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희곡] 휴먼 리소스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희곡]

 

 

휴먼 리소스

 

 

 

박신수진

 

 

 

    《 등장인물 》

 

    한 팀장 (청년)
    김 부사장
    수집요원
    여자

 

 

   《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짧은 설명 》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 즉 지금 우리 사회가 변치 않고 그대로 유지될 경우 일어날지도 모르는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을 바탕으로 쓰인 상상의 이야기로 인적자원재활용센터에서 벌어지는 일화를 통해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보여주고자 한 희곡이다.

 

 

 

1장

 

무대 한가운데 붙어 있는 플래카드 ‘재활용은 국가의 힘이다!’

 

    (무대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커다란 재채기 소리. ‘에이취, 에에, 에이취’ 간지러운 듯 코를 비비며 등장하는 한 팀장.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손수건으로 코를 ‘팽’하니 풀고는 더럽다는 듯이 멀찍이 손수건을 들고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다가 다시 ‘에이취’ 재채기.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는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코를 비비며 멍청하게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다 관객들을 발견하곤 말한다.)

 

 

    한 팀장 : 어우, 깜짝이야. 누구세요? 아, 아. 너네, 신입사원이구나? 어, 어. 그래 편하게 있어. (의자를 끌고 와 거만하게 앉는다.) 나는 여기 팀장이야. 한 팀장. 오늘 신입사원 교육 있구나? 그래, 교육을 잘 받아야지 훌륭한 직원이 되는 거야. 자 따라해 봐. 재활용은 국가의 힘이다. 더 크게. 그렇지. 아주 패기들이 넘쳐. 좋은 자세야. 이것만 기억하면 돼. 재활용 사업은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최고 좋은 사업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도 좋다 이거야. 그래, 신입이들. 수집요원이야 심사관이야? 아직 안 정해졌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집요원으로 현장에서 7년을 일하고 심사관으로 3년을 일한 재활용 사업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아, 뭐 그렇다고 그렇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볼 필요는 없어. 사람이 원래 능력이 있으면 다들 그렇게 중요한 직책에 앉기 마련이야. 너네도 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가지고 살라고.

 

      (등장하는 김 부사장)

 

    김 부사장 : 한 팀장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죠? 근무시간에 한가롭게 퍼질러 앉아서 말이죠.
    한 팀장 : (벌떡 일어나서) 부사장님. 나오셨습니까. 저는 지금 신입사원 교육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김 부사장 : 한 팀장이 왜 신입사원을 교육합니까, 가서 심사준비 안 해요? 설마 오늘이 공개심사 날이란 걸, 잊은 건 아니겠죠? 신입사원들이랑, 중요한 외부손님들이, 죄다 한 팀장님 심사를 참관할 거란 말이에요. 실수 없이 똑바로 진행해야 한다고요!
    한 팀장 : 아, 네. 그럼요. 공개심사를 잊다니요. 그럴 리 없죠. 실수 없이, 똑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한 팀장이잖아요.
    김 부사장 : (나가려는 한 팀장을 불러 세우며) 한 팀장님, 잠깐만요. 이리와 보세요.
    한 팀장 : 네? 부사장님.
    김 부사장 : 옷이 이게 뭡니까? 정장은 깔끔하게, 넥타이는 똑바로, 넥타이핀은 어디 있어요? 시계는, 구두는? 좋아요. 행거칩은? 여깄네. (한 팀장의 주머니에 삐져나온 손수건을 빼서 잘 접어 재킷 주머니에 넣어준다.) 우리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미지예요.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 왜냐하면 우리는 업계 최초로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럭셔리 재활용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고급스러워 보여야 해요. 당연히 우리 회사의 얼굴들인 사원들도 마찬가지죠.
    한 팀장 : 럭셔리! 캬~ 그럼요. 잘 알죠. 부사장님.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이게 저도 나름 신경 쓴다고 쓴 건데, (뽐내며) 이래봬도 이게 돌체 앤 가바나 본사 수석 디자이너가 s/s 패션쇼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 시즌 한 정품 프랑스제! 제품인데······ 그렇게 보이진 않죠······.
    김 부사장 : 네, 한 팀장님, 그렇게 보이진 않네요. 한 팀장님은 뭐랄까, 아무리 고급스러운 옷을 걸쳐놔도 몸매가 문젠지, 얼굴이 문젠지, 그것보단 약간 저렴해 보이는, 뭐랄까, 타고난 싼티 비슷한 게 흐르는 것 같긴 하지만, 뭐 노력하면 더 나아지겠죠. 어쨌든 우리는 좀 더 럭셔리하고, 급이 다른 재활용 사업을 만들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쓰레기에도 엄연히 급이 있단 말이에요. 밸런타인 30년산 병이 참이슬 빈병이랑 같습니까? 아니란 말이죠. 우리 회사는 저급한 쓰레기는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질이 좋은 가죽 소파는 재활용하면 가죽 지갑이 될 수 있지만, 싸구려 천으로 만든 소파는 기껏해야 식탁보나 될까 말까거든요.
    한 팀장 : 그럼요. 부사장님. 모두 맞는 말이죠. 아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쓰레기에도 급이 있고말고요.
    김 부사장 : 알았으면, 오늘 일 다 끝나고 저 촌스러운 슬로건부터 좀 바꿔요.
    한 팀장 : 슬로건이요? 슬로건을 바꾸시게요? 저건 회사 창립일부터 저기 쭉 걸려 있던 건데, 뭘로 바꾸시게요?
    김 부사장 : 리~사이클~ 이즈~ 파워~ 오브~ 스테이트~. 필기체로.
    한 팀장 : 아.
    김 부사장 : 영어가 더 있어 보이잖아요.
    한 팀장 : 그, 그렇죠.
    김 부사장 : 그럼 이제 어서 가 봐요.
    한 팀장 : 네? 또 어디를요?
    김 부사장 : 어디긴요! 심사 준비 하러 가셔야죠! 한 팀장님!
    한 팀장 : 아, 네. 그렇죠. 갑니다! (관객들에게 폼 잡으며) 재활용은 국가의 힘, (부사장 눈치를 한 번 보고) 지금 갑니다. 가고 있어요~

 

      (한 팀장, 퇴장하면 부사장이 관객들에게 말한다.)

 

    김 부사장 : 자, 여기 오늘 저희 신입사원들 말고도 외부초청인사분들이 다수 오신 걸로 아는데, 어디 계시죠? 아, 거기 계시군요. 반갑습니다. 저희 회사는 쓸모없이 버려진 자원을 수집해서 재활용센터로 보내거나 폐기처분하는 일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10년 전에 국책 사업으로 시작되었는데, 5년 전부터 민간 기업으로 바뀐 사업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죠?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이곳은 재활용 심사원의 심사실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저희의 사업 시스템을 더욱 자세히 설명 드리기 위해 수집되어온 자원을 심사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드릴 겁니다. 편안히 앉아서 관람하십시오. 그럼 전 심사를 마치고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김 부사장 퇴장하면, 낑낑거리며 탁자를 들고 나오는 한 팀장. 이어 의자 두개도 끌고 와 무대 위에 세팅하곤 의자 하나에 털썩 앉아 헥헥댄다.)

 

    한 팀장 : 아이고, 죽겠네. (자세를 바로잡고, 목소리를 깔며) 자, 준비됐으니 들여보내세요.

 

      (무대 뒤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 ‘이거 놔. 내 발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곧 튕기듯이 무대 위로 나오는 30대 후반의 여자.)

 

    여자 : 사람을 다짜고짜 이렇게 끌고 와도 되는 거야? 여기 대체 뭐하는 데야! 당신들 누구 야!
    한 팀장 : 아, 거 시끄럽게. 자, 진정하고 앉아요. 나는 지금부터 프로페셔널하고 쌈박한 심사를 진행할 한 팀장 입니다. (관객들을 향해 눈 찡긋)
    여자 : 심사?
    한 팀장 : 그렇죠, 심사. 에, 에 에이취. 에이 이놈의 감기. (부 사장이 행거칩으로 꽂아준 손수건을 빼서 코를 풀곤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어디서 수집되어 왔어요?
    여자 : 지금, 뭐라고?
    한 팀장 : 어디서 수집돼서 왔냐고요.
    여자 : 지금, 수집이라고 했어?
    한 팀장 : (여자에게만 속삭이듯) 저기, 이봐요. 오늘 심사는 꽤 중요한 심사거든요? 신입이들이 보고 있는데, 좀 잘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나도 각이 좀 살지. 그러니 협조 좀 해줘요. 질문에 답만 재깍재깍 해주면 점수도 좀 잘 드릴게. 서로 돕고 삽 시다.
    여자 : 여기, 어디야. 설마, 여기 재활용심사원이야?
    한 팀장 : 잘 아네. 그럼 나한테 협조 좀 해요. 이 심사가 무슨 심산지는 알 거 아니에요.
    여자 : 여기가 정말 재활용 심사원이야? 내가 지금 여기에 수집돼서 온 거야?
    한 팀장 :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만들지 말고. (다시 속삭이며) 지금 여기 보는 눈이 많다니까요.
    여자 : 내가 왜! 내가 왜 수집이 돼? 내가 대체 왜?
    한 팀장 : 그쪽은 쓸모없는 인적자원이기 때문에 수집돼 온 거죠. 왜냐면 여기는,
    여자 : 인적자원재활용심사원이잖아! 나도 알아! 여긴 인간쓰레기들만 오는 데라고! 여기에 내가 왜 와! 날 왜 잡아와!
    한 팀장 : 왜냐니. 이미 알아서 다 말했네. 여긴 인간쓰레기들이 오는 곳이고, 그쪽이 여기에 수집돼서 왔다는 건, 당연히 그쪽이,
    여자 : 난 인간쓰레기가 아니야! (한 팀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너.
    한 팀장 : 뭐, 뭐. 나요? 나 뭐요?
    여자 : 너지?
    한 팀장 : 뭐가요?
    여자 : 너 맞지? 나 모르겠어?
    한 팀장 : 내가 어떻게 그쪽을 알겠어요. 난 그쪽하고는 완전 다른 부류의 사람인데.
    여자 : 달라? 나랑? 나 모르겠어? 10년 전에!
    한 팀장 : 10년 전에 뭐요?
    여자 : 너야, 난 똑똑히 기억해. 너 때문이거든.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알아?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다고, 이 개 쓰레기 같은 놈아.
    한 팀장 : 뭐야, 뭔데 나한테 욕을 해? 나는 그쪽이 그렇게 함부로 욕할 만한 시답잖은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쓰레기로 수집돼 온 주제에, 심사원한테 그런 막말을 해? 난 팀장이야. 한 팀장! 팀장 되는 게 쉬운 줄 알아?
    여자 : 날 몰라? 10년 전엔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니가 이 자리에 있었어. 인간쓰레기는 내가 아니라 바로 너였다고! 이 버러지 같은 놈아!
    한 팀장 : 이 여자가 대체 뭐래!

 

      (무대 암전)

 

 

 

2장

 

      (무대 위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1장의 여자가 있다.)

 

    여자 : 자, 다음.

 

      (무대 뒤의 소란스러움. ‘아, 놔요. 내 발로 들어갈게요. 밀지 말라고요!’ 그리고 곧, 문이 열리고 무대 위로 튕겨져 들어오는 청년(앳된 얼굴의 한 팀장). 곧바로 문은 ‘쾅’ 하고 다시 닫힌다.)

 

    청년 : (닫힌 문을 뒤돌아보며) 대체 여긴 뭐예요. 다짜고짜 사람을 이렇게 끌고 와도 되는 거예요? 당신들 내가 다 고소할 거야!
    여자 : 자, 조용히 하시고 여기 의자에 앉으세요.
    청년 : 뭘 조용히 하라는 거야. 당신들 이거 범죄라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
    여자 : 앉으라면 앉아요. 우린 바쁜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당신 말고도 오늘 심사할 사람들이 밀렸다고요. 빨리 끝내게 협죠 좀 해요.
    청년 : 뭘 심사한다는 거예요! 길 가는 사람을 다짜고짜 끌고 와서는!
    여자 : 그러니까요. 어디에서 수집돼 왔어요?
    청년 : 수집이라니, 그거 지금 나한테 한 말이에요? 집에 가고 있는 무고한 시민을 납치하듯 끌고 와서는 수집이라고? 당신들 뭐하는 인간들이야!
    여자 : 여긴 정부기관이에요. 우리는 정부기관 사람들이고. 그러니 고소니 신고니,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당신은 납치된 게 아니고, 수집요원들에게 수집돼 온 거니까, 알았으면 이제 여기 좀 앉아요.
    청년 : 정부기관? 수집요원? 그게 다 뭔 소리예요!
    여자 : 여긴 인적자원재활용심사원이라고요. 쓸모없는 인적자원을 심사하는 곳이에요. 당신은 심사 대상자고, 그래서 우리 수집요원들이 당신을 수집해 온 거니까 어디서 수집되었는지 말해요.
    청년 : 쓸모없는 인적자원이라니, 내가요? 무슨 권리로 정부가 날 심사해? 그런 일을 한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여자 : 신설된 지 얼마 안 돼서 할일이 쌓였다고요. 인적자원 재활용 법안이 통과된 거 몰라요? 쓸모없는 인적자원들은 이제 다 심사를 받게 된다고요. 심사를 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판명되면 인적자원 재활용 센터로 보내지고, 재활용도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면 폐기처분됩니다.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잠자코 심사를 받아요.
    청년 : 이봐요,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난 인간이에요. 인간을 어떻게 재활용 센터로 보내고, 인간을 어떻게 폐기처분해요? 내가 무슨 물건이에요?
    여자 :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쓰레기가 있는데 하나는 물질적인 쓰레기고 하나는 인간쓰레기죠.
    청년 : 인간쓰레기라니, 내가 무슨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도 아니고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아요?
    여자 : 물론 범죄자도 인간쓰레기이긴 하지만, 명백히 단어의 의미를 따지자면 쓸모없는 인간들은 다 인간쓰레기죠. 쓰레기라는 게 그런 의미 아닌가요. 쓸모없이 버려지면 그게 쓰레기죠.
    청년 : 내가, 쓸모없이 버려진 인간쓰레기라고요?
    여자 : 그러니까 수집되어 왔겠죠. 말했지만 여긴 쓸모없는 인적자원을 심사하는 곳이라니까요.
    청년 : 내가 왜 쓸모가 없어요?
    여자 : 어떻게 쓸모가 있는데요?
    청년 : 그건,
    여자 : 백수죠?
    청년 : 취업준비생이에요!
    여자 : 말이 좋아 취업준비생이지, 취업될 가능성 있어요?
    청년 : 되겠죠! 언젠가는!
    여자 : 그 언젠가는이 언젠데요, 대학은 졸업했어요?
    청년 : 졸업했어요! 4년제!
    여자 : 요새 대학 졸업 안 한 사람이 어딨어요. 졸업한 지 얼만데요?
    청년 : 5년인가, 아니 4년 반 정도?
    여자 : 그동안 쭉 백수죠?
    청년 : 취업준비생이라니까요!
    여자 : 졸업하고 5년 동안 취업 안 됐으면 앞으로도 가능성 없잖아요. 안 그래요? 되려면 벌써 됐어야지.
    청년 : 꾸준히 일했어요!
    여자 : 뭐? 아르바이트? 지금은요?
    청년 : 잠깐 쉬고 있어요.
    여자 : 아르바이트도 나이 들면 안 시켜주지. 더 어리고 말 잘 듣는 지원자가 널렸는데. 굳이 나이 든 사람 쓰겠어요?
    청년 : 내가 지금 백수라고 인간쓰레기라는 거예요?
    여자 : 앞으로도 백수일 거란 게 더 큰 요인이죠. 물려받을 가업이나 집에 돈 좀 있어요? 물론 있었으면 심사 대상자도 아니었겠지만 혹시 잘못된 정보가 있을까봐 확인 차 물어보는 거예요.
    청년 : 없다면요?
    여자 : 인간쓰레기가 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죠. 물려받을 가업이 있으면,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 거고, 집에 돈이 많으면 집에서 가게라도 차려줘서 돈을 벌어볼 수는 있는 건데.
    청년 : 돈을 못 벌면 인간쓰레기라는 거예요?
    여자 :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굳이 따지자면. 돈을 못 버니 소비자가 될 수도 없고, 일을 안 하니 노동자가 될 수도 없고, 재산이 없으니 자산가가 될 수도 없어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거죠.
    청년 : 소비자거나 노동자거나 자산가가 아니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요?
    여자 : 당연하죠. 그리고 또 그런 사람들이 더 나이가 들면 발생할 미래의 문제도 있는데, 그렇게 살다간 10년 안에 극빈곤층으로 떨어지거나 노숙자가 돼서 거리에 나앉는단 말이죠. 그럼 그 중 몇 명은 괜히 사회에 분노 표출하면서 범죄자가 될 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사무소 전전하며 복지혜택이나 받아먹으려고 할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복지예산이 늘어나니까 정부가 일하는 사람들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이건 성실하게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짐을 지우는 셈이니까. 그걸 사전에 차단하자는 거죠.
    청년 : 국민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나를 심사한다고요? 나도 국민이에요!
    여자 : 세금도 안 내는 국민은 국민이라고 볼 수 없죠. 세금 내요? 일을 해야 세금을 내지. 세금도 안 내면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복지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잖아요. 그건 범죄예요. 당신은 지금이 아니어도 미래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이니까 미리 심사해서 예방하는 거예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못 봤어요?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죄를 예방해야 좋은 국가죠. 인적자원 재활용 법안도 모두 예방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안이죠. 성실하게 살아가는 무고한 국민들을 위해서요.
    청년 : 나도 성실하게 살아온 무고한 국민이에요!
    여자 : 능력도 없고 재산도 없는 쓸모없는 국민이죠. 국가가 당신들을 위해 정부예산을 쓴다는 건 아까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능력을 키워서 일자리를 얻었어야지.
    청년 : 얻을 거예요! 나 무능력하지 않아요!
    여자 : 무능력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5년 동안 백수로 살아요. 이미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니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입히지 말아야죠.
    청년 : 피해 입힌 거 없어요!
    여자 : 존재 자체가 피해예요. 앞으로 봐 바요. 당신 같은 사람들 그대로 두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돼서 정부 돈이나 받아먹고 산다니까요. 힘들게 일하는 국민들 등꼴 빼먹는 짓이에요. 염치도 없이 말이죠.
    청년 : 내가 일하기 싫어서 백수인 것도 아니고! 엄청 열심히 노력한다고요! 엄청 성실하게 살았고요!
    여자 : 그랬으면 뭐해요. 일자리는 한정적이에요. 능력이 있어야 취업이 되죠. 무능력한 건 죄예요.
    청년 : 일자리를 늘릴 생각을 해야지 정부가!
    여자 :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경제가 좋아져야죠. 경제가 좋아지려면 소비가 많아야 하고, 그런데 당신같이 소비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경제가 좋아질 리 없잖아요. 말했지만 당신은 노동자도 아니고 소비자도 아니고 자산가도 아니어서 이 사회에선 이미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니까요. 쓸모없이 남아도는 인간이라고요.
    청년 : 그게 내 탓이에요?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지 못해서 자산가가 아닌 거고, 취업이 안 돼서 노동자가 아닌 거고, 돈을 못 벌어서 소비자가 아닌 게 그게 내 탓이에요?
    여자 : 운이 나빠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면 어떻게 해서든 경쟁자들 물리치고 취업을 했어야죠. 취업시장에서 실패한 거잖아요. 당신 이미 실패자라고요. 그런 당신 같은 사람들을 재활용할 수 있게 정부가 인적자원재활용센터를 만들었다고요. 고맙다는 생각은 안 해요?
    청년 : 지금 날 쓰레기 취급하고 있는데 그걸 고마워하라고요?
    여자 : 쓰레기 맞잖아요. 그나마 재활용센터에 가는 게 실패한 인생에 마지막 기회를 얻는 거라고요.
    청년 : 사람을 재활용센터에 보내서 대체 뭘 하기에 그게 기회란 거예요?
    여자 : 일단 숙식이 제공되고요. 의료시설도 무상으로 제공되고 무료하지 않게 소일거리도 하게 돼요. 심사결과 재활용이 가능하겠다 싶은 사람들에겐 정부가 안정적인 삶을 제공하는 거죠.
    청년 : 숙식이 제공된다니 의료시설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예요?
    여자 : 재활용센터에 보내진 사람들은 이제 재활용센터에서 지내게 된다는 거죠. 거기서 지내게 되면 범죄자가 될 일도 노숙자가 될 일도 없어요.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인간쓰레기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데?
    청년 : 재활용센터에서 지낸다고? 집에 못 간다는 말이에요?
    여자 : 집이 있긴 해요?
    청년 : 당연히 있죠! 내가 지금 어디서 살겠어요!
    여자 : 고시원은 집이 아니죠. 방세 못 내면 나가야 하는 곳이 무슨 집이에요.
    청년 : 방세 안 밀려요! 돈 벌어서 집도 살 거예요!
    여자 : 당신이 무슨 수로 돈을 벌어서 무슨 수로 집을 삽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리고 당신은 이미 수집돼서 심사받고 있잖아요. 당신이 갈 곳은 이제 재활용센터 아니면 폐기처분장 두 곳뿐이라고요.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본데, 정신 좀 차려요.
    청년 : 집에도 안 보내고 숙식이 제공되면 월급은 주는 데에요?
    여자 : 숙식이 제공된다는데 월급을 바라다니, 거봐요. 이미 도둑놈 심보잖아요.
    청년 : 그럼 집에도 안 보내고 월급도 안 주는 곳에서 지내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 새우잡이배에 팔려가요? 가둬놓고 마늘 까기라도 시키겠단 거예요?
    여자 : 재활용센터는 재활용될 인적자원들이 모여서 지내는 곳이에요. 공동생활터전인거죠. 아 물론, 남녀는 건물이 다르고 접촉은 금지예요.
    청년 : 무슨 수용솝니까? 날 감옥에라도 처넣겠다는 거예요?
    여자 : 쓸모없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조치하는 것뿐이에요. 어차피 사회생활에 참여하지도 못할 사람들인데 굳이 복잡하게 사회에서 함께 살아 뭐합니까. 당신들도 끼리끼리 함께 사는 게 맘 편할 거예요.
    청년 :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회에서 격리시켜요!
    여자 : 죄를 지었다기보다 쓸모가 없으니까 버리는 거죠. 우리는 원래 뭔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잖아요. 당신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청년 : 이 사회가 날 버린다고?
    여자 : 이미 버려졌다고 봐야죠.
    청년 : 미쳤구나, 세상이 미쳤어.
    여자 : 쓸모없는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일이에요. 범죄자를 격리시키고 정신병자를 격리시키는 건 오래전부터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었다고요. 거기에 하나 더 추가 된 것뿐이에요. 노숙자와 거지를 포함한 돈을 벌지 못하는 백수.
    청년 : 돈을 못 버는 모든 사람을 격리시킨다고?
    여자 : 그건 아니고, 취업을 포함하여 돈을 벌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 일단 재산이 없고, 고등학교나 대학을 이미 졸업했는데 장기 미취업자이거나, 해고나 실직한 후 재취업이 안 되는 장기 미취업자이거나, 은퇴한 후 마땅히 받을 연금도 없이 다시 취업할 가능성이 없는 노인 미취업자이거나, 그리니까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않는 모든 이들을 인적자원재활용심사를 통해 재활용센터로 보내거나 폐기처분하는 거죠.
    청년 : 재산이 있으면 심사 제외고?
    여자 : 재산이 있으면 자산가나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청년 : 돈 없는 사람들은 잡아 처넣겠다? 이거 인권 유린이에요.
    여자 : 쓰레기한테 인권이 어딨어요?
    청년 : 난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했잖아요!
    여자 : 인간쓰레기인 거죠.
    청년 : 악! 진짜,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나네. 하, 좋아요. 그 미친 소리 끝까지 한 번 들어 봅시다. 만약 심사받고 재활용 대상이 아닌 걸로 나오면?
    여자 : 폐기처분되죠.
    청년 : 인간을 어떻게 폐기처분해?
    여자 : 물건을 폐기처분하는 거랑 똑같이요.
    청년 : 땅에 묻나?
    여자 : 결국엔?
    청년 : 제거한단 얘긴가?
    여자 : 어쩌면?
    청년 : 지금 뭐야, 사람들을 죽인다는 얘기야?
    여자 : 사실 인구가 너무 많아요.
    청년 : 뭐라고?
    여자 : 인구과잉은 문제거든요. 정해진 땅덩어리에 정해진 자원에 정해진 일자리란 말이죠. 인구가 늘면 어디서든 포화상태가 되고 삶도 각박해지고 문제예요.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들은 폐기처분되는 건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뭐 극악범죄인 살인, 살해 이런 건 아니고. 폐기처분 대상자인 사람들은 재활용 대상자보다 한층 강도 높은 격리조치를 받는 것뿐이에요.
    청년 : 수용소 같은 곳에 사람들 몰아놓고 일 시킨다는 데가 재활용센터라면, 그보다 더한 격리가 어딨어?
    여자 : 쓰레기도 쓰레기 매립지에 버리게 되어 있잖아요. 폐기처분되는 사람들도 폐기처분 장소에 버려지게 되는데, 정부에서 무인도 하나를 폐기처분 장소로 내놨어요. 그 사람들은 모두 그리로 이송될 거예요.
    청년 : 사람을 무인도에 버린다고?
    여자 :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송될 거니까, 더 이상 무인도는 아니죠.
    청년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무인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 먹을 건 있어? 잘 데는 있어?
    여자 : 그건 알아서 해야죠. 그러니까 재활용센터보다 한층 강도 높은 격리조치라고 했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재활용센터는 얼마나 살기 편해요. 일단 숙식이 제공된다는데, 말 다한 거죠.
    청년 : 어떻게 이런 미친 생각이 정부법안으로 통과돼? 사람들이 알면 가만있을 것 같아?
    여자 : 인적자원 재활용 법안은 국민 발의 제도에서 나온 아이디어예요. 온라인에서 추천수만 몇 십 만 건이 넘은 법안이고, 국회에서도 여야 상관없이 전원 찬성한 법안인데요. 이게 무슨 정부에서 몰래 추진하는 도둑 정책인 것처럼 말하면 곤란하죠. 국민들이 원한 법이라고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국민들 말이에요. 당신같이 쓸모없는 사람들 말고.
    청년 : 말도 안 돼. 지금이 어느 때인데 21세기에 이런 생각이 가능하기나 해? 국제사회에서 받을 엄청난 비판 생각해 봤어? 이런 구시대적인 생각을 넘어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법안이 어딨어!
    여자 : 국제사회까지 생각을 하고 팔자 좋네요. 하지만 다른 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고요. 아마 우리가 성공적으로 정책을 운영해 나가다 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곧 관심을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정책 성공사례를 배우러 오겠죠. 어쩌면 이 아이디어는 세계자본시장과 국가들의 부채 절감을 위한 효율적인 생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요. 쓸모없는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청년 :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무인도에 버리는 게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여자 : 세상은 더 안전하고 살기 좋아질 거예요. 당신 같이 쓸모없는 사람들을 다 치워버리면 말이죠. 실업률과 범죄율이 얼마나 떨어질지 예측해봤더니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고요. 향후 5년간은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될 거라니 정말 놀라운 정책인 거죠.
    청년 : 나한테 이럴 수 없어. 난 심사 따위 안 받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 난 대한민국 헌법에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국민이야!
    여자 : 여기 수집되어 온 순간 당신은 대한민국 헌법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에요.
    청년 : 그런 게 어딨어! 민주주의 국가잖아!
    여자 : 자본주의 국가죠.
    청년 : 여기서 나갈 거야. 난 인간쓰레기가 아니야.
    여자 : 인간쓰레기는 스스로 판단한다고 해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거지. 당신은 인간쓰레기라니까. 이미 실패한 인생이라고. 나가봤자 금방 다시 수집돼서 올 거예요. 괜한 수고 말고 심사나 받아요. 심사 거부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폐기처분돼요. 그걸 원하면 그냥 나가보든가.
    청년 : 말도 안 돼.
    여자 : 무슨, 너무도 논리적인데.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솔직히 동의하죠? 그쪽이 인간쓰레기라는 것과 쓰레기를 재활용하겠다는 거 참 좋은 생각 아니에요?
    청년 : 당신이 쓰레기 취급 받는다고 생각해봐. 동의할 수 있겠어?
    여자 : 난 실패자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니죠. 어떻게 당신이랑 동급으로 보는 거예요?
    청년 : 당신은 왜 예외라고 생각해?
    여자 : 난 예외지. 나는 엄연히 공무원이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할 거고, 퇴직해도 연금이 나오고, 모아둔 돈도 있고 집도 있고, 내가 인간쓰레기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청년 : 잘릴 수도 있잖아! 그럼 당신도 실업자 아니야!
    여자 : 난 안 잘려요. 그러려고 힘들게 공부해서 공무원 된걸. 난 이미 경쟁에서 승리한 승리자라니까. 당신 같은 루저가 아니에요. 생각해봐요. 우린 아마 시작이 비슷했을지도 몰라요. 나도 그저 그런 중산층에서 태어나서 놀고먹어도 평생 소비자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요. 그래서 죽어라 공무원시험 준비한 거고. 나는 노력해서, 내 능력으로 합당한 일자리를 얻었잖아요. 당신은 내가 그렇게 노력하고 살 동안 뭐했어요. TV나 보고 방에서 뒹굴거리고 놀았겠지. 이거 다 자업자득이에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몰라요? 게으름 피우고 뒹굴거리는 사람은 소만도 못해요. 말 그대로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라니까.
    청년 : 만약에 주구장창 공부했는데도 공무원시험에 떨어졌으면 어땠겠어! 당신도 나랑 한끝 차이일 뿐이라니까?
    여자 : 안 떨어졌잖아요. 나는 결국 합격했고, 이렇게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사람에게 시간은 똑같이 주어져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죠. 노숙자들한테도 시간은 똑같이 있었다니까? 그 사람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거지꼴 못 면한 것뿐이에요. 기회는 공평했어요. 이제 그 게으름과 무능력이 심판 받는 날이 온 것뿐이죠. 열심히 자기 능력 개발하며 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자랑스런 국민들에게 피해는 입히지 말아야죠. 사회가 발전하려면 당신 같은 무능력한 게으름뱅이들을 치워버려야 해요. 그래야 좀 더 좋은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죠.
    청년 : 좀 더 좋은 세상? 돈 없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모두 배제시켜 버리는 게 좋은 세상이야?
    여자 : 솔직히 가난은 대물림된다고요. 가난은 가난을 낳을 뿐. 가난은 범죄도 낳고. 사회가 후퇴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에요. 근데 또 절망적인 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아이 만드는 데는 열성인 건지, 애들을 너무 많이 낳아요. 제대로 교육도 못 시켜서 사회의 낙오자로 키울 거면서 말이죠. 그런 애들이 많아져 봐야 성실한 노동자도 안 되고 사회에 아무 쓸모도 없단 말이에요. 그런 문제들은 발생하기 전에 싹을 자르는 게 옳죠.
    청년 : 가난한 아이들은 처음부터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한단 얘기야?
    여자 : 인적자원 재활용센터가 만들어질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도 거기 있었어요. 인간쓰레기들을 다 모아놓았다가 애들만 엄청 만들면 어쩌지? 그래서 남, 여가 만나지 못하게 건물을 따로 만들자는 생각을 했죠. 정말 괜찮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이미 존재하는 쓰레기들 처치도 힘든데, 쓰레기들 더미에서 또 다른 쓰레기들이 생기면 곤란하잖아요.
    청년 :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쓰레기들 더미에서 생긴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여자 : 그럴 확률이 높죠. 사회의 낙오자들의 유전자가 서로 결합해 봤자 열성인자일 텐데, 인간이 진화하려면 우성인자들이 만나야 한다고요. 이건 자연의 법칙이에요. 열성인 존재는 결국 사라져요. 우성인 존재들이 다음 세대를 만드는 게 옳아요.
    청년 : 내가 열성인자라고?
    여자 : 그러니까 지금 실패자가 되었겠죠. 무능력이 열성인 거지, 뭐가 더 있을 수 있어요?
    청년 : 이 사회가 나를 실패자로 만든 거지, 내가 실패자인 게 아니잖아!
    여자 : 사회 탓하는 것도 루저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봐 봐요.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어요? 제대로 잘 사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어떻게 이 사회가 문제예요. 개개인의 문제일 뿐이에요. 성공할 사람은 성공하고 실패할 사람은 실패하죠. 승리할 사람은 승리 하는 거고 지는 사람은 지는 거예요.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죠. 사람은 원래 자기 처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해요. 당신이 인간쓰레기라고 인정하면 얼마나 편해요. 인정 안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죠.
    청년 : 인정할 수 없지. 난 쓰레기가 아니니까.
    여자 : 논리도 없이 우기기만 하는 것도 낙오자들의 특성이긴 해요. 근데 나는 이렇게 당신이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니까요. 당신 말고도 심사해야 할 쓰레기가 널렸거든요. 수집요원들이 정말 쉴 새도 없이 거리에서 인간쓰레기들을 수집해서 가져온다니까요. 내가 지금 얼마나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지 알면 날 대단하다고 할걸요? 내가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도 다 당신같이 쓸모없는 인간쓰레기가 너무 많아서잖아요. 이거 정말 민폐예요.
    청년 : 사람을 수집한다니, 사람을 가져온다니, 다른 사람한테 피해 가게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민폐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길에 휴지 한 번 버려본 적이 없고, 교통신호 한 번 어겨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한테 욕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법을 어겨본 적도 없다고. 감옥 같은 데 수감돼 할 이유가 없어.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자 : 이제껏 내가 말한 걸 다 어디로 들은 거예요. 이유는 충분해요. 쓸모가 없어서예요.
    청년 :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다라. 쓸모없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말아야 하고 존재한다면 없어져야만 한다 이거지. 쓸모없는 걸 모두 없애면 세상에 쓸모 있는 것만 남을까봐서? 쓸모없는 걸 하나씩 버려나가다가 이제는 사람을 쓸모로 판단해서 버리겠다? 사람이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겠다 이거지.
    여자 : 이제야 좀 상황판단이 되나 보네요. 그러니까 좀 열심히 잘 살지 그랬어요.
    청년 : 그러게, 열심히 잘 살걸 그랬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굳이 사람답게 안 살아도 됐었잖아? 어차피 쓰레기 취급 받을 거 쓰레기처럼 한 번 살아볼걸 그랬어.
    여자 : 뭘 쓰레기처럼 살아봐요. 당신은 이미 인간쓰레기로 수집되어 온 거라니까요. 심사를 받고 재활용센터에 가는 게 지금으로서는 당신한테 가능한 제일 좋은 삶이에요.
    청년 : 삶? 그건 사람한테나 쓰는 말 아니야? 쓰레기한테 삶이 어딨어? 쓰레기의 삶, 그건 너무 거창한 말 아니야?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야. 삶 같은 건 없어.
    여자 :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인간쓰레기인 당신에겐 쓰레기로서의 삶이 있겠죠. 어쨌건 살아는 있는 거잖아요? 물론 폐기처분 대상이 아닐 때 얘기지만요.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은 폐기처분 대상까진 안 될 것 같아요. 아직 젊고 체력도 좋아 보여서 말이죠. 인적자원재활용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건 심사 대상의 체력이거든요. 재활용센터에서는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청년 : 체력? 좋지. 노동력이잖아. 돈도 안 줄 거면서 부려먹으려면 체력이라도 좋아야겠지? 딴 건? 아이큐 검사 같은 건 안 해?
    여자 : 아이큐는 인적자원을 심사하는 데 그다지 필요가 없어요. 재활용센터에서 머리를 쓸 일은 거의 없고, 머리가 좋아봤자 잔머리나 굴릴 테니 다루기가 힘들잖아요. 대신 심리검사는 해요. 인간쓰레기 중에는 반사회주의 인격장애가 너무 많아서 위험 대상들을 검사로 가려내야 하거든요. 체력이 아무리 좋아도 정신이상자들은 폐기처분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재활용센터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청년 : 체력검사랑 심리검사 그게 다야? 폐기처분할 인간을 가려내는 심사가 그 둘이 다야?
    여자 : 이미 수집 대상이 되어서 수집되어 왔다는 걸로, 기본 심사는 끝난 거니까요. 이미 버려도 되는 인적자원 중에 재활용할 대상을 찾는 건데 뭐 그리 복잡한 심사가 필요하겠어요. 안 그래요?
    청년 : 내 정신 상태는 어떤 것 같아? 건강해 보여?
    여자 :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인데 말이죠. 아무래도 당신은 심리검사를 받고 나서 체력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원래 내가 오케이하면 바로 체력검사로 넘어가는데, 당신이랑 쭉 얘기를 해본 결과 당신은 심리검사가 필요한 것 같거든요. 반사회적인 성향들도 좀 보이고 해서 말이에요.
    청년 : 이런 상황에서 고분고분 상황을 다 인정하고 착하게 체력검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도 있나?
    여자 : 그럼요. 자기가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걸 금세 자각하고 심사에 협조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현실감각이 그래도 좀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아는 거죠. 자기가 이미 실패했고, 낙오했으며, 가능성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요. 모두 그쪽처럼 현실을 부정하진 않아요. 현실인식이 빠른 사람들일수록 재활용센터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물론 그 사람들 중에서도 완전 저질체력을 가졌다든가,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폐기처분 대상이 되긴 했지만요.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현실인식을 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걸 보면 허황된 몽상가거나, 사회 비판의식이 투철한 반사회적 인간형일 확률이 높아서 심리검사를 해야겠어요.
    청년 : 그럴지도 모르지,
    여자 : 뭐가요?
    청년 : 내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일지도 모른다고. 나도 오늘에야 깨달았지만 난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여자 : 당신이 그걸 인정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요. 자신의 처치를 자각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가, 아니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고백했다는 것에서 부정적인가. 헷갈리네요. 스스로 고백하면 검사를 할 필요도 없이 폐기처분 대상에 넣어야 하는 건가?
    청년 : 마음대로 해.
    여자 : 이제 다 포기한 거예요? 잘 생각했어요. 어차피 당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청년 : 맞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이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난 지금 죄책감 따위도 일어나지 않아. 그건 아마도 내가 인간이 아니란 걸 알아버려서일 거야. 난 인간이 아니야. 그냥 쓰레기지.
    여자 : 엄밀히 따지면 인간쓰레기죠.
    청년 : 그래, 난 인간쓰레기야. 그거 알아? 난 이제 인간답게 살지 않아도 돼. 그렇게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어차피 내게 남은 건 둘 중 하나라며, 수용소 같은 데 감금돼서 평생 마늘이나 까든지 쓰레기들이 모이는 무인도에 버려져서 거기서 인생 마감하든지,
    여자 : 마늘 까는 일을 시킨다고는 안 했는데 말이죠.
    청년 : 밖에는 수집요원들이 있을 거야, 그렇지?
    여자 : 두 명이나 대기 중이죠.
    청년 : 도망친대도 다시 잡혀올 거라며.
    여자 : 그런 멍청한 짓은 정말 권하지 않아요. 다시 수집되는 건 시간 문제거든요. 이미 그쪽 신상명세는 명단이 돼서 다 뿌려졌으니까.
    청년 :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 안에서 잠가 버린다.) 그럴 생각도 없어. 이제 다 짜증나 버렸거든. (앉아 있던 의자를 가져다가 문고리 밑에 고정시킨다.)
    여자 : 지금 뭐하는 거죠?
    청년 : 생각해보니 반사회적 인격장애도 말이 안 되는 게, 그건 인격을 가진 인간한테 해당 되는 거 아니야?
    여자 : (이상한 낌새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게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청년 : (피식 웃으면서 여자에게 다가온다.) 인간이 아닌데 인격이 어딨어?
    여자 : (뒷걸음질 치다가 문으로 달려가지만 청년에게 팔이 잡힌다.) 뭐예요? 이거 놔. 이거 안 놔? 이게 무슨 짓이야! 여기요, 여기요!
    청년 : 별 그지 같은 건물에 감금되나, 감옥에 갇히나 그게 뭐가 달라? 그마저 이제 재활용될 가능성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럴 바엔 내 생각엔 무인도보단 감옥이 나을 것 같아.
    여자 : 왜 이래! 이거 놔! 밖에 누구 없어요? (밖의 소란스러움. 문을 열려고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청년 : (여자의 뒤에서 목을 압박하며 여자가 쓰던 펜을 여자의 목에 가져다 댄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면 안 되지만 난 인간도 아니잖아. 인간도 아닌 내가 널 못 죽일 이유도 없잖아. 같은 종족도 아닌데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정말 명쾌한 논리 아니야?
    여자 : 이러지 마요. 그쪽한테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어요. 내 일일 뿐이에요.
    청년 : 열심히 일하다 죽으면 산재인가? 보험금 좀 나오겠어.
    여자 : 살려주세요. 제발요.
    청년 : 내가 왜.
    여자 : 여기서 내보내 줄게요.
    청년 : 다시 잡혀올 걸 피곤하게 내가 왜.
    여자 : 다시 잡혀오지 않게 명단에서 빠질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제발요. 이것 좀 놔 봐요.
    청년 : 내게 남은 길이 딱 두 가지라며, 주구장창 말해놓고 살고 싶으니까 이제 거짓말이 나오나봐? 아무튼 인간들이란.
    여자 :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이것 좀 놔 봐요. 책상 서랍에 서류가 있어. 수집요원 계약서라고요!
    청년 : 수집요원 계약서?
    여자 : 내가 사인만 하면 끝나는 최종 계약서야. 거기에 당신 이름 써줄게. 그거 가지고 나가. 내가 너 같은 인간쓰레기한테 죽으라고 이렇게 열심히 산 줄 알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발요. 살려주세요.
    청년 : 이봐, 진정해. 미친 사람처럼 왜이래. 난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이 긴긴 시간 중에도 냉정을 유지했다고. 논리적이고 말이야. 나만큼은 해야지. 나랑 달리 우성인자라서 우월하다며. (잠시 생각한 후에) 수집요원이면 날 잡아온 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여자 : 그래! 너 같은 인간쓰레기들 길에서 수집해오는 사람! 일이 많아서 아직도 채용중이다! 너 같은 놈들이 워낙 많아야지! 수집요원은 공무원이야. 넌 죽었다 깨나도 못 되는 공무원이라고.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넌 노동자야. 한 달 뒤엔 소비자도 되겠지. 자동으로 명단에서 제외돼. 그럼 다시 잡혀올 일도 없어. 그러니까 이거 놔!
    청년 : 그 말 진짜야? 난 널 정말 죽일 수 있어. 그냥 하는 협박이 아니야.
    여자 : 서랍 속에 있다고!
    청년 : (여자를 끌고 탁자로 가서 서랍을 연다.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에 올려 논다.) 사인해.
    여자 : (가까스로 손을 뻗어 사인한다.) 자, 가져가.
    청년 : (종이를 대충 접어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잘 들어. 넌 오늘 나한테 죽을 뻔했어. 잊지 말라고. 난 정말 죽이려고 했거든. 이렇게 인간 취급 받는 게 쉬운 건 줄 알았으면 진작 어디 사장실에 쳐들어가서 취직시켜달라고 칼이라도 휘둘러볼걸 그랬어. 미친 세상. (여자를 문 앞까지 끌고 가 의자를 치우고 잠근 문을 연다.) 비켜, 이 여자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여자 : 비켜요, 비키라고. 이 사람 지나가게 비켜줘요! 비키라니까!

 

      (무대 뒤쪽 문으로 사라진 두 사람, 곧 여자만 누가 밀친 듯 무대로 넘어지며 들어온다.)

 

    여자 : 아얏, 저사람 잡아요! 저 놈 못나가게 잡으라고! (소리치고는 천천히 추스르듯 일어나 의자로 가 앉는다.) 하아, 하아. 저 미친놈. 개쓰레기 같은 놈. 거 봐, 저런 놈이 결국엔 범죄자 되고 살인자 되고 다 되는 거라고. 인간 말종 버러지들! 이 짓도 진짜 할 거 못 되네. 정말 때려치고 싶다. (번뜩 정신 차리고) 아니지. 절대 안 되지. 뭘 때려쳐. 큰일 날 소리. (잠시 숨을 고르고, 안정을 시킨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책상에 바로 앉는다.) 자, 다음 사람.

 

      (무대 암전.)

 

 

 

3장

 

      (무대 중앙 탁자에 혼자 앉아 있던 여자.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탁자의 서류를 정리한다. 퇴근하려는 듯이 가방을 어깨에 메는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여자 : (핸드폰을 받으며) 여보세요? 네, 제가 맞는데요. 누구시죠? 5급 사무관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네, 사무관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저한테 직접 전화를 다, 네, 저는 지금 퇴근하려고 준비를, 아니요. 아직 퇴근한 건 아니고요. (황급히 다시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는다.) 네. 네. 무슨 서류요? 수집요원이라고요? 네. 있죠. 수집요원 계약서류를 저는 이쪽에 근무 발령을 받으면서 받았는데요. 네, 10장이요. 아, 저는 아직 9장이 남아 있어요. 한 장은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죠. 네? 아, 그렇죠. 제가 수집요원 1명을 임명한 게 되죠. 근데 그게 왜? 그 계약서 10장은 별도의 심사 없이 제가 채용할 수 있는 인원수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요? 맞는 거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네, 저는 혹시 제가 규정을 잘못 알아서 문제가 되는 일을 했을까봐서요. 다행이네요. 그럼 확인 차 전화 걸어 주신 거예요? 아, 그게 아니면, 무슨 일로?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할당량이라니요? 수집요원 열 명의 임명권이 할당이라고요? 어, 얼마요? 3000만 원? 사무관님 그게 지금 무슨 소리죠? 계약서 한 장당 3000만 원이라뇨? 제가 지금 수집 요원 계약서를 한 장당 3000만 원에 팔았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정말 몰랐어요! 3000만 원짜리 계약서가 열 장이면, 맙소사, 3억인데요? 그 돈을 누구한테 줘야 하는 건데요? 사무관님한테 직접요? 이게 정부사업이라고요? 하지만, 공무원 임용을 돈을 주고 파는 건 불법 아닌가요? 특별법안에 포함되어 있다고요? 아니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정말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감히 사무관님 말씀을 의심할 수 없죠. 의심하는 게 아니고 저는 단지, 이런 게 정부사업일 수 있다는 게. 예전에, 기부금 입학제도요? 기부금 내면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그거요? 그거랑 똑같은 거라고요? 하지만 기부금 입학제도가 없어진 게 언젠데, 아니 요. 그럼요. 정부 예산이 너무 부족한 거 알죠. 세금을 더 걷을 수 없다는 것도 알죠. 그럼요. 공무원으로서 정부 부채를 줄이는 일에 적극 협조해야 하는 것도 다 알죠. 절대, 불만이 있다거나 그렇지 않아요. 네,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지만 사무관님. 저는 정말 그 사실을 몰랐고, 이미 계약서 1장을 써버렸고, 임명된 사람한테 돈을 받지도 않았고, 아. 그리고 다시 가서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이런 일은 공론화되면 안 되는 게 아닌가요, 그렇죠? 알려지면 안 되는 거죠? 그럼 비밀리에 계약서를 팔아야 하나요? 절대로 비밀이어야 한다고요. 하,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네. 네. 그런데 잠시만요! 이미 사인한 계약서 1장은 어쩌죠? 돈을 받지 않고 임명한 한 사람은요? 제가 물어야 한다고요? 3000만 원을요? 사무관님! 3000만 원을 제가 어떻게, 공무원 월급이 얼만데 제가 그 큰 돈을 마련하나요. 머리를 좀 쓰라고요? 계약서 한 장당 얼마에 팔리는지 정부가 알게 뭐냐고요? 그 말은 얼마에 팔든지 상관없이 장당 3000만 원만 정부에 내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자유경제시장 논리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된다고요? 얼마에 팔든 그건 파는 사람 능력이라고요. 충분히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네. 네. 할 수 있습니다.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는다. 한동안 멍하니 얼이 빠져 있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개 새끼들.

 

      (무대 암전. 무대 조명 들어오면 다시 탁자에 앉아 일하고 있는 여자.)

 

    여자 : 자, 다음.

 

      (정장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수집요원이 들어온다.)

 

    여자 : 어, 오늘은 더 심사할게 없나요?
    수집요원 : 네. 오늘 심사할 사람들은 모두 끝났습니다. 쓰레기차도 이미 출발했고요.
    여자 : 아, 그렇군요. 오늘은 좀 일찍 끝났네요. 그럼, 퇴근하셔도 되겠네요. (묵묵히 서 있는 수집요원을 보고) 퇴근하세요. 뭐, 저한테 할 말이라도?
    수집요원 : 할 말이라기보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여자 : 저한테요?
    수집요원 : 네.
    여자 : 네, 해보세요. 뭔데요?
    수집요원 : 어제 심사를 받다 도망친 남자 말인데요.
    여자 : 그 버러지 같은 놈! 휴, 제가 어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집에 가도 잠이 안 오고, 간신히 잠들었는데도 악몽을 꿨다니까요! 어제 보셨죠? 바로 밖에 계셨으니까. 그 자식이 여기서 나가려고 절 죽인다고 협박했어요. 나쁜 놈.
    수집요원 : 네, 그래서 결국 도망치는 데 성공했죠.
    여자 : 정말 위험했다니까요? 눈을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어요. 여기 잡혀 온 게 마치 내 탓인 마냥.
    수집요원 : 심사를 받다가 도망친 사람이 그 남자 하나뿐인 건 아니에요. 간간히 도망치는 사람들이 생기죠.
    여자 : 그러니까요. 도망쳐 봤자, 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당장 그 순간을 넘겨보겠다고, 어리석은 짓들을 해요. 금세 다시 수집돼 오잖아요. 그 사람들.
    수집요원 : 네, 맞습니다. 도망쳤던 사람들은 모두 다 다시 잡혀왔죠. 명단에 기록된 신상정보가 워낙 세밀해서 찾아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까요.
    여자 : 괜히 사람 두 번 일 시키게, 참 민폐인 존재들이에요.
    수집요원 : 그런데 말입니다.
    여자 : 네?
    수집요원 : 어제 도망쳤던 그 남자. 찾으려고 했다면 오늘이라도 다시 찾아서 데려올 수 있었을 겁니다.
    여자 : 음, 그런…데요?
    수집요원 : 그런데 이상한 게 어제 도망쳤던 그 남자는 명단을 아무리 확인해 봐도, 신상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처음 잡아올 때는 명단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여자 : 아, 그래…요?
    수집요원 : 그래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신기하게도 그 남자는 명단에서 제외되었더군요. 하루만에요. 그것도 심사를 받다 인질극을 벌여서 도망친 위험한 남자였는데 말입니다.
    여자 : 그렇죠… 아주 위험한 놈이었어요.
    수집요원 : 그래서 물어보러 온 겁니다. 뭘 어떻게 한 거죠?
    여자 : 네? 뭘요?
    수집요원 : 어떻게 그 남자를 명단에서 제외시켰죠?
    여자 : 그건, 모, 몰라요, 나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수집요원 : 이번에 정부에서 인적자원재활용법안이 통과되면서, 수집요원들이 대거 임용됐죠. 수집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시험을 통과해도 강도 높은 체력검사가 남아 있죠. 그 시험들을 다 치르고 합격한 수집요원들은 나름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수집요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수집요원들이 낙하산 임용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여자 : 그, 그래요?
    수집요원 : 서기관님도 7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셨죠? 남보다 더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올랐을 겁니다. 그런데 같은 서기관 중 누군가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서기관이 되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여자 : 정말, 화가 나겠죠. 노력 없이 원하는 자리에 올라서 권리만 행사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짜증이 날 거에요.
    수집요원 : 이해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난 상태죠. 어제 이곳에서 도망친 남자가 수집대상 명단에서 제외된 걸 확인하자마자 신입 수집요원 명단에 올라와 있는 걸 봤거든요. 특별채용 대상자라고 하면서요. 그 남자가 수집대상이 된 건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별볼일 없는 상태에서 무능력한 그대로 시간만 축냈기 때문이죠. 만약 그 남자가 단번에 자신을 공무원으로 만들어줄 빽이 있었으면 수집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미 그 남자는 노동자가 되었을 테니까. 그런 그 남자가, 수집대상에서 하루 만에 수집요원이 되다니요. 그게 말이 될까요?
은요?
    여자 :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수집요원 : 어떻게 한 겁니까.
    여자 : 대체 뭘요!
    수집요원 : 그 남자를 어떻게 수집요원으로 만든 겁니까.
    여자 : 그건,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날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진짜 죽일 것 같았다고요!
    수집요원 : 그 남자를 수집요원으로 만들어준 게 서기관님이 맞는 거군요.
    여자 :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수집요원 : 그런 권한이 있는 겁니까? 모든 서기관한테? 몇 명이든 상관없이 수집요원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이 있는 건가요?
    여자 :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10장밖엔 없어요. 계약서는 열 장밖엔 없다고요!
    수집요원 : 모든 서기관이 10장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여자 : 심사원에서 일하는 서기관들만이에요. 이쪽 부서로 발령받을 때, 그냥 위에서 내려 주는 대로 받았던 공문일 뿐이에요.
    수집요원 : 7급 공무원들이 누리는 특혜입니까?
    여자 : 아니에요, 이건. 나도 몰라요. 나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에요.
    수집요원 : 공무원 임용권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불법인 거 같은데요.
    여자 : 아니에요. 이건 정부정책이랬어요.
    수집요원 : 어떻게 이런 일이 정부정책이 됩니까?
    여자 : 그러니까 이건 정부의 예산, 아니. 자세한 것까진 말할 수가 없지만, 이건 불법이 아니라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수집요원 :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엄연히 임용절차를 만들어놓고 특별채용을 한다는 게 불법이 아니라고 믿기 힘드네요.
    여자 : 하지만 정말 합법적이라고 했어요!
    수집요원 : 그럼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려도 됩니까?
    여자 : 뭐라고요?
    수집요원 : 합법이라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여자 : 안 돼요. 이건 비밀리에 운영되는 정책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알려지면 안 돼요!
    수집요원 : 알려지면 왜 안 됩니까?
    여자 : 그럼 심사원에 있는 서기관들이 죄다 잘릴지도 몰라요!
    수집요원 : 불법이 아니라면서요.
    여자 : 그래도 공무원의 도덕성 어쩌고 하면서 들고 일어날 거 아니에요! 고용의 투명성 어쩌고 하면서 시위라도 일어나면 어떡해요.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밖엔 일한 게 없는데, 그럼 피 보는 건 우리라고요. 여론이 안 좋아지면 정부에서 책임 운운하면서 우리만 다 자를 거예요! 우리가 무슨 죄예요. 위에서 시키면 뭐든 다 해야 되는 거 아시잖아요, 나보고 어떡하라고요.
    수집요원 : 서기관님은 하고 싶지 않지만 위에서 시키는 거라 억지로 하는 일이라고요?
    여자 : 네! 그럼요! 이런 일 나도 하기 싫어요!
    수집요원 : 그럼 안 하면 되겠네요.
    여자 : 네?
    수집요원 : 몇 장 남았죠?
    여자 : 뭐가요?
    수집요원 : 임명 계약서요.
    여자 : 아홉 장이요. 그건 왜요?
    수집요원 : 4장이 필요합니다.
    여자 : 뭐라고요?
    수집요원 : 신문사에 찾아가서 제보를 하지 않는 대신 계약서 4장을 달라는 얘깁니다.
    여자 : 무슨 소리예요. 그게?
    수집요원 : 집요원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마주치는 제일 힘든 순간은 수집대상 명단에 올라 있는 지인들의 이름을 볼 땝니다. 친구, 선배, 심지어 친형까지 모두 수집대상에 이름이 올랐죠. 아직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동생도 언제 명단에 오를지 모릅니다. 내 손으로 언젠가 내 가족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여자 : 그래서요?
    수집요원 : 4장이면 됩니다. 난 그래도 도둑놈은 아니니까. 꼭 필요한 장수를 말한 겁니다.
    여자 :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예요?
    수집요원 : 거래를 하자는 거죠.
    여자 : 내가 또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거야? 대체 나한테 왜들 이래?
    수집요원 : 서기관님은 그 절박함을 모릅니다. 살 만할 테니까. 하지만 수집대상에 오른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릅니다. 재활용센터에 끌려가든지 폐기처분되든지, 수집 돼서 잡혀 오는 순간 미래가 두 가지밖에 남지 않는단 말입니다. 모두가 어제 그 남자만큼 절박합니다. 난 도저히 내 가족들을 그 지경에 이르게 만들고 싶지 않군요.
    여자 :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수집요원 :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준다.) 모두 녹음했습니다. 이 녹음 파일이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하겠죠. 그렇게 되면 서기관님이 말하신 대로 심사원에 있는 모든 서기관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겁니다. 윗선은 안 하겠죠. 언제나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계약서 4장을 저한테 주시면 서기관님이 보는 앞에서 녹음 파일을 지우고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아무도 모르는 게 되겠죠.
    여자 : 당신한테 계약서 4장을 주면 나는 5장밖에 남지 않아요!
    수집요원 :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라면서요. 그 부담이 줄어드는 게 좋은 일 아닙니까.
    여자 :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수집요원 : 뭐가 말입니까.
    여자 : 말할 수 없다고요! 이게 왜 복잡한 일인지 말할 수가 없어요! 5장 가지고는 불가능해!
    수집요원 : 뭐가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겁니까?
    여자 : 이래도 잘리고 저래도 잘릴 거야. 대체 왜? 난 시험을 보고 내 실력으로 이 자리에 왔는데? 왜 내가 이 자리를 지키려고 갖은 애를 써야 하지?
    수집요원 : 남은 계약서 9장을 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필요한 4장만 달라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큰 요구입니까?
    여자 : 그냥 줄 수가 없단 말이에요!
    수집요원 : 그냥 줄 수가 없다면, 뭐죠? 계약서를 가지고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여자 :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라고! 가져가요. 그냥 가져가요. 더 이상 묻지 말고 가지고 가요. (서랍에서 종이들을 꺼낸다.) 그리고 녹음 파일 지워요 당장!
    수집요원 : (종이를 건네받는다.) 협박이 아니라 거래였습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군요. 이걸로 오늘 대화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수집요원 나간다. 여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황급히 노트북을 펼친다.)

 

    여자 : 빌어먹을, 도둑질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나쁜 새끼들. 비밀리에 계약서를 대체 어떻게 팔아? 이제 5장 남았는데 얼마에 팔아야 돼? 6천만 원? 이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이런 씨. 다른 서기관들은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지. 그럼 서로 얼마에 계약서를 파는지 다 알게 될 텐데. 일단, 아이디를 하나 만들고. 이메일도 새로 만들고. 설마 추적되겠나? 안 되겠지. 어디에 올리지. 일자리 필요한 돈 많은 놈들은 다 어디 있지? 채용사이트? 그래, 채용사이트. 이건 너무 공개되는 거 아닌가? 아, 몰라. 뭐라고 쓰지? 일자리가 필요한 돈 많은 놈 연락하라고? 너무 수상한데. 정부사업 정규직 공무원 모집? 그래. 일단 그렇게 올리고, 연락 오는 놈들 중에 돈 좀 있어 보이는 놈들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게 낫겠어. 돈 많은 걸 어떻게 알지? 세무서 가서 재산목록 뽑아오라 그럴까? 이건 말도 안 되지. 아, 짜증나. 어떻게 해? 아, 그렇지! 이력서에 가족사항을 상세히 적으라고 해야겠다. 부모직업 보면 대충 사이즈 나오니까. 가만, 이력서에는 주소도 있지? 어느 동네 사는지 알면 어지간히 거를 수 있겠네. 주소를 구글 어스에 찍으면 되겠다. 요샌 청담동에도 고시촌이 있는 세상이니까. 사진으로 집을 확인 하고, 부모 직업 좀 추리면? 됐네, 됐어. 괜찮군. 참 좋은 세상이야. 자, 그럼 이렇게, 글을 올리고, 정규직 공무원 모집. 이력서에 충실할 것. 개별 이메일 지원. 오케이! 등록! (노트북을 경쾌하게 닫는다.) 어쩌면 잘 팔릴 수도 있어. 생각해보니 돈 많은 무능력자들도 널렸을 거야? 6천이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돈 주고 공무원 되는 거면 완전 대박이잖아. 그래, 예상보다 장사가 쉬울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말자, 팔릴 거야! 팔 수 있다! 팔아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툭 내뱉는 한마디) 개새끼들.

 

      (무대 암전.)

 

 

 

4장

 

      (조명 밝아지면 무대엔 1장에서의 한 팀장과 여자가 앉아 있다.)

 

    한 팀장 : 그래요, 거기까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잘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쪽이 10년 전엔 공무원이었고, 인간쓰레기로 잡혀 온 어떤 청년 하나를 수집요원으로 만들어줬다, 그거 아닙니까. 계약서 5장을 인터넷에서 팔아보려다가 누가 보이스 피싱이라고 신고를 해서 비리공무원으로 찍혀 잘리고, 정부에 갖다 줄 할당 금액 3억이 다 빚이 돼서 집도 팔고 결국 이 꼴이 되었다 그 말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믿겠어요?
    여자 : 말이 안 된다고? 못 믿겠다고? 그게 바로 너였잖아!
    한 팀장 : 아, 왜 이래요,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난 그쪽을 몰라요. 난 인간쓰레기였던 적도 없고요. 그쪽이 10년 전에 공무원이었다는 것도 난 못 믿겠는데? 어쨌든 지금 그쪽은 인간쓰레기로 여기 앉아 있는 거고, 인간쓰레기들 말은 아무리 잘 들어주려고 해도 영 믿음이 안 가서 말이죠.
    여자 : 난 인간쓰레기가 아니야! 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한 팀장 : 아, 왜 자꾸 나한테 뭐라 그래요. 나 아니라니까! 자꾸 모함하지 말아요. 그리고 왜 자꾸 그 청년 탓을 해요. 무능한 당신이 계약서를 못 팔아서 그런 거 아니야. 나라면 다 팔고도 남았겠다. 그거 하날 못해가지고, 아무튼 공무원들은 안 된다니까. 책상머리 앞에만 앉아 있어가지고 도무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몰라요. 아무튼 보는 눈도 많은데 이상한 소리 그만 하시고, 그쪽이 그렇게 우기면 내 이미지가 뭐가 돼요.
    여자 : 우기다니, 난 진실을 말하는 거야. 너야말로 발뺌할 생각하지 마. 넌 지금 이렇게 정장 빼입고 거드름 피우며 앉아 있을 놈이 아니었어. 넌 이미 10년 전에 폐기처분돼야 했을 인간쓰레기였다고! 니가 기억할 거 아니야!
    한 팀장 : 뭘 기억해요, 난 그런 기억 안 나요.
    여자 : 그럼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수집요원이 될 수 있었겠어!
    한 팀장 : 나야, 시험보고 합격해서, 수집요원이 된 거죠.
    여자 : 뻔뻔한 놈.
    한 팀장 : 아, 뻔뻔하다니. 내가 오늘 보는 눈이 많아서 참는 거예요. 그쪽 과거가 어찌 됐든 난 사실 궁금하지도 않다고요. 중요한 건 현재잖아요. 당신은 이제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 따윈 없다니까? 당신한테 남은 삶은, 지금 이 심사를 잘 받아서 재활용센터로 가든가, 아니면 폐기처분이 되든가뿐이라고요. 나한테 잘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자꾸 모함이나 할 겁니까.
    여자 : 난 인간쓰레기가 아니라고!
    수집요원 : 에이, 인간쓰레기가 맞지. 그쪽은 이제 노동자도 아니고, 소비자도 아니고 자산가도 아니잖아요. 이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라니까. 이대로 몇 년만 지나봐. 기초생활수급자 돼서 성실히 살아가는 국민들 세금이나 축낸다니까? 잘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지~ 그쪽한테 남아 있는 제일 좋은 결과는 재활용센터로 가는 건데, 글쎄. 그쪽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 심사에서 탈락하면 바로 폐기처분될 텐데, 폐기처분은 어떻게 되는지 잘 알죠? 우린 이미 폐기처분장인 무인도 세 개를 가지고 있어요. 들어보니 폐기처분장은 아주 난리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무법 지대인데다 다시 나올 수도 없는 데라서 신입 쓰레기들은 얼마 못 버틴대요. 쓰레기들만 모아놨어도 이미 위계질서가 나눠진 모양이에요. 아무튼 인간들이란. 어디에 갖다놔도 살 놈 들은 산다니까.
    여자 : 난 폐기처분되지도 않을 거고, 재활용센터에 가지도 않을 거야.
    한 팀장 :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요. 수집돼 온 이상 이제 끝이라니까. 도망가도 다시 수집돼는 건 시간문제야~ 도망가려야 갈 수도 없어요. 밖에 수집요원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못 봤어요? 왜, 날 죽이겠다고 협박해보게? 그쪽이 힘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지금 감기라서 좀 골골대는 거예요. 무시하면 안 된다고. 난 무결점 한 팀장이거든요. 그리고 나한텐 10년 전의 그쪽한텐 있었던 임명권 따윈 없어요. 그런 짓 하면 잘려.
    여자 : 거봐, 너잖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한 팀장 : 아니, 내가 기억을 하는 게 아니라, 이건 그쪽이 이미 다 말한 거잖아요! 하도 진짜라고 우기니까 감정이입이 돼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여자 : 멍청한 건 여전하네. 내가 이런 등신 같은 놈한테 심사를 받고 있다니, 이 버러지 같은 세상. 세상이 잘못됐어. 인간은 쓰레기가 될 수 없어. 돈 없는 사람은 죄가 아니야.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거라고! 너도 그렇게 말했었잖아.
    한 팀장 : 등신? 그거 설마 나한테 한 말은 아니죠? 인간쓰레기로 잡혀온 사람을 고소할 수도 없고. 참나. 그리고 인구가 정말 너무 많긴 하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사실이니까! 난 무결점 한 팀장이기 때문에 나같이 승리한 사람들이 살기에 이 사회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요. 난 불만 없어요!
    여자 : 잘못됐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인간은 자원이 아니야. 사람은 물건이 아니잖아!
    한 팀장 : 이봐요! 자꾸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동의를 구할 생각은 접어요. 나는 그쪽이랑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쪽이 뭐라 그러든 난 공감할 수 없다니까!
    여자 : 우린 같아. 누구라도 같아. 이런 사회에선 누구나 언제나 쓰레기 취급받아서 이유 없이 끌려오고 이유 없이 감금되고 이유 없이 버려질 수 있어. 이 사회가 미쳐 돌아가기 때문이야. 너도 안전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 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해. 낙오될 수 있다는 두려움,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너도 예외일 수 없어. 아무도 예외일 수 없어.
    한 팀장 :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그러니까 잘 살아야 하는 거예요.
    여자 : 그건 잘 사는 게 아니야. 그건 사는 게 아니야.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한 팀장 : 아니 산다는 건 그런 거예요. 세상이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거드름을 피우며 일장 연설) 현대의 역사는 쓰레기 생산의 역사죠. 자본주의가 승리함에 따라서 더 많은 쓰레기가 생겨요. 소비자들은 더 빨리 상품을 소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기를 요구받죠. 모든 상품이 마치 버려지기 위해 생산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간의 삶은 점점 쓰레기가 되고 있어요.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아무런 역할도 담당하지 못하고 과잉, 잉여, 초과 인구가 되니까요. 당신처럼요. 말 그대로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가 되는 일만이 남은 거죠. 이게 당신의 미래예요. 이게 인간쓰레기의 미래죠. 예전 사회는 사람들을 질서정연하게 통합하는 데 열중했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추방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단 말이에요. 그게 우리가 인적자원재활용센터를 만든 이유예요. 사람들을 골라내서 추방해야 하니까. 사회는 더 발전하고 좋아질 거예요. 법과 정치, 경제에서 인간쓰레기들이 배제돼면 말이죠. 사회는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당신 없이도 잘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당신에게 남은 미래는 단 두 가지, 재활용센터로 가든지 폐기처분되든지뿐라는 걸. 인간은 자원이니까. 당신은 쓸모를 다한 인적 자원 일뿐이에요. (스스로 감탄하며) 나 쫌 멋있지 않아요? 이건 신입사원교육 할 때 다 외워야 되는 거예요.
    여자 : 완전히 세뇌 당했구나. 10년 전의 너는 적어도 비판 능력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멍청이가 됐잖아? 하긴 10년 동안 한 일이라곤 길에서 사람들 잡아오는 일밖엔 없었을 텐데, 멍청이가 안 됐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너도 또 다시 버려질 수 있어! 니가 그렇게 맹신하는 그 시스템은 지금 당장 안전하다고 해서 널 특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 팀장 : 아, 멍청이라니, 이 여자가 보자보자 하니까. 말을 막하네. 난 무결점 한 팀장. 신입이들의 우상이라니까. 난 그리고 10년 동안 수집요원만 하지 않았거든요? 7년만 했거든요? 3년 전부터는 심사관이에요, 이거 왜 이래.
    여자 : 등신.
    한 팀장 : 아, 또 등신이래. 이 여자가 진짜! 난 멍청하지 않대도! 난 이해한 거야. 똑똑한 머리로~ 세상의 순환논리를 말이에요. 시스템은 변하지 않을 거거든. 그 속에서 뒤쳐지지 않고 잘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요. 그리고 우리는 이 쓸모없는 대화를 끝내고 심사를 계속할 겁니다. 내 생각에 그쪽은 폐기처분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여자 : 폐기처분이라니! 지금 날 무인도에 가져다 버리겠다는 거야?
    한 팀장 : 그쪽이 나를 멍청이, 등신이라고 해서 기분 나빠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이래봬도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개인적인 감정으로 심사하진 않는다니까요? 이런 게 바로 프로페셔널한 심사 능력이죠. 아, 그렇게 어이없는 눈으로 보지 마요. 더 이상 나빠질 기분도 없으니까. 진짜 공개심사만 아니었어도 내가. 암튼 당신 같은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는 재활용센터에 가도 문제예요. 소란만 피울 테니까, 이렇게. 하루에도 밀려오는 인간쓰레기들이 너무 많아요. 재활용 대상도 이제 경쟁이 심하다고요. 쓰레기에도 급이 있거든요. 특히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고품격 전략에 따라 보다 엄격하게 질 좋은 쓰레기들을 고른다고요. 따라서 굳이 그쪽 같은 사람까지 재활용시킬 필욘 없는 것 같아요. 고로, 그쪽은 폐기처분! 심사 끝! (종이에 뭔가 적고는 여자에게 건넨다.) 이거 들고 나가시면 돼요
    여자 : 난 인간쓰레기가 아니야. 폐기처분 대상자도 아니야! 너희는 나한테 이럴 자격이 없어! 없다고!
    한 팀장 : 아우 시끄러. 머리가 다 뎅뎅거리네. 그쪽 때문에 감기가 더 심해질 것 같아. (무대 밖으로 소리친다.) 심사 끝났어요! 이 여자 데리고 나가요~ 어서~ 빨리~

 

      (무대 암전. 무대 조명 들어오면 김 부사장, 카트에 장난감 상자처럼 생긴 똑같은 상자 4개를 싣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와 남은 교육을 진행한다.)

 

    김 부사장 : 심사과정은 잘 보셨나요? 이곳에는 별별 쓰레기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나곤 하죠. 그래도 저희 회사는 아주 엄격하게 재활용될 대상들을 선별한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의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회사만큼 많은 양의 쓰레기를 폐기처분하는 회사도 드물죠. 다른 곳은 어떻게든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려고 난리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답니다. 좋은 쓰레기들만을 재활용시키죠. 그래야 상품 가치가 높아지니까요. 자, 이제 재활용되는 인적자원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궁금하실 겁니다. 짧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부사장, 카트에 싣고 온 상자를 잘 보이게 일렬로 세워둔다. 상자 안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작업복을 입은 마루인형이 하나씩 들어 있고 각각 다른 네임텍을 달고 있다. 〈동원인〉, 〈노동인〉, 〈운영인〉, 〈임상인〉이다.)

 

    김 부사장 : 저희 회사는 재활용되는 쓰레기를 재생인간이라고 부르는데, 재생인간은 4가지 분야로 나뉩니다. 이건 저희 회사에서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특별 제작한 재생인간 박스입니다. 한눈에 봐도 파악이 되시죠? 그래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을 해 드리자면, 첫 번째로 이용 가능한 재생인간은 동원인입니다. 각종 행사와 정부 사업에 동원되는 인력을 제공하는 재생인간이죠. 세상에는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수많은 사업들이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되는데, 온라인에 동원되는 재생인간들은 소셜 마케팅 분야라고 해서 댓글작업을 주로 하게 됩니다. 잘 아시죠? 오프라인 동원인은 행사를 원활이 치를 수 있도록 박수 및 환호성을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동원인은 재활용 센터에서 가장 좋은 수입원이죠. 두 번째로 이용 가능한 재생인간은 노동인입니다. 대부분 건설 현장이나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재생인간이죠. 그래서 노동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정한 체력검사가 필수입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아주 튼튼하고 성실한 노동인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분류되는 재생인간은 운영인인데, 운영인은 직접적으로 재활용사업의 수입원이 되지는 못합니다. 운영인은 재활용센터 내에서 청소와 빨래, 식 사제공을 하는 재생인간이죠. 그래서 최소한의 인적 자원만 운영인으로 분류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용 가능한 재생인간은 임상인입니다. 임상인은 각종 임상실험의 대상자로 활용되는 재생인간인데요. 신약 개발과 심리연구 대상자로 나뉘어서 활용됩니다. 따라서 임상인으로 분류되기 위해선 건강상태가 양호해야 하고 심리검사도 통과해야 합니다. 저희는 이렇게 4가지 분야로 재생인간을 분류해서 고객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지만 인적자원재활용센터에서 인간쓰레기를 어떻게 재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습니다. 앞으로 더 창의적인 분야로 인간쓰레기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그런 게 창조경제니까요. 참 매력적인 사업이지 않습니까? 앞으론 해외 인간쓰레기도 수입해오는 날이 올 거예요. 세계적으로 재활용할 인적자원은 널렸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명실공이 다국적 기업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적인 인적자원재활용센터가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면 정말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많은 분들이 재활용 사업에 대한 긍정적 비전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하루 빨리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겁니다.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고 돌아가시죠. 재활용은 국가의 힘이다. 아, 아니죠. 따라해 보세요. 리~사이클~ 이즈 파~워 오브 스~테이트~! 네, 좋습니다. 모두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무대 위에 뛰어서 등장하는 한 팀장)

 

    한 팀장 : 부 사장님, 교육이 모두 끝난 겁니까? 에이, 신입이들한테 아직 들려줄 얘기가 많았는데 말이죠. 좀 전에 심사를 받은 여자가 하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버티는 바람에 수집요원들을 도와 함께 쓰레기차에 싣고 오는 길입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부사장 : 수고했어요, 한 팀장님.
    한 팀장 : 수고는요, 무슨. 제 할 일을 한 건데요! 하하핫.
    김 부사장 : 그런데 한 팀장님, 정말 10년 전에 인간쓰레기로 수집됐었어요?
    한 팀장 : 아니요? 절대 아니죠! 그 여자가 헛소리를 지껄인 거예요. 저는 언제나 변함없는 재활용 산업의 살아 있는 전설, 무결점 한 팀장입니다. 설마 인간쓰레기인 그 여자, 아니 이제 폐기처분까지 된 확실한 쓰레기가 한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죠? 에에취.
    김 부사장 : 기침이 심하네요. 한 팀장님.
    한 팀장 : 아, 부사장님도, 조심하십시오. 이번 감기가 너무 독합니다. 저도 벌써 한 달째 감기가 낫질 않네요. 에이, 독한 감기.
    김 부사장 : 인간쓰레기는 원래 열성인자라서 여러 모로 부족한 데가 많죠. 그래서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저급하고, 저렴해 보이곤 하죠.
    한 팀장 : 네?
    김 부사장 : 열성은 날고 기어봐야 열성이니까. 쓰레기에도 급이 있는 건데 말이죠.
    한 팀장 : 부사장님, 그게 무슨 말이시죠?
    김 부사장 : 한 팀장님, 감기가 나을 때까지 출근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한 팀장 : 아닙니다! 부 사장님! 제가 없으면 당장 심사관이 한 자리 비고, 그만큼 할 일이 쌓이잖습니까! 전 괜찮습니다! 감기일 뿐인걸요!
    김 부사장 : 한 팀장이 출근하지 않는다고 할 일이 쌓이지 않아요. 이번에 뽑은 신입사원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런 걱정을 해요.
    한 팀장 : 하지만, 신입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인걸요. 저만큼 오래 일하지 않았고, 저만큼 잘하지도 못할 거예요!
    김 부사장 : 그래도 신입사원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뽑힌 능력자들인 걸, 이번 신입사원들은 딱 봐도 귀티가 철철 흘러요.
    한 팀장 : 제 눈엔 별로, 그래 보이진 않는데요. 아무튼, 그리고, 부 사장님! 저는 인간쓰레기가 아니었다니까요! 정말이에요! 그 여자가 헷갈린 거예요! 
    김 부사장 : 그래요, 누가 뭐래요?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난 그저 한 팀장이 감기가 심한 것 같으니 쉬라는 거예요.
    한 팀장 : 제 말을 믿으시는 거죠? 전 정말 그 여자를 몰라요. 본 적도 없어요! 그리고 전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아시잖아요!
    김 부사장 : 그래요, 알아요. 그러니까 좀 쉬라는 거예요. 독감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옮기면 민폐잖아요. 기침하고 돌아다니면, 우리 회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도 별로 좋을 것 같지 않고요.
    한 팀장 : 감기랑, 고급스러운 이미지랑 관계가 있나요?
    김 부사장 : 그럼요, 세상 모든 것은 다 관계가 있죠. 관계없는 건 없어요.
    한 팀장 : (곰곰이 생각하다) 그럼, 감기가 나으면 다시 출근하라는 얘기신 거죠?
    김 부사장 :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죠. 이만 퇴근하세요.
    한 팀장 : 하지만, 부사장님. 저기 저 슬로건을 바꾸라고 하셨잖아요. 일이 다 끝나면, 더 고급스럽게 영어로요!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김 부사장 : 그건, 한 팀장님 말고 다른 사람을 시키도록 할 테니 걱정 말아요. (무대 퇴장하며) 한 팀장님은 그냥 퇴근하세요.
    한 팀장 : (따라가며) 잠시만요. 부사장님. 감기만 나으면 되는 거죠? 감기 때문인 거죠? 에에취. 이 빌어먹을 감기. 부사장님. 감기만 나으면 다시 출근하면 되는 거죠? 그렇죠?

 

      (김 부사장을 따라 한 팀장 퇴장하면, 무대 위에는 재생인간 박스 4개만이 남는다. 무대 서서히 암전.)

 

 

 

< 선정평 >

 
    청년 백수와 실업문제의 사회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고, 사회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메시지의 희극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작품의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 점이 돋보였다. 재활용 폐기물의 처리과정을 실업 및 실직자의 폐기과정에 비유하는 아이디어가 참신했으며, 만연된 실업 및 고용불안 상태에서 인간의 비판능력 자체가 거세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실직 및 경제 위기의 문제를 다룰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개인적인 해결방식을 넘어서고 있는 점에서 동시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적 발언이 매우 분명한 점도 믿음직했다. 그리고 실제로 공연되었을 때 무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언어적인 힘을 가진 것도 이 작품의 장점으로 판단되어 선정하게 되었다.
 
    (김옥란 / 연극평론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기쁨과 동시에 딱 그만큼의 걱정이 함께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역시 기쁘고 고맙습니다. 올해의 마지막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온 소식이라서 마음이 더 따뜻한 것 같네요.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올 봄, 오래된 꿈과 버려진 상상, 그리고 모험이 가득한 곳으로의 ‘고물섬’이라는 희곡을 쓰고 있었습니다. 절반정도 썼을 무렵, 뉴스에서 세월호 사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고물상을 소재로 삶의 희망을 써보려 했던 글은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멈춰버렸고, 같은 시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책을 읽고는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는 이야기 대신 쓸모없는 사람을 버리는 사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글을 쓸 때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 ‘두 번째 달’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듣습니다. 늘 항상의 설렘과 벅차오름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라 지치고 힘들 때 자주 듣곤 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두 번째 달’의 모든 멤버분들께 힘든 세상에도 꿈꿀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애정 어린 인사를 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네요.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제일 먼저 제 글을 읽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맞춤법도 체크해 주고 문장도 바로잡아 줍니다. 무엇보다 긴긴 소감과 함께 냉정한 평가도 해주고 있습니다. 잠시 한국을 떠나 있어서 이 글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 친구의 평을 듣지 못해 조금 더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제게 진심어린 격려를 전하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고맙다, 영아.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쓰고 싶은 주제가 생각나면 제목과 간략한 메모만으로 그때, 그때 저장해둡니다. 그렇게 모인 주제들이 이제 20개를 훌쩍 넘어간 것 같습니다. 살면서 그 글들을 모두 완성하는 게 제 바람이지만 과연 글이 모두 쓰여질까 하는 의구심을 항상 가지고 삽니다. 언제고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까지만, 그때까지만 제가 지치지 않고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올 여름에 남산희곡페스티벌에 참가했던 ‘마트로시카’의 두 번째 이야기 ‘상자밖의상자’가 퇴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내년에는 점, 선, 면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3가지 다른 버전으로 써보고자 합니다. 희곡보다는 소설이 될 확률이 높지만 전혀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허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곡도 소설도 시나리오도 혹은 논문이어도 그것이 글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형식에 상관없이 그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겐 함께 걸어갈 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회가 제게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선물한다면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믿어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가라, 2014년.

 

 

박신수진 (극작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14년 네 번째 남산희곡페스티벌 〈마트로시카 : 인형안의 인형〉

 

 

   《문장웹진 2015년 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