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차세대3차_소설] 당신을 닮은 노래

 

[2014년 2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당신을 닮은 노래

 

 


강화길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그렇게 애썼다. 그녀는 열한 살 여자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엄마가 경험했을 어떤 것들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녀의 일부였던 것은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던 열 달에 불과하다. 이해나 공감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그즈음 엄마는 누군가를 쉽게 존경했다. 아홉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이야기며 마흔다섯에 간호대학을 입학한 가정주부, 그러니까 어떤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나는 모두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대단하지. 정말 대단하지 않니? 엄마는 이야기 끝에 늘 이런 찬사를 덧붙이며 내게 묻고는 했다. 여름이었다. 장마는 길었다. 한낮이면 뒷목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나의 침묵을 엄마가 영원히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늦여름 그 목요일. 나는 엄마를 옆 좌석에 태우고 도시 외곽으로 운전했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흙먼지가 차창 앞으로 밀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 간이 건물들과 현수막들이 주변 곳곳에 어지러이 늘어서 있었고 벽에 무언가를 박아 넣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울려왔다. 한때 가장 번화했던 곳이지만, 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천천히 끊겼다. 이제는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둘 철거되는 중이다. 하지만 그 동네는 도시의 대부분 사람에게 여전히 익숙하고 친숙했다. 그건 기억과 같았다.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 곳곳에 고인 옛이야기 같은 것들.
    하지만 나는 길을 잃었다. 우리가 찾는 건물은 어떤 선교사의 사택이었던 곳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였다. 주인이 떠난 후에도 이런저런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고, 그래서인지 이 동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막상 찾겠다고 생각해서인지 건물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거리를 맴돌며 낡은 간판들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은 모두 비슷해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괜찮아, 서두를 것 없어.”
    창밖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말했다. 그녀는 손끝으로 내 미간을 살짝 어루만지며 덧붙였다. “그렇게 인상 쓸 것도 없고.”
    엄마는 선생님께서는 늘 오 분 정도 늦게 들어오시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찡그린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 오 분을 훌쩍 넘기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나는 엄마를 늦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일 년 간 엄마는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가곡 강습을 들었는데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안 했다. 매주 목요일 4시면 엄마는 강의실에 정확히 도착해서는 악보를 펴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강사가 강습시간을 늦추거나 휴강을 한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든 혹시 모르는 법이니까.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내가 핀잔을 주면 엄마는 그렇게 답했다. 늘 준비해야 해. “혹시 아니, 선생님께서 마음을 갑자기 바꾸실지.”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사는 여전히 자주 휴강을 했고 늘 오 분을 늦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날처럼 강의실이 바뀐 일을 제외하고는.
    백화점에 누수가 발생했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은 물론, 장마 기간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9층 내벽 전체에 곰팡이가 슬고 벽 군데군데가 갈라졌다.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건물이 안에서부터 썩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다. 누수가 발견되었을 무렵에는 상황이 꽤 심각해서 9층 전체를 며칠간 폐쇄해야 할 지경이었다. 백화점 측에서는 가곡 수업을 한 주 휴강하고 공사에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연휴의 끄트머리였다. 강사는 휴일 핑계를 대고 이미 이 주 정도 휴강을 했었다. 수업을 또 쉰다는 말에 강습생 몇 명이 항의전화를 했다. 백화점 측은 결국 급히 빈 강의실 하나를 확보한 뒤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얘, 저기 봐라, 저기.”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길 끝에 아담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3층짜리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낮은 삼각 지붕 앞에 ‘교양 교육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근래의 단층 건물들보다 높이가 낮았고, 그에 비해 폭은 넓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약간 납작한 인상이 들었다. 아치형 현관문과 창문들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도 들었다. 낡은 만큼 많은 기억이 있었다. 한때는 마음 붙일 곳 없는 사춘기 아이들이 밤마다 숨어들었고, 선거철이면 가난한 정당의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으며, 무료 급식소나 방과후 교실이 되기도 했다. 2년 전, 인근의 전문대학이 건물을 인수한 후에는 시민들에게 음악이나 미술, 글짓기나 네일아트 같은 걸 가르치는 교양 교육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힘드니까 그만 운전하고 세워라. 여기서 길 건너갈게.”
    “힘들긴 뭘 힘들어.” 나는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고 대꾸하며 유턴으로 도로를 가로질렀다.
    문 앞에서 엄마가 뒤를 돌아봤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날 강사는 십오 분을 늦었다. 왜 굳이 외곽까지 가서 수업을 해야 하느냐며 백화점과 승강이를 벌이다 그랬다고 했다. 불평하는 건 강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가 이런 곳에 있어야겠습니까?” 엄마는 강사를 존경했다. 가난하지만 노력했고 끝내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와 대학과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는 그가 정말 대단했고, 그의 의견 대부분을 존중했지만 건물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건물이 좋았다.
    아주 오랜 시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온 전통 같은 것, 대물림되는 운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 것이야말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라 이런 것들 말이지. 특별하고, 고고하고.
    단어들을 고르며 인상을 쓰던 엄마의 표정이 기억난다.
    젊은 시절 엄마는 시의 합창단원이었다. 소프라노였다. 독창 부분을 맡거나, 연주자들이 앞 다퉈 찾는 단원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목소리였다고 엄마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합창단 사정이 나빠지면서 최소 인원만을 남기는 방향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엄마는 마지막 면접까지 남아 있었지만 결국 해고되었다. 재계약을 이어갈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낙담하지 않았다. 젊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정해진 미래 같은 것이 있다 해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아빠는 엄마의 그런 면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젊고 아름답고 순진한 부부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꽝꽝 얼어붙은 숟가락 두 개를 눈두덩 위에 올려놓고는 했다. 생활을 해야 했다. 엄마는 보험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이후에도 몇 번의 오디션을 봤다. 단 한 번도 결정적인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 닮아서 이런 거네?”
    엄마가 젊은 시절을 회상할 때면 나는 그런 농담을 했다. 엄마는 눈을 흘기며 대꾸하고는 했다. “야, 그래도 네가 그만큼 해낸 것도 다 나 닮은 덕이지. 감사한 줄 알아.”
    우리는 웃었다. 농담이기는 했기만 사실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공모전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 한 번은 최종심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는데, 내 심사평은 이랬다. “뽑을 만큼 결정적인 이유가 없다.” 그때 엄마와 나는 심사평을 읽으며 웃었다. 기막힌 대물림이었고 웃을 일이었다. 낙담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이라면 가진 것이니까.
    지금 나는 스물아홉 살이고, 암 환자다.
    이것도 내가 가진 것이다.
    이 년 전,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2기였다. 아주 많이 전이된 상태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였다. 항암치료를 열두 번 받았다. 지금 내 몸에는 남아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자궁과 위, 갑상선, 간 일부를 잘라냈다. 제거하고 남은 간 조각이 위의 역할을 한다. 배에 구멍을 뚫어 관을 연결했고, 그것으로 약물을 주입한다. 조만간 폐도 절제할 예정이다. 몸을 늘 부어 있고, 입맛은 껄끄러우며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온몸의 털이 다 빠져나갔다. 털은 드문드문 다시 돋아났지만 결코 이전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질 수는 없으리라는 걸 잘 안다. 수차례의 개복, 화학요법과 표적치료, 입원, 퇴원, 다시 입원, 나는 병원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여덟 번째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하 매점 테이블에서 환자의 지인으로 보이는 어떤 남녀가 그런 대화를 하는 걸 들었다.
    목전에 죽음을 두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심정을 전혀 모르겠다. 나는 그 두 사람이 가능한 한 많이 고통스럽기를 빈다.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라는, 그러니 가능성이 없다면 알아서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그들 자신에게도 반드시 실현되기를 빈다. 어디 한 번 소원대로 우아한 죽음을 겪어보기를 바란다.
    내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던 날, 엄마는 특별히 어떤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많이 당황해 있어서 엄마라도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괜찮아’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너는 젊어, 너는 회복이 빠를 거야. 너는.     내 새끼, 너는 날 닮았으니까.
그날 저녁, 엄마는 삶은 브로콜리와 구운 고등어로 상을 차렸다. 나는 숟가락 두 개를 냉동실에 넣었다.

 

    엄마에게 노래를 배우러 다니라고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투병은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접고 내 간호에만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는 열심히 살았다. 이제 중년이었다. 삶의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로가 되는 일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일 년이 지나고, 병원과 집을 오가는 내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생각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작년 봄,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첫날에도 엄마는 정시에 도착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혼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유기농 식품, 고액과외, 해외여행과 남편, 자식, 필라테스, 와인. 엄마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악보를 봤고, 시계를 봤고,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엄마는 자신이 노래를 배우러 왔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걸 어떻게든 드러내려 애썼다. 강의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즈음이었다. 옆자리 여자가 엄마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자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치아가 유별나게 깨끗하고 희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여자가 질문을 해왔다.
    “혹시, 지난주 봉사활동에 오지 않으셨어요?”
    엄마는 여자가 말하는 단체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자 여자는 함께 일한 사람과 엄마의 얼굴이 비슷해서 헷갈렸다며 미소를 지었다. 목요일에는 둘째 딸을 학원에 보내자마자 강습에 오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정신이 없다고 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고 친근한 말투였다. 엄마는 마음이 편해졌고, 어쩐지 그 여자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저도 딸이 있어요.”
    엄마의 말에 여자가 반색했다. “지금 큰딸이 서울에 막 취직했어요. 따님은 어느 동네에 살아요?”
    엄마는 자신의 표정을 본 여자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여자가 상황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정작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줘야겠다 싶었는데, 문득 엄마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복잡해진 엄마와 달리 여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여자의 미소가 깊어졌다. 무관심해 보였다. 그녀는 선생님 실력이 좋으니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자신이 어울리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엄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자신이 했어야만 했던 말들을 하나씩 골랐다. 저는요. 제 딸은요. 아니, 내 딸은요. 나는요.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딸, 우리를 수식하는 어떤 단어도 엄마가 원하는 표현은 아니었다.
    수업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다. 기본적인 발성연습을 십 분 정도 한 뒤, 지난 시간에 배운 부분을 복습하면서 진도를 나가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재밌었다. 이십 분을 남겨두고 시작된 독창연습 전까지 엄마는 그렇게 느꼈다. 독창연습은 강사가 부르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는데, 지목을 기다리는 그 분위기가 미묘하게 경쟁적이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모두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옆자리 여자가 가장 먼저 나갔다. 여자는 고음을 낼 때 목소리가 갈라졌고, 전체적으로 호흡도 부족했다. 낮은 음으로 내려오면서는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다음에는 가장 앞줄에 앉은 여자가 호명되었는데, 그 수업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 보였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아무도 그 여자의 노래에 집중하지 않았다. 강사는 노래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
    “괜찮아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그리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엄마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사람들을 살폈다. 같은 욕심을 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솔직하지 않은 그 분위기에서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강사가 엄마를 보고 있었다.
    “나와 보시겠어요?”
    엄마는 긴장했다. 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부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을 늘 쉽게 넘었겠지. 엄마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는 자신이 정당한 수강료를 내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걸 생각하려 애썼다. 내가 돈을 내지 않으면, 내가 배우지 않으면 저 사람은 아무 의미가 없어. 엄마는 강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노래가 끝난 후 강사가 말했다. “목소리 진짜 깨끗하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연습 좀 하면 발표회 때 독창도 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자리로 돌아가던 엄마는 앞을 돌아봤다.
    “가능성이 있어요?”
    그가 웃었다. “그럼요.” 그는 피아노 위의 악보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제 계속 하시는 겁니다.”

 

    나는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고, 가곡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가 애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매일 노래했다. 그녀는 원하는 소리가 있었고, 그 음을 표현하기 위해 매일 연습했다. 가장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엄마는 깨끗하고 단정한 음정으로 소리 내려 노력했다. 한 음이라도 잘못 부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연습이 마음에 드는 날에는 기분이 좋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슬퍼했다. 강사에게 칭찬을 받은 날에는 행복해했고, 지적을 받은 날에는 괴로워했다. 엄마는 늘 질문했다. 수진아, 엄마 오늘은 잘하니? 잘하고 있지?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그렇게 애썼다. 그녀는 열한 살 여자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엄마가 경험했을 어떤 것들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녀의 일부였던 것은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던 열 달에 불과하다. 이해나 공감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아빠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원망 어린 눈길을 보내는 사춘기 딸을 마주해야 하는 아침.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은근히 배척하는 동료들의 태도. 낮에는 신사적이지만 밤이면 전화를 걸어 음담패설과 욕설을 늘어놓는 남자 고객. 그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조치와 판단들에 대해 나는 모른다. 다만 어떤 상황이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고, 노력하면 뭐든 나아지리라 믿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엄마에게 배운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내게 가르친 것이다.
    교통사고는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이제 나는 그런 종류의 일이 느닷없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시간에 음주운전 차가 푸른 등이 켜진 횡단보도로 달려온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빠가 매번 산책하던 길이었다. 그 끝에는 지금의 신시가지가 시작되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툭하면 던지던 아빠의 농담을 기억한다. 수진아, 우리 저 아파트에서 살까? 불가능하다는 걸 아빠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랬으면서 아빠는 그 거리를 매일 걸었다. 오랫동안 나는 아빠의 그 성실한 농담을 맹렬하게 미워했다.
    첫 수술 후, 항암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나는 의사에게 모든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산책했다.

 

    돌이켜보면 꽤 괜찮은 여름이었다. 꾸준한 연습 덕분인지 엄마의 노래는 매끄러워졌다. 강사는 엄마에게 종종 독창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피로한 날이 드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났고, 매일 운동을 했고 잘 먹었다. 기분 좋은 날이 이어졌다. 장마기간에는 집안 청소를 했고, 열대야에는 반신욕을 했다. 잠을 푹 자는 날도 많았다. 이런 식으로 살겠구나, 살아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백화점에는 왜 누수가 생겼을까. 그날이었다. 왜 아무도 몰랐을까. 내벽이 부스러진 백화점 문이 닫히고, 사람들이 도시 외곽을 더듬더듬 찾아가던 날. 나는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동안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제 뇌만 남았네’라는 농담을 하려다 관뒀다. 나에게만 아무렇지 않은 농담이 있다는 걸, 가끔 잊을 때가 있다. 대신 나는 수술과정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암세포가 폐의 어디에 달라붙어 있고, 어떻게 제거해야 하며, 그 후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사실 다 아는 내용이었다. 수술을 앞둔 시기마다 반복되는 엄마의 침묵이 나는 두려웠다. 나는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독창할 사람은 뽑았어?”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많이 늘었잖아. 이제 엄마 정도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모두 하고 싶어하니 어려울 거라고 엄마는 대답했다. 가곡반 발표회가 가을이었다. 엄마는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아서 제법 바빴다. 독창은 정해진 바 없었다. 강사가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강사가 가곡반을 운영하는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래 그게 선생님 방식이야, 라는 엄마의 설명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별 것도 아닌 일이 유난스러워진 기분이었다. 이 조그만 촌 도시 구석에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진지했고, 노래에 집중했다. 어쨌든 잘하는 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을 테니. 내가 노래를 잘하면 될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 않니.
    그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엄마를 교육원에 데려다 주며 노래라도 부르면 엄마의 기분이 나아질 것이니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든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마 나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 먼지 내음 가득한 그 거리를 지나 가능한 먼 곳으로 갔을 것이다. 엄마는 굳이 누군가의 칭찬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들어가자마자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발표회 이후 조직할 예정이라는 합창단 명단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서명한 걸 보고 자신의 이름을 적으려던 엄마는 그 합창단이 가곡반과 별개로 운영될 모임이라는 걸 알았다. 발성연습이 끝내자마자 강사는 명단을 훑어봤다. 그가 엄마를 불렀다. 왜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저는 가곡반 하나로 충분해서요. 엄마의 대답은 강사의 웃음소리에 묻혀 가라앉았다.
    “에이, 그러면 이번 발표회는 같이 못 하는데?”
    엄마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강사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독창도 못 해요. 이거 하는 사람 중에 뽑을 거야, 어머니.”
    강사가 그녀의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그는 명단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엄마는 가만히 지켜봤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도입 부분을 세 번 연속 놓쳤다. 엄마는 나에 대해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사에게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엄마는 발표회 때문에 그렇게, 라는 문장을 삼켰다. 그런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당하게 가려 주실 거잖아요.”
    그 순간 강사의 얼굴에 떠오른 어떤 기분들을, 엄마는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다르게 추측해 설명했다. 그러나 실망과 신경질을, 짜증과 서운함이 드러난 표정에 대해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많은 감정들이 사실은 강사와는 무관한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온전히 엄마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엄마는 떨었다고 했다. 손이 떨려서 양손을 맞잡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엄마는 독창 무대는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사람이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 말이에요, 선생님.”
    엄마는 그 말을 하고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잘못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부끄러워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에 약간 억울했다. 그래서 더욱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반드시 동의를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엇갈린 의견을 조금씩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자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특이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
    좋은 목소리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적였다. 녹음기가 그의 손에 들려 나왔다. 잘 들어보라는 말과 함께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사람들에게 독창을 시키면서 하나씩 녹음을 한 모양이었다.
    박자는 어긋나고, 감정은 인위적이고.
    녹음기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엄마의 것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때요. 좋아요?”
    그가 엄마에게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엄마는 그 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나도 잘 묻지 않았다. 내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는지, 엄마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내가 나이를 먹었잖니. 때가 낀 비디오 필름이 돌아가면 화면에 하얀 줄이 겹겹이 그어지듯, 기억에 얼룩이 묻었다고 했다. 줄이 죽죽 그어져 있어. 그래도 엄마는 강사의 마지막 말만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허튼짓을 할 것 같으냐고 농담처럼 물었다. 아니, 이렇게 말한 것 같기도 했다. “저 공부 많이 한 사람입니다.”
    엄마의 필름에서는 그 부근의 모든 것이 흐릿했다. 화면이 깨끗해지는 건 강사가 독창자를 정하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부터다. 그는 다 들어보고 결정할 거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뭐든 확인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호의를 의심하고, 칭찬을 믿지 않으며 잘못한 일은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어, 그 말을 전한 이는 그들이 정말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라고 했다.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는 것. 나는 또 역시 웃었다.
    수업이 끝난 후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고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십 분에 한 번 채널을 돌렸다. 순대를 먹는 사람들이 나왔다. 허파를 입에 넣는 그들을 내가 유심히 바라보는 동안, 엄마는 방으로 들어갔다. 노래가 들렸다.
    돌아오는 목요일은 입원 전날이었다. 나는 엄마를 배웅하러 문 앞에 섰다. 잘해, 라는 말을 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뒤에 서서 신발을 신는 걸 지켜봤다. 그녀가 주름진 오른쪽 발등을 신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신발은 낡았다. 오래 걷기에 편치 않아 보였다. 간신히 들어간 발등에 푸른 혈관이 툭 불거져 나왔다.
    “엄마 신발 좀 사야겠다.” 내가 말했다.
    “어, 나중에 살 거야.”
    “언제?”
    “그냥, 좀 있다가. 나중에.”
    잠시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마스크와 모자를 챙겨 나왔다. 차 열쇠는 주머니에 있었다.
    “왜 그래?” 엄마가 물었다.
    나는 못 들은 척 현관문을 열었다. 뒤에서 엄마가 다시 나를 불렀다. 더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대답하는 건 늘 어렵다.
    시내 중반부터 차가 막혔다. 앞에서 접촉사고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경적과 고함이 이쪽으로 떠밀려 왔다. 엄마와 나는 조용히 있었다. 차 안은 건조했고, 날숨이 닿은 마스크는 축축했다. 나는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렸고 모자도 이마 뒤로 조금 당겨서 썼다. 나란히 붙어선 차들이 걸음보다 느린 속도로 나아갔다. 문득 옆에 선 차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움찔, 놀라며 몸을 수그렸고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가 손끝으로 자신의 눈썹을 가리키며 무언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썼다.
    그래.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길이 뚫렸는지 앞차가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따르는데 옆의 차가 끼어들려는 듯 달라붙었다. 나는 경적을 울렸다. 소음이 주위를 에워쌌다. 옆 차가 계속 다가왔다. 나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옆에서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순간 나는 사고가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밖으로 나가주지. 그러자 묘한 기대감에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핸들을 꽉 잡았다. 그러나 곧 모든 차가 한 줄로 멈춰 섰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자 옆 차선의 사고현장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전봇대를 승용차 한 대가 들이받았다. 그 뒤로 차 두 대가 연달아 부딪힌 모양이었다. 꼬리를 문 차들이 종이를 구겨놓은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구급차가 보였다. 들것을 든 사람들도 보였다. 엄마는 밖을 보지 않았다.

 

    교육원에 엄마를 데려다 주고 나자 기운이 빠졌다. 나는 준비해온 약을 먹고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시내를 다시 가로지를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차 표면이 반짝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스테인리스 수술대가 얼마나 차가운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 엄마가 백화점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아주머니 몇 사람이 더 내려왔다. 엄마는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서 길가를 두리번거리는데 택시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경적을 울렸다. 다가오는 엄마의 표정이 심각했다.
    “거기 좀 가자.” 엄마가 차에 타자마자 말했다. “신시가지 공연장 쪽.”
    “무슨 일인데?”
    “그럴 일이 좀 있어. 빨리 가.”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나는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집이야.”
    “왜? 수업은?”
    “휴강이야.”
    “왜?”
    엄마는 차에 탈 때부터 계속 울리던 핸드폰만 봤다.
    “안 가?”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고개를 젓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아, 내가 정말 미쳤지.”
    나는 엄마를 불렀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더니, 내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신경질도 났다. 나는 엄마의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핸드폰에는 엄마와 수업을 받는 아주머니들의 문자들로 가득했다.
    “이게 뭐야?”
    강사가 외부 강습료를 받고 몇몇 사람들에게 과외를 해줬다고 했다. 오늘 노래를 들어본다고 했던 건 시늉만 하려는 거라고 했다. 독창은 이미 정해졌다. 그 사실이 들통 났기 때문인지 강사가 급작스럽게 휴강을 했다는 것이다. 문화센터 쪽에 항의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끼리라도 모여 과외를 받자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일인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기다려 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을 만나야겠다고 했다.
    “왜?”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는 말했다. “혹시 노래 들어봐 달라고 할 거야?”
    엄마는 역시 대답이 없었고,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먼저 가.” 엄마가 내 손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꼭 밥 먹고 약 먹어.”
    나는 차 시동을 걸었다.
    “집에 가라니까.”
    내가 혼자 어떻게 찾아갈 거냐고 묻자 엄마는 또 답이 없었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무척 울적해 보였다. 나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를 더는 슬프게 하지 않을지 몰랐다. 노래하는 일이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했을 뿐이다. 혀 아래로 수많은 말이 모여들었지만, 뱃속으로 삼킨 약들처럼 텁텁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차피 신시가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오늘 목소리가 정말 깨끗했어.” 엄마가 말했다. “하루하루가 달라. 내일도 오늘처럼 목소리가 나올지 자신이 없어.”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강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길게 반복되는 신호음을 엿들으며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 동네를 그렇게 깊숙이 들어와 본 일은 처음이었다. 고층 아파트가 숲의 나무들처럼 솟아 있었다. 복합상가와 개인병원, 약국 등 크고 작은 건물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생경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약간 진정이 된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두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강사는 받지 않았다. 엄마는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쓰는지,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나는 엄마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을 내버려뒀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오후 5시였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손이 저렸다. 나는 차창에 이마를 댔다. 마스크 안의 온기가 코 아래 축축하게 고였다. 손을 쥐었다가 폈다. 다시 손을 쥐려 하니 기운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봤다.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어딘가에 닿아 있었다. 나는 그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끝에 고층 아파트의 한 층이 닿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엄마는 아빠 보고 싶을 때 없어?”
    엄마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새삼스레 무슨 말이냐고 했다.
    “있다고 뭐 달랐겠니.” 엄마의 시선은 계속 그곳에 닿아 있었다. “글쎄. 마음은 좀 편했으려나.”
    나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렸다. 병원 천장을 향해 벌어진 입. 고통스러워 보이던 마지막 숨. 나는 아빠의 손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차가웠다. 그러나 내 손이 닿은 곳은 따듯했다. 누군가 울었다. 듣기 싫었다. 이건 내 필름이다. 흐릿하지만 분명한. 내 필름에서는 아빠와 내 손이 맞잡은 그 장면만 반복되어 나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디선가 와장창 커다란 소리가 들린다. 물컵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누구야, 누구. 누가 그랬어. 외치는 소리들. 놀란 나는 아빠에게서 손을 떼고 잠시 서 있다. 아주 잠깐이었을 뿐인데. 다시 붙잡은 아빠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빠 보고 싶냐?”
    엄마가 물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손끝으로 차창 너머를 가리켰다.
    “우리 나중에 저 아파트에서 살까?”
    나는 웃었고, 손을 쥐었다 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사의 문자 메시지였다.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 다음 시간에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내렸다.
    백미러에 전화를 거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 통화에 성공했는지 엄마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찡그렸다가, 웃었다가, 다시 찡그렸다. 그건 부탁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차라리 그가 엄마에게 아무 희망도 없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전화를 끊는 엄마의 표정이 환했다.

 

    “왜 또 거기야?”
    알았다고 대답하고 차를 돌리긴 했지만 약이 올랐다. 뜬금없이 교양교육원으로 오라니, 처음에는 엄마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날은 어두워졌고, 몸은 뻐근했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 잘난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그곳까지 운전해 갔는지 모르겠다. 분하고, 슬픈 감정들만이 판화에서 찍어낸 그림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
    건물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더 핸들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더니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확인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었다. 곧이어 나도 내렸다. 건물에서는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났다. 계단에 걸터앉자 진한 냄새가 뒤에서부터 나를 감싸 안았다. 역하고 비린 그 내음은 피 냄새를 닮아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건물을 봤다. 저녁이 다가온 탓인지 건물의 색은 이전에 찾아왔을 때보다 한층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세월을 숨길 수는 없었다. 군데군데 둥글게 파인, 무너져 내린 벽의 구멍이 보였고 건물 벽면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둥근 모서리에는 전선들이 혈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비릿한 내음이 몸 안으로 훅, 훅 밀려들었다. 나는 계단을 손으로 짚었다. 먼지가 죽은 세포처럼 묻어 나왔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자 내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다리와 허리가 묵직했고,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무릎으로 조금씩 걸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머리와 등을 문에 기댔다. 무수한 소리들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거기 왜 그렇게 있어.”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고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가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다. 드문드문한 눈썹과 부어오른 얼굴. 까만 피부 위에 거뭇한 기미가 번져 있고, 아무리 틈틈이 립밤을 발라도 몇 초면 입술은 거칠게 말랐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도 환자로 보였다. 저녁 거스름이 내려앉았다. 건물의 냉기가 무릎 위로 흘러내렸다. 내게 냄새가 났다. 나의 몸이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마.”
    그녀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다른 손으로 그 팔을 붙잡았다.
    엄마.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어.”
    “응. 알아.”
    우리는 함께 문 앞에 앉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가 넘어지기만 해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달려왔다. 나는 그것이 좋았고, 그래서 일부러 넘어지고는 했다. 온전히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기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첫 항암치료를 끝냈던 날이다. 모든 치료를 다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게 의사는 씩씩하다고 했다.
    “뭐. 유전이니까요.” 나는 정말로 꽤 씩씩하게 대꾸했다. 방에는 엄마도 함께 있었다.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은 엄마와 나의 머릿속에 얼룩 없이 깨끗한 화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 화면을 매일 되감기 해본다는 걸 안다. 의사는 내게 십오 퍼센트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 십오 퍼센트는 난소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납니다. 나는 되물었다. 그러니까 제가요? 의사가 대답했다. 그래요. 나는 또 물었다. 왜요?
    얘가 왜요?
    “꼭 그것만은 아닐 거야.” 어둑한 저편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했다. “그것만 있을 리 없어.”
    “응, 알아.”
    나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은 여전히 어두웠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 엄마의 직업을 적는 종이에 성악가를 쓴 적이 있었다. 상을 타지도 못하면서 백일장에는 왜 나가느냐는 담임교사의 면박은 내게 어떤 상처도 주지 못했다. 언젠가 한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는 꿈을 꾸었다. 세상의 어떤 가능성과도 상관없는 그 작은 손으로 아이는 둥근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추억이었고 익숙한 체온이었다.

 

 

 

< 선정평 >

 
모순된 말이지만「당신을 닮은 노래」는 그 미숙함 때문에 선정하게 된 소설이다. 특히나 감정 표현이 조금 지나친 것은 아닐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미숙함의 이면에는 가능성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함이 있다. 이 소설의 장점도 바로 그것이다. 세상살이에 서툰, 암환자이기도 한 스물아홉의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 모든 것을 다 접고 자신을 간병할 게 뻔한 어머니에게 딸은 노래를 배우러 다니라고 제안한다. 엄마는 매일 노래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백화점 문화센터로 데려다준다. 이들이 “꼭 밥 먹고 약 먹어.” “하루하루가 달라. 내일도 오늘처럼 목소리가 나올지 자신이 없어.” 하는 대사들을 주고받을 때 뭉클해진다. 그 서투름과 꾸밈없음 때문에. 딸은 엄마에게 노력하면 뭐든 나아질 거라 배웠다. 그 말은 분명히 사실일 것이다.
    조경란 (소설가)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 쓴 작품이었는데, 응원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문병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다 입술을 데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떨가, 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다른 일을 잘 하지 못합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유투브 같은 홈페이지에 계속 접속해서 음악이나 댄스 동영상을 반복해서 봅니다.

 

4. 작품을 발표하기 전(혹은 퇴고를 하신 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전문사 시절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 편입니다. 지금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에게도 자주 이야기를 듣습니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소설을 쓰고 있고,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소애쓰는 마음에 신경이 쓰입니다. 애쓰지만, 더 애써야만 하는. 그런 마음을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일본에 유학중인 주인공이 친구 누나를 마중 나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그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만나는 건 처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그녀의 모습에 조금 당황합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말합니다. “걔가 내 욕 징그럽게 했지?” 그리고 자신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속을 떠보기 시작합니다.

 

 

강화길 (소설가)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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