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시] 몬순 외 3편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몬순

 

 


최세운

 

 

 

    흔들리는 당신은 길어. 우산 밑으로 아기들이 손을 자르며 온다. 오래된 성당처럼, 피 흘리는 거라고. 아기의 잘린 손목에서 산이 불타며 마을이 불타며 굴뚝이 불타며 당신이 불타며 노래가 불타며. 소금이 된 다리들이 떨어진다. 가늘고 긴 성대 하나를 주워, 흔들리는 당신은 길어. 당신은 불덩이에 던져진 신발로 온다. 선반에 머리는 세울 수가 없는 거라고. 우산 밖에서 재가 된다고. 나무 두 그루가 아름다웠다. 고해소의 창틀처럼,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귀를 열지 말라고. 모든 지붕을 무너뜨리며 당신이 온다. 이마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창문에 서서 입김을 분다. 허공을 향해 긋는 거라고. 세어 본다고. 가득하다고. 아득하다고. 끊어진 손들이 내 발을 가만 쥐는지. 흔들리는 당신은, 길다.

 

 

 

 

 

 

나니와 나니

 

 

 

    나니와 나니는 어항 속으로 다리를 떨어뜨린다 불상처럼 하루 종일 원을 그리며 지내려고 그리지 않으려고 거기는 벽이고 벽이 아니고 일요일의 사원이고 일요일이 아니고 스케치가 없는 정오야 정원이 아니야 사방이 꽉 막힌 푸딩이야 수줍은 나니와 마녀가 되려는 나니는 발끝으로 천장이 되고 찬장이 되고 소란한 그릇 속에서 무릎으로 겹쳐진다 시든 백합과 엎질러진 입술들이 포개어지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나니와 미소를 짓는 나니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건반들을 하나씩 누른다 나니는 앵두를 부르고 나니는 빨강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반드시 행진곡이 되어야 해 당부하는 나니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니 제자리를 돌면서 캉캉 춤을 추는 나니와 접시 뒤에 숨는 나니는 이번에는 정말 늦으면 안 된다고 시계를 잘 보라고 차례차례 약음 페달을 밟으며 나니와 얼굴과 나니는 가까워지고 비와 앵두가 친구가 되고 점점 여백이 되는 나니와 나니의 가구들 이것 봐, 근사하지 않아? 사람들의 발소리가 하루 종일 가두어졌어 나니는 꽃다발을 꺾고 나니는 초대장에 적힌 주소들을 지우고 하나도 근사하지 않아 코끼리는 걸어가면서 똥을 싼대 박수를 치며 웃는 나니와 무릎을 모으는 나니 아까부터 너의 해변에 화향들을 심어 두었어 입김을 부는 나니는 흰색이 없는 나니와 부케와 부음을 떠올린다 나니는 머리를 묶고 나니는 일기장을 펴고 모든 소매를 끌어당긴다 나니야, 나니는. 이제 맨발로 지우자고 해 나니야, 나니는. 영원히 슬퍼지자고 해 손을 내미는 나니와 눈을 감은 나니는 햇빛을 따라 거울로 간다

 

 

 

 

 

 

바닐라

 

 

 

    바닐라는 긴 울음을 꺼내 먹는다 울음은 뜯기기 전부터 고소한 냄새를 냈다 타일은 더 비좁아졌다 바닐라는 김이 나는 울음을 집어, 창가에 올려 먹는다 바닐라가 울음 앞에서 거대한 혀를 내밀 때 울음이 고개를 숙였다 손을 모으고 입속으로 들어갔다 한 덩이의 울음이 엎드려, 부푼 성대 하나를 움켜쥐었다 단단한 울음이 잘리고 깨지면서, 울음의 터진 머리 위로 붉은 등이, 아기의 양팔이 끊어지는 이물감을 느꼈다 울음이 죽을 때 바닐라의 혀는 더 빨개졌다 울음이 죽을 때 잠긴 문들이 흔들렸다 힘없이 사라지는 천장을, 바닐라는 덧니를 느끼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바닐라는 미명까지 피를 쏟았다 아기들이 버려졌다 그 위로 파리가 공중을 그렸다 울음을 다 집은 젓가락이 있다 그 자리에 신문지로 싼 바닐라가 놓였다

 

 

 

 

 

 

골리앗

 

 

 

    그는 길바닥이나 담벼락에서, 타고 남은 것들을 점퍼로 성겨 입는다 왼쪽 소매 끝은 강물이 증발한 흔적 몸속에서 태양 하나가 불타고 있다

 

    표면을 뚫지 못한 흑점 무허가 건물 한 동이 완전 소실된다 불길은 식도에 구멍을 내고 점액질의 마그마로 터져 나온다 두 손으로 귀를 가렸지만 층들이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완강한 창틀이 구부러지고 있다네 커틀릿의 하루가 시작된다네 쇳물 속에서 대장장이의 머리들이 원인미상의 웃음을 짓고

 

    혀가 터진다 겨울 숲으로 쏟아지는 그의 잔말은 불씨와 함께 사그라진다 발화점이 낮은 인간들이 강둑으로 몰려들고, 그는 빈터에서 휘파람을 불며 단단한 한 겹을 꺼내 입는다 같은 방향으로만 달궈지는 맨발에 절뚝대는 열을 가한다

 

    그의 눈동자는 완벽한 개기일식 중이다 아치형의 굴다리 밑에서 그는 숯불처럼 웅크린다 심장과 목덜미와 가소성의 손바닥이 기화될 때, 등을 뚫고 나오는 집. 안방에서부터 불이 붙는다 작전에 실패한 소방수들이 고양이의 코를 자르고, 배낭 안에서 아내와 딸아이가 한 몸으로 들러붙는다

 

    그는 숨을 당겨 폭발한다

 

 

 

< 선정평 >

 
    「몬순」. 이 시인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산문적 양식에 친숙해 보인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특성은 목소리 자체가 비동일화된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하고, 그걸 누가 듣는지, 무엇을 듣는지는 상관없이 목소리 자체가 울려 퍼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것은 규정될 수 없는 시각적 모호함 속에 질감을 감춰놓는다. 이럴 때 목소리는 하나의 회화이기도 한 셈이어서, 독자는 목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목소리를 볼 수도 있다. 우기의 비는 쏟아지고 그 속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불타며, 끊어지며, 길어진다.
 
    「나니와 나니」. 목소리와 문자의 관계는 대상과 인식의 관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대상과 인식이 그 어느 쪽도 스스로의 정당성을 말할 수 없는 불모의 땅에 도달한 것이 현대철학뿐일까? 문학에서의 노래와 문자 역시 그에 비견될 만큼 오랜 싸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상을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이 악몽의 최선은 대상이 무엇이지 않기를 바라는 한, 시적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노래이며 동시에 문자이고 또한 동시에 그 둘의 그치지 않을 싸움이다.
 
    「바닐라」. 어떤 사람이 슬퍼서 우는 것에 대해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것은 슬픔에 대한 이유이지 그 울음 자체가 아니다. 세계의 방식은 ‘당신의 울음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 가능하지 않도록 질문을 한정시켜 왔다. 여기에 대립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마침 여기에 ‘당신의 울음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과 더불어 ‘그 울음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동반한 질문자가 있다면 그의 의문이 곧 시로 대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라는 세계 안에서 ‘그 울음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라는 기존 세계에 대한 대립적 질문 뒤에는 또 하나의 문장이 보유(補遺)될 수 있다, ‘저도 저의 울음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이라는 바람이.
 
    「골리앗」. 이 시를 사회적 관점에서 읽는 것은 그 내용에 있어 작자의 의도에 충분히 다가선 독법이라 할 만하지만, 형식은 씨의 다른 시들과 연결됨으로써 그 정당성이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시에 있어서 언어와의 동일화를 통하여 주관은 사회에 대한 그의 단자론적 모순을 부인함과 함께 사회화된 사회 내부의 그 단순한 기능을 아울러 부인”한다는 아도르노의 말이 시학과 사회학의 적절한 화해라 할 수 있다면, 시적 언어는 시로부터 사회에로 이미 감행되고 있는 것이며, 그 감행이 불화인 한, 사회는 시적 언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부인들을 이 시에서 찾아보는 일이 또한 유의미할 것이다.
 
    조연호(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버스 안이었습니다. 오래된 적막 속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특별한 감정과 체험보다는 짧은 단어와 문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얻은 단어와 문장을 휘발되지 않게 따로 적어두었다가 집으로 돌아와 시로 씁니다. 단어가 단어를,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면서 착란과 착상을 경험합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편입니다. 하지만 음악은 글을 쓰기 전까지만 듣습니다. 조용하고 좁고 어두운 곳을 좋아해, 방에서 일정한 시간과 요일을 정해두고 글을 쓰는 편입니다. 눈을 뜰 때와 눈을 감을 때에 많은 도움을 얻습니다.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활동하는 동인은 없고, 화요반 식구들이 소중한 문우였습니다.

 

5. 지금 막 발을 뗀 신인이지만,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미지’와 ‘불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차창 밖에서, 사물과 사람들은 음영이 되어 손을 흔들 것입니다. 그만 가라는 뜻인지 그만 오라는 뜻인지, 고민할 것입니다. 문 앞에서 비닐 봉투를 내려놓고 주머니를 뒤적이는 앞집 사람처럼, 쓸 것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 ‘오래’는 맞을 것입니다.

 

 

최세운 (시인)
 

1982년 전북 전주 출생. 2014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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