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다 기원 전 외 1편 - 양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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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양안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때때로 종교를 믿었다 그 뜻은 두 손을 모으더라도 무언가를 빌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른 무엇이 되려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아는 것 중 그림자는 신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가끔 나를 찾아오고 가끔 내 앞에 아른거리며 슬픔을 희석시키곤 했다

 

    창문을 열고 두 팔을 벌리면 기차 소리가 들렸다 적막한 창밖과 달리 머릿속에선 필름 속 영상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어느 영상의 남자는 좌식 책상에 앉아 초 단위로 늙고 있었다 창백한 머리칼이 떨어지는 것으로 남자는 시간을 가늠했고. 마지막 한 올의 머리카락이 떨어지자 몸을 일으켜 방 안에 불을 질렀다

 

    남자의 다락방에서 불길이 번지는 동안 건물의 거주자들이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타오르는 건물 앞에서 남자의 이름을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중얼거린 건 내 이름이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도 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고

 

    고개를 들었다
    옆에선 사람들이 기도 중이었고 나는 예배당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적당량의 햇빛이 날 비춰서 창문과 먼 쪽을 살피는데
    이곳의 모두가 중얼거리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렙들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지겹도록 걸었다 해변은 생각보다 길었고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을 수 있었다

 

    이국에서 편지가 왔어
    타일랜드,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나라가 어딘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덥고 습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사진 찍는 사람이 많구나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워지려 하나 봐

 

    아까 점술가는 너보고 예술가라고 말했다 너는 너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었지만
    나는 기뻤다 이것 봐 네 발목이 빛나고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이곳에서 오래 발목을 담그기로 하자. 누군가에겐 피사체가 될 수 있도록

 

    네 어깨 뒤로 해안선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지구의 어깨쯤일까 그러기엔 해변은 너무 좁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너무 작을지도 몰라

 

    몇 명의 외국인과 길어지는 그림자, 돌 몇 개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고 웃음과 고민, 정적 같은 것들이 물결과 함께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발가락만 적시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모래 위로 적은 이름들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아도 되겠다 물에 빠질 운명이라면 분명 비극일 텐데……
    너는 젖은 모래를 움켜쥐며 깨진 유리 같다고 말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름들이 반짝일 거라고 말해서

 

    혼란이 아닌 혼란이 이어졌다

 

    저 늙은 여인은 왜 울기만 하는 걸까
    네가 물었을 때 나는 그 노파가 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네가 나중에 늙으면 저렇게 울 것 같다고, 약을 먹고 손을 떨면서 울 것 같았는데

 

    어째서일까

 

    모래에 발을 박은 네가 나무처럼 보이자 나는 네 발이 무척 아플 거라고 느꼈다 잎을 피우기 위해 잎을 버리는 나무의 계절을 떠올리면서 치유가 아닌 치유가 계속되었다 나는 어느 곳도 다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왜 가끔 해변에 가고 싶어지는 걸까 무슨 이유로 이것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거지?

 

    나는 네 손을 붙잡았다 네가 내일의 너를 고민할 때 손을 떨까 봐
    해가 저물면 어깨는 어둡겠지만 발목은 빛나고 있었다고

 

    여긴 아직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바다의 습관과는 무관하게 떠나거나 찾아오고

 

    밤이 되면 밤의 피사체를 찍겠지만

 

    그만 돌아갈까, 너는 말했고
    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태국인처럼 적절한 대답을 고르기 시작했다

 

 

 

작가소개 / 양안다(시인)

1992년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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