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에 담긴 우정의 윤리

 

[ 편집위원 노트 ]

 

 

시 속에 담긴 우정의 윤리

 

 

오창은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친구, 우정에 관한 시 세 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한 편을 옮겨 봅니다.

 


화롯불을 헤치고
술을 따끈히 데워 놓았네.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이 밤,
와서
한잔 안 하려는가?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벗에게」라는 시입니다. 2014년을 보내는 이즈음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인 듯하네요. 벗과 함께 눈이 내릴 듯한 밤에 따뜻한 술 한잔을 데워 먹습니다. 밤 화롯불의 운치가 술맛을 돋우네요. 흔히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고 하지요. 오래 사귄 친구와 긴 겨울밤을 반주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화롯불의 은근한 빛이 열기를 돋웁니다. 우정은 나눔입니다. 술 한잔 권하는 마음에는 오랜 친구에 대한 정겨움이 스며 있습니다. 진정한 우정이야말로 조건 없는 교류겠지요. 그 어떤 이로움에 대한 계산도 없이 아끼던 술을 나누듯 마음을 나누는 것이 우정이라고 봅니다. 자연스러운 끌림, 스스럼없는 나눔에 우정이 둥지를 틉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이유를 따지지 않지요.
    다음 시는 우정이 감당해야 하는 견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시도 옮겨 봅니다.

 


술은 싫어해도
술자리에도 좋더니라
 
 
평생에 두려워 조심하는
동무연만
 
 
취하면 그의 무릎에 잠든 적이 많았어.

 

    조운 시인이 1947년에 발표한 「고우 죽창(故友 竹窓)」입니다. 이 시는 오랜 친구 사이에 있을 법한 긴장과 이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술자리에는 곧잘 어울리곤 합니다. 술은 싫어도 사람이 좋아 때로는 못 마시는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지요. 우정이란 싫어하는 것도 참고 견디게 합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버틴 윤리의 감각이겠지요. 좋은 친구는 ‘허물 있는 친구’이면서 ‘허물없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서로 조심하고 아끼면서도, 서로 실수를 스스럼없이 용납하기도 하지요. 조운 시인은 그것을 ‘평생에 두려워 조심’하는 것과 ‘취하면 그의 무릎에 잠’드는 상황을 동시에 제시하지요. 긴장이 일상이라면, 이완은 순간이지요. 그것이 단지 한두 번이 아니라 ‘많았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은 오랜 시간을 견뎌내 단아한 빛을 발하는 우정이겠지요. 인간의 사이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싫은 것을 견디고, 때로는 방심하여 풀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람 간의 관계지요. 친구의 우정은 서로의 무릎을 스스럼없이 내줄 수 있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싫어하는 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하는 술자리’이기에 흥겨워질 수 있겠지요. 이 시는 마지막 연이 ‘3/5/4/3’의 율격을 맞추고 있어 단아한 현대시조의 형식을 취한 것도 눈길을 끄네요.
    이제 마지막 시편입니다. 우정을 화살에 빗댄 시편이지요.

 


공중에 화살을 쏘았다.
어딘지 모를 곳에 떨어졌다.
너무도 빠른 화살이라,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공중에 노래를 불렀다.
어딘지 모를 곳에 떨어졌다.
제아무리 눈이 좋다기로,
날으는 노래를 볼 수 있으랴?
 
 
하 오래 지난 후 참나무에서
꺾이지 않은 채 화살을 찾았고
시작부터 끝까지 그 노래를
친구의 마음에서 다시 찾았다.

 

    19세기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화살과 노래」(The Arrow and the Song)라는 시입니다. 화살에 대한 비유는 흔합니다. 빠른 화살을 세월에 빗대기도 하고, 사위를 떠난 화살의 덧없음도 이야기합니다. 순간적인 화살의 공간이동은 인간의 시각적 감각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곤 하지요.
    ‘공중에 부른 노래’는 조금은 의아스럽습니다. 귀로 듣는 노래를 화살의 연상 속에서 ‘날으는 노래’로 비유하고 있으니까요.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 곁에 놓음으로써 아이러니를 표현한 것이겠지요. 화살과 노래는 함께 쏘아올린 과거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잊힌 것이면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시는 마지막 연에서 경이로운 전환을 이뤄냅니다. 빠른 공간의 이동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포착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옛날에 쏘아올린 화살을 발견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친구의 마음에서 ‘그 노래’를 발견한 것은 은은한 감동의 떨림으로 이어집니다.
    중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요. 춘추시대 유백아(兪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거문고를 뜯는 솜씨가 대단했는데, 그의 연주를 허름한 차림의 종자기(種子期)라는 사람이 정확히 짚어냈다고 합니다. 백아가 깜짝 놀라 ‘진정으로 소리를 아는 사람(知音)’을 만났다고 좋아했답니다. 이 둘은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으로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백아는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거문고 줄을 끊고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친구를 지칭하는 지음(知音)과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지칭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지요.
    롱펠로 시에 등장하는 ‘친구의 마음’은 ‘지음(知音)’을 연상시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여, 오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우정의 윤리겠지요. 때로는 좋은 일도 있고, 때로는 궂은일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는 마음인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정의 궁극인 듯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친구 간의 우정과 우애를 다룬 구절이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로움을 계산하는 우정’과 ‘친구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덕스러운 우정’을 구분했습니다.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우정은 ‘덕이 있는 우정’이겠지요. 그것은 시간을 견디는 우정이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우정일 것입니다.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서로를 응시하며,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친구는 서로를 닮아 가면서 어려워할 줄도 아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2014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잊지 말자’가 절실한 울림을 주는, 아픈 2014년이었습니다. 《문장 웹진》 12월호는 주하림, 조연호, 안미옥, 신해욱, 심민아 시인의 소중한 시편들을 게재했습니다. 시로 마음을 살피는 기회를 주신 시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소설의 묘미를 각자의 개성으로 버무려낸 윤순례 작가의 「발로」와 주원규 작가의 「맥도날드 유감」, 그리고 이현수 작가의 「노근리의 빛과 우울」을 싣습니다. 힘껏 눌러쓴 연필의 필치를 연상시키는 작가들의 역량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는 왜’ 기획에는 황정은 소설가를 초대했습니다. ‘나는 왜’는 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 온 황정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은 2014년과 같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음으로써 2015년에는 세상에 조그만 변화라도 이끌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세상은 결코 한꺼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조금씩 지속적으로 바뀔 뿐입니다. 변화의 물결에 한 컵의 물을 붓는 것, 그것이 문학을 아끼는 이들의 조그만 실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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