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소설] 보이지 않는 손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보이지 않는 손

 

 


용현중

 

 

삽화_03보이지않는손

 

 

    #. 1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단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자본시장의 원리 따위를 일컫는 명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가 그의 저서에서 그 명칭을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국가적 커머셜 단체인 '보이지 않는 손'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하게 살아가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은밀한, 그렇지만 무한히 생산적이고 탐욕적인 일들이 '보이지 않는 손'들의 주 활동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들의 활동에서 착안하여 자본주의의 지엽적인 이론을 정립한 것뿐이다. 물론 이 단체는 프리메이슨 같은 아주 비밀스러운 단체라 지금도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지 않고 있다. 당신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신 같은 일반 시민이 그들을 잘 알고 있다면, 그들이 비밀 단체이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지금도 언제나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 중이다.

 

    조금 더 말해 주자면 그들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2014년 현재 '보이지 않는 손'들이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우산.' 이다.

 

    이제 현대 기업화된 그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시장 곳곳에 우산이란 재화를 유통시키고 그들의 노하우를 이용해 보이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으로 몰래 다시 재화를 그들의 손으로 회수해 간 뒤,-이 과정에서 막대한 잉여이익이 생긴다-마치 사용을 안 한 새 제품인 것처럼 다시 처음의 그 판매대 위에 올려놓는 일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일기예보를 조작해, 시민들이 붐비는 출퇴근길에 우산 없이 빗속에 노출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빗속에서 시민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일회용 우산을 구입하게 된다. -아마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일회용 우산의 가격이 5,000원으로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만 원이 소비의 기본 단위가 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쓴 5,000원 정도의 단위를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분실한다 한들 사람들의 뇌리에 잘 남지 않으며, 별 신경 쓰지 않는 그 정도의 가격. 결국 그들의 방식으로 가장 큰 수익을 올려줄 수 있는 시장의 가격이 바로 5,000원인 것이다.
.

 

    이제 조금 알겠는가?

 

    그런 수순이 지나고 나면, 다음 날쯤 다시 그들은 일기예보를 역으로 조작한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올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새로 산 우산을 들고 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리서치 회사 bluepape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90% 이상이 장마같이 비가 자주 오는 시기에는, 외출 시 최근 구입한 우산을 선호한다는 결과도 조사 되었다.-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 시민들은 우산을 분실한 뒤, 우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깨닫게 된들 이미 때는 늦었다. 시민들은 보통 다시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뭐 고작 5,000원인데.' 하는 덫에 걸린 결론과 함께.

 

    그럼 이제 다시 '보이지 않는 손'들의 무대다. 그들은 은밀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 우산들을 회수한다. 자 어떠한가? 당신의 주머니에서 5,000원 이상의 돈이 그들의 주머니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산 역시 다시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다시 우리에게 판매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활동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다양한 시장 재화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별 볼일 없는 비정규직처럼 보았겠지만, 나는 사실 어제까지 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글로벌 악덕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그 사실은 간단하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다는 진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탈출했다. 그들의 비열한 노하우의 집대성인 이 우산을 옆에 들고 말이다. 이곳은 아주 어렵게 찾아낸 아주 평범한 아파트로, 이런 곳에선 그들이 나를 찾아낼 확률은 아주 낮다. 숨으려면 사람 속으로 숨어들어야 한다. 나는 언론에 그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 그들을 박살낼 것이다. 우산 이야기만 한다면 기자가 나를 정신병자로 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무기는, 그들의 비밀은 다행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정체가 모두 들통 나면 그들의 힘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내일 기자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그들에게 모든 사실을 말한 뒤, 경찰의 도움을 얻어, 경찰청으로 도망칠 것이다.

 

    "띵동."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배달이요."

    배달 음식을 시킨 적은 없다.

    "치킨이요."

    계속 배달원의 소리가 들리며 벨이 울린다. 아마 잘못된 배달인가 보다. 돌려보내야겠다. 문이 열리자 그곳엔 배달원이 서 있다.

 

    "시킨 적 없는데요?"

    배달원은 내 눈을 한 번 보고는 주섬주섬 배달 박스를 연다.

    "시킨 적 없다니까요?"

    "꼭 수취인이 배달을 시키는 경우는 없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차'

    배달원이 배달 박스에서 꺼낸 것은 검은 봉지로 둘러싼 권총이다. 소음기 사이로 총성이 두 번 사그라든다. 배달을 끝마친 배달원이 조용히 오토바이로 향한다

 

 

    #. 2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조직을 부르는 말이었다. 물론 우리 조직은 프리메이슨 같은 아주 비밀스러운 단체라 지금도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지 않고 있다. 당신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신 같은 일반 시민이 그들을 잘 알고 있다면, 우리 조직이 비밀 조직이겠는가? 우리들은 그렇게 지금도 언제나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 중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많이 퇴색 되어버렸다. 글로벌한 문어발식 확장 때문이다. 조직은 글로벌 확장과 비밀성의 유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밥벌이를 해먹고 있기도 하다.

 

    대외적으로 나는 치킨 배달원이다. 그러나 이는 진짜 나를 숨기는 연막에 불과하다. 배달복장을 하고 치킨만을 배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종종 조직에서 정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배달하는 킬러이기도 하다. 일명 '검은 손'. 방금 일 하나를 끝냈다. 내부적으로도 나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나의 정체를 아는 이는 나의 상사와 고위 간부 정도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글로벌로 경영되는 기업이라 하지만 엄연한 비밀 조직이고, 나는 그 중에서도 더 깊숙한 비밀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상사는 활동 시작부터 찹쌀떡 배달꾼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다.-그러나 한국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찹쌀떡 장수는 더 이상 자리를 유지해나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한국 시장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치킨 배달부라는 탈을 쓰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 어디에서, 24시간 그 어느 곳에서 활동해도 치킨 배달을 하는 사람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마트폰 배달업체 BT에 따르면 중국음식보다 치킨의 배달 빈도수가 2000년부터 추월하기 시작해, 현재 두 배 이상의 배달 물량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도 한다.-물론 치킨 배달업에 대한 부수입은 부업으로 조직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묵인된 영역이다.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도 끝이다. 나는 임무가 한 번 끝날 때마다 거처를 옮겨 다닌다. 본업 일을 한 건 끝냈으니 조용히 이 동네도 떠야 한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부업을 그만두게 된들 큰 염려는 없다. 치킨집 사장들은 배달업종의 사람이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대타 나올 때까지 일을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하다, 결국 '양아치' 소리를 붙여 대화를 끝내버리고야 만다. 그 정도까지 가면 대외적인 일은 정리된 수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마지막 달 월급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사장들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양아치 소리를 듣는 것도, 조직의 업무 매뉴얼에 적혀 있는 패턴 중 하나고 어차피 일이기 때문에 별로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나는 나의 본업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당신의 주변에 치킨 배달원이 자주 바뀐다면 당신의 동네도 결국 우리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업무 지시와 처리에 대한 보상은 정해진 상사로부터 받는다. 일을 처리한 다음 날 밤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에서 '찹쌀떡 사려'라는 상사의 구성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동네도 이제 끝이군.'

 

    씨바스리갈 30년산을 잔에 따른다. 임시 고용주에게 양아치 소리는 이미 들었고, 임시로 쓰던 폰도 정지시켜 놓았다. 오늘밤에 상사를 만나 임무에 대한 보상을 받은 뒤, 다음 임무가 떨어지기 전까지 조용한 바나 다니면서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홀로 온더락 잔을 비운다. 상사가 오려면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 조금 여유롭게 쉬고자 하는데 상사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들려온다.

 

    "찹쌀떡 사려."

 

    상사의 신호다. 이른 시간이지만 그가 도착했다.

 

    "아저씨 여기요."

 

    나는 발코니 창문을 열어 그를 부른다. 요즘 세상에 찹살떡 장사에게 찹살떡을 사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극히 소수의 경우가 있을진 몰라도 보통 상사와 나의 접촉에 걸림돌은 생기지 않는다. 찹쌀떡이란 아이템은 그런 효용을 가지고 있다. 나와 상사는 조용히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상사는 나의 집으로 들어와 검은 봉투 하나를 건넨다. 흰떡과 봉투가 들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찹쌀떡 따위는 주지 않고 돈 봉투만 넘기고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가 이 자리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다. 본래 목표가 무엇이든 찹쌀떡 장수로서의 임무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배울 것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찹쌀떡 장수가 눈앞에서 담배를 태운다. 나는 조심스레 담긴 봉투를 집어 든다. 그러나 내 예상대로 있어야 할 봉투가 들어 있지 않다. 오직 흰 가루가 묻은 동글동글한 찹쌀떡만 들어 있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상사를 바라본다.

 

    "이게 무슨 일이죠?"

    "보는 그대로야."

    상사의 담배 연기가 오늘따라 가늘고 길게 퍼진다.

    "네?"

    "실수를 했더군."

    "실수요?"

 

    상사가 나에게 실수라 말할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 심장이 있는 위치에 간격을 두고 두 발을 발사했다. 심장이 반대쪽에 있는 경우라도 충격과 과다출혈로 결코 살아날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분명 죽었을 텐데……."

    "아니야 아직 살아 있어."

    "혼자 있다는 남자를 향해 심장에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터지는 소리와 피가 튀는 모양이 방탄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 '손'은 무슨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답니까?"

    "그게 문제가 아냐. 훌륭했을 거야. 언제나 두 발. 심장 주위에 쾅쾅. 내가 그 솜씨 모르는 거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온더락 잔의 얼음이 딸그락 거리며 추락한다.

 

    "그 집이 아니었어."

    "네?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지령을 잘못 처리했을 리는 없다.

 

    "아니에요. 저는 분명히 적혀 있는 지령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그건 네 생각이겠고. 임무는 실패야. 보고가 그렇게 내려왔어. 어쩌냐, 이제?"

 

    '어쩌냐, 이제?'라는 말이 가슴을 철렁이게 한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실수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기에 실패 후 겪게 될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 같은 ‘검은 손’에게 실패는 배신과 다를 것이 없다. 상사는 내 옆의 소파에 푹 주저앉는다. 그리고 찹쌀떡 가방에서 시가 한 개를 꺼내 불을 붙인다. 싸구려가 낼 수 없는 깊은 향이다.

 

    "어이, 거시기."

    "네?"

 

    나는 상사가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한 잔 주지?"

 

    상사가 술병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나는 술병을 든다. 심각한 분위기인 것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거시기야. 내 밑에 얼마나 있었지?"

 

    잔을 털어 넣으며 상사가 말한다.

 

    "개월 수로 삼 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치? 참 오래도 되었지?"

    "근데 말이다. 나는 이 일을 너보다 세 배는 더했단 말이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우리 일이 알라들 소꿉놀이는 아니잖냐?"

 

    끄덕이며 나는 일단 그의 말을 더 듣기로 한다.

 

    "일을 십 년 정도 했다, 나는. 너 오기 전에, 너 같은 아그가 몇 명 있었어. 그 중 첫 번째 맡았던 '검은 손'은 너처럼 한 삼 년 정도 같이 일을 했었어. 근데 말이다. 아그야."

 

    "네 상사님."

    "그때 오래 전에, 그 아그도 너랑 같은 실수를 해부렀었지, 뭐냐."

 

    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래서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위에서 나보고 교체를 하라 하더라."

    "교체요?"

    "그때 나는. 멀뚱이 있었어. 그냥 그러려니 했제. 인사도 못 하고 인사발령 나는구나 생각하며. 근데 말이다. 한 달 정도 후에 그 아그가 전화를 딱 건 거야. 나도 딱 마침 보고 싶었는데."

 

    상사는 이번에 혼자 두 번째 잔을 따른다. 그리고 다시 시가를 깊게 들이마신다.

 

    "근데 이게 뭐다냐. 이야기를 하다가 말도 없이 전화가 끊어진 거여. 뭐겠어. 느낌이 딱 오제. 겨, 아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몰래 급하게 찾아가 봤지. 그 아가 동생 가터서 좀 친분을 두었었거든. 아무리 우리라지만, 너도 나도 인간 아니냐? 삼 년이면 쌓이는 정이란 게 있는 것이제. 걸려왔던 번호를 보니 저번 살던 집 번호였던 것이여. 그래서 급하게 가봤지.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요."

    "그 아가 죽어 있드라. 누가 목을 졸랐는지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그럴…리가요……."

 

    "왜 사냥개는 사냥 안 당할 것 같으냐? 아무리 충성했던 개도 복날이 되면 주인한테 디지는 기라! 니가 뭐 여지껏 전쟁터 나가서 살아온 줄 알어? 니가 타겟들을 상대할 때는 기습 했으니, 그리 많이 죽여도 여적껏 멀쩡히 숨이 붙어 있는 것이제. 딴 이유가 있는 게 아녀. 생각해봐, 너도 갑자기 다른 검은손이 공격한다면 멀쩡할 것 같아?"

 

    상사의 말이 싸늘하다. 그렇다. 나도 습격을 당하면 멀쩡할 리 없다. 나는 상사의 옆에 앉아. 말없이 얼굴을 감싼다. 그렇다. 혹시 일이 뒤틀린다 하더라도, 먼저 발을 뺄 생각만 막연히 하고 있었지. 손들에게 공격당한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구라도 보통 동료에게 공격당하는 일을 상상하지 않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나의 멍청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바로 동료를 공격하는 일을 해오고 있던 것이다.

 

    "한 잔 더 거시기 해봐."

 

    상사가 잔을 내민다. 나는 말없이 세 번째 잔을 따른다.

 

    "저는 분명히 임무 받은 그대로 실행시켰습니다."

 

    "아니야 틀렸다. 아래층이었다는 거야. 위에서 틀렸다는데 니가 어쩔껴? 가서 따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회사에서? 멀쩡하게 숨 떨어질 때까지 있음 좋은 곳이긴 한데……."

 

    할 말이 없다. 명령과 수행만 있지. 실패란 개념은 우리에게 없다. 나는 한 잔을 크게 따라 비운다.

 

    "이제 워쩔겨?"

    "위험한 상황이라면 숨어야죠."

    "어디 갈 데라도 있어?"

    "아니요, 없습니다만."

    "그럼 일로 가봐."

 

    상사가 품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 내민다.

 

    "뭐죠?"

 

    나는 종이를 받아 열어본다. 주소가 적혀 있다. 상사가 찹쌀떡이나 보상이 아닌 것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젠간 또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곳은 안전할 거야."

    "왜 저에게 이런……."

 

    나는 상사의 배려에 놀란다.

 

    "니가 남 같지 않아서 그랴. 나야 뭐 어떻게 하면 되고. 너는 내 전 동생과 다르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 삼 년 같이 일하면 그게 어디 남이여? 오늘 와봤더니 없었다고 말하믄 어떻게 시간은 벌 수 있을겨. 도망가 빨리……."

 

    나는 상사가 오늘 예정보다 빨리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사님은."

 

    상사는 두 번째 시가에 불을 붙인다. 그의 한숨이 연기로 보이는 것 같다.

 

    "나가 너한테 그거 주면서 너보다 준비를 안 해 놓기야 했겄냐? 같이 움직이면 위험해. 내 걱정은 하덜 말어. 니 걱정이나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십 년이나 버틴 분 아닌가? 일 이야기 이외에 다른 이야길 많이 해본 사이는 아니지만, 눈앞의 남자가 나를 동생처럼 생각해준다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눈물을 보일 순 없다. 마음을 가득 담아 목례를 하고 빠르게 자리를 비운다.

 

    "감사했습니다."

 

    나는 급하게 집에서 지갑과 권총, 그리고 나이프 몇 그리고 상사가 주소를 적어 준 쪽지만 챙긴다. 이제 언제 어디서 다른 '검은 손'을 통해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아파트를 벗어나자 갑자기 평범하게 느껴지던 주변의 모든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구석에 숨어 십 분을 넘게 울었다. 킬러라는 이름을 가진 댐에 갇혀 있던 눈물이 한 번에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 손으로 죽인 사람들의 모습들도 떠올라 가슴을 괴롭게 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상사가 준 쪽지를 열어 보았다. 서해 해안가다. 그러나 바로 이동할 수는 없다. 집을 벗어나며 목격자를 없애야 한다. 일단 택시를 타고 인근 베드타운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숨으려면 오히려 사람들 사이로 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일단 택시를 잡으려 차도로 향한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상사가 베푼 온정이 나를 감싼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을 빼먹은 느낌이 든다. 예전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 이상한 느낌, 죄책감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내가 몰랐던 내 안의 인간이 어디론가 걸어간다.

 

 

    #. 3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의 길드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상업 회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제 그 회사는 노하우를 이용해 보이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으로 몰래 다시 그들의 손으로 회수해 간 뒤 다시 몰래 처음의 그 판매대 위에 올려놓는 기본적인 활동과, 그로 인해 쌓아온 부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의 주요 물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기까지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일을 하는 거대한 글로벌한 회사를 비밀스럽게 유지하려면 여기저기 여간 잔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찹쌀떡 장수를 맡아 오고 있다. 찹쌀떡 장수는 다른 의미로 짬이 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는 회사의 일을 서포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한마디로 더러운 것 치우는 일이다. 나쁘지 않다. 더러운 것을 치울 때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을 수야 없는 것이란 것쯤은 이미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일을 오래 하면서 주변에서 동료들이 한둘씩 정리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도망 따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는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에 죽음 이외의 탈출구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나는 두 번째 시가를 책상에 비벼 끈다. 그리고 네 번째 양주잔을 따른다.

 

    '좋은 곳에서, 좋은 것 먹고 살았구만.'

 

    목적지로 향할 녀석이 사놓은 술이다. 좋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실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이번 일도 잘 처리했다. 실수를 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녀석은 타깃을 정확히 처리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의 이번 임무는 검은손 하나를 교체하는 것이다. '그곳이 아니라 아래층이라고?' 그것도 그냥 지어낸 말이다. 그런 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녀석이 정리되는 이유야 간단하다. 녀석은 총을 주로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깔끔하지 못한 방식이다. 급할 때 종종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총을 사용한 일 처리의 경우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총상을 입은 시체가 발견되면 경찰도 깊게 개입하기 마련이다.-회사는 지금껏 녀석이 처리한 일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다.-살인을 지시한 회사 입장에서 살인 사건 가해자를 없애는 편이 가장 확실히 사건을 무마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해자가 없는 영구적인 미해결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조직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깔끔한 처리 방법인 것이다.

 

    언제 녀석을 정리할까 고민해 오던 회사가, 이번에도 삼 년을 채우고 결정을 내린 거다. ?녀석들은 삼 년 주기로 교체된다.-사람도 껌도 단물이 빠지면 뱉어진다. 또 급해지면 총 쓰는 놈 하나 구하면 그만이다. 녀석은 그곳이 자신의 장례식장인지도 모르고 이제 내가 적어준 주소의 장소로 가서 세상과 이별을 할 것이다. 녀석에게 준 주소는 다른 '손'들을 처리하는 '처리반 손'들이 있는 곳이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일을 해오고 있다. '검은손'들에게 일을 맡기고, 처리 비용을 지불해주는. 그리고 불필요해진 녀석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여 본 녀석일수록 확실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좀 전의 녀석은 내가 자신만 관리하고 있는 줄 알고 있겠지만 내가 관리하는 ‘검은손’들은 한둘이 아니다. 나는 총 다섯 명의 ‘검은손’을 관리하고 있다. 차량사고 전문가, 가스 폭발 같은 영화 특수팀 같은 경우도 있고 다양하다. 납치를 하는 녀석도 있고 매장이라는 방법을 쓰는 녀석도 있다.

 

    네 번째 잔은 지난 삼년간 치킨 배달부로 고생한 녀석을 위해 건배하기로 하며 나는 다시 잔을 비운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복잡해 보이는가? 복잡해 보이는 것은 단지 실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해서 실체가 없다고 받아들여선 결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테이블 같은 것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테이블 위에서 볼 때는 아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테이블 아래는 바쁘게 수많은 손들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조금 괜찮은 설명이 될 것 같다. 더 상상해 봐라. 테이블 아래의 '손'들은 사람처럼 한 쌍이 아니라 개체수가 많다. '손'들 중엔 아까 그 놈 같은 '검은손'들도 있고, 돈을 만지는 '큰손'들도 있고, 우산 같은 것을 움직이게 하는 '손'들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제 좀 잘 상상이 되는가? 그리고 '손'은 임무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찹쌀떡의 흰 가루 말고도 비싼 흰 가루의 유통망을 관리하고 있기도 있다. 복잡하긴 하지만 어차피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장이라는 위치가 그런 것 아닌가? 사회적 위치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수많은 일을 하고 있다. 정말이다.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저기 잔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나는 아주 넉넉하게 살 수 있다. 남들에겐 찹쌀떡 장수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은 또 따로 있다. 흰 가루만 들고 다니면 마약으로 의심당하지만, 흰 가루를 찹쌀떡과 같이 들고 다니면 그 어떤 의심도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찹쌀떡 장수가 들고 있으면 향정신성 성분의 흰 가루들이라 해도 찹쌀떡 가루로만 보는 것이다. 나의 찹쌀떡 장수라는 포지션은 회사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아무튼 이번 달엔 보너스가 들어올 테니 차를 바꿔야겠다. 그리고 쿠바산 시가를 더 사야겠다. 산다는 것이 뭐 있나. 살아남아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지. 결국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거다.

 

 

    #. 4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단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 '보이지 않는 손'의 다른 손들이 나의 목을 조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상사가 분명 말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던 사람은 타깃의 아래층이었다고. 나는 이제 그를 그냥 두고 떠날 수 없다. 그에게 위협을 알릴 것이다. 그대로 둔다면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어제 나에게 죽을 수도 있던 사람에게 무슨 아량을 베푸는 거냐고 어이없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베푼 상사의 따뜻함이 나를 움직였다. 나는 분명 상사의 마지막 따뜻한 행동 때문에 변했다.

 

    상사의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배려가 아니라 나를 이렇게 쓰다 버리려 한,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 조직에게 복수 같은 것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나의 심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어제까지의 나였다면 사건 현장에 다시 오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짓은 조금 모자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그러나 집을 나선 뒤 삼십 분. 나는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상가들, 도로, 공원까지 모든 것이 정말 완벽하게 평범해 보이는 곳이다. 아직 조용한 것으로 보아 아직 시체가 발견된 것 같지 않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아직도 명확히 기억하는 A아파트 103동 404호. 나는 다시 그곳의 아래층에 도착한다.

 

    '띵동. 띵동.'

 

    303호의 벨을 누른다. 어떻게 이야기할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치라고 그것만은 분명히 전달할 것이다.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킬러가 아니게 된 나는 임무를 처리할 때보다 마음이 조급하다. 빨리 도망치라고 이야기하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이윽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누구세요?"

 

    나타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해 보이는 아저씨다. 평소대로라면 배달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처리했을 것이다. 그 편이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손에 들려 있지 않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다.

 

    "용건부터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위험합니다."

 

    살인자일 때보다 딱딱하게 말이 나왔다.

 

    "교회 안 가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쾅 닫아 버린다. 내가 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알리러 온 하늘의 전령쯤으로 보였나 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광범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개인적으로 다가올 종말의 예언이다.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문을 치며 내가 말한다. 흥분한 탓인지 목소리가 커져 있다. 등 뒤로 긴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신문도 안 봐요."

 

    열리지 않은 문 뒤에서 소리만 전달된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안 가시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제 이야길 들어보세요. 꼭 들으셔야 해요. 저는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끼익.' 문이 빼꼼 열린다. 정체라는 것에 반응한 것이 틀림없다.

 

    "가시라니까요. 저희 집은 조상님한테 제사도 지내지 않아요."

    "그럼 이 말만 하겠습니다. '당신 보이지 않는 손'에 일원이시죠?"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내 입으로 내가 속해 있던 이 단체의 이름을 밖으로 꺼낸 것은 처음이다. 익숙하지 않다. 문은 다시 한 번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닫힌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을 이어본다.

 

    "믿지 않으셔도 좋아요. 저는 어제까지 당신을 죽이라 명령을 받았던 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꼬여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집 위층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제 실수로 엄한 사람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조직은 여전히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확신합니다. 조직은 ‘검은손’에게 내린 명령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조직원이 아니라고 저에게 말씀하시겠지만요. 도망가셔야 해요. 사람을 쉽게 죽이는 곳이니까요."

 

    나는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열려 있던 문이 확 열리며 남자가 튀어나와 나를 안으로 잡아챈다. 그리고 문을 닫고는 나의 멱살을 잡아 닫힌 집 안쪽의 문으로 밀어붙인다.

 

    "너 뭐야.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역시 그도 '손'이다. 그러나 나를 꽉 잡고 있는 손아귀의 힘이 약하다. 나에게 이 정도를 제압할 힘 정도는 있지만 그리 하지 않는다. 이 '손'은 그런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에 대해 알게 된 사람입니다."

    "나를? 어떻게? 당신 혹시 ‘바닥’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어. 너 같이 젊은, 그리고 아시아인이 그럴 리는 없

 

    내 멱살을 쥔 그의 손의 힘이 약해진다. 바닥? 아마 조직원의 다른 명칭인가 하고 생각해본다.

 

    "날 어떻게 아는 거야?"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살인 명령에 대해 난 이미 이야기했다. 멱살을 놓은 그는 고민에 빠진 표정이 된다.

 

    "당신이 보이지 않는 손의 일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조직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우리가 서로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정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껏 조직을 배신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정리해왔기 때문에, 제 타깃이 되는 사람이 우리 조직의 일원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입니다. 조직은 처리되지 않은 일을 다시 처리할 겁니다. 저는 방금 그곳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고요. 끝까지 믿기 어려우시다면 윗집의 시체를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4층 정도는 ‘검은손’인 제가 올라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더욱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이 된다.

 

 

    #. 5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기업을 일컫는 말이었다.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금융권과 정치단체가 밀집해 있는 여의도에서 구두닦이로 위장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업무는 간단하다, 목표 대상들의 구두를 수집해 구두를 닦고, 밑창에 위치 추적기를 다는 것이다. 구두 닦는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아 특별한 불만도 없다. 더욱 좋은 것은 이 일은 당신의 생각보다 많은 현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금도 내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가장 놀랬을 때는 2003년도에 〈 올드보이 〉란 영화가 나왔을 때다. 그 영화에서는 기업이 나에게 비밀스레 주어준 임무에 대해 그대로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설마 감독도 손들 중 한 명이란 말인가?- 그 영화가 히트한 뒤로 한동안 나는 나의 손님들이 영화를 보고 '이거 내 구두에도 도청 장치가 있는 것 아냐?' 하는 통에 소화불량에 걸린 적이 있다. 진짜로 그렇게 말한 타깃에게 설치해야 할 추적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마다 '예? 저는 구두밖에 몰라요." 하고 멍청한 연기를 하는 것으로 잘 넘기긴 했다. 자기가 주는 몇 천 원에 굽신굽신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별로 없다.

 

    때론 나 같은 사람이 우산도 수선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우산은 여러 모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다.- 서로 정체를 공유하진 않았지만 우산 수선을 맡기러 오는 자들은 대부분 회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좀 전 뜬금없이 젊은 청년이 나타나, 자신은 살인을 맡은 요원이었으며, 사실은 자신의 손에 내가 살해당할 사람이었는데 수가 뒤틀려 나 대신 위층의 다른 사람이 죽었고. 기업은 목표로 한 사람을 반드시 죽이고 마니 어서 도망치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이건 영화 〈 올드보이 〉의 출현보다 더 놀랄 일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 중에서도 ‘엄지’에 속하는 소수의 특별요원 이다. 다른 '손'들이야 지역별 관리자가 대체적으로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손' 한국의 대표와 '보이지 않는 손'의 '바닥'이라 불리는 글로벌 간부 이외에는 알 수가 없는 소수 특별요원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가 주요한 위치, 엄지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손'들에 비해 더 많은 내부 정보 등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보들은 오직 '바닥'들만 알고 있다. 바닥이 아니라면 부부 사이라도 서로 정체를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고, 우리는 그림자들이기도 하기에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다.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 나를 찾아온 저 청년이 살해한 위층 사람이 우리 회원이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을 정리해본다. 저 청년을 완전히 믿을 수 없지만, 나의 정체를 언급하고 있는 이상, 나를 죽이란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을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그리고 녀석은 권총을 나에게 보여줬다. 장난감은 아니다. 내가 설치했던 위치 추적기 중 하나가 발각된 것이 틀림없다. 기업은 입막음을 위해, 나를 처리하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에겐 부업을 통해 얻은 큰 돈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도망치기로 한다. 일단 정체가 드러난 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검은손’이었다는 청년은 급한 대로 현금 수송에 이용하기로 한다. 녀석에게 돈다발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하나 맡겼다. 도주에 얼마의 돈이 들지 모른다. 나 혼자 들 수 있는 현금은 한계가 있다. 저놈은 나에게 필요한 돈을 옮기는 데 어느 정도까지는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믿을 사람인지는 몰라도 쓸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해야 한다.

 

    그래도 나에게 적지 않은 현금이 있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돈으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살아남으려 해도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수가 틀리면 돈으로 매수라도 하면 그만이다. 돈이란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기다.

 

 

    #. 6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초국가적 커머셜 단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가 무심하게 살아가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은밀한,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손'들에겐 무한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들의 주 활동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냥 그들의 활동에서 착안하여 이름 붙인 작은 이론을 정립한 것뿐이다.

 

    나의 주 임무는 회수다. 물론 대외적으로 알려진 직업은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를 맡고 있다. 아주 치밀한 계산으로 선택된 직업이다. 우리 요구르트 아줌마들은 남의 집 대문 문고리를 만져도, 아파트 우유 구멍에 손을 넣어도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다. 어디든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란 말이다. 예민한 아줌마들의 경계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덜 가진 척만 하면 그들은 우리에 대한 경계를 아주 늦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많이 가진 사람이고 적게 가진 사람이고 가리지 않고 잘 통하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습다. 그들이 나를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웃을지 몰라도, 나도 속으로 그들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상대도 되지 않는 중요한 일과, 그에 따른 소득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산만 챙기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위치로 옮기곤 한다. 그것들은 아주 가벼운 물건이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가끔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흰 가루들이 떨어지기도 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요구르트 배달에 대한 수입은 부업으로 조직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묵인된 영역이다. 나로서는 짭짤한 일이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 도중 어느 단골 아주머니 하나가 다가와 속삭였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단체의 일차 암호다. 그러나 아직 확정할 수는 없다. 우연히 거는 인사말일 수도 있다. 나는 확인을 위해 암호에 암호로 대답을 한다.

 

    "날씨라는 것이 비가 올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거겠죠."

 

    "비는 내리지 않을 겁니다. 당분간은요."

 

    정확한 이차 암호다. 확실하다. 그녀도 '보이지 않는 손'의 일원이다. 평소에 요구르트를 세밀하게 분석하며 고르는 이 수더분하게 생긴 아줌마도 ‘보이지 않는 손’의 회원이었다니, 더욱이 나 같은 이를 관리하는 고위간부였다니.-이차 암호는 간부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다고 배웠다.-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다. 그녀도 내가 맡은 구역도 너무나 평범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는 내리지 않을 겁니다. 당분간은요."

 

    그녀는 확인하듯 다시 암호를 말한다. 내부의 손에게 나타난 위험신호를 회원들에게 전달하라는 이야기다.

 

    "얼마나요?"

 

    "이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떠난다. 문제를 일으킨 자가 두 명이라는 이야기다. 더 이상 들을 이야긴 없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불리는 아지트로 복귀한다. 그리고 요구르트 통을 비우고 아지트에 지사로 보내기로 되어 있는 우산을 있는 대로 챙긴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 입구, 버스정류장 근처에 우산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마치 분실물들처럼 보이게. 아무도 요구르트 아줌마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저 평소대로 요구르트를 이리저리 배달하는 것처럼 움직이면 된다. 누군가 본업을 진행하는 나에게 다가오면 웃으며 요구르트를 꺼내 '이거 좀 드셔보세요. 저렴하게 나왔어요.' 하면 된다. 그럼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나로부터 멀어진다.

 

    특정 지역에 우산을 깔아 둔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이상 사항이 생겼으니, 당분간 모두 활동을 멈추고 다음 지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비밀 신호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우산을 주워 가는 이들은 드물다. 또 우산이란 것은 근처에 주인이 금방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폐지처럼 사람들이 함부로 주워 가지도 않는다. 우산을 수집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에 약간의 피해가 가겠지만, 위협에 노출되는 것보단 훨씬 안전한 선택이다. 우리는 그렇게 수백 년이 넘게 단체를 유지해 왔다.-그렇게 들었다-나는 그렇게 일을 진행한다. 내가 속한 이곳을 위해 살아간다.

 

 

    #. 7

 

    이상하게도 우리 아파트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은퇴한 아빠도 마찬가지다. 조금 특별한 것이라면 이사를 온 뒤로 추억의 맛이라면서 혼자 잡상인의 찹쌀떡을 사 드시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아저씨들처럼 등산 사진을 톡 프로필에 해놓은 그냥 그런 평범한 아버지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은퇴 이전까지 벌어오신 돈으로 알뜰살뜰하게 가정을 꾸려 나가시면서 우리를 위해 요구르트 하나도 심각하게 고르는 그런 평범한 어머니인 것이다. 톡 프로필 사진을 다른 아주머니처럼 꽃 사진으로 해놓는.

 

    그런 나에게 평범하지 않고 이상한 것은 일기예보뿐이다. 분명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비가 오지 않는 탓에, 학교에 우산을 두고 와 버렸다. 이번에는 학교의 경제학 수업 아담 스미스의 시장논리 발표 시간에 교수에게 까여서 평소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누구를 탓하리.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하고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때 길가에 버려진 우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도 우산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벌써 집에 오며 두 개를 발견했다. 지하철 역 앞에 하나, 아파트 초입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하나.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은 실수를 한다니 픽 웃음이 나온다. 나도 그렇게 이 아파트 주변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저 하품이 나올 듯한 평범함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모든 것이 평범한 아파트 주변의 모습이다.

 

 

 

< 선정평 >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에서 착안해 자본주의 시대의 ‘검은 손’들의 암약상을 다루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경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독과점 없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시장을 최고의 시장으로 보는 이론이다. 소설에서는 테러범 조직의 분업화된 시스템으로 비밀스런 테러를 행하는 검은 손들과 또한 그들을 처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먹고 먹히는 세계를 각각의 화자를 내세워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사냥개도 결국은 사냥 당한다는 논리다. 재치 있는 발상과 가독성 있는 스토리에서 젊은 예술가의 힘을 느꼈다.
 
    권지예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첫 수상을 했을 때는 아무래도 얼떨떨한 기분이 컸었는데, 다시 글로 상을 받게 되니 이번엔 정말 작가가 되었구나 하는 기분이 듭니다. 정말로 기쁩니다. 서른 살의 나에게, 서른 살의 당신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우산을 분실하고, 편의점에서 새 우산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의 챕터 1이 시작되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완전한 침묵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쓰다 일어나 걷기도 합니다. 좁은 공간이라도 빙빙 도는 방식 등으로 말이죠.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독자의 의견은 발표 후에 듣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완성까지 혼자의 생각과 힘으로 글을 끌고 가야 하는 것이며, 결국 작가 스스로가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면 말이죠.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철학 2부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올해 책이 나온 『백설춘향전』이 1부작 격의 내용이고, 지금 2부작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알려드리자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것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라고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현중 (소설가)
 

1985 경기도 가평 출생. 숭실대 철학과 졸업. 제8회 디지털작가상 대상 수상. 『백설춘향전』 영풍문고 '오늘의 책'으로 선정.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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