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오현종

 

 

삽화_06난장이의죽음에나는

 


 

 

 

    난장이의 일에 나는 책임이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없다. 왜 나에게 묻는가. 물어볼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난장이의 식구들이다. 안된 일이지만, 그 집 일은 그 집 식구들에게 묻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가. 내가 어제도 말하지 않았나.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나. 누가 나에게 물어보라고 했는가. 그가 누군지 이름부터 대보라.
    아침부터 머리가 흔들린다. 새벽 다섯 시 못 돼서 창밖에서 무슨 짐 끄는 소리가 나서 깼더니, 골속에 새가 들어앉아 쪼는 것처럼 쑤셨다. 경비는 뭘 하는가. 주민들이 잠이라도 편히 자게 안 지키고 뭐 하나. 봉급 받고 하는 일이 뭔가. 엊그제도 어디서 호각소리가 나서 새벽잠을 설쳤다. 내 잠은 어디서 보상받나. 나는 관리비 한 번 연체한 적이 없는데, 그들은 왜 의무를 소홀히 하나. 세상에 거저먹는 일이 있는 줄 아는가.
    나는 난장이를 모른다. 그의 볼품없는 생김새와 성이 김 씨라는 사실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내가 꼬박꼬박 내는 관리비로 그가 먹고살았다는 사실 말고는 모른다. 그에게 지병이 있었는지, 자식을 몇이나 두었는지, 어느 집구석에 살았는지, 알 게 뭔가. 난장이는 내 친구도 아니고 일가붙이도 아닌데, 알 턱이 없지 않은가. 내가 어제도 말하지 않았나.
    어제 왔던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이 어제 왔던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모두가 한통속이다. 어디서 왔든 내 집 문을 두드려댄다면 파출소에 신고를 하겠다. 동 출입구를 열어 준 적도 없는데, 무슨 수로 강도같이 현관 앞까지 기어 올라와 초인종을 눌러대는지 모르겠다.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넣어 일을 똑똑히 하라고 주의를 줘야겠다. 내가 늙은이라고 우습게 봐서 이러는가. 늙은이라고 다 같은 늙은이가 아니다.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작자들을 더는 봐주지 않겠다. 현관문의 소유권은 엄연히 나에게 있다.
    그런데 난장이는 무슨 일로 죽었나.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난장이가 아파트 꼭대기로 올라가 뛰어내린 이유가 뭔가. 혹여 우리 동 집값만 떨어지면 어디서 보상을 받나. 옥상을 경비해야 할 경비가 하라는 경비는 안 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다니 책임감도 양심도 없다. 난장이에게 병원비가 감당 안 되는 병이나, 아니면 우울증이 있었나? 가장이 그 지경이 되도록 그의 가족들은 무얼 했나.
    문 밖의 남자는 묻는 말엔 대답도 않고, 초인종만 눌러댔다. 내가 묻는 소리가 종소리에 묻혀버렸는가. 좌우지간, 젊은 것들은 저렇게 저할 말만 하고서 남의 말은 들을 생각도 않는다. 들을 마음도 없으면서 뭘 자꾸 묻겠다고 두드리는지.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자기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비난한다. 매사에 그런 식이다. 귓구멍이 막히고 입만 산 건 저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초인종 소리와 뒤섞인 문 두드리는 소리에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막고 서 있었다. 귀를 꼭 막았는데도 무례한 소음들이 귓전을 와글와글 울려대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눈꺼풀 안쪽으로 노란 빛줄기가 꼬리를 그으며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흘러내렸다. 홀로 죽어 밤하늘에서 굴러 떨어지는 별처럼, 귓가를 울리다 잦아드는 건반소리처럼. 감았던 눈을 실눈으로 뜨고 보니 문간이 고요했다. 비로소 내가 사는 집 같았다.
    나는 살그머니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댔다. 귓바퀴를 철제문에 대는 순간 한기가 올라와 귓속이 시리고 뒷골이 쑤석였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에 달린 렌즈는 오래전에 경비를 시켜 때워 두었기에 거실로 돌아와 비디오폰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더는 머리통이 보이지 않았다. 불청객이 돌아갔는가. 우리 동 출입구 쪽을 살펴보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애를 데리고 어린이집 봉고차를 기다리는 애 엄마 둘만 눈에 띄었다. 아이 키우는 여자가 차림새가 저 꼴이 뭔가. 이불 밑에서 바로 기어 나온 모양새다. 아무리 집 앞이라도 저래서야 아이가 뭘 보고 배울까. 나는 퇴직하는 그날까지 매일 새벽밥을 안쳐서 식구에게 해먹이고, 그러고도 싹 다림질한 옷차림으로 학교에 나갔다. 우리 애들이 학교 다닐 적엔 애들이 들고 나갈 도시락 가방을 현관에 미리 챙겨 놓고 출근을 했다. 도시락도 안 싸는 세상에 여편네들이 무슨 일이 그리 많다고 교양 없이 쓰레빠짝으로 대문 밖을 나오기를 나오나.
    초인종 소리가 멎으니 머릿속이 덜걱대는 게 좀 덜했다. 어린이집 차가 도착도 안 한 아침부터 남의 집 초인종을 수십 차례 눌러대는 몰상식한 인간이 신문사에서 밥을 빌어먹고 산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려운 시험 치고 들어가서 헛짓거리만 하고 돌아다니니 제 부모가 알면 뭐라 한탄할지 궁금하다. 일반 시민이 사는 집에 무단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나는 인권을 하찮게 여기는 이 나라가 싫다. 사람답게 살 데가 되려면 멀었다.
    머리가 더 시큰거리기 전에 서둘러 커피를 끓여야 했다. 여덟 시 삼십오 분이다. 아침 일곱 시부터 아침밥을 먹으며 조간신문을 읽고, 늦어도 여덟 시면 커피를 내려야 하는데, 아침 커피가 많이 늦었다. 시간이 어그러졌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갈아 둔 커피를 꺼내고, 거름종이를 접어 사기 드리퍼 위에 올렸다. 정수기 옆자리에는 며느리가 생일선물로 부친 커피 기계가 있지만, 청소하기가 번거로워 손으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를 마시자마자 바로 도구를 닦아 두는 편이 덜 번잡하고 깨끗해서 좋았다. 기계에 물때와 먼지가 끼는 꼴은 봐줄 수가 없었다. 전기주전자의 전원을 켜자 얼마 있다 익숙한 소리가 음악같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싱크대 선반 위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고 주전자의 전원을 내렸다. 물 끓는 소리가 잦아드는 것과 맞물려 고전음악이 부엌 안으로 흘러내렸다. 커피 냄새가 진해질수록 아침나절 내내 들뛰던 마음이 내려앉았다. 축 젖어 드리퍼에 달라붙은 거름종이처럼 찰싹 가라앉았다. 그때서야 오래된 우리 집 같았다. 어제와 같은, 그제와 같은, 지난주와 같은 오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반듯하게 다린 손수건 같은 일상.
    드리퍼를 바로 헹궈 설거지대에 엎어 놓고 식탁 앞에 앉았다. 커피 향을 맡으며 한 모금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뜨거운 것을 급하게 마시면 식도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글을 신문에서 읽었다. 커피에 설탕을 타는 사람은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황설탕 통을 집어 커피에 설탕가루를 넣었다. 지금은 보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았다. 현악사중주곡이 멈추고, 라디오 아나운서가 다음 곡명을 알려주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작품번호 13 「비창」중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아다지오 칸타빌레. 설탕 넣은 차를 티스푼으로 느리게 저었다. 나는 베토벤이 좋았다. 그의 음악보다도 불우한 운명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나간 인생이 더 아름다웠다. 나는 언제나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 이끌렸다. 제 운명을 탓하고, 불만만 토로하는 자들이라면 경멸스러웠다. 세상은 나약한 인간들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거였다. 나머지는? 나머지는 세상에 있으나마나 한 들러리들이었다. 기억하지 못할 작곡가들이 수만 명인들 무얼 하겠나. 그들 모두와 베토벤 한 사람을 바꾸겠느냐고 하면 누가 고개를 끄덕일까.
    일흔세 살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에 늦은 나이지만, 음악을 듣기에 늦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내가 고전음악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한 지는 두어 달 정도 되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듣고 있는 월요일 문학수업에다 목요일 고전음악 수업까지 다니려니 이번 봄은 마음이 바빴다. 사십 년 가까이 가정 선생으로 산 사람이 전직 음악 선생의 지도를 받으려니,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은 곧 버렸다. 젊을 적부터 팔자 좋게 음악을 들어온 여자들을 쫓아가려면 몇 해가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귀가 먹기 전까지 매주 수업을 따라가면 어디 가서 음악 들을 줄 모른다는 무시는 듣지 않으리라. 대학 때 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바이올린을 켰다는 사위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음대에 진학할 계획이라는 외손녀가 음악회를 열면 귀 기울여 듣고 감상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올 것이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목구멍으로 넘겼다. 하루에 커피 한두 잔 정도는 괜찮다고, 영미가 말했다. 엄마는 편두통이 있어서 커피가 당기는가 보다, 했다. 딸 영미는 멀리 살아도 전화를 걸어와 내 건강을 챙겼다. 영준이, 우리 이 박사도 한두 달에 한 번은 들러 집 안팎을 살펴 주고 갔다. 그때마다 경비실에 들러 말을 넣고 돌아갔다. 내가 사는 층은 수시로 살펴보고, 과일같이 무거운 택배가 경비실에 맡겨지면 문 앞까지 좀 날라드리라고 했다. 아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자식 없이 혼자 사는 늙은이인가 하고 경비들이 막 대했을 게 틀림없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데, 내려다보았을 게 분명했다. 불현듯 멋대가리 없는 전화벨 소리가 음악소리를 끊어냈다. 나는 찻잔을 식탁 위에 버려두고, 거실 탁자 앞으로 종종걸음 쳤다. 영미인가 싶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영미 말고 없었다.
    “안희남 씨를 아십니까?” 모르는 목소리였다. “전에 경비원으로 근무하셨던.” 처음엔 남자이기에 혹 영준이인가 했는데, 영준이가 아니었다. 먼저 제 성명을 고하지 않고, 인사 한 마디 없이 누구를 아느냐고 묻기부터 했다. 이런 몰상식한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다.
    “안 뭐요? 근데 누구시죠?” 전화기에 대고 입술을 떼자 늙은 여자 목소리라기엔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인데도 익숙하게 들리지가 않았다. 나는 배에 힘을 주어 내뱉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전화하셨지요?”
    “할머님, 어젯밤에 들렀던 기잡니다. 그 동에서 일하셨던 안희남 씨와 통화가 됐는데요. 안희남 씨 말씀으로는…….”
    내가 누구의 할머니인가. 나는 손녀만 있지 손자는 없는 사람이다. 영미도 영준이도 딸만 두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도로 식탁 앞으로 돌아왔다.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당연히 미국 땅에서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다가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볼에 찻주전자의 김이 닿은 것처럼 안면이 후끈했다. 영미네는…… 너무 멀었다. 이천구년도 칠월에 영미를 보고 그동안 못 보았다. 올여름에는 서울에 잠깐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른대서 이달 말 28일에 도배를 하기로 했다. 지물포에 가서 실크벽지를 봐두었다. 영미가 못 들르고 바로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지만, 도배를 해두어서 나쁠 일은 없었다. 이천구년도에 손님방과 거실만 새로 도배를 하고 그간 안 했으니 꽤 되기도 했다.
    멀긴 멀어도 영미네가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건 잘한 일이었다. 영미를 힘들게 공부시킨 보람이 있었다. 애들 아버지는 고루한 사람이라 늦게 둔 딸을 유학 보내는 데 반대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조실부모하고 고학으로 사범대를 나온 나는 공부를 더 하지 못해 한이 많았다. 영미는 내가 기대한 만큼 다 따라 주었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남의 땅에서 여자 몸으로 직장 잡고 일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거다. 평생 선생질을 해서 돈을 벌어 온 내가 안다. 박사 공부를 마친 사위도 지지난해 대학교에 취직을 해 걱정을 덜었다. 나는 교수 사위를, 그것도 미국 대학 교수 사위를 둔 여자다. 여중에서 교편을 잡을 적엔 머리 큰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교수가 그렇게 좋아 보이고, 우리 애들도 교수로 만들고 싶었다. 영준이와 영미가 교수가 되진 않았지만, 영준이도 박사를 마치고 일류 직장을 잡았다. 진급도 착착 했다. 거기다가 약사 며느리까지 두었으니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우리 집안은 박사가 두 명에 석사가 한 명이 되었다. 암 투병을 오래 하다 내가 퇴직하던 해 말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안 죽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보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죽었어도 여한은 없을 거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내외가 기울인 노력과 인내가 얼마인지 게으른 자들은 모른다. 꿈이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종자들은 모른다. 술 처먹고 하고 싶은 짓 다 하고 살다가 중늙은이 돼서 경비나 서는 인간들은 모른다. 멀리 사는 딸을 자주 보지 못하면 뭐가 어떤가. 다 큰 자식을 길 건너 아파트에 끼고 살면서 그거 하나로 자랑하는 802호 여자를 보면 비웃음밖에 안 나온다. 시대에 뒤떨어진, 물정 모르는 할망구다.
    그 짧은 사이 커피가 식어버렸다. 커피를 새로 만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 아침을 망쳐 놓은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 무례하게 아홉 시도 넘어 찾아온, 듣도 보도 못한 신문사의 기자에게 화가 났다. 쇠귀에 경 읽기로 말을 안 들어먹다 그만둔 몇 년 전 경비에 관해 내가 전화 받아야 할 이유가 뭔가. 나에겐 커피를 마신 다음 마저 읽어야 할 책이 있었다. 오늘 아침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댄 기자에게도 화가 났다. 우리 동 옥상에서 뛰어내려 분란을 일으킨 난장이에게도 화가 났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다니 죽는 것도 잠깐이죠? 어제 의류수거함 앞에서 부딪힌 위층 애기 엄마가 말했다. 월요일은, 오늘은 저녁에 문학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외출 전에는 아파트 상가 세탁소에 나가 스카프와 트렌치코트를 찾아와야 했다. 마음이 바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위층 여자는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다들 나에게 묻나. 왜 내가 나와 상관없는 인간들 때문에 방해를 받아야 하는가. 기자 나부랭이가 지껄인, 몇 년 전에 일했던 경비가 안 씨던가. 안희……. 그들의 성이 무엇이건 제 할 일만 했으면 되지 않았나. 물론 대부분이 그걸 제대로 안 해 문제다.
    저들이 말을 꺼냈으니 말이지만, 안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우리 아파트에 두어선 안 될 인물이었다. 경비가 무슨 옛날에 동네 이방이라도 되는 줄 아는 작자였다. 늙은이 말이라고 허투루 들었다. 잘못된 일을 일일이 지적해 주면 고맙게 들어먹을 일이지,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어중간한 대꾸로 넘어가려던 능구렁이였다. 한두 번은 넘어가다 더는 못 참겠고, 또 참을 이유가 없어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넣었었다. 내게 봉급 주는 사람이 아닌 이상 참을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했다. 부녀회장은 바로 통화가 안 되어 전화를 여러 차례 걸어야 했다. 집전화도 핸드폰도 안 받아서 아주 조바심이 났던 기억이 있다. 혼쭐이 나고 나서야 사람을 알아보았는지 안 씨는 다음부터 눈치를 보았지만, 사리분별을 못 해 어떻게 고쳐줄 방법이 없었다. 그 인간은 급기야 비좁은 경비실 안에서 가스버너에 양은냄비를 올려놓고 김치찌개를 끓이기까지 했다. 경비실 안에 쌓여 있던 택배 박스 중 하나를 골라 들고 나오려는데, 다른 동 경비도 안으로 들어섰다. 경비실이 잔칫집이라도 되는지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댄 모양이었다. 경비실이 애들 놀이터인가 경로당인가. 그러라고 내 피 같은 돈을 관리비로 냈나.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 잡듯 살펴보았더니 걸치고 나간 캐시미어 카디건 자락이며 책이 든 종이 박스에 돼지 누린내가 배어버렸다. 오른쪽 머리로 쥐가 오르듯 찌릿했다. 점심시간이라고 교실에서 찌개를 끓이는 선생이 있단 말 들어 보았나?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일터에서 찌개를 끓여먹는다는 발상은 똥구멍에서 나왔는지 어디서 나왔는지 아주 소름이 끼쳤다. 아무데서나 먹어대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인가 말이다. 약장에서 두통약을 한 알 꺼내 물도 없이 씹어 삼켰다. 나는 그런 꼴을 보려고 이 아파트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십 년 넣은 적금을 털어 분양권을 산 게 아니었다. 상것들! 본데없는 것들!
    계절이 바뀔 무렵, 안 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경비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진득하게 붙어 있을 인간이 못 되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배운 도둑질이 선생질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며가며 가르쳐도 고집스레 들어먹지를 않더니, 짐작보다 빨리 사라졌다. 배움도 배워 본 가락이 있는 사람이나 배울 수 있지 근본이 안 된 것들은 아무리 가르치려 들어도 배우지를 못하는 법이었다. 꼴에 사내랍시고 여자 말은 우습게 여기고 안 들어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못 배운 인간일수록 여자라면 죄다 저희 집 못 배운 여편네 취급을 하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그 썩은 종자 다음에 우리 동으로 온 경비가 바로 난장이 김 씨였다.
    그런데 안 씨가 나를 두고 기자에게 지껄일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무슨 앙심을 품고 해코지하려는가. 이래서 없이 사는 인간들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오나 보다. 저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의 꼬투리만 잡아 항의하고 떠들어대는 자들이다. 의무를 들이대면 문맹인 척하다가, 돌아서서 권리를 줄줄 읊어대는 자들이다.
    끊어졌다가 다시 울려대는 전화소리가 집요했다. 전화기 앞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귀를 대지 않아도 시끄럽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빨간색 전화기 주변을 울렸다. 좀 전에 전화를 건 작자 같기도 하고, 아침에 문 밖에서 소란을 피워댄 기자 같기도 했다. 전혀 모르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돌아가신……이 이명(耳鳴)에 ……오래 ……아십니까? ……라는 말이 맞습니까?” 나는 수화기를 더 이상 들어 올리지 않고 가만히 내려놓았다.
    부엌으로 되돌아와 선 채로 식은 커피 한 모금을 삼켰다. 라디오를 껐다. 전화소리에 바이올린 선율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였다. 식은 커피는 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예민한 바이올린 소리를 제멋대로 깨뜨리던 벨소리가 잠시 후 뚝 그쳤다.
    방금 기자가 죽은 난장이의 이름을 뭐라고 떠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기억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안 씨 다음으로 온 경비가 난장이였고, 나는 처음에 경비실 앞에 서 있던 난장이를 보고 깜짝 놀라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관리소장은 나를 달래며, 난장이는 난장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그저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했다.
    “제 눈엔 난장이로 보이는데요?”
    “잘못 보신 겁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에요. 장애인도 아니고요. 키가 평균보다 작을 뿐입니다.”
    관리소장이 말했다.
    “제 눈엔 영락없는 난장이네요.”
    “그 사람은 난장이가 아니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난장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입니까? 아주 바지런하고 빈틈없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여기 온 지 사흘밖에 안 되었다던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소장님이 어떻게 아시나요?”
    “알고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 동네 살던 사람입니다. 가족들하고 오래 살았답니다.”
    “그럼 그도 여기 주민인가요?”
    “아니요, 아파트 주민은 아닙니다. 형편이 안 돼서 분양 전에 입주권을 팔았다고 들었어요. 그를 아는 사람이 아직도 동네에 많답니다. 모두들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에요. 제일 먼저 입주한 주민이지요. 아파트 상가가 바뀌어 오는 걸 전부 지켜봤어요.”
    관리소장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나는 당신 이전의 관리소장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거야 저도 잘 알지요. 한번 지켜보세요. 김 씨는 손재주도 좋아서 선생님 댁 수도가 고장 날 때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하나 버릴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퇴직한 지 오래되었지만, 관리소장은 나를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불러 줬다.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의 말만은 선선히 들어주곤 했다. 사실, 난장이 전에 온 두 명의 경비들이 망치질에 서툴러 불편한 점도 있었다. 새로 온 경비가 난장이라 꺼려지더라도 변기가 고장 나거나 천장에 달린 등이 껌벅거릴 때 바로 부를 수 있다면 편할 게 분명했다. 그건 관리소장의 말이 맞았다. 알고 보면 관리소장도 보통 약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난장이마저 일을 못 하게 되었다. 문득 단맛이 당겨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사지가 무거웠다.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나가야 하는데, 몸이 좋지 않았다. 선생이 읽고 감상을 적어오라고 한 소설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불란서 작가의 소설은 진작 읽고 몇 자 적어 두었는데, 우리나라 소설은 어쩌다 절반밖에 읽지 못했다. 아파트에 번잡스런 일이 생긴 탓이거니 싶었다. 뼛속이 옥신옥신 쑤셨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몰랐다. 난장이가 떨어져 죽은 화단도 축축하게 젖겠지. 아파트 입구를 지나칠 적에 빵집에선 어제도 구수하고 달큼한 빵 냄새가 났다. 난장이는 개나리꽃이 활짝 핀 화단에 떨어지자마자 숨이 끊어졌다고 했다. 택배 차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구부러진 길을 따라 짐을 실어왔다.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린 아파트 주민들이 제각각 죽음에 대해 수군댔다. 싱크대 상부장 문을 차례로 열었더니, 맨 오른쪽 위 칸에 인스턴트커피 상자가 보여 의자를 놓고 올라갔다. 난장이는 병아리처럼 목뼈가 똑 부러졌다고 했다. 나는 의자를 딛고 올라갈 때마다 낙상이라도 당할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노란 화단은 당일에 말끔하게 정돈되었다. 내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면 그 사실을 바로 알 사람이 없었다. 수다스럽게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들은 여전했다. 커피 상자를 내려놓고 유통기한을 확인했더니 아직 보름 남아 있었다. 난장이의 흔적은 아파트 단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안심하고 물을 끓여 커피가루를 탔다. 달았다.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갈 만큼 달았다.
    묵직한 전화벨 소리가 재차 머리를 때려대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귀에 가져다댔다. 그때서야 돼먹지 않은 소리가 꽥 들려왔다. 이번에도 영미가 아니었다. 분했지만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화기를 내던지는 건 본데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이십 년 가까이 쓴 전화기를 멀쩡하다고 새것으로 바꾸지 않은 게 후회됐다. 반대편 번호가 낱낱이 들어오는 전화기를 사놓았더라면 이렇게 골탕 먹는 일이 없었을 텐데. 전화선을 뽑으면 새 부리같이 골을 파먹는 벨소리야 멈추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영미가 전화를 걸어올지 몰랐다. 영미가 사는 도시는 지금쯤 늦은 저녁일 것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영미가 저녁 먹은 그릇을 치우고 전화를 걸지도 몰랐다. 바다 건너의 영미가 잠이 들 무렵까지는 전화기 코드를 뽑아 놓을 수 없었다.
    싱크대 선반 위의 라디오를 가져다가 식탁 위에 놓고 전원을 켰다. 잘 맞춰 둔 FM라디오 채널에서 치직치직 잡음소리가 났다. 채널 맞추는 다이얼을 왼편 오른편으로 돌려 보았지만, 잡음 섞인 피아노 소리만 흘러나왔다. 안테나 위치를 옮긴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 달 25일에 연금이 들어오면 백화점에 나가 전축 구경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애들 아버지가 88올림픽 때부터 듣던 노르웨이제 전축은 어디가 고장 났는지 테이프를 넣으면 돌아가는데 FM 주파수를 잡지 못했다. 문득, 난장이가 죽기 전에 전축을 봐달라고 말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쉬웠다. 난장이는 관리소장 말대로 손재주가 좋아서 오물 냄새가 올라오는 싱크대 배수구도 고치고, 한겨울에 얼어붙은 세탁기도 녹이고, 막힌 변기도 뚫어 주었다. 나는 경비에게 고장 난 집을 손 봐달라고 하고, 택배 상자를 날라 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잊지 않고 감사 표시를 했다. 냉동실에 꽝꽝 얼려 둔 만두나 한과나 송편, 곶감 등을 떼어 주었다. 모두가 명절에 쓰고 남아 아껴 둔 귀한 음식이지만, 남에게 나누어 주었다. 담뱃값을 하라며 천 원짜리를 찔러주었다. 나는 본디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었다. 고마운 일은 고맙다고 말했고, 예의를 지켜서 대했다. 그런데도 난장이는 경비실 앞에서 “김 씨. 김 씨.” 하고 부를 때마다 매번 빨리 돌아보지를 않았다. 몸은 경비실에 두고 정신은 멀리 다른 데 가 있는 사람 같아 몇 번이나 주의를 줬다.
    그밖에 내가 경비와 말을 섞고 살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난장이와 개인적인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전부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집에 대한 얘기를 경비와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하나? 아파트 경비한테 아파트 얘기를 하는 게 잘못인가? 기자에게도 말했듯이, 난장이가 화단으로 뛰어내린 날은 그를 본 적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건 그가 죽기 전전날이었다. 그것도 저녁 외출하는 길에 경비실 앞에 서서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었다. 오 분? 십 분?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하도 대수롭지 않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찌릉찌릉 소리가 들려서 다시 전화기 쪽을 쳐다보았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고 끊어졌거나 아니면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탁자 뒤로 이어진 전화선을 더듬어 코드를 뽑았다. 영미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 크게 걱정하겠지만, 아마 핸드폰으로 뒤이어 전화를 걸어올 것이었다. 나는 안방에서 충전하던 핸드폰을 가져와 살펴보았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두 개나 찍혀 있었다. 누구일까 잠시 궁금했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영준이와 영미의 전화번호가 아닌 이상 누구의 전화라도 관계없었다. 전화가 온들 반가울 사람도 없었다. 식탁 위의 핸드폰이 비뚤게 보여 식탁 모서리와 줄을 맞춰 반듯하게 고쳐 놓았다. 누가 내 핸드폰 번호까지 기자들에게 알려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세상에 어쩌다가 이렇게 악의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는가. 정말로 무서운 세상이었다. 내가 내 집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세상이었다.
    나는 식탁 한편에서 책을 집어 들어 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를 펼쳤다. 영미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미의 당부도 당부고, 이전에 신청했던 노래교실이 도무지 성격에 맞지 않던 차에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정 선생의 권유로 문학수업을 듣게 되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무료한 밤에 소일거리가 되었다. 가족끼리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텔레비전 연속극을 켜두는 쪽보단 나았다. 막상 정 선생은 지난겨울 쓰러져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정 선생을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정 선생이 죽어 부고가 날아들더라도 장례식에 갈 마음은 없었다. 내가 죽어 관에 누운들 죽은 정 선생이 조문 오지는 못할 테니까. 죽은 난장이가 누운 장례식장도 텅 비어 있었다고 했다. 난장이처럼 키 작은 그의 아들딸만 옹기종기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고 들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낮고 길게 소곤대던 아파트 주민들은 왜 조문을 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이었다면.
    그런데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 누가 내 죽음에 관해 물을까. 전화를 걸어 묻고, 집에 찾아와 묻고, 묻고 또 물을까.
    오늘 저녁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 숙제를 읽어야 했다. 수건으로 제 얼굴을 감싼 채 뛰어내린 난장이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한 줄씩 곱씹으며 읽어 나갔다. 더 이상 내 생활에 방해를 받아서는 곤란했다. 오늘 경비실은 누가 지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말로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인데 우리나라 소설 같지가 않아, 같이 공부할 불란서 소설보다 어려웠다. 점심으로 뭐든 끓여먹고 세탁 맡긴 스카프와 트렌치코트를 찾아와야 했다. 이러다가는 저녁이 다가올 때까지 숙제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나가다가 경비원을 보면, 잊지 않고 위층 아이들 뛰는 소음이 시끄럽다고 항의를 넣을 작정이었다. 지금은 천장이 울리지 않지만, 지난 주말에 애들이 들뛴 건 사실이었다. 말 많은 위층 애기 엄마가 가만있지 않았으니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읽은 문장이 머릿속에 안 들어와 앞줄로 돌아가 읽고, 느리게 읽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았다. 어머니가 다친 아버지를 업고 골목을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오빠들이 뛰어나왔다. 우리들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1)

   1)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년, p.143 인용.

 

    나는 이 대목을 세 번 읽고 연필심으로 밑줄을 그었다.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간 쇠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저녁에 문학수업에 가면 선생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식탁 위에 작은 노트를 펼쳤다. 목을 매고 죽은 청년과 음독자살한 처녀와 셋집의 벽이 나오는 불란서 소설을 읽고 감상을 적은 아래에 가로로 길게 줄을 그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제목을 먼저 적고 그 밑에 연필로 썼다.
    가난은 내가 벗어 둔 옷이다.
    써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못 적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벗어 둔 옷이다’를 지우개로 싹싹 지웠다.
    가난은…….
    내가 적은 작은 글씨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어떤 불편함이 목구멍 안쪽으로 차올랐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쓴 것을 몽땅 지워버렸다. 백지만이 남았다. 이를 악물고 가난으로부터 달아나야 하는데, 주인공은 작아지고 작아지다 못해 오그라들었다. 그에게는 엉덩이를 붙일 반 평짜리 땅도 허락되지 않았다. 안된 일이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고 다니는 그의 아들이 한심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너의 잘못이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못 배우고 무기력한 너의 잘못이라고.
    다행히 코끝이 시큰할 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가난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었다. 신문에서 불우한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어도, 누구의 불행을 이야기 들어도 울음이 나지는 않았다. 세상에 나보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들의 고통이 하찮게 느껴졌다. 진짜 눈물이 아니라 떼쓰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가 사위와 며느리를 맞이할 때 가장 신경 쓴 점도 그것이었다. 불행을 일찍 알게 된 젊은이는 피하고 싶었다. 그런 한편, 살면서 불행은 본 적도 없다는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나면 보기 싫었다.
    그런데 난장이는 어떻게 그랬을까. 손가락질 받는 외모에, 가난해서 아파트에 입주조차 못 한 그가 무슨 수로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불행해 마땅한데, 어떻게 나를 볼 때마다 웃는지 알 수 없어 불쾌한 날이 많았다.
    갑자기 현관문 밖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똑. 또독.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비디오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네모난 화면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윗집에서 난 소음을 잘못 알아들었는가. 식탁 앞으로 되돌아왔다.
    기자들은 다들 집으로 갔는지 궁금했다.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짐작보다 그들은 포기가 빠른 것 같았다. 난장이에 대해서도 한 달이 지나면 잊어버릴 게 틀림없었다. 곧 잊어버릴 사람에 대해 뭐 하려고 물어보는가. 나는 찻잔 밑바닥에 남은 식은 커피를 마저 삼키고 이야기를 읽어 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2)

   2)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앞의 책, p.143 인용.

 

    몇 줄만 더 읽으면 끝이었다. 그러나 읽을 수가 없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큰오빠의 말은 언젠가 내가 들은 말 같았다. 그렇지 않았나? 오래전 그날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내 오빠는 일천구백구십팔년도에 세상을 떠났고, 그날의 기억을 같이 떠올려 줄 사람은 이제 없었다. 입을 막고 흐느끼던 여자 아이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여자 아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대답해 줄 사람도 없었다.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간 쇠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생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아졌다. 난장이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늙은이의 기억은 찻잔의 온기처럼 쉬 날아가 버리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었다.
    그렇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내일, 그리고 모레, 누가 또 전화를 걸어온대도 나는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명한 건,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엔 새로운 고용인이 오고, 경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 오고, 바뀌고, 가면 또 올 것이다. 김 씨거나 박 씨거나 난장이거나 개이거나, 내게는 매한가지였다. 이 아파트에서 십 년 넘게 살아온 사람은 나고, 앞으로도 십 년 넘게 살아갈 사람은 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어쩔 수 없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가고, 가버릴 거고, 이곳에 남게 될 사람은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눈을 감고 차가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느리게 마른세수를 했다.
    또독, 또도독. 베란다 쪽에서 유리를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베란다 쪽으로 몸을 틀고 귀 기울였다.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눈 먼 새도, 떨어지는 작은 공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부터 마룻바닥까지 두꺼운 얼음으로 둘러싸인 물속처럼 고요했다. 꽝꽝 언 강물 밑바닥처럼 적요했다. 문득 책을 덮고 당장 나가 봐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경비실에 새 경비가 왔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가장 자주 볼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었다. 당분간 가장 자주 이야기 나눌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작가소개 / 오현종(소설가)

1973년 서울 출생. 199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 장편소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거룩한 속물들』, 『달고 차가운』 등이 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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