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림

 

 

거슬림

 

 

 

김희진

 

 

삽화_05거슬림

 


 

 

 

    온통 붉은색을 입은 건물이다. 35년째 이 건물은 이래 왔다. 층수와 외관은 세월에 따라 올려지고 바뀌기도 했지만, 색채만은 고집스레 지켜졌다. 하긴, 중국풍의 그 붉은 색조를 벗어 던져버린다면 이 가게는 더 이상 ‘赤花園(적화원)’이 아닐 것이다. ‘붉은 꽃밭’답게, 붉은색은 이 중국음식점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 지 오래였다.
    희끄무레한 새벽 달빛 사이로 눈이 내린다. 눈이 오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소리 없는 음성으로 말하는 겨울만의 언어다. 예고나 뒤척임도 없이, 잘난 척 뽐내는 법도 없이 내리는 저 수줍은 눈송이들. 때문에 겨울 한때 우리는, 대여섯 번쯤 귀머거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 의무가 생긴다. 셔터 문에 채워진 자물쇠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도, 뒤늦게 새벽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송이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어? 눈이네.”
    그러나 눈송이를 바라보는가 싶던 그의 눈은 이내 ‘정통중국요리’라는 한글 문구와 함께 ‘赤花園’이라고 돋을져 나와 있는 한자 돌출 간판으로 향한다. 가운데 ‘꽃 화(花)’ 자의 머리 변인 ‘풀 초(艹)’ 자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다. ‘赤花園’이어야 할 간판이 ‘赤化園’이 돼 있는 것이었다. 꽃이 사라진 ‘붉은 꽃밭’이라니……. 그는 조만간 단골 간판업자를 불러 형광등 교체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赤花園’의 간판 속 형광등은 수시로 수명이 다해 갔다. 몇 해 전, 긴 수명을 자랑한다는 LED 형광등으로 모두 교체해 달았지만, 그것도 생각만큼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만큼 써대기 때문이었다. ‘赤花園’의 간판 조명은 날이 어스름해지기 전에 점등되었다가, 다음날,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온 뒤에나 소등되었다. 장사를 하지 않는 한밤중에는 물론,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도 간판은 빨갛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홍보 차원의 작은 투자인 셈이었다. 밤길에 홀로 밝혀진 그 ‘赤花園’이라는 빨간 한자는 한눈에 띄어서 때로 괴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러기에 눈(目)에 오래 기억되었다. 어쩌면 매일같이 어둠 속에 존재해 온 저 한자 불빛은, 연인들의 은밀한 새벽녘 키스를,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그리고 젊은 방황과, 검은 고독과, 수많은 밤의 사건들을 목도해 왔을 테다.
    그가 붉은색 셔터 문을 위로 힘껏 밀어 올린다. 그러자 역시 붉은색으로 장식이 된 양문닫이 유리문이 나타난다. 유리문 손잡이는 여의주를 물고 막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 문양의 쇠붙이로 돼 있었다. 용은 황금색으로 래커 칠이 된 상태였지만, 용의 특정 부위는 색이 옅어지거나 칠이 벗겨져 있었다. 왼쪽 손잡이보다는 오른쪽 손잡이가 특히 그러했고, 칠이 벗겨진 부분은 어른들의 가슴 높이쯤이었다. 그의 부모는, 칠이 벗겨진 용 문양의 손잡이를 볼 때마다 뿌듯해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손님이 많이 드나들었다는 뜻이기에 그랬다. 그가 유리문의 맨 아래쪽과 맨 위쪽에 열쇠를 꽂아 돌리며 말한다.
    “조만간 래커 칠을 또 해야겠어.”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팔소매부터 걷어붙인다.

 

    가게 안은 힙합 음악으로 요동을 친다. 환기를 위해 열어 둔 가게 곳곳 창문으로 겨울바람이 들어온다. 살을 에는 바람은 그가 틀어 놓은 힙합 음악에 들러붙어 나쁜 공기와 함께 창밖으로 배출돼 나간다. 새벽녘, 어떤 이에게는 소음이 될지도 모르는 힙합 음악이지만, 그는 그러한 염려 따위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음악 없이 청소를 하는 일이 더 괴로울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힙합 리듬에 맞춰 그의 물걸레질이 시작된다. 테이블 위로 올려진 의자들은 그의 백댄서가 된다. 몸과 귀는 힙합 음악에 심취해 있어도 바닥을 닦는 그의 물걸레질은 아주 꼼꼼하다. 벌써 일 년째 해오던 일이니 당연하다. 이제 말썽 없이 일 년만 더 버텨 준다면, 이 3층짜리 중국음식점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솔직히 아들 삼형제 중에 부모로부터 이 음식점을 이어받아 해줄 만한 자식은 결국 그뿐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결국’이라 해도 그 ‘결국’에 이르는 데 필요한 ‘과정’만은 결코 생략하고 싶지 않았던 게 그의 부모가 가진 생각이었다. 단지 아들이라고 해서, 35년간 키워 온 알짜배기 음식점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덜컥 안겨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이 음식점을 무탈하게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그의 밑바닥 경험과 그에 따른 고생은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새 1층 바닥 청소를 끝낸 그가 2층으로 올라간다. 열린 창문 안으로 세차게 스며든 칼바람에 그의 몸이 잠깐 움츠러든다. 한 시간 안에 세 개 층이나 되는 바닥 청소를 끝내려면 꽁꽁 언 손가락에 입김을 불어넣을 여유조차 없다. 그만큼 ‘赤花園’의 홀은 널찍했다.
    ‘赤花園’은 동네에 자리 잡은 중국음식점치고는 꽤 큰 편이었다. 처음에는 임대받은 단층 건물로 시작하게 된 장사였다. 그런데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보니, 어느새 그의 부모는 그 단층 가게의 주인이 돼 있었다. 그리고 십 년이 흐르자 단층이었던 건물은 2층으로 새로 지어졌고, 또 십 년이 흐르자 2층이었던 건물에는 한 층이 더 올려졌다. 그러다 재작년에는 ‘赤花園’의 양쪽 허름한 가게까지 사들이게 되면서, 그의 부모가 일궈 온 장사 수완은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과 함께, 동네 상가 사람들로부터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돼 있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짜장면 팔아 건물을 올리더니, 이번엔 그 옆 가게를 사들였다대?” “누가 뭐래요. 거기다 자식 농사까지 잘 지어, 어디 뭐 하나 빠지는 게 있어야지요.” “저리 쉼 없이 잘 되는 거 보면, 조상 묘를 잘 썼나 봐.” “여튼, 부럽네요. 부러워.” 상가 사람들의 시기 섞인 말들은, 말 안 듣고 사고만 치고 다니던 막내아들마저 얌전해졌으니 이제 더 이상 뭘 바라느냐는 식으로 마무리 지어지곤 했다. 그런데 열심히 바닥을 닦던 그가 난데없이 피식, 웃더니 혼잣말을 한다.
    “거 참, 조상 무덤이 아니라니까!”
    그 말끝에 그의 얼굴에는 뭔가 답답하다는 표정이 드러난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라고 외칠 만한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는 듯 그렇다. 숲을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숲을 대신해 시끄러운 힙합 음악에다 대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엄마의 빨간 속옷 덕분이래도!”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그는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는다. 한겨울 찬바람이 가게 안을 훑고 지나감에도 그의 이마와 목덜미는 반들반들한 땀으로 범벅이다. 잠시 물걸레질을 멈춘 그가 창가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운다. 창밖으로 털어낸 담뱃재가 주차장 쪽으로 떨어진다. 재작년에 사들인 양쪽 허름한 가게는 철거된 뒤에 ‘赤花園’의 주차장이 되었다. 양옆으로 네 대씩 모두 여덟 대의 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었다. 주차장을 갖는 일은 그의 부모에게 있어 마지막 숙원이었던 만큼 아주 큰 기쁨으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큰형이 검사가 되고, 그의 작은형이 의사가 됐을 때보다 더한 기쁨이었다. 그가 담배 필터 부분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말한다. 그의 얼굴은 그새 굳어져 있다.
    “쳇, 재수 없어.”
    그것은 형들을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체할 듯 급하게 흡연을 끝낸 그가 다시 물걸레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간다. 1층과 2층이 격자무늬의 진갈색 파티션과 붉은색 커튼으로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구획 지어 놓은 형태라면, 3층은 예약 손님을 위한 네 개의 VIP룸으로 돼 있었다.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거추장스러운 파티션과 커튼이 없어서 그런지, 바닥 청소를 하는 데 있어서는 3층이 훨씬 수월했다. 그는 이 룸 청소까지 끝내고 나면 주방으로 들어가, 전날 들여온 각종 채소와 해산물들을 씻고 다듬어 둬야 했다.

 

    내장을 제거한 새우와 해감을 끝낸 조개가 물이 콸콸 쏟아지는 개수대에서 건져 올려진다. 주방 바닥에는 손질이 끝난 대파와 양파와 당근이, 그리고 세척을 끝낸 피망과 오이와 청양고추 등이 한가득 쌓여 있다. 아직도 미나리와 죽순을 비롯한 수십 가지 식재료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그가 다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어차피 혼자서는 무리였고, 식재료 손질은 ‘하는 데까지 하기’로 했던 일이라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다. 여기서, 하는 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주방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늑장을 부린다거나 게으름을 피운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20대 초반, 힙합 가수를 꿈꾸며 살아왔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그는 지금 그의 인생에 있어 두 번째로 성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새우와 조개 작업을 끝낸 그의 손은 곧바로 오징어 손질로 이어진다. 오징어의 배를 한 번에 가르고, 내장과 먹물을 제거한다. 흰 속살 속에 박혀 있는 투명한 심지를 발라내는 일은 오징어를 손질하는 과정 중에 그가 가장 재밌어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그는 그 투명한 심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주방장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연골인가 그럴걸?”이었지만, 확신하는 투로 얘기해 준 게 아니라서 그 역시 확신할 수는 없었다. 비닐로 된 그의 흰색 앞치마는 오징어 먹물이 그려낸 추상화로 한 가득이다. 쉼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놀림에 배를 가른 오징어가 수북이 쌓여 간다. 그럴수록 조금씩 물러나는 건 새벽녘 언저리를 맴돌던 어둠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고, 생동하는 그의 힙합 음악은 오전 아홉 시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중이다.
    그가 마지막 남아 있는 오징어의 배를 가르고 투명한 심지를 빼낸다. 그러고 나자, 그를 이 주방에서 해방시켜 줄 직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치 그의 오징어 손질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얌체처럼, 혹은 의도적으로.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난 제 시간에 출근했을 뿐이야, 라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는 ‘붉은 꽃밭’ 안으로 들어선다. 그와 동시에 힙합의 정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가사가 실종된 연주 음악들로 채워진다. 그의 힙합은, 가게 오픈 시간 즈음에 이르러 매일 이렇게 매몰차게 내쳐진다. 뒤이어, 밤과 어둠을 괴기스럽게 밝혀 온 ‘赤花園’의 돌출 간판의 불도 꺼진다.
    ‘赤花園’의 하루는 늘 이렇게 두 개의 소멸, 즉 힙합 음악과 간판 조명의 소멸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쫓아낸 주방은 금세 일사불란한 전쟁터가 된다. 가게 오픈 시간을 맞추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에 주방은 그야말로 칼 군무를 춰대는 무대 위를 보는 것만 같다. 반면, 손님맞이를 끝낸 홀의 테이블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는 이러한 분위기가 싫다. 단아하게 울려 퍼지는 연주 음악은 마치 내숭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 힙합이 사라진 공간이 답답해진 그는 초소형 MP3를 귀에 꽂고 어머니가 앉아 있는 카운터로 간다. 그의 어머니는 당연한 절차인 양 그에게 손바닥만 한 종이뭉치를 건네고, 그 역시 당연한 수순인 듯 그것을 받아 챙긴다. 그것은 구역별로, 그리고 경유지별로 정리된 주문 배달 전표다. 전표의 두툼한 두께는 그가 수거해 와야 할 빈 그릇의 개수를 말해 준다. 어머니가 말한다.
    “오늘은 좀 많다.”
    그러나 힙합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는 그에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에게도 그의 음악이 들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호치키스로 한데 묶인 전표 뭉치를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빠르게 넘겨본다. 중간쯤에 ‘맨발의 청춘’이라는 상호명이 찍힌 배달 전표가 나타난다. 일순간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든다. 그녀다. 그녀는 어제저녁 아홉 시경에 잡채밥 하나와 물만두 하나를 시켜 먹었다. 꽤 늦은 저녁 식사였다. 왜 그렇게 저녁이 늦어진 걸까. 식사를 제때 챙겨먹지 못할 만큼 장사가 잘 되기라도 했던 걸까. 꽃집이 더 잘 어울릴 법한 여자. 그러나 꽃이 아닌 신발을 파는 그녀. 하지만 그녀가 꽃을 팔았다면 그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을지 모르기에, 이제는 신발을 파는 그녀가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그였다. 그는 점퍼 주머니에 전표 뭉치를 찔러 넣고는 철가방 하나를 챙겨든다. 오늘도 그의 어머니는 가게 유리문을 나서는 그의 등에다 대고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의문이 섞여든 말투다.
    “저놈의 철가방은 왜 꼭 들고 가나 몰라.”
    그의 어머니 말대로, 그는 지금 음식 배달이 아닌, 빈 그릇을 수거하러 가는 길이다. 그러기에 철가방은 그에게 필요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스쿠터 운전에 방해가 될 뿐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스쿠터에 올라탄 그는 다리 사이에 철가방을 끼워 놓고는 빈 그릇들이 있는 곳을 향해 신나게 달린다. 헬멧을 쓰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이 겨울바람에 휘날린다. 귀와 뺨이 얼얼해지고, 스쿠터 뒤에 실린 커다란 수거통은 계속해서 덜컹댄다. 뒤늦게 달려 나온 어머니가 헬멧은 또 두고 가지! 라고 잔소리를 해대도, 그의 귀에는 힙합 음악만이 들릴 뿐이다. 그는 답답한 헬멧이 싫다.

 

    ‘赤花園’을 구성하는 일의 가짓수에는 수십 가지가 있다.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군말 없이 그 일들을 해왔다. 마늘을 까라면 마늘을 깠고, 생강 껍질을 벗기라면 주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생강 껍질을 벗겼다. 바쁠 때는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를 거친 지저분한 몰골로 홀 서빙에 투입되기도 했다.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해 가게 문을 연 그는 가장 나중에 퇴근해 가게 문을 닫음으로써, 처음과 끝에 나타나고 남았다. 힙합 가수의 꿈을 접고, 돈과 여자 문제로 저지를 수 있는 말썽이란 말썽은 다 저질러 보고 나서야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물었다. “이제 놀아 볼 거 다 놀아 봤냐?” 그는 대답했다. “아니요.” 그의 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딱 2년이다. 앞으로 넌 이 가게의 막내가 되는 거야. 내년이면 너도 서른이다. 정신 차려야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그날 아버지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분명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던 아버지에게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조금 다르게 움직여 볼까? 꿈이 아니었던 곳에서 꿈이 찾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한번쯤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라고. 잘난 두 형이 아닌 늙은 아버지의 말이었기에 그는, 지금껏 스스로 시시하고 따분하다 생각해 오던 그 ‘반성’이란 걸 해볼 참이었다. 긴 방황의 끝이었기에 의외로 결정은 쉽고 간단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아버지 말대로 한번 해볼게요. 대신 큰 기대는 마세요.” 그렇게 해서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주방에서 생겨나는 온갖 허드렛일이었다. 억지와 사소한 마찰 없이 그 자잘한 일들을 흘러 보내자, 그에게는 두 번째 임무인 ‘배달’ 일이 주어졌다. 주인장 아들이기에 가능한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는 뜨거운 짬뽕 그릇과 우동 그릇에 수도 없이 랩을 쌌다. 국물 한 방울 새지 않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것도 단번에 쌌다. 태어나 처음으로 칭찬이란 걸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줄 알았던 그 ‘배달’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음식과 그릇의 무게가 가중된 3단과 4단짜리 철가방을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균형 있게 운반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힘과 요령이 없다 보니, 그가 배달하는 음식은 늘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거기다 배달 주소지를 신속하게 찾아가지 못해서, 짜장과 짬뽕은 굳고 불어터진 채로 배달되기 일쑤였다. 결국 그의 실수와 서투름은 손님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기다리다 굶어죽겠네요!” “이렇게 불어터진 걸 지금 저더러 먹으라고요?” “요리잡채를 시켰는데 고추잡채를 가져오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래도 불만을 말로 드러내는 건 참을 만했다. 한번은 불어터진 짜장면에 화가 난 손님이 음식값을 현관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져 준 적이 있었다. 신발 옆에 떨어진 지폐와 동전을 주워들고 나오는데 분노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걸 억누르지 못한 그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그자의 면상을 향해 지폐와 동전을 던지며 소리쳤다. “씹 새끼야, 처먹기 싫으면 말든가!” 그러고는 그자가 먹고 있던 짜장면 그릇을 들고 나와버렸다. 그렇잖아도 그는 단지 철가방을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는 손님들의 시선이 싫었던 차였다. 배달원인 자신과 손님과의 관계가 자꾸 ‘상하관계’로 느껴지는 것만 같아 화가 났다. 이에 더 화가 난 아버지가 화를 눌러 삼키며, 그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지들 하인도 아니고.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요!” 아버지는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는 듯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사회란 게 원래 그렇다. 남의 돈 먹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러면서 배달은 네가 감당할 만한 수준의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빈 그릇 수거를 맡겼다. 다행스럽게도 그릇을 수거하러 다니는 일은 ‘赤花園’에 산재된 일거리 중에서 그의 적성에 가장 맞는 일이었다. 종종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수거를 재촉해 오는 작자들이 있었지만, 배달만큼 촉각을 다툴 일은 없었다. 그리고 상전 행세를 해대는 꼬락서니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고, 지금처럼 맘껏 음악을 들으며 유유자적 거리를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보고,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그는 빈 그릇을 수거하러 가는 길이 오히려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의 스쿠터가 ‘맨발의 청춘’ 앞에 멈춰 선다. 배달 전표에 그녀의 가게 이름이 끼어 있는 날이면, 으레 그는 수거해야 할 빈 그릇이 있는 주소지들을 일단 지나치고 본다. 우선 그녀의 가게부터 들르기 위해서다. 그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스쿠터에서 내린다. 오늘도 그녀의 가게 앞에는 빈 그릇들이 나와 있지 않다. 처음에도 그랬다. 그때 그는, 그릇이 밖에 나와 있지 않자 화가 났다. “꼭 저런 것들이 있지!” 그는 투덜대며 그녀의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릇 찾으러 왔다는 말에 그녀가 내민 것은 깨끗이 설거지가 된 그릇이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그는, 이 그림은 뭐지? 싶었다. 모름지기 볼일이 끝난 배달 그릇은 음식 찌꺼기로 지저분해야 했다. 랩과 나무젓가락 포장지는 기본적으로 들어가 줘야 했고, 입가를 훔친 냅킨과 담배꽁초 정도는 이제 애교 축에도 끼지 않을 만큼 ‘뻔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정답을 비껴간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깨끗한 그릇을 건네받은 순간, 그의 ‘당황’은 이내 ‘낯선 상쾌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민 그릇은 단순히 ‘잘 닦인 빈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예의’와 ‘인격’이었고, 사람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임과 동시에 ‘배려’이자 ‘존중’이었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이든 간에 아무튼 그랬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대우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그녀만의 행동에 어찌 취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가 예의 코를 킁킁거리며 그녀의 가게로 들어선다. 따뜻한 공기와 함께 콧속에 와 닿는 이 파우더 향. 작정하고 뿌려댄 방향제 냄새도 아니고, 억지스럽게 자신의 몸값을 뽐내려 드는 향수 냄새도 아닌, 공중에 깃털처럼 스며든 바로 이 냄새. 여자들이 화장할 때 쓰는 분첩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해서 ‘파우더 향’으로 추측할 뿐인 이 냄새가 그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향에 가려, 그녀의 가게는 신발을 파는 곳임에도 그 흔한 가죽 냄새는커녕, 고무 냄새조차 맡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오는 이 바흐 음악은, 힙합을 총애하는 그의 귀에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그런데 건드리면 꾸중을 들을 것만 같은 바흐 음악 속으로 종소리의 파문이 쨍그랑, 하고 던져지고 만다. 그가 열고 들어선 가게 유리문이 닫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산산조각 난 바흐 음악이 괜히 미안해진다. 그녀가 종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내고 있던 그녀가 그를 발견하고는 아, 오셨어요, 라고 말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이내 파티션 너머로 사라진다. 그녀의 그릇 챙기는 소리가 달그락, 하고 파티션 사이로 새어 나온다. 그는 바흐 음악에 숙성된 온갖 종류의 신발들을 둘러보며 그녀에게 묻는다. 오늘도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말투다.
    “장사는 잘 되나요?”
    “네?”
    “장사요.”
    “아,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긴 한데……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그녀의 가게에는 온갖 종류의 신발이 다 모여 있다. 그 점은 여느 동네의 신발 가게와 비슷하다. 하지만 바흐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니면 한때 구두 디자이너의 꿈을 가졌던 여자라 그런지, 그녀의 가게에 진열된 신발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가격이 싼 신발임에도 싼 티가 나지 않았고, 마치 각자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하게들 굴었다. 빼곡한 진열 대신, 약간의 여백을 살린 그녀만의 신발 진열 방식은, 그녀가 파는 신발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한몫 거들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가게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무질서하게 신발로 가득 찬, 그렇고 그런 촌스러운 가게가 아니란 얘기였다. 파티션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빈 그릇을 내민다. 역시 예상을 비껴가지 않은 깨끗한 그릇이다. 그릇을 건네받은 그가, 가게 입구 쪽에 새로 생긴 벽걸이형 진열대를 쳐다보며 그녀에게 묻는다. 대화의 매개체가 생겨 다행이라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그려진다.
    “이제 슬리퍼도 파세요?”
    “아, 네. 종종 찾는 손님들이 있어서요.”
    벽면의 벽걸이형 진열대에는 욕실과 거실에서 신을 수 있는 각종 슬리퍼와 실내화가 걸려 있다. 모두 다 세련되고 예뻐서 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흔하디흔한 삼선 슬리퍼 따위가 아니기에, 분명 그녀의 감각은 동네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넘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릇 수거도 끝났으니 이제 그만 그녀의 가게에서 나가 봐야 하지만, 그는 자꾸 꾸물댄다. 할 말을 찾아보려 해도 딱히 찾아지지 않자, 그는 결국 이번에도 아무 말이나 툭, 던지고 본다. 그런데 사실 그가 던지고 가는 말은 ‘아무 말’이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부분 그의 신상에 관한 일방적인 정보였다.
    “우리 큰형은 검사예요. 작은형은 의사고요. 대학병원에 있어요.”
    팔다리가 잘린,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그녀가 푸웁, 하고 웃는다.
    “그냥 그렇다고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젠장! 뱉어내고 보니, 이번 건 괜히 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는 서둘러 그녀의 가게를 나선다. 스쿠터에 오른 그의 눈이 유리문 너머의 그녀에게로 향한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신발의 먼지를 닦아내는 그녀.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러 있던 그의 시선은 그녀의 등줄기를 지나 그녀의 바지 허리춤으로 내려온다. 윗옷이 가려 주지 못한 허리춤 사이로 그녀의 맨살이 드러난다. 그리고 바지 허리 선 위로 살짝 보이는 건 그녀의 팬티다. 그런데 빨간색이다. 그녀가 빨간색 팬티를 입은 것이었다. 그는 입가에 짜릿한 미소를 지으며 스쿠터의 핸들을 꺾는다. 바흐가 물러 간 그의 귓가엔 다시 힙합이 들려온다.

 

    “야호! 청춘 양이 빨간색 팬티를 입었다! 그녀가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것은 빈 그릇을 수거하러 다니는 내내 그의 입에서 되풀이되어 나온 말이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무심할 정도로 무관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닐지도 몰랐다. 단지 표현이 서툴다 뿐이지, 그녀는 분명 그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그녀가 요즘 들어 자주 중국음식을 시켜 먹는 것도 그 중심엔 자신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그런 건가? 싶어지자, 그는 자신의 뒤늦은 깨달음을 질책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한다.
    “바보야, 그걸 이제야 알았냐?”
    그의 입가엔 이내 좋아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온다. 주택가를 빠져나온 그의 스쿠터는 이내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파고든다. 파란색 플라스틱 수거통은 짜장과 짬뽕 국물로 뒤범벅이다. 랩이 덕지덕지 붙은 그릇 사이로 보이는 것은, 먹다 남은 단무지와 김치, 그리고 날것의 양파 조각들이다. 거기다 빨간 고춧물이 든 나무젓가락에, 구겨진 냅킨과 수저 포장지까지 한데 섞여들면서 수거통은 그야말로 초특급 퓨전 음식으로 아수라장이다. 돼지 여물에 가까운 그런 곳에 그녀의 수고가 배어든 그릇을 같이 처박아 둘 수는 없기에, 그녀의 그릇은 항상 스쿠터 앞 바구니에 따로 담겨진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그가 철가방을 들고 스쿠터에서 내린다. 빈 그릇이 있는 13층을 향해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가 귀에 꽂은 힙합을 뺀다. 그러고는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오늘도 청춘 양을 위해! 그리고 나와 우리를 위해!”
    그는 아직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그녀는 아직 ‘청춘 양’이었다. 그는, 매번 배달 음식 그릇을 설거지해 두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심이 호기심으로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그의 것을 먼저 내어주기로 했다. 그러면 그녀도 자신의 것을 내어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는 빈 그릇을 들고 그녀의 가게를 나설 때마다 그녀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무심하게 던지고 가는 것으로 그 방법을 실현시켜 나갔다. 이런 식이었다. “저는 서른 살, 이름은 정태인이에요.” “저는 힙합을 좋아해요. 한때 힙합 가수를 꿈꾸기도 했었죠.” “사실, 저는 여기 배달원이 아니에요. ‘赤花園’ 막내아들인데, 일을 배우는 중이라서요.” “매일 빨간 속옷을 입어 주면 장사가 잘 된대요. 실제로 저희 어머니가 그랬거든요.” “우리 큰형은 검사예요. 작은형은 의사고요. 대학병원에 있어요.” 어떤 때는 물음 형식으로 된 말을 던지고 갈 때도 있었다. “왜 신발을 파세요? 꽃집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수고스럽지 않으세요? 배달 그릇 닦아 놓는 거요.” “나이하고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댁은 이 근처인가요?” 그러나 얄밉게도 그녀로부터 되돌려 받은 말은 고작 두 가지뿐이었다. “구두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잘 안 됐어요. 전 신발이 좋아요. 여기서 오래오래 장사를 해보고 싶어요.” “손님 드나드는 곳인데 밖에 내놓기가 뭐 해서요. 안에다 감춰 둔다 해도 냄새까지 감춰지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씻어 두는 거예요.” 결국 그녀의 배려는 그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그녀와 그녀의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는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배려이든 배려는 그냥 배려니까. 다만 그는, 그녀의 그런 깔끔한 행동으로 인해 그녀의 식습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게 불만이었다. 가령, 한 끼 식사량은 어느 정도 되는지, 짜장과 짬뽕에 들어간 식재료 중에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김치와 단무지 중에 반찬으로 선호하는 쪽은 어느 쪽인지에 관한 것들 말이다. 아직 감춰진 게 많은 그녀. 그런 그녀이기에 그는 그녀에 관한 더 많은 것이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어쩌면 이 일도 그래서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3층에서 멈춘다. 1301호 현관문 옆에 지저분하게 포개진 빈 그릇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눈은 1301호 맞은편 집인 1302호로 향한다. 철가방을 든 그가 난데없이 1302호 초인종을 조심스레 누른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이번엔 현관문을 몇 번 두드린 다음,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도 없나? 하고 생각하려는 순간, 초인종 스피커에서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다. 그가 대답한다.
    “짜장면 배달 왔는데요.”
    “네?”
    “짜장면 배달이요.”
    “안 시켰는데요.”
    “여기 ○○아파트 1302호 아닌가요?”
    “맞는데, 안 시켰다고요.”
    그는 아,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1301호 앞에 있던 빈 그릇을 들고 잽싸게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번엔 1201호다. 그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초인종을 누르고, 몇 차례 현관문을 두드린다. 짜장면 배달 왔다는 말에도 1201호는 조용하다. 이건 분명 빈집이라는 뜻이다. 그는 철가방을 소리 나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고는 신문 투입구부터 확인한다. 투입구는 다행히 열려 있다. 그는 곧바로 철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짧은 막대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으로 잡아당기자 짧은 막대기는 조금 긴 막대기로 변한다. 막대기 끄트머리에는 갈고리 같은 게 달려 있다. 그것은 ‘청춘 양을 위한 도구’로서, 그가 아버지의 낚싯대를 개조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신문 투입구를 열어 안쪽을 확인한 다음, 목표물을 정한다. 그러고는 투입구 속으로 ‘청춘 양을 위한 도구’를 살며시 밀어 넣는다. 막대기 끄트머리에 달린 갈고리가 낡은 단화 한 짝을 덥석 물고 나온다. 그는 팔딱대는 물고기를 잡듯, 투입구 속에 손을 집어넣어 단화 한 짝을 힘겹게 잡아 뺀다. 성공이다. 그런데 투입구로 향해 있던 그의 눈으로 먹음직스러운 실내화들이 들어온다. 실내화는 거실이 시작되는 지점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상태였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가게 입구 쪽에 새로 생긴, 각종 슬리퍼와 실내화가 진열돼 있던 그 벽걸이형 진열대가 떠오른다. 그는 고민한다. 한 개만 더 하고 갈까? 같은 신발도 아니고 거실용 실내화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이내 가로저어지는 그의 고개였다. 한 집에 한 건 이상은 곤란하다. 외짝이 된 한 켤레의 신발은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져도, 외짝이 된 두 켤레의 신발은 ‘의심’이 된다. 용케 ‘한 번 더’의 유혹을 떨쳐낸 그는, 훔친 신발을 철가방 안에 넣고는 빈 그릇을 들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짜릿하게 파고드는, 약간의 긴장감이 그는 이제 싫지가 않다.

 

    ‘赤花園’으로 돌아가는 그의 철가방 안에는 모두 열다섯 개의 외짝 신발이 들어 있다. 대부분 그냥 동네 신발 가게에서 사서 신을 만한 것들로, 브랜드도 없는, 그래서 별 신통치 않은 신발들이었다. 이로써 그녀는 언젠가 열다섯 켤레의 신발을 팔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래오래 장사를 해보고 싶다던 그녀. 그녀의 바람은 곧 그의 바람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늘 걱정스러웠다. 그 걱정스러움은 그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혹시나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그녀가 가게를 접고 어디로 사라져버릴까 봐.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실실 웃음을 쪼개며 떠올릴 수 있는 대상이 공중으로 증발해 버릴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러기에 그는 그녀가 이 동네에서 오래오래 신발 가게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해줘야만 했다. 그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그녀는 그래 줘야 했다.

 

    수명이 다 된 ‘赤花園’의 간판 속 형광등 교체 작업이 끝나 간다. ‘赤花園’의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사다리차의 작업대는 마치 하늘을 나는 양탄자 같다. 그는 그 밑에 서서 유리문에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중이다. 여의주를 물고 막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 문양의 손잡이에 래커 칠을 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가게에 생겨나는 개?보수 사항은, 격주에 한 번 돌아오는 휴무일인 월요일이 돼야 해결이 가능했다. 그런 연유로 그에게 쉬는 날은 쉬는 날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대를 온통 일요일처럼 살아온 그에게 ‘일요일’이 사라진 형벌쯤은 그도 마땅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그는, 어머니가 한 달에 두 번 아버지를 따라 낚시 여행을 다니고, ‘赤花園’의 직원들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일요일 같은 월요일을 보내는 동안, 가게 곳곳을 손보며 머릿속으로 그녀와 연애를 했다. 그가 상상하는 시공간 속 그녀는 언제나 말이 많았다. 질문은 온통 그녀의 것인 세상.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그녀의 말잔치에 오히려 과묵한 남자가 돼버리곤 하는, 그의 상상 속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낯설기만 했다. 오늘도 그는 말 많은 수다쟁이 그녀와 깍지 낀 손을 맞잡으며 영화관으로, 혹은 카페와 모텔로 들어간다. 이제 그의 상상이 만들어낸, 모텔 침대 위의 그녀는 빨간색 팬티와 빨간색 브래지어 차림이다. 그런데 막 그녀 곁으로 다가가려는 그의 발걸음이 걸걸한 목소리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태인 총각, 내 말 안 들려?”
    “네?”
    “다 됐으니까 스위치 한번 올려 보더라고.”
    단골 간판업자의 말에 빨간색 속옷 차림의 그녀가 산산조각 사라진다. 깨져버린 상황 설정을 그가 에이, 라는 말로 달래 보고는 간판의 조명 스위치를 올린다. 대낮이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赤化園’이었던 돌출 간판은 완벽한 ‘赤花園’이 된다. 다시 붉은 ‘꽃’밭이 된 것이다. 작업을 마친 간판업자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서 내려오며 그에게 묻는다.
    “태인 총각, 요새 연애하나 봐?”
    “네?”
    “연애하는 거 맞네.”
    “아니에요. 연애는 무슨.”
    “얼굴에 다 써 있는데 뭘. 이 가게도 곧 자네가 물려받아 할 거라며?”
    “네, 뭐…….”
    “자네 부모는 자식 농사도 참 골고루 잘 지었어.”
    그는 간판업자의 그 ‘골고루’라는 표현 안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 가게를 군말 없이 이어받아 해줄, 적당히 못난 자식을 일컫는 말이었다. 간접적인 표현이든 직접적인 표현이든, 그는 이제 남들의 그런 말 따위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설령 유명한 힙합 가수가 됐다 하더라도 그의 형들이 버티고 있는 이상 그는 영원히 못난 자식일 수밖에 없기에 포기하고 만 영역이었다. 그는 간판업자의 말에,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해 주고는 황금색 래커를 유리문 손잡이에 분사를 한다. 래커 칠은 두세 번 정도 해줘야 제대로 된 색깔이 나오기 때문에 한 번에 끝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 끌고 온 사다리차에 올라탄 간판업자가 래커 칠로 바쁜 그의 등에다 대고 말한다.
    “날 따뜻해지면 간판 청소도 좀 해야겠는걸.”
    “그렇죠? 그럼 그때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수완이 좋은 간판업자는 또 한 번의 일거리를 그의 뇌리에 박아 두고는 ‘赤花園’을 떠난다. 그새 여의주를 문 네 마리의 용에 한 차례 래커 칠을 끝낸 그는 힙합 음악부터 켠다. 그는 시끄러운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간판업자 때문에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힙합에 맞춰 슬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래커 칠이 마를 동안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그의 춤사위가 갑자기 멈춘다. 그가 자신의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마찰시켜 딱, 소리를 내더니 말한다.
    “그래, 청춘 양한테 우리 집 부적을 갖다 주는 거야.”
    그녀는 빨간 속옷을 입어 주면 장사가 잘 될 거라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바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아마도 그녀는 그가 갖다 주는 부적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고맙게 여겨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당장 가게에 있는 테이블 중에 아무거나 골라잡아 그 아래로 기어 들어간다. ‘赤花園’의 보이지 않는 곳곳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부적(符籍)들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부모와 그만이 아는 비밀로서, 부적이 부착된 곳은 서른 개가 넘는 테이블 밑이었다. 평소에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 그곳에, 그리고 아무나 들여다볼 수 없는 어머니의 몸에, 같은 듯 다른 ‘부적’이 은밀한 자태로 숨어든 셈이었다. 그는 혹여 찢어질세라, 테이블 밑에 상표처럼 붙어 있는 부적을 조심스레 떼어낸다. 어머니에게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고작 이거 하나 없어졌다고 해서 35년간 잘 굴러온 가게가 어떻게 되진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이 가게에는 부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것은 모두 점쟁이에 대한 어머니의 맹신 탓이었다. “테이블에 하나씩 붙여 둬. 눈에 보이지 않게 단단히 붙여야 돼.” 어머니는 한 번도 점쟁이의 말을 거슬러 본 적이 없었다. 법에 가까운 점쟁이의 말. 그래서 가게 규모가 커지고, 테이블 수가 하나라도 늘어나면, 어머니는 꼭 단골 점(占)집으로 달려가 부적부터 해왔다. 어머니가 이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 근원에는 그 점집이 있었다. “먹는 장사를 해야 해. 그중에서도 청요리가 딱이야.” “온통 붉은색이 보여. 붉은색을 가까이 할수록 좋다는 뜻이야. 빨간색 속옷을 입도록 해. 자식들한테도 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 “출입구에 용 문양 형상을 둬봐. 크기는 상관없어. 그게 돈을 불러올 거야.” 이 가게에 ‘赤花園’이라는 상호를 지어 주고, 형들의 진로와 형들의 배우자감을 선택해 준 것도 그 점쟁이였다. 심지어 새로 들일 직원을 뽑을 때도 기준은 어머니가 맹신하는,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가 ‘언니’라 부르게 된 그 점쟁이였다. 하지만 그 용하다는 ‘언니’도 그의 운명만은 맞추지 못했다. 힙합 가수로 이름을 떨칠 거라던 그였지만, 결국 그가 ‘색시’인 양 고향집으로 데려간 것은 성별을 알 수 없는 ‘실패’였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그 ‘언니’에 대한 맹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라는 하나의 실패보다 더 많은 성공을 가져 본 어머니이기에 그랬다. 솔직히 열 개의 점괘 중에 하나 정도는 맞지 않을 수 있었고, 그게 ‘그’라고 해도 그의 어머니에게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는 테이블 밑에서 떼어낸 부적을 고이 접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말한다.
    “하는 일들이 너무 잘 돼도 탈이야. 그러면 반성할 줄을 모르거든.”
    그는 그러한 말로 몰래 부적을 떼어낸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넘쳐나는 복을 좋아하는 누군가와 조금 나눠 가지고 싶을 뿐이었다. 괜스레 몸이 바빠진 그는 유리문 손잡이에 대충 두 번째 래커를 분사하고는 철가방을 챙겨 든다. 초벌 래커 칠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라 기다렸어야 할 일이지만, 그녀가 우선이기에 그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가게 셔터 문을 내리고 스쿠터에 올라탄 그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달린다. 아니, 그 전에 그는 그녀를 위한 신발을 훔치러 가봐야 한다. 오늘은 수거할 빈 그릇도 없겠다, 여유롭게, 그리고 거추장스럽지 않게 신발을 훔치기에 좋은 날이었다. 스쿠터 뒤의 파란색 수거통이 오늘은 외짝 신발들로 가득할 차례인 것이었다.

 

    그가 철가방 안에 일곱 개의 외짝 신발을 감춰 갖고 나온다.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을 감시카메라에게도, 오다가다 마주치는 낯선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그는 그저 짜장면을 배달하는 배달원처럼 보일 뿐이다. 저들의 눈에 그는 결코 궁금한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의 철가방 안에는 응당 짜장과 짬뽕 그릇이 들어 있을 것이고, 그의 모든 움직임은 배달을 위한 행동으로 해석될 것이기에 그렇다. 누가 감히 짱깨의 ‘철가방’과 발 냄새 풍기는 ‘외짝 신발’을 연계 지으려 하겠는가. 아예 의혹이 생겨날 수 없기에 그를 둘러싼 의심도, 상상도, 관심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온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식은땀은 이제 덤으로 따라다니는 액세서리 같다. 그는 잠시 주변을 살핀 후, 수거통 안에 깊숙이 박혀 있는, 고무로 된 뚜껑을 잡아당겨 빼낸다. 옆으로 누인 철가방을 수거통 입구에 가까이 갖다 대고는 입을 벌리듯 철가방 뚜껑을 살짝 벌려 준다. 그러자 철가방 안에 들어 있던 신발들이 수거통 안으로 알아서 우수수 떨어진다. 무슨 일이든 ‘반복’은 ‘요령’을 만들어내는 법. 누가 봐도 철가방에서 수거통으로 떨어진 것이 신발인지 그릇인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너무 순간적인 데다 그의 교묘한 손놀림 때문이다. 그는 다시 고무 뚜껑을 수거통 안쪽으로 깊숙이 내리누른다. 그의 부정(不正)은 고무 뚜껑에 의해 온데간데없이 감춰진다.
    다시 스쿠터에 올라탄 그는 아파트 옆동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고작 일곱 개다. 이 정도로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단지임에도 옆동은 복도식으로 돼 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다른 아파트 쪽으로 스쿠터의 운전대를 돌린다. 복도식 아파트는 여러모로 위험하다. 일렬로 쭉 늘어선 일고여덟 개의 현관문 중에 어느 게 예고 없이 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한 대에 배당된 세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드나드는 사람의 머릿수도 그만큼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가 계단식 아파트만 고집하는 이유는 모두 다 확률상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복도식 아파트를 피해 가다 보니 그의 스쿠터가 멈춰 선 곳은 그녀의 신발 가게와 가장 근접해 있는 아파트 단지다. 철가방을 든 그는 우선 한 번도 가본 기억이 없는 아파트 현관 입구를 선택해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조금이나마 긴장감을 덜어내기 위해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엘리베이터는 띵,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그를 꼭대기 층으로 데려다준다. 적막한 통로가 보이고, 미지에 가까운 현관문 두 개가 그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서 있다. 어느 쪽을 택할까 고민하다가 그는 오른쪽 현관문 앞에 선다. 초인종을 누르며 그가 말한다.
    “짜장면 배달 왔는데요.”
    대답 없는 초인종의 스피커. 빈집인가? 하고 생각하려는 순간, 당황스럽게도 현관문이 빠끔히 열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의문조로 말한다. 고도 비만으로 보이는 아이다.
    “짜장면 안 시켰는데요?”
    그는 현관문을 한번 쳐다보며 집 호수를 확인하는 척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이상하다. 1507호 맞는데. 진짜 안 시켰니?”
    “네.”
    “아, 그래. 미안하다.”
    그는 냉큼 그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혹시나 방금 그 남자 아이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까 봐 그는 층 하나를 더 내려가기로 한다. 1307호다. 주위를 경계하며 다시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이번엔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알리는 소리가 띵, 하고 난다. 그는 그의 몸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며 점점 숫자가 줄어드는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을 올려다본다. 1층까지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다시 숫자를 부풀리며 그가 서 있는 13층 가까이 올라오려나 싶더니, 결국엔 10층에서 멈춘다. 이로써 10층은 그가 피해 가야 할 층수가 된다. 후유,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다시 파고든 정적을 뚫고 그가 1307호의 초인종을 연달아 두 번 누른다. 짜장면 배달 왔다는 말에도 1307호는 침묵이다. 직감상 빈집임이 확실하기에 애써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다. 바로 자리에 쭈그리고 앉은 그는 신문 투입구 안으로 ‘청춘 양을 위한 도구’를 쑤셔 넣는다. 굽 낮은 여성용 구두가 갈고리에 끌려 나오자, 투입구를 파고든 그의 손이 놓칠세라 구두를 낚아챈다. 구두는 몇 번 신지 않은 새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새 신발이라고 해서 잃어버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훔친 구두를 철가방에 챙겨 넣고 무사히 자리를 뜨려는 순간이었다. 층계참에 서서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나의 긴 그림자가 보인다. 아차, 싶은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그의 눈이 그림자 주인의 발과 다리를 지나 가슴께로 올라간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방금 1507호에서 본 그 남자 아이다. 그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지? 저 아이는 언제부터 저 층계참에 서 있었던 거지? 그러자 그는, 저 아이가 무엇을 봤으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의 얼굴처럼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그래, 못 봤을 거야. 저 아이가 본 건 철가방을 들고 막 자리를 뜨려는 지금의 내 모습일 거야. 그는 어정쩡하게 철가방을 든 채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본다. 지금까지 실수 없이 잘 해온 일이라 자부하던 일이 한 번의 방심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이다. 그는 관자놀이에 맺힌 한겨울의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머릿속 엔진을 가동시킨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 짓 안 했다는 듯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그냥 내려가야 하나? 아니면 아이가 어디까지 봤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무슨 말이든 걸어 봐야 하나? 그때였다. 층계참에 서 있던 고도 비만의 아이가 뒤뚱거리며 계단을 밟아 내려온다. 아이의 손에는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학원 가방이 들려 있다. ‘모차르트 음악 학원’이라고 쓰인 아이의 학원 가방이 성큼 그에게로 다가온다. 그가 서 있는 층계참까지 내려온 아이가 그를 스쳐 지나가더니, 말없이 그 다음 계단으로 내려간다. 벌써 숨이 거칠어진 아이는 계속해서 계단을 밟고 또 밟아 내려간다. 아이는 15층이나 되는 계단을 모두 밟아 내려갈 모양이었다. 그는 답답한 나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뭐야, 본 거야? 못 본 거야?”
    그는 아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갈까 하다가 관둔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의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는 10층에 멈춰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불러내기 위해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자꾸만 계단 쪽으로 향하는 그의 눈이었다. 말없이 스쳐간 아이의 그림자가 그는 못내 찜찜하기만 하다.

 

    오후 세 시의 ‘赤花園’은 평온하다. 가사 없는 연주 음악만이, 일 년 전 그의 고집으로 생겨난 브레이크 타임을 바쁘게 움직인다. 구식이던 그의 부모는, 직원들에게 매일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을 내어주자는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었다. “그럴 순 없다. 한 시간씩 잠을 재우면 장사는 언제 한다니?” “무슨 노예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한다니까요.” 그는 하루 한 시간의 잠이 일의 능률을 가져와 결국엔 서비스의 질을 높일 거라는 말로 부모를 설득시켜 나갔다. “두고 보세요. 분명 좋은 효과로 나타날 거니까.” “글쎄, 안 된대도. 리듬만 깨질 뿐이야.” 하지만 그렇게 완고하게 굴던 그의 부모가 그의 제안을 따르기로 한 것은 잘난 두 형들의 의견을 듣고 난 뒤였다. 그가 하는 일은 늘 미덥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아 그땐 화가 났었지만, 몇 달간 한시적으로 해보자던 일을 은근슬쩍 유지시켜 가려는 듯한 부모의 모양새에 이제는 스스로가 뿌듯해지려는 참이었다. 그의 제안이 옳았다는 걸 부모가 인정해 준 꼴이니 당연했다. 그러기에 ‘赤花園’의 브레이크 타임은 그에게 단순한 휴식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부모가 그에게 보여준 최초의 암묵적 ‘인정(認定)’이었다.
    창가에 걸터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끼적거리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춘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돈다. 의자 등받이에 목이 꺾인 채로 잠이 든 아버지. 점심시간 때의 저 카운터에는 원래 어머니가 앉아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또 뭐가 초조해진 건지, 점쟁이 ‘언니’를 찾아간 어머니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내심 궁금해진다. 오늘 어머니가 들고 올 무기는 과연 무엇일지. 그리고 이번엔 어떤 주술적 행위로 어머니 당신의 행복을 보호하려 들 것인지. 그와 함께 그의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소리에 이어 이 말이 튀어나온다.
    “우리 엄마는 행복이 지치지도 않은가 봐.”
    잠이 든 아버지의 얼굴에서 멀어진 그의 눈이 다시 수첩으로 향한다. 그의 수첩 곳곳에는 그리려다 실패한 여러 개의 구조물들이 스케치되어 있다. 그가 지금 그리고자 하는 것은 ‘음식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소형 승강기’였다. 예전부터 음식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꽤나 버거운 일이라 여겨 온 그였다. 서빙 카트를 통째로 운반할 수 있는 승강기가 가게 어디쯤에 설치된다면 모두가 편리해질 터였다. 이것은 분명 좋은 제안이었고, 그의 부모가 그를 다시 보게 될 계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그의 수첩에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赤花園’의 3층 건물이 그려진다. 그리고 동선을 고려한 승강기가 들어가자, 그의 스케치는 한눈에 알아먹기 좋은 설명이 된다. 그는 이걸 보여드림으로써 또 한 번 받게 될 아버지와 어머니의 암묵적 ‘인정’에 기분이 좋아진다. 장사에 대해 좆도 모르는, 잘난 두 형들은 이제 짜장면을 파는 부모에게만큼은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혼잣말로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말하고는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나 이내 어두워져 가는 그의 표정이다. 목덜미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뭔지 모를 이 불안감. 자꾸 머릿속을 배회하는 1507호 남자 아이. 층계참에 서서 신발을 훔치던 자신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 것만 같은 그 남자 아이. 아이의 그림자가 또 그 앞에 나타나 무표정하게 웃고 있었다.
    “에이 씨, 진짜.”
    결국 께름칙한 기분을 견디지 못한 그가 창가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바지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낸다. 엊그제 테이블 밑에서 떼어낸 부적이다. 그 그림자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날 그녀에게 건네졌을 부적이었다. 그가 말한다.
    “안 되겠어. 지금 당장 전해 줘야겠어.”
    어쩌면 아직 전해 주지 못한 이 부적이 청춘 양을 보호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무엇으로부터든 말이다. 괜한 조바심에 그가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그는 아버지의 잠을 조심스레 지나쳐 철가방과 주문 배달 전표를 챙겨든다. 그녀로부터 수거해 와야 할 빈 그릇은 없지만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아, 신발을 사면 될 것이다.
    “그래, 신발을 사는 거야.”
    그가 그렇게 혼잣말을 해대며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용 문양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붉은 꽃밭’의 낮잠 시간이지만, 정작 그는 그 시간에 잠을 자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스쿠터에 올라탄 그의 몸이 그녀에게로 직행한다. 스쿠터의 속도가 키워낸 겨울바람이 그의 뺨을 날카롭게 베어낸다.

 

    파우더 향과 바흐 음악이 그의 복잡한 머릿속을 어루만져 준다. 그녀의 가게를 가득 메운 온기가 그의 얼얼해진 뺨을 가볍게 녹인다. 카운터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던 그녀가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고개를 쳐든다. 내줘야 할 빈 그릇이 없기에 그녀는 그의 뜬금없는 가게 방문이 좀 이상하다. 그가 혹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녀가 미리 말한다.
    “오늘은 배달시킨 거 없었는데요?”
    “네, 알아요.”
    자신을 향한 그녀의 의아스러운 시선에 그가 덧붙여 대답을 잇는다.
    “신발 하나 살까 하고요.”
    그도 손님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듯 그녀가 아, 네, 라고 말하고는 카운터에서 일어난다. 그가 우물쭈물대더니, 늘 그래 왔던 대로 그녀에게 묻는다.
    “장사는 잘 되나요?”
    “아, 네.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근데 신발은 어떤 종류로…….”
    “그냥, 아무거나요.”
    “아, 아무거나…….”
    난감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뒤로 한 채 그는 일단 진열된 신발들을 둘러본다. 눈은 신발 진열대를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머리와 손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에 가 있다. 지금 줘야 하나, 아니면 좀 더 분위기를 지켜본 다음에 줘야 하나. 그러나 성질 급한 그의 손이 먼저 행동에 나선다. 그가 꼬깃꼬깃 접힌 부적을 펼쳐 그녀 앞에 내밀고는 조심스레 입을 뗀다.
    “저기, 이거 가질래요? 장사 잘 되게 해주는 부적이라는데…… 아주 용한 거래요.”
    “어머.”
    “눈에 안 띄는 곳에 붙여 두면 좋대요. 예를 들면 테이블 밑이라든가…… 혹시 이런 거 싫으시면……”
    “아, 아니요. 좋아해요.”
    그녀는 생각보다 흔쾌히 그가 내민 부적을 받아든다. 그런데 이런 걸 왜 자기한테 주는 거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이 좋다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당신의 바람대로 여기에서 오래오래 장사를 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고작 이거다.
    “그, 그냥요.”
    다른 대답을 원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실망스럽게 변해 가는 그녀의 낯빛이다. 그녀의 그런 표정 변화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기에 그는 살짝 기분이 좋아지려고 한다. 그것은 분명 자신을 향한 그녀의 첫 감정 표출이었다. 그는 고민한다. 이 기회를 틈타 그냥 당신이 좋다고 말해 버릴까. 그런 다음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매번 아무 말이나 툭, 던지고 갔던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가 용기 내 그녀를 쳐다본다. 그는 연습 삼아 속으로 당신이 좋아요, 당신이 좋다고요, 라고 되풀이해 말해 본다. 목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끝낸 그가 마침내 입을 뗀다.
    “저기…….”
    그때였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눈에 익은 사람 하나가 지나간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그녀의 어깨 너머로 움직인다. 그 아이였다. 1507호에 사는 그 남자 아이. 가게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남자 아이의 눈이 마주친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본다. 그런데 그를 향한 아이의 눈빛이 좀 수상하다. 저 눈빛의 의미는 뭘까. 그는 찰나적으로 생각한다. 경멸인가? 그런데 초등학생 아이가 눈빛으로 ‘경멸’의 뜻을 내비칠 수도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착각인 걸까? 힘이 들어간 그의 양미간이 심각한 모양으로 찌푸려진다. 녀석을 놓칠세라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저기, 미안해요. 급한 일이 생겨 이만 가봐야겠어요.”
    “네?”
    “신발은 다음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가 유리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를 저기요, 라는 말로 다급하게 붙잡는다. 그러고는 그에게 다짜고짜 말한다.
    “송인주예요.”
    “네?”
    “송인주라고요. 제 이름요.”
    잠깐 얼떨떨해진 그였다. 그는 뒤늦게 아, 네, 라는 말만 겨우 남겨 두고는 서둘러 그녀의 가게 문을 나선다. 청춘 양의 이름은 송인주였다. 송인주, 송인주…… 그녀의 이름을 반복해 말해 보고 난 그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면서 스쿠터를 끌고 남자 아이의 뒤를 밟는다. 뭘 사려는 모양인지 아이가 마트로 들어간다. 마트 입구에 스쿠터를 세워 두고 그도 따라 들어간다. 아이는 곧장 과자 진열대로 걸어간다. 이 과자 저 과자 만지작대던 아이가 갑자가 방향을 틀더니 초콜릿 진열대로 걸음을 옮긴다. 그가 아이 곁으로 슬쩍 다가간다. 인기척을 느낀 아이가 고개를 틀어 그를 올려다본다. 아이의 눈이 그와 마주친다. 그가 아이에게 말을 건다.
    “안녕? 아저씨 기억나지?”
    “…….”
    “아저씨 몰라?”
    “알아요.”
    역시 남자 아이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묻는다.
    “어떻게 아는데?”
    “저 봤어요. 아저씨가 신발 훔치는 거.”
    “응?”
    “신발 가게 아줌마가 시킨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니?”
    “몰라요.”
    “무슨 뜻이냐니까?”
    “못 봤어요.”
    그는 아이의 횡설수설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아이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더니 초콜릿 봉지 하나를 집어 든다. 천진난만한 저 아이의 웃음을 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산대로 향하는 아이의 뒤통수를 그는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걸 봐버린 아이가 그녀까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돌겠네!”
    그가 입술을 깨문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쥔 그의 손등 위로 푸른빛의 정맥이 불거져 나온다. 복잡해진 그의 머릿속으로 찜찜한 불안감 같은 게 엉겨 붙는다.

 

    모차르트 음악 학원 앞에 그가 서 있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쓴 그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어폰이 양쪽 귀에 끼워져 있지만 음악은 계속해서 아무 말이 없는 상태다. 힙합 대신 그의 귀에 들려오는 건 음악 학원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서투른 피아노 소리와 지나가는 차 소음들뿐이다. 그가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빼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남자 아이가 학원으로 들어간 지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꾸물꾸물한 하늘이 해를 삼킨 지는 더 오래였다. 추위와 기다림에 지친 그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씨발, 왜 이리 안 나오는 거야?”
    날이 어슴푸레하게 변해 가자 모차르트 음악 학원의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간판 불빛에 그가 마주하고 서 있는 어둠의 농도가 조금 옅어진다. 밝아진 사위가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그가 챙 모자를 고쳐 쓴다. 그런 다음, 마스크의 한쪽 귀걸이를 귀에서 빼내고는 점퍼 속주머니에 있는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목구멍 깊숙이 빨아든 담배 연기에 몸은 조금 녹아드는 듯하지만, 마음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여유롭지 못하다. 그는 제자리걸음으로 언 발을 달래며 목구멍에 들어찬 가래를 한 번씩 뱉어낸다. 학원 문이 열린 건 그의 담배가 중간쯤 타들어갈 즈음이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중에 1507호 남자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들어간 걸 봤으니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남자 아이의 아파트에서부터 시작된 미행이었다. 바짝 얼어 가는 그의 입에서 또 한 번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씨발, 이러다 얼어 죽겠네.”
    그가 다 타들어간 담배를 땅바닥에 짓이겨 버리고 새 담배를 꺼내 문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학원 문이 다시 열린다. 드디어 그가 기다리던 남자 아이가 굼뜬 걸음으로 걸어 나온다. 그는 불도 붙이지 못한 담배를 바닥에 분질러 버리고는 다시 마스크를 착용한다. 추위에 짜증이 난 그가 남자 아이를 향해 한마디 던진다.
    “씨발,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겠다?”
    그는 모자챙을 아래로 끌어당기며 아이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아이의 움직이는 방향으로 봐서는 곧장 집으로 가는 것 같지는 않다. 모퉁이를 돈 아이가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간다. 후미진 곳이 필요하던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경로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때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 봤어요. 아저씨가 신발 훔치는 거.” “신발 가게 아줌마가 시킨 거예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는 결코 순진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고, 그가 아이를 미행하게 된 동기였다. 그는 이 말은 용서할 수 있었다. “저 봤어요. 아저씨가 신발 훔치는 거.” 그러나 이 말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신발 가게 아줌마가 시킨 거예요?” 이제 겨우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그였다. 아이의 굼뜬 발걸음이 잠깐 피씨방 앞에서 멈춰 선다. 그가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긴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이는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컴퓨터 게임을 포기하고 아이가 선택한 것은 피씨방 건너편에서 팔고 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툼한 호떡이다. 그는 갑자기 치밀어 오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나지막이 말한다.
    “돼지 새끼! 처먹지를 말든가, 운동을 하지 말든가!”
    그날 아이가 운동 삼아 계단을 내려오지 않았다면 신발을 훔치고 있던 자신과 마주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분노의 말이었다. 전봇대에서 벗어난 그가 아이의 뒤를 바짝 좇는다. 아이는 종이컵에 물린 두 개의 호떡을 양손에 나눠 쥐고는 어두워진 골목길을 파고든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이제 막 흩날리기 시작하는 눈송이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리 없는 음성으로 말하는 겨울만의 언어는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다. 다만 한없이 고요하기만 할 것 같은 눈이 내리는 풍경이, 불안하게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수명이 다 돼 가는 골목길의 가로등이 깜빡거리면서, 양손에 쥔 호떡을 번갈아 베어 먹는 남자 아이의 모습도 덩달아 깜빡거린다. 이내 걸음을 멈춘 그는 깜빡거리는 가로등을 잠시 올려다보며 혀를 찬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쯧, 거 되게 거슬리네.”
    겨울만큼 차가운 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아이의 뒤를 좇는 그의 발걸음이었다.

 

 

 

작가소개 / 김희진(소설가)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욕조』,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 『양파의 습관』이 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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