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4차_시] 나의 연못 외 3편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나의 연못

 

 


서윤후

 

 

 

    1.
    우리는 아직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동생

 

    2.
    고요한 교실
    투명한 햇빛에 흩날리는 먼지 바라보다
    철제 필통을 떨어트렸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귀가 빨개졌다

 

    간밤에 깎은 연필들이 부러졌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흰 종이 앞
    화분에서 길 잃은 꽃말처럼
    나는 나의 이름을 외웠다

 

    3.
    내가 자주 가는 연못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물방개 튀어 오르고 발을 담가도 혼나지 않을 깊이, 연못을 잊은 사람들은 오랜 잠수 시합을 하고 있거나 저수지에 갔을까 바다가 되기엔 담가야 할 발목들이 부족한 이곳은

 

    내가 자주 오던 연못이었다

 

    4.
    눈에 흰 천을 두르고 숨바꼭질 했다
    아이들이 박수 치며 여기야, 아니 저쪽이야
    귓속말로 내게 바람처럼 불어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술래가 바뀔 차례인데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다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뿐

 

    5.
    손을 갖다 대면 온도계는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직 나에게 남은 에너지

 

    집에 가는 길엔 모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빨개진 귀는 누가 물들이는 걸까 두 뺨 붉게 달아오르는 나란한 거리에서 발생된 체온

 

    6.
    나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처럼
    책상 밑에 숨는, 아직은 작고 연약해서
    이불이 너무 커 밤새 이불 밖을 나오지 못했다
    창문 밖에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
    연못처럼 조용한 성격에
    내일의 연필을 깎아줄 수 있는 솜씨를 지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손뼉 치고
    여기야, 바로 여기에 있어
    숨은 적 없이 숨어 있게 된 방 안
    죽은 손목시계는 멋으로 차고
    고장 난 태엽을 돌리며 나는 오랫동안
    나를 맴돌았다

 

    7.
    초인종 누르지 않고도 찾아드는 은인들에게

 

    연못은 바다보다 더 어려운 둘레
    물속에 목마른 사람을 위한 건배

 

    풀이 죽은 동생이
    죽은 따옴표로 흰 접시를 채웠다

 

    밥을 먹을수록 말수가 사라지는 동생
    이 병신아
    소리 없이 우는 건 누가 알려줬냐고

 

    멱살을 흔들던 그림자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입지도 벗지도 않은 채 낱낱이

 

    나의 연못에 온 첫 손님이었다.

 

 

 

 

 

 

거장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데 헤어지기 바쁩니다. 이름 불러준 적 있는데도 생각나는 게 향기뿐인 사람처럼. 선생님,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에게. 이름보다 먼저 도착한 엽서를 샀습니다. 벌거벗은 소년이 피리를 부는 삽화가 그려진………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교차로엔 움직이지 않는 차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의 뼈를 붙잡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기분은요. 탁자에 걸터앉아 모질게 의자를 바라보았어요. 선생님이 편안하신 곳에서 봬요.

 

    같은 커피를 마시고 다른 카페인으로 뒤척이는 카페에 들어가 계신다면……
    창가에서 선생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전쟁을 상상했어요. 죽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는 말. 창문 하나에 역설적인 온도는 누가 관여하나요? 어디에도 없는 실내는 오로지 사람일까요?

 

    질문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서…… 면목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머플러를 선물하고 싶어요. 목젖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그러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거죠. 체온은 상납하기 쉬운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은 아시죠?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잖아요. 모르는 걸 모를 뿐이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거의 도착했습니다. 방금 첫눈을 맞았어요.
    꽃다발을 사려고 했는데 마카롱을 삽니다.

 

    선생님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감당이 안 되는 난파선에서 물 대신 불을 생각하던 날엔, 가여운 밤을 출렁이며 보냈어요.
    이제 저 멀리 선생님이 보여요. 아주 흐릿하게.
    첫눈을 맞고 있는 선생님이 그곳에 서 계셔서

 

    다행히도…… 라고 운을 띄우는 말들로 포장한 불행을 지피며 벽난로에 겨울을 지피고, 십 분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이기 위해 얼마나 달콤한 말들을 해야 할지

 

    아직도 연인들이 발생하는 골목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사랑하는 사람을 바깥이라 생각하는 고백이
    리본을 달 만한 일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시나요?

 

    귀찮은 제 질문들이 행여나 선생님의 안경을 뿌옇게 김 서리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급해지는 건 시계가 아니라 시계를 찬 사람들임을.

 

    선생님,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일 만한
    그런 따옴표를 줍고 싶습니다만
    홀로 집에 가는 그 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설령 비가 오는 날이더라도
    끝끝내 모르는 척해주십시오. 일기예보가 틀려도
    살아낼 수 있는 십 분이 제게도 생긴다면
    부디 목례하며 지나칠 수 있는 밤의 세계에서
    안녕히, 또 안녕히.

 

 

 

 

 

 

커뮤니티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그렇다면 공동체라는 글씨는 희미해질 것입니다. 모든 이름을 불러줄 수 없습니다. 헷갈린 이름 위에 반창고를 붙여줍니다. 다정한 건 어렵지 않습니다. 쉽다는 말은 생략합니다. 조금 친밀해졌다면 개인 체조를 시작합니다. 가만히 누워있거나 불이 나게 뛰어다니거나 팔을 접어 베개로 삼는 모양으로부터. 팔레트에 굳어 있는 물감들이 조금씩 녹습니다. 색깔은 자연스러워질 때 선명합니다. 공동체는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어지럽습니다. 지구는 하나입니다. 우주를 하나라고 보기엔 힘듭니다. 하나가 되는 일이 가장 많이 갖는 일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가까워지지만 같아질 수 없는 부등호를 만듭시다. 숫자는 이름보다 편리합니다. 숫자로 된 편지를 씁니다. 때론 말이 지나치게 두꺼워 단단해 보였던 껍질을 벗겨냅니다. 공통된 취향을 고백합니다. 그림자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콜라주로 만든 몽타주가 생깁니다. 데칼코마니는 사라진 미술 기법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옆 사람으로 가는 시차를 생각합시다. 사이사이에 거리를 조성합시다. 무단횡단을 해봅시다. 사이렌이 울릴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마침내 사라집니다. 세계는 무너집니다. 블록들을 다시 하나씩 쌓아봅니다. 선별된 입구들이 마침내 하나의 복도로 통합니다. 인사를 합시다. 처음 본 사람처럼, 공동체는 끝났습니다. 하나들의 집합이 됩시다.

 

 

 

 

 

 

종이의 생활

 

 

 

    종이 다루는 일이 서툰 사람에게 씁니다

 

    우리는 물에 빠트리거나 찢어버리거나 내버려둡니다
    단 한 장의 종이를 가지고 살면서
    여러 겹의 가벼운 글씨를 쓰고 때론 아무것도 적지 않음에
    종이를 구겨버리기도 합니다

 

    나는 내 종이를 다해 편지를 씁니다
    종이가 사라지는 날에야 종이는
    비로소 무거워질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어렵습니다

 

    사라진 사람이 접어둔 자리
    점선으로 그린 그림자가 드리우고
    빛에 조각난 검은 글자들
    서로에게 너무 많은 인사가 되었던 우리의 낱말이
    다시 처음 본 사람의 이름이 될 때까지

 

    종이는 얇고 투명하게 우리 사이를 넘기다 베인 상처로 조금씩 행간을 만듭니다 그 정도의 눈금이 좋아서 나는 온힘을 다해 나의 종이를 낭비합니다

 

    딱지 앉은 상처를 뜯듯이 우표를 뗍니다
    잘못 부친 편지는 빚더미가 될 수 있습니다

 

    또각또각 연필이 똑바로 걸어가면 생기는
    그림자를 읽어가며 일어섭니다
    종이로 접은 사람이 내게 건네준 롤링페이퍼
    나는 나를 찢으며 왼손으로 편지를 씁니다.

 

 

 

< 선정평 >

 
    시 「나의 연못」은 연못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유년의 이미지들을 포착한 수작이다. 불안과 고립감 속에 시는 그러나 온도계의 눈금을 “아직 나에게 남은 에너지”로 묘사하듯,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무릇 모든 생에는 생명 단위로서의 태생적 불안과 욕망 실현으로서의 의지가 하나의 원초성으로 간직된다. 이 시는 유년에 얽힌 그런 고리들을 하나의 물결, 연못으로 목도함으로써 자신의 연못을 향해 나아간다.
 
 
    대상과 주체 사이의 위상적 접근이 매우 흥미로운 어법으로 펼쳐지는 「거장」은 ‘선생님’이라는 대상에 대한 나의 행위와 태도를 스스로 규정하는 동시에 ‘선생님’ 자체를 또한 이중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결국 주체와 타자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 전체를 채색한다. 무엇보다 이 시가 주장하는 것은 주체/타자의 정체가 아니라 주체/타자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또한 그것은 이 시가 주장하는 시에 대한 의견이면서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시인이 시에 부여하는 미적 가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커뮤니티」. 이 시인의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는 시의 기본적 화법에 매우 충실하다. 이러한 근면이 감각적인 어법의 화려함에 가려 간과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고려하면서, 오히려 이 시인의 대상에 대한 근면은 이 시인이 가진 감각적 어법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인 원천으로 부각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후자는 간직되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전자는 간직되지 않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의 미래가 될 것이다.
 
 
    시 「종이의 생활」은 쓰기에 대한 문제, 즉 에크리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정보로서의 문자가 아닌 감각으로서의 문자, 육체로서의 문자는 이성적인 화해를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수취인, 발신인이라는 이름 가진 존재에 대한 정서가 있고, 편지글 안의 내용에 대한 정서가 있고, 글씨에 대한 정서가 있고, 종이에 대한 정서가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온힘을 다해 스스로의 규칙을 낭비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모든 쓰기는 ‘왼손으로 쓴’ 것들이다.
 
    조연호(시인)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올해로 자격이 끝나는 터라,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냈는데 선정되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올해는 문장 웹진에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잊지 않고 원동력 삼아 열심히 쓰겠습니다.

 

2. 이 시에 대한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이번 시들은 대부분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하여 쓰게 된 시들입니다. 낯설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비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특히, 「나의 연못」은 군대 간 동생을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사실 누구를 염두하고 쓴 시는 아니었지만, 쓰고 보니 동생의 빈자리가 눈에 선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커뮤니티」는 올해 여름 베트남 호치민에서 쓴 작품입니다. 여행자 거리에서 바라본 각국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영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메모할 때 반복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평소 잠까지 이르는 시간이 긴 편입니다. 그런데 겨우 잠이 들 때쯤 메모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잠을 포기하고 메모를 해서 나중에 쓴 시들도 있고, 잠을 선택한 적도 있었습니다. 일어나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 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가장 먼저 제가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가장 정직한 방법입니다. 구현우 시인이 아낌없이 읽어줍니다. 가장 다정한 방법입니다.

 

5. 지금 막 발을 뗀 신인이지만,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으신가요?

  시를 계속 쓰게 만드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첫 시집 앞에서 버리고 줍는 일을 많이 합니다. 환경미화원의 형광조끼처럼 가만히 빛나는 시를 입고 싶습니다.

 

 

서윤후 (시인)
 

1990년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kakao

3
댓글남기기

3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0 Comment authors
  Subscribe  
newest oldest most voted
Notify of

[…] ▶  시  「나의 연못」외 3편」, 서윤후 시인 […]

[…] ▶  시  「나의 연못」외 3편」, 서윤후 시인 […]

[…] ▶  소설  「순환선은 순환한다」,  조수경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