걸 알아보는 안목으로 세상에 유통이 된다. 사람이 그 유통의 창구다. 어떤 사람인가. 그걸 잘 모르니까, 우리는 아름다움에 즐거이 현혹된다.
    옛 사람들은 왜 저런 그림을 그려 곁에 두었을까. 다시 해묵은 생각에 젖어 보니, 삶이란 말마따나 꽃피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그냥 가져 본다. 몇 천 년 전 헤어졌던 그림과 문자가 대등하고 화해롭게 만나고 섞이니 문자도다. 낯선 듯하지만 그리 버성기지 않는다. 처음부터는 한 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몸으로 서로를 비춰보듯 버성기지 않는 눈치다. 문자에 무식한 이에게 그림은 표연하고 그림에 문외한인 이에게 문자는 돌올하다. 갈래 나누어 사람을 처지지 않게 하는 자연스런 배려가 있다. 여기엔 문자의 지시적 기능과 간원이 서려 있고 그림의 현시적인 즉물성이 불쑥불쑥 문자의 틀에 방을 들이고 창(窓)을 낸다. 나는 너에게 문자의 창을 내고 그대는 내 안에 그림의 방을 마련해 두는 것은 어떤가. 사랑의 문자를 모르는 문맹에게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 그림만으로 아득해진 사람의 정수박이에 정갈해진 문자의 찬물을 부어 주는 것. 탐라수선꽃을 보여주는 것과 탐라수선꽃을 그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려 주듯 써주는 것, 어느 것이나 다솜 아닌 것이 있으랴, 난을 치랴 술을 마저 치랴. (다음호에)

 

 

 

작가소개 /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2001), 『교우록』(2005), 『수수밭 전별기』(2007)이 있고, 산문집으로 『염전』(2007), 『산책』(2008)이 있다.

 

 

   《문장웹진 3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