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소설] 소설 쓰는 기계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소설 쓰는 기계

 

 


전성혁

 

 

삽화_02소설쓰는기계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 한다. 아마 이 글이 내 첫 소설이 될 것이다. 길이로 봤을 때 경장편 이상의 분량이 나올 것 같다. 처음부터 단편소설을 쓰며 작법을 익히고 싶지만 도저히 원고지 80매 내외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줄이고 또 줄여도 그 이상은 족히 넘고도 남을 이야기다. 그러니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신인상 공모전 투고를 위해 제도와 적당히 타협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아직은 두 편 이상 쓸 필력이 아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여가시간 모두를 이 소설 완성에만 매진할 생각이다.
    여타 출사표처럼 나름의 각오로 첫머리를 시작했지만 사실 막막하고 마냥 두렵다. 어떻게 첫 문장을 써야 좋은 글이 될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이 소설은 그냥 소설이 아니기에, 뽑히기 위한 글이기에 한눈에 확 띄는 수사나 누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문장으로 처음을 장식하며 거창하게 출발하고 싶다. 그래야 심사위원들도 만장일치로 흡족하게 내 소설을 선택할 것이 아닌가.
    내가 처음 소설이란 형식의 글을 쓰게 된 데는 두 명의 선배가 있었다. 둘은 내가 졸업한 대학교 문창과의 선배다. 한 선배는 지금 세상에 없고 나머지 한 선배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쨌든 이 소설이 발표될 즘이면 아마 둘 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둘은 한 선배가 재수를 한 탓에 학번 차이는 있었지만 동갑이었고, 유수의 문예지로 등단한 소설가였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y는 순수문학을 지향해 온 출판사 출신이고, k는 현실 참여를 역점으로 둔 문학 계간지의 신인상 수상자였다. 또한 그들의 등단작 역시 내용적인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에서 완전히 달랐다. y의 글이 메타 픽션에 가깝다면 k는 정통 리얼리즘 소설이었다. 재미 면에서는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며 지적 유희로 승화시킨 y가 승. 의미 면에서는 지금 왜 이 소설이 쓰여야 하는가에 가장 적합한 답을 제시해 주는 k가 한 수 위였다.
    오랜 앙숙인 양 출판사만큼이나 두 선배 역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석에서 만나면 못 본 듯 가벼운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같은 스승을 두었기에 술자리 모임에서 만날 일이 잦았지만 되도록이면 부딪힐 건수를 스스로 피했다. 둘 다 성격이 직설적이라 그냥 참고 넘기는 법이 없어서였다. 몇 해 전 한 번의 큰 말다툼 뒤에 둘은 휴대폰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하지만 둘이 처음부터 견원지간인 건 아니었다. y가 재수 끝에 우리 대학에 들어왔을 때 입학식에서 처음 만나 끝까지 술자리를 같이한 사람이 k였다. 때마침 y의 생일이라 직접 케이크까지 준비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우정도 k의 소설 합평 이후 산산조각 나버렸다. 신입생이었던 y는 그동안 학내 문청들 사이에 칭찬 일색이던 k의 소설을 읽고는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k는 이미 기성 작가 대우를 받는 소설 분과장이었다. 2학년으로서는 파격적인 위치였다. 그만큼 학과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선배들은 그가 재학 중에 가장 먼저 등단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y는 창작 수업 시간에 많은 학생이 보는 앞에서“이건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해 여름, 보란 듯이 단편소설로 등단해 버렸다. 처음 쓴 소설이었다. 게다가 근래 남녀를 통틀어 최연소 등단자였다. 우리 문창과가 생긴 이래 재학 중에, 그것도 1학년으로서 등단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y는 문창과 내에서도 문단에서도 천재라 불렸다. 하지만 k는 y의 등단 소식을 전해 듣고는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곧바로 군대를 가버렸다. 한동안 잊혀졌던 k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교내 문창과 통폐합 사건 때문이었다. 그해 복학한 k는 재학생을 대표해 삭발식을 하였고 이를 막는 교직원들에게 항거하며 본관 옥상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목과 팔에 화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k는 전국의 문청들에게 의인으로 추앙받으며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로 이듬해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이에 반해 y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등단했지만 이후에 소설은 전혀 쓰지 않고 온통 연애에만 빠져 있었다. 바뀐 여자 친구만도 분기별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스타였기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예비 작가들이 많았다. 내가 편입했을 때도 그는 신춘문예 특별반의 멘토를 담당하고 있었고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후배와 깊은 사이였다. 문창과는 매년 연말, 신춘문예를 대비해 여타 고시처럼 시 소설 희곡 문학 전반의 스터디를 운영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소설 분야가 지망생도 많고 인기가 좋았다. 게다가 심사위원으로도 자주 참여하는 작가가 멘토가 되어 직접 지도를 하였기에 당선될 확률도 높았다. 나는 문학도 고시라는 현실이 내키지 않았지만 장학생 선정에 가점을 부여한다는 학내 방침에 어쩔 수 없이 스터디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터디 내내 y는 문학의 현 등단제도를 강력히 부정하며 소설 얘기는 하지 않고 오로지 내 신상에만 관심을 가졌다. 몇 번이나 집요하게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y를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주위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마지못해 그와 사귀게 되었다.
    y는 나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 뒤에도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기가 더 심해졌다. 학교에서 데이트를 할 때는 대놓고 여자 후배와 나의 외모를 비교하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로 인해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질 만큼 추락했고 마음속에서는 y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이 더 커져 갔다. 결국 y에게 나는 그만 이별을 고했지만 그는 여러 핑계를 대며 나와의 관계를 유보했다. 그 뒤로도 그의 집착은 계속 이어졌고 페이스 북에다 공개적으로 자살 예고까지 하였다. 나는 졸지에 나쁜 년이 되었고 학과에서도 선후배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없던 우울증까지 생겼다. 이에 나는 기존의 완강했던 태도를 바꿔 y에게 직접 손으로 편지까지 써가며 달래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스토킹은 갈수록 더 심해졌고 대담해졌으며 결국 당초 예고한 것처럼 마지막 소설을 남기고는 진짜로 목숨을 끊었다. y는 젊은 예술가답게 죽음조차 아름답기를 바랐다. 그의 소설은 발표 즉시 문단 최고의 이슈가 되었고 요절한 y는 문청들 사이에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k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소설 청탁이 끊긴 상태로 따로 수입이 없었다. k는 내 전화를 받고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약속을 잡았다.
    “그냥 글만 쓰면 되는 거지?”
    나는 영혼 없는 말을 내뱉듯 작게“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졸업하자마자 한 케이블 방송사 막내 작가로 취업을 하였다. 그러고는 신생 예능 프로그램을 맡았다. 프로의 제목은 <나는 00이다>였고 매주 그 분야의 달인이 출연해 실력을 뽐내는 형식이었다. 다음 주에는 예술가 특집으로 <나는 작가다> 편이 방송될 예정이었다. 담당 피디는 원래 출연 예정이던 유명 작가가 스케줄과 출연료 문제로 펑크를 냈으니 누군가 급히 메워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문창과를 나왔으니 아는 선배가 많을 거 아니냐며 직접 출연자 섭외를 맡겼다. 하지만 나는 등단도 하지 않았고 y 때문에 과에서도 줄곧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니 아는 작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다 발견한 것이 k였다. 그와는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과 행사 때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과대표에다 사교성이 좋았던 k였기에 여러 차례 격 없이 대화를 나눴었지만 y의 갑작스런 죽음 뒤로는 그마저도 없던 관계였다. 다행히도 그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의외다…….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
    k는 카페 구석 그늘진 창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내게 말했다.
    “프로그램 특성상 등단한 작가가 꼭 필요해서요. 제가 신입인 데다 피디가 사이코라서 어쩔 수 없이 선배에게…….”
    나는 프로그램 취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는 그에게 출연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감 때문에 바쁘지만 네 부탁이니 할 수 없지.”
    두 번째 작품 발표 이후로 소설 청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k는 끝까지 내 앞에서 자존심을 지켰다.
    “고마워요 선배.”
    나는 그와 모레,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백일장 주제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미 써놓은 대본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시청자들을 속일 순 없지.”
    k는 여전히 내 앞에서 멋있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생방송인 프로그램을 망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할까 봐 몹시 걱정되었다.
    나는 k와 헤어진 뒤 인터뷰를 위해 그가 발표했던 두 번째 소설을 읽어 보았다. 독서 내내 숨이 탁 막혀 왔다. 등단작과는 달리 문학적인 의미도 없고 재미 역시 없었다. 새로울 게 없는 지나친 엄숙주의 문학이었다. 그저 자신의 지식을 소수의 평론가들에게 뽐내려는 듯 아무것도 아닌 내용을 어렵게 빙 둘러 서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침대 맡에서 잠들기에 딱 좋은 지루한 소설이었다. k가 그동안 다수의 문예지로부터 청탁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촬영 당일 두 시간 전에 미리 만나 사전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만 k가 한 시간이나 지각을 해버렸다. 담당 피디의 잔소리 속에 나는 허겁지겁 그와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k는 카메라 앞에서 다소 긴장한 듯 보였다. 게다가 어제 밤을 샌 건지 깊은 다크 서클에 피부 상태도 좋지 않았다. 단순히 안경과 화장으로 가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촬영감독은 고독한 작가 콘셉트에 잘 어울린다며 내 속도 모르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질문은 평이했다. 가령 소설은 어떻게 쓰느냐 정도. 하지만 그의 대답은 황당했다. 모 대가처럼 손이 아닌 엉덩이로 쓴다고 말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였다. k는 소설은 잘 아는 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했다. 캠코더로 촬영 중이던 에프디는 짧고 담백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답은 그런 게 아니다. 뭔가 깊이 있으면서도 멋진 비유가 섞인 난해한 말이다. 아무나 소설이라는 창작 영역에 쉽게 범접할 수 없도록 하는. 괜한 생심을 일으키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존속케 하는 견고한 말. 사람들은 이른바 예술을 원했다. k는 내 바람과는 달리 솔직히 모르겠다며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당 피디는 그동안 방송된 프로그램 포맷과는 다르게 스튜디오에서 대결 형식으로 큐시트를 짰다. 게다가 k와 맞붙을 상대도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였다. 이름은 카프카 주니어였다. 미국의 한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야심작으로 내놓은 인간의 감정을 가진 운영체제로 이미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뒤 그 필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로 쓴 소설이었다. 영어보다 단어가 풍부하고 수식어가 다양한 한글이기에 자동번역기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표현해 줄지 의문이었다. k는 카프카 주니어에 대한 내 설명을 듣고는 코웃음을 쳤다.
    “기계 따위가 어떻게 인간을 이길 수 있겠어?”
    그는 소설 창작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예술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니 아무리 지능이 높고 감성이 풍부한 컴퓨터라 할지라도 고귀한 인간인 작가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k의 넘치는 자신감과는 달리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불안해졌다. 그에게 체스 세계 챔피언을 수차례 꺾은‘딥블루’나 퀴즈쇼에서 우승한 슈퍼컴퓨터‘왓슨’을 예로 들며 방심은 금물이라며 조언을 했지만 k는 내게 아마추어 같은 발상이라며 걱정 말라고 웃었다. 그러고는 카프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며 기계와의 첫 창작 대결을 재밌어했다.
    “나 너 좋아했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는 내게 고백하듯 슬쩍 말을 던졌다. 나는 뜬금없는 그의 말에 잠시 정신을 놓고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무엇보다 어렵게 따낸 인터뷰를 이대로 망치고 싶진 않았다. 빤히 쳐다보는 k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색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밖에 있던 피디가 생방송 시간이 다 됐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고는 사전에 홍보한 만큼 높은 시청률이 나와야 한다며 최대한 재미있고 자극적으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k는 말없이 뚜벅뚜벅 스튜디오로 향했다. 피디의 주문과는 달리 평소 재미와는 거리가 먼 글을 써왔기에 나는 그저 k가 안쓰러웠다. 그는 시청률의 노예인 담당 피디의 도구가 되기엔 가엾게도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남자였다. 그의 때늦은 고백이 계속 귓가를 맴돌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천장에 달린 조명에 불이 켜지고 스튜디오 방청석에는 각 대학의 문창과에서 동원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 대학 후배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일제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노트북 앞에 뻘쭘하게 앉아 있는 k를 쳐다봤다. 그는 긴장된 모습으로 방청객들을 쭉 둘러보고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수차례 닦았다. 스튜디오 안은 무척 더웠다. 여름이지만 에어컨은커녕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방청객들이 연이어 손부채질을 했다. k의 옷 역시 이미 땀으로 흥건했고 애써 한 메이크업도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그는 연신 물을 들이켜며 초조해했다.
    피디가 큐사인을 주자 사회자가 나와서 k를 소개했다. 물론 과장된 프로필이었다. 그는 졸지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유명 작가가 되어 있었다.
    “작가님,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나요?”
    베스트셀러는커녕 단행본조차 내본 적이 없는 k였다. 인기 개그맨인 사회자 특유의 장난스런 말투가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그를 마치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굳은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k를 보며 방청객들이 일제히 수군댔다. 그러자 사회자가 기지를 발휘해 k와 대결할 인공지능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카프카 주니어는 마치 우리와 대화를 나누듯 낯선 기계음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있을 법하지 않게 쓰면 된다.”고 했다. 놀란 방청객들이 노트에다 이를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k는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나는 창작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순수문학이냐 장르문학이냐의 절대적 이분법이 사라진 지금, 좋은 소설이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모든 걸 거꾸로 낯설게 하기. 그 나름의 모범 답안이었다. 물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데는 유명 출판사와 대형 서점의 입김이 필요한 게 현실이지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백일장 주제를 발표했다. 제시어는 친구였다. 뭔가 친숙하면서도 애매하게도 광범위한 주제였다. k의 표정이 좀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집필에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60분이었다. 나머지 30분은 명망 높은 평론가가 출연해 작품을 평하면서 방청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카프카 주니어는 곧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일필휘지였다. 컴퓨터가 쓴 글이 곧바로 화면에 전송되자 시청자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주로 기계가 쓴 글에 대한 호기심과 예찬이 주를 이었다. 이에 반해 k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십여 분을 명상으로 보냈다. 글감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우 신중하게 플롯을 짜는 그를 보니 장인정신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완성까지 시간이 촉박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대본을 들고 지켜보는 나뿐만 아니라 조정실에 있는 피디 역시 초조해 보였다. 검증되지 않은 그가 괜히 프로그램을 망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k는 이내 눈을 뜨더니 영감이라도 받은 듯 뻔득이는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y였다. 그리고 회고 형식의 고백체였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쳐나가는 k의 손에 온통 시선을 모았다.

 

    내가 y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친구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그건 정말이지 특별했다. 마치 숙명적인 인연을 예고하듯 그를 만날 때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마구 가슴이 떨렸다. 무엇보다 그의 짙은 감수성과 넘치는 지적 매력이 한동안 정체됐었던 나를 온몸으로 자극했다. 그는 심연에서 건져 올린 한 마리의 요동치는 활어 같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호의마저도 그의 첫 소설을 읽었을 때 연기처럼 사라졌다. 문우들은 나와 y가 대립하게 된 계기가 소설 합평 수업인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르다. 물론 당시에 기분은 상했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냉정한 그의 평이 마음에 들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끔 하였다. 문제는 그의 등단작이었다. y는 공모전에 투고하기 앞서 내게 소설을 보여주었고 나는 첫 문장부터 일련의 기시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남미의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리고 교묘했다. 이밖에도 미국의 폴 오스터와 『적과 흑』의 스탕달이 연이어 떠올랐다. y는 대문호들의 명문장과 멋진 캐릭터를 적당히 짜깁기해 감쪽같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물론 몇몇 사유는 빛났다. 내가 조심스레 표절의 위험성을 경고하자 그는 덜컥 화를 냈다. 세상 아래 새로운 건 없다며 내게 소설 읽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는 오직 소설이란 형식을 특정 짓는 건 사유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에 나는 y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소설적 문장은 둘째치더라도 주제 형상화조차 유사한 것을 보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나의 비판을 질투라고 단정 지으며 전과 달리 적대적으로 대했다. y는 이미 자신을 ‘이상’보다 더 뛰어난 천재 작가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슷한 필명도 이미 지어 놓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문학청년의 한낱 치기로 여기기엔 그의 소설은 웬만한 기성작가보다 좋았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소설은 표절이다. ‘미메시스’ , 창조적 모방 같은 소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그리스 시대에나 통할 유물이었다. 결국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아니면 갱생될 수조차 없는 인간쓰레기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하지만 우습게도 그는 한 번에 당선되었다. 그것도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문학 출판사로 말이다. 나는 절망했다. 나 외에는 전부 바보들 같았다. y는 그런 나를 비웃으며 시상식에 초대했지만 나는 곧바로 자원입대를 하였다.

 

    y의 필명이 등장하자 방청객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문창과 학생들 사이에 전설 같은 존재였다. 몇몇은 그럴 리가 없다며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얼굴을 붉히며 더는 음해하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내는 학생도 있었다. 그녀에게서 당장이라도 물병이 날아올 것만 같았다. 시청자 게시판 역시 반응이 뜨거웠다. 누리꾼들끼리 서로 편을 갈라 설전을 벌이며 그를 비난하기도 옹호하기도 했다. y는 죽은 후에도 인기 아이돌처럼 상당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다. 피디는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k가 잠시 집필을 멈추고 다시 명상에 잠긴 사이, 피디는 서둘러 논란이 되고 있는 y의 등단작을 자료 화면으로 띄웠다. 친절하게도 심사평과 함께 그의 시상식 장면도 방송으로 내보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y의 얼굴이 왠지 낯설었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그의 얘기를 알고 난 다음에서였을 것이다. 나 역시 아직은 긴가민가했지만 무작정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아니기에 일단 k의 말을 믿고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k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켠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노트북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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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은 끔찍했다. 원치 않은 시기에 간 군대는 나를 더 고립시켰다.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했고 약간의 조울증도 생겼다. 하지만 그 시간 덕에 잠재되어 있던 문학적 갈증을 경험했고 보다 더 절실해졌다. 나는 정말이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 종이에 인쇄된 문자 하나하나가, 취침 전 복무수첩에 일기를 끄적일 수 있는 자유의 순간들이 마냥 소중했다. 겨울이면 무릎 위까지 쌓이는 강원도의 눈을 바라보며, 나이 어린 고문관 선임에게 이유 없이 갈굼을 당하며,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장애물들로 인해 내 속의 내가 더 성장하였다.
    y는 예상했던 것처럼 절필 상태였다. 쏟아지는 문예지 청탁에도 그는 글이 아닌 여자에게만 온통 눈이 팔려 있었다. y는 문학을 진정 사랑했다기보다는 애초에 문학이 지닌 허울과 허영만 좇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해 작가가 되기보단 등단으로 스타가 되고 싶은 속물이었다. 그를 뽑은 심사위원들이 저주스러웠다. 그들은 최소한 ‘클리셰’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방청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더 이상 y를 욕되게 하지 말라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k는 주춤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다음 문장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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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복학한 후 y를 만났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시상식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여전히 얼굴빛이 좋았지만 속은 곪아 있었다. y는 자리가 파할 때쯤 그동안 자신이 ‘스토리 헬퍼’의 도움을 받았다고 내게 고백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사람인 줄 알았다. 아마 우리 학교 출신의 명망 있는 선배 소설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토리 헬퍼는 작가가 쓰고 싶은 플롯과 주제에 관한 문항을 설정하고 이를 입력하기만 하면 수십 가지 이야기 샘플을 보여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아이디어를 수집해 스토리를 체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저작 도구였다. 특히 막연했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서 그의 빠른 등단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y는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다. 작가로서 어디까지가 순수한 창작 영역인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 선의 경계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나를 보며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y는 테이블에다 담배를 비벼 끈 뒤 더 이상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문단 내에서 신화처럼 형성된 자신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워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며 못 먹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평소 그의 태도로 봤을 땐 이 모든 게 위선처럼 느껴졌지만 어쨌든 y는 술기운을 빌려 내게 그동안의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무척 후련해했다. y는 아직도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며 나 역시 이에 걸맞은 비밀 이야기를 해주길 은근히 바랐다. 나는 순간 그에게 극도의 친밀감을 느꼈는지 아님 뭔가에 홀렸었는지, 결국 가슴 속에 묻어 뒀던 한 사람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는 우리 과 편입생인 유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바보같이 고백해 버렸다.

 

    내 이름이 k의 글에 등장하자 피디와 스태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어디로든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k는 이런 나의 불편한 심정도 모르고 글을 계속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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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는 y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자다. 하지만 먼저 좋아한 건 나였다. 그는 내가 유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보다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다니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는 궁지에 몬 뒤 사냥감처럼 쟁취했다. y에게는 유나도 한낱 놀이에 불과했다.
    나는 또 한 번 절망했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첫사랑과도 같은 유나를 친구에게 빼앗긴 뒤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폐인으로 지냈다. y는 그런 나의 불행을 보며 마치 게임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개새끼.”
y를 생각하니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남아 있던 죄책감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나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피디는 그새 자막으로 유나는 이 프로그램 작가라고 띄웠다. 방청객들이 나를 찾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청자 게시판도 다시 뜨거워졌다. ‘유나는 악녀다’부터 ‘작가계의 팜 파탈’이라는 말과 함께 인신공격성 글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러자 악몽 같은 대학 시절이 떠오르며 마치 비틀스 리더 존 레논의 아내인 오노 요코가 된 기분이었다. 한동안 깊이 봉인되었던 y를 끄집어낸 k가 그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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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의 시간이었다. 군복무 때보다 더 암울했던 시기, 나를 구해 준 건 ‘카뮈’였다. 나는 그의『이방인』을 필사하며 실존을 생각했다. 그리고 부조리에 분노했다. 때마침 학교에서 우리 과를 없애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들은 여러 합당한 이유를 내세우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졸속이었고 절차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학생은 배제되었고 그 어떤 소통도 없었다. 게다가 교수님마저도 이에 반대하다 해고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총장과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학교의 일방적인 종속에 맞서 전사가 되어야 했다.

 

    카메라가 화상 자국이 선명한 k의 목과 팔을 클로즈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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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나의 극단적인 행동을 보고 ‘쇼’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2병이라 놀렸다. 하지만 그들은 비겁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런 빈껍데기 지식인들이었다. 칸트처럼 나는 내 의지에 격률에 따라 행동했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지금에 와서야 밝히지만 나는 오직 내가 경험한 사실만 소설로 쓸 수 있다. 모두 허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다. 그게 수필이든 사소설로 불리든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그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진실만 문학적인 가공을 거쳐 풀어낼 뿐이다. 그러니 평론가들이 아닌 다수의 일반 독자에게 나의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기 중이던 유명 평론가가 방송을 보며 움찔했다. 피디는 y의 등단작처럼 k의 소설도 방송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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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신인상으로 등단을 하자 y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론 축하 전화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y는 죽음마저도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목숨을 거래했다. 하지만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더 이상 그의 계략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고 엮이기도 싫었다. 통화가 끝날 때쯤 y는 유나 얘기를 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담보로 협박하듯 제안을 해왔다. 그는 내게 소설을 한 편 써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누구를 위해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쓰기 싫은 소설을 억지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유나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녀가 세상 끝에 내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더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고 그것이 y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시청자 게시판이 접속자 폭주로 끝내 다운되었고 대다수의 방청객이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가슴이 미칠 듯이 뛰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대본을 쥔 왼손은 땀으로 가득 찼다. 피디는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보며 크게 미소를 짓더니 y의 소설을 자료 화면으로 띄웠다.
    소설은 평소 k의 작법 스타일과 달랐다. 그의 주장이 맞으려면 그동안 자신이 써왔던 글과 조금이라도 유사한 패턴을 보여야 하는데, 이 소설은 y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피디는 y를 가르쳤던 교수에게 전화 연결을 시도했고 긴 통화연결음 끝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누가 봐도 y의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문예지에 발표하기 전에 y가 이 소설을 들고 자신을 찾아왔었다고 했다. k는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당당하고 태연했다. 시청자들은 그를 가리켜 소시오패스라며 비아냥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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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분명 소설을 썼다. 다만 그건 내 소설이 아니다.
그 소설은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다. 나는 언젠가 그렇게 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나를 깨야 했다. 편협한 나를, 갇혀져 있던 나를 우물에서 건져내야 했다. 일단 고향인 서울을 떠났다. 도시를 벗어나 당선 상금으로 한적한 시골에 두 평짜리 작업실을 마련했다. 전화를 끊고 책상 대신 휠체어에 앉아서 불편하게 글을 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휠체어는 내게 감옥이 아닌 우주가 되었고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일말의 재능이 점차 장애로 뒤바뀌면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감이 아닌 몸으로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르게끔 도와줬다. 독서와 공부를 병행한 끝에 내공이 쌓이자 글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소설은 내게 노동이 아닌 생활이 되었다.
    글을 쓰며 창작의 고통을 논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고통은 욕심 때문에 생기는 벌이다. 나는 신인이기에 실수를 한다. 그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의 나를 인정했다. 그리고 꾸준히 열심히, 그냥 썼다. 놀랍게도 소설 속 인물들이 점점 내 펜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글쓰기 외의 시간은 아름답고 투명한 밤하늘을 보며 보냈다. 그렇게 밭에 누워 가만히 별을 세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끽한 휴식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마지막 문장이 나왔다. 그건 정말이지 황홀한 경험이었다.

 

    “나는 평생을 유랑하면서 보냈고, 누군가에게 해줄 말 같은 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y의 소설이면서 k의 소설이기도 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사이 카프카 주니어의 글도 완성되었다. ‘디 엔드’라는 기계음과 함께 컴퓨터가 마침표 부호를 찍자 방청객석에서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다.
    잘 팔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 약을 먹고 뇌기능을 백 프로 활용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최근에 접한 적이 있다. 그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망상 같았지만 과학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내심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아닌 기계가 쓴 글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걸, 생각이라는 걸, 상상력이라는 이 모든 사유를 기계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고, 조언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카프카 주니어가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에 휩싸였다. 친구라는 주제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방금 작성한 글과 y의 소설이 세부 묘사를 포함해 상당부분 일치했기 때문이다. k의 가슴에서 나왔다는 마지막 문장 역시 단어 선택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했다. 순간 객석이 술렁이면서 의견이 분분했다. y의 소설이 기계가 흉내 낼 만큼 완벽하다는 주장과 함께 k의 말처럼 y가 마지막 소설마저도‘스토리 헬퍼’의 힘을 빌렸다는 설. 아님 k가 처음부터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역시 기계의 도움으로 소설을 썼다는 등 다양한 얘기들이 방송 전파를 타고 마구 쏟아졌다. 스튜디오는 동네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급기야 통제가 필요해졌다. 때마침 사회자가 다시 등장해 k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k는 이를 거부한 채 글을 마저 이어 나갔다. 방송 사고였다. 피디가“엔지”를 크게 외쳤지만 막무가내였다. 다른 스태프들도 생방송 중이라 더는 어쩌지 못했다. 그냥 넋 놓고 k의 다음 이야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y에게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연락하였다. 그는 내가 한동안 보이지 않자 몰래 잠적한 걸로 여기며 포기하고 있었단다. y는 기쁜 나머지 서울에서 꽤나 떨어진 나의 작업실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왔다. 그는 내 소설을 읽더니 마치 자기가 쓴 소설 같다며 흡족해했다. 다만 군데군데 드러나는 심리 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죽여 보지 않고서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도저히 잘 쓸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젓자 그는 자신을 죽여 보라고 말했다.
    y는 이미 제대로 미쳐 있었다. 자신과 작품을 동일시하며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리고 예술을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바칠 기세였다. 물론 그가 얼마 전에 공개적으로 자살을 예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유나를 붙잡기 위한 남자의 허세라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그는 갈망했다. 단순히 웰 메이드를 넘어서 완전한 미학을. 그의 손은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떨렸고 두 눈은 영혼을 잃은 지 오래돼 보였다. y는 실체 없는 유령 그 자체였다. 그는 죽어서 신화가 되길 원했고 나는 그렇게 유령을 죽였다.

 

    나는 k의 얘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사건 정황상 진술이 상당부분 일치하지만 모두 다 사실로 단정하기엔 그 사안이 너무도 컸다. 그는 전 국민이 보는 생방송에서 살인을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능이 졸지에 다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청률은 폭등했다. 피디는 자신이 그동안 했던 여느 방송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는 광고주와 통화하며 연신 즐거워했다. 스태프들 역시 이제까지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다며 k를 섭외한 나를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헛헛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시청률의 노예 같았다.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방청객이 경찰에 신고해 형사가 급히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형사 역시 방송을 계속해 지켜보고 있던 터라 따로 자초지종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수갑을 든 그는 다른 방청객들처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서서 k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하지만 y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은 철저히 자살로 위장되었다. 이 자리에서 자세한 살인 방법은 생략하겠다. 물론 그를 내 손으로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y를 위해 평생의 짐을 떠안고 참회 속에 살아갈 만큼 우정이 두터운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완강히 거부하던 나를 분노케 한 건 역시 유나의 일이었다. 그는 유나를 강간하고 찍은 사진을 세상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y는 비겁한 방법으로 살인을 유도했고 나는 거기에 바보처럼 당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는 죽어서도 내게 승리하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그의 왜곡된 명성이 나의 고백을 통해 바로잡히길 바랄 뿐이다.

 

    k는 글을 마무리한 뒤 노트북 전원을 끄고는 옆의 종이에다 무언가를 한동안 끄적였다. 그리고 준비한 약을 삼키고는 그대로 강하게 혀를 깨물었다. k의 입에서 흐르는 피가 방송 전파를 타고 여과 없이 중계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 그저 다들 얼어붙은 채 멍하니 현장을 쳐다만 봤다. 정신을 차린 나는 전원실로 달려가 곧바로 두꺼비집을 내렸다.
    스튜디오는 정전으로 온통 어둠만 가득했다. 나는 안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켠 뒤 k를 부축해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k는 과다출혈과 쇼크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였다. 혀를 깨물기 전 먹은 약은 다름 아닌 청산가리 캡슐이었다. 병원에선 곧바로 위청소를 실시했지만 그는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 나는 가족이 모두 지방에 있는 그를 한동안 정성껏 간호했다.
    피디는 자살방조의 도의적 책임을 물어 파면 조치되었다. 그리고 방송사는 광고주로터 억대의 손해배상청구를 당했다. 사건의 여파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나는 다시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러고는 스태프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가며 k가 마지막에 손으로 직접 쓴 종이를 어렵게 입수했다. 지금의 그에게 그것은 유서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궁금할 것이다. 살인자의 심리에 대해서. 사람을 죽인 뒤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하고. 그러나 막상 y를 죽인 뒤에도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깨달았다. 실제 살인자가 작가인 나라고 할지라도 심리 묘사는 그 어떤 수로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사실 심리 묘사도 작가가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구성한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완벽한 심리 묘사란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y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답이었다. 나는 소설 속 심리 묘사를 모두 없앴고, 예상대로 y의 유작은 굴지의 문학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사의 역작으로 이름을 남겼다.

 

    k의 유서를 통해서도 y의 소설을 둘러싼 소문의 진위 여부가 끝내 밝혀지지 않고 미궁 속에 갇혔다. 카프카 주니어 역시 거세게 논란이 일자 업체에서 일괄 폐기해 버렸다. 단지 y의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본 몇몇 시청자만이 소설가 보르헤스가 노년에 한 인터뷰를 그대로 따왔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의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k는 말없이 깨지 못하는 잠을 자는 중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곤히 잠든 그를 보며 어쩌면 k가 진짜 소설을 쓰는 기계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k가 유서 끝에 휘갈겨 쓴 문장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고는 원고를 우편 봉투에 담아 뚜벅뚜벅 우체국을 향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 『소설의 이론』 중에서.

 

 

 

< 선정평 >

 
    작가와 기계의 소설 쓰기 대결, 한판의 승부와 생중계라는 흥행 요소를 소재로 이 시대의 소설의 의미와 공공연한 관음증이 된 SNS의 세계를 그려낸 수작임.
 
    서하진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중고 신인으로서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렇게 선정되어 무척 감사하고 기쁩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제 방에서 소설을 마감하면서 그 아쉬움으로 소설 쓰는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작품의 소재를 구상한 건 꽤 오래 전인데 구체적으로 구성을 짜고 주제를 잡은 것은 올해 봄부터입니다.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가짐이 이 소설을 탄생시켰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창작을 위한 음악은 따로 듣지 않고 그저 고요함을 즐기며 제 방에서 글을 씁니다. 저는 제 타자 소리가 어느 음악보다 좋습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얼마 전까지는 있었는데 지금은 제 분신을 만들어 첫 번째 독자라고 생각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처음 등단했을 때는 성에 관한 주제로 작품집의 소설들을 완성해나갈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사람 냄새 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최근 탈고하고 아직 발표하지 못한 소설이 있는데 공상허언증 환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성혁 (소설가)
 

1983년 대구 출생. 제3회 《세계의 문학》 신인상 등단.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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