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음모론 시대의 이야기, 혹은 쫓기는 암살자들의 세상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음모론 시대의 이야기, 혹은 쫓기는 암살자들의 세상

― 용현중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하여

 

 

노대원(문학평론가)

 

 

 

 

 

    ‘음모론의 시대’라고 한다. 정상적인 설명 방식으로는 이 시대를 이해하고 감당하기 어려워서일까. 혹은, 재앙적인 사태들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진상을 밝히고 무겁게 책임지기보다는 감추고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다른 가십들로 쉽게 덮어버리려 하기 때문일까. 곳곳에서 음모와 소문 들이 울분과 고통을 참기 힘든 세상 위로 무성하게 창궐한다. 그런데도 음모 이야기들은 속 시원하게 세상을 이해시켜 주기보다는 또 다른 음모 이야기들을 낳기만 하는 듯하다. 음모론의 악순환이고, 음모론의 연쇄고리다. 음모 이야기로 넘쳐나는 저 악의 고리를 잘라내려면 그 이야기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모(conspiracy)’ 이론이란, 특정 소수 집단이 비밀리에 크고 작은 정치적 ㆍ 사회적 사건과 정국 들을 통제하고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설명 방식이다. 그 설명 방식의 신뢰 여부를 떠나 그것들이 다루는 대상들이란 대체로 무겁고 거대한 정치적인 사태들이다. ‘프리메이슨(Freemason)’이나 유대인 집단들이 세계의 정국을 은밀하게 주도해 왔다거나,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거나, 세계 곳곳에 출몰한 UFO에 대해 감추고 있는 비밀은 따로 있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 방식.
    가깝게 우리에게는, 천안함 침몰이나 세월호 참사에서처럼 정부의 정보 통제와 어설픈 은폐 시도도 주류적인 공식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는 수많은 이견들을 양산해 낸 사례가 있다. 물론 그 이견들에는 온갖 억측에서부터 공식 발표가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한 진실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진지한 양심과 비판의 목소리들이 뜬소문들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 탓에 때때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비판마저도 망상적인 음모론으로 악의적인 의도로 폄하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을, 악화(惡話)가 양화(良話)를 구축한다는 말로 바꿔 써도 좋을 법하다. 오늘날의 많은 서사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듯,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가치 판단을 내리며 결정을 하는 기본적인 원리가 바로 ‘이야기’라면, 지금의 세상은 진실과 이해의 거대한 공백을 메우려는 숱한 음모 이야기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용현중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의 유명한 경제학 용어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소설의 서술자는 천연덕스럽게 이 비밀 단체의 이름을 애덤 스미스가 차용해 간 것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단체와 비견되고 실제로도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암살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집단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벌이는 상업 행위들은 일기예보 조작을 통해 ‘우산’을 판매해 얻는 경제적 이익으로 설명된다. 수많은 암살자들을 비밀리에 관리하는 초국가적 비밀 단체치고는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사소한(?) 조작과 판매 사업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 간극이 낳은 아이러니로 독자들은 헛웃음을 짓게 된다. 작가는 경제학 용어와 음모 이론을 뒤섞고 뒤틀어 패러디하면서, 그 자체로서 탈권위주의적 서사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용현중의 스타일과 서술 기법은 패러디뿐만 아니라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차용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밀 단체가 수익을 얻는 방식을 소설의 서두에서 너무 가볍게도 모조리 누설해 버리는 대신 조직 내부의 사정들은 하나둘 서서히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손’ 조직의 수수께끼가 소설의 핵심이라면, 수수께끼의 답을 하나 제공하는 대신 작가는 요령 있게 다른 수수께끼들을 미스터리의 그늘 속에서 서서히 끄집어낸다. 그것도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내부 조직원을 암살하려는 이야기로 말이다. 이러한 양가적인 소설적 스타일의 특성은 바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태도와도 직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손」에는 패러디 특유의 냉소와 유쾌함이 인물들의 생사를 다루는 스릴러의 무거운 문장들과 공존한다. 이 소설의 가독성은 단지 문체와 형식상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가벼움과 진지함이 혼합되어, 소설은 독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용현중 작가의 이 소설은 직 ㆍ간접적으로 인용되어 작품과의 영향 관계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올드 보이》와 같은 한국의 대중적 장르 영화들과, 그리고 그밖에 음모의 플롯을 내장한 많은 하위 장르 서사들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작가가 장르 문학과 웹툰 작가로서 활동한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활달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추측할 수 있을 듯하다. 「보이지 않는 손」에서 두드러진 음모의 플롯 역시, 음모론을 자극하는 은폐의 시대라는 사회적 조건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대중문화의 음모 서사들과 친연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보다도 소설 읽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그 재미 안에서 사회적 상상력 또한 동시에 추동되고 있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음모 이론의 기원이 그렇고, 조직 내부의 암살 모티프가 주목된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성어가 전하는 의미를 현대적으로, 그리고 대중 서사적 버전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조직 내부의 암투와 배신은 대중 서사에서는 낯설지 않은 모티프다. ‘살인=구조조정’식의 유비적 관점으로 소설을 들여다보면, 조직 내부의 토사구팽은 오늘날 인간을 단지 소모성 도구나 부품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경제제일주의의 비인간성과 잔혹성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보이지 않는 손’은 단지 초국가적 비밀 단체의 이름이 아니라 이윤의 최대화를 지상 목적으로 삼기에 인간 존재에 대한 인문적 성찰이나 윤리적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언제 녀석을 정리할까 고민해 오던 회사가, 이번에도 삼 년을 채우고 결정을 내린 거다. ?녀석들은 삼 년 주기로 교체된다- 사람도 껌도 단물이 빠지면 뱉어진다. 또 급해지면 총 쓰는 놈 하나 구하면 그만이다.”

 

    특히, 조직에 의해 ‘교체 가능한 도구’로 이용당하는 조직원들이 부업으로 가진 직업들이 치킨 배달원이나 찹쌀떡 판매원, 요구르트 판매원과 같은 너무도 평범한 생활인들로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평범성 내부에 은폐된 비범성은 작중인물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오래된 서사 기법이다. 하지만 그 기법의 효과보다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따로 있다. 동료 조직원들을 암살해야 하는 비정한 조직의 명령에 따르는 동시에, 나 역시 동료 암살자들에 의해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기에 도망 다녀야 하는 이중의 고난이 그렇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그런 사태들이 평범한 이들에게 벌어지는 것이다. 여러 생활인들의 본모습이 조직원(‘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료 암살자의 짐을 지우는 잔혹한 시스템이 배후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손’의 악마성일 것이다.

 

 

 

작가소개 / 노대원(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1983년생.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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