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소설] 심사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심사

 

 


조영한

 

 

 

 

    심사는 벌써 열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한 명을 빼고는 모두들 턱시도 차림이었고 눈가와 이마에 깊거나 얕은 주름이 나 있었다. 다섯 명은 콧날이 높고 동공이 파랬으며, 세 명은 모래색 살빛에 눈매가 가늘었고, 나머지 한 명은 콧수염을 입술에 닿을 만치 기른 흑인이었다. 아홉 개의 갓등이 달린 샹들리에에서 따듯한 불빛이 흘러내렸으나 실내 분위기는 불빛의 밝기와 상관없이 차가운 편이었다. 눈빛이 파란 노인들이 주로 의견을 내놓았고 모래색 노인 두 명은 상대의 의견을 가능한 반박하려 했다. 서로 다른 억양의 영어가 오가는 실내로 담배 연기가 자우룩이 차올랐으며, 원탁에 놓인 물 컵들은 노인들이 매워진 입내를 가시려 하도 물을 마시는 바람에 모조리 텅 비어 있었다.
    모래색 피부를 가진 김은 가느다란 에쎄를 피우며 손목에 찬 가죽시계만 흘긋댈 뿐, 좀처럼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의 양옆에 앉은 모래색 노인 두 명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도움을 바라는 눈길을 보냈으나, 김은 가급적 침묵을 지키려고 했다. 논의의 주도권이 눈 푸른 노인들에게로 옮겨오면서 모래색 노인들 앞에 있던 크리스털 재떨이에는 불씨만 남은 꽁초들이 부쩍부쩍 쌓여 갔다. 콧수염 기른 흑인도 대화에 몇 차례 참여하려 했지만 번번이 말허리가 잘리는 바람에 손자국이 난 물 컵만 하염없이 만지고 있었다. 눈빛 파란 노인들 중 볼살이 늘어진 영국인 노인이 정확한 영국식 악센트가 느껴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나는 고모리 선생이 하루키를 그리도 싫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동향 아닙니까?”
    고모리라 불린 노인은 대머리에 눈썹도 없었고 콧날이 구부러져 어딘지 고집스럽고 예민해 보이는 이였다. 고모리는 정맥이 불거진 이마 가장자리를 피가 나올 만큼 긁더니 고개를 저었다.
    “앳킨슨 씨, 나는 하루키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말한 바지만, 나는 그를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상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째서입니까?”
    “나처럼 고루한 사람이 보기에 이 상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다수의 독자들에게 선택 받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고전에 값하는 걸작을 쓰는 작가들 말이죠. 제가 보기에 하루키는 쇼스타퍼(showstopper)이자, 보기 드문 시장의 위너(winner)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하루키는 상이란 후광이 없더라도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작가입니다.”
    “그렇다면 잘 팔리는 작가들은 이 상의 후보에 거론치도 말라는 말씀입니까?”
    “꼭 그런 말은 아닙니다만.”
    고모리는 벌게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어쨌거나 나는 이 상이 시장의 위너보단 위대한 도덕주의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림원은 그동안 주로 헤르타 뮐러나 임레 케르테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상을 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번에도 그와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김은 뚜껑이 닳은 만년필을 입술에 물고는 고모리를 쳐다보았다. 앉은키로 보아 백오십 센티가 될까 말까 한 체구에 팔다리와 목은 깡말랐고 엉덩이에만 군살이 펑퍼지게 올라 있었다. 운동을 멀리하고 의자에만 앉아 있기를 버릇한 사람의 몸매였다. 김도 물렁살이 오른 자기 엉덩이를 만지며 한 달 전 보았던 화질 좋은 유튜브 영상을 기억했다. 고모리와 그보다 키가 큰 한 떼의 사람들이 반핵(反核)이라 쓴 피켓을 들고 도쿄 시내를 행진하고 있었다. 십오 분짜리 영상의 끝에는 고모리가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선 채 시민들에게 뭔가를 읽어 주는 장면이 나왔다. 고모리 뒤에는 오에 겐자부로나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자국의 저명한 작가들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스무 명 남짓한 작가들과 팔십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광경을 담아낸 영상의 조회 수는, 정확히 구십구였다.
    앳킨슨이 반론을 내놓으려 하는데 김의 오른쪽에 있던 노인이 손을 들었다. 턱이 각지고 뒷머리가 짱구인 탄샤오란 중국인이었다. 탄샤오는 가래 낀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드센 억양으로 말했다.
    “그러면 하루키가 아니라 우엘벡을 선택하면 어떻겠습니까?”
    루쉰이나 바진과 같은, 대가이긴 하되 오래전에 잊힌 이름들만 읊던 입에서 우엘벡이라는 말이 나오자 콧날 높은 노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잠깐 어렸다. 클라비에라는 프랑스 노인만 그 제안이 나쁘지 않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져온 서류에 뭔가를 적었다. 앳킨슨은 늘어진 볼살과는 대비될 만큼 고운 양손을 휘휘 내저었다.
    “우엘벡은 이제 갓 오십을 넘긴 작가 아닙니까. 이런 영예로운 상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게다가…… 그는 얼마 전에 「지지도와 영토」로 자국에서 공쿠르 상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지금 특정 작가에게 연이어 상을 몰아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탄샤오는 앞머리를 한 번 쓸었다.
    “몇 년 전 터키 작가인 오르한 파묵도 우엘벡의 나이에 이 상을 받았습니다. 카뮈나 키플링은 무려 사십대에 이 상을 받았구요. 우리가 언제부터 연령에 신경을 썼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게다가 한 작가가 상을 몰아서 받는 게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닐 텐데요. 누군가 상을 몰아서라도 받아 주어야 서점가나 출판사도 먹고살 게 아닙니까.”
    마지막 말에는 다분히 익살이 섞여 있었기에 고모리는 원탁을 치며 크게 웃었지만 나머지 노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앳킨슨은 할 말을 잃은 듯 원탁에 있던 담배 보루를 하나 뜯었다. 그는 벌써 세 갑 넘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끝에 허리가 꼿꼿하고 이마가 유난히 넓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탄샤오 선생, 선생의 생각처럼 나 역시 우엘벡이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이만큼 우리 유럽인이 몸담은 사회의 병폐와 절망을 치밀하게 그려낸 작가도 아마 드물 거요. 하지만 그는 자기만의 상처를, 마치 우리 모두가 느끼는 고통처럼 과장할 때가 있어요. 그 과장은 문학적으로 제법 성공적일 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그의 어느 작품에서 보았던, 새로운 인류가 근 미래에 나올 거라는 망상은 그리 설득력도 감응력도 없었어요. 그의 망상에는 빛나는 통찰력도 스며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의 투정과도 같은 좀스러운 불평이 훨씬 더 많지요. 게다가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과학적 지식이나 사회의 풍속도는 엄밀성과 사실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요컨대 그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단점도 많은 작가입니다. 내가 그를 수상자로 밀지 못하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김은 그때껏 물고 있던 만년필을 입에서 빼더니 나름의 논리를 갖추어 말하는 독일인 노인을 눈여겨보았다. 그의 이름은 한스로 독일계 유대인이었으며 청소년 시절에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이였다. 김이 기억하는 바로는 한스의 필력은 그리 빼어나다고 할 수 없었으나 어쨌건 그는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고 지금은 평단의 교황이라고까지 불리는 실세였다. 탄샤오는 흥분을 했는지 눈앞에 어른대는 파리 떼를 쫓듯 거친 손짓을 보이며 말했다.
    “한스 씨, 나 역시 우엘벡의 소설에 그러한 결점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선생이 발 디딘 유럽의 이면을 제대로 들추어냈다는 것은 방금 전 선생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까. 욕망을 자유로이 추구하도록 권하면서 실은 욕망이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 그 동네에서 지금 우엘벡 말고 누가 그런 걸 제대로 형상화했답니까? 있다면 말을 좀 해보시죠.”
    탄샤오의 말에 한스는 눈을 치켜떴고, 그런 한스에게 앳킨슨은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클라비에도 내내 짓고 있던 미소를 거두더니 원탁을 두드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앳킨슨은 한스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고 나서 중국 내 감옥에 수감된 양심수들 일부를 ㅡ 정확히 그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뭉뚱그려 ㅡ 얘기하더니 사회주의 국가의 강압적 통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우려스런 기색을 보였다. 탄샤오는 파찰음 도드라진 목소리로 그 얘기가 여기서 지금 왜 나오느냐며 삿대질을 했다. 뒤이어 나온 탄샤오의 말에는 중국어와 영어가 섞여 그 뜻을 잘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푸념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노인들의 격한 말이 오가는 중에도 김은 어느 대화에도 끼지 않고 관찰자의 태도만 한결같이 유지했다. 벌써 열 시간 넘게 지켜본 풍경이라 재미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었다.
    소란한 분위기를 정리한 사람은 이번에도 의장이었다. 의장은 원탁 맨 오른쪽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홀로 터틀넥 스웨터 차림에 남들처럼 구두가 아닌 새하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의장은 처음에는 손으로 원탁을 두드렸다가 나중에는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노인들은 대화를 멈추고 저마다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주변이 정리되자 의장은 휘파람 소리와는 다른 나긋한 말투로 휴식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노인들이 하나둘 방 밖으로 나가면서 실내에는 김과 의장만 남았다. 의장은 새치 하나 없는 머리를 조심스레 만지며 원탁에 놓인 서류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스웨덴 출신인 의장은 심사에 참석한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노인답지 않게 딱 바라진 어깨에 군살 없이 날렵한 몸매를 지녀 청년같이 보였다. 김은 의장을 스쳐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난 통유리를 향해 걸어갔다. 통유리 양끝에 쳐진 비로드 커튼에는 왕가(王家)를 상징하는 독수리 무늬가 금실로 수 놓여 있었다. 유리 바깥에는 회색빛 풀들이 깔린 정원이 보였으며, 무딘 화살촉을 닮은 관목들이 석조로 지은 입구까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한림원 입구는 아치형 구조였고, 멀리서 보아도 키가 커 보이는 수십 명의 무장 경비들이 입구 안팎으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김은 바깥의 경치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원탁으로 되돌아왔다. 의장은 서류에 쓰인 내용을 읽으며 머리가 아픈 듯 간간이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김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하려다 문득 아침에 보았던 회의실 왼편을 주시했다. 검붉은 벽돌들을 쌓아 만든 내벽 한가운데로 스크린을 닮은 초상화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초상화는 색을 입히지 않고 붓으로만 그려져 매섭고 단호한 느낌을 자아냈다. 화폭에 그려진 남자는 머리가 벗어지고 코밑과 턱밑에 무성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육식을 즐겨 해온 사람처럼 비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쌍꺼풀 없는 두 눈은 가늘디가늘었고, 굳게 다물린 입술은 펜으로 거칠게 마무리를 한 듯 왠지 부르튼 것처럼 보였다. 김은 초상화 오른쪽 하단에 필기체로 쓰인 Alfred 란 글씨를 읽고 손등에 난 소름을 벅벅 긁었다. 의장은 살갗 긁는 소리를 듣고는 그제야 김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선생께선, 시먼스 선생과 함께 이 상의 심사에 처음으로 참여하신 거지요?”
    김은 콧수염 기른 흑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장은 입술을 당겨 웃고는 왼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한 바퀴 돌렸다.
    “한국인이 이 상의 심사에 참여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요. 말씀을 아끼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 주시죠. 그래야 좋은 의견도 많이 나오고, 심사비도 더 받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의장은 할 말만 건네고 다시 서류에 눈길을 기울였다. 김은 의장의 부드러운 말투가 어딘지 강압적이라고 느꼈으나 크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주름진 거죽에 덮인 김의 양손이 팔걸이를 그러쥐었다. 의장은 그의 반응이 어떠하든 간에 서류를 검토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회의실로 노인들이 몰려왔다. 의장은 자리를 채운 노인들을 의아한 눈으로 보다가, 노인들 꽁무니를 따라 들어온 수행원으로부터 국왕이 이곳에 다 왔다는 소식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김은 담배를 태우던 중 원탁에 둘러앉은 그 누구도 흡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연기를 머리 위로 뿜어 올렸다. 노인들이 전보다 숙어든 말투로 의견을 나누는 동안, 의장은 오늘 처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통유리로 걸어갔다. 김도 담배를 끄고 의장의 뒤를 따랐다. 의장은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눈치를 보냈으나 김은 일부러 무시한 채 바깥을 굽어보았다.
    아치형 입구 뒤쪽으로 연둣빛 승용차 두 대와 말 탄 근위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비들은 차들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례를 붙이며 왕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차들은 모두 납작했고 보닛에는 희고 노란 색이 엇갈린 국기가 꽂혀 있었다. 의장은 국왕이 탄 차는 기름을 먹는 차들과는 달리 전기가 동력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차라고 설명해 주었다. 김은 대답 없이 뿔 달린 쇠 투구를 쓰고 코발트색 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총을 등에 멘 채 암갈색 말에 올라타 있었는데 어딘지 고대의 삼엽충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후임병인 병사가 말에서 내려 앞차의 문을 여니, 녹색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은 국왕이 밖으로 나왔다. 차림새만 보면 왕이라기보다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여느 일상인의 모습이었다. 국왕은 심사에 참여한 노인들과 나이가 비슷한 듯했으나 허리가 굽지 않고 흰머리가 없어 나이보다 젊게 보였다. 국왕이 차에서 내리자, 뒤차에서도 쇼핑백과 상자를 든 금발의 여인들이 나와 국왕의 뒤를 따랐다. 그녀들은 왕궁에서 근무하는 국왕의 시녀들이라고 했다.
    김은 두 달 전 고국의 어느 잡지에서 본 외신을 기억했다. 기사는 컬러 사진 열댓 장을 곁들여 국왕과 재벌들, 마피아 두목들과 이십대 여자들이 호텔 지하에서 파티를 벌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기사는 B급 잡지답게 비문과 오문이 많아 읽기 어려웠지만 사진들은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만큼이나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진에 나온 여자들은 ㅡ 지금 보이는 시녀들 같기도 했고 심지어 그보다 더 어려 보이기도 했는데 ㅡ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가운만 걸친 채 남자들 곁에 앉아 있었다. 머리 센 남자들은 여자들이 입은 가운에 한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술잔이나 담배를 쥐었다. 일부 사진에는 여자들이 가운을 벗고 테이블에 누워 스스로 몸에 양주를 끼얹는 사진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사진에는, 국왕이 손녀 뻘인 여자의 뒷머리를 잡고 딥 키스를 하는 광경이 나와 있었다. 김은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며 쉰 음성으로 말했다.
    “부유하고 활달하신 분 같군요.”
    회의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들이 카트를 끌며 실내로 들어왔다. 머리에 수건을 매고 앞치마를 두른 그녀들은 좀 전에 차에서 내린 시녀들이었다. 카트 맨 위에는 딸기와 생크림을 얹은 케이크가 있었고 그 아래 칸에는 크리스털 컵과 우유병이 놓여 있었다. 여자들은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노인들 앞으로 옮긴 뒤 컵에 우유를 가득 부어 케이크 접시 옆에 놓았다. 노인들 네 명은 니코틴이 밴 손으로 케이크부터 집었고, 네 명은 우유부터 마시고 나서 비린내도 없고 단맛이 진하다며 감탄을 했다. 배분이 끝나자 고참으로 보이는 시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우유와 케이크는 국왕이 심사위원들에게 베푸는 특식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김은 포크를 들어 생크림만 덜어내 맛을 보았다. 최근 들어 미각이 둔해진 터라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크림의 차갑고 끈끈한 감촉만 혀끝에 오래 남았다. 마치 얼음에 뿌려진, 굳어져 가는 핏방울을 핥는 느낌이 들었다, 의장은 우유가 묻어 희어진 입술로 말했다.
    “기쁜 마음으로, 계속 논의를 더 하지요.”

 

    여자들이 방에서 나간 뒤로 하루키나 위화와 같은 이름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그 대신 마르틴 발저나 지크프리트 렌츠와 같은 저명한 원로 작가들과, 잉고 슐체나 빅토르 펠레빈과 같은 중견의 반열에 들어선 작가들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명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지금껏 떠들었던 고모리는 이제는 김처럼 침묵을 지킬 뿐 논의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탄샤오는 누군가 말을 꺼낼 때마다 종종 말허리를 자르긴 했지만 좀 전만큼 박력은 없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논의의 주도권은 그동안 입을 잘 열지 않던 곱슬머리 백인 노인에게로 옮겨와 있었다. 존스라는 이름의 캐나다 노인은 렌츠의 신작인 「유랑 극단」을 말머리에 올렸다가, 돌연 지금껏 아무도 얘기하지 않은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먼로가 쓴 일부 단편들에 대한 품평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올해 여든을 넘겼다는 그녀의 나이와, 단편만 쓰는 여성 작가라는 특징이 여러 번 강조되었다.
    김은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을 들으며 기시감보다는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처럼 어떤 낯섦을 느꼈다. 어느 때부턴가 자기와 동년배인 외국 작가의 이름을, 그이가 쓴 작품들을 떠올리고 되새기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책 냄새를 즐겨 맡으며 독서에 골몰한 게 언제인지 이제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젊을 때는 책상 앞에 앉으면 손과 머리에 온기부터 돌았지만 중년이 되면서부터는 두통과 함께 막막한 의무감을 맛보았고, 지금은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는 어린 학생처럼 지루함을 느꼈다. 무엇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 옅어지면서 다만 뭐라도 써내야 한다는 강박만 남아버렸다. 글쓰기와 글 읽기는 자연히 줄었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꺼리게 되었다. 김은 호흡이 제법 가빠졌음에도 담배를 다시 물고는 존스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념어와 수식어가 많은 존스의 말은 아무래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나 한편으로 그처럼 어려운 말은 자신이 평소에 자주 쓰던 말이기도 했다. 김은 담뱃재를 털며, 이곳에 오기 전 고국에서 만난 오 시인을 생각했다.
    김은 스웨덴에 오기 전날, 같은 동네에 사는 오 시인과 함께 그의 집 마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목재로 지은 기와집과 금잔디가 덮인 마당은 고요한 느낌을 주었으나 청기와를 얹은 높다란 담장은 성곽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답답해 보였다. 노인 두 명은 마당 한가운데 식탁을 놓고 집에서 키웠다는 토종닭 백숙을 먹었다. 오는 그날따라 닭보다는 후추 뿌린 소금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둘이서 식사를 하고 있을 즈음, 담장 너머로 북을 난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북소리는 처음에는 흥겹게 들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의 대화를 방해하는 소음에 가까워졌다. 오는 접시에 있던 소금을 가득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김 선생도 잘 아시다시피, 시월만 되면 이 동네 사람들은 저런 개지랄을 떨지요.”
    오의 말은 투박했지만 그 어조는 어딘지 쓸쓸했다. 김은 가을 공기를 휘젓는 소음을 가만히 듣다가 어느 순간 붉은 풍선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하늘 한 귀퉁이를 메운 풍선들에는 Prize라는 고딕체 글씨가 지상에서도 보이게끔 크게 씌어 있었다. 북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사람들이 입 모아 외치는 함성이 들렸고 뒤이어 피아노 반주가 깔린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오는 입안에 넣었던 소금을 다 삼키지 못한 채 알갱이가 덜 녹아든 침을 접시에 뱉었다.
    “내일 미국으로 출국한다고 하셨지요? 어디 강연회라도 가는 겁니까?”
    김은 말없이 빙긋 웃더니 빈 컵에 소주를 채웠다. 오는 깊은 숨을 내쉬고 가슴을 치며 하소연을 했다.
    “수류탄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저 떨거지들한테 던지고 싶소. 밤이고 낮이고 저 지랄을 하는 통에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시 쓰는 일도, 잡글 끼적이는 일도 시월만 되면 하지 못합니다. 정말로 돌아버리겠단 말이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김의 말에 오는 소주를 마시려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노인의 눈이라기보다는 동물적 야성이 느껴지는 눈이었다. 김은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오를 보면서 유리컵에 채운 소주를 반 넘게 비웠다. 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애국가는 사절에서 그쳤고, 방송국 봉고차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또 다른 소음을 만들었다. 오는 마른 트림을 뱉더니 이번에는 컵이 아니라 소주를 병째로 집었다.
    “어려운 글 쓰는 분들은 가슴에 예리한 비수를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그 비수는 나 같은 글발 다 떨어진 노친네를 찌르기에 딱 좋죠.”
    “빙빙 돌려 말하진 않겠습니다……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는 껄껄대며 웃더니 술병으로 식탁을 쳤다.
    “내가 이 자리에서 뭐라고 말하건 간에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수상에 눈이 먼 노인네라고 비웃을 테지요. 수상에 욕심을 내면 당연히 꼴불견이라고 맹비난할 테고, 수상에 무심한 척하면 그래도 꼴불견이 맞을 거라고 확신할 겁니다. 때문에 내 속마음이 어떻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세상의 평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피에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문현답이로군요.”
    오가 담배를 찾자 김은 자기 담배를 주었다. 오는 끊었던 담배를 매년 시월이면 피우게 된다고 했다. 김은 오의 구릿빛 팔뚝에 난 깊거나 얕은 흉터들을 건너다보았다. 흉터는 오래전 오가 남산으로 끌려가 받았다는 고문의 흔적이었다. 피 묻은 지렁이를 보듯 이물스러웠으나 그것은 용기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명예로운 훈장이기도 했다. 김은 파란 많은 세월을 살아낸 오의 이력을 생각하다 돌연 흉터들이 살아 있는 벌레처럼 꼬물거리는 것을 보았다. 벌레들은 살갗을 뚫고 나올 듯이 움직이다 어느 순간 빛깔을 환한 금색으로 바꾸었다. 김은 눈을 비비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 사람들은 선생의 시보다 선생의 삶을 더 흥미롭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구닥다리 시보다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오는 꽁초를 잔디밭에 버리고 의자에 몸을 파묻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김이 이 집에 오기 전부터 오는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 김은 푹 익히지 않아 뻣뻣한 닭다리 살을 발라 먹으며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고, 양희은이 젊을 적 부른 〈아침이슬〉이 스피커의 가늘고 긴 잡음과 어우러져 들려왔다.
    풀잎마다 맺힌 이슬 모습이 아니라 물빛이 탁한 급류가 눈앞에 보였다.

 

    존스의 설명이 끝날 즈음 노인들 대부분은 크림만 남은 접시를 포크로 긁으며 초점 없는 눈길을 샹들리에로 던지고 있었다. 바깥에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데다 오늘이 심사를 마치기로 한 날이었기에 이쯤에서 결론이 나와야 했다. 의장은 헛기침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결론은 그럼 먼로냐며 동의를 구했다. 그때 콧수염만 내내 만지고 있던 시먼스가 왼손을 들었다. 그는 열 시간이 넘도록 말참견만 간혹 했을 뿐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었다. 여덟 명의 노인들은 만년필 뚜껑을 닫으려다 말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의장이 마지못해 얼굴을 끄덕이자 시먼스는 건조한 목소리로 엑스라는 이름을 낮게 말했다. 엑스라는 말에 일부는 고개를 갸웃했고 일부는 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지만 그이가 과연 이 상을 탈 만큼 공력이 높은지, 이 상의 색채에 알맞은 인물인지는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김은 엑스라는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더듬다 환경운동을 주로 소개하는 고국의 한 잡지를 떠올렸다. 반년마다 발행하는 그 잡지는 항상 외국 활동가들의 르포나 에세이를 싣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김이 기억하기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엑스는 열 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글에서 상식과 정의가 사라지고 있는 미국 주도 하의 세계 질서를 비판하고 있었다. 번역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문체가 아름다운 것도, 논리가 튼실한 것도 아니었기에 글맛이 그리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의식은 흘러넘치되 그 자의식을 볼품 있게 가다듬기보다는 그대로 표출하는 글쓰기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글쓰기는 나름의 미덕을 갖추었지만 아무래도 오늘날 독자의 마음을 끌 만한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엑스는 십 년 전까지는 소설을 썼으나 지금은 사회운동가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었다. 김은 핸드폰을 꺼내 엑스가 쓴 책들을 검색했다. 고국에 번역된 것은 한 권도 없었고, 원어로 쓴 책들도 대부분 품절 상태였다.
    의장은 엑스의 소설 몇 권을 입에 올리더니 김이 하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현장성과 사실성은 넘치되 작가와 대상 간의 거리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미학적인 성취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엑스가 과거에 쓴 소설에는 어김없이 농민이나 노동자와 같은 하위 계층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들에 대한 공감과 옹호를 작품에서 표 나게, 지나칠 정도로 드러낸다. 그러한 작품 내 특징은 작가의 간곡한 마음을 알려주는 징표이긴 하나, 한편으로 성마른 프로파간다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의장은 시먼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더니 엑스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은 여느 사회단체의 선언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소설 쓰기를 내려놓은 작가에게 상을 주는 것은 자칫 다른 성실한 작가들에게 큰 실망을 안길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먼스는 콧수염 한 가닥을 잡아 뽑더니 툭 내뱉듯이 말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의장은 결론을 내리려다 말고 마디 깊은 손가락들을 반복해서 꺾었다. 시먼스는 콧수염을 하나씩 뽑으며 자기 앞에 놓인 서류에 털을 올려놓았다. 칠흑처럼 검었던 그의 코밑이 불긋해지고 있었다. 김은 차가워진 공기를 느끼며 십 분만 쉬자고 돌발 제안을 했다. 휴식을 제안하는 일은 본디 의장의 고유 권한이었으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장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부는 식기와 서류를 한쪽으로 밀고 원탁에 엎드렸다. 의장은 담배 보루를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오늘 처음으로 흡연을 했다.
    김은 핸드폰을 꺼내 래드브록스(Ladbrokes)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베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링크를 열었다. 오위권 바깥의 순위는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었으나 오위권 내 순위는 배당률만 조금씩 달라질 뿐 변동이 없었다. 김은 빨간 글씨로 짙게 표시된 순위를 천천히 훑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조이스 캐럴 오츠, 필립 로스, 앨리스 먼로, 파트릭 모디아노…….
    애초 십 분만 쉬자고 했음에도 심사는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열렸다. 왕이 드디어 이곳을 떠나는지 어둠이 내린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와 차바퀴 소리가 엇섞여 들려왔다. 시먼스는 눈을 내리뜬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으며, 의장은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 말았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먼로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나누더니 의장에게 마지막 결정을 내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의장은 먼로보다는 쿤데라가 낫지 않겠느냐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의견을 내놓았다. 어두워질 무렵부터 가장 말을 많이 한 존스는 실망이 컸는지 의장이 구겨 놓은 담뱃갑을 한 번 더 구겼다. 일부는 쿤데라가 아직 살아 있는지 의아해했고, 일부는 그가 오랫동안 이 상의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것을 얘기했다.
    존스와 클라비에가 고개를 저으며 난색을 보였으나 이미 대세는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의장의 태도가 강경한 데다 고모리나 앳킨슨 같은 피부색이 서로 다른 이들도 처음으로 일치된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열렬히 찬성하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완강히 반대하는 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흔이 다 된 쿤데라의 나이가 노인들 입에서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앳킨슨은 쿤데라가 파리 변두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그만큼 늙은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곤 혀를 끌끌 찼다. 그의 말에는 넉넉지 않은 말년을 보내는 동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깔려 있었는데, 그보다는 안정된 삶을 누리는 스스로에 대한 위안도 엿보였다. 한스도 앳킨슨의 말에 공감하며 작가가 내공에 비해 상복이 없었고 체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내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거쳐 왔음을 얘기했다. 작가가 거쳐 온 인생 편력에 대한 얘기는 차고 넘쳤지만 그가 쓴 소설이나 희곡에 대한 얘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의장은 비로소 어떤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을 깨닫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여러분의 노고에 힘입어 이처럼 마땅한 결론이 나왔군요. 올해는 저 얼빠진 도박사 놈들의 예상을 따돌릴 만한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의장은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길고도 맑게 불었으나 호응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은 고기 음식을 먹고 싶어 했음에도 채소 일색인 저녁상을 앞에 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열세 시간 동안 이어진 심사의 마지막은 격론이 오간 이전과는 달리 싱겁고 허전했다. 의장은 휘파람 불기를 멈추더니 김에게 내일 저녁까지 심사평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논의에 잘 참여하지 않은 자에게 내리는 가벼운 숙제였다. 김은 콧등에 주름을 잡더니 쿤데라 전집을 오늘 밤까지 구해 달라고 했다.

 

    노인들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연둣빛 승용차 아홉 대가 줄 맞춰 세로 방향으로 서 있었다. 국왕이 타고 다니는 전기 차와 똑같은 기종이라 했다. 의장이 가장 먼저 차에 올랐고 다른 노인들도 데리고 온 수행원들과 함께 차에 탔다. 김은 전기 차 여덟 대가 입구로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차에 올랐다. 히터 바람이 약한 편이어서 차내는 썰렁한 편이었다. 동력을 많이 소비하면 안 되기 때문에 차내 온도는 바깥보다 그리 높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김은 구시렁거리면서 양모로 짠 무릎담요를 어깨에 두른 뒤 두께 얇은 차창을 내다보았다. 수행원인 금발 청년이 차의 시동을 걸더니, 김의 부탁에 따라 다른 차들과 함께 가지 않도록 서행 운전을 했다.
    김이 탄 차는 삼십 분이 지나 시내로 나왔다. 김은 졸린 눈으로 완만한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는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여느 도시 풍경처럼 빌딩들 높이는 족히 백 미터는 넘어 보였고, 벽에 난 유리창 칸칸마다 창백한 불빛이 번져 있었다. 김은 빌딩 구경을 하다가 차가 멈춘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수행원은 정체 구간에 다다랐으니 잠시 동안 차도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 앞창에 들어온 한 무리의 차들을 스쳐보더니 다시 눈을 뒷좌석 차창으로 옮겼다. 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 빌딩 위에 설치된 초대형 전광판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화질이 좋은 컬러 전광판에는 통기타를 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그녀 앞에는 김만큼 나이 든 남자 세 명이 팔짱을 낀 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향이 전혀 들리지 않음에도 그녀의 벌어진 입과 찡그린 인상으로 보아 열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화면 하단으로 노란색 가위표 세 개가 가로로 떠올랐다. 여자는 양볼을 붉히더니 급기야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노인들 세 명은 다소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혀를 차며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노인들의 배후에 있던 관객들도 충격에 빠진 듯했는데 일부는 그래도 재밌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김은 화면에 좀 더 집중하려 했지만 차가 전진하는 바람에 이어지는 장면을 놓쳤다. 수행원은 입맛을 다시는 김을 흘끗 보더니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브리티시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본선 방송입니다. 어제 저녁에 한 내용인데 오늘 또 보여주는군요.”
    정체 구간을 지나니 널찍한 정원이 딸린 십층짜리 석조 건물이 나왔다. 건물은 특이하게 U자형으로 휘어져 있었는데 호텔이라기보다는 대학교 본관 건물처럼 보였다. 김은 호텔 앞에 도착하고 나서도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차에서 내렸다. 수행원은 해진 넝마를 보듯 담요를 보더니 앞장서 회전문을 열고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 카운터에는 금발 미인 네 명이 기계적인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김은 직원들과 수행원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로비를 둘러보았다. 독수리 문장(紋章)이 섬세하게 수놓인 가죽 소파들이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었으나 손님은 그 말고 아무도 없었다.
    김은 수행원에게 열쇠를 받고 객실로 들어왔다. 정면에 비로드 커튼이 드리워진 여닫이창이 보였고, 우측에는 흰 시트가 덮인 침대와 술병이 놓인 다탁이 있었다. 천장에 나 있는 히터에서 온풍이 내려왔으나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서늘했다. 김은 침대에 앉더니 개봉하지 않은 위스키 한 병을 집었다. 나이가 들면서 알코올의 힘에 기대 잠을 자고, 마음속 우울을 쫓으려는 악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김은 스웨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도 술을 실컷 마셨고 이곳에 오고 나서도 심사에 참석할 때만 빼면 술병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물마시듯 입에 독주를 들이붓자 식도가 뜨거워지면서 불에 달군 바늘들이 몸속 핏줄을 쿡쿡 찌르는 듯했다. 김은 흰 접시에 놓인 구멍 뚫린 치즈 조각을 집으려다 문득 전광판에 나온 여자를 생각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내벽에 있던 인터폰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음은 단속적으로 울려오다 나중에는 연달아 터지면서 도시의 밤을 흔들었다. 김은 커튼을 걷고 밤하늘에 번진 새빨간 거미줄 무늬와 파란 쐐기 무늬를 올려다보았다. 무늬가 옅어질라치면 다시금 폭죽이 허공에서 터지며 갖가지 무늬를 만들었다. 김은 자극적인 색감의 무늬를 관찰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여니, 좀 전에 카운터에 있던 여직원이 이단 카트를 끌며 안으로 들어왔다. 카트 아래에는 책 꾸러미와 한국 담배가 있었고 위에는 위스키 병들과 과일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여직원은 책을 포장한 비닐을 가위로 뜯은 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양장본들을 다탁에 놓았다. 김은 표지에 써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라는 글씨를 훑고 나니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와 마주한 느낌이 들었으나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여직원은 오늘이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라 밖이 시끄러울 테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오늘부터 평화상을 발표하는 날까지 엿새 동안 죽 밤마다 폭죽이 터질 겁니다.”
    여직원이 객실에서 나가자 김은 그녀가 가져온 에쎄를 문 채 양장본을 뒤적였다. 조명이 다소 흐린 데다 노안이 심해 활자를 읽어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눈에 와 닿는 글씨들이 뜻 모를 상형문자처럼 읽히자 김은 안경을 벗고 눈두덩을 만졌다. 폭음이 아직 울리고 있어 창가로 붉거나 푸른 기운이 어른거렸다. 김은 겉표지에 그려진 자기보다 다섯 살 많은 망명 작가의 얼굴을 보았다. 큰 상과 큰돈을 받을 얼굴치고는 수수하고 초라해 보였다. 김은 책을 침대에 던지고 마시다 만 술병을 집어 들었다. 두 모금 들이켜자 글을 읽으려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말 반죽에 필요한 개념어와 미사여구가 하나둘 떠올랐다. 평가를 정확하게 내리는 일은 힘에 부쳤지만, 수사를 곁들여 상찬을 하는 일은 책을 들추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
    술기운에 절어 몸이 늘어지기 시작하자 김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폭음은 서서히 잦아들었으나 벌들이 웽웽대는 듯한 이명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김은 수전증이 오기 시작한 손으로 협탁에 있던 금장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한 번 지나갔을 때, 오가 전화를 받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다. 김은 그렇게 긴장한 오의 음성을 이제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 모진 고문을 받고 병원에 실려 갔을 때도 아프지 않다며 껄껄대던 사람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마음이 무거워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는 누구요, 외국에서 전화를 건 당신은 누구요, 하며 목이 쉴 때까지 상대를 부르더니 나중에는 화가 난 목소리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김은 오의 살갗에 박혀 있던 금빛 벌레들을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탁 앞에 선 채 머리를 자꾸만 가로 흔들었다.
    창밖에서 다시 경쾌한 폭음이 울려 왔다.
.

 

    오전 열한 시가 됐을 때 인터폰에서 벨소리가 나왔다. 김은 경보음 같은 벨소리를 듣고 눈을 뜨긴 했지만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삼 분 넘게 울리던 벨소리가 그치자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행원이 문 바깥에서 김을 크게 부르고 있었다. 그래도 김이 누워만 있자 가는 금속음이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수행원의 손에는 마스터키가 쥐어져 있었다. 수행원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탁에서 풍기는 술 냄새와 노인의 몸에 밴 땀 냄새를 맡고 눈살을 찡그렸다. 김은 그제야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심사평은 저녁에 줄 테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수행원은 의장의 소집 통보가 내려졌다며 한림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소집 이유는 그도 모른다고 했다. 김은 말없이 수행원을 지나쳐 침대 맞은편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 땀에 전 옷을 벗었다. 눈이 부시도록 깨끗한 거울에 팔다리는 마른데 엉덩이와 아랫배는 뚱뚱한 노인이 비쳤다.
    김은 샤워기를 틀려다 말고 변기에 전날 먹은 것을 토했다.
    김은 호텔에서 나와 오늘도 썰렁한 전기 차에 탔다. 수행원은 차체가 흔들릴 만큼 어제보다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김은 차창에 흘러드는 바람에 몸을 떨면서 바깥에 시선을 주었다. 거리는 지난밤과 달리 한산한 편이었다. 일부 청소부들을 빼놓고는 도로를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도시는 어딘지 바람 빠진 풍선같이 보였다. 차도를 지나는 차량도 별로 없었고, 먹구름이 깔려 사방은 비가 내릴 듯 어둡기도 했다. 김은 생기를 잃은 도시를 보면서 가래가 끓던 목에 박하 향이 배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를 거른 뒤라 빈속이었음에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다.
    김이 회의실로 들어오니 이미 여덟 명의 노인들은 원탁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의장은 어제처럼 간편한 복장이 아니라 다른 이들처럼 턱시도에 구두 차림이었다. 모두들 굳은 표정이었고 특히나 의장은 눈을 감은 채 휘어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코로 연기를 내뿜는 중이었다. 정수리 근처에 숱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가발을 쓰고 오지 않은 듯했다. 김이 자리에 앉자마자 존스는 담배 쥔 손을 내저으며 탁한 음색으로 말했다.
    “고매하신 의장의 생각을 듣고 싶군요.”
    의장은 짤막한 신음을 뱉더니 이런 경우에는 수상자가 거부한다 해도 그를 수상자로 정하는 것이 오랜 관례라고 했다. 머리숱이 텅 빈 모습이 뚜렷해 오늘따라 의장은 더욱 노인처럼 보였다. 김은 그제야 자기들이 모인 이유를 깨닫고 고모리에게 물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던가요?”
    “글쎄요…… 어떤 이유든지 간에 자기를 찾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또 뭐라더라…… 남은 생을 식물처럼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김이 식물이라는 말을 되뇌는 동안 노인들은 의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 마음대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탄샤오는 관례를 깨고 수상자를 다시 정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앳킨슨과 한스는 차라리 수상자를 설득하는 게 어떻겠냐며 의견을 달리했다. 존스는 과연 그 노인이 우리 설득에 넘어가겠느냐며 고개를 저었고, 클라비에는 그렇다면 관례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며 의견을 냈지만, 대다수 심사위원들은 그건 안 될 말이라며 입 모아 외쳤다. 의장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회의를 제어하기 위해 휘파람을 불고, 손으로 원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시먼스는 의장이 이번 일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볼멘 어조로 말했다. 의장이 말이 과하다며 목청을 높였으나 시먼스의 말에 동의하는 기미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언론에 이미 이 사실이 퍼져 대중들도 알았을 테니 누군가가 대표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나왔다. 의장은 눈을 치뜨더니 책임 질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번 일은 관례대로 하겠다며 못을 박으려 했다. 그럼에도 주변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은 심사평을 쓸 일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좀 전에 되풀이해 중얼거렸던 식물이란 말이 왠지 느껍게 여겨졌다.
    김은 담배를 한 대 물고는 불을 붙이려다 방 왼쪽에 있는 초상화를 보았다. 어제까진 흑백이었던 초상화에 노랗거나 파란 색조가 파스텔 톤으로 번져 보였다. 김은 담뱃불을 붙인 뒤 양손을 원탁에 놓았다. 김이 보기에, 초상화 속 남자는 살이 빠졌는지 날씬해 보였고 피로한 기색은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피부에 윤기가 돌았다. 두 눈은 컸고, 부르트지 않은 입술은 물기가 오른 듯 축축해 보였다. 마치 어제 의장의 여유로운 모습을 화폭 안에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김은 노안 탓에 환각을 본 것이라 판단했지만 비록 환각이라 해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맛이 오늘따라 달았고, 술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김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담배를 문 입으로 작고도 분명하게 말했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

 

 

 

< 선정평 >

 
    「심사」는 상상력과 묘사력이 만나면 어떤 흥미진진한 작품이 나오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의 한 풍경을 심각한 듯 능청스레 다룬 솜씨가 매력적이다. 세계문학 패권의 헤게모니와 관례의 아이러니를 집요하게 드러낸 전개력 또한 돋보였다.
소재의 독특함과 세밀한 서술이 신진다운 면모를 보여준 탓에 「심사」를 심사하는 심사자들은 유쾌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문학 외적으로 확장되고, 묘사력이 삶의 내연으로 깊어져서 지속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해이수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한동안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는데 크나큰 도움을 받아서 무척 기쁩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잘 아는 친구와 함께 서점에 있었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소설도 그 친구의 권유에 의해 쓰게 된 작품입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최근에는 히사이시 조의 [Summer]와 샤인 다운의 [diamond eyes]라는 곡을 자주 듣습니다. 전자는 산뜻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곡이고 후자는 박력이 넘치는 록입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시를 쓰는 친구에게 가끔씩 보여주곤 합니다. 아무래도 호평보다는 혹평을 들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모든 소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고독과, 개인이 세계와 접촉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독의 심층을 파고드는 소설, 개인과 세계와의 팽팽한 대립과 긴장을 보여주는 소설을 쓰고자 합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는 「해피 어버이」라는 단편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소설의 주제나 정조와는 아주 상이한 내용인데 한 독거노인의 양면성과 모순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제가 쓰는 속도가 워낙 느려서 올해 안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쓰려고 합니다.

 

 

조영한 (소설가)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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