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터

 

 

울음터

 

 

 

박사랑

 

 

삽화-울음터

 

    아기는 오늘도 울지 않았다. 말간 눈을 깜박거리며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말아 쥘 뿐이었다. 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이 남자 아기는 잘 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지 못했다. 생후 삼 개월, 고열로 성대에 염증이 생겼고 그 뒤로 목소리를 잃었다고 했다. 나는 아기 가까이로 다가갔다. 아기에게서 우유 냄새가 났다. 오물거리는 아기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다가온 엄마가 아기의 침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는 아기에게 우유병을 물렸다.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오물거리는 입으로 우유병을 열심히도 빨아댔다. 나는 아기의 볼을 두드려 보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살이 올라 통통해져 있었다. 뽀얗게 부풀어 오른 볼이 꼭 연두부 같았다. 옆으로 새는 우유를 닦기 위해 엄마가 아기에게서 우유병을 잠시 빼앗았지만 아기는 여전히 울지 않았다.
    아기는 그렇게 우유병을 빨다가 잠들었다. 잠투정도 없이 곤히 잠든 아기 옆에서 엄마는 작은 옷들을 개고 있었다. 지원아, 서랍장에서 지수 손수건 좀 가져와. 나는 플라스틱 서랍장을 열어 손수건을 꺼냈다. 아기의 이름은 이번에도 지수였다. 엄마는 처음 위탁모가 되었을 때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아기들을 지수라고 불렀다. 자기 이름이 따로 있는 아기도 엄마 품 안에서는 지수가 되었다. 지금 잠든 아기는 열세 번째 지수였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왜 아기 이름이 지수인지 묻기도 했지만 엄마는 항상 얼버무리며 넘겼다. 크고 나서는 어렴풋이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묻지 않았다. 아무튼 그 때문에 우리 집에는 항상 지수가 있었다.
    열세 번째 지수는 육 개월 전, 우리 집에 온 엄마의 마지막 위탁아였다. 그러니까 아기는 열세 번째 지수이자 마지막 지수가 되는 셈이었다. 이제 돌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직도 지수의 입양 가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하면서 동시에 안도했다. 열세 번째 지수는 엄마에게 처음부터 특별했다. 소리 없이 울었기 때문이었다. 소리 없이 울던 아기는 매번 지쳐 잠들기 일쑤였고 언젠가부터 잘 울지 않게 되었다.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축축해도 상처가 나도 지수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많이 우는 아기보다 울지 않는 아기를 더 힘들어했다. 지수의 소리 없는 울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지수 곁에서 맴돌았다.
    나는 울지 않는 지수가 신기했다. 울려 보고 싶어서 볼을 꼬집기도 하고 먹던 우유를 빼앗아 보기도 했지만 지수는 잠시 칭얼댈 뿐 울지 않았다. 심지어 칭얼댈 때도 숨만 조금 가빠질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주 울지 않았기에 그만큼 안아서 달래 줄 일이 적었고 당연히 친해질 기회도 적었다. 그래서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열세 번째 지수와 서먹했다. 피곤한 엄마를 대신해 어쩔 수 없이 안아 줘야 했던 예전 지수들과 열세 번째 지수는 확실히 달랐다.
    멍하니 잠든 지수를 쳐다보고 있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큰 소리에 지수가 뒤척이며 눈을 비볐다. 엄마는 반사적으로 지수의 가슴을 토닥이며 내게 눈을 흘겼다. 나는 얼른 일어나 휴대폰을 찾아 들었다. 화면에는 ‘책 반납’ 세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 몇 권을 가방에 넣고 학교로 향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또 몇 권을 빌려 나와서 가방은 다시 터질 듯했다. 정리하려고 세미나실로 들어갔는데 재희가 공부 중이었다. 재희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잠시 고갯짓을 했다. 조용히 앉아 최대한 소리 죽여 책을 정리하는데도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재희가 노트북 너머로 나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서두르다 결국 가방을 떨어뜨렸다. 지퍼를 닫지 못한 가방에서 책이 쏟아져 나왔고, 그 순간 재희와 눈이 마주쳤다. 재희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안경을 벗었다. 그러고는 피곤한지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래?”
    나는 왜? 하고 되물었다. 재희와 나는 대학 동기에 대학원까지 함께 다녔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재희는 무심히 말했다, 그냥. 재희의 말에 그냥? 하고 되물었지만 재희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이상하고 어색했으나 딱히 거절할 상황도 아닌 것 같아 재희를 따라나섰다. 재희는 자연스럽게 학교 밖 카페 베리로 들어갔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들어가는 재희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그저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자 재희는 메뉴판을 펴지도 않은 채 난 아이스 레모네이드, 넌? 하고 물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퍽,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고 대답했다.
    레모네이드와 아메리카노가 각자의 앞에 놓이자 재희는 서두도 없이 말을 뱉었다. 나 아기 가졌어. 놀랐지만 아닌 척하며 말을 받았다. 축하할 상황은 아니지? 재희는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지워야 할 아이니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당한 재희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다. 재희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부 때부터 박사 과정까지 밟는다는 얘기를 습관처럼 해왔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그때 기업 입사를 선택했다. 반년 동안 수십 개의 공채 시험에 떨어진 뒤 다행히 이름 있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좋았던 건 한 달 남짓이었다.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이 내게 지옥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반년 만에 그만두겠다는 나를 말렸고 부모님은 화까지 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봄, 얼른 다시 입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변의 협박 같은 권유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는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잠시 몸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일 년 반 만에 더 강해진 재희를 만났다. 재희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었다. 박사 과정까지 마치려면, 으로 시작되던 주요 레퍼토리는 교수직을 따내려면, 으로 바뀌었고 조교까지 맡으며 학교에 머물렀다. 늘 당당하고 때로는 과한 열정을 보였기에 당연히 주변에는 적이 많았다. 모 교수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과 잠자리를 대가로 성적을 받는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으나 재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게 도피처였던 학교가 재희에게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흔히 흘리는 뒷이야기의 총구는 자주 재희를 겨누었고 나도 그들 사이에 몇 번 낀 적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재희가 싫지 않았다. 아니 별 관심이 없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커피 잔만 내려다봤다. 침묵이 어색했다. 남자 친구도 동의한 거야? 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재희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남자 친구 없어. 사실 누구 애인지도 몰라. 검사했을 때 육주 됐다고 해서 달력 찾아봤는데 그 주에 섹스한 사람만 해도 셋이야. 그때 엄청 취해서 기억도 잘 안 나고, 그중에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재희의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슬쩍 부럽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딱히 받아칠 말이 없어 피식 웃는데 그 뒤에 나온 재희의 말은 더 이상 나를 웃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음 주에 중절 수술하기로 했는데 거기 네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컵을 든 손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컵을 놓치듯이 내려놓고는 멍한 얼굴로 재희를 쳐다봤다. 재희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하필 나야? 내가 힘없이 물었다. 우린 친한 것도 아니잖아, 너 다른 친구 없어? 같은 불필요한 말은 억지로 삼켰다. 재희는 똑바로 눈을 맞춘 채 내게 대답했다. 너는 남의 일에 관심 없으니까 소문 안 내고 해줄 것 같았어.
    재희의 말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힘이 빠졌다. 나는 얼음이 녹아 묽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남의 일에 관심 없으니까 안 해줄 거 같진 않았고? 재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해줄 거 같기도 했지, 그래도 소문은 안 낼 거 아냐. 사실 그냥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었어. 안 해줘도 돼, 갑자기 이런 부탁 하는 거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재희는 정말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 웃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숨겨져 있던 측은지심이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았어, 하고 대답해 버렸다. 재희가 담담하게 말했다, 고맙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수술 날짜랑 병원 위치 알려줘.

 

    재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자 드물게도 지수가 보채고 있었다. 엄마는 지수를 업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방을 돌다 나를 보고는 반색했다. 나는 두 팔 가득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지수를 받아 안았다. 지수에게서 우유 비린내가 났다. 엄마는 지수의 엉덩이를 토닥이던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두드렸다. 애가 속이 안 좋은지 낮에 먹은 우유를 다 토해 냈어. 한 번도 말썽 없던 애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니 끝도 없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지수의 등을 쓸어내렸다. 작은 아기의 온기가 손을 통해 전해졌다. 눈을 비비며 칭얼대던 지수는 점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곧 잠들었다. 잠든 지수를 이불 위에 눕히고 옆에 따라 누웠다. 방금 전까지 품 안에 가득하던 온기가 금세 식었다.
    지수의 가슴을 토닥이며 재희를 생각했다. 아니 재희 안에 있을 작은 아기를 생각했다. 팔주면 어느 정도 크기일까. 지수를 토닥이던 손을 꽉 쥐었다. 이 정도 크기쯤 되려나, 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큰 것 같아. 나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책장에서 유아 상식에 관한 책을 꺼냈다. 임신 팔주 정도면 배아기가 끝나고 태아기가 시작된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태아의 크기, 하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글씨를 따라 읽다 멈춘 곳에는 31~42mm라는 숫자가 씌어 있었다. 그 뒤에 5g이라는 숫자도 이어졌다. 나는 물끄러미 내 손을 쳐다보다 오므린 지수의 손을 쳐다봤다. 저 작은 손만 한 또 다른 아기. 한참 쳐다보던 지수의 손을 끌어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말랑한 손바닥을 만져 보았다. 지수는 뒤척이며 내 손가락을 꾹 감싸 쥐었다.
    지수 입양 얘기는 아직 없어? 엄마는 내 물음에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지수 곁에 앉아 손수건으로 지수의 땀과 침을 닦아 주었다. 나는 나른한 기운에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입양하고 싶었던 적 한 번도 없었어? 엄마는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왜 없어, 데려올 때마다 내가 입양하고 싶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눈을 감았다. 네가 애기야? 왜 초저녁부터 자려고 해. 엄마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도무지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지수의 쌔근거리는 숨소리와 낮은 텔레비전 소리, 그리고 엄마의 밥 짓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며칠 뒤 나는 약속한 병원 앞에서 재희를 기다렸다. 재희는 양팔에 가방을 하나씩 들고 계속 땀을 닦으면서 걸어왔다. 내 앞에 서자마자 오래 기다렸느냐는 형식적인 인사말도 없이 내가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리키며 나 그거 좀 마셔도 돼? 하고 물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자 뚜껑을 열고 단숨에 거의 반이나 비웠다. 얼음까지 씹어 먹는 재희를 보며 나는 임신한 여자가 저래도 되나, 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재희는 반쯤 남은 아메리카노를 뚜껑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다시 내게 주었다. 나는 뚜껑을 바로 닫으며 재희를 따라 병원으로 올라갔다.
    병원은 조용했다. 산부인과, 하면 떠오르는 귀여운 아기 사진이나 배부른 임산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재희가 조그맣게 귓속말을 했다. 여기 중절 수술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오는 데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는 대답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접수처에 있던 간호사가 예약하셨어요? 하고 묻자 재희가 네, 하고 대답하며 간호사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재희의 배를 쳐다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배 안에 31~42mm의 생명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간호사가 높은 목소리로 임재희 씨, 하고 불렀다. 재희와 나는 접수대로 다가갔다. 접수대에는 한 장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재희는 내게 볼펜을 건네며 보호자란을 가리켰다. 내가 보호자란에 사인을 하자 간호사가 그것을 챙겨들고 따라오라며 앞서 걸었다. 재희는 들고 있던 가방 중 큰 것을 내게 건네며 나가서 기다려, 하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재희의 가방을 들고 재희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병원을 나왔다. 내 가방에 재희의 가방, 거기다 반쯤 남은 아메리카노 컵까지 들고 있으려니 어깨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길가 쓰레기통에 아메리카노를 던져버리고 길을 건넜다. 바로 눈에 띄는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 습관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려다 멈칫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메뉴판을 들여다봐도 시킬 만한 것은 없었다. 주문하시겠어요? 하는 종업원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하고 말았다.
    카페 안에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보다 혼자 노트북을 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스스로가 어색해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기사들 제목을 훑어보고 일주일 날씨를 검색해 보고 메시지함을 체크했다. 재희에게 길 건너 커피 전문점에서 기다린다는 문자까지 보내고 나자 할 일이 없었다. 가방을 뒤져 보았지만 하필 오늘따라 읽을 만한 책 한 권 가져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재희가 준 가방을 쳐다봤다. 무거웠던 걸로 봐서 아무래도 책이 들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지퍼에 손을 올리다 멈칫했다. 다른 사람의 가방을 허락도 없이 열어도 되나 싶어 망설여졌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열어버렸다. 그래, 잠시 책만 읽을 건데 뭐. 재희의 가방 속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나왔다. 한국어 문법, 한국 현대 희곡의 이해, 향가 문학 연구, 구비 문학의 전승. 대체 요즘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지 연관성이라고는 국문학 하나밖에 없는 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책을 정리해 넣으려고 가방을 다시 열자 맨 밑에 깔려 있던 책 한 권이 보였다. 손때가 묻어 거뭇거뭇한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그것을 보자, 몇 년째 내 책장 구석에 꽂혀만 있는 『열하일기』가 떠올랐다.
    나는 책을 펴보았다. 안에는 메모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페이지 곳곳에 형광색으로 줄이 쳐져 있었고 밑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첨삭이 되어 있었다. 메모는 그 구절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고 그냥 감상이기도 했다. ‘물을 건널 때면 모두 몸이 떨리고 앞이 캄캄하여, 낯빛을 잃고 하늘을 우러러 가만히 목숨을 빌지 않은 자가 없었다.’라는 구절에 줄이 쳐 있고 그 밑으로 악천후를 무릅쓴 강행군으로 연암 일행은 중원을 통과해 연경으로 향한다, 라는 메모가 적혀 있는 식이었다. 중원이니 연경이니 하는 말들이 익숙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고 슬렁슬렁 페이지를 넘기다가 연필로 휘갈기듯 써놓은 메모에 손을 멈췄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 가면 나도 한바탕 울 수 있을까.

 

    나는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것만 같아 서둘러 책을 덮었다.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다른 책들 밑으로 『열하일기』를 끼워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시켜 놓고 한 모금도 먹지 않아서 가득 차 있는 아메리카노를 벌컥 마셨다. 찬 기운에 입안이 얼얼했지만 그대로 삼키고 시계를 봤다. 수술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 것을 깜박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마트폰을 켜 검색해 볼까 하다 그냥 내려놓았다. 그런 검색어를 입력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조금 전과 다름없이 저마다 노트북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꺼내 한동안 이런저런 메모를 하고 있는데 그늘이 졌다. 고개를 들자 재희가 불편한 듯이 약간 다리를 끌며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잘 끝났어? 하고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재희는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덥다, 하고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뭐 시원한 거라도 마실래? 하고 물었다. 재희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부탁을 했다. 미안한데 우리 집까지 같이 가줄래. 이쯤에서 헤어지고 싶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하는 김에 조금만 더. 나는 재희의 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추며 걷다 문을 열어 주고 얼른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재희는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자꾸만 떨어지는 재희의 고개를 어깨에 얹어놓고 슬쩍 재희의 배를 보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5g의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택시에서 내려 몇 분간 언덕길을 올라 재희의 원룸으로 들어섰다. 열 평 정도 되어 보이는 방 안은 어수선했다. 그런데 그 어수선함이 내 방과는 조금 달랐다. 내 방에는 옷가지들과 가방이 정신없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재희의 방에는 수많은 책과 프린트들이 널려 있었다. 재희는 들어와 앉으라고 손짓하며 서둘러 책들을 대충 쌓아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작은 방에 둘이 마주 앉아 있는 건 어려웠다. 어색한 침묵을 이기지 못해 내가 헛기침을 하자 재희는 텔레비전을 켰다. 의미 없이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며 시간을 보냈다. 방송 되던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가 나왔다. 이제 가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일어나려는데 재희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 오늘은 친절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저녁 해먹자, 하고 일어섰다. 재희가 어기적거리며 따라 일어나려는 걸 막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 먹고 싶어? 재희에게 묻자 재희는 싱크대 찬장에서 네모난 박스 하나를 꺼냈다. 3분 만에 완성되는 인스턴트 미역국이었다.
    미역국과 몇 가지 마른반찬이 놓인 간단한 식탁에 재희와 나는 마주 앉았다. 대학 동기라고는 해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기에 이렇게 단둘이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조용한 방 안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울렸다. 인스턴트 미역국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재희는 천천히 밥그릇을 비워 나갔다. 나도 재희의 속도에 맞춰 가며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상을 치우기도 전에 재희는 담뱃갑을 꺼냈다. 침대 맡에 놓아 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진짜 담배 맛있다, 이게 얼마나 피우고 싶었는지. 싱글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재희에게 나도 모르게 뾰족한 소리가 나갔다. 어차피 지울 건데 그냥 피우지 그랬어. 재희는 내 말투는 신경 쓰지 않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게, 피워도 되는데 왠지 기분이 그렇더라고. 이렇게 오래 금연해 본 거 처음이야.
    담배 두 대를 이어서 피운 재희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중얼거렸다.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야, 편하다. 재희의 들뜬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재희의 뱃속에 있던 31~42mm, 5g의 생명은 이제 더 이상 재희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무심하게 툭 던지듯 재희에게 물었다. 너는 모성이 없냐? 재희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꾸했다. 없긴 왜 없어, 단지 모성보다 이성과 지성이 강할 뿐이지. 구석에 쌓여 있는 책과 프린트들이 재희 안에 있던 생명보다 무거울 수 있을지. 재희의 목소리가 좀 떨렸던 것도 같지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재희의 집에서 나왔다.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내 책상 위에도 재희의 방처럼 책과 프린트들이 정신없이 쌓여 있었다. 나는 아무 책이나 뒤적거리다 책장에서 『열하일기』를 꺼냈다. 『열하일기』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게 사준 책이었다. 내가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던 날, 술 취한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내 방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두꺼운 책을 내 책상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우리 문중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박지원이라서 네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 나는 그 두 문장이 ‘그러니까’라는 접속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버지는 나갔고 책은 남았다. 그렇게 『열하일기』는 내 책장에 자리 잡았다.
    나는 빳빳한 『열하일기』를 처음으로 펼쳤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조선의 사신인 팔촌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를 방문하면서 쓴 기행문이었다. 박지원은 사신단의 일행이기는 했지만 실제 사신의 역할을 맡지는 않았기에 여행 중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했다. 사신단이 조선을 떠나 청나라 연경에 닿기까지 이야기는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나는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다 재희의 메모가 있던 부분을 읽게 되었다. 박지원이 요동 벌판에 다다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요동 벌판은 끝없이 이어진 넓은 땅이었다. 조선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박지원은 그런 장관을 처음 봤을 터였다. 그는 그 벌판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래 의지할 데가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라는. 그러고 나서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 이렇게 말한다. “아, 참 좋은 울음터다. 한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일행 중 하나가 그게 무슨 말이냐 묻자, 그는 인간이 가지는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낸다고 대답한다. “기쁨, 노여움,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이 사무치면 울게 되지. 무엇보다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네.” 하고.
    드넓은 벌판 앞에서 한바탕 울어 볼 만하다는 박지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울 수 있을까, 하고 묻던 재희의 메모를 떠올렸다. 또 담배를 피우며 모성보다 이성과 지성이 강할 뿐이라던 재희의 모습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밀어냈다. 다시 책을 읽으려고 집중하는데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그대로 책을 펼쳐 놓은 채 문을 열었다. 엄마는 운동 다녀올 동안 지수 좀 봐,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기용 침대에 잠들어 있는 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얼른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지원이 오랜만이다, 하고 인사를 건넨 건 아동복지센터의 이 실장이었다. 엄마가 없다는 내 말에 이 실장은 지수 입양처가 정해져서 말이야, 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반색하며 그래요? 하고 묻자 이 실장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어. 아니 문제라고 하기도 좀 그렇네. 주저하며 말을 돌리는 이 실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말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저 정도면 다 넘어온 셈이었다. 이 실장은 일은 잘하지만 수다스러워서 가끔 안 해도 될 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재촉하듯 물었고 이 실장은 마지못해 너만 알고 있어야 돼, 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해외 입양을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이 실장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원래 장애아들은 국내 입양 잘 안 되잖아. 게다가 남자 아이고.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미국에서 연락이 왔더라고. 피츠버그 쪽에 산다는데 남편은 미국 사람이고 부인이 한국계야. 한국인 3세라는데 한국말은 못 하는 것 같아. 남편이 그쪽에서 교수 하면서 돈을 좀 잘 버나 보더라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이번 주말에 아이 보러 한국 들어온대. 보고 잘 되면 바로 데리고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모레 두 시까지 센터로 지수 데려와야 해. 엄마한테 말 전해 줘, 내일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최근 몇 년간은 국내 입양이 늘고 있어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물론 어떤 아이들에게 해외 입양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이 실장의 말 그대로 아이의 아빠가 피츠버그의 대학 교수이고 엄마가 한국계라 국적이 다른 아이를 품어 안을 수 있다면 여기서 가난하게 자라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다일까. 세상에 나오자마자 외따로 떨어져 지내다 내가 태어난 땅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이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나는 지수의 작은 손을 잡았다. 멀어질 것 같아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갑자기 너무나 멀어진 것 같아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해외 입양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언가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히 받아들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수의 우유병을 삶고 지수의 작은 옷을 개고 지수의 가슴을 토닥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 피츠버그라는 데가 살기 좋은 데냐? 하고 물었다. 나는 나도 잘 몰라, 하고 대답했다. 피츠버그, 생경한 그 단어를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뱉어 보았다. 방에 들어가 낡은 대백과사전을 펼쳤다. 피츠버그는 펜실베이니아 주에 속한 상공업 도시였다. 제철 산업이 번성해 철강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는 구절을 읽고는 책을 덮었다. 어떤 설명을 읽어도 내게는 그저 잘 모르는, 먼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이 실장과 통화를 하고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껏 집에 있던 지수가 떠나기 전날이면 엄마는 늘 하루 종일 바빴다. 사실 아기의 짐이라고는 우유병 몇 개와 옷 몇 벌밖에 없는데도 그것들을 챙기느라 하루를 다 썼다. 나는 잠이 덜 깬 채 아침밥을 먹다 재희의 전화를 받았다. 재희는 자꾸 이래서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하고 물었다. 재희의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어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는 말에 나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내게 다가온 지수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 대신 손을 주었다. 지수는 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대는 입술의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나는 지수 앞에 앉아 눈을 맞췄다. 지수는 내 눈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봤다. 너 멀리 가야 한대, 내 말에 지수는 두 번 눈을 깜박였다. 나는 미국 한 번도 못 가봤는데 너는 좋겠다, 그 말에는 생긋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 가는 거 좋아? 이번에는 물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나는 침에 젖은 손가락을 닦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지수가 옹알이하듯 입술을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지수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지수의 작은 손이 내 뺨 위로 포개졌다. 그 온기에 나는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고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재희의 집 앞에서 벨을 눌렀지만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벨을 누르다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찾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열어, 하고 불평하다 멈칫하고 말았다. 어디가 아픈지 그대로 현관에 주저앉아 버리는 재희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재희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미안, 이라고 말했다. 어디가 아프냐는 말에 그냥 몸살이지 뭐, 하고 힘없이 대답하는 모습에 한숨이 났다. 재희는 침대 맡에 놓인 두툼한 서류 봉투를 내게 건넸다. 오늘까지 교수님한테 드려야 하는 자료인데 몸이 이래서 너 불렀어. 나는 봉투를 받아들며 그냥 갖다 주기만 하면 돼? 하고 물었다. 과 사무실에 갖다 주면 서류 줄 텐데 그거 받아서 다시 여기로 와줘. 귀찮은 일이었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과 사무실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의 후배가 나를 반겼다. 무슨 일로 왔어요? 하고 묻는 후배에게 재희가 준 서류 봉투를 건넸다. 후배는 봉투를 받아서 확인하며 의아한 듯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확인을 마치고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봉투에 넣어 주며 재희 언니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후배는 빠르게 말을 뱉었다. 며칠 동안 계속 안 보이던데. 날마다 학교에서 살던 사람이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언니 재희 언니랑 친했어요? 몰랐네. 더 이어질 말이 피곤해서 나는 저번에 재희 언니가, 로 시작하는 후배의 말을 잘랐다. 미안, 좀 바빠서. 그 말만 남겨 두고는 서둘러 과 사무실을 벗어났다.
    재희의 집에 도착해 거의 집어 던지듯 서류를 내밀었다. 재희는 추천서라고 적힌 서류를 확인하고는 빙긋 웃었다. 몇 시간 전보다는 얼굴이 나아져 있었다. 고마운데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나를 잡아 두고 중국 음식을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쌓여 있는 책들을 둘러보다 너는 왜 공부해? 하고 재희에게 물었다. 재희는 글쎄, 하고 말을 고르다 교수 되려고 하는 거겠지, 하고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너는 왜 하는데? 하고 되물었다. 몰라, 몰라서 물어본 거야. 내 대답에 재희는 피식 웃었다. 그때 벨이 울렸다.
    재희는 배달된 음식을 바닥에 쭉 늘어놓고 랩을 벗겼다. 방 안이 순식간에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입술에 까만 짜장을 묻히며 음식을 먹는 재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또다시 사라진 5g의 생명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구토가 올라오는 기분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짜장면이 수챗구멍에 엉킨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왜 안 먹어? 하는 재희의 물음에 해서는 안 될 말이 역한 음식처럼 튀어나왔다. 지울 아이를 왜 임신했어? 이번에는 재희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재희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후회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재희 앞에 떨어져 있었다.
    재희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왜 내가 수술 보호자로 너를 선택했는지 알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희는 음식 그릇을 옆으로 밀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동기 중에 박사 과정까지 올라온 건 나밖에 없어. 너는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고. 너도 알잖아, 공부한다고 하면 그냥 쉽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게다가 방탕한 성생활로 원치 않는 임신까지 했으니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뻔하지. 이런 일 생길까 봐 그렇게 피임을 열심히 했는데 한순간에 당했어, 우습게도. 너는 나를 매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없고 나 때문에 아이 인생을 망칠 수도 없어.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억지로 말을 끌어내 풀어 놓았다. 낙태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어? 재희는 내 말에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우리나라 아직 낙태 금지야. 그런데 합법적인 낙태가 하나 있어. 성폭력에 의해 생긴 아이는 지울 수 있거든. 그래서 성폭력 상담센터에 찾아갔어. 술에 취해서 원치 않는 관계를 맺었다, 사실 그 정도 술에 그렇게 취할 리가 없는데 약을 탔을지도 모르겠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지웠어. 그 아이를 뱃속에 두고는 하루도 살기 싫었거든. 처음 산부인과 갔을 때 두세 달밖에 안 된 태아는 언제든지 유산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데도 수술 해달라고 했어. 무거워서, 그리고 무서워서.
    나는 말없이 물을 마셨다. 왠지 물조차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무언가 뾰족한 것이 목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재희와 나 사이에서 음식이 볼품없이 식어 가고 있었다. 재희는 불어서 못 먹게 된 짜장면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그러다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재희의 얼굴을 가렸다. 나는 먼저 갈게, 하고 말한 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재희는 나를 잡지 않았다. 돌아서 나오는데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 『열하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재희의 메모를 머리에서 지우며 구두를 신었다. 왼쪽 발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몇 번 발을 밀어 넣다 결국 뒤축을 구겨 신고 밖으로 나왔다. 닫히는 문 사이로 재희의 웅크린 등이 보였다.
    구두를 고쳐 신고 길을 걸었다. 나에게는 옳고 그름을 가릴 능력도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을 골라낼 능력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지수가 보고 싶었다. 지수의 작은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서둘러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쿵쾅거리며 들이닥쳐 지수를 향해 손부터 뻗는 나를 엄마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아랑곳없이 지수를 안으려는 나에게 엄마는 손부터 닦아, 하고 말했다. 손을 닦고서야 지수를 품에 안았다. 지난달보다 훨씬 무거워진 것 같았다. 엄마, 지수 몸무게가 몇이야? 10.6킬로그램. 무겁네. 그럼, 무겁지. 지수의 손이 내 뺨을 만졌다. 너도 5그램이던 때가 있었겠지. 그때는 가벼웠는지, 아니면 그때도 너는 누군가에게 무거웠던 건지.

 

    열세 번째 지수와의 마지막 날, 엄마는 허리를 삐끗해 끙끙대며 파스를 붙였다. 별수 없이 지수를 안는 건 내 몫이 되었다. 엄마는 지수의 손장난을 받아 주며 마지막으로 지수를 끌어안았다. 나는 지수를 안기 위해 아기띠를 메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아이 이름을 지수로 지었어? 오랜 시간 묻지 못했던 말이 떨어지자 엄마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지수는 네 언니 이름이야. 그러고는 지수를 이기띠 안에 넣어 주며 말을 이었다. 내 뱃속에서 죽은 아이 태명이 지수였어. 왜 그렇게 됐어? 내 물음에 엄마는 지수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그때는 단지 바쁘고 힘들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다시 바쁘게 움직이며 지수의 짐을 챙겼다.
    엄마는 내 왼쪽 어깨에 지수의 짐을 메어 주었다. 우유병과 옷, 손수건 등이 들어 있는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매일 메고 다니는 내 책가방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오늘따라 도로의 차들이 유난히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택시에 타자 엄마는 아기띠를 풀어 지수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지수에게 바깥 풍경을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저건 나무고 저건 자동차야. 지수도 자동차 좋아하지? 붕붕 하는 거. 지수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손가락으로 차창 밖을 가리키기도 했다. 택시 기사는 그런 지수를 보며 아이가 참 순하네요, 하고 말했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네, 정말 순해요, 하고 답했다. 나는 지수와는 반대쪽 창을 쳐다봤다.
    창밖의 사람들은 모두 바빠 보였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뛰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 각진 가방을 들고 지나치려는 버스를 잡아타는 남자, 높은 굽을 신고도 한 번 삐끗하지 않고 빠르게 걷는 여자.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다 눈을 감았다. 신호가 바뀌고 택시가 달려 나갔다. 나 또한 거리의 사람들처럼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또다시 가야 할 어딘가를 향해 눈을 돌렸고 숨 고를 틈도 없이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늘 이번 목적지보다 더 멀고 더 험한 곳에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택시가 센터 앞에 멈추자 엄마는 지수를 내 품에 안겨 주었다. 나는 지수를 받아 안고 센터로 들어갔다. 이 실장은 현관까지 나와 지수를 반겼다. 오는 길에 차는 안 막혔는지, 지수가 보채지는 않았는지, 우유는 언제 먹고 기저귀는 언제 갈았는지 등을 묻는 이 실장에게 엄마는 하나하나 대답해 주며 걸음을 옮겼다. 이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엄마를 붙잡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지금 위에 입양할 분들이 와 있어요. 아, 미국에서 온다던. 그 피 뭐였더라, 피……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내가 말을 이었다, 피츠버그. 응, 그래, 피츠버그.
    이 실장은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원래는 주말에 오기로 했는데 아이가 빨리 보고 싶다면서 오늘 왔지 뭐예요. 오늘 당장 데려간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나는 밑으로 흘러내리는 지수를 다시 받혀 안았다. 지수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만지고 싶어 했다. 지수의 손끝이 닿는 곳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이 있었다. 나는 지수가 만질 수 있도록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지수는 작은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뾰족한 끝이 위로 향해 있는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 불빛을 보고 지수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추고는 웃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지수는 5라는 버튼을 스스로 눌렀다. 낡은 엘리베이터는 조금씩 덜컹거리며 5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금발 머리의 외국인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보고, 아니 지수를 보고 웃었다. 그 옆에는 적갈색 머리의 여자가 지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지수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지수가 답답한지 몸을 틀었다. 이 실장은 미국인 부부에게 간단하게 엄마와 나를 소개했다. 남자가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는 동안 여자는 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수는 잠시 경계하는 눈길로 여자를 쳐다보다 내민 손을 잡았다. 지수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여자는 마침내 지수에게 두 팔을 길게 뻗었다.
    여자의 집요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하고 지수는 여자에게 안겼다. 안은 팔이 불편한지 입을 삐죽거렸지만 울지는 않았다. 여자는 지수의 이마에, 볼에, 머리에 입을 맞췄다. 서툰 손길이 지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지수는 여전히 울지 않았다.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도 잘 참아냈다. 그런 지수 때문에 오히려 울고 싶어진 건 나였다. 나는 지수에게서 등을 돌리고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울음을 삼켰다. 마음속으로 지수에게 말을 건넸다. 싫으면 싫다고 해.
    엄마가 수속 서류를 쓰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문득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래 의지할 데가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그 구절을 조금 바꿔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래 의지할 데가 없이 그저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존재임을 알았다, 라고. 그늘진 거리를 돌아보았다. 바쁜 사람들 속에서 나는 혼자 멈춰 있었다. 지수를 쓰다듬던 엄마의 아련한 눈이 떠올랐다. 그리고 추천서를 꼭 쥐고 있던 재희의 고집스런 눈도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지수의 말간 눈을 떠올렸다. 박지원의 울음터가 드넓은 요동 터였다면 나의 울음터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대로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작가소개 / 박사랑(소설가)

2012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이야기 속으로」가 당선되며 등단. 2014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문장웹진 3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