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그녀들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그녀들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

― 김연희의 「너의 봄은 맛있니?」를 읽고

 

 

박진(문학평론가)

 

 

 

 

 

    차세대 소설 선정작을 소개하는 이 코너에는, 이번에 선정된 「너의 봄은 맛있니?」이외에도 김연희의 소설이 세 편 더 올라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의 고군분투를 흡혈귀 이야기와 엮어놓은 「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사람」(2013년 1차 선정작), 쌍둥이 엄마의 정신없는 일상과 그 속에 잠복된 또 다른 욕망을 그린 「블루테일」(2013년 3차 선정작), 그리고 상류층 여중생들을 ‘케어’하는 이상한 알바에 묶여 있는 여대생의 이야기인 「+김마리 and 도시」(2014년 1차 선정작)까지. 이 소설들을 나란히 함께 읽으면, 착실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낸 신인작가 김연희에게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갖게 된다. 제각기 개성 있고 흥미로운 한 편 한 편이 어떻게 ‘김연희 소설’로 한데 묶일 수 있는지, 그 연결고리가 언뜻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직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김연희의 소설을 가로지르는 공통된 키워드를 꼽는다면 일단 ‘여성’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김연희는 나이도 처지도 다른 여러 여성인물들이 저마다 부딪히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갈등들을 묘사하면서, 그들을 구속하는 삶의 굴레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안타까움이나 공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물론이고 초연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조차(「+김마리 and 도시」의 여중생들과 그들의 열성 엄마들에 대해서처럼),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그 속에 얽힌 이런저런 모순들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이를 통해 김연희의 소설은 여성적 삶의 현실적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는 듯하다. 청춘의 방황과 쓰린 성장담의 성격을 띠는 「너의 봄은 맛있니?」 역시 여성 성장소설이라는 범주 안에서 읽을 때에야 그 의미가 온전히 밝혀질 수 있다.
    「너의 봄은 맛있니?」는 위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고전적이고 단정한 편에 속하며, 새로움보다는 친숙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두 여대생은 2000년대 학번으로 짐작되지만, 문화적 취향이나 감수성 면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CD 플레이어와 MP3, 노트북 컴퓨터와 로터리식 TV가 공존하는 대학가 자취방은 특정 시대를 가리키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젊은 날’을 환기시키는 은유적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봄의 맛”으로 표현된 “독초가 움트는 것처럼 쓰고 떫은 맛”은 어느 세대에게나 각인된 청춘의 인상이라 부를 만하며, 그것이 실연의 아픔으로 구체화된 모습 또한 청춘소설의 보편적인 양상을 띤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독특하다면 그것은 두 주인공의 갈등과 모색이 지닌 여성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나’와 여경에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자들의 삶을 옭아매는 기존의 굴레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녀들이 남자친구와 결별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입사식 또는 통과제의처럼 낙태수술을 경험하는 여경은 수술 직후 장 선배와 헤어지는데, 장 선배는 “임신했다고 말하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아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여경이 유학을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여경이 유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던 남자다. “임신해서 결혼하고 싶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낳고 싶지”도 않았던 여경은 장 선배와 상의도 없이 수술을 한 뒤 곧장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런 여경에게 ‘네가 무섭다’며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은 장 선배이고 여경은 그와의 이별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이별은 그녀가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한편 ‘나’는 사사건건 ‘처음’에 집착하는 도현에게 단호히 결별을 고한다. 도현은 ‘나’에게 그녀가 첫 키스 상대이자 “첫 여자”임을 수시로 강조하고, 선물마다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결정적으로 ‘나’는 도현이 선물한 박하사탕 유리병 속에서 그가 비닐에 싼 채 고이 넣어둔, 어릴 적 “최초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발견한다. “니가 죽어 땅에 묻힐 때 관에 넣고 싶”다는 쪽지와 함께. ‘나’는 “내 인생을 저당 잡힌 느낌”에 “숨이 막”혀서 “몸서리”를 치며 이별을 결심한다. 여경이 그랬듯 ‘나’ 역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모색의 과정에서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장 선배와 맞섬으로써 여경이 깨뜨리려 한 것이 ‘모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그로 인한 억압이었다면, 도현과 헤어짐으로써 ‘나’가 떨쳐내고 싶어 한 것은 아마 지긋지긋한 ‘순결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나’에게 도현이 ‘첫 남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여전히 “배반의 역사”와도 같은 자신의 “첫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처음’이 주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이런 심리는 ‘흰색’에 대한 도현의 과도한 애착과, 이에 반발하듯 흰색을 강박적으로 회피하는 ‘나’의 모습에도 투영돼 있다. 흰색 옷만 선물하던 도현과 “흰색 옷을 입으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져서 싫”다는 이유로 “선물 받은 옷을 한 번도 입지 않”은 나, “나의 이불이 하얘서 내 방에서 자고 간다고 말할 정도로” 흰색 이불을 마음에 들어 해서 옷을 벗은 채 “하얀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곤 하던 도현과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조금 외로웠었다”고 고백하는 나. 도현과의 이별은 ‘나’에게 있어 이 불편하고 꺼림칙한 ‘흰색’들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도현이 뒤집어 들고 흔든 파인애플 상자에서 떨어진 박하사탕 유리병은 어떻게 되었을까. 멀쩡할까? 깨졌을까? 나는 유리병이 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하얀 박하사탕이 눈 녹은 길바닥에 흩어져 더럽혀지고 부서지기를 원했다. 갑자기 혀에서 독초가 움트는 것처럼 쓰고 떫은맛이 번졌다. 어쩌면 이게 봄의 맛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쓰디쓴 맛을 기꺼이 삼키며 여경의 고모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도현이 선물했던 “새하얀 박하사탕이 눈 녹은 길바닥에 흩어져 더럽혀지고 부서지기를 원”한다는 ‘나’의 말은 더 이상 ‘순결함 대 불결함’, 또는 ‘온전함 대 훼손됨’ 같은 경직된 틀로 스스로를 옭죄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보인다.
    「너의 봄은 맛있니?」에서 김연희는 청춘의 방황과 성장의 시련이라는 보편적 주제 가운데서도 특히 여성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여성의 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결국 임신공포증과 순결 콤플렉스 정도로 축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여주인공의 불안과 두려움이 소설적 실감을 지니고 있다면, 거기에는 여성의 삶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 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시골 조부모네 동네에서 “친자매”와 다름없이 자란 ‘나’와 여경 사이의, 자매애에 바탕을 둔 여성적 우정이다. ‘나’는 여경의 “통곡”을 들어주고 병원에서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주며, 도현의 “애처로운 눈길”을 뒤로 한 채 이별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들이 이렇듯 함께 있고 서로를 따뜻이 보살피는 한, 봄의 “쓰디쓴 맛을 기꺼이 삼키며” 좀 더 성숙하고 자율적인 삶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너의 봄은 맛있니??라는 이 소설의 제목은 어쩌면 세상의 더 많은 ‘자매’들에게 김연희가 묻는 다정하고 진심 어린 안부일지 모른다.

 

 

 

 

작가소개 / 박진(평론가)

저서로 『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공저), 『문학의 새로운 이해』(공저) 등이 있고 평론집 『달아나는 텍스트들』이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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