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풍자가 겨냥하는 것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풍자가 겨냥하는 것

― 「휴먼 리소스」를 읽고

 

 

양근애(연극평론가)

 

 

 

 

 

    박신수진의 희곡 「휴먼 리소스」는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인적자원재활용센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극에서 ‘인적자원재활용센터’란 쓸모없어진 인간들을 재활용하거나 폐기처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을 말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시대, 머지않아 인간은 물건 아니 쓰레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가상의 시공간적 배경만 보아도 이 희곡의 성격과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휴먼 리소스」가 취하고 있는 풍자의 형식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사실 풍자의 형식이 아니라면 그러한 상상을 견디기 힘든 시대가 아닐까 싶다. 매일 쏟아지는 사회면의 기사들이 자본주의의 바깥으로 밀려난 인간들의 불행과 무기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이 오르면 인적자원재활용센터의 신입사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한 팀장’이 등장한다. 관객을 신입사원 삼아 쏟아내는 한 팀장의 대사를 시작으로 이 극은 풍자극의 익숙한 문법을 따라간다. “재활용은 국가의 힘이다”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는 한 팀장이 실은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김 부사장’의 등장으로 밝혀지고, 김 부사장이 한 팀장의 옷매무새를 지적하며 재활용 검사관은 ‘럭셔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면서 김 부사장의 허위의식도 곧바로 드러나는데, “영어가 더 있어 보인다”며 “재활용은 국가의 힘이다”를 “리~사이클~ 이즈~ 파워~ 오브~ 스테이트”로 바꾸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익숙하고도 뻔한 성격화는 풍자극에서 흔히 통용되는 설정이지만 자칫 인물의 성격보다 기능만 강조할 위험이 있다. 「휴먼 리소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아슬아슬한 데가 있다. 한 팀장과 김 부사장, 여자, 이렇게 단 셋만 등장하는 희곡에서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보다 현재 ‘그렇게 하고 있음’만 강조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쓰레기로 잡혀 왔던 사회비판적인 청년이 수집요원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고, 불법으로 수집요원으로 취직해서 지금의 한 팀장이 되기까지, 한 인물의 내적 변화의 계기가 잘 포착되지 않는다. 물론 한 팀장의 심리 추이가 극의 전개상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는 없지만 ‘한 팀장은 어떻게 이 센터의 시스템에 이토록 잘 적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풍자의 효과는 확보되기 어렵다. 현재 한 팀장의 어리숙하고 어리석은 모습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결과만 보여줄 뿐,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청년이 겪어내야 했을 고뇌의 과정 같은 것들은 어느새 삭제되어 버린 것이다. 요컨대 이 극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그로 인한 비인간화라면 “쓰레기에도 급이 있다”는 식의 풍자적 대사만 아니라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인간을 등급화하고 국가 혹은 국가의 대리 기관이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회의 문제적 국면을 좀 더 첨예하게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휴먼 리소스」가 극의 구조를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구축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극작술상의 아슬아슬함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1장은 한 팀장에게 잡혀온 여자가 그가 바로 예전에 자신이 심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잡혀온 청년이었다는 점을 알아보는 장면에서 끝나는데 여기서 수수께끼가 발생한다. 2장은 과거로 돌아가 인간쓰레기로 인적재활용센터에 잡혀온 청년이 “소비자거나 노동자거나 자산가가 아니면 국민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라는 심사원의 말에 격분하여 여자를 살해 위협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자에게 할당된 수집요원 계약서 중 1장을 청년에게 넘기면서 청년은 ‘취준생-인간쓰레기’에서 ‘수집요원-공무원’이라는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3장에서는 이 계약서가 사실 3000만 원에 불법으로 판매되어야 했다는 점이 추가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여자가 이 돈을 사무관에게 대신 갚아야 한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는 시스템을 감시하고 조정하는 더 큰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수집요원이 나타나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4장의 계약서를 갈취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증폭되는 상황 자체가 주는 아이러니가 풍자의 형식을 버티게 한다. 「휴먼 리소스」의 세계관은 날 서 있지 않지만, 이와 같은 구조가 제공하는 긴장과 해결의 방식이 극적 효과를 어느 정도 성취하게 한다.
    연민이나 두려움과 같은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비극과는 달리 희극은 앎의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성적이고 논쟁적이다. 희극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은 그만큼 어려운데, 풍자 정신을 담지하고 있는 웃음일수록 고도로 계산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휴먼 리소스」에서 유발하는 웃음은 냉소이거나 조소여서 그 온도가 차가운 편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관객들에게는 그 웃음마저 허락되지 않을 것 같다. 극 속에서 암시되기를, 가까스로 인간쓰레기에서 벗어난 많은 청년들 중 상당수는 수집요원이라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또 시험을 치른다. 공무원이 된 그들이 하는 짓은 자신과 다를 바 없었던 비-경제인간을 잡아다 격리시켜 다른 인력으로 재활용하거나 무인도에 보내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허구로 만들어진 상상이지만 인적자원재활용센터만 없다 뿐, 우리 사회가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돈으로 인간됨을 사고 판 지 오래라는 사실은 여실히 체감하고 남음이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비판 정신이 공감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조리함과 음험함에 대한 대상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시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악무한적 순환 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므로 – 에 「휴먼 리소스」와 같은 풍자의 형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진전된 사유를 가능하게 할지, 또 희극이 가진 사회적 교정 장치의 역할을 이 극에서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것인지 자꾸 묻게 된다.
    우연히 수집요원이 된 후 인간쓰레기를 잡아서 심사하는 위치에까지 오른 한 팀장이 결국 감기에 걸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는 결말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경쟁에서 이겨 심사원의 위치에 오른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공무원 사회의 안정감을 만끽하며 살고자 했으나 결국 비리 공무원 신세로 전락하여 그 자신이 인간쓰레기로 심사장에 와 있게 된 여자의 상황은 그저 억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문제는 이 희곡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들의 불행이 사회적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한 불행으로 보일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한 팀장의 사회비판적 의식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 계기가 납득되지 않는 이상, 또 자신이 비리 공무원으로 고발되기까지 고위 공직자가 요청한 돈 요구에 대해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선택이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점이 설득되지 않는 이상, 실제로 더 첨예한 경제적·정치적 권역에서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쓴웃음을 유발하기는 어렵지 않나 우려된다.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토록 단순하게 작동할 리가 없듯이, 경제활동의 강퍅한 일상을 힘들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순응 혹은 저항하는 내면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휴먼 리소스」는 풍자의 태도를 취하되, 풍자의 과녁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아슬아슬하다. 어쩌면 지금의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조소와 냉소 사이의,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너무 써서 삼킬 수 없지만 한 번쯤 벼락같은 해방감을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뜨거운 웃음이 아닐까. 그러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한 팀장이나 여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시스템의 꼭대기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감추어져 있어서 신비화되어 있기까지 한 저들의 허상을 깨뜨릴 수 있는 날을 벼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극의 인물들은 그 권력의 메커니즘을 증폭시키는 사람들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이 야기할 수밖에 없는 미래 사회의 불행을 다룬 영화나 소설이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연극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비판과 풍자가 무엇일지, 고민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작가소개 / 양근애(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희곡 연구자.
서울대 국문과 박사수료(현대희곡 전공),
《한국희곡》, 《오늘의서울연극》 등 연극평론 기고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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