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보약 외 9편

[ARKO 선정작가]

 

 

비단 보약

 

변현상

 

 

 

청해루서 제공하는
짜장데이 점심이다

 

“통비단도 배곯으면 한 끼라고 안 카더나!”

 

끼니가
업業이 돼버린
틀니들의 아포리즘

 

장마에 볕이 나듯
한 달에 한 번 오는

 

미소 넣고 곱게 비빈 짭짤한 짜장 보약

 

괴정동
양지경로당
“짜~장” 하고 해가 뜬다

 

 

 

 

 

 

 

용대리

 

 

 

물이란 관념 속을 과감하게 뛰쳐나온
할복한 몸통들이 빗금 바람 먹고 있다
온전한
자유를 향한
겨울 덕장의 저 불길

 

고래들도 생각 못 한 황홀한 몸의 거사
누가 있어 저 혁명에 감히 돌 던지겠나
멀고 먼
후생의 하늘
새 되어 날아갈 명태

 

물의 감옥 탈출하다 줄줄이 꿰어진 채
난생처음 눈보라에 잦바듬히 입 벌리고
죽어서
죽음을 이기는
황태로 개명 중이다

 

 

 

 

 

 

솔로대첩

 

 

 

 

출애굽 하기 위해
쌍심지 켜고 몰려오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여

 

약속한 달콤한 광장은
SNS로 통하나니

 

퍽! 하고 맞고 싶다
큐피드Cupid의 화살을

 

오늘은 내가 궁사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솔로대첩

 

 

 

 

 

 

네 물이 내 몸에 와

 

 

 

햇나물의 향기를 아침상에 올리려고
밤늦도록 다듬었던 아내의 손톱 밑이
작업복 소매가 되어 까맣게 물들었네!

 

네 물이 내 몸에 와, 네 것이 내 것 되는
여민 단추 풀어 주고 받아 주는 행위들이
불타는 마음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천둥과 번개와 비, 바람 잦은 이 현세를
가장 낮은 자세로 온 햇나물의 짙은 물은
어쩌면 저리도 깊게 눈물로 스몄을까

 

아래위가 달라붙은 부끄러운 연탄처럼
불법 주차 스티커의 낯 뜨거운 체위처럼
까맣게 물든 손톱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경건한 조연

 

 

 

솟구치는 분수 물은 떨어져야 눈부시듯

 

세탁기 탈수 코스 돌고 나온 셔츠에서

 

바닥에 툭 떨어지는 단추 하나 주워 본다

 

무대 한쪽 시멋 없이 여미면 여민 대로

 

허풍선 설레발은 펼친 적 없었는데

 

손잡고 같이 걸어온 그 동행이 싫어졌나

 

저문 빛도 다 이운 갱년기의 겨울 초입

 

깍지 끼고 함께해도 풍치 온 줄 몰랐었네

 

매달려 버틴 실밥에 사위가 다 환한 날

 

 

 

 

 

 

귀성歸省

 

 

 

    얼마나 굶었는지 폭식을 한 고속도로 온종일 끙끙거리며
복통을 호소했다

 

    그래도 웃으며 가는 회귀回歸하는 연어 떼

 

 

 

 

 

 

적극적인 공범자

 

 

 

 1

혼자 살다 백골이 된 고독사가 발견되자
아파트 삿대질들
빙빙 돌며 총 쏘았다
큰 들보
박힌 눈으로
티 없는 척 조준하며

 

 2

베란다 화분에서 결국은 숨이 졌다
말복에 더위 먹은 똥개의 혓바닥
쓰러진
부채선인장
당홍빛 몸뚱어리

 

매지구름 한 점 없이 불볕이 쏟아지고
콘크리트 넓은 숲은 달아올라 홧홧한데
두 손이 자꾸 시리다
선인장을 염하는 날

 

 

 

 

 

 

환한 휴식

 

 

 

낡은 장화 한 켤레가 마당귀에 나와 있다
기미 낀 콧잔등이 오독誤讀이 아니었다
뒷굽은 삐딱하지만 반듯한 냄새였다

 

젊음을 증언하던 문서들은 필요 없다
오로지 주인 위해 논밭을 밟고 온 길
어둠은 별을 불러와 생채기를 다독였다

 

시드는 걸 생각하며 피운 꽃이 있었던가
아낌없이 다 준 생이 눈부시게 빛이 나네
환하게 앉은 그 자리 달빛도 쉬고 있다

 

 

 

 

 

 

군사설辭說

-얄궂데이(day)

 

 

 

예배당 간이 벤치 할머니 두 분 대화시다
-그쪽은 오래됐능교? 예수님을 믿은 지가
-오데요 인자 한 오 년 한 육 년 됐을랑가

 

-올게 연센 몇인교
-팔십하나 묵었소
-엥 갑장이구마, 그래 생일은 운젠데
단박에 외투를 벗고 가벼워지는 저 말투

 

-사월하고 초이레
-뭐 사월 초이레
-하고야 얄궂데이, 나하고 똑같네
-머시라 그도 초이레? 얄궂데이 참 얄궂데이

 

-그라마 내일이 생일인데 맞능가 베
-하모 또 모레는 부처님 온 초파일이고……
서로가 서로를 보며 환해지는 등불이다

 

-초파일날 뭐 할 끼고? 우리 뒷산 절에나 가자
-절에는 말라꼬 가 교회를 댕김시로……
-절밥이 마싯따 카데, 시주 달라 할까 바?

 

-누가 보마 욕 안 할라? 절밥 묵으로 댕긴다꼬
-거 욕은 무슨 욕, 다 지 마음에 달린 기지
-하기사 우리 큰아도 몰래 술 마시쌋태

 

 

 

 

 

 

부부라는 이름의 詩

 

대학병원 폐암 병동 금연 구역 휴게실

 

대롱대롱 흔들리는 링거 병을 팔에 꽂은

 

중년의
마른 남자와
휠체어 밀던 아낙

 

 

깊은 산 호수 수면 그 잔잔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 서로 불을 붙여 준다

 

주위의 눈길을 닫는
저 뜨거운
합일合一!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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