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외 1편

 

 

기린

 

 

 


최명진

 

 

 

 

 

내가 가끔 산그늘 푸른
이끼 속에 으스스 몸 떠는 이유는
내 엄마의 기억이 나에게 새겨져 있기 때문

 

혹은 몽당꼬리를 놀리며 걷던 날들
가뭄과 메마른 초원과
흙먼지 끝없이 자욱한 날들

 

어느 날은
속눈썹처럼 까만 새순들이
돋아나는 그런 꿈을
무리 지어 따라왔기 때문

 

별똥별이 긴 상흔을
하늘에 그으면
지옥불처럼 화려한 은하수
지평선 너머 뻗어 흐르고

 

어제의 죽음들은 덕지덕지
엉덩이 끝에 따라와 붙곤 했지

 

나는 또한 돌고래의 피를 가진 아이로
이건 우리 아빠의 이야기

 

먼 훗날 대서양을 횡단할 어느
북극제비갈매기보다 길고도
긴 모험담

 

눈이 큰 나는 어쩌다
목이 길게 늘어나고 말았지

 

아지랑이 잦아들면
맹수들의 울음 그리고

 

누군가는 고개 세워
붉게 지는 노을을 지켜봐야 할 일

 

 

 

 

 

 

 

 

개미와 선짓국과 닭발집 이야기

 

 

 

 

 

    떨어지는 나뭇잎에 머리를 맞고 지레 놀라서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치던 개미 한 마리는 빨라진 다리로 갈팡질팡 우왕좌왕 기진맥진하다 우연히 더듬이 끝에 얻어 걸린 죽은 매미를 발견하고는 정신을 차려 보니 거참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씀이야 생각이 들어 그동안 미친년처럼 왜 이리 날뛰어 다녔을까나 다시 차분해진 개미적인 마음으로 매미 주위를 기분 좋게 맴돌며 고소하게 풍겨 오는 고기 냄새를 킁킁 음미하듯 맡아 보는 것이었다

 

    뜨끈한 국밥에 담겨진 돼지피는 본래 생명을 담고 있던 포대에서 탈출을 감행한 죄수들이라는데 와르르 쏟아져 버린 그들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붉은 울음과 더운 체온에 엉겨 붙어 바닥을 더럽히고 역한 비린내를 내지르다 번뜩한 쇳날에 압도되어 기도가 막혀진 비명은 전량 되직한 침묵으로 가라앉고 꺾어진 팔다리와 쭈뼛 선 머리통은 비로소 둥글게 서로를 용서하듯 다독이듯 모여 모여서 피보다 진한 사이가 되더라는 것이었다

 

    닭발집에서 일하시는 두 명의 아주머니는 신내림을 받은 기계처럼 한 치 오차 없이 육신을 놀리며 머릿수와 일정량의 무게와 돌발적 변수를 그때그때마다 능숙하게 처리해 내신다 그녀들은 살가운 인사도 없지만 반갑게 찾아오는 사람 싫은 기색도 없다 단지 삶에 집중하다 보니 만석의 테이블 앞에서 인상이 구겨지고 주고받는 주문들이 점차 옥타브를 높여 가며 빨라지는 것으로 간혹 신내림의 기계에도 브레이크가 걸려 두 명의 아주머니는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니년 네년 소리를 지르며 잠시 숨 돌리는 시간도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소개 / 최명진(시인)

2006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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