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실존과 생존의 아이러니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실존’과 ‘생존’의 아이러니

― 오선영의 「부고들」론

 

 

허진(문학평론가)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맺은 모종의 합의에서 출발한다. 소설의 독자는 작가가 꺼내는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소설을 펼쳐든다. 바꾸어 말하면, 작가가 짐짓 태연한 표정을 하고 꺼내는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인다. 소설의 인물이 아무리 허무맹랑한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해도 독자는 대체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소설의 서사를 따라간다. 작가가 이끌어갈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의 모습이다. 즉, ‘작가가 독자를 데리고 가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비옥하고 드넓은 초원인가?’ 아니면 ‘황량한 벌판인가?’ 또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어느 지점인가?’ 등. 그 세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독자의 소설 읽기를 지탱한다. 여기에서 세계는 독자의 독서 행위를 거치는 동안 창조적으로 재구성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를 독자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그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독자는 ‘그 세계로 가는 여정이 적절한가?’ 하는 점을 은연중 고려한다. 작가가 아무리 아름답고(혹은 추악하고) 깊은(혹은 가벼운) 세계로 독자를 초청한다고 해도, 그 길에 이르는 여정이 그다지 탐탁지 않다면, 독자는 작가가 이끄는 세계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범속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여정’이란, 소설의 플롯, 작가가 매복해 놓은 다양한 장치들, 소설의 문장과 스타일 등을 종합적으로 의미한다.
    오선영의 단편소설 「부고들」을 읽으며 나는 그가 나를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과 탐욕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고들」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부동산의 처분을 두고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불화를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족들이 이전까지 몰랐던 부동산의 등장, 잘 나가는 오빠와 오빠에 비해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남편의 경제적 위치에 대한 비교, 아파트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 독촉, 유산 처분을 두고 일어나는 형제들 간의 다툼이 「부고들」이 보여주는 서사의 근간을 이룬다. 여기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슬픔 속에서 재빠르게 손익을 계산하는 화자의 내면이 끼어든다. 이러한 소설의 서사는 말할 나위 없이 자본주의 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아래의 장면은 「부고들」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장례 풍속도이다.

 

    아침 일찍, 검은 넥타이를 맨 상조회사 직원이 찾아왔다. 서류가방에서 책 한 권 분량의 팸플릿을 꺼내 펼쳐 놓았다.
    “납골당도 층수에 따라 가격이 다 다릅니다. 유족들이 허리 안 굽히고 편하게 서서 볼 수 있는 자리는 프리미엄이 붙고요. 보통 6, 7, 8단이 가장 좋은 자리죠. (중략) 근데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웬만해서는 다들 6, 7단을 원하세요. 돌아가신 분한테도 좋고, 자식들한테도 좋고. 예전에는 풍수지리 봐가면서 묏자리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여기에서 납골당의 가장 비싼 층을 권하는 상조 회사 직원의 말은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것이다. 휴대전화 판촉 사원의 전화 멘트나 보험회사 직원의 가입 권유도 파는 상품의 종류만 다를 뿐, 납골당 직원의 말과 비슷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부고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이처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세계이다.
    이렇듯 「부고들」은 익숙한 세계로 독자를 초청하지만, 그 초청장에는 블랙 코미디와 같은 아이러니가 곳곳에 매복돼 있다. 다음의 장면을 보자.

 

    오빠는 자신도 돈 때문에 목이 조인다며 매고 있던 검정 넥타이를 풀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사람 같은 건물주가 어디 있어요. 사람이 좋다보니 항상 손해만 본다니까요.”
    새언니가 오빠의 어깨를 다독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두 사람의 합동 작전에 언니가 한발 물러서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마음 착하게 쓰면서 사니까 엄마도 우릴 도와주는 거 아냐. 나도 영국에 있는 아들 학비 보내줘야 하는데, 엄마가 손자 유학시켜 주는 거지, 뭐.”
    언니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난다며 울먹였다.
    “형님…….”
    새언니가 손수건을 꺼내 언니 손에 쥐어줬다.
    “그러니까 장례식 끝나고 파는 거죠?”
    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이 기회가 엄마가 마지막으로 준 특급 찬스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확답을 받아야 했다.

 

    인용한 장면은 어머니의 유산인 아파트의 매매 시점을 두고 일어난 형제들 간의 분쟁을 보여준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직장을 다니는 화자의 오빠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고 그와 별도로 원룸을 짓고 있다. 오빠는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어머니에게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 언니는 아파트를 팔아 아들의 유학비용을 댈 계산을 하다가,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집을 당장 팔아치워 집주인의 전세금 독촉을 피할 계획이다. 여기에서 화자의 새언니와 친언니는 서로를 위로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경제적 손익을 저울질하고 있고, 이들 세 사람의 대화는 장례가 끝나고 바로 집을 팔자는 ‘나’의 발언을 계기로 어긋나고 미끄러진다. 이 장면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부조화하며 아이러니를 이룬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부고들」 전체를 관통하며 도처에서 나타난다.

 

    ㉠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이가 내 손바닥에 제 뺨을 부볐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듯, 마치 제가 나의 집이 되어주겠다는 듯 나를 어루만졌다. 나는 아이를 무릎 위에 올리고 꼬옥 껴안았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동산’
    휴대전화 액정 위에 세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火葬室)의 불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육체가 지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오빠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나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땅을 밟듯 힘차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자인 ‘나’는 아이의 위로를 받으며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다음 장면에서 어머니의 화장이 시작되는 순간,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삶과 죽음, 아이의 순수한 위로와 어른인 ‘나’의 영악함, 어머니의 죽음과 ‘나’의 경제적 계산과 같은 부조화가 위의 장면에서 아이러니를 유발하며, 「부고들」이 보여주는 익숙한 세계에 나름의 긴장과 탄력을 부여한다.
    오선영의 「부고들」은 이처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실존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을 그려내었다. 아래의 장면은 「부고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장면이다.

 

    장례식장은 거대한 관이 된 듯했다. 족장이 죽자 나머지 가족도 다 함께 순장을 한 것 같았다. 역병이 마을을 휩쓸고 간 후, 마을 사람들이 전부 묻혀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가 잠꼬대를 했다. 멀리서 코고는 소리와 신음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담배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희미한 소리들뿐이었다.

 

    장례식장을 ‘거대한 관’으로 그려낸 비유를 세계 전체로 확장해보면, ‘우리 역시 역병이 휩쓸고 간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문이 도출된다. 「부고들」에서 그 역병의 정체는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을 끝없이 부채질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회 구조는 인간을 병들게 하고 이 세계를 추악한 곳으로 만든다. 오선영의 「부고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실존과 생존 사이의 아이러니를 속도감 있는 문체로 파헤쳤으나, 그 세계는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것이다. 오선영이 앞으로 이 소설에서 보여준 현실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현실을 넘어서 소설적 진실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작가소개 / 허진(문학평론가)

1983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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