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성동혁 시인의 자선시 3편

 

[공개인터뷰_나는 왜]
● 성동혁 시인의 자선시 3편

 

 

리시안셔스

 

 

 


성동혁

 

 

 

 

눈을 기다리고 있다
서랍을 열고
정말
눈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도 미래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온전히 눈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잠든 후에 잠드는가
눈은 왜 내가 잠들어야 내리는 걸까
서랍을 안고 자면
여름에 접어 두었던 옷을 펴면
증오를 버리거나
부엌에 들어가 마른 싱크대에 물을 틀면
눈은 내게도 온전히 쌓일 수 있는 기체인가
당신은 내게도 머물 수 있는 기체인가
성에가 낀 유리창으로 향하는, 나의 침대 맡엔
내가 아주 희박해지면
내가 아주 희미해지면
누가 앉아 있을까
마지막 애인에겐 미안한 일이 많았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내가 나중에 아주 희미해진다면
화병에 단 한 번 꽃을 꽂아 둘 수 있다면

 

 

 

 

 

 

 

 

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

 

 

 

 

 

나는 기상청에 당신이 언제 그리울지 물어봤다가 이내 더 쓸쓸해졌다

 

즐거운 사람들이 많았는데 새벽엔 모두 사라졌다

 

도표를 그리거나 하며 곡예사나 갈대의 춤들을 창문에 가둬 두었다

 

급류에 휩쓸려 나부끼는 깃발처럼 우린 젖지 않고도 섬을 이해하지만

 

여린 눈들이 태풍의 눈이 되어 갈 땐 거울 대신 창고에 들어가 먼지를 가라앉힌 적막을 마주 봐야 했다

 

함부로 나부끼며 울어서도 안 됐다 창고를 두들기는 사람들에게 찾을 것이 있다고 말하고 창고 밖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는 척해야 했다

 

한낮에도 나의 문장을 훔쳐 가는 바람과 반대로 걸으며

 

가여운 마을과 댐을 뜯고 날아간 하얀 염소들의 새끼들을 돌보며 늙고 싶었다

 

창문으론 쉽게 얼굴들이 비치지만 문을 열고 나면 전쟁뿐이었다

 

 

 

 

 

 

 

 

독주회

 

 

 

 

 

너는 언제쯤 우리라는 말 안에서 까치발을 들고 나갈 거니 ?
내 시집의 번역은 죽어서도 네가 맡겠지만?
너 말고는 그 누구도?
아픈 말만 하는 시인을 사랑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먼 곳에서 오역들을 모아 편지를 만들 것이다?
잘못된 문장들을 찾다 보면?
우리가 측백나무 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견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아마 그때도 사랑이 오역에 의해 태어났단 걸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불구덩이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나를 홀로 두지 마소서 (이 부분에선 네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더 이상의 불을 삼킬 수 없습니다?
매일 기도한다?
지상은 춥고 외로운 지대라 믿었다 등고선을 이으며?
슬픔은 직선으로 왔는데?
그릴 때만 곡선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얼굴은 참 구불구불하구나?
어느새 낮아지고 높아지는지도 모르게 이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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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 6 』(민음사)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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