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노트]한겨울 중앙 공원의 오리들은

 

[ 편집위원 노트 ]

 

 

한겨울 중앙 공원의 오리들은

 

 

김미월(소설가, 본지 편집위원)

 

 

 

 

 

    해마다 1월이면 오래전의 어느 1월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 저는 얼치기 여행자로서 뉴욕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아서 해가 저물면 코딱지만 한 방에서 잠을 자고 해가 뜨면 무작정 거리로 나가 쏘다녔지요. 특히 자주 갔던 곳이 센트럴파크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중앙 공원’쯤 될까요. 영화 「러브 스토리」와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아이스링크, 「뉴욕의 가을」에서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가 거닐던 낙엽 쌓인 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해리와 샐리가 산책하던 단풍 물든 숲, 존 레논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스트로베리 필즈, 그 모든 것이 맨해튼 한복판 그 공원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조깅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대화를 나누고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마일!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공원에는 숲이 있고 자전거 도로가 있고 동물원이 있으며 스케이트장과 노천극장과 음악당, 체육 경기장, 미술관, 어린이 놀이터, 분수대 등등 없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곳에서 저는 무엇을 했느냐고요? 저는 그 모든 것을 ‘관찰’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오솔길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흐느끼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저도 찔끔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옆에서 누가 울면 같이 따라 울고 싶어지는 것일까 하고요.
    어느 날엔가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제가 코앞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읽는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이렇게 추운 날 왜 하필 밖에서 책을 읽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 저는 보았습니다. 호수 위에 오리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었으나 제 마음은 싱숭생숭했습니다. 이 장면,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으므로 저는 일없이 오리들의 수를 셌습니다. 모두 스무 마리였습니다. 두 번째로 셌을 때는 열아홉. 세 번째는 열여덟. 셀 때마다 한 마리씩 사라져 버리는 오리들이 걱정되어 셈을 멈추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지요.
    “센트럴 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아시나요?”
    아, 그것은 홀든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에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J. 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출간 직후에는 금서였으나 훗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존 레논을 총으로 저격한 채프먼이 체포되기 직전에 읽고 있던 것으로 더 유명해진 책. 그 책의 주인공 홀든이 염려했던 오리들이 바로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차가워졌습니다. 저는 공원을 나왔습니다. 그를 생각했습니다. 호밀밭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던 열여섯 살 소년. 한겨울 연못의 오리들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던 그가 견뎌내기에 세상은 너무나 실용적이었겠지요. 세탁기나 휴대폰 충전기나 변압기처럼 그저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을 테지요.
    순간 노란 택시 한 대가 제 앞에 와 섰습니다. 저는 충동적으로 그것을 탔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운전사의 눈빛이 선량해 보였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홀든을 흉내 내보고 싶어졌습니다.
    “저, 혹시, 센트럴 파크의 오리들이 호수가 얼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운전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습니다.
    “그야 물론 얼지 않은 호수로 가겠지요.”
    그리고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 어디로 가느냐고요. 하기야 그는 센트럴 파크 연못의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보다 제 차의 승객이 어디로 가는지가 더 궁금했을 것입니다.

 

    제가 내린 곳은 타임스 스퀘어였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새해의 들뜬 분위기에 휩싸인 인파 속에서 그날 제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기억합니다, 홀든의 질문을 떠올리며 혼자 걸었던 그 거리를.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대학에 가려면? 승진을 하려면? 남들보다 잘나려면 혹은 잘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상의 모든 쓸모 있는 질문들 사이에 외롭게 던져진 홀든의 쓸모없는 질문이 주었던 여유를, 그 특별한 위안을.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이지 호수가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자, 쓸모없는 질문에 이어 쓸모 있는 소개글 덧붙입니다. 2015년 《문장 웹진》의 첫 호를 근사하게 열어 준 작가들에 대한 소개지요.
    소설가 이영훈, 오현종, 김희진 세 분과 시인 이진명, 양안다, 서효인, 정선율, 김행숙 다섯 분이 정월의 추위를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뜨겁고 단단하고 돌올한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에세이테라스에는 조재룡 평론가의 세 번째 산문 '사랑, 같은 소리'가 실렸습니다. 사랑에 대한 냉소적이면서 이지적인 저자의 시선이 독자의 가슴을 쿵 울리고 지나갑니다. 네 번째 산문, 다섯 번째 산문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기획 특집 '나는 왜' 코너에는 성동혁 시인을 모셨습니다. 질문도 대답도 모두 시 같은 좌담, 여섯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아프지만 환하고 투명한 이야기,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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