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있어

 

 

거기에 있어

 

 

 

임현

 

 

삽화-거기에-있어

 


 

 

 

    1

 

    가능한 먼 곳으로 가기로 했다.
    무영의 제안에 마음이 크게 동한 것도 아니면서 은우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래, 우리에게도 그런 게 좀 필요했지. 잘 생각했어. 나야 아무데라도 괜찮아. 가자, 어디든. 그렇게 말은 해두었지만 적어도 두어 달은 족히 걸리지 않겠냐 싶었다. 알아보고 계산하고 고민하고 갈까 가지 말까 그러다 귀찮아져서라도 다음에는 꼭 가자,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무영이 이렇게까지 빨리 결정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반나절 만에 옷 꾸러미를 챙기는 무영의 등을 보며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벌컥 화가 치밀었다. 사무실에 미리 말은 해두어야 할 것 아니냐, 모레가 공납금 내는 날이다 저렇게 꽉 찬 냉장고를 두고 어딜 가겠다는 거야, 한번 봐라, 그동안 다 상해서 처리하는 데만도 수월찮게 손이 들 거다, 그걸 다 언제 할 참이야,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보라니까. 무슨 말을 해도 묵묵부답인 무영이 가방 속에 수건 세 장, 포장된 새 양말 일곱 켤레, 칫솔과 치약, 여름 티셔츠와 입기 편한 바지 세 벌씩, 쓸모가 모호한 잡동사니, 거기에 오리털 파카까지 담았다. 가방의 부피로 보건대 무영은 확고했고 그것을 뒤엎기에는 은우의 변명이 구차했다.
    운전석에 앉아 은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영이 트렁크에 짐을 하나씩 실을 때마다 차체가 기우뚱 흔들렸다. 미등을 켠 자동차들이 골목 안으로 차곡차곡 들어섰다. 돌아가는 게 목적이라면 모를까 어디론가 새로 출발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무영의 마음을 돌리기에 이미 늦은 것 같다고 은우는 체념했다. 고쳐먹어야 할 마음이 있다면 자신의 몫일 거라고 스스로를 반성했다. 사이드 미러에 왼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오는 무영이 비쳤다. 못 이기는 척, 차에서 내린 은우가 묵직한 짐을 건네받았다. 그녀가 웃자 무영의 오른쪽 의수가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2

 

    한 해 전, 신혼여행을 떠난 그들에게 사고가 있었다. 한적한 산간도로였고 야생동물의 출몰을 알리는 표지판이 구간마다 세워진 곳이었다. 주의문구보다는 사슴과로 보이는 음영된 동물 그림에 은우는 더 눈길이 갔다. 바닥을 박차는 그것의 역동적인 자세 때문에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나선 도로를 한 바퀴 돌았다고 생각될 때마다 표지판은 다시 나타났다. 특별히 야생적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실재하지도 않은 것을 이용해 두려워지게 만드는, 일종의 경고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은우는 무서웠다. 무영이 지금보다 더 속도를 높인다면 차체가 도로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경사면을 따라 울창한 숲이었다. 무영의 무릎에 은우는 왼손바닥을 올렸다. 경고가 아니라 위로의 차원이었다. 이제 다 지나갔어. 손바닥이 무릎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자 딱딱하게 움츠렸던 무영의 근육들이 조금씩 힘을 풀었다. 대신 은우의 작고 하얀 손을 움켜쥐었다. 이만 하길 다행이야. 괜찮아, 우린 이제 무사하잖아. 은우는 그렇게 말하며 불룩해지는 무영의 어금니를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소리 나게 내려치는 무영의 묵직한 팔을 붙잡았다. 운이 좋았던 거야. 붙잡은 아귀에 힘을 주며 되도록 침착하게 무영을 달랬다. 폭우가 쏟아졌던 전날과는 다르게 전면 유리로 들이치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꺾어지는 각도가 급해서 뒤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토사가 흘러내려 곳곳이 장애물이었다. 주의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도로였다. 그럼에도 무영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내리막길에 가속을 붙여 달렸다. 마침내 낙석을 밟은 바퀴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은우였다. 싱싱한 향나무 기둥에 코를 박고 퍼진 차 안이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경계 지으며 굵은 나뭇가지가 앞뒤로 관통하고 있었다. 은우는 자신의 바로 코앞까지 뻗친 잔가지를 훑어내며 무영을 불렀다. 대답 없는 무영 대신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이 지난 자리마다 익숙한 감각들이 차례대로 돌아왔다. 차량 어딘가에서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를 들어 올릴 수는 없었으나 발가락은 꿈틀거릴 수 있었다.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표피가 딱딱한 벌레가 은우의 얼룩진 목덜미를 타고 턱을 향해 기어올랐다. 허벅지를 타고 뜨겁게 무언가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무영을 불렀다. 간신히 팔을 움직여 닿는 대로 더듬고 흔들었다. 무영인 줄 알고 붙잡았는데 향나무 가지였다. 꺾어내려고 힘을 쓰는데 공중으로 가볍게 딸려 올라왔다. 진짜 무영의 팔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의사의 말로는 그랬다. 출혈이 많아 자칫 위험할 뻔했다. 떨어져 나간 팔을 복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둔 수술이었다. 차선책으로서 최선이었다.
    은우는 자신의 온전한 희생으로 무영이 회복되길 바랐다. 당신은 잘 해낼 거야. 내가 있잖아. 그것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기도 했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별다른 외상이나 후유증이 없었던 탓에 가진, 미안함일 수도 있었다. 무리하다 싶을 만큼 은우는 간호에 열심이었다. 의무감 같은 불순한 감정이 들 때마다 자신을 더욱 혹사시켰고 이것은 온전히 우리의 문제이며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라고 마음 깊숙이 새김질했다. 그럼에도 돌본다는 행동이 주는 우월감은 어쩔 수 없었다. 은우는 되도록 무영에게 그것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배려와 동정을 구분했다. 무영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대로 두었다. 왼손으로 집는 서툰 젓가락질을 보고도, 먼저 부탁하기 전까지 일부러 모른 척했다.

 

    무영은 빠르게 회복했다. 본래의 쾌활함을 되찾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은우는 무영의 낙천적인 성격을 믿었다. 퇴원을 한 달여 앞두고 서두른 것은 무영의 결정이었다. 의사의 형식적인 만류와 경고는 무시할 만한 정도였다. 석 달이 넘는 병원생활이었다. 지칠 만한 시간이었으므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은우도 동의했다.
    무영은 집의 모든 세간을 낯설어 했다. 애당초 돌아간다는 말이 어색한 신혼집이었다. 함께 고르고 배치한 가구들을 무영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식탁의 문양을 지적했고 침대의 규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순전히 그의 고집으로 구입한 응접용 삼발이 탁자를 처음 보는 물건인 양 굴었다. 은우는 무영의 머리 어딘가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닐 테지만 사소한 기억 몇 가지를 잃어버린 거라고 진단 내렸다. 무영은 이제 막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거실과 부엌, 보일러실 겸 다용도실, 베란다, 서재, 욕실, 안방을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조도가 다른 공간에서 무영은 그때마다 다른 빛깔로 비쳤다. 그중에서도 유독 밝은 색깔의 의수는 누가 보더라도 가짜처럼 보였다. 은우는 그때 억누를 수 없이 뜨거운 무언가가 목 안에서 불쑥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을 수 없어서 무영의 넓은 등을 바투 끌어안았다.
    걱정 마. 우리는 잘 될 거니까.

 

    3

 

    은우가 새로운 직장을 얻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검증된 포트폴리오였고 알음알음 추천을 받아 지원한 곳이었다. 대형 업체들이 주도하는 광고업계에서 규모에 비해 보수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평판이 긍정적인 곳이기도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대체로 평이한 면접 끝에 받은 마지막 질문이었다.
    예정된 합격이었던 터라 미리 축하라도 해둘 겸, 무영은 결혼 전에 두어 번 가 두었던 프랑스식 레스토랑으로 은우를 불러냈다. 면접을 막 마치고 나온 은우는 들뜬 모습이었다. 크림소스를 부은 홍합을 벗겨 무영의 접시 쪽으로 옮겨 담으며 당신이라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은우가 물었다.
    스푼을 의수에 고정시킨 무영은 서툴게 면을 말아 올리는 중이었다. 느리고 침착한 동작이었다.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행동일수록 어색함을 금방 들키는 법이라고 은우는 생각했다. 그때 무영이 대학교 때 잠시 사진 동아리를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거기서 알던 선배의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은우는 자기 쪽으로만 수북이 쌓인 홍합 껍데기를 정리했다.
    아무도 없을 때 부숴버렸지. 아침저녁으로 선배 자취방 앞에 들러서 확인했어. 결국엔 일주일 만에 쓰레기 더미에서 그걸 찾았어.
    은우는 다문 홍합 사이로 비집어 넣던 포크를 내려놓고 소리 나게 웃었다. 주변의 시선이 몰려서 입을 틀어막고 계속 웃었다.
    역시, 당신다워.
    오랜만이었다. 무영다운 무영을 보는 것이 은우에겐 무엇보다 반가웠다. 완전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무영이 원하는 대로 은우는 돌아오는 주말에 도배를 하기로 했다. 은우와는 달리 무영이 다시 여행사에서 일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 날엔가는 예정보다 통지가 늦어져 자신보다 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은우를 향해, 딱히 쓸모가 없더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나은 것 아니냐고 무영이 의수를 흔들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은우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이후로 무영은 구직을 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드물게 들어오는 번역 일에만 매진했다. 대부분은 한두 주 내로 끝낼 만한 일들이었으나 무영은 부러 마감일을 간신히 맞춰 넘기곤 했다.
    무영이 도배를 제안한 것은 번역의뢰마저 끊긴 채 한 달을 보낸 뒤였다. 벽지는 멀쩡했다. 점성 없이 허물어지는 곳도, 눈에 띄는 얼룩도 없었다. 그럼에도 은우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잊어버리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새로운 프로젝트가 그 주에 갑작스럽게 잡히지 않았더라면, 해서 야근도 부족해 주말을 반납하고 출근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은우는 분명 무영을 도왔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무영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바빴고 돌아와 쓰러지듯 잠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어두운 거실에는 현관 센서 등으로 일그러진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잠들었을 무영을 깨우지 않으려 은우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씻은 뒤, 벌거벗은 몸 그대로 익숙한 동선을 따라 침대에 누웠다. 뒤척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어 길고 튼튼한 팔뚝이 은우의 목 아래로 파고들었다. 나 때문에 깬 거야? 은우는 무영의 몸에 바짝 다가가 끌어안았다. 엷은 땀 냄새가 맡아졌다. 뭉툭하게 아문 무영의 다른 팔을 쓰다듬으며 몸 닿는 아무 곳에나 이마를 부벼댔다.
    가려워서 잘 수가 없어.
    언뜻 은우는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지친 하루였으므로 기다렸던 안락함으로 빠져드는 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별다른 대꾸도 없이 은우는 금세 엷은 코골이를 시작했다.
    안방이 어딘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휴대전화를 찾으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떻게 된 거야? 벽지는 어제까지의 타이드 민트가 아닌 하얀 바탕에 베이비핑크 도트무늬였다.
    은우는 그제야 무영과의 약속이 떠올랐지만 별다른 말이 없기에 난 다음에 할 줄 알았지, 묘하게 무영 탓으로 돌리며 변명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광고주로서도 업체로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특별히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진 성과물이 아니었음에도 은우는 이만 하면 성공적인 재기라고 자족했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대상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원망하던 시절이 농담처럼 기억되었다. 격려와 축하가 한창이던 술자리를 은우는 이르다시피 나서려 했다. 대부분이 말렸고 과장되게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무영이 보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간단한 식자재와 참외를 골랐다. 제철이 아닌 과일은 터무니없이 비쌌으나 은우는 개의치 않았다. 입안 가득 과육을 우물거릴 무영의 식탐을 생각하면 기분 좋은 낭비였다.
    모든 것이 무영 덕분이었다. 무영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포기했을 법한 일들을 은우는 견뎌 왔다. 하루가 다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그를 지켜보며 온전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무영은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홀로 남은 집에서 청소를 하고 냉장고와 서랍을 정리했다. 비둘기색 스카프 못 봤어? 은우가 물으면 단번에 수납장 속에서 그것을 찾아 건네주었다. 어떤 날은 화분이 옮겨져 있었고 다른 날은 옷장 안의 배열이 달라져 있었다. 베고 누운 무영의 팔이 날이 갈수록 굵고 단단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은우는 그런 무영이 고마웠다. 살아 주어서 고마웠다. 살려고 해서 더 고마웠다. 뒤척이는 무영을 끌어안으며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은우 쪽으로 돌아누운 무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가려워서 도무지 잘 수가 없어.

 

    은우는 무영의 불면증이 조금 걱정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손등 위로 무언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무영이 내민 것은 맨들맨들한 팔꿈치만 남은 둥근 오른팔이었다. 어떻게 없는 것이 자꾸 가려운 걸까? 고민은 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무영을 놀래려는 심산으로 은우는 초인종 대신 열쇠로 풀어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서 달라진 선반의 위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발장의 가지런함이 은우를 더욱 흐뭇하게 만들었다. 불 꺼진 거실은 아늑해 보였다. 유일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은 서재뿐이었다. 은우는 부스럭거리는 봉투를 내려놓을 생각도 없이 잰걸음으로 빛을 향했다. 그러고는 서재 문을 급하게 열어 젖혔다. 순간적으로 무영이 너무 크게 놀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몸은 그보다 먼저 문턱을 넘고 있었다.
    은우의 염려대로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은 무영을 크게 놀라게 한 눈치였다. 불 꺼진 캄캄한 배경의 은우를 부릅뜬 눈이 찌를 듯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은우였다. 무영의 짧은 오른팔이 삼발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참외가 바닥을 굴렀다. 무영의 왼손엔 식칼이 들려져 있었다. 건강한 요리를 위한 가장 빠른 선택. 은우가 처음으로 기획을 담당했던 조리기구 회사의 제품이었다. 은우는 녹슬지 않는 강철, 런던 세계 박람회에서 금메달 획득, 완벽한 은도금을 바라보았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무영의 손아귀에서 그것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예측하려 했다.
    이놈의, 이놈의 손이, 나를 자꾸 죽이려고 하잖아.

 

    4

 

    교통사고가 있기 하루 전날 그들은 친지들과 지인 몇을 초대한 조촐한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무영이 선택한 곳은 신혼여행지치고는 소박한 장소였다. 도심에서 제법 멀리 벗어난 한갓진 산골이었다. 피서객들이 붐빌 혹서기 한철을 제외하곤 도무지 찾을 엄두가 나지 않을 곳이었다. 가이드를 해온 무영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노동과 관련된 말이었다. 그에게는 온전한 쉼, 그 자체가 필요했다. 은우는 무영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어.
    충분히 특별해, 누가 이런 데로 신혼여행을 오겠어? 은우의 불만 섞인 투정을 무영은 요령껏 피해 나갔다.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은 비였다. 우중의 숲은 거대한 웅덩이처럼 보였다. 무엇이든 집어삼켜 버릴 거대한 입.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졌다. 해가 짧은 벽지인 데다 비까지 내려 제 시각보다 사위가 어두웠다. 은우를 달래 무영은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이런 무모함 때문이었다. 그녀로서는 결코 선택할 수 없을 모험을 무영은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무영과의 결혼은 어쩌면 해방감과 일탈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빗길에 미끄러운 바퀴는 핸들을 조금만 틀어도 중앙차선을 넘나들었다. 난간 아래로 나무군림이 새카맸다. 아니,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전방 외에는 모든 것이 한 면의 어둠이었다. 은우는 무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잃을 것을 걱정하는 쪽은 언제나 은우였다. 그것이 괜한 기우였다고 안심시키는 것은 무영의 몫이었다. 이대로도 괜찮다, 무영을 만나며 은우는 문득문득 자신이 이전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음을 상기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금처럼 둘만 남게 될 날들을 상상했다. 행복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운전대를 잡은 무영의 손을 끌어와 잡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영이 다급하게 차를 세운 것은 그때였다.

 

    자루였다. 화물칸에 가득 실었던 것을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토사에 쓸려 내려온 나무기둥이거나 낙석이었다. 원래 있던 지형지물일지도 몰랐다. 제발, 산짐승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무언가 분명 부딪쳤고 곧바로 은우가 글로브박스에 머리를 찧었음에도 무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량의 미세한 소음만 실내를 메우고 있었다. 은우는 무영 쪽을 돌아보았다.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로 무영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후진기어를 밀어 넣고 무영은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쓰러진 사람의 형체가 보닛 아래로 드러났다. 가만 두면 쓸려 내려가 버릴 것같이 비가 내렸다. 은우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무영은 떨리는 손등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은우 편의 차창을 두드렸을 때 힘껏 소리를 지른 것은 은우 혼자였다.

 

    젊은 사내는 쓰러진 몸을 홀로 일으켜 세웠다. 크고 튼튼한 골격이었다. 조금 다리를 절 뿐 별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우선 병원으로 가시고 보험회사와 연락을 해서 보상처리를…… 명함을 꺼내 드는 무영의 손을 물린 것은 노인 쪽이었다. 부자지간으로 보기엔 한쪽이 지나치게 늙고 왜소해 보였다.
    괜찮소, 괜찮아. 뭐,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차 지나다니라고 난 길에 이 녀석이 불쑥 뛰어들었으니. 뭐 해, 이놈아. 어서 일어나 가지 않고.
    젊은 쪽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딘가 모자라게 웃고 있었다. 은우는 그들이 나타난 쪽을 바라보았다.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이었지만 길이라고 하기엔 험한 수풀이었다. 토사가 빗물에 쓸려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쪽이야말로 괜찮은 거요?
    노인이 은우의 이마를 가리키며 물어왔을 때서야 무영은 그녀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을 태우기로 한 것은 은우였다. 그래도 가시는 길까지는 저희가 모셔다 드릴게요. 모를 일이었다. 이만 하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혹시 나중에 뺑소니 신고라도 당한다면 복잡해질 문제라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마다하지 않고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시트가 빗물에 흠뻑 젖었다며 노인이 미안해했다.
    차로 십여 분을 오르자 갈래 길이 나왔다. 우측으로 다시 십여 분, 비포장 길을 따라 내려갔다. 곧이어 노인이 말한 축사가 보였다. 왼편으로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차에서 먼저 내린 젊은 사내는 다리를 절며 창고에 걸린 자물쇠를 풀었다. 잠깐 들렀다 가시구랴. 주춤대는 은우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아, 그럴까요? 무영이 대답했다.
    창고의 내부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구색을 갖춘 모양새였다. 본래의 구조를 개조해 수도관과 하수 설비를 놓고 욕실에 부엌까지 들인 듯했다. 대강 훑어보더라도 대여섯 개의 방들로 나뉘어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집과 다를 게 있다면 천장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었다. 먼저 들어간 사내는 어디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응접 테이블과 소파가 놓인 중앙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렇게 산다우. 바닥에 어수선하게 널린 푸성귀가 눅눅한 빛으로 시들고 있었다. 노인이 그것을 한 곳으로 밀어 놓았다.
    아, 뭐 다들 그렇죠. 듣기에 따라 기분이 상할 법한 말이었다. 눈치를 보는 은우와는 달리 무영과 노인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되레 속없는 노인의 웃음이 아까 본 젊은 사내의 것과 몹시 닮았다는 인상이었다. 무영은 줄곧 높은 천장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직접 지으신 겁니까?
    전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지. 부엌으로 들어간 노인의 목소리였다. 식기가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수돗물 쏟아지는 소리.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는 소리. 서랍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빗방울이 두텁게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무언가 끓는 소리. 노인이 경박한 걸음으로 그들에게로 돌아오는 소리들. 천장이 높아 작은 소음까지 잘 울렸다.
    도회지 분들이신 것 같은데 이런 촌에는 무슨 일로. 노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은우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잔을 받았다. 씻기지 않은 얼룩이 손잡이 반대쪽 표면에 남아 있었다. 은우는 그것을 입에 대지도 않은 채 왼손으로 오목하게 받쳐만 들었다.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좋은 땅이 하나 나왔다기에 둘러보고 오던 참입니다. 겸사겸사 시골 구경도 좀 하고. 날이 좀 좋아야지요.
    은우는 호탕하게 웃는 무영의 웃음소리에 놀랐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늘어놓는 그의 거짓말에 하마터면 함께 웃어버릴 뻔했다. 노인은 입가에 주름이 잡힌 채 예의 그 모자란 듯한 웃음만 띠고 있었다. 이거, 손님 대접이 마땅치 않아 어쩐답니까. 잠깐만 기다려들 보시구랴.
    왜 그래? 노인이 물러난 자리에서 은우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뭐 어때, 또 볼 사람도 아닌데.
    그래도.
    은우는 걱정이었다. 마음을 바꿔 보상이라도 요구할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경미한 사고였다. 그러나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무영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낯선 얼굴이었다.
    뒤쪽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젊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욕실이었는지 수건을 목에 두르고 팬티만 입은 채였다. 은우는 돌아본 고개를 황급히 되돌렸다. 노인이 무언가를 접시에 담아 오는 것이 보였다. 이거라도 좀 들어 보시우. 은우는 그것이 튀겨 놓은 곤충 같다고 생각했다. 새카맣게 말라 쪼그라든 곶감이었다. 그때 은우의 귓불을 스치며 긴 팔이 뻗쳐와 곶감 한 움큼을 집어갔다. 언제 다가왔는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흐르는 사내가 은우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민망함과 불쾌감 때문에 은우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노인은 사내에게 이렇다 할 질책도 없이 줄곧 웃는 낯이었다. 무영의 무릎을 은우가 가볍게 두드렸다.
    시간이 벌써. 저희는 그럼 이만 일어나…… 무영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은우가 먼저 엉거주춤 엉덩이를 떼며 일어서려고 하자 사내가 말을 붙였다.
    아저씨, 그냥 도망치려고 했지?
    우물거리는 입안에는 침으로 진득한 곶감이 가득했다. 흐물거리며 웃는 통에 내용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은우는 민망함도 무릅쓰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까. 아저씨 도망가려고 했잖아.
    무, 무슨. 그런 말씀을. 무영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고가 있었던 그때의 그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찌꺼기가 들러붙은 씨를 사내는 접시에 그대로 뱉어냈다. 은우를 사이에 두고 테이블까지 몸을 기울였으므로 그때마다 그의 맨살이 은우의 어깨나 팔뚝에 스쳤다.
    보상은 해드린다고 했잖습니까? 이제 와서 이러시면, 아니 어르신.
    무영이 돌아본 곳에서 노인은 줄곧 웃는 낯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친김에 새카만 잇몸까지 내보이며 껄껄대는 꼴이었다. 들고 있던 찻잔을 내던지고 싶은 것을 은우는 간신히 참아냈다.
    일어나, 가자. 은우가 소리쳤다.
    또. 또. 이것 봐. 또 도망가려고 하잖아.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은우의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내의 악력 때문에 뼛속까지 욱신거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무영의 얼굴에 사내의 남은 주먹 하나가 날아들었다. 바닥을 구르는 무영의 얼굴에서 맑은 핏물이 물큰물큰 쏟아졌다. 이제는 아예 고개를 꺾어 가며 웃는 노인의 웃음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창고 안을 울렸다.
    말해 봐. 그랬지? 그냥 도망가려고 했지? 솔직하게 말해 보라니까.
    사내는 절룩거리던 다리를 휘둘러 가며 무영의 몸을 두들겼다. 더불어 마디가 굵은 손가락은 이제 어깨가 아니라 은우의 목을 움켜쥐었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무영의 신음소리와 노인의 칼칼한 웃음소리가 함께 울리며 뭉개졌다. 빗방울이 지붕을 다급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5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어서 은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잠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선잠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무거웠다. 그러나 실제로 무거운 것은 무영의 팔이라는 것을 은우는 곧 깨달았다.
    안방을 빠져나와 서재로 들어간 그녀는 불 밝힌 풍경들이 모두 낯설었다. 무영의 강박적인 증세는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 갔다. 옮길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옮기려고 했다. 벽에 걸린 액자와 전신 거울과 시계의 위치가 옮겨졌다. 냉장고와 식탁이 서로 자리를 바꿨다. 제자리가 맞지 않는 그릇들이 비스듬했고, 장롱 문이 잘 닫히지 않았다. 은우는 밑을 살폈다. 조절발로 받쳐 놓은 겹종이가 무심하게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옮길 수 없는 것들은 적어도 옮기려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한 손으로, 정말? 무영은 이런 게 무슨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걸까? 있지도 않은 손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은우에게도 증세라고 할 만한 버릇이 생겼다.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 놓고 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이가 필요해. 정말? 혼자 하는 생각임에도 어떨 때는 흠칫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책상 위에는 무영이 펼쳐 놓은 영문원서 한 권과 그의 필체가 어지럽게 메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끔하게 정리된 인쇄용지 한 부. 영문과 국문이 문단마다 번갈아가며 이어졌다. 자신 모르게 얻은 무영의 일감이라고 은우는 추측했다. 그것을 모두 읽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편 분량의 소설이었다. 별다른 감흥 없이 진부한 내용이었고 매끄러운 번역이었다. 그러나 한 문장이 어딘가 걸렸다.
    ‘그녀는 자신의 몰락을 홀로 견디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은우는 문장의 원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되는 가을을 보내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라고 용지 위에 고쳐 적었다.
    안방으로 돌아가는 은우는 오랜만에 느껴 보는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만족감이 그녀의 입가로 번져 갔다. 무영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은우는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고 자신했다. 비대해지는 어깨를 보며, 굵고 딱딱한 왼손을 잡으며, 무영을 위한 일이라면 이쯤 견딜 수 있다고 재차 확인하고는 했다. 두꺼운 무영의 팔뚝을 벤 채 모처럼 편히 잠든 그를 바라보았다. 오르내리는 흉곽의 주기가 일정했다. 괜찮다. 문득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은우였다. 이만 하면 괜찮다. 잃을 것을 걱정하는 쪽은 언제나 그녀였다.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그녀를 안심시키는 건 무영의 몫이었으니까.
    다음날, 출근하려는 은우를 붙잡고 무영은 여행을 제안했다. 가능한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은우는 반색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었다. 사무실에 앉아 간밤 자신이 한 일을 떠올리며 뿌듯했다. 밀린 업무를 서둘러 처리하면서 잠깐 잊고 지내기도 하였으나, 지금쯤 원고를 확인했을 무영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6

 

    은우는 유원지 입구로 차를 몰았다. 바리케이드에 막혀 더 진입할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간 후에야 시동을 껐다.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서두른다면 고작 한 시간 거리였다. 지금이라도 무영이 원한다면 은우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무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외곽으로 빠지는 전용도로를 두고 복잡한 시내로만 다녔음에도 무영은 이렇다 할 제지나 결정을 하지 않았다. 목적 없는 배회였다.
    새벽이 되자 찬 공기는 무게를 가지고 덤벼들었다. 가벼운 것들은 가라앉지 못하고, 흔들리거나 떠다녔다. 은우의 시선도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유원지의 인공호수 주변으로 드물게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들이 돌아갈 곳은 가까운 근처일 거라고 은우는 생각했다. 더불어 빈집을 떠올렸다. 은우와 무영이 없는 집, 이제 대부분의 것들이 자리를 바꾸어버린, 그래서 낯선 집. 은우는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영이 자신과 같은 마음이 되기까지.
    도대체 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영이 여전히 차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넌 늘 그런 식이지. 그때도 그랬어.
    뭐라고?
    넌 늘 네 생각만 하잖아. 뭐라도 했었어야 해. 돌아보는 무영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먼 뒤편인지 은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해 봐.
    배려라고 생각했다. 무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어떤 고생도 감내할 수 있다고 다짐했었다. 불쌍한 당신에게 나마저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빌어먹을 그 진절머리 나는 노릇까지 참아 준 것 아니냐고, 은우는 분명 그렇게 믿어 왔었다.
    묻잖아, 무슨 말이냐고. 자신의 목소리가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은우는 깨달았다.
    그때도, 넌 그때도 그랬잖아. 무영이 차 문을 열자 냉기가 급하게 들이쳤다.
    넌 뭐라도 했었어야 돼. 적어도 나한테 미안해지지 않으려면.
    은우는 차 밖으로 몸이 빠져나가는 무영의 뒤통수를 힘껏 갈기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죽이고 싶었다. 몇 번을 말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문이 닫히자 차내에 갇힌 은우의 목소리가 맥없이 스러졌다.

 

    모든 게 그날의 일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미루고 나면 원망할 수 있었다. 뚜렷한 대상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할 수 있었다. 누가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 짊어지고 싶어 하겠는가. 그럴 바에야 희생당한, 무능한 존재로 남는 편이 나았다.
    사내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무영은 사냥 당한 짐승처럼 거실 구석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목덜미를 붙잡힌 채 끌려가는 은우를 잡아 보려고 했으나 사내의 정강이가 무영의 늑골을 걷어찼다.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구석진 방으로 사내는 은우를 밀어 넣었다. 뉘우칠 기회를 주는 거야. 사내가 문을 닫으며 예의 그 배실거리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캄캄해서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무영이었다. 은우는 흔들리는 자신의 몸을 느끼며 깨어났다. 낯선 방 안이었다. 아니 방이라고 부를 만한 넓이였다. 내벽이 그대로 드러난 잿빛 사방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은우와 은우를 억세게 붙잡아 흔드는 무영뿐이었다. 노인과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새끼가, 너한테 뭘 한 거야? 어깨를 붙잡은 손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모르는 듯 더 강하게 힘을 들였다.
    뭘 한 거야? 말해 봐. 말해 보라고. 왜 그냥 가만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다. 은우는 그렇게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상상하는 거냐고. 노려보는 무영의 얼굴이 낯설었다. 어딘가 낯익은 데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늘 보아 온 무영의 것은 아니었다.
    여보, 난 괜찮아. 이제 그만 돌아가자.
    전날과 다르게 햇빛이 질척한 흙바닥을 내리치고 있었다. 모두가 무사했다. 더 큰일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은우는 부신 눈을 가렸다. 운전석에 오른 무영이 거칠게 핸들을 틀었다.

 

    사고가 있었다. 무영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은 과연 어느 쪽의 사고 때문이었을까? 은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난잡한 질문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영의 오른팔은 온전했을까? 우리의 불행이 모두 그들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었더라도 내가 아직 무영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그곳에는 정말 출몰하는 야생동물이 있기나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그게 뭐였을까?
    병실에 누운 무영을 볼 때마다 무영이 이대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은우를 불안하게 만들었었다. 몇 차례 경찰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무영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차도 그대로였고 잃어버린 소지품이나 그밖에 별다른 도난품은 없었다는 거죠?
    네? 경찰의 태도에 은우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사고를 당한 것은 우리였는데.
    피해자 쪽에서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좀 이상해서. 폭우가 내리는데 굳이 별 이유 없이 거길 간 것도 그렇고. 혹시 말입니다. 다른 의도로 거길 가신 건 아닙니까? 그곳은 폐쇄된 축사였고 근래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곳이라고 경찰은 덧붙였다.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분명 그날 이후로 은우는 무언가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은우는 알지 못했다.
    어느덧 호숫가의 인적은 바람에 쓸려간 듯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더 어두운 무영의 형체만 서 있을 뿐이었다. 은우는 묻고 싶었다. 당신이 오역한 문장을 고쳐 놓은 것을 보았느냐고. 아직 무영은 그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늦은 가을이었다. 은우는 혼자 남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작가소개 / 임현(소설가)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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