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의 [차세대 선정작 리뷰] 존재의 세 가지 양태, 혹은 어긋난 시간 - 양윤의
목록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존재의 세 가지 양태, 혹은 어긋난 시간

― 유재영, 「타워」

 

 

양윤의(문학평론가)

 

 

 

 

 

    유재영의 「타워」에서 우리는 존재의 세 가지 양태를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명제의 방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능동의 삶: 인간은 살아간다.(살아가는 인간) 둘째, 수동의 삶: 삶은 살아진다.(살아지는 인간) 셋째, 부정의 삶: 누군가 사라진다.(사라지는 인간) 첫 번째 양태는 제도의 벽 속에 갇혀서 살되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삶이다. 타워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감시하고 있는(혹은 감시한다고 믿는) 인물들이 여기 속한다. 두 번째 양태는 고독과 소외 속에서 존재감을 잃은 채 “살아지는” 존재들이 속한다. 수동의 양태다. 마지막 양태는 유령의 삶이다. 공식적인 기록에서 제명된 존재, 부재로서만 거기에 있는 존재가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출현한다. 문제는 이들 사이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경계에서 일어나는 불안”(「타워」, 5쪽)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명제에 따라 이야기를 간추려보자.
    인간은 살아간다. 오늘이 어제의 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나의 행위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연우와 규호는 Y시의 타워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센터의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타워 내부의 CCTV를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 보고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실상 타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외부와 완전하게 격리된 공간이자 자동화 시스템으로 보안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엇을 감시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날벌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창문이 열린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날벌레가 들어온 것일까. 이것은 이 삶에 균열이 생겼다는 표식이다. 이 지점에서 이들은 두 번째 명제를 만난다.
    삶은 살아진다. 규호는 기전설비에 들어오기 전에 적도(的嶋)라는 도시에서 3년 정도 근무했다. 그는 피라미드 업체의 사기극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고용되어, 김석기라는 인물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김석기는 피라미드 업체 설립자(서원출)의 측근이며 적도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규호의 일은 김석기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협회에 보고하는 일종의 불법사찰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규호는 자신의 감시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김석기의 존재감이 희박해져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규호 씨는 말을 끊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석기가 조금씩 흐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방 안의 풍경은 또렷해졌지만 정작 그는 조금씩 지워지는 느낌이랄까요. 말하자면, 그는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지는 인간이었습니다. 존재라는 게 그렇게 지워질 수도 있다는 걸 적도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타워」, 6쪽)

 

    우리는 저 진술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지는 인간”을 만난다. 더욱 섬뜩한 점은 감시의 주체(규호)의 삶 역시 감시의 대상과 별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규호가 적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 겨울, 그는 세 번째 존재의 양태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유령이다.
    누군가 사라진다. 어느 날 한 사내가 규호를 찾아와서는 협회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사내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사내는 그 사기극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사내는 규호와 술을 마시며 “양심의 가책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진실과 사실은 어떻게 다릅니까?”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내는 규호와 캐치볼을 하기도 한다. 규호가 잠이 든 사이, 사내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규호는 뒤늦게 그가 사기사건 이후 자살한 열세 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그 남자가 유령이었군요.” 내가 말했다.
    “그는 자살한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나눈 대화, 그가 내뿜던 담배 연기, 그가 던진 공을 받았던 그날의 기억만큼은 적어도 진짜입니다.” 규호 씨는 습관처럼 빈 머그잔에 입을 갖다 댄 뒤 말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사실보다는 느낌이 중요한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 느낌이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워」, 8쪽)

 

    사내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사실보다는 느낌”의 방식으로 규호는 그 사내와의 대화를, 사내의 존재를 확신한다. 어둠에 가려져 사라진 듯 느껴지더라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은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보이는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건 아니니까요.”(「타워」, 4쪽) 그렇다면 저 유령의 삶은 기록과 회의에서는 포착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늘 느끼고 있는 이 세계의 진정한 삶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사라지는 것들이 오히려 살아간다는 역설과 마주 한다.
    문제는 살아 있는 나의 존재 역시 불확실성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지를 기록하고 센터에 그 내용을 보고하고 타워 내부를 순찰한다. “나만의 페이스”를 강박적으로 유지하는 저 태도는 근본적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행위일 것이다. 타워를 지키는 남자들. 동시에 타워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 타워(tower)에는 군사용 요새나 보초용 망루란 뜻도 있지만, 유골을 매장한 무덤이라는 뜻도 있다. 이들이 머무는 타워는 삶의 공간일 뿐 아니라 죽음이 잠식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곳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존재나 유령을 만난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라짐의 삶을 통해서 그들은 어긋난 시간을 이 삶에 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시간은 사라지는 삶이지만, 그 역시 삶의 한 양태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가소개 / 양윤의(문학평론가)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 시작.
2013년 평론집 『포즈와 프러포즈』(문학동네)를 출간

 

 

   《문장웹진 2월호》

 

목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