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부재중

 

 

 

서동찬

 

 

삽화-부재중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떴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앞이 희뿌옇게 보인다.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확인한다. 늘 아내가 누워 있던 그곳에는 있어야 할 아내 대신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다. 한숨을 쉬어 본다. 술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열심히 눈을 비벼 보지만 여전히 세상은 뿌옇다. 억지로 눈을 뜨고 방 안을 둘러본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방의 모습은 아내가 이 집 어느 곳에도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침대 맡에 둔 시계를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9시. 일찍도 일어났구나. 내가 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머니 속에서 울려대는 전화를 꺼내 확인해 본다.
    ‘정 과장.’
    잠시 받을지 말지 망설이다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 대리. 뭐야? 연락도 없이 회사도 안 나오고.”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이 있으면 제대로 설명을 해야지. 정말 이따위로 할 거야? 당장 나와.”
    “못 갑니다.”
    “뭐?”
    “당분간 출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진급 못 한 것 때문에 시위라도 하는 거야? 사회생활이 장난이야?”
    “장난…… 장난 아니니까 이제 연락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가서 정리하겠습니다.”
    “뭐?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당신 이것밖에 안 돼?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일단 출근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소리 지르지 마시죠. 아무튼 전 못 갑니다.”
    “뭐? 너 미쳤어?”
    “그럴지도…….”
    더 이상 쓸데없는 실랑이 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곧바로 다시 울어댄다. 난 없는 힘을 짜내 전화를 집어 던지고 멍하니 침대 끝에 걸터앉아 시계 옆에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곤 있는 힘껏 빨아들인 후 하얀 연기를 뱉는다.

 

    “후우.”

 

    연기를 뱉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정 과장이 날 노려보고 있다.
    “김 대리. 지금 담배 피울 시간이 있어?”
    “아, 죄송합니다. 금방 하나만 피우고 들어가겠습니다.”
    “뭐?”
    “아, 지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비벼 끄고 꽁초를 버렸다. 등 뒤로 여전히 날 노려보고 있는 정 과장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시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9층에 멈춰 선 채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젠장.’
    오늘은 되는 일이 없다. 정 과장이 다시 쫓아 들어올지 모른다 생각하니 초조해졌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으로 5층 사무실까지 헐떡이며 올라간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다 마침 문 앞에 서 있던 인사팀 박 대리와 살짝 부딪혔다.
    “아.”
    “아, 박 대리. 미안.”
    “대리님. 담배 피우셨어요?”
    “어? 어.”
    박 대리는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날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뒤돌아 가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내 자리로 돌아왔다.
    “김 대리님, 아까 부장님이 찾으시던데.”
    자리에 앉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옆자리에 앉은 이 대리가 날 보며 말했다.
    “그래? 지금 어디 계시지?”
    “아까 잠깐 이사님 뵙고 오신다고 하셨어요. 금방 나오실 겁니다.”
    “알겠어.”
    다시 책상 위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모니터에는 엑셀시트 위에 수많은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김 대리, 자리에 있어?”
    거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부장이 내 자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인다.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잠깐 나 좀 볼까?”
    “예.”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 자리로 갔다. 부장은 자신 옆에 놓인 조그만 의자를 가리키며 날 보고 앉으라고 했다.
    “무슨 일이신지.”
    “자네 이번 진급 대상자지?”
    “예.”
    “몇 번째지?”
    “네 번째입니다.”
    그동안 동기를 비롯해서 후배들까지 과장으로 진급했지만 난 아직 대리에 머물러 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인가?”
    “예.”
    이 회사는 1년에 한 번 진급시험이 있다. 그 진급시험 성적과 인사고과 등에 의해 진급자가 가려지는데, 네 번 실패할 경우 더 이상 진급 기회는 없다. 어느새 내겐 마지막 기회가 된 거다.
    “그래. 음.”
    부장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이지만 입을 꾹 다문 채 내 얼굴만 보고 있다. 사실 내가 월등하게 일을 잘 해온 것도 아니고 시험 성적이 특출 나게 좋았던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단지 그렇기 때문에 진급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며 부장은 날 진급시킬 마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나 역시 그러려니 하고 참고 있었을 뿐.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변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에 우리 부서 진급 대상자가 세 명이나 되잖아. 진급자 수는 정해져 있고 말이지.”
    부장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진급자 심사 시기가 다가오면 늘 하는 말이다.
    “물론 연차로 보나 뭐로 보나 이번 진급자는 자네가 돼야 맞는데, 내가 누구 한 사람을 밀기가 좀 애매한 상황이라…….”
    “부장님, 저 작년에 결혼도 했고, 올해가 마지막이라…….”
    나 역시도 이번에는 고개만 끄덕일 순 없다.
    “알지. 알아. 결혼했었지, 참. 어린 여자랑 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부장은 의외라는 듯 내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네?”
    “어? 거 왜 그런 거 있지. 알지. 그럼.”
    회사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한 번 놀라고, 내 아내가 아주 어리단 사실에 또 놀란 모양이다. 부장은 종종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농담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대던 사람이다. 아내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질투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렇지 않게 악담도 했었다. 바람 안 나게 조심하라는 둥, 오래 잘살 능력이 있겠냐는 둥……. 어쨌거나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그리고, 이제까지 쭉 제가 양보했던 것도 있고…….”
    부장은 살짝 인상을 구기며 날 가만히 쳐다본다.
    “뭐?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도 마. 양보라니.”
    “아, 예. 죄송합니다.”
    부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말했다.
    “일단, 알겠으니까 가봐.”
    “예.”
    인사고과라는 게 결국은 상급자의 평가에 따른 지표이기 때문에 상급자가 밀어 주는 사람은 대부분 진급하게 된다. 난 매번 진급 때마다 동기나 후임들에게 양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빼앗겨 왔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없다.
    부장과의 대화 후에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무의미한 일들을 하느라 내 업무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하루가 다 흘러갔다. 퇴근하려는데 옆자리의 이 대리가 묻는다.
    “대리님,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실까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월요일부터 무슨 술이야.”
    “맥주가 술인가요? 간단하게 딱 한잔만 하시죠. 용희 대리님이랑 정 과장님도 가신대요.”
    용희라면 이번에 나와 같은 진급 대상자인 윤용희 대리를 말하는 것이다. 정 과장까지 간다는데 이 자리에서 빠졌다간 진급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이 대리를 향해 잠깐 기다리란 손짓을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나예요.”
    “퇴근했어요?”
    아내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어서 집으로 가고 싶다.
    “회사 동료들이랑 간단히 저녁 먹고 갈게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저녁 먹어요.”
    “아. 그래요. 너무 늦지 말고.”
    “응.”
    “술 많이 마시지 마요.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이 대리 쪽을 보니 벌써 퇴근 준비를 마친 이 대리는 어서 나가자고 신호를 보낸다. 퇴근한 부장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이 대리와 함께 회사 근처 호프집으로 갔다. 넓은 홀 자리를 피해 구석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간단히 맥주 500cc와 감자튀김 따위가 놓인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우리 네 사람은 다들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 아무도 먼저 입을 떼지 않는다.
    힘든 일을 마치고 가지는 떠들썩한 술자리는 누군가에겐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평범한 술자리조차도 나에겐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긴장을 완화시키고 내일을 힘차게 맞이하기는커녕, 더 오랜 시간을 재충전에 허비해야 할 뿐. 더군다나 오늘은 해방감을 느끼고 맘 편히 즐길 자리도 아니다.
    “요즘 팀장님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이 대리가 먼저 입을 뗀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잖아. 마케팅 실적은 안 나오고, 아이디어는 빈곤하고…….”
    윤 대리가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대꾸한다.
    “그러니까 더 눈치 보여요.”
    이 대리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너희가 잘 해봐. 팀장님이 머리 아플 일이 있겠어? 그리고 난 어떻겠어? 너희들 입장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새롭게 뭘 하기도 쉽지 않은데, 단순히 실적 안 나오는 걸로 조이기만 하니…….”
    정 과장이 한숨을 쉰다.
    “그러니까…… 우리 팀은 참 애매해요, 그쵸?”
    이 대리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케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뭐 제대로 된 게 나와야 그걸 가지고 마케팅을 하는 건데, 요즘처럼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우리가 잘해도 티도 안 나고, 행여 매출이 안 나오면 우리 탓부터 하잖아요.”
    “그러니까 얼른 다른 팀으로 가야지.”
    정 과장이 말을 마치고 맥주를 비운다.
    “김 대리님은 벌써 마케팅에서만 5년째 계시잖아요. 올해는 무조건 부서이동이네요.”
    이 대리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날 보며 말한다.
    “그래.”
    “전문가가 떠나니, 마케팅도 이제 험난한 시기가 오겠네요.”
    “김 대리님은 마케팅에 남아 계셔야 할 인재인데…….”
    윤 대리가 맥주를 홀짝이며 혼잣말하듯 말한다.
    “무슨 소리야?”
    “예? 아, 김 대리님만큼 우리 부서에 오래 계신 분 없잖아요. 제일 잘 아시는 분이니 계속 마케팅에 남아 계시는 게 회사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죠.”
    이 부서에서 올해로 5년차다. 그러니까 마케팅팀에 남는다는 뜻은 진급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우리 회사 내규상 그렇다.
    “김 대리도 진급해야지.”
    정 과장이 말한다.
    “그래도 회사 입장에선 어떻게든 김 대리님은 마케팅팀에 두고 싶지 않을까.”
    “마케팅 전문가시니까.”
    “나도 김 대리는 어디 안 갔으면 좋겠어.”
    정 과장이 거든다. 내가 마케팅팀에 가장 오래 있었지만 업무상 우리 부서에서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이 업무 때문에 특별히 날 찾는 일도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마케팅팀에 남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자꾸 하고 있다.
    “아니야. 나도 이제 좀 벗어나고 싶어.”
    “어? 정말요?”
    “그래.”
    “이야, 김 대리님이 마케팅팀을 떠나고 싶어 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팀장님 아시면 난리 나겠네.”
    “가장 믿는 직원이 떠나고 싶어 하다니…….”
    이 대리와 윤 대리,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출퇴근을 함께하고 이런 술자리도 자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잘 맞는 것 같다.
    “맥주나 더 시켜 봐.”
    정 과장이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하고 이 대리는 맥주 세 잔을 추가로 시켰다.
    “김 대리.”
    “예.”
    “만약에 이번에 진급 못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예?”
    “이번에 진급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사실상 이 회사에서 미래는 없어지는 거잖아.”
    정 과장은 아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했다.
    “글쎄요.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김 대리님 정도면 이직하셔도 되죠.”
    “그렇지. 김 대리님은 경력직으로 모셔가려는 데가 많을 거야. 우리랑은 다르지.”
    두 사람은 티브이 프로그램의 만담 콤비처럼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우리 팀에서 몇 명이나 진급할까요?”
    “많아야 두 명?”
    정 과장은 새로 가지고 온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올해 실적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세 명 다 밀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으로선 힘들지.”
    “올해 실적이 좋을 수가 없었잖아요.”
    “이 불경기에…….”
    “그래. 대형 편의점 연계 마케팅이 실패한 게 제일 커.”
    그 대형 편의점 연계 마케팅 담당자가 바로 나다.
    “아, 그게 좀 크게 묻히긴 했죠.”
    “뭐, 그거 빼도 다 비슷비슷할 텐데.”
    세 사람이 동시에 날 쳐다보고 있는 걸 느꼈다. 이 대리와 윤 대리를 거쳐 내 눈이 정 과장을 향했고 정 과장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맥주잔을 집어 들고 내게 내밀며 말한다.
    “김 대리 잘못이 아냐. 누가 맡았어도 어려울 아이템이었어.”
    난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정 과장의 잔에 살짝 부딪히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참, 윤 대리님 지난달에 시작한 건 어떻게 됐어요?”
    “이번 주 안으로 목표액까지 갈 것 같아.”
    “이야, 역시.”
    이 대리는 윤 대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왜 이래. 상반기 이 대리 실적에는 아직 모자라.”
    “이 추세면 역전되겠는데요?”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두드려 가며 웃는다. 정 과장은 둘을 보며 웃고 있다. 잠깐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아내를 보고 싶다.
    “저 잠시 화장실 좀…….”
    화장실 핑계를 대고 숨 막히는 술자리를 잠시 벗어났다. 저들이 저런 식으로 날 무시하고 따돌리는 게 처음도 아니다. 아니, 늘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무덤덤한 척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 정도일 뿐이라고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가치가 그게 전부가 아님을 말해 주는 아내가 있어 저런 식의 대화를 참고 있기가 힘들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인 후 하얀 연기를 뱉는다.

 

    “후우.”

 

    내 입에서 새어 나온 하얀 연기가 차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난 정면에 있는 마트 입구로 시선을 돌린다. 이곳에 그 남자가 있다. 나이는 내 아내와 동년배일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집을 나가서 갈 곳은 저 남자 옆일 수밖에 없다.
    어젯밤 아내가 집을 나간 뒤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버린 탓에 오늘 오전에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저 남자의 존재를 경찰에 알릴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나의 아내가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와 살기 위해 집을 나가버렸단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질 것이고, 그건 곧 아내의 입장뿐 아니라 내 입장까지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저 남자를 만나 내 선에서 처리해야 한다.
    나와 열한 살 차이 나는 나의 아내는 내겐 유일한 안식처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다.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남들보다 못한 외모였던 나. 번듯한 직장은 있지만 그 직장 내의 입지는 단순 경리일을 보는 아르바이트생보다 형편없었다. 하루하루를 살아지니까 살았다.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그녀를 우연히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게 빛이 되어 줬다.
    어린 나이의 아름다운 그녀가 날 받아 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내 곁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늘 내 옆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왜…… 왜 날 배신한 걸까? 아니, 그 한 번의 실수. 그 실수가 집을 나가 다른 남자에게로 갈 만큼 대단한 이유가 되는 걸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걸까?
    아내가 사라진 순간부터 쭉 회사 동료들이 내게 하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여자와 살면서 내가 힘들어질 거라던 이야기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러려면 그녀를 만나야 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선 저 마트에 있을 남자부터 만나야 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길게 빨아들인 후 하얀 연기를 공중에 내 뱉는다.

 

    “후우.”

 

    “담배 좀 그만 피워요.”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아, 그래. 알겠어요.”
    난 웃으며 급히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어서 옷 갈아입고 씻어요. 저녁 다 됐어요.”
    “그래요.”
    안방으로 가서 옷을 벗는다. 어제 있었던 술자리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별로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아직 피곤할 뿐 아니라 기분도 안 좋다. 오랫동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그들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자리는 최소한 진급과 관련한 정보를 얻는 자리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의 위치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향했다. 내게는 이제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다. 예전처럼 흘러가는 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고 발을 씻는다. 분명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혼을 한 이후에 사람들은 나에게 예전보다 밝아졌다는 둥, 좀 더 활발해졌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지만, 내 행동이 크게 바뀐 건 아니다. 그들이 날 보는 시선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건에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오늘은 고등어가 좋다길래 사봤어요.”
    “맛있겠는데?”
    아내의 웃는 얼굴에 미소로 화답하고 식탁 앞에 앉아 고등어조림을 맛본다. 역시 맛있다.
    “맛있네.”
    “진짜?”
    “어, 맛있어요.”
    “다행이다.”
    맞은편에 앉은 아내가 날 보며 웃는다. 하지만 아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근데 당신은 안 먹어요?”
    “아까 장보러 갔다가 군것질을 좀 했더니 배가 불러서요.”
    “혼자?”
    “혼자는 아니고,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아는 사람이 누구지? 이사 온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이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라니? 아, 아내는 붙임성 좋은 성격이니까, 이웃의 누군가와 금방 친하게 지낼 수도 있겠지.
    집 앞에 있는 마트로 매일같이 장을 보러 가는 아내의 정성이 느껴져 더 맛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장을 좀 봐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내는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매일 오후에 장을 보러 마트로 간다.
    “이건 다 먹고 디저트로 먹어요.”
    아내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내 앞에 초콜릿 하나를 내민다.
    “웬 초콜릿이에요?”
    “그냥.”
    아내는 내가 궁금해 하는걸 즐기는 듯이 웃으며 날 보고 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마음씨도 곱고, 외모도 상당한 미인이다. 그런 그녀의 한 가지 흠이라면 가정형편인데, 그런 건 내겐 중요치 않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다. 가정형편이 안 좋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안 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여자다.
    “당신은 어땠어요?”
    “음?”
    입안 가득 음식을 씹으며 아내를 보니 아내는 어느새 턱을 괴고 날 보고 있다.
    “회사에서 별일 없었어요?”
    “아,”
    대충 입안의 음식들을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요즘 워낙 경기가 안 좋으니까 분위기는 안 좋지만, 특별히 큰 문제는 없어요.”
    “근데 왜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요?”
    아내에게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이래서 부부 사이라는 건가.
    “그게…….”
    솔직하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괜한 이야기로 걱정하게 만들면 어떡하나. 남편의 무능함에 실망하진 않을까. 이 사람이라면 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니까 내 상황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게 아니고…….”
    그녀는 또 한 번 웃어 준다.
    “사실은……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 진급자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서 요즘 매일 퇴근하고 공부하잖아요.”
    “근데, 분위기가 좀 안 좋아서…….”
    “분위기요?”
    “그러니까…… 진급이 사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서…….”
    아내는 뒷이야기를 기다리며 날 보고 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그간 직원들의 업무성과를 평가해요. 실적이나, 성실성 같은 것들.”
    “그건 누가 해요?”
    “팀장님이 하시는데, 그게 사실 업무성과만을 평가하는 자료는 아니거든요.”
    “업무성과를 평가하는데 업무성과만이 아니면 뭘 보는 거예요?”
    “그게…….”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다.
    “그러니까, 팀장님이 판단해서 진급시킬 사람을 고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도 팀장님 마음에 안 들면 좋은 평가를 못 받는 거죠.”
    “그치만.”
    아내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한 표정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팀장님 눈에도 예뻐 보이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회사라는 데가 그렇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만 한 곳은 아니에요.”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정치적인 부분들도 있고…….”
    “아,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진급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그게…….”
    “걱정 마요. 당신은 잘할 거예요.”
    “음, 잘해야죠.”
    “이렇게나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리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적이진 못하더라도 성실하고 열심히 하잖아요. 한 번도 당신 일하는 걸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알아요. 설렁설렁 할 사람은 아니니까.”
    아내는 웃으며 내 오른손을 꽉 쥐어 준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당신 능력 못 알아보고, 진급 누락이라도 되면 그 회사가 손해지 뭐.”
    “그래요?”
    아내의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 무거운 마음이 동시에 생긴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하던 대로 열심히 해요. 나도 내조 열심히 할게. 만의 하나 안 되면 회사를 옮기든가, 다른 일 알아보면 되지. 뭐 그런 걸로 잔뜩 걱정하고 그래요?”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내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위의 빈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놓는다.
    “놔둬요. 내가 치우면 돼. 당신은 공부도 해야 하잖아. 소화 될 동안 그냥 좀 쉬고 있어요.”
    “괜찮아요.”
    “밖에서도 일하고 들어왔는데 집에서도 일 시키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집에서 놀기만 한 거 아니잖아요.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안 돼!”
    아내는 싱크대로 향하려는 내 앞을 막아선다. 그러고는 이를 꽉 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냥 놔둬요.”
    “설거지는 할 수 있는데.”
    “이 집 주방은 내 권한이에요. 어서 거실로 가요.”
    아내가 등까지 떠미는 통에 싱크대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부엌에서 내가 뭘 하는 걸 못 보는 아내다. 아마도 자기만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게도 나의 영역은 있다. 회사에선 남들이 하자는 대로 대충 따라간다지만 적어도 내 집만큼은 나의 영역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 영역을 공유하는 사람이 나의 아내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 자신의 영역을 나와 공유할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싱크대에 서서 콧노래까지 불러 가며 주섬주섬 뭔가를 하는 그녀를 보다가 거실로 돌아섰다. 테라스로 나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아내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영역을 필요로 하니까. 그런 아내의 영역이 나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게 오히려 기분이 좋다. 정말 이 행복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잃고 싶지 않다. 괜히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난 주먹을 꽉 쥐고 하얀 담배 연기를 뱉었다.

 

    “후우.”

 

    마지막 담배 연기를 뱉고 차에서 내려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뒤를 돌아 날 힐긋 보더니 다시 걸어간다. 날 기억 못 하는 건가. 조금 더 빨리 걸어 남자의 어깨를 잡고 돌려 세웠다.
    “어?”
    남자는 날 가만히 쳐다보더니 인상을 구기며 말한다.
    “어제, 그.”
    날 알아보는 모양이다. 하긴,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다. 비록 잠시 스쳤지만 몰래 만나던 여자의 남편이니까.
    “내 아내는 어디 있지?”
    “예?”
    남자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다.
    “내 아내는 당신 집에 있나? 아님 다른 곳에 머물고 있나?”
    “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남자는 모른 척할 생각인 모양이다.
    “아니, 다른 의도는 없어.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정말 대화만 할 거니까 좀 만나게 해줘.”
    “예? 어제 좋게 보내줬더니 오늘 또 이러는 겁니까?”
    “좋게 보내준 건 나지.”
    “예?”
    남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보고 있다. 지금 상황이 당황될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 생각 못 했겠지. 난 혹시 몰라 준비해 온 칼을 슬쩍 보여줬다.
    “난 이런 각오로 오긴 했지만, 당장 해칠 생각은 없어. 정말 대화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남자는 날 멀뚱 멀뚱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뭐야. 이 미친 새끼가.”
    미쳤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라도 내 입장이 되어 보면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남자는 달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조금 성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남자가 자기 집 문을 열 때까진 조용히 추적했어야 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남자의 집이 어딘지 알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게 돼버린다. 일단 남자를 쫓았다. 남자는 나와의 거리를 재가며 달린다. 난 남자의 등만 보고 달린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뭔가에 걸려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고개를 들어 뭔지 확인하려는데 검은 그림자가 날 덮쳐 바닥에 양어깨를 고정시킨다.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탄 그림자는 내 양손을 잡고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당신 뭐야?”
    “말했잖아. 너랑 바람난 여자 남편이라고.”
    “무슨 개소리야. 사람 잘못 봤어.”
    “아니. 난 니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니까.”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 쉰다. 어쩌면 이 남자는 잠깐의 재미를 위해 내 아내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으니 당황한 거겠지.
    “경찰 부를 거야.”
    남자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뭐?”
    “스토커도 아니고 아저씨 왜 이래?”
    “그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남자는 긴 한숨을 쉬고 날 보며 말한다.
    “그래. 그럼 경찰 불러서 이야기하자고.”
    “경찰을 부르면 당신도 안전하지 못할 텐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간통.”
    남자는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곤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쉰다.

 

    “후우.”

 

    술을 깨기 위해 길게 한숨을 쉬어 본다. 아내에겐 회식이라 늦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회식자리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고, 내가 오래 있기를 바라는 사람 또한 없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탓에 억지로 마셔야 하는 회식자리는 고역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나를 제외한 모두를 위한 회식이었으니까.
    결국 진급에 실패했다. 아내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른스러운 사람이니 다 이해해 주지 않을까? 아니지. 설마 떨어질까 하고 생각하다 정말로 진급에 실패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좀 다를지도 모른다. 아. 머리가 아프다.
    뒤집어지는 속을 부여잡고 택시에서 조금 일찍 내렸다. 조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이야기는 어떻게 꺼내야 할까. 무능력한 남자라 욕하진 않을까? 이제야 좀 잘 풀려 가는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또 이 모양이다. 내겐 그 흔한 행복이란 걸 허락할 수 없다는 것처럼.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까지 도착했다. 집 앞에는 못 보던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다. 집 근처 마트의 로고가 붙어 있는 차. 시계를 확인한다. 9시. 이 시간에 이 차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별 생각 없이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현관 앞에 다다르자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자와 여자의 웃음소리. 문 앞에 서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 중인지 들어 보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러워 집중하기 힘들다. 문손잡이를 돌렸다.
    ‘찰칵.’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나를 맞이한다. 문소리를 들은 건지 분주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곧 부엌 쪽에서 한 젊은 남자와 아내가 나타났다. 남자는 날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누구지? 날 언제 봤다고 인사를 하는 거지?
    아내가 남자를 따라 현관 쪽으로 걸어온다. 남자는 날 스쳐 지나며 신발을 신는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고마워요.”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졌다. 아내는 내 옆으로 오다 말고 한 발 떨어져 서서 날보고 말한다.
    “일…… 일찍 왔네요?”
    “응?”
    “회식이라 늦을 것 같다더니…….”
    “아.”
    “술 많이 마셨어요?”
    “좀…….”
    바깥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그 남자가 어딘가로 간 거겠지.
    “누구예요?”
    “네?”
    아내의 표정이 잠깐이지만 바뀌는 게 보였다.
    “아, 마트에서 일하는 분이요.”
    바깥에 서 있는 자동차에 마트의 로고가 붙어 있었지. 아내의 눈을 가만히 쳐다본다. 평소와는 다르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이상하다. 뭔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집에 온 거지?”
    “그건…….”
    아내는 잠깐 바닥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이랑 이런저런 걸 좀 많이 샀는데 들고 오기엔 무거우니까요.”
    “물…… 배달이라고?”
    “네.”
    왜 내 집 부엌에서 처음 보는 젊은 남자와 아내가 함께 있어야 한단 말이지? 이 집은 내 영역이고, 부엌은 나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아내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부엌에서 같이 웃으며 나오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아.”
    “오늘 술이 좀 과한 것 같은데 빨리 씻고 자요. 요즘 안 그래도 회사일 때문에 힘들면서 왜 술을 그렇게 마셔 가지고.”
    “빨리 씻고 자라고? 내가 잠들면 뭐 하려고?”
    “네?”
    “왜 대화를 피하고 날 재우려는 거지?”
    “왜 이래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아내는 길게 한숨을 쉬며 팔짱을 낀다.
    “요즘 많이 힘든 거 알아요. 싸우기 싫으니까 얼른 씻기나 해요.”
    “아까 표정은 왜?”
    “무슨 표정이요?”
    “내가 들어왔을 때 그 놀라는 표정은 뭐였지?”
    “그야, 훨씬 더 늦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으니까.”
    “내가 늦을 거라 생각하고 그 남자를 불렀는데 생각보다 내가 빨리 와서 당황한 건가?”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그래. 아내는 매일같이 마트에 갔다. 그리고 난 야근이 있거나 귀가가 늦어질 때마다 아내에게 미리미리 연락했었다. 아내와 저 남자가 만나 무슨 짓이건 벌이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이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확 올라오는 것 같아 속이 불편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뭘요?”
    “저 남자.”
    “저 남자가 뭐요?”
    “무슨 사이야?”
    “미쳤어요?”
    아내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다. 그런 아내가 지금 내게 화를 내며 소릴 질렀다. 정말 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다면 내게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자고 내일 이야기해요.”
    “왜?”
    “네?”
    “왜 내일 이야기해? 지금 하면 안 되는 건가? 내일까지 변명할 거리라도 고민하려는 건가?”
    난 바닥을 쳐다보며 혼잣말하듯 했지만 충분히 아내에겐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날 노려본다. 숨이 점점 가빠져 숨쉬기가 힘들다. 길게 심호흡을 하고 아내를 보며 말했다.
    “이제야 매일같이 마트에 가는 이유가 뭔지 알겠어.”
    아내는 말없이 날 뚫어져라 보고 있다.
    “왜?”
    “이러지 마요. 나도 힘들어.”
    “왜? 두 남자를 한꺼번에 만나려니 힘들어?”
    아내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하아. 왜 모든 게 다 이런 식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걸까. 내 인생은 딱 그 정도인 건가. 속에서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날 덮치려 하고 있다. 이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곧 아내가 방에서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온다.
    “잠시 나가 있을 거예요. 제정신 돌아오면 연락해요.”
    아내는 날 스쳐 현관으로 간다. 나 대신 그 남자를 선택한 건가?
    “갈 데도 없잖아. 그 남자에게 가려고?”
    아내는 고개를 홱 돌려 날 노려본다. 주먹을 꼭 쥐고 날 노려보던 아내는 곧 돌아서 나가버린다. 아내가 나가고 현관문이 천천히 닫힌다. 끓어오르던 무언가 때문에 어지럽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진다. 술기운인가.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며 길게 한숨을 쉬어 본다.

 

    “하아.”

 

    남자는 경찰서 건물 앞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는다.
    “장 형사님.”
    남자에게 다가온 또 다른 젊은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를 부르자 담배 연기를 뱉던 남자가 돌아본다.
    “어. 확인해 봤어?”
    “예.”
    젊은 남자 역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장 형사에게 말한다.
    “트렁크 속에 있는 시신과 실종신고 들어온 여성, 일치합니다.”
    “그래.”
    “그 집 마당에 설치된 CCTV 영상에서 여자 목 조르는 장면부터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 장면까지 다 확보됐고요.”
    “잘 됐네.”
    장 형사는 눈을 비비며 말한다.
    “정리만 잘하면 되겠네. 그 남편이라는 남자는?”
    “계속 다른 소리만 합니다. 지금은 유치장에서 잠들었고요. 마트 CCTV 영상에서 난동부리는 영상도 확인 중입니다. 그 마트 아르바이트라는 남자 말에 따르면 남편이라는 사람이 마트에 간 게 어젯밤 11시 정도였다니까, 여자를 죽이고 바로 마트로 가서 난동부린 것 같아요. 몸싸움도 좀 있었고.”
    “근데 왜 신고를 안 했대?”
    “골치 아픈 게 싫었나 보죠. 근데 제대로 될까요?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르지만 어제 저녁부터오늘 아침까지 기억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요.”
    “진짜일 수도 있겠지. 제정신으로 자기 아내를 죽였으면 그게 사람이야? 일단 깨면 이야기해 보자고.”
    “예.”
    두 사람은 천천히 하얀 연기를 뱉어내고 연기는 천천히 하늘 위로 퍼져 간다.

 

 

 

작가소개 / 서동찬(소설가)

1984년 출생. 건축공학 전공. 제8회 디지털 작가상 우수상 수상.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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