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상 속의 ‘린치’

 

[2014년도 차세대 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리뷰 ]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상 속의 ‘린치’

― 이승은의 「린치」를 읽고

 

 

박진(문학평론가)

 

 

 

 

 

    1막에 총이 등장하면 3막에는 그 총이 발사돼야만 한다고 말한 사람은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불리는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였다. ‘체호프의 총’으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여전히 플롯 짜기의 기본이자 금과옥조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베케트나 이오네스코라면 어땠을까? 1막에 총이 등장하고 3막에 그 총이 어김없이 발사되는 식의 구성은 너무 뻔해서 식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1막에 등장한 총이 내러티브 전체를 팽팽히 틀어쥔 채로 마지막까지 발사되지 않을 때, 그 답답한 불안과 긴장감이야말로 우리를 사로잡는 힘일 수 있다. 그 총이 끝내 발사되지 않거나 발사될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 속에 우리가 진정 돌아봐야 할 더 깊은 진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를테면…….
    여기, 무대 바깥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한 편의 부조리극이 있다. 한 쌍의 남녀가 무대 아래의 객석과 공연장 입구, 건물 일층 수유실 등을 오가며 대화를 나누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어쩐지 공허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제목으로 등장한 ‘린치’라는 말이 맥락도 없이 발산하는 기이하고 강렬한 에너지가 이들의 주위를 불안정하게 휘돌고 있을 뿐이다. 극 전체가 이렇듯 위태롭게 과잉 충전된 에너지 장으로 변환되는 사이, 돌연 ‘린치’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긴박한 예감이 몰려든다. 이윽고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지만, 결말에 이를 때까지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같은 결말 이후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뜻밖에도, 실망감이나 허탈함 따위가 아니라 암담한 슬픔 같은 것이다. 그 슬픔은 두 남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들처럼 우리 역시 절망과 불안 속에 내버려진 존재들이라는 비관적 인식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이승은의 「린치」는, 말하자면 그런 소설이다. 스토리를 재구성하거나 의미화하지 않은 채로도,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린치」는 또한 이 절망과 불안의 정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서사적 단서들과 의미소(意味素)들의 정교한 짜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미하게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윤희와 세현,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듬어가다 보면 실현되지 않은 상상 속의 ‘린치’가 이들에게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먼저 윤희의 경우, 남편 세현과 함께 뮤지컬 공연장을 찾은 그녀가 공연에 몰입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간 이유는 객석에서 “그 여자애”를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애”는 친절하고 싹싹했던 은행 여직원으로, 윤희에게 단기 채권 상품을 적극 추천했었다. 그녀의 설득에 마음을 바꿔 윤희가 삼천만 원을 투자한 채권은, 그러나 이내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작고 어린 여자애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윤희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 여직원이 객석에 정말로 있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윤희는 지금, 자신이 날린 삼천만 원과 그로 인해 더 불안해진 앞으로의 삶 때문에 극도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공연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유실로 내려가 휴식을 취하면서 윤희는 세현에게, 창구로 그녀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한다. 세현에게 그 지점으로 함께 따지러 가자고 말할 때마다 그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윤희는 또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현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윤희에게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그 여자가 자기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죄송하다고, 자기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며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고, “울면서 허리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계속 그 말을 했”는데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았”다고, “여자의 안색이 누렇고 눈두덩은 부어 있었다”고. 그녀가 자신보다 더 약하고 초라한 존재이며 그녀 또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상상)은 윤희에게 순간적인 쾌감을 줄 순 있어도 진정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윤희는 배우의 꿈을 접고 연기 선생님이 되어 알뜰하게 모은 소중한 돈을 헛되이 날린 데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은행 여직원에게 쏟아 붓는다. 그 여직원은 특정한 구체적 개인이라기보다는, 윤희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발산하는 익명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은행 여직원은 공연장의 안내 여직원이나 또 다른 ‘유니폼’을 입은 어떤 인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윤희가 세현에게 충동적으로 “그 여자를 이리로 끌고 와”라고 말했을 때 세현이 얼결에 위협한 사람은 흥미롭게도, 그들을 수유실로 안내하고 차를 대접한 공연장의 친절한 안내 여직원이었다.
    윤희의 꿈에서 자기 집 식탁 의자에 묶여 있던 여자가 “흘러내린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안 보였”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윤희의 고통은 은행 여직원에게 ‘린치’를 가한다고 해서 덜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투사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을 윤희의 분노는 어쩌면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일지 모르고, 윤희가 진정 벌주거나 탓하고 싶은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자기 잘못이 아니야”라는 세현의 말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보이는 윤희의 모습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자에 묶여 있던 꿈속의 여자는 후회와 자책의 고통에 단단히 결박된 그녀 자신이 아니었을까? 이 ‘린치’가 실행에 옮겨지기보다는 상상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편 연극배우인 세현의 경우, 그에게 이 ‘린치’는 그가 포기한 “진짜 연기”의 허망한 대체물이다. 세현은 고단한 연극배우의 삶에 “피로”를 느끼고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진짜 연기가 아닌 생계를 선택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인” 성형수술의 결과로 그의 얼굴은 “듬직한 인상에서 날렵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새 얼굴에 적응”하지 못했고, 새로운 배역의 오디션에 합격하지도 못하고 있다.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코를 세우고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친구 민호의 공연을 관람하는 일도, 그에게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한 손에 노끈을 친친 감은 채 안내 직원에게 그가 내뱉으려 한 대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라지 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그가 소리치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세현의 경우에도 특정 대상만을 향하지 않는 이 잠재적 분노는 두려움 섞인 자기모멸의 감정과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다.
    윤희와 세현은 서로를 지키고 위로하기 위해 애쓰지만 실은 점차 커져가는 불신과 오해, 불만과 원망의 감정을 겨우 숨기고 있다. 그런 채로, 민호의 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꽃다발을 찾으러 가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끝내 실현되지 않는 상상 속의 ‘린치’처럼, 우리도 무엇을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불안과 답답함은 실존적인 삶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결국 자책과 자괴감으로 귀결되는 이 불행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는 순간, 모호하고 매혹적인 한 편의 부조리극은 생생한 비극으로 탈바꿈한다. 잠에서 깨어나도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말이다.

 

 

 

작가소개 / 박진(평론가)

저서로 『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공저), 『문학의 새로운 이해』(공저) 등이 있고 평론집 『달아나는 텍스트들』이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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