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남자 없는 여자들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남자 없는 여자들

― 강화길, 「당신을 닮은 노래」를 읽고

 

 

허희(문학평론가)

 

 

 

 

 

    여자들만의 세계를 상상한다. 쓸데없는 망상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그래 왔다. 많은 사람이 꿈꾸던 신비의 나라는 남인국이 아니라 여인국이었다. 왜일까? 쉽게는 남성의 성적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의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렵게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엥겔스) 이후, 남성 지배 체제의 공고화에 따른 사람들의 무의식적 항거로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사실 어느 누구도 정답을 제시하기 힘든 질문이다. 해답에 보다 가까운 것을 찾아야 한다면, 의외로 직관적 사고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자들만의 세계를 그려 왔던 까닭은 그곳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할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공동체 수립은 남자들만의 세계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자들만의 세계에 비해, 그곳이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녀의 성적 차별이 아니라, 남녀의 성적 차이를 체감한 나름대로의 경험에 바탕을 둔 추측이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둘 중 어느 쪽의 대화가 원활하고 친밀한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금방 답할 수 있는 문제다. 「당신을 닮은 노래」를 통해서도 예증할 수 있다. 간명하게 요약하건대, 이 소설이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수진’이라는 이름의 1인칭 화자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다. 어느덧 스물아홉 살 된 ‘나’는 그 시절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어머니를 빼놓고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날들이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그렇게 애썼다. 그녀는 열한 살 여자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엄마가 경험했을 어떤 것들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녀의 일부였던 것은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던 열 달에 불과하다. 이해나 공감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아빠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수진은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다. 그 대상이 자신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어머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거리(distance)의 한계를 안다. 그렇지만 수진은 완전하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어머니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윤리를 실천한다. 이를테면 스물일곱에 난소암 2기 진단을 받은 수진이 취한 행동은 어떠한가. 그녀는 어머니에게 노래 수업에 참여하라고 권유한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접고 내 간호에만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는 열심히 살았다. 이제 중년이었다. 삶의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로가 되는 일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 수진 스스로 위로의 차원이라고 밝혔으나, 삼십여 년 전 시의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로 활동했던 어머니의 속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제안이다.
    감히 짐작해 본다. 수진은 수차례 개복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는 자신의 고통을 견디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어머니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 성자(聖者)라서가 아니다. 여자들만의 세계에서 어머니와 딸은 동지로서 연대한다. 이러한 장면을 관련지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수진이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날. 어머니는 울지 않는다. “너는 젊어, 너는 회복이 빠를 거야. 너는. 내 새끼, 너는 날 닮았으니까.” 그녀는 괜찮다고 딸을 다독인다. ‘괜찮다’가 비록 진실을 직시하지 않은 소망이었다고 해도, ‘괜찮다’가 실은 딸보다 자신을 달래려는 위로였다고 해도, ‘괜찮다’는 결국 그들이 한없는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 위안의 주문이 된다. 그날 저녁, 모녀는 무슨 행동을 했던가. 어머니는 딸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딸은 어머니를 위한 숟가락 두 개를 냉동실에 넣는다. 절망적 현실과 조우하여 자기가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픈 ‘나’의 심경을 토로하기보다, 오히려 아픈 ‘나’를 지켜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을 담아냄으로써, 「당신을 닮은 노래」는 수진의 투병기를 넘어 어머니의 투쟁기로 확장된다. 실제로 이 소설의 대부분은 수진이 보고 들은 어머니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일부러 연민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삶은 불행해 보인다. “젊고 아름답고 순진한 부부”로 살았으나,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의 몸에는 암세포가 퍼져 있는 상태다. 어머니는 고난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홉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이야기며 마흔다섯에 간호대학을 입학한 가정주부, 그러니까 어떤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넌더리나는 시련으로 점철된 인생일지언정,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살게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곡 독창에 희망을 건다. 수진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그녀의 행위는 집착처럼 느껴질 만큼 과도한 면도 있다. 차라리 노래 강사가 어머니에게 “아무 희망도 없다고 말해 주기를” 수진은 바라기도 한다. 한데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는 순순히 단념하지 못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자신이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거기에 전부를 쏟는다. 딸의 눈에도 그러했다.
    “엄마는 매일 노래했다. 그녀는 원하는 소리가 있었고, 그 음을 표현하기 위해 매일 연습했다. 가장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엄마는 깨끗하고 단정한 음정으로 소리 내려 노력했다. 한 음이라도 잘못 부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소한 자기 존재 증명이란 없다. 모든 자기 존재 증명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자기 존재 증명을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다. 어머니가 그토록 독창에 매달리는 연유도, 암과 싸우는 딸을 차치하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머니의 존재 증명은 자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는 수진을 향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가 넘어지기만 해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달려왔다. 나는 그것이 좋았고, 그래서 일부러 넘어지고는 했다. 온전히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 첫 항암치료를 끝냈던 날이다. 모든 치료를 다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게 의사는 씩씩하다고 했다. / “뭐 유전이니까요.” 나는 정말로 꽤 씩씩하게 대꾸했다. 방에는 엄마도 함께 있었다.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은 엄마와 나의 머릿속에 얼룩 없이 깨끗한 화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 화면을 매일 되감기해 본다는 걸 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혼자서 아무리 강건한 척해도, 무심결에 비어져 나오는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반면 「당신을 닮은 노래」의 남자 없는 여자들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정말로 꽤 씩씩하게” 군다. 홀로 침잠하지 않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는 덕분이다. “온전히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 이와 같은 느낌을 수진만 갖지는 않을 것이다. 교류는 양방향을 오간다. 그녀가 있음으로 인해서, 어머니는 딸과 닮은 ‘기분’으로 ‘안도’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여 여자들의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남자들은 그녀들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멸로 치닫는 고립을 자초하지 않는다. 남자들만의 세계이든, 여자들만의 세계이든, 혹은 남자와 여자로 재단할 수 없는 세계이든 간에, 공동체 존립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여자들만의 세계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나는 우리 모두의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영위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얻었다.

 

 

 

작가소개 / 허희(문학평론가)

1984년 서울 출생.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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