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동화] 저승으로 전학 간 마채황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저승으로 전학 간 마채황

 

 


조희애

 

 

삽화_01저승으로-전학간

 

 

    이름 마채황. 동글 초등학교 3학년 1반 반장이에요. 일명 ‘마반장’이라고 불려요. 성이 마 씨여서 그렇기도 하고, 마귀 같은 반장이라 그렇기도 해요. 왜 마귀 같냐고요? 친구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귀신같이 알고 찾아내거든요.
    “네가 지우개 던졌지?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네가 내 반찬 먹었지?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네가 필통에 벌레 넣었지?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그래요. 마반장은 아주 유명한 일름보 반장이었어요.
    “누가 방금 일름보라고 그랬어?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하루는 선생님이 채황이를 불러 상냥하게 타일렀어요.
    “채황아, 반장 역할을 열심히 해줘서 고맙구나. 그런데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란다.”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황이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어요.
    “왜요, 선생님? 나쁜 짓은 나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그랬어요. 선생님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어요. 게다가 채황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바른생활을 하는 아이였어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횡단보도는 초록 불에만 건넜죠. 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가지 말라면 가지 않았어요. 동네 어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마르고 닳도록 채황이를 칭찬했어요.
    그리하여 ‘바른생활 마채황’의 소문은 널리 멀리 퍼져 저승에 있는 염라대왕에게까지 들어갔어요.
    “그래? 그런 자라면 내 후계자가 되어 잘할 수 있겠구나.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염라대왕이 옆에 서 있던 저승사자에게 물었어요. 이제 막 저승사자 교육을 마친 초보 저승사자였죠. 저승사자는 냉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어요.
    “제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너에게 넘겨도 되겠느냐?”
    “한 번 해보겠습니다.”
    “좋다. 그 자를 당장 염라학교에 입학시키도록 하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은 저승사자는 채황이네 집으로 찾아갔어요.

 

*

 

    ― 띵동.
    채황이를 위해 도넛을 튀기고 있던 엄마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총총 걸어갔어요.
    “누구세요?”
    문을 열어보니 검은 갓과 검은 도포를 입은 창백한 저승사자가 꼿꼿이 서 있었어요. 저승사자는 소매 안을 뒤적이더니 검은 봉투 하나를 쓱 내밀었어요.

 

입학 통지서

 

귀하 마채황은 평소 바르고 꿋꿋한 언행으로
염라대왕이 될 기초 자질을 인정받았으므로
염라학교의 입학을 허가합니다.

 

염라학교 교장 염라대왕

 

 

    “어머!”
    엄마는 입학 통지서를 가슴팍에 묻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거실에서 도넛을 먹고 있던 채황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으로 따라 나왔어요. 엄마는 채황이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어요.
    “역시 우리 아들이야!”
    그 바람에 채황이의 도넛이 바닥에 툭 떨어졌어요. 저승사자는 떨어진 도넛을 슬쩍 주워 입에 쏙 넣었어요.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쳐줬지요.

 

*

 

    다음 날, 엄마는 채황이를 차에 태우고 염라학교로 향했어요. 신이 난 엄마는 운전하는 내내 쉴 틈 없이 떠들었어요.
    “벼슬 채! 임금 황! 내가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지!”
    “네가 똑똑하고 곧바른 건 다 이 엄마를 닮아서란다.”
    “너는 태몽부터가 남달랐어. 커다란 호랑이가 엄마를 태우고 팔도강산을 뱅뱅 뛰어다녔지.”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어요. 반면 채황이는 엄마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느라 바빴어요. 엄마 말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죠.
    “엄마, 노란 불이에요.”
    “엄마, 정지선이에요.”
    “엄마, 속도 좀 줄이세요.”
    그러면서 채황이는 자기 안전벨트가 안전한지 안 한지 몇 번이나 탁탁 당겨보았어요.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도로가 끝없이 뻗은 허허벌판이었어요. 주위엔 안개가 깔려 있어 어둑충충했지요. 몇 미터 앞에는 나무 기둥을 세워 만든 낡은 문이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어요.
    “이상하다? 주소대로면 여기가 맞는데?”
    엄마는 입학통지서를 꺼내 확인한 뒤 다시 앞을 내다봤어요.
    “어머, 깜짝이야!”
    언제 나타났는지 지난번에 봤던 저승사자가 자동차 앞에 유령처럼 서 있었어요. 채황이와 엄마는 차에서 내려 저승사자에게로 갔어요. 교통법규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던 채황이는 그제야 하나, 둘 걱정이 밀려들었죠.
    “엄마, 그럼 우리 이제 못 보는 거예요?”
    엄마는 빙긋 웃으며 채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요.
    “아니. 나중에 만날 수 있단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저승에서 심판을 받거든. 후후. 염라대왕이 된 우리 아들을 보면 다들 얼마나 놀랄까? 아유, 예쁜 내 아들.”
    엄마는 채황이의 볼이 찌그러질 정도로 진한 뽀뽀를 해줬어요.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들은 저승사자는 못마땅한 눈으로 엄마를 흘겨봤어요.
    “염라학교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여러 가지 시험도 통과해야 하고, 성적도 우수해야 하오. 졸업하는 게 그리 쉽진 않을 것이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그래도 우리 아들은 분명 잘 해낼 거예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사자님.”
    엄마가 무안한 기색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어요. 민망해진 저승사자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지요.
    “늦겠다. 이만 가자.”
    저승사자가 앞서 걸어갔어요. 엄마는 얼른 채황이를 붙잡고 뭔가가 든 종이봉투를 건네며 귓속말을 했어요.
    “가다 사자님께 드려라.”
    “어험! 한눈팔지 말거라.”
    저승사자는 눈이 뒤통수에도 달렸는지 보지도 않고 호통을 쳤어요. 채황이는 엄마가 준 봉투를 들고 저승사자에게로 뛰어갔어요. 도로 위에 세워진 낡고 거대한 나무 기둥 문이 채황이의 머리 위로 휙 지나갔어요. 채황이는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아봤어요. 그런데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엄마도, 차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죠. 그저 안개가 깔린 도로만이 있을 뿐이었어요.
    “엄마는 잘 계시니까 걱정하지 마라. 저승과 이승이 달라 안 보이는 것뿐이야. 여기부턴 저승이거든.”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슬픈던지요. 채황이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어요.
    “설마 우는 거야? 이봐, 이봐. 난 누가 우는 거 딱 질색이라고!”
    저승사자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어요. 채황이도 울고 싶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남자는 태어나 세 번만 우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으니까요. 채황이는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눈을 비볐어요.
    “난 누가 우는 게 싫어. 하지만 이렇게 저승사자가 되었으니 앞으로 우는 사람을 엄청 많이 보게 되겠지? 으, 생각만 해도 싫다. 정말 걱정이야. 휴…….”
    한숨을 내쉬는 저승사자의 표정이 시무룩했어요. 점잖아 보였던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채황이는 저승사자의 기분도 풀어줄 겸 엄마가 준 봉투를 쓱 내밀었어요.
    “뭐야?”
    봉투를 열어보니 설탕 묻은 도넛이 잔뜩 들어 있었어요. 어제 저승사자가 몰래 주워 먹는 걸 엄마가 곁눈으로 봤던 거죠.
    “이야, 이거 정말 맛있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먹어야겠어.”
    저승사자는 입가에 설탕을 묻혀가며 냠냠 쩝쩝 방정맞게 베어 먹었어요.
    “흠…… 내가 너무 혼자만 먹었나? 그래, 뭐…… 너희 엄마가 잘 부탁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큰 맘 먹고 선심 쓸게! 자, 받아.”
    저승사자는 반쯤 먹은 마지막 도넛을 채황이에게 내밀었어요.
    “괜찮아요. 안 먹고 싶어요.”
    “그냥 받아.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나중에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으면 되잖아.”
    음식을 주머니에 넣다니요? 바른생활 채황이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고는 싶었어요.
    채황이는 기름이 묻어나는 도넛 조각을 받아 주머니에 쿡 쑤셔 넣었어요.

 

*

 

    “마침 저기 계시는군!”
    저 멀리 웬 아이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어요. 현장학습을 하러 가는 염라학교 학생들이었죠. 아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다만 아이들의 얼굴에선 신비한 푸른빛이 났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저승사자는 다시 점잖은 모습으로 예의를 갖춰 공손하게 인사를 했어요. 선생님이 뒤를 돌아봤어요.
    “오, 사자님께서 여긴 무슨 일이신지요?”
    채황이는 깜짝 놀랐어요. 퉁방울 같은 눈에 커다란 코, 날카로운 이빨과 몸을 덮은 불꽃 모양의 털까지. 선생님은 언젠가 교과서에서 봤던 해치와 꼭 닮아 있었어요.
    “그게……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귀 좀…….”
    저승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닥속닥 떠들었어요.
    “그리하여 그렇게, 이리하여 이렇게 된 것입니다.”
    얘기를 끝낸 저승사자가 도포 속으로 손을 넣으며 말했어요.
    “그렇군요. 이승에서 온 전학생이라니 보통내기가 아닌가 보네요. ……그런데 사자님, 여기 뭐가 묻은 것 같습니다만?”
    선생님이 저승사자의 얼굴을 가리켰어요. 저승사자는 당황하며 입에 묻은 도넛 설탕을 허겁지겁 털어냈어요.
    “하하하! 어디서 머, 먼지가 묻었나봅니다. 그, 그럼 전 할 일을 마쳤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승사자는 채황이에게 눈인사를 남긴 뒤 도망치듯 사라졌어요.
    “여러분! 잠깐 주목하세요. 여기 전학생이 새로 왔어요.”
    선생님은 채황이의 몸을 홱 돌려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흘겨보는 친구도 있고, 고약한 이승 냄새가 난다며 코를 막는 친구도 있었지요.
    “이름이 뭐죠?”
    선생님이 물었어요.
    “마채황입니다.”
    채황이는 일부러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들었죠? 이름이 마채황이래요. 앞으로 이 친구가 잘못한 게 있으면 ‘고자질 쪽지’에 마채황이라고 적어 내세요. 알았죠?”
    아이들이 힘차게 “네!” 대답했어요.
    “그럼 이제 염라궁으로 출발합시다! 모두 두 줄로 서서 따라오세요.”
    아이들은 차례대로 졸졸 따라갔어요. 끼어들 곳을 못 찾은 채황이는 아이들에게 밀려나 맨 꽁무니에 겨우 붙어 갔어요.

 

*

 

    오늘도 수많은 죄인을 심판한 염라대왕은 몹시 지쳐 있었어요.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기운도 달리고, 집중력도 흐트러지기 일쑤였지요.
    “잠시 쉬었다 하자꾸나.”
    염라대왕은 재판을 멈추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하루 빨리 퇴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요. 하지만 마땅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아 골머리를 썩고 있었어요.
    “나의 대를 이를 인재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
    염라대왕은 하얗게 센 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어요.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이 솔솔 쏟아졌지요. 염라대왕은 꾼둑꾼둑 졸다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어요.
    “드르렁드르렁.”
    염라대왕의 코 고는 소리가 염라궁 안에 쩌렁쩌렁 울렸어요. 그러자 염라대왕의 재판을 돕는 여섯 명의 판관들이 둥그렇게 모여 이마를 맞댔어요.
    “잠이 드셨습니다.”
    “깊이 드셨습니다.”
    “어찌해야 한답니까.”
    “어떻게든 해야지요.”
    “누가 가서 깨웁시다.”
    “누가 가서 깨울까요?”
    판관들은 염라대왕을 쳐다봤어요. 염라대왕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푸푸 자고 있었어요. 길게 늘어뜨린 턱수염은 콧바람을 타고 공중에서 휘날리고 있었지요. 염라대왕의 괴팍한 성격을 아는 판관들은 부르르 떨며 머리를 흔들었어요.
    그때 염라궁에 도착한 염라학교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줄지어 들어왔어요. 염라대왕은 화들짝 고개를 쳐들었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보지 못한 것 같았지요. 염라대왕은 황급히 침을 닦으며 물었어요.
    “무슨 일이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삑 갈라졌어요. 여섯 명의 판관들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어요. 6번 판관이 웃음을 참고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어요.
    “오늘이……염라학교 아이들의……현장학습 날이옵니다. 큽! 콜록콜록!”
    판관은 마지막에 터져 나온 웃음을 재빨리 기침한 것처럼 꾸몄어요. 그래도 눈치 빠른 염라대왕은 가재미눈을 하고 흘겨봤어요.
    “여러분! 우리 염라대왕님께 인사합시다. 하나, 둘, 셋, 인사!”
    “염라대왕님,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큰 소리로 외쳤어요. 그러고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큰절을 올렸어요. 절을 해야 하는지 몰랐던 채황이도 뒤늦게 넙죽 엎드렸어요.
    “네가 이승에서 왔다는 그 아이로구나?”
    채황이를 발견한 염라대왕이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어요. 염라대왕이 무서웠던 채황이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네” 대답했어요. 아이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채황이에게 쏟아졌어요.
    “내 너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잘못된 일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단단하고 올곧은 자라지? 앞으로 잘 보고 익혀 훌륭한 판단을 내리는 염라대왕이 되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가, 감사하옵니다.”
    채황이는 사극에서 봤던 말투를 흉내 내며 머리를 조아리다 바닥에 쿵 찧었어요.
    “자, 그럼 아이들도 왔으니 재판을 다시 시작해볼까? 다음 죄인 들라 하라.”
    “다음 죄인 들라 하신다!”
    웃음을 터뜨렸던 6번 판관이 목청을 높였어요. 아이들은 벌떡 일어서 옆으로 비켰어요. 이윽고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사납게 생긴 붉은 도깨비 두 마리가 죄인을 붙들고 들어왔어요. 죄인은 공중에 매달린 채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었어요.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깨비들은 죄인을 데구루루 팽개쳤어요.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오, 나 또 죽네.”
    바닥에 쓰러진 죄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주섬주섬 바닥에 엎드렸어요. 그 순간 죄인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어요. 채황이는 너무 놀라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바로 자기를 데려온 저승사자였기 때문이었죠.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염라대왕이 불벼락 같은 호통을 쳤어요. 그걸 본 해치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여러분, 따라하세요.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아이들이 꽥꽥 따라했어요. 채황이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어요.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저승사자가 덜덜덜 떨며 말했어요.
    염라대왕은 판관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어요. 그러자 판관들이 커다란 황금 거울을 끌고 들어왔어요. 해치 선생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문제를 냈어요.
    “우리 공부한 거 복습해볼까요? 저게 뭔지 아는 사람?”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팔을 불쑥 들었어요. 선생님은 가장 먼저 손을 든 아이에게 기회를 주었어요.
    “업경대입니다. 죄인이 지은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비춰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맞았어요! 아주 잘했어요.”
    염라대왕은 의자에서 일어나 업경대 앞으로 갔어요.
    “업경대는 이 자의 죄를 낱낱이 비추거라!”
    그러자 거울에서 번쩍 빛이 나더니 저승사자의 모습이 동영상처럼 나타났어요. 채황이 집에서 도넛을 주워 먹는 장면과 저승도로에서 도넛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장면이었지요.
    “저승사자가 이승의 음식을 함부로 먹다니 겁도 없구나!”
    “몰랐습니다, 대왕님. 저는 정말 모르고 한 일입니다.”
    “모른다? 저승사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모두 마쳤거늘 어찌 모른다 한단 말이냐. 설마 거짓말을 하면 죄가 늘어난다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거, 거짓말이라뇨. 어찌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선배 저승사자에게 물려받은 교과서가 너무 낡아 ‘이승 음식 편’이 찢겨 나가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만약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저승사자에게 교과서를 빌려서라도……”
    “변명이 길구나! 여봐라, 가서 기름 솥을 가져오너라!”
    “예!”
    붉은 도깨비 두 마리가 철문 밖으로 나갔어요. 염라학교 아이들은 고문을 볼 생각에 신이 났지만 채황이는 굳은 표정으로 돌처럼 서 있었어요.
    이윽고 도깨비들이 어마어마하게 큰 무쇠 솥을 들고 들어왔어요. 솥 안에는 뜨거운 기름이 펄펄 끓고 있었어요. 얼마나 뜨거운지 주위가 후끈후끈 달아오를 지경이었어요.
    “지금부터 바른대로 고하면 천년 동안 튀겨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만년 동안 튀겨질 것이다. 말해라, 너에게 음식을 준 자가 누구냐!”
    “그……그것은…….”
    저승사자가 말을 흐리며 채황이를 슬쩍 쳐다봤어요. 겁에 질린 채황이는 자기 이름이 불릴까 두려웠어요.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만 같았지요. 채황이는 슬며시 바지 주머니를 쥐었어요. 엄마가 만들어준 도넛이 손 안에 들어왔어요.
    ‘우리 아들은 꼭 염라대왕이 될 거야.’
    엄마의 말이 채황이의 마음속에 맴돌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염라대왕은커녕 뜨거운 기름 솥에 천 년 만 년 튀겨질 운명이었어요. 주머니에 든 까만 도넛처럼 말이에요.
    한동안 말이 없던 저승사자는 고개를 쳐들고 염라대왕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에게 음식을 준 자는, 없습니다. 제가 훔친 것입니다.”
    “좋다! 여봐라, 이 자를 기름 솥에 넣고 만 년 동안 바삭바삭 튀기도록 하라!”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붉은 도깨비들이 저승사자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염라학교 아이들은 꺅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어요.
    “자, 자, 자, 잠깐만요!”
    채황이는 바지 주머니를 콱 움켜잡았어요. 그 바람에 도넛이 퍽석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어요. 염라대왕은 손을 들어 붉은 도깨비들을 멈추게 했어요.
    “제, 제가 그랬습니다, 대왕님. 제가 저승사자에게 음식을 줬어요.”
    채황이의 폭탄선언에 염라학교 아이들이 술렁거렸어요. 해치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며 쉬쉬거렸어요. 염라대왕은 눈썹을 씰룩이며 채황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만약 제가 도넛을 주지 않았더라면, 저승에 오지 않았더라면, 입학 통지서를 받지 않았더라면, 소문이 날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들의 잘못을 이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채황이의 머릿속에 동글 초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휙휙 스쳐지나갔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친구들의 행동이 그렇게 못되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것 같았지요. 오히려 자기가 고자질로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어요.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잘 지내고 싶었지요. 채황이는 또 다시 눈물이 솟았어요. 하지만 울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래요. 엄마가 남자는 세 번만 우는 거라고 했으니까요.
    염라대왕은 팔을 뻗어 채황이를 척 가리켰어요.
    “그것이 정녕 네 죄렷다?”
    “그것이 정녕 네 죄렷다!”
    아이들이 염라대왕의 말을 따라했어요. 채황이는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 나왔어요.
    “그렇습니다…….”
    이젠 정말 죽을 것만 같았어요. 원래 저승은 죽은 자들의 곳이지만, 채황이는 죽지 않고 넘어 온 사람이니까요.
    염라대왕은 구슬이 대롱대롱 달린 모자를 고쳐 쓰며 물었어요.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
    “소원이요?”
    염라대왕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게 무엇인진 알 수 없었죠. 채황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은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소리쳤어요.
    “여봐라! 이 자를 당장 밖으로 내치거라!”
    “뭐라고요? 자, 잠깐만요!”
    도깨비들은 채황이를 붙잡고 철문으로 끌고 갔어요.
    “잘못했습니다, 대왕님!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채황이는 도깨비에게 끌려가며 악을 썼어요. 하지만 염라대왕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지요. 염라대왕, 여섯 명의 판관, 해치 선생님과 염라학교 아이들이 채황이의 눈에서 성큼성큼 멀어졌어요. 슬픈 표정으로 손을 한들한들 흔들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도 보였지요.
    “잘 가라.”
    도깨비들은 철문을 열고 채황이를 낭떠러지로 홱 던졌어요.

 

*

 

    “아아아악!”
    채황이는 비명을 지르며 번쩍 눈을 떴어요. 입고 있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어요.
    “아들, 왜 그래?”
    주방에 있던 엄마가 놀라서 거실로 달려왔어요. 손에는 튀김용 나무젓가락이 쥐어져 있었지요. 채황이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어요.
    “꿈꿨나보구나?”
    “꿈……이요?”
    “그동안 많이 피곤했나보다.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지금 도넛 튀기고 있으니까 금방 가져다줄게.”
    엄마는 주방으로 들어가 갓 튀긴 바삭바삭 따끈한 도넛을 쟁반에 담아 내왔어요. 그 위에는 달콤하고 하얀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었죠.
    “전 안 먹을래요. 별로 안 먹고 싶어요.”
    “정말?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도넛인데 왜?”
    채황이는 도넛을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냄새만 맡아도 울렁울렁 멀미가 났어요.
    ― 띵동
    때마침 초인종이 경쾌하게 울렸어요. 엄마는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어요. 하지만 밖엔 아무도 없었어요.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왔어요.
    “누구예요?”
    “아무도 없네? 누가 장난쳤나봐.”
    엄마는 주방으로 돌아가 남은 도넛을 마저 튀겼어요. 채황이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요. 그런데 손에 꺼끌꺼끌한 모래 같은 게 느껴졌어요.
    “이게 뭐지?”
    채황이는 주머니를 홀랑 뒤집어봤어요. 그러자 갈색 가루가 우슬우슬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건 바로 부서진 도넛 가루였어요.
    “뭐야! 꿈이 아니었어?”
    채황이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요. 아니나 다를까 하얀 얼굴의 저승사자가 문 뒤에 바짝 붙어 숨어 있었어요.
    “허허허. 안녕하신가?”
    저승사자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들었어요. 채황이는 엄마가 들을 새라 조심스레 현관문을 닫았어요.
    “뭐예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채황이가 버럭 화를 내자 저승사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은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어요.
    “아함! 어험!”
    목청을 가다듬은 저승사자는 염라대왕의 말투를 따라하며 말했어요.
    “마채황은 들으라! 그대는 평소 바르고 꿋꿋한 언행으로 염라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염라대왕을 꿈꾸는 대부분의 자들이 그러하듯, 그대 또한 죄인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잘못을 들춰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허나 이번 일로 그대는 자신의 일을 고하며 죄인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알게 되었도다. 무릇 염라대왕이란 차갑고 예리한 머리와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함께 갖춘 자여야 하는 바, 그리하여 마채황은 후에 죽어 저승에 오면 염라학교의 남은 전 과목을 배우고, 낙제점이 아닌 이상 졸업을 확정하는 것으로 한다. 끝!”
    저승사자는 후루룩 두루마리를 말아 넣었어요. 하지만 채황이의 표정은 아직 어두웠어요.
    “그럼 제가 잘못한 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도넛 갖다드린 거 말이에요.”
    “아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따지자면 내 잘못이지. 우리 저승사자들은 이승의 음식을 대접 받으면 그 사람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줘야 하거든. 물론 살아나게 해달라거나 재판을 피하게 해달라고 하는 건 안 돼. 근데 너는 죽은 목숨이 아니었으니 소원대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지. 그리고 도넛은 나도 모르고 받아먹은 거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겠대.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삼천 년 동안 튀기겠다고 하셨어. 알고 보니 우리 사연을 다 알고도 호통을 치셨더라?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는 이상한 분이야. 근데, 이 냄새…… 뭔가 익숙한데? 킁킁. 혹시 그, 그거야? 도넛?”
    저승사자가 코를 벌렁거리며 물었어요. 채황이는 미안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 올렸어요.
    “어휴! 이러다 또 큰일 날라. 나 간다! 나중에 죽어서 만나!”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갔어요.

 

*

 

    다들 예상했겠지만 동글 초등학교로 돌아온 채황이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어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친구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짜증내지 않았지요. 덕분에 늘 뭔가를 찾는 듯 한 날카로운 눈빛과 쭉 내민 입도 얼굴에서 사라졌어요. 그뿐인가요? 이제 채황이는 깐깐한 염라대왕처럼 굴지 않고 다른 아이들처럼 지우개 조각도 던지고, 반찬도 뺏어먹으며 장난을 쳤어요. 그래요, 채황이는 더 이상 일름보 마반장이 아니었어요.
    죽어도 안 변할 것 같았던 바른생활 마채황이 확 변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어요. 그리하여 ‘덜 바른생활 마채황’의 소문은 다시 한 번 널리 멀리 퍼져 저승에 있는 염라대왕에게도 알려졌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염라대왕님은 붉으락푸르락 화를 냈을까요? 채황이는 이제 염라대왕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셨을까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아마 저승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거예요.

 

 

 

< 선정평 >

 
    동화 「저승으로 전학간 마채황」의 마채황은 친구들의 작은 잘못도 절대 용납 못 하는 마귀 같은 반장 ‘마반장’이다. 지독한 바른생활로 인해 인간성이 메마른 그가 염라대왕에게 스카우트 되어 저승으로 가게 되어 겪는 일종의 성장기다. 구전동화처럼 해학적인 스토리와 살아 있는 대사, 그리고 따스한 인간애를 회복하는 이야기가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준다.
 
    권지예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막차를 타게 돼 기쁩니다! 용기를 얻었습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마포 지하철역에서 누굴 기다리고 있었어요. 심심해서 출구 안내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2번 출구에 ‘염라 초등학교’가 적혀 있는 거예요. 오잉? 놀라서 다시 읽어보니 ‘염리 초등학교’더군요. 곧바로 메모해뒀죠.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특별한 습관은 없는 것 같아요. 음악은 작품 쓰기 전이나 후에 들어요.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도 있지만 고정된 인물은 아니에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는 제 무의식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꺼낼 날이 올 것 같아요.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어느 횟집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이야기입니다.

 

 

조희애 (동화작가)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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