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시] 소년들의 공화국 외 3편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소년들의 공화국

 

 


최백규

 

 

 

총구를 겨누던 손가락들이 막사로 향하는 저녁
각자 죄 지은 손을 모아 착한 기도를 했다
심장에 총알이 박히면 많이 아플까요
지금 들리는 전투기 소리는 이곳을 바라보는데
도대체 어디 계세요?
교회는 하늘로 칠해져 있었다, 십자가만이 먹구름이었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신은 빗방울로 떨어졌다

 

익숙한 것들이 밤마다 너무도 쉽게 사라졌다
아직 따뜻한 시체들은 몇 줄의 결과로 소각되었고
어디에도 과정은 적히지 않았다
죽은 동기의 관물대를 치우며 느린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남은 자들은 여전히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우며
아침에 눈뜰 때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우린 이곳에 보기 좋게 버려졌어! 철책을 붙잡고 소리쳐도
전쟁은 현재진행형, 메아리조차 없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하나둘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잰다

 

태풍의 눈을 스치는 동안 스무 번째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빗속에서 후렴이 긴 노래로 달려가던 그 밤, 소년들은
새벽과 충돌하기 직전에 모두 죽어버렸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Fin.)

 

소년들의 공화국,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와 싸우고 있었다

 

 

 

 

 

 

엔드 오브 드림 월드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만남의 광장에는 만남이 없고 시곗바늘은 열한 시 근처를 머뭇거리고
오늘 밤은 유실물을 찾을 때까지 이대로 정지할 것

 

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하늘은 파랗고 놀이기구들은 휘청거렸다
풍선과 엄마 손을 놓친 천사들이 울기 시작하고
길바닥도 함께 주저앉아 울었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나섰고 세상 끝까지 줄지어 걸어나갔다
모두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줄의 맨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나의 등을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필요해

 

어른들은 지갑 속에 입장료를 구겨 넣고 바깥에서 출구를 막아버렸다
손을 놓친 게 아니라 버려졌다는 걸 깨닫고
잃어버린 집과 엄마를 떠올리는 사이
마지막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어른들만 계속 웃었다

 

 

 

 

 

 

피터 팬은 죽었다

 

 

 

1

 

피터 팬,
너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2

 

오전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오후는 땅속에 사과들을 하나씩 묻고
밤은 필라멘트로 어둠을 밝히고 새벽은 이어폰 볼륨을 한 칸 낮추었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3번 트랙을 반복 재생시켜 놓았다

 

3

 

목을 매달고 손목을 긋는 착한 어린이들의 하루

 

거기 누구 없나요 제발 다시 한 번만 숨을 쉬어봐

 

달의 궤도를 따라 추락하는 해변 도로 위
빛이 쓰러지는 무게는 파도소리에 휩쓸린 것이다

 

오래전 이 사막에 와본 적 있어
추락했던 날을 기억하는구나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나가는 느낌이야
사실 넌 지금도 하늘과 멀어지는 중이란다
아니야 조금 다른 의미를 말해 줘
난 방법을 몰라 넌 지금도 죽어가는 중일까
그래 이제 기억났어 내가 부서져 있었어

 

우리는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것처럼 처음 보는 폐허를 한참 맴돌았다

 

4

 

목적지가 없더라도 결국엔 도착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5

 

나는 아침 햇살에 일어나며 4번 트랙이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디지, 생각하는 순간, 이미 너무 늦은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정말 죽기 좋은 날씨인 것 같아
피터 팬,

 

 

 

 

 

 

천국으로 떠나는 소풍

 

 

 

소풍을 가자
공중정원에서 살아가는 미로 위 꽃들아

 

철망을 경계로
나와 다른 종들은 좁은 곳에, 나와 같은 종들은 넓은 곳에
서성거리고 있어

 

그늘 아래 누워 있는 나, 머리맡 잠든 개
(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달콤한 사탕을 물고 자면 달콤한 꿈을 꾸듯
숨이 따뜻한 짐승 안에 가라앉은 평화

 

이곳엔 시간마저 걸음을 늦추는 것 같아 지구의 자전을 오래 바라보았지

 

천국을 생각하는 순간 떨어진 공중그네
낯선 이가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밟기 시작해
비가 쏟아지자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어

 

꽃은 다 지고, 혼자 남아 울었던 마지막 소풍

 

 

 

< 선정평 >

 
「소년들의 공화국」 외 3편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요즘 젊은 시인들은 어른이 아니고 어린아이일까?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엔드 오브 드림 월드’의 세계를 이 어린아이의 시들은 헤매고 있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우리는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어른들만 계속 웃’는 세계였고, 나에게 그것은 ‘처음 보는 폐허’의 현장이었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3번 트랙을 반복 재생시켜 놓고 잠드는 이 아이(!)의, 목을 매달고 손목을 긋는 이 착한 어린이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꽃은 다 지고, 혼자 남아 울던 마지막 소풍의 기억이 이 세상에 나와 살았던 기억의 전부가 아니기를 빈다. 어서어서 삶에 있어서도 시에 있어서도 어른이 되기를!
 
    유홍준(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아!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적은 결과물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군대, 놀이공원, 해변, 동물원처럼 익숙한 장소들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힙합, 록, 아이돌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번 시들은 ‘쇼미더머니’와 ‘믹스앤매치’를 보며 적었습니다. (‘iKON’의 빠른 데뷔를 기원합니다!)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등단한 지 얼마 안 되어 친한 시인이 손미 누나뿐입니다. 대구 시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제가 믿고 따르는 김동원, 장하빈 시인님께서 1차 독자가 되어 주십니다.

 

5. 지금 막 발을 뗀 신인이지만,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첫 시집까지 ‘이 세계는 평화롭지 못하다’는 중심 주제를 완성시키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최백규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등단이 ‘네가 쓰는 것이 맞다’고 말해줬다면, AYAF는 ‘계속 써도 된다’고 말해준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써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백규 (시인)
 

1992년 대구 출생.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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